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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2015년 기준으로 총 인구 100명 미만인 성씨 한자 표기가 다르더라도 한글 표기가 같으면 합산됨 | }}}}}}}}} |
1. 甘 (달 감)
한국과 중국에 존재하는 성씨.하(夏)나라 초기에 지금의 산서성 후현 남서쪽에 감(甘)이라는 지명이 있었는데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강(姜)씨 성의 일파로 후에 동쪽에 있던 지금의 허난성 이양으로 이동했다. 상(商)나라 때에 이르러 감인(甘人)[1]의 수령 감반(甘盤)[2]은 상나라 왕 소을(小乙)의 신하가 되고, 이어서 부열(傅說)과 함께 상나라 고종(高宗) 무정(武丁)의 현신(賢臣)이 되어 무정을 보좌하여 나라의 중흥[3]을 이루었다. 이런즉 북송(北宋)의 <광운>(廣韻)[4]에서 이르길, 감(甘)씨 성은 무정의 신하인 감반(甘盤)의 후손이고, 무정 때 상나라가 은(殷)(지금의 하남성 안양시 샤오툰 일대)[5]에 있던 연고로 이 계통의 감씨는 안양(安陽)에서 나왔다.
다른 계통의 감씨(甘氏)는 희(姬)씨 성에서[6] 기원된 바 춘추시대에 형성되고 뤄양에서 비롯되었으니 주(周) 혜왕(惠王) 희랑(姬閬)의 아들 숙대(叔帶)의 후손이다. <사기>(史記) 주나라 본기(周本紀)에 혜후(惠后)[7]가 숙대를 낳고 혜왕의 총애를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사기색은>(史記索隱)[8]에 이르길, 숙대는 혜왕의 아들이자 양왕의 동생으로 감(甘) 땅에 봉해졌기에 <좌전>(左傳)에서는 감소공(甘昭公)이라고 칭한다. <정의>(正義)에서는 <괄지지>(括地志)를 인용하여 이르길, 감성(甘城)은 뤄주 허난현[9] 남서쪽 25리에 있는데 숙대가 감읍(甘邑)에 봉함을 받아 감소공(甘昭公)이라 불렸고 이후 읍 이름을 성씨로 삼았으니 바로 감(甘)씨이다.
한국의 감씨는 회산, 창원, 합포 등이 있으나 모두 창원을 뜻하는 말로 같은 뿌리이며 회산 단본이다. 감(甘)씨는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6,024명으로 조사되었다.
1.1. 회산 감씨
{{{#!wiki style="margin: -15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width=230><tablebordercolor=#004db1> 檜山 甘氏 회산 감씨 | }}} | |
<colbgcolor=#004db1> 관향 | 경상남도 창원시 | ||
시조 | 감규(甘揆) | ||
중시조 | 감철(甘喆) | ||
집성촌 | 충청북도 충주시 경상남도 창원시 경상남도 거창군 경상남도 창녕군 | ||
인구 | 6,024명(2015년) |
시조 감규가 연릉군(延陵君)에 봉해진 후 14대손[12] 감수화(甘受和)에 이르기까지 연릉(延陵)[13]을 본관으로 삼았다고 한다.[A] 이후 15대손[15]인 중시조 감철(甘喆)이 북벌을 간하여 중지하게 한 공으로 금자광록대부[16]에 오르고 회산군(檜山君)에 봉해졌으므로 관향을 회산(檜山)[17]으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B]
회산 감씨 족보에 의하면, 고려조에 평장사 감기(甘箕)[19], 평장사 감흥협(甘興鋏)[20], 평장사 감희(甘熙)[21]를 비롯하여 이부상서[22] 감철의(甘鐵顗)[23], 밀직제학[24] 감소연(甘紹延)[25], 중추부사 감진요(甘震耀)[26], 이부시랑[27] 감전형(甘全形)[28], 이부시랑 감침(甘鍼)[29], 평장사 감붕후(甘棚垕)[30] 등의 인물을 배출하였다고 한다.[A]
조선조에서는 중시조 감철(甘喆)[32]의 손자로서 예부승지[33]를 지낸 감원한(甘元漢)[34]과 이조참의에 오른 감익한(甘益漢)[35] 형제가 뛰어났다.[B] 특히 감익한은 1455년 (단종 3)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하고 단종을 노산군으로 봉하자 성삼문을 비롯한 사육신과 함께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화를 입은 충신이었다.
