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9 12:33:23

맥스 마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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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 마틴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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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음악 잡지 NME가 2012년 "50 Of The Greatest Producers Ever"를 선정한 순위다.
<rowcolor=#fff,#000> 1위 2위 3위 4위 5위
조 믹 조지 마틴 퀸시 존스 나일 로저스 필 스펙터
<rowcolor=#fff,#000> 6위 7위 8위 9위 10위
릭 루빈 브라이언 이노 브라이언 윌슨 부치 빅 닥터 드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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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스크레치 페리 아리프 말딘 팀발랜드 나이젤 고드리치 티 본 버닛
<rowcolor=#fff,#000>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넵튠스 스티픈 스트리트 토드 런그렌 다니엘 라누아 앤드루 웨더럴
<rowcolor=#fff,#000> 21위 22위 23위 24위 25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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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000> 26위 27위 28위 29위 30위
테오 마세로 로버트 존 머트 랭 제이 딜라 베리 골디 샘 필립스
<rowcolor=#fff,#000> 31위 32위 33위 34위 35위
톰 다우드 지미 로바인 데인저 마우스 비두 제프 린
<rowcolor=#fff,#000> 36위 37위 38위 39위 40위
맥스 마틴 마크 론슨 프린스 트렌트 레즈너 스티비 릴리화이트
<rowcolor=#fff,#000> 41위 42위 43위 44위 45위
트레버 혼 스티브 알비니 지미 밀러 제리 웩슬러 로이 토마스 베이커
<rowcolor=#fff,#000> 46위 47위 48위 49위 50위
RZA 피트 록 조지 클린턴 폴 에버스 DJ 섀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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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 NME 선정 500대 명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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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colbgcolor=#009999> 맥스 마틴
Max Martin
파일:MaxMartin.webp
본명 Karl Martin Sandberg
칼 마르틴 산드베리
국적
[[스웨덴|]][[틀:국기|]][[틀:국기|]]
출생 1971년 2월 26일 ([age(1971-02-26)]세)
스웨덴 스톡홀름 주 스톡홀름
직업 프로듀서
신체 173cm
가족 아내 옌뉘 피터슨
도리스 샌드버그
데뷔 1994년 E-Type
1집 Made In Sweden[1]
장르 , 댄스 팝, R&B, 팝 록, 버블검 팝, 디스코, 유로 팝, 일렉트로닉
소속사 Martone Studios, Capitol Records

1. 개요2. 생애
2.1. 어린 시절과 90년대2.2. 2000년대 초의 하락세2.3. 닥터 루크와의 만남, 그리고 재기2.4. 셸백과의 만남2.5. 제2의 전성기, 그리고 현재
2.5.1. The Weeknd와 Max Martin
3. 인기 및 위상4. 트렌드를 읽는 능력5. 비판?6. 편곡 능력7. 디스코그래피
7.1. 빌보드 핫 100 1위7.2. 빌보드 핫 100 2~10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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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웨덴음악 프로듀서.

2. 생애

2.1. 어린 시절과 90년대

그는 스톡홀름의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경찰관, 어머니는 학교 교사였다고 한다. 그는 10대 시절 때 친구들과 함께 '이츠 얼라이브(It's Alive)'라는 메탈 밴드를 만들었다. 맥스 마틴은 밴드에서 보컬과 작곡을 맡았다. 이때부터 재능이 있었는지 1집을 내게 됐고, 나름 중박을 쳤다. 하지만, 다음 2집은 망하게 됐다. 결국, 밴드는 해산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 후 그의 재능을 눈여겨 본 데니즈 팝(Denniz Pop)을 만나게 됐고, 맥스 마틴은 프로듀서의 길을 걷게 됐다. 결과적으로, 이 만남이 지금의 맥스 마틴을 있게 해준 것. 데니즈 팝은 여러모로 그의 스승이자 은인인 셈이다.

