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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VU & Nico 1967 | White Light/White Heat 1968 | The Velvet Underground 1969 | Loaded 1970 | Squeeze 19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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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ite Light/White Heat의 주요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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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11E1F><colcolor=#fff> White Light/White Heat | |
발매 | 1968년 1월 30일 |
녹음 | 1967년 9월 |
장르 | 노이즈 록, 아트 록, 익스페리멘탈 록, 프로토 펑크, 개러지 록 |
재생 시간 | 40:13 |
곡 수 | 6곡 |
프로듀서 | 톰 윌슨 |
스튜디오 | 버브 레코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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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68년 1월 30일에 발매된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정규 2집.2. 역사
1집 The Velvet Underground & Nico이 상업적으로 처참하게 실패한데다가, 그 후 앤디 워홀하고 사이가 틀어져 헤어지는 바람에 이젠 누구의 도움도 없이 홀로서기를 해야할 상황에 처했고[1] , 앤디 워홀에 의해 1집 객원 싱어로 참여했던 니코도 솔로로 빠져나간 뒤에 만들어진 앨범이다. 밴드의 현재 처지와 앞날에의 전망이 암울해진데다가, 밴드의 조력자 겸 멘토이자 확고한 카리스마로 밴드의 중심을 잡아주던 앤디 워홀이 빠져나간 자리에 루 리드와 존 케일이라는 두 개성 뚜렷한 뮤지션이 서로 주도권을 잡으려고 다투기 시작했기 때문에[2], 밴드의 분위기가 긴장감에 휩싸여 있고 불안정한 상황에서 만들어진 앨범이 되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당시 멤버들이 느끼던 그러한 불안감과 혼란, 밴드 내부의 불편한 분위기 등이 바로 이 앨범의 '혼돈스러우면서도 묘하게 중독적인' 사운드가 만들어지는 데 적잖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3. 특징
앨범의 성향은 1집의 Heroin과 'The Black Angel's Death Song'에서 보였던 미니멀리즘과 노이즈 성향이 극대화되었다고 보면 된다. 한마디로 거칠고 시끄럽다. 또 미리 짜여진 작편곡 대신 즉흥 연주에 많은 비중을 두었다. 웨이브 리뷰를 인용하자면 이 앨범의 모토는 "곡 하나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모티브 몇 개와 약속된 코드 진행 그리고 뮤지션의 상상력뿐이다."로 요약할 수 있다.한마디로 아방가르드 성향이 강했던 존 케일의 입김이 매우 강한 앨범이었고, 지나치게 전위적인 쪽으로만 가는 것에는 탐탁지 않게 여겼던 루 리드가 이에 불만을 가지고 갈등을 빚어오다가 이 앨범 발표 후에 결국 스털링 모리슨과 모린 터커와 작당해 [3] 케일을 쫓아냈다. 그래서 이 앨범은 존 케일이 참여한 마지막 벨벳 언더그라운드 앨범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VU의 실험적이고 난해한 사운드가 모두 존 케일의 손에서 나왔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존 케일도 뛰어난 뮤지션이었지만 밴드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루 리드였다. 이 둘은 레논-매카트니같은 동등한 작곡 콤비가 아니었고, 사실 둘의 밴드 내 비중에서는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당장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앨범 중 가장 존 케일의 영향이 강하다는 이 앨범도 곡 자체는 모두 루 리드의 주도 아래에서 작곡, 녹음된 곡들이다. 존 케일도 밴드의 음악에 상당히 영향을 미쳤고 자신의 역량을 펼쳐 보였지만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기본적으로 루 리드의 밴드였다. 실제로 존 케일은 스투지스의 데뷔 음반에 프로듀서로서 참여해서 당시 벨벳 언더그라운드 이상으로 과격하고 노이지한 밴드였던 스투지스를 재즈 음반에나 어울릴 법한 얌전한 사운드로 프로듀싱했으며, 니코나 본인의 솔로 앨범들도 실험적이긴 하지만 시끄럽거나 거친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솔로 커리어에서 이 앨범과 같은 과격한 노이즈 성향을 보여준 사람은 루 리드였다.
이런 빡센 음악 때문에 상업적으로는 그야말로 대참패했다. 빌보드 200 차트에 199위에 올랐다가 사라진게 전부. 애초에 이 앨범은 전위적인 성격이 강한 앨범이라 상업적으로 성공하는건 애초에 어려운 앨범이었다. 당시 벨벳 언더그라운드하고 사이가 매우 안 좋았던 프랭크 자파는 이들의 연이은 실패를 'Concentration Moon'이라는 노래에서 대놓고 비꼬기도 했다. 팬들 사이에서도 대체적으로 역사적 가치는 인정하지만 호오는 꽤 갈리는 앨범이다. 그야말로 다소 듣기 불친절한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정규 앨범 중에서 가장 상급 난이도에 위치하고 있는 앨범.
