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제프 블뢰체 Josef Blösche | |
<colbgcolor=#000><colcolor=white> 출생 | 1912년 2월 5일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스라이타니아 보헤미아 왕국 프리들란트 (現 체코 리베레츠주 리베레츠구 프리틀란트) | |
사망 | 1969년 7월 29일 (향년 57세) |
동독 작센주 라이프치히 관구 라이프치히 (現 독일 작센주 라이프치히) | |
복무 | 친위대 |
1939년 ~ 1945년 | |
최종 계급 | 분대지도자[1] (친위대) |
주요 보직 | 친위대 특수작전단 바르샤바 지구 호송대 호송담당관 |
서훈 | 전공십자장[2] 수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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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나치 독일의 친위대 병사.나치 친위대에 소속되었던 독일인은 수십만 명이 넘으므로 장성이나 장교도 아닌 일개 병사였던 이 인물이 나무위키 문서가 생길 정도로 유명할 이유는 없으나, 하필 바르샤바 게토 봉기와 관련한 가장 유명한 사진에 얼굴이 식별 가능하게 찍히면서 전범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 되었다.
2. 일생
2.1. 전쟁 이전
1912년 2월 5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뵈멘 프리틀란트에서 여관을 운영하던 독일계 가족에서 태어났다.그가 어린 시절 1차 세계 대전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되면서 그의 가족은 체코슬로바키아 제1공화국에서 독일계 소수민족 신세가 되었다. 그의 부모는 여관을 운영했으며 그는 14살까지만 학교를 다니다가 관두고 가족의 여관 일을 도왔다.
청년이 된 후인 1935년 친독 정당인 주데텐 독일인당에 가입했고 독일이 체코슬로바키아를 합병하면서 그대로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당원이 되었다.
2.2. 제2차 세계 대전
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1939년 12월 4일 친위대에 자원입대했고 1940년 3월 14일 훈련을 마치고 바르샤바 지역에 배치된다.1941년 악랄한 것으로 유명한 아인자츠그루펜에 소속되어 동부전선에서 벨라루스 대학살에 가담했다.
1942년 중반 경 바르샤바 유대인 게토에서 트레블링카 절멸수용소로 유대인들을 이송하는 일에 투입된다. 이 시절 그는 게토에서 많은 유대인 여성들을 강간하고[3] 소풍 다니듯 자전거를 타고다니며 무작위로 아무 유대인이나 쏴죽이는 등 친위대 중에서도 유독 잔인한 면모를 보여 악명이 높았다고 하며, 유대인들은 그를 프랑켄슈타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이후 본인이 인정하길 최소 75명 이상의 유대인을 직접 살해했다고 한다.
1943년 바르샤바 게토 봉기가 발생하자 봉기 진압에 투입되었으며 이 때의 공로로 전공십자장을 수훈했다. 바르샤바 게토 봉기와 관련된 가장 유명한 사진인 위 사진의 오른쪽 끝에서 유대인들에게 MP28을 겨누고 있는 인물이 바로 요제프 블뢰체이다.
1944년 바르샤바 봉기 진압에도 투입되었으며 1945년 5월 소련군에 투항한다.
2.3. 전쟁 이후
소련군의 포로가 된 그는 체코슬로바키아 오스트라바의 탄광에서 강제노역을 하게 된다.1946년 노역 중 산업재해를 당해 두개골이 골절되는 중상을 입었고 이로 인해 얼굴이 변형된다. 블뢰체 본인에게는 새옹지마로 이렇게 얼굴이 변형된 덕분에 신원식별이 어렵게 되어 그는 전범으로 기소되는 일 없이 1947년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된다.
석방된 그는 동독 튀링겐 지역으로 이주하여 한나 쇤스테트(Hanna Schönstedt)라는 전쟁 과부와 결혼했다. 한나와의 사이에서 자녀 2명을 가졌다고 하며, 한나는 그를 자신과 자녀들에게는 한없이 자상했던 좋은 남편이자 아버지였다고 증언했다. 그는 튀링겐의 칼륨 생산 공장에서 생산기능장으로 근무하며 전범이었던 과거를 잘 숨기고 평범한 노동자이자 가장으로 잘 살아남는 듯했다.
2.4. 체포와 처형
1961년, 서독에서 전범 혐의로 재판받고있던 前 친위대 상급반지도자(Oberscharführer) 하인리히 클라우스터메이어(Heinrich Klaustermeyer)가 요제프 블뢰체의 학살 행위에 대해 증언했다. 1965년 서독 정부가 클라우스터메이어의 재판에 증인으로 세울 수 있도록 동독 정부에 블뢰체의 인도를 요청한다.블뢰체는 1967년 1월 11일 슈타지에 의해 체포된다. 그러나 동독 정부는 블뢰체의 서독 인도를 거부하고 대신 블뢰체는 동독에서 재판을 받게 된다.
재판에서 그는 자신에 대한 비난에 대해 전혀 부인하지 않았고, 모든 것을 기억하지는 못하나 대부분의 혐의가 사실이라며 담담하게 인정했다. 그는 1967년 4월 유죄 판결을 받았고, 1969년 7월 29일 라이프치히 교도소에서 총살형으로 처형된다.[4]
3. 소속 정당
소속 | 기간 | 비고 |
주데텐 독일인당 | 1935 - 1938 | 입당 |
| 1938 - 1945 | 당적 전환[5] |
4.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바르샤바 게토 봉기가 묘사된 영화 피아니스트(로만 폴란스키 영화)에서 잠시 등장한다. 그냥 지나치는 장면이라서 요제프 블뢰체를 연기했다기보다는 실제 기록사진과 똑같은 구도로 엑스트라들이 서있는 컷을 집어넣은 정도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