몇 년간 데니즈 팝 밑에서 음악을 공부한 맥스 마틴은, 1994년 데니즈 팝과 함께 E-Type의 첫 앨범을 프로듀싱하며 데뷔한다. 1995년에는 Ace of Base의 앨범을 프로듀싱하면서 성공을 거뒀다. 이 즈음 스웨덴 출신 팝 가수 Robyn에게 "Do You Know (What It Takes)"라는 곡을 써주었는데, 빌보드 핫 100 7위를 기록하는 대성공을 거둔다. 이러한 성공을 바탕으로 맥스 마틴은 전설적인 보이 그룹 백스트리트 보이즈의 데뷔 앨범을 프로듀싱했는데, 이 앨범은 전 세계적으로 대박을 터트렸다. "Quit Playing Games (With My Heart)"가 빌보드 핫 100 2위에 올랐다. 우리나라에서도 매우 유명한 "As Long As You Love Me"도 이때 작곡한 노래 중 하나다. 이 당시 Robyn에게 "Show Me Love"라는 곡을 줘서 또 히트시켰다.[2]

한참 주가가 오른 데니즈 팝과 맥스 마틴은, 이 외에도 여러 가수들과 협업하며 히트곡을 만들어냈다. 그러던 중에 한 풋풋한 틴에이지 소녀의 데뷔 앨범을 맡게 됐는데, 그 소녀는 바로 브리트니 스피어스. 그리고 이 앨범이 전 세계에 가져다준 충격은 실로 대단했다.

그러나 성공의 달콤함도 잠시, 백스트리트 보이즈의 후속 앨범을 프로듀싱하던 중 스승인 데니즈 팝이 35세의 나이에 암으로 요절하고 만다. 그렇지만 맥스 마틴은 다른 데니즈 팝의 제자들과 함께 나머지 곡들을 프로듀싱했고, 이번에도 대박을 터뜨리게 된다.

이때의 맥스 마틴이 대단한 점은, 당시 미국 보이 그룹의 양대산맥인 백스트리트 보이즈NSYNC를 동시에 프로듀싱했다는 점이다.[3] 이런 경력은 후에도 이어져, 2010년대 초중반 미국 솔로 여가수 양대산맥이었던 테일러 스위프트케이티 페리를 동시에 프로듀싱하게 된다.

2.2. 2000년대 초의 하락세

90년대 후반을 뒤흔든 보이 그룹의 열풍은 어느새 잠잠해졌다. 음악적 트렌드도 바뀌어서, 주요 장르였던 유로 팝 대신 다른 스타일이 치고 올라왔다[4]. 유로 팝 스타일로 대부분 프로듀싱했던 맥스 마틴은 이런 급격한 변화에 적응을 못 하고 슬럼프를 타게 됐다.[5]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 나름대로 음악적 변화를 주려고 했는지 셀린 디온의 앨범을 프로듀싱하기도 했다. 하지만,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6] 슬럼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던 맥스 마틴은 우연히 클럽에서 DJ를 하고 있던 한 프로듀서를 만나게 된다.

2.3. 닥터 루크와의 만남, 그리고 재기

맥스 마틴은 우연히 닥터 루크(Dr. Luke)의 음악을 듣고, 이 사람의 재능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맥스 마틴은 닥터 루크에게 "몇천 명에게 들려줄 음악 말고, 몇백만 명에게 들려줄 음악을 하는 게 어때?"라고 제안하게 된다. 이렇게 둘의 만남은 성사됐다.

그 당시 아메리칸 아이돌이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새로운 방송 형태로 엄청난 인기를 얻었고, 그 프로그램의 1회 우승자이자 유명가수인 켈리 클락슨은 2집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때 소속사의 권유로, 후반 작업에 맥스 마틴과 닥터 루크가 참여하게 됐다. 그리고 이 앨범의 수록곡인 "Since U Been Gone"과 "Behind These Hazel Eyes"가 빌보드 핫 100에서 2위와 6위에 오르며, 맥스 마틴은 재기에 성공한다.