그러나 로큰롤이 본격적으로 노이즈와 미니멀리즘을 받아들여 구체화된 선구자적인 음반 중 하나라는 점에서 후대에 재평가 받아 지금은 당당히 명반으로 대접받고 있다. 주로 노이즈로 뭔갈 조지려는 밴드들이나 최소한의 작편곡 혹은 라이브의 즉흥성을 강조하는 밴드들에게 영향을 많이 줬다. 특히 캔이나 노이!, 초기 크라프트베르크같은 크라우트록 밴드들이나 각종 펑크 록 뮤지션들, 조이 디비전[4], 다이노소어 주니어, 소닉 유스, 페이브먼트[5]가 이 앨범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 외에도 실험적 음악을 추구하는 뮤지션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이해하기 힘든 단순히 난해하기만 한 앨범으로 저평가되는 경우가 있지만 선구자적인 실험정신과 후대에의 영향을 고려하면 벨벳의 다른 명반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훌륭한 작품이다. 이미 롤링 스톤을 비롯한 다양한 음악 평론 잡지들이나 매체들에 의해서 재평가된지 오래이며, 벨벳 언더그라운드만의 독창적이고 개성 있는 음악을 남김없이 표출했다는 점 때문에 이들 최고의 명반으로 추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앨범 커버에 희미하게 보이는 건 빌리 네임이라는 앤디 워홀의 팩토리에 있었던 예술가가 팔에 새긴 해골 문신을 찍은 사진을 뒤틀어놓은 것이다.
4. 트랙리스트
따로 표시된 곡을 제외하고 모두 루 리드가 작사/작곡했다.4.1. Side A
4.1.1. White Light/White Heat
흥분제 약물과 마약이 주는 환각적인 느낌을 음악적으로 생생하게 표현한 이 곡은 전작의 'I'm Waiting for the Man'하고 비슷한 로큰롤에서 시작하다가 마지막엔 노이즈로 뭉개버린다. 데이빗 보위가 커버하기도 했다.가사 번역
4.1.2. The Gift
밴드 멤버들이 공동 작곡했다. 단편소설 형식의 산문을 존 케일이 조곤조곤 낭독하는식의 곡이다. 내용을 이렇다. 왈도 제퍼스라는 남자는 마샤 브론슨이라는 여성에게 마음을 빼앗겨 며칠 간 잠을 설친다. 그러던 도중에 아예 자기 자신이 택배 상자에 담겨진 채로 마샤의 집으로 배송되는 묘안을 생각하고, 며칠 후 마샤의 집에 보낸 사람의 이름이 왈도로 되어 있는 단단하게 포장된 택배상자가 도착한다.상자를 본 마샤는 친구와 함께 이 상자의 포장을 풀려고 애를 쓰지만 실패한다. 결국 마지막 수단으로 커터칼로 택배 겉포장, 포장재 너머까지 뚫게 되는 데...전체 해석
이 노래에서 존 케일의 발음이 너무 좋아 영어 교재로도 쓰인다고 한다.
4.1.3. Lady Godiva's Operation
레이디 고다이버를 소재로 한 가사를 읇다가 갑자기 수술 장면을 묘사하는 고어물로 넘어가는 곡이다.
4.1.4. Here She Comes Now
밴드 멤버들이 공동 작곡했다. 이 앨범의 수록된 곡 중 유일하게 서정적인 분위기를 유지하는 곡이다.
미국 밴드 너바나가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4.2. Side B
4.2.1. I Heard Her Call My Name
부드럽고 순조로운 전개를 추구했던 기존의 반주와 달리 스털링 모리슨의 뭉개는 듯한 기타 솔로는 이 앨범 한정으로 감상할 수 있는 드문 연주로 평가받는다.
4.2.2. Sister Ray
자세한 내용은 Sister Ray 문서 참고하십시오.[1] 매니저도 앤디 워홀에서 스티브 세스닉이란 사람으로 바뀐다. 세스닉은 벨벳이 여러번 공연했던 클럽의 주인인 인연으로 벨벳과 알게된 사이였다. 이렇게 앤디 워홀과의 매니지먼트 및 조력 관계는 끝났지만, 루 리드 등 멤버들과 워홀과의 사적인 관계는 이후에 다시 회복되어서 사적인 친분은 계속 유지하게 된다.[2] 존 케일이 세스닉의 여러가지 요구에 불만을 품었던 것도 한 몫 했다.[3] 사실 스털링 모리슨과 모린 터커 모두 루 리드쪽 인맥이였다. 그야말로 밴드 내 정치에서 존 케일이 불리했다.[4] 조이 디비전은 라이브로 ‘Sister Ray’를 연주했는데, 이 라이브 음원은 이들의 컴필레이션 앨범인 Still에 수록되어 있다.[5] 이 밴드의 프론트맨 '스티븐 말크머스'는 자신의 음악적 원점이라고 할 수 있는 곡이 바로 'Sister Ray'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