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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특정 지역이나 국가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한 기술이나 문화가 국제 표준에서 크게 벗어나는 현상이다. 기술이나 서비스 등이 국제 표준이 아닌 독자적인 형태로 발전함에 따라 세계적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
어디에서나 있을 수 있는 현상이지만 이 용어가 처음 거론된 것은 일본 IT 분야이다. 일본은 과거 IT 분야에서 전세계를 석권했으나 2000년대 이후 점차 국제시장에서 주도권을 잃기 시작했다. 이러한 추세에 대해 일본 총무성이 연구를 의뢰했고 2007년 '일본 무선 전화 시장 보고서'가 나오게 되었다. 일본의 IT산업의 부진의 이유는 국제적인 표준을 무시하고 일본 내수시장에서만 통용될 제품에 집중한 것 때문이었다. KADOKAWA의 사장 겸 前 게이오기주쿠대학 대학원의 교수였던 나츠노 타케시(夏野剛)는 이러한 경향을 다윈이 독립적인 진화 경향을 연구했던 갈라파고스 제도에 빗대 ‘갈라파고스 증후군’이라고 이름붙였다. 육지로부터 고립되고 진화의 방향이 달라져 고유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갈라파고스 제도처럼[1] 일본의 IT 기술도 독자적으로 굳어져버렸다는 비유이다.
일본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기 때문에 ‘일본(Japan)’과 ‘갈라파고스(Galapagos)’를 합쳐 ‘잴라파고스(Jalapagos)’라고도 말한다. 현재에는 일본뿐만 아니라 어떤 나라든 국제 표준을 무시하고 독자적으로 발전하는 경우에 사용하고 있다.
2. 원인
2.1. 환경적 요인
- 자연 환경 등으로 갈라파고스화가 되는 경우이다. 극단적으로 덥거나 추운 환경의 지역이라면 기술도 최대한 이에 맞춰 발전해야지만 사용이 가능할 것이다. 다만 이 요인은 기술적 한계가 컸던 과거에 주로 작용했고, 오늘날에는 기후적 요건의 고려는 기술-경제적 손해 없이 편의 기능으로 넣어주므로 이에 따른 기술 분화는 크지 않은 편이다.[2]
갈라파고스화라고 보기는 다소 애매하지만 우주 분야의 기술은 지금도 이 요인이 매우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다른 분야에서의 기술 발전이 즉각적으로 적용되지 못한다. 약간의 편의성보다는 우주의 거친 환경에서의 안정성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전에 발사에 성공한 컴퓨터보다 최신 컴퓨터가 계산은 더 빨리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주 공간에서 고장이 나버리면 말짱 꽝이다. 요즘엔 조금 완화되었다곤 해도 우주 궤도 진입은 매우 큰 비용이 드는 일이므로 '일단 써보고 문제가 생기면 그때 돌아가자' 식의 방안을 시도하기도 어렵고 기존의 방안을 따르는 경로 의존성이 강하게 나타나게 된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우주선은 현대인의 스마트폰보다도 원시적인 컴퓨터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것으로 특화되어있다.
2.2. 정치/문화적 요인
- 국제사회와의 교류를 거부(쇄국)
정치적으로 교류를 거부하는 경우이다. 오늘날에는 세계화의 영향으로 기본적으로 자유로운 거래를 추구하기 때문에 독재 국가에서 이런 현상이 주로 나타난다. 국가만큼 강력한 권력은 거의 없기 때문에 시장 왜곡이 크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과거 제국주의 시대에는 열강 측에서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군사력으로 위협하여 이런 쇄국 국가를 굴복시켰으나 현대에는 테러지원국이라거나 악의 축이라거나 어지간히 엇나가지 않는 이상 내정간섭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이 현상이 고착화된다.