2.4. 셸백과의 만남

그리고 2000년대 중후반 때, 셸백(Shellback)을 만나게 된다. 같은 스웨덴인으로서, 현재 맥스 마틴 음악의 핵심이 되는 프로듀서를 이때쯤 만난 것이다. 그리고 이 시기를 기점으로, 맥스 마틴의 음악적 성향도 변하게 됐다. 기존 90년대의 유로팝에서 벗어나, 강렬한 록 음악 사운드를 더 추구하게 된 것이다. 이는 셸백과 닥터 루크의 영향이 크다. 맥스 마틴은 이들과 협업하면서, 본인의 편곡 비중을 줄였다. 이는 동료 프로듀서의 색이 더 강해진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덕분에 맥스 마틴의 음악적 변화가 가능할 수 있었다.

현재, 맥스 마틴의 음악이 세련됨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셸백의 공이 매우 크다.[7] 셸백이 시대 흐름에 맞게 편곡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맥스 마틴 혼자 편곡하는 경우는 이제 없다. 맥스 마틴은 여전히 셸백과 함께 작업하고 있다.

2.5. 제2의 전성기, 그리고 현재

2005년 때 되돌아온 백스트리트 보이즈의 새 앨범을 제작하게 됐는데, 이 앨범은 결과적으로 망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꽤나 유명했던 노르웨이 듀오 M2M 출신 마리온 레이븐의 앨범을 프로듀싱하게 된다. 그 후 2006년 때 팝 음악계의 여장부 핑크의 앨범에 참여하게 됐다. "U+Ur Hand"와 "Who Knew"가 빌보드 핫 100 TOP 10 안에 오르는 등, 이 앨범은 큰 히트를 치게 됐다. 맥스 마틴과 핑크와의 인연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2007년 때는 에이브릴 라빈, 제임스 블런트, 도트리 등과 작업했는데, 이들의 싱글들도 나름 빌보드 순위권에 들었다.

이후 2008년, 맥스 마틴과 닥터 루크는 케이티 페리의 데뷔 앨범 프로듀싱을 맡게 되고, 이 앨범의 싱글인 "I Kissed A Girl"이 빌보드 핫 100 1위에 오르며 큰 성공을 거둔다. 맥스 마틴에게는 8년만에 빌보드 1위 곡이었다. 트렌드를 따라잡지 못해 서서히 몰락해가는 줄로만 알았던 왕년의 탑 프로듀서는 이때를 기점으로 완벽한 재기를 이루어냈고, 팝 음악의 역사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사실, 케이티 페리의 데뷔앨범은 맥스 마틴과 루크가 참여하지 않을 계획이었다. 그런데 구 앨범을 들은 소속사가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여겼고, 둘을 불러 새 곡들을 주문하게 된 것이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신의 한 수가 됐다.

또한 2008년에는 몰락하고 있던 브리트니 스피어스새 앨범을 닥터 루크와 프로듀싱했는데, 이 앨범으로 스피어스는 완벽한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2010년, 맥스 마틴은 전무후무한 앨범을 내게 된다. 바로, 케이티 페리의 2집 Teenage Dream이다. 한 앨범에서 무려 5곡이 빌보드 1위를 기록했다. 이 앨범은 닥터 루크와 베니 블랑코(Benny Blanco) 등의 프로듀서들과 같이 작업했다. 1위를 한 5곡 중 4곡이 맥스 마틴이 프로듀싱 하였다. 그리고 컨트리 음악에서 팝 음악으로의 전환을 시도하던 테일러 스위프트가 마침내 그를 찾게 되고, 2010년대 가장 성공적인 앨범 중 하나인 '1989'로 또 다시 거대한 성공을 거둔다. 이 앨범에서 대부분의 곡을 맥스 마틴과 셸백이 프로듀싱했다. 맥스 마틴은 이 앨범으로, 그래미 어워드에서 "Producer of the Year"를 타게 된다.

재기에 성공한 이후부터는 맥스 마틴을 찾는 가수가 굉장히 많아졌고, 이에 덩달아서 작곡한 곡들도 굉장히 늘어나게 됐다. 일일이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로 히트곡이 많아서, 차마 쓸 수가 없을 정도. 맥스 마틴의 빌보드 1위 곡과 히트곡 대부분은, 이 시기부터 작곡한 곡들이다.

