제1차 세계 대전때 참모장교였던 그는 1917년에 중위로 진급 후 항공대로 이동해 조종사로서 종군했다. 전후 폴란드와의 국경수비를 담당하는 의용군의 기병부대 지휘관으로 일하다가 1920년3월에 퇴역한 로렌츠는 단치히로 이동해 집안의 재산을 이어받아 유복한 자산가로 알려져 샬롯테 벤트스키란 여성과 결혼했다.
나치당 단치히 대관구의 지도자였던 알베르트 포르스터의 소개로 친위대 국가지도자였던 하인리히 힘러와 알게 된 로렌츠는 1930년12월 1일에 나치당에 입당한 후 1931년1월 31일에 친위대에 입대해 1934년2월까지 단치히에 본부를 둔 제7 친위대 지구 초대사령관으로 일했다. 나치당이 정권을 장악한 후인 1933년12월 15일부터 1934년2월까지 친위대 상급지구 북동사령관으로 취임한 로렌츠는 12월에는 국회의원이 되었다. 그리고 1936년에는 친위대 대장으로 승진했다. 1937년1월부터 오토 폰 크루셀이 지휘하던 뷔로 크루셀 (Büro Kursell)의 지휘를 이어받은 로렌츠는 극외주재 독일인에 관한 정책을 담당했는데, 이윽고 이 조직은 독일민족대책본부(VOMI)로 개명되었다. 로렌츠의 지휘하에 Vomi는 해외 독일인 협회와 동방 독일연맹 등 라이벌 조직을 차례로 산하에 넣고 주도권을 장악했다. 이 조직은 오스트리아 합병에도 큰 역할을 했는데 슈다덴의 합병에도 활동했다.
폴란드 침공 후인 1939년9월말에는 히틀러가 소련과 발트각국과 협정체결때 이곳에 사는 독일계 주민을 독일로 이주할 계획을 세웠다. 히틀러는 힘러를 건너뛰고 바로 로렌츠에게 지시하려고 했지만 이를 경계한 힘러가 Vomi를 친위대에 완전히 흡수한 다음 1941년에 친위대 본부의 하나로 만들었다. 로렌츠는 독일민족성 강화국가위원본부의 재정국장으로 취임해 친위대 본부의 국제관계부장도 역임했다. 1945년2월에 Vomi에서 물러난 그는 바익셀 군집단에 참가해 질서유지와 탈주병의 처단 등을 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