이 과정에서 독재자의 언론통제까지 일어나면 해외의 소식을 들을 수 없으니 독자적으로 자력갱생을 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도 독자적으로 무엇인가가 발달하면 다행이고 보통은 기술 정체를 극복하지 못하고 파탄국가가 된다.[3]
- 세계 주류와 이질적인 문화/언어
문화/언어와 밀접하게 연결된 기술 분야는 각 문화/언어에 맞추어 발달할 수밖에 없다.[4]
- 초강대국인 경우
대표적으로 미국의 경우 미국 단위계로 대표되는 독자 도량형을 지니고 있는데, 미국은 자국이 세계 제일의 초강대국이므로 다른 나라에 맞출 필요성이 별로 없는 것이며,[5] 오히려 미국 외 타국이 미국 특화 요소들을 울며 겨자 먹기로 습득해야 하는 상황이다.
2.3. 기술/경제적 요인
- 당시에는 뛰어났던 기술의 고착화(경로의존성) 혹은 주도권 상실
등장 당시에는 굉장히 뛰어나거나 대단했던 (혹은 다른 대안이 없던) 기술이었지만 이후 발전이 더뎌진 나머지, 후발 주자이지만 전세계에 퍼진 기술보다 뒤쳐지는 경우이다. 과거 전자산업을 선도한 일본에서 이런 예가 많다.
- 인접 국가들과 경제공동체를 형성하지 못해 개별적으로 발전함
영국이나 프랑스, 독일에서는 일찍이 유럽경제공동체가 형성된 반면[6] 동아시아의 경우 중국이 일반적인 자유 시장경제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전격적으로 경제 교류를 하기 어려운 측면이 존재한다. 한국과 일본 역시 산업적으로 경쟁 관계이고 정치적으로도 직접적인 동맹이 아닌 미국을 낀 간접적 동맹이기에 경제 공동체의 형성은 요원하다.
- 경제 역량이 국제사회에서 자립 불가능해 의도적으로 고립을 택함
많은 개발도상국이 이에 해당된다. 아직 국제 자유무역 체제에서 대등하게 경쟁하기에는 어려운 경제 상황일 경우 자국 경제 보호를 위해 고립을 택하게 될 수 밖에 없다.
이 경우는 의도적인 산업 보호를 위한 경우이므로 경제학에서는 갈라파고스화라고 부르지 않는다. 다만 이후 어느 정도 성장한 후에는 세계 시장에서 수요를 끌어오기 위해 독자 체제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는데 이에 실패하는 국가가 많다. 사실 대한민국의 사례들도 대체로 자연적인 갈라파고스화라기 보다는 이러한 의도로 시작한 면이 더 크지만 시대가 흘러 대한민국의 공업 및 IT 기술 수준이 여타 선진국들과 경쟁이 가능해진 수준이 되면서 갈라파고스화 현상으로 인식된 것이 많다.
- 경제 역량으로 인해 의도적으로 구식 기술을 택함
여러 가지 경제적 문제로 인해 세계 시장의 주류인 최신 기술을 도입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시대에 뒤떨어진 구식 기술을 택하는 경우다. 대표적으로 80~90년대 일본에서 들여온 기술 수준에 머물고 있는 한국의 도시철도 차량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 내수 시장에 만족
내수시장의 규모가 거대한 국가는 내수 시장만으로도 충분한 수익을 발생하기 때문에 굳이 세계 시장에 도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내수시장이 빈약할 경우 반드시 수출을 해야 되기 때문에 국제표준을 따라가야 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2.4. 국가별 요인
- 중국의 홍콩/마카오 특별행정구와 싱가포르와 같이 인구와 면적이 작은 지역/국가의 경우 독자적인 경제행위를 하는 것이 어렵다. 따라서 국제적인 금융과 무역에 집중하였고 전 세계에서 경제 자유도 1, 2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경제자유도에서는 조금 밀리지만 대만도 비슷한 편이다. 영어를 공용어로 쓰고 있다는 점도 국제 교류에 유리한 요소 중 하나이다.