맥스 마틴은 그가 발굴한 프로듀서이자 맥스 마틴 음악의 핵심 프로듀서로 성장한 셸백, 알리 파야미(Ali Payami), 일리아 살만자데(Ilya Salmanzadeh), 마트만 앤 로빈(Mattman & Robin), 사반 코테차(Savan Kotecha)[8], 오스카 홀터, 베니 블랑코[9] 등과 협업하고 있다. 맥스 마틴과 그가 발굴한 프로듀서들은, 팝 음악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들을 빼놓고선 팝 음악계를 논할 수 없을 정도로, 현재 그들의 영향력은 막대하다.

이와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빌보드 선정 21세기 최고의 프로듀서 1위에 이름을 올렸다. 출처

이들과의 협업을 통해 많은 수의 1위와 히트 싱글들을 만들어낸 아티스트들의 목록이다.
  • Ariana Grande
    아리아나 그란데가 캣 발렌타인이라는 배역에서 디바 가수로서의 대중 인식 전환을 위해 힘을 쓸 때 가장 크게 일조한 프로듀서 중 한 명이다. 그녀에게 최초의 핫 100 1위를 안겨준 프로듀서는 아니지만, 디스코그래피의 중요한 히트곡들에 참여하여 대중음악계에 발자취를 남길 수 있도록 해주었고, 7집 "eternal sunshine"에서 연달아 2개의 1위곡을 배출시키는 등 전성기 유지에 크게 힘을 보탰다. 섹시 컨셉으로 전환하던 시점에서 당시 가장 큰 히트를 기록했던 "Problem" 역시 맥스 마틴의 협업 작품이고, 뒤이어 "Love Me Harder", "Break Free", "Bang Bang", "Dangerous Woman", "God Is a Woman" 등 1위만 못했다 뿐이지 상당히 많은 인지도 높은 Top 10 진입곡들을 쏟아내듯 만들어내었다. 현재까지도 협업은 이어져서 2집 이후 매 앨범[10]마다 대표 프로듀서로 참여해 그녀의 디스코그래피의 가장 핵심적인 인물로 협업하고 있다.
  • Britney Spears
    백스트리트 보이즈와의 협업을 통해 한껏 주가를 올리고 있던 맥스 마틴은 브리트니와의 데뷔곡 협업을 통해 완전히 최정상급 팝 프로듀서가 될 수 있었다. 브리트니 역시 마틴과의 합작곡 중 3곡을 1위로 만들었고, 90년대 말, 2000년대 중반까지를 주름잡은 대표적인 여성 팝 가수로 이름을 떨칠 수 있게 되었다.
  • Katy Perry
    명실상부 2000년대 후반과 2010년대 중반을 주름 잡았던 최고의 팝스타 중 한 명으로, 여정을 맥스 마틴과 함께 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함께 큰 성공을 거뒀다. 전체 8개의 1위곡을 배출하며 맥스 마틴과 합작한 아티스트 중 가장 많은 1위곡을 배출한 가수이기도 하다. 브리트니와의 협업 이후 음악계의 빠른 트렌드 변화로 여러 많은 대형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이 이뤄졌음에도 흥행에 실패해왔던 맥스 마틴에게 케이티 페리와의 협업이 큰 성공을 거두며, 제 2의 전성기를 다시금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케이티 페리 본인은 큰 대중적 성공을 거둬도 그래미의 잦은 수상 불발 등과 같은 상복이 없었다. 또 분명 대중 음악계에 큰 족적을 남긴 여러 기록[11]들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맥스 마틴과의 협업에 대한 주목도[12]가 많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 Taylor Swift
    전체 4개의 맥스 마틴 협업곡 1위를 달성한 아티스트. 테일러는 굳이 맥스 마틴이 아니어도 다른 프로듀서들(특히 잭 안토노프)과의 협업으로 무수히 많은 1위를 만들어냈던 아티스트이다. 그러나 컨트리에서 팝으로 완전히 전향하던 시점인 4집과 5집에서 맥스 마틴과 그의 프로듀서 사단을 전면으로 앞세워 당시 활동하던 시점인 2012년과 2014, 15년에 1위 곡을 4곡 배출하고 이를 통해 맥스 마틴이 "Producer of the Year" 상까지 수상하며 생애 첫 그래미 프로듀서 상을 탔다. 그리고 이 시점부터 본격적으로 프로듀서 맥스 마틴이 큰 주목을 받으며 당시 기사로도 마틴에 대해 알아보자는 취지의 기사나 글들#이 많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2.5.1. The Weeknd와 Max Martin