조선 중기에는 임진왜란 때 전공을 세우고 원종공신에 녹훈된 내금위 정략장군[37] 감경인(甘景仁)[38]과 사후 군자감 직장에 추증된 감경륜(甘景倫)[39] 형제가 있었고, 조선 후기에는 동학농민운동을 평정하고 품계가 절충장군[40]에 이른 감재원(甘在元)과 김해부사[41]를 지낸 감기현(甘麒鉉) 부자가 있었다.
시조 감규의 묘는 충청도 공모산(功慕山)에 있었고 어제(御製) 신도비가 무곡산(舞谷山)에 있었다고 하나 실전되었다. 이에 후손들이 세거지인 창원시 내리동에 제단과 신도비를 설치하고, 매년 음력 4월 15일 향사를 지낸다. 병진보(丙辰譜) 서문에 보면 우리나라 감씨가 합포 감씨, 창녕 감씨, 거창 감씨, 충주 감씨, 부령 감씨 등 5본이 있다는 설이 있지만 이는 세거지명이라고 하며, 회산 감씨 단일본이라고 한다.
2015년 기준 국내에 총 6,024명이 있는 희성이다. 발음, 표기에 따라서 강씨, 김씨와 혼동하기 쉬우므로 주의해야 한다.
1.1.1. 항렬표(行列表)
35세 | 현(鉉), 태(泰) |
36세 | ○영(泳), ○식(植), ○주(柱) |
37세 | 상(相), 경(炅), 병(炳) |
38세 | ○병(炳), ○규(圭), ○은(垠) |
39세 | 동(東) |
40세 | ○희(熙) |
41세 | 채(埰) |
42세 | ○석(錫) |
43세 | 호(浩) |
44세 | ○근(根) |
45세 | 형(炯) |
2. 실존 인물
2.1. 한국
- 감경인(甘景仁) - 조선 중기의 무신. 임진왜란 때 전공을 세워 여도만호(呂島萬戶), 내금위(內禁衛) 정략장군(定略將軍) 등을 역임하고 원종공신에 녹훈되었다. 사후 삼렬(三烈)이라는 사호(祠號)를 받고 삼렬사에 봉안되었다.
- 감재원(甘在元) : 조선 후기의 무신. 1888년(고종 25) 무과에 급제하였고, 1894년(고종 31) 동학농민운동을 평정한 공으로 용양위 사과[44]를 제수받았다. 절충장군[45] 첨지중추부사[46] 겸 의관에 이르렀다. 경술국치 후 창원으로 낙향하여 반룡산에 은거하였다. 대한제국에서 김해부사를 지낸 감기현(甘麒鉉)의 아버지이다.
- 감기현(甘麒鉉) - 부친은 절충장군[47] 첨지중추부사[48] 겸 의관을 지낸 우우재(友于齋) 감재원(甘在元)이고, 모친은 순흥 안씨 안중금(安中嶔)의 딸이다. 1880년(고종 17) 경상남도 창원군 내동리에서 태어났다. 1899년(광무 3) 20세에 참정 민영환을 만나, 궁내부 주사로 추천되었다. 1902년(광무 6)에 중추원 의관으로 승진되었으며, 1904년(광무 8) 혜민원 참서가 되었다. 1907년(광무 11) 초계현감[49]이 되었으며, 이후 김해부사[50]가 되었다. 1907년(광무 12) 고종이 퇴위하자, 이에 분개하며 관직을 버리고 낙향하여 척암(拓菴) 김도화(金道和),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 등의 학자들과 교류하였다. 1942년 호서의 삼산(三山)으로 이거하여, 구조하(具祖夏), 김기성(金璂成) 등 명사와 교류하였다. 1950년, 전쟁을 피해 김해 청천으로 내려갔다가 고향으로 돌아와 1964년에 사망했다.
- 감상두 - 사회주의 계열 항일운동가. 1932년 비밀결사 조선공산주의자통일동맹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조선공산주의자통일동맹은 1925년의 조선청년총동맹, 1929년의 조선공산당재건동맹의 후신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202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 감영생(甘泳生)[51] - 밀양 의열단 소속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김원봉에게 항일자금을 댔고 국내, 일본, 만주 등지에서 함께 활동하였다. 증조부 기일 밤인 1950년 7월 24일, 빨갱이로 몰려 1,681명과 함께 마산 괭이바다에서 수장당했다. 지난 2017년 '그것이 알고 싶다 1089회 (도둑골의 붉은 유령 - 여양리 뼈 무덤의 비밀)'에서 보도연맹 학살사건을 다루면서 관련 내용이 방송되었다. 우측 하단 사진의 오른쪽 인물이다.