- 호주, 뉴질랜드, 아일랜드는 인구 규모와 내수시장 규모가 작은 편인데다 이미 미국, 영국의 영향력을 강하게 받고 있고 다른 서구권 국가들과도 교류가 많기 때문에 갈라파고스화가 될 가능성이 적다. 경제 자유도도 세계 세계 최고 수준에 달한다. 캐나다 또한 미국, 영국, 프랑스의 영향을 강하게 받다보니 굳이 자체적으로 생산할 기술이 있어도 자체개발을 하는 것보다 미국, 영국, 프랑스의 표준을 채택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국가지만 그나마 아프리카 내 경제 규모도 크고 경제적 수준도 상대적으로 큰 편인지라 미국, 영국 기업들의 진출이 많은 편이고 네덜란드, 호주, 뉴질랜드와도 교류가 많은 편이다. 따라서 미국, 영국, 네덜란드 등의 표준을 채택하는 경우가 많다.
- 한중일 삼국은 갈라파고스화가 되기 위한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는 국가다. 애초에 이 용어의 탄생 배경도 일본의 경제 침체가 기술적 고립이 원인이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연구에서 나온 것이다. 중국도 거대한 내수 시장, 독자적 언어, 그리고 폐쇄적인 체제 등 갈라파고스화가 나타나기 쉬운 조건을 갖추고 있다. 위키피디아, 트위터, 구글과 같은 세계적 IT 기업을 중국공산당에서 막고 있기에 그 자리에 바이두 백과, 웨이보 등 자국 매체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 북한은 갈라파고스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국가다. 모든 게 정치논리로 돌아가는, 보다 자세하게는 김씨 왕조 찬양과 권력 유지에만 집중되어 있는 국가며, 이 때문에 외국 문물을 강력히 통제하는 극단적인 쇄국정책을 하는 바람에 갈라파고스화가 굉장히 심각한 상황이다.
3. 사례
※ 대부분의 사례는 경제와 기술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비(非)경제적인 요소는 가급적 서술을 자제할 것.3.1. 대한민국
자세한 내용은 갈라파고스화/대한민국 문서 참고하십시오.3.2. 일본
자세한 내용은 갈라파고스화/일본 문서 참고하십시오.3.3. 미국
- 미국 단위계
전세계의 도량형을 국제단위계로 통일하는 것을 막는 주범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순한 전환만 해주면 무마할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의 산업이 이것 때문에 망하지는 않았으나 이로 인해 화성 기후 궤도선같은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곤 한다. 예를 들어 그램(mg, g, kg)단위를 oz(온스), lbs(파운드)로 대중화하여 쓴다든지, 미터(cm, m, km)단위를 inch(인치). yard(야드), mile(마일)로 쓰는 경우 등이 있다. 사실 미국 정부에서도 이것을 바꾸고 싶어하지만 워낙 뿌리가 깊게 내려서 바꾸는 데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고, 기존 수치에 익숙한 미국 국민들의 반대가 많아서 쉽게 바꾸지 못하는 상황이다.
다행히도 21세기에 접어들면서 국제단위계를 비중 있게 교육하는 학교가 늘어나는 추세이다. 반대로 항공 관제에서는 피트와 해리가 대부분 표준으로 되어 있어서 국제단위계 기준으로 되어 있던 구 제2세계 국가들이 논란이 됐다.[7] 이는 단순한 의사소통 문제 외에도 규정된 항로 고도가 달라 공역 경계를 넘을 때마다 급히 고도를 바꿔야 하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2011년 러시아 등이 피트 고도를 적용하면서 그 이후로는 중국과 북한, 카자흐스탄 등만이 미터 고도를 적용하고 있다.
- 대형 픽업트럭과 풀사이즈 SUV
가뜩이나 땅덩어리는 넓은데 대중교통 발달 수준이 떨어지는 미국 특성상 포드 F 시리즈 등의 운송능력 좋은 대형 픽업트럭은 미국 시장에서는 자동차 판매 순위 1위를 매번 차지할 정도로 인기가 좋지만, 다른 국가들의 경우 미국과 인접하고 지리적 여건이 비슷한 캐나다, 인구밀도가 낮고 인구에 비해 영토가 비대한 호주,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공화국 정도를 제외하면 인기가 없다.