아리아나 그란데의 히트 싱글 'Love Me Harder'의 작업을 통해 알게 된 R&B 스타 The Weeknd와는 2020년대 초, 가장 손꼽히는 최고의 싱어-프로듀서 듀오가 되었다. 위켄드와 함께한 모든 곡들[13]은 전부 빌보드 핫 100 차트에 이름을 올렸으며, 위켄드와 함께한 곡인 'Can't Feel My Face'와 'Blinding Lights'가 차트 정상에 이름을 올렸다. 'Can't Feel My Face'의 경우 롤링 스톤 선정 2015년 최고의 곡 1위를 달성하는 등 평단의 평가 역시 상당했으며, 특히 'Blinding Lights'의 경우 역사상 가장 긴 시간 싱글 차트 Top 5, Top 10에 머무른 곡이자 동시에 가장 긴 시간 차트에 머무른 곡, R&B 차트와 라디오 차트에 역사상 가장 긴 시간동안 1위를 차지한 곡, 뒤이어 2020년 빌보드 연말 차트 1위는 물론 빌보드 올타임 차트 1위까지 달성한 전무후무한 초대박 히트곡이다. 위켄드는 물론 맥스 마틴 본인조차도 처음 달성한 대기록이다. 이후로도 위켄드 본인과 리믹스로 참여한 Ariana Grande 모두에게 6번째 1위곡이 된 'Save Your Tears (Remix)'로 또 다시 차트 1위를 차지했다. 이로써 맥스 마틴은 위켄드와의 합작으로 3개의 1위를 만듦과 동시에 자신의 24번째 1위 곡을 배출했다. 위켄드는 맥스와 만나고 작업을 한 후부터 그와 베스트 프렌드가 됐다며 이런 사람은 자신의 음악 인생에서 몇 없는 사람이라 추켜세우기도 했다. 출처 The Weeknd의 5집 앨범의 리드 싱글 'Take My Breath'를 비롯 앨범 전체의 공동 총괄 프로듀서(곡으로는 총 14곡)로서 참여했다. 이 두 음악가의 만남은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과 천재 프로듀서 퀸시 존스의 만남이라 보는 여론이 많다. 단순히 외적인 부분만으로, 잭슨의 목소리를 빼닮은 더 위켄드와, 이미 역사상 최고의 프로듀서로 이름을 남기고 끊임없이 갱신해나가기에 21세기 퀸시 존스라 불리는 맥스 마틴이라는 점도 있다. 현재까지 아리아나 그란데를 포함해 꾸준하게 협업하고 있는 프로듀서로, 맥스 마틴은 자신의 스케쥴을 전부 이 두 가수들에게 맞춰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3. 인기 및 위상

팝 음악계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최고로 손꼽히는 프로듀서 중 한 명으로, 맥스 마틴이 프로듀싱한 곡 중에서 '빌보드 핫 100 TOP 10'을 기록한 곡은 76곡[14]에 달한다. 범위를 'TOP 100'까지 넓히면 그가 손댄 곡은 정말 셀 수 없을 정도다.

1994년 데뷔 후 현재까지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수많은 팝 스타들의 노래를 프로듀싱했다. 그의 이름이 생소하더라도 그의 음악은 적어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백스트리트 보이즈, 콜드플레이, NSYNC, 브리트니 스피어스, 핑크, 에이브릴 라빈, 케이티 페리, 테일러 스위프트, 마룬 5, 더 위켄드, 아리아나 그란데 등이 있다.

미국 음악 저작권 협회(ASCAP)가 선정한 '올해의 작곡가 상'을 무려 11번이나 수상했으며, 2015년 그래미 어워드에서는 "Producer of the Year"를 수상했다[15].