- 감강인 - 前 피겨 스케이팅 아이스 댄스 선수.
- 감강찬 - 前 피겨 스케이팅 페어 선수.
- 감명아 - 인터넷 방송인.
- 감사용 - 前 삼미 슈퍼스타즈-청보 핀토스 투수.
- 감서윤 - NC 다이노스, KCC 이지스 치어리더.
- 감예림 - 걸그룹 MAJORS의 멤버.
- 감우성 - 배우.
- 감한솔 - 축구 선수.
2.2. 중국
- 감반(甘盘) - 상(商)나라의 명신(名臣).
- 감무(甘茂) - 전국시대 진(秦)나라의 승상(丞相).
- 감라(甘羅) - 전국시대 진(秦)나라의 상경(上卿)[52]. 감무의 손자.
- 감덕(甘德) - 전국시대 초(楚)나라[53]의 천문학자.
- 감연수(甘延壽) - 전한(前漢)의 장군. 의성후(義成侯).
- 감영(甘英) - 로마 제국에 파견된 후한(後漢)의 대사.
- 소열황후 감씨(昭烈皇后 甘氏) - 촉한(蜀漢) 초대 황제 유비의 아내. 촉한의 추존황후.
- 감녕(甘寧) - 손오(孫吳)의 장군. 북송(北宋)의 추증왕[54]. 감무의 후손.
- 감택(闞澤) - 손오(孫吳)의 문관.
- 감탁(甘卓) - 오호십육국시대 동진(東晉)의 장군. 감녕의 증손자. 감무의 후손.
- 감종구(甘從矩) - 오대십국시대 남오(南吳)의 개강대신(开疆大臣), 정남장군(征南將軍). 풍성백(豐城伯). 부성개국백(富城開国伯). 풍성여당 감씨(豐城驪塘甘氏)의 시조.
- 감영(甘泳) - 송말원초의 시인.
- 감봉지([ruby(甘鳳池, ruby=간 펑 츠)]) - 청나라의 무술가.
- 간나이광([ruby(甘乃光, ruby=감 내 광)]) - 중화민국의 정치인. 주호주중화민국대사.
- 간스허([ruby(甘思和, ruby=감 사 화)]) - 중국 인민해방군 개국소장.
- 간주창([ruby(甘祖昌, ruby=감 조 창)]) - 중국 인민해방군 소장.
- 간웨이([ruby(甘薇, ruby=감 미)]) - 중국의 여배우.
- 간팅팅([ruby(甘婷婷, ruby=감 정 정)]) - 중국의 여배우.
- 간핑([ruby(甘萍, ruby=감 평)]) - 중국의 여자 가수.
3. 감씨를 예명으로 쓰는 인물
- 감현서 - 유튜버. 본명은 김현서.
4. 가상 인물
- 감규리 - 네이버 웹툰 오늘 밤만 재워줘의 주인공
- 감규리 - 스트리머, 버츄얼 유튜버
- 감동원 - 네이버 웹툰 평범한 8반의 주인공
- 감딸기 - 꿈빛 파티시엘의 주인공
- 감사함 - 삶이 우리를 속일지라도의 주인공
- 감수미 - 외모지상주의
- 감정무 - 네이버 웹툰 악플게임의 등장인물
- 감우진 - 따끈따끈 베이커리의 등장인물
- 감유은 - 네이버 웹툰 감 비서가 고장났다의 주인공
- 감대봉 - 네이버 웹툰 지니오패스의 등장인물
- 감제이 - 스트리머, 버츄얼 유튜버
5. 여담
- 이름을 가나다순으로 나열할 경우 매우 높은 확률로 제일 앞자리에 오게 되는 성씨이다. 이에 따라 학교에서 감씨를 가진 사람은 99%의 확률로 출석번호 1번을 받게 된다. 하지만 가씨 성을 가진 사람이 있거나 고려인이나 외국인이 많은 학교는 2번이 될 것이다.
- 희성이지만 1930년 국세조사 당시 거의 대부분이 남한 지역에 분포하였기에[55] 남북 분단 후 그나마 성씨 순위가 크게 증가한 편이다.