3.4. 그 외 국가
- 프랑스의 PC통신 미니텔
1980년대 도입 이래로 최대 보급 900만 대에 사용자 수는 2500만명, 거기에 프랑스를 세계 처음으로 정보화 사회로 진입시킨 자랑스러운 발명품이었지만, 저조한 속도와 전세계적인 이용망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으로 인해서 1990년대 중반에 전 세계적으로 인터넷 시대가 열리면서 갈라파고스화의 주범으로 손꼽히게 되었고, 2000년대 이후에는 고속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인터넷에 완전히 밀려났다. 2012년에 공식으로 서비스를 종료했다.
- OIRT FM
구 공산권 국가들이 사용하던 FM 주파수 대역. 65.00~74.00 MHz에서 30 kHz(0.03 MHz)간격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공산주의 붕괴 이후로 지금은 CCIR 대역인 87.5~108.0 MHz로 전환하고 있다. 당연히 소련시절 차량이나 튜너들을 위한 주파수 변환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 영국을 비롯한 영연방 국가들
유럽 국가들 중 유독 영국만 따로 노는 것도 그렇고, 전 세계의 보편적인 관습과는 이질적인 자기들만의 제도와 관습(좌측통행, 야드파운드법, G타입 콘센트[8][9])을 고집 중이다.
- 100~120V 60Hz 사용 국가
현재 100V대를 사용하는 국가는 미국이나 캐나다, 멕시코 등 라틴아메리카 국가 대부분이고,[10] 그 외 나머지 대륙에서는 일본과 대만 정도만이 이 대역을 사용한다. 전세계적으로 보면 200V 대역을 사용하는 국가들이 대부분이고 주파수도 50Hz를 사용한다. 콘센트 모양도 11자형인 A, B 타입을 사용하기에 C타입을 비롯한 나머지 모양을 사용하는 200V 대역의 국가들과 다달라 호환이 아예 되지 않는다. 그나마 100V대 국가들 끼리는 주파수도 같고 콘센트 모양도 같아 자기네 나라들 사이에서는 서로 아무 문제 없이 전자제품을 쓸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에 이민 가는 일본, 대만인들은 자국에서 쓰던 전자기기를 모두 가져가며, 반대도 성립한다.
- 우즈베키스탄 신용/직불카드
일단 카드가 꽤 많이 보급되어 있지만 'Uzcard'라는 독자규격이며,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비자, 마스터카드 규격과 호환이 되지 않는다. 우즈베키스탄 철도에서도 해외발행 카드를 받아주지 않다가 2021년 8월부터 온라인 예매로는 가능하게 되었다. 이론상으로는 은련과 호환되고 가끔 UNIONPAY 마크가 붙어있긴 하지만, 십중팔구 해외에서 발행된 은련카드는 안 받아준다. 간혹가다 대형 호텔,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상점에서는 해외발행 카드를 받아주는 경우도 있다.
- 이란 할랄 인터넷
북한 광명망과 비슷한 사례이다.
4. 유사 개념
단순히 폐쇄적인 것만으로 갈라파고스화라고 부르지 않는다. 폐쇄성 때문에 도태되어야 갈라파고스화이다. 대표적으로 애플의 경우 폐쇄적인 편인데, 그 폐쇄성의 장점을 잘 살리고 있는 편이며[11] 사용자 층에게도 이에 큰 불만을 사지 않고 점유율을 유지해나가고 있으므로 빈말로라도 '도태되고 있다'라고는 할 수 없다. 다소 결과론적인 이야기이지만 소니 역시 같은 노선을 취했어도 결국에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소니는 갈라파고스화라고 할 만하다.당연하지만 표준 기술로는 도저히 구현할 수 없는 기능들은 독자기술을 사용해야 하고 이 역시 갈라파고스화라고는 할 수 없다. 