4. 트렌드를 읽는 능력

맥스 마틴은 주류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장르와 사운드를 구사하고 있다. 이는 그와 협업하고 있는 여러 프로듀서의 덕이 매우 크지만, 그것의 성공을 예측하고 동조하는 맥스 마틴의 감각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만큼, 맥스 마틴의 트렌드를 캐치하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국내든 해외든, 90년대 탑 프로듀서 중에 현재까지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프로듀서는 정말 거의 없다. 이 정도로, 음악 산업은 그 흐름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은 정글 같은 세계다. 그중에서도, 미국 팝 음악계는 규모가 가장 크면서 경쟁이 가장 심하다. 이런 곳에서 데뷔한 지 20년이 넘은 프로듀서가 매년 빌보드 상위권에 히트곡을 낸다는 것은, 맥스 마틴이 얼마나 뛰어난 프로듀서인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의외로 머니코드를 잘 쓰지 않는다. 보통 머니코드는 작곡자보다는 음반사의 높으신 분들의 의지에 따라 사용되는 경향이 큰데, 맥스 마틴은 음반사의 간섭 없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거물이기 때문이다.

5. 비판?

일각에선, 맥스 마틴이 너무 지나치게 상업성만 추구하고 본인의 색이 없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제기한다. 나름대로 일리가 있어 보이지만, 그는 가수가 아니라 프로듀서다. 프로듀서는 가수에게 어울리면서도 성공할 곡들을 제공하는 존재지, 본인이 하고 싶은 음악에 가수를 끼워 맞추는 직업이 아니다. 맥스 마틴이 본인의 색을 원했다면, DJ들이 흔히 하는 것처럼 '자신의' 앨범에 여러 가수가 피처링하는 형태[16]로 앨범을 냈을 것이다. 하지만 맥스 마틴은 꾸준히 고객의 수요에 맞춰서 작업을 하고 있다. 수많은 슈퍼스타가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에게 의뢰를 하고 있는데, 이는 맥스 마틴이 본인의 일을 완벽하게 하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6. 편곡 능력

프로듀서로서의 명성과 달리, 편곡자로서의 맥스 마틴은 그 존재감이 미미한 편이다. 2008년부터 맥스 마틴이 프로듀서로서 참여한 곡들을 보면, 닥터 루크, 셸백, 알리 파야미, 일리아 살만자데, 오스카 홀터 등 다양한 프로듀서와 같이 작업했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곡마다 편곡을 하는 스타일이 맥스 마틴과 같이 작업한 프로듀서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간단한 예로, 셸백이 단독 프로듀싱한 "This Summer's Gonna Hurt like a Motherf****r"을 들어보면, 맥스 마틴과 셸백이 같이 프로듀싱한 곡들의 트랙 메이킹 스타일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예로, 핑크의 08년도 곡 "So What"과 아담 램버트의 09년도 곡 "Whataya Want from Me"를 들 수 있다. 전자는 맥스 마틴의 단독 프로듀싱 곡이며, 후자는 셸백과 같이 한 곡이다. 들어보면, 트랙 메이킹에 접근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스타일이 달라지는 이유는 드럼 · 베이스 · 기타 등을 맥스 마틴과 같이 작업하는 프로듀서가 대부분 담당하기 때문이다. 맥스 마틴은 보통 키보드로 트랙에 참여하기 때문에, 베이스나 드럼이 중요한 곡 같은 경우에는 동료 프로듀서의 색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맥스 마틴의 곡 중 베이스가 두드러지는 곡에는 셸백이나 알리 파야미가 항상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편곡에 있어 맥스 마틴은 조언자에 가깝다.[17]

7. 디스코그래피

7.1. 빌보드 핫 100 1위


27곡으로 폴 맥카트니의 32곡에 이어 현재 단독 2위, 존 레논의 26곡과 공동 2위를 이어 오다가 2024년 9월 현재는 단독 2위로 존 레논을 압서 가는 중이다.

