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30 00:20:51

오라두르쉬르글란 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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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Le massacre d'Oradour-sur-Glane
독일어: Das Massaker von Oradour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00px-Car_in_Oradour-sur-Glane4.jpg

파괴당해 유령도시가 된 오라두르쉬르글란의 모습.[1]

1. 개요2. 전개3. 재판4. 이후

1. 개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인 1944년 6월 10일프랑스 중부지방의 작은 마을 오라두르쉬르글란(Oradour-sur-Glane)에서 일어난 무장친위대 제2SS기갑사단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이다.

2. 전개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 호응하기 위해 프랑스 레지스탕스가 오라두르쉬르글란 마을 근방에서 주둔하고 있던 제2SS기갑사단를 습격한 사건이 발단이었다. 이때 독일군 장교가 레지스탕스에게 생포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독일 무장친위대는 독일군 장교의 구출 및 레지스탕스를 향한 보복을 목적으로 오라두르쉬르베르 남쪽에 있던 오라두르쉬르글란 마을을 공격하였다. 마을을 포위하여 한 명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길목을 차단했고 곧바로 독일군의 학살이 시작되었다.

남자들은 헛간에 가두고 여자와 15세 이하의 아이들은 성당에 가둔 뒤 남자들을 전부 총살하고 성당에 불을 질러 여자들과 아이들을 불태워 죽였다. 성당에서 빠져나오려던 사람들은 기관총에 공격당해 죽었다. 다양한 방법으로 잔인한 학살이 계속되었고 마을은 다이너마이트로 완전히 파괴당해 사라져 버렸다.

다스 라이히 사단에서는 당시 400명 정도가 죽었다고 여겼으나 실제로는 아이들까지 합쳐 642명의 마을 사람들이 학살당했다. 게다가 오르두르쉬르글란 근교에는 다른 마을 사람들도 있었고 독일군은 본격적인 학살이 일어나기도 전에 이들을 첫 번째로 죽였다. 따라서 비공식적으로는 800여 명이 죽었다고 보는 통계도 있다.

학살이 끝난 뒤 살아남은 자는 겨우 6명이었고 근교에 있는 사람들까지 합쳐도 28명에 불과했다. 이들은 기관총에 맞아 죽은 시체인 것처럼 연기하는 등의 행동을 통해서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3. 재판

1953년 1월에 열린 보르도의 전범재판에서 이 사건을 다루게 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학살에 연루된 200여 명의 독일군 가운데 다수가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전사하거나 실종되었다. 특히 장교급은 전원 전사[2]하여 생존자는 총 65명이었지만 대부분이 동독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 체포되어 재판정에 끌려온 범죄자는 도합 21명이었다. 이 가운데 7명은 독일인이었지만 나머지 14명은 알자스[3] 출신이었다. 실제로 체포된 21명 중 20명은 자신들이 "강제 징집된 병사들이었기 때문에 본인의 의지와 관계 없이 전쟁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여 각각 5년부터에서 11년까지의 징역을 선고받았다가 알자스 지방의 항의(?)를 고려한답시고 프랑스 의회 차원에서 모두 사면됐다.[4] 다만 알자스인 한 명은 유일하게 사형에 처해졌는데 조사 결과 자원입대자였고 적극적으로 학살에 동참했음이 확인되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동독에 남아 있던 전범들도 1983년 자체 재판을 거쳐 처벌받았다. 그러나 당시 사단장이었던 하인츠 라머딩은 전후 영국군에게 구금되어 형기를 채웠다는 이유로 서독에서 송환을 거부했으며 이후 사업가로서 잘 살다가 편히 죽었다.

4. 이후

전쟁이 끝난 후 오라두르쉬르글란은 마을은 인근에 재건되었으나 학살 당시의 모습은 사적지로 보존하고 있다. 세계 3대 유령도시 중 하나로도 알려져 있다. 폐허가 된 오라두르쉬르글란 마을 입구에서는 이러한 말이 적힌 푯말 하나가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파일:external/www.oradour.info/souvien1.jpg
Souviens-toi (프랑스어)
Remember (영어)
기억하라
2013년 9월 4일 프랑스를 방문한 요아힘 가우크 독일 대통령이 오라두르쉬르글란을 찾아 독일군이 저질렀던 학살에 대해 다시금 사죄하고 나치의 잔재 척결을 다짐했다.

이 학살에서 살아남은 사람 중 한 명은 당시 있었던 일을 회고하였으며 이는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에서 방영했던 다스 라이히 사단을 다룬 다큐멘터리에서도 나왔다.

1975년작 프랑스 영화 낡은 엽총(Le Vieux Fusil, 한국 개봉명은 '추상')은 이 학살 사건에서 아내와 아이를 잃은 프랑스 의사[5]가 독일군에게 복수하는 내용이다.

2017년에는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이 당시 유일한 생존자 로베르 에브라(Robert Hébras, 1925년생)와 함께 오라두르쉬르글란을 방문했다. 에브라는 2023년 2월 11일 97세로 사망했다.


[1] 주민들은 이후에도 바로 옆에 똑같이 마을을 재건해 살고 있지만 피해를 입은 옛 마을은 전쟁의 참상을 후세에 알리기 위해 그대로 보존해 두었다.[2] 역사학자 맥스 해스팅스가 지은 '다스 라이히'에 따르면 학살을 지시한 장교들과 이에 참여했던 병사들 대부분 노르망디 전투와 이후 이어진 팔레즈 포위망에서 전사했다.[3] 로렌 지방과 합쳐서 알자스-로렌. 독일과 프랑스 어느 쪽에도 완전히 귀속되지 않았던 애매한 경계 같은 지방이었다. 프랑크 왕국의 분열 당시 중프랑크 왕국을 기원으로 하는 지방으로 중프랑크 왕국의 분열 때 독일의 먼 전신이라 할 수 있는 동프랑크 왕국 및 신성 로마 제국에 넘어갔다가 서프랑크 왕국의 후신인 프랑스가 유럽에서 가장 중앙집권화된 나라로서 패권을 잡게 되면서 서서히 접수하게 되었다. 이렇게 프랑스에 넘어가게 되었으나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의 패배로 독일에게 빼앗긴 후 제1차 세계 대전의 승리로 다시 프랑스가 점유하였고 2차 대전 초기 독일이 프랑스에게 승전을 거두면서 다시 독일에게 귀속되었다가 2차 대전 종료 후 다시 프랑스에게 돌아갔다. 원래부터 독립적인 지방이었던 데다 각 지방 내 지역들의 역사도 서로 다르고 여러 번 독일과 프랑스 사이를 왔다갔다 했던 만큼 지방 안에서도 차이가 크고 주민들의 정체성도 중구난방이었으며 대체로 알자스는 친독, 로렌은 친프랑스 성향이 강했다.[4] 위의 각주에서 언급하였듯이 알자스 지방은 친독 성향이 강했기 때문에 분리독립 등을 우려했던 듯.[5] 시네마 천국으로 유명한 배우 필립 느와레가 연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