갈라파고스화는 주류에서 고립되어야지만 성립하는 개념인데, 이 상태에서는 '주류'라는 게 애당초 존재하지 않으니 무엇에 비해 고립되었다고 표현할 비교 대상조차 없다. 위에서 다루었듯이 그렇게 선두적으로 개발했지만 나중에 다른 것이 보편화되어 고립되면 그제서야 갈라파고스화라고 할 수 있다. 공인인증서가 대표적인 예시이다. 또한 당시에는 브라우저 전쟁 이후 마이크로소프트의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브라우저 시장을 독점하던 시절이고, 웹 표준 기술 자체도 너무나도 구렸기 때문에 표준 기술만 사용해서는 도저히 멀티미디어 기능들을 구현할수가 없었다. 오히려 비표준이던 자바 애플릿과 어도비 플래시가 사실상 표준 취급을 받던 시절이다.[12]
5. 경제 외의 분야에서
한국 인터넷에서는 어떤 한 곳에서 갈라져 나오고 독자적으로 발전(또는 변화)한 것을 포괄적으로 갈라파고스라고 칭하곤 한다. 한 국가의 정치적·사회적 문제를 비판하기 위하는 용어로 사용하는 예가 많이 보인다. 한국에서는 '갈라파고스화'를 이러한 의미로 사용하는 사례가 2010년대 기준으로 인터넷에서 흔하게 볼 수 있게 되었으며, 문화나 IT 기술 관련 내용을 논할 때 특히 많이 사용된다. 일본에서도 일본어 위키백과의 갈라파고스화 문서의 사례와 같이, 갈라파고스화를 경제용어를 넘어선 보다 확장된 의미로 사용하는 사례를 종종 볼 수 있는 편이다.또한 '갈라파고스화'라는 용어는 원래 경제 용어지 사회 전반을 설명하는 용어가 아니다. 국제사회의 표준과는 달리 해당 국가에서 독자 규격으로 발달한 상품 개발로 인해 해외 시장에서 먹히지 않는 현상과 그에 따라 결과적으로 생기는 경제적·사회적 손실을 설명하는 용어이지, 애초에 각국의 독자적인 문화와는 관련없는 용어이다. 즉 범세계적으로 표준화된 규격이 전제조건으로 수반되어야 갈라파고스화를 얘기할 수 있다. 그래서 이 부분의 99%가 기술 및 산업적인 문제에서만 발생하게 된다. 제도나 문화에는 세계 표준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주류에서 벗어난 예를 열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의미도 없다. 문화나 제도라 해도 수출을 해야 한다면 타국과의 문화 차이를 고려하긴 해야겠지만 말이다. 오늘날 대중문화에 있어서는 미국, 그리고 다소 양상은 다르지만 유럽을 포함한 서구권 일대가 사실상 표준처럼 여겨지기는 하나, 그런 인식이 있다고 해서 다른 문화가 주류를 따라가야만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기술업계와는 사정이 다르다. 오히려 어느 정도의 독창성은 있어야 서구권에서도 주목을 하는 편이다. 너무 똑같으면 자신들 문화의 아류처럼 여겨져 눈길을 끌기 어렵기 때문이다.[13]
어느 정도의 인구와 문화 역량을 갖추어 내수력이 있는 국가의 경우, 대부분 자기 나라 국민들 위주로 통용되고 다른 나라에선 그다지 통용되지 않는 서브컬처나 상품, 산업이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인도 영화에서 인기 있는 내용이 의무적으로 춤(군무)과 노래로 가득 차 있는 맛살라 영화 같은 건, 술과 야간 윤락 문화가 금지된 인도의 특수한 문화적 환경으로 인해 탄생한 것으로 다른 나라에선 잘 통하지 않는다. 문화나 기술이 전세계적인 경향과 다르게 나아가는 것은 문화 전반에서 자주 있는 현상이며, 인권에 위배되는 등의 세계 보편 윤리에 어긋나지만 않는다면 용인하는 것이 문화 상대주의적인 태도이다. 해당 문화 생산자가 타 지역을 개척하려는 의도가 있다면야 지역 특화 현상을 타파할 필요가 있겠지만, 이대로도 잘 장사를 하고 있어 만족하고 있고[14] 타 지역으로 진출할 생각이 없다면 제3자 입장에서 우물 안 개구리라며 비판할 사항은 전혀 아니다.