7.2. 빌보드 핫 100 2~10위

1997: "Do You Know (What It Takes)" - Robyn (#7)
1997: "Quit Playing Games (With My Heart)" - Backstreet Boys (#2)
1997: "Show Me Love" - Robyn (#7)
1998: "Everybody (Backstreet's Back)" - Backstreet Boys (#4)
1999: "I Want It That Way" - Backstreet Boys (#6)
1999: "(You Drive Me) Crazy" - Britney Spears (#10)
2000: "That's the Way It Is" - Céline Dion (#6)
2000: "Show Me the Meaning of Being Lonely" - Backstreet Boys (#6)
2000: "Oops!...I Did It Again" - Britney Spears (#9)
2000: "Shape of My Heart" - Backstreet Boys (#9)
2005: "Since U Been Gone" - Kelly Clarkson (#2)
2005: "Behind These Hazel Eyes" - Kelly Clarkson (#6)
2007: "U + Ur Hand" - P!nk (#9)
2007: "Who Knew" - P!nk (#9)
2008: "Hot n Cold" - Katy Perry (#3)
2010: "Whataya Want From Me" - Adam Lambert (#10)
2010: "Dynamite" - Taio Cruz (#2)
2010: "DJ Got Us Fallin' in Love" - Usher (feat. Pitbull) (#4)
2010: "Teenage Dream" - Glee Cast (#8)
2011: "F**kin' Perfect" - P!nk (#2)
2011: "Blow" - Ke$ha (#7)
2011: "Loser Like Me" - Glee Cast (#6)
2011: "Till the World Ends" - Britney Spears (#3)
2011: "I Wanna Go" - Britney Spears (#7)
2012: "The One That Got Away" - Katy Perry (#3)
2012: "Domino" - Jessie J (#6)
2012: "Scream" - Usher (#9)
2012: "Wide Awake" - Katy Perry (#2)
2013: "Beauty and a Beat" - Justin Bieber (feat. Nicki Minaj) (#5)
2013: "I Knew You Were Trouble." - Taylor Swift (#2)
2013: "Daylight" - Maroon 5 (#7)
2014: "Problem" - Ariana Grande (feat. Iggy Azalea) (#2)
2014: "Break Free" - Ariana Grande (feat. [[Zedd][) (#4)
2014: "Bang Bang" - Jessie J, Ariana Grande & Nicki Minaj (#3)
2014: "Love Me Harder" - Ariana Grande & The Weeknd (#7)
2015: "Love Me Like You Do" - Ellie Goulding (#3)
2015: "Style" - Taylor Swift (#6)
2015: "Wildest Dreams" - Taylor Swift (#5)
2015: "Focus" - Ariana Grande (#7)
2015: "Hands To Myself" - Selena Gomez (#7)
2016: "Send My Love (To Your New Lover)" - Adele (#8)
2016: "Dangerous Woman" - Ariana Grande (#8)
2016: "Side To Side" - Ariana Grande (feat. Nicki Minaj) (#4)
2016: "Just Like Fire" - P!nk (#10)
2017: "Chained To The Rhythm" - Katy Perry (feat. Skip Marley) (#4)
2017: "...Ready For it?" - Taylor Swift (#4)
2018: "No Tears Left to Cry" - Ariana Grande (#3)
2018: "God Is a Woman" - Ariana Grande (#8)
2019: "Break Up With Your Girlfriend, I'm Bored" - Ariana Grande (#2)
2019: "I Don't Care" - Ed Sheeran and Justin Bieber (#2)
2020: "Stupid Love" - Lady Gaga (#5)
2021: ''Take My Breath'' - The Weeknd (#6)

51곡.