[1] 하나라 초기 감(甘) 땅에서 살다 이후 동쪽으로 이동해 온 일족.[2] 상나라 왕 소을(小乙)은 재위 6년에 아들 무정(武丁)을 하(河)에 살게 하고 감반(甘盤)에게서 공부하도록 하였다. 이후 무정이 상나라 고종(高宗)으로 즉위하고 부열(傅說)과 함께 감반을 중용하여 중흥을 이루었으니 감반은 고종의 스승이자 신하이다.[3] '무정중흥'(武丁中興) 또는 '무정성세'(武丁盛世)라고 한다.[4] 대송중수광운(大宋重修廣韻)의 약칭이다.[5] 은(殷)으로 도읍을 옮긴 18대 왕 반경(세조)부터 29대 왕 제신(주왕)까지의 상나라를 만상(晩商)이라고 하며, 이 때문에 상나라를 은나라로 칭하기도 한다.[6] 희(姬)는 주나라의 왕성이었다. 참고로 주나라가 멸망한 후 다수의 주나라 왕족들은 정체성 유지를 위해서인지 주(周)씨로 자기의 씨를 바꿨다.[7] 숙대는 후비 혜후의 소생이고 양왕은 정비의 소생으로 이복형제간이다.[8] 당나라의 사마정(司馬貞)이 <사기집해>(史記集解)를 근거로 지은 사기(史記)의 주석서. <사기집해>(史記集解), <사기색은>(史記索隱), <사기정의>(史記正義)를 통틀어 사기(史記) 삼가주(三家注)라고 한다.[9] 현재의 허난성 뤄양시.[A] 족보의 기록으로 고려사 등에는 기록이 없다.[11] 潝은 물 빨리 흐르는 소리 흡, 웅덩이에 빠질 압의 2가지로 읽힌다.[12] 시조 15세.[13] 황해남도 연안군의 옛 명칭. 고려의 수도가 개경(현재의 개성직할시)이었으므로 중국에서 도래하여 우리나라에 정착한 사람들은 개경 인근의 연안, 해주 등을 본관으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A] [15] 시조 16세.[16] 고려의 종2품 상계 문관의 품계이다. 다만 감철이 조선 후기 효종대의 인물이므로 연대상 모순이다.[17] 현재의 경상남도 창원시.[B] 족보의 기록으로 조선왕조실록 등에는 기록이 없다.[19] 시조 2세. 시조 감규의 아들.[20] 시조 4세. 시조 감규의 증손.[21] 시조 5세. 시조 감규의 현손.[22] 고려시대 이부의 장관직인 상서로 정3품 관직이다. 조선시대 이조판서와 비슷하다.[23] 시조 6세.[24] 밀직사의 제학으로 정3품 관직.[25] 시조 7세.[26] 시조 8세.[27] 고려시대 이부의 차관직인 시랑으로 정4품 관직이다.[28] 시조 10세.[29] 시조 11세.[30] 시조 13세.[A] [32] 시조 16세.[33] 조선시대 승정원의 도승지, 좌승지, 우승지, 좌부승지, 우부승지, 동부승지 등 6승지는 각각 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의 자문을 맡기도 하였다. 예부승지(禮部承旨)는 예방승지(禮房承旨)라고도 하며 예조의 자문을 맡은 우승지를 말한다.[34] 시조 18세.[35] 시조 18세.[B] [37] 무신 종4품 상계의 품계명.[38] 시조 25세.[39] 시조 25세.[40] 무신 정3품 당상관의 품계명.[41] 부사는 정3품 지방관직이다.[42] 현재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일대이다. 병진보(丙辰譜) 서문에 보면 우리나라 감씨가 합포 감씨, 창녕 감씨, 거창 감씨, 충주 감씨, 부녕 감씨 등 5본이 있다는 설이 있지만, 이는 세거지명이라고 하며, 회산 감씨 단일본이라고 한다.[43] 종6품의 지방직.[44] 정6품.[45] 무신 정3품 당상관의 품계명.[46] 중추부의 첨지사. 정3품 관직.[47] 무신 정3품 당상관의 품계명.[48] 중추부의 첨지사. 정3품 관직이다.[49] 현감은 종6품 지방관직이다.[50] 부사는 종3품 지방관직이다.[51] 생몰년 1914년~1950년.[52] 승상(丞相)에 상당하는 재상직. 감라는 불과 12세에 상경이 되었다.[53] 본래 노(魯)나라 사람이라고도 한다.[54] 소의무혜유애령현왕(昭毅武惠遺愛靈顯王).[55] 335가구 중 북한 지역에 거주하던 가구수는 24가구가 전부였으며, 대부분 황해도 지방에 거주하였다. 비슷한 사례로 가씨, 범씨, 사공씨, 팽씨, 형씨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