'갈라파고스화'라는 용어를 지나치게 넓은 분야에서 남용할 경우, 문화나 기술이 전세계적인 경향과 다른 경향으로 나아가는 것 자체를 무조건 잘못된 것으로 인식할 위험이 크다. 웹 표준을 비롯한 표준화의 문제를 다른 분야에까지 지나치게 확장하면 모든 분야에서 획일화가 옳다고 생각하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빠질 수 있다.
더 나아가 전세계 호환을 적극적으로 피하는 움직임이 보이는 분야가 있는데 군사 분야가 그 예이다. 무기란 기본적으로 자국의 사용을 최우선적으로 염두에 두며, 타국의 사용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일 뿐이다. 또한 무기 체계가 호환된다는 것은 잠재적 적국이 노획하여 사용하기 용이하다는 전술적 불이익을 초래한다.[15] 때문에 동맹끼리야 무기 체계 통일을 추구하지만 잠재적 적국끼리는 억지로라도 무기 체계를 호환되지 못하게 할 때가 종종 있다.[16][17] 이런 상황에서도 갈라파고스화는 적용하기 어렵다.
인터넷에서 벗어나면 '갈라파고스화'를 이렇게 확장된 의미로 사용할 경우 그 의미를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 사람들도 적지 않기에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갈라파고스화'라는 용어를 어떠한 의미로 사용한 것인지 혼동이 생길 여지가 있다.
6. 여담
스콧 맥클라우드는 자신의 저서인 '만화의 창작'에서 '마다가스카 효과'를 언급했는데, 일본의 만화 문화는 다른 섬나라인 마다가스카와 같다면서 고립된 환경 때문에 독특한 예술이 생겼다고 주장하였다. 단어는 다르지만, 마다가스카르도 섬이어서 갈라파고스처럼 독자적인 생물 진화가 이루어진 나라이다.한국에서는 갈라파고스화에 대한 경계심이 강한 편이다. 서구권과 다른 문화권이라는 것은 한중일 모두 동일하나 한국은 중국/일본과 달리 수출 경제 국가인지라 산업의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전세계 고객들의 필요 변화에 빠르게 대응해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주변국인 중국은 내수 시장 규모 자체가 워낙 압도적이고 전체주의가 깊이 고착화된 나라라 갈라파고스화되어도 그 질서대로 일제히 굴러가는 시스템이고, 일본 또한 수출 규모 못지않게 내수 시장 규모 역시 굉장히 큰 나라라 갈라파고스화되어도 꾸준히 충성스러운 수요가 있기 때문에[18] 수출 올인형 한국과는 비교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2023년에 만들어진 갈라파고스라는 드라마와 소설은 바로 이 문제에 대한 내용에 관한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갈라파고스화에 따른 고용 문제 등으로 인해 벌어진 살인을 수사하는 형사에 관한 이야기이다.
유래가 되었으니 당연하지만 생물에게는 갈라파고스화, 즉 지역에 따른 독자적 진화가 매우 흔하게 발생한다. 애초에 진화라는 것 자체가 환경에 맞춰 변화해나가는 것을 뜻한다. 생물 각 개체로서는 종 전체의 통일성을 추구해야 할 이유가 전혀 존재하지 않으므로[19] 당장 주어진 상황 압력에 따라 변이를 계속할 뿐이다.