[1] 프로듀서 데뷔 기준. 엄밀히 말하면, 첫 데뷔는 'It's Alive'라는 밴드 활동을 시작할 때부터다.[2] 핫 100 7위.[3] 대부분의 곡을 프로듀싱했다.[4] 틴 팝은 2000년대가 되자마자 인기가 하락하기 시작했고, 90년대부터 인기를 끌었던 R&B힙합이 틴 팝의 자리를 꿰찼다.[5] 그의 디스코그래피를 보면 알겠지만, 이 시기에 작곡한 곡 중 히트곡은 매우 적다.[6] 당시의 디온은 침체기를 겪었다.[7] + "Ali Payami"와 "Ilya Salmanzadeh"[8] '탑라이너'에 가깝다. 탑라이너란 멜로디나 가사위주로 작업하는 사람을 일컫는다.[9] 베니 블랑코는 대중적으로 굉장한 성공을 거두고 있는 프로듀서인데, 최근에는 혼자서 프로듀싱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전에는 맥스 마틴과 같이 작업한 적이 있다.[10] 다만 6집 Positions에선 참여하지 않았는데, 앨범의 분위기와 컨셉이 맥스의 스타일과 어울리지는 않았기 때문이다.[11] 프린스, 마이클 잭슨, 머라이어 캐리 등이 이뤄낸 진기록인 '한 앨범에서 5개의 1위곡을 배출한 가수'라는 타이틀 역시 가지고 있다.[12] 이는 프로듀서가 아티스트처럼 전면에 나섰던 2010년대 중후반이 지나서야 주목도가 올라갔었고(예: Mike Will Made It, Metro Boomin 등), 앞선 시기에 닥터 드레, 다프트 펑크, 퍼렐 윌리엄스(혹은 N.E.R.D, 넵튠스), 베이비 페이스 등의 선례는 있었으나 이들은 아티스트로서의 활동이 함께했기 때문에 유명했던 것이지 오로지 프로듀서로서 활동하던 이들의 주목도는 케이티가 한참 활동하던 시기엔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13] 단, 5집 수록곡이나 스킷으로만 구성된 곡이었던 "A Tale By Quincy"는 차트인 하지 못했다.[14] 마돈나의 38곡, 엘비스 프레슬리의 36곡(엘비스는 핫 100 전까지 포함된지라 핫 100 기록에는 사실상 넣을 수 없다.), 비틀즈의 34곡, 마이클 잭슨의 30곡을 훨씬 뛰어넘은 기록이다.[15] 대상 곡은 제시 제이, 아리아나 그란데, 니키 미나즈Bang Bang / 아리아나 그란데제드Break Free, 케이티 페리와 쥬시 제이의 Dark Horse, 아리아나 그란데이기 아잘레아Problem, 테일러 스위프트Shake It Off, 케이티 페리Unconditionally이다.[16] DJ 칼리드도 포함은 될 수 있으나, 칼리드는 메트로 부민이나 맥스 마틴과 달리 본인이 직접 작곡 등으로 참여하지 않는다. 같은 프로듀싱 업무를 한다는 점으로 넓게 보면 같은 프로듀서긴 한데, 국내에서 사용되는 프로듀싱의 의미는 영미권에서 사용하는 프로듀싱의 의미와 사뭇 다르다. 국내에서는 제작 및 총괄의 의미가 더 강하나, 영미권에서는 그것 뿐만이 아닌 곡에 사용될 음원 샘플 클리어링, 곡의 스케쥴 관리, 투자 및 지원, 게스트 섭외 등을 아울러서 프로듀싱 작업으로 보고 있다. 때문에 작곡에 거의 관여하지 않는 칼리드는 대신 엔지니어 모집, 게스트 섭외, 투자 및 스케쥴 조율 등의 업무를 하고 그렇게 공장식으로 곡을 뽑아내 앨범을 만든다. 때문에 맥스 마틴이나 메트로 부민과는 다른 결의 DJ이다.[17] 조언자라고 단순한 역할로 봐서는 안 된다. 누군가와 같이 작업할 경우, 상대가 만든 트랙이 좋은지 나쁜지 판단해주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이는 듣는 귀가 반드시 있어야 하며, 시대에 따른 편곡의 흐름을 정확히 캐치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편곡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해야 하기 때문에, 단순한 '보조나 조언자'로 볼 수 없으며, 매우 뛰어난 음악적 능력을 요한다.[18] 빌보드 올타임 싱글 1위, 빌보드 역사상 가장 긴 시간 Top 5와 Top 10에 머무른 곡이자 동시에 2020년 빌보드 연말 차트 1위를 기록한 곡. 또한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가장 긴 시간 차트인을 한 곡. 이 기록 모두 맥스 마틴에게 최초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