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2 05:37:44

하후광희

夏侯光姬
(? ~ 307)
진서(晉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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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여담

1. 개요

서진의 인물. 자는 동환(銅環)으로 하후장의 딸이자 낭야공왕 사마근의 왕비, 진원제 사마예의 생모.

2. 생애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지혜로웠으며 하후씨의 집안 또한 하후연, 하후위부터 이어져내려온 뼈대있는 가문이라[1], 하후광희가 성년이 되었을 때 황족인 사마근과 맺어졌다. 그리고 276년에 하남군 낙양에서 훗날 동진의 황제가 되는 사마예를 낳았다.

283년, 사마주가 죽고 낭야왕에 오른 사마근은 하후광희를 왕비, 그녀 소생의 아들 사마예를 왕세자로 삼았다.

290년, 사마근이 사망하고 그 뒤를 이은 사마예가 어머니 하후광희를 왕태비로 모셨다. 이후 17년 뒤인 307년에 하후광희 또한 죽었고, 그녀의 시신은 낭야국에 안장되었다. 참고로 그녀가 사망하고 10년 뒤에 아들인 사마예가 동진의 황제가 된다.

3. 여담

위서에 아들인 사마예 출생에 관한 일화가 하나 수록되어 있다. 조위 말기 당시 세간에서는 《현석도(玄石圖)》라는 참언서가 유행하고 있었다. 여기에 "소가 말의 뒤를 잇는다."는 구절이 있었는데, 사마의는 소는 우(牛)씨, 말은 사마(馬)씨를 뜻하므로, 사마씨 국가가 망하고 우씨가 집권한다 해석하였다. 그래서 유명한 점쟁이에게 가 자신의 후손들의 운세를 점쳐달라 했지만, 점괘는 사마의가 예상한 것과 조금도 틀리지 않게 나왔다. 이에 사마의가 우금을 독살했으나, 훗날 방탕한 하후광희는 우금과 통정하여 사마예를 낳았으니, 결국 참언이 들어맞았다는 식의 이야기이다. 이 일화의 최초 출처인 위서는 북조 25사 중에서도 질이 나쁘기로 악명이 높고, 남조측의 정통성을 깎아내리기 위해 지어낸 참언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있다.[2]

진서에는 또다른 내용의 참언이 실려있다. 서진 초에 "동마(銅馬)가 바다로 들어가 업(業)을 세울 것이다."라는 참언이 유행했다고 한다. 하후광희의 아명이 동환(銅環)이고 사마는 본래 말(馬)을 가리키므로, 동마인 사마예가 바다와 가까운 건강에 들어가 동진의 황제에 올랐으니 참언대로 되었다.


[1] 하후연-하후위-하후장-하후광희[2] 다만 《현석도》라는 참언서 자체는 실제 존재했는지, 사마광의 《자치통감》이나 허숭(許嵩)의 《건강실록》에서 그 내용의 일부분을 엿볼 수 있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