7. 관련 문서
[1] 섬의 환경은 원래 여러 독특한 진화들을 초래한다. 그 예로 섬 거대화나 섬 왜소화 등이 있다.[2] 오늘날 스마트폰은 인구가 어느 정도 존재하는 지구 어디에서나 작동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편이다. 다만 제품에 따라 이런 고려의 폭은 다소 달라서 Apple 아이폰은 추운 겨울에 작동이 어려운 것으로 불편함이 종종 호소되곤 했다.#[3] 일례로 북한은 세계적으로는 그다지 쓰이지 않는 비날론을 독자적으로 양산하려고 하다가 막대한 손해만 보았다.[4] 농업, 공업에 비해 서비스업이 아직까지 덜 세계화가 된 것 역시 언어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다만 서비스업은 아직까지도 어느 지역 할 것 없이 세계화가 미비하고 지역(국가)에 특화된 단계에 머물러있으므로 서비스업을 두고 '갈라파고스화'라는 말을 쓰지는 않는다.[5] 또한 20세기 내내, 그리고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전세계 기술을 선도하는 국가였던 것도 한 몫 한다.[6] 이후 잘 알려져있듯 유럽경제공동체는 유럽연합으로 발전했다.[7] 이는 미국과 영국이 각각 초기 항공과 해운 업계를 이끌었기 때문이다.[8] 사각형 모양의 그 콘센트다.[9] 웃기게도 영국의 경우전기면도기에 한해서는 C타입의 플러그를 쓴다. 실제로 TGV, 유로스타, 탈리스 차량과 TGV 레조와 TGV 아틀랑티크 차량을 베이스로 한 KTX 화장실의 콘센트에 적힌 "면도기만 사용하시오"라는 문구가 바로 영국의 표준 콘센트와 면도기 콘센트를 배려한 문구이다.[10] 칠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등 일부 라틴아메리카 국가는 220V를 사용한다.[11] 사실 정보통신 분야에서 폐쇄성은 보안과도 어느 정도 연결되므로 순기능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 실제로 애플 기기는 안드로이드 기기에 비해 보안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다.[12] 사실 이런 상황은 오늘날이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다. 현재도 웹 표준에서 전자서명, NFC(웹 표준에 추가하려고 했으나 찬반이 갈려서 넣지 못했다), 페이지 보안(CDM은 멀티미디어에 한해서만 지원한다.) 같은 기능들은 지원하지 않기 때문에 독자 앱이나 플러그인을 사용해야 한다.[13]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 라는 말 역시 문화 분야는 특수성이 오히려 세계적 인기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어구이다.[14] 그렇지 않고 지역의 문화 역량이 타 지역의 문화에 잠식당하고 시간이 갈수록 파이가 줄어드는 상황이라면 이를 경계하는 입장을 취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지역 특화' 자체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지역 내의 총 문화적 역량이 열세인 상황이므로 이런 상황에도 각각의 문화 생산자를 비판하기는 어렵다. 이런 상황에 처한 문화권은 애초에 파이 자체가 작기 때문에 개별 문화 생산자는 영세한 상황으로 인해 당장의 소비자를 우선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클럽에서 하루 노래 하고 벌이를 채우는 가수에게 '외국인 취향에 맞는 노래를 개발하라'라는 소리는 허황된 소리일 뿐이다. 이런 때에는 그나마 권력을 가진 문화권 내 중심 집단이 행동하지 않으면 대응하기 어렵다.[15] 가까운 예로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에는 두 국가의 무기 체계가 동일하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측에서 러시아 무기를 매우 요긴하게 잘 노획해서 쓰고 있다.[16] 때문에 소련, 현재의 러시아는 예나 지금이나 서방측과 무기 체계를 호환시키려는 노력을 일절 하지 않는다. 냉전 이래로 쭉 잠재적 적국 상태이기 때문이다. 한편 소련 영향력 하에 있던 동유럽 국가는 1990년대에 서방 진영으로 편입되면서 과거의 소련식 무기 체계와 잘 호환이 되지 않는 문제를 겪고 있다.[17] 러시아는 과거 이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독일의 표준궤와 다른 광궤를 깔았다는 설이 있다. 타국과 양식을 통일하면 잠재적 적국도 쓰기가 편해지기 때문이다. 의도였는가는 몰라도 독소전쟁 때 실제로 독일군은 러시아 점령지의 광궤 노선을 표준궤로 개궤하느라 고생을 좀 했다.[18] 사실 일본은 그런 갈라파고스화 자체를 일본 문화의 특징 중 하나로 여기는 면도 있다. 온갖 종류의 재플리시에서도 보듯 일본에 들어와서 원형을 유지하는 것이 오히려 드물다.[19] 유전자 단위에서 특정 변이를 지닌 유전자가 여러 지역에 퍼지면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런 변이를 찾는다면 다양한 지역에서 생존할 수 있으니 적응에 유리하긴 하겠지만 꼭 그래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