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7 08:50:16

창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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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특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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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
昌原市
Changwon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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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35e19><colcolor=#fff> 시청 소재지 성산구 중앙대로 151 (용호동)
광역자치단체 경상남도
하위 행정구역 5일반구 2 6 47
면적 749.23㎢
인구 1,005,519명[1]
인구밀도 1,342.07명/㎢[2]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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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표 (초선)
시의회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27석[3]

18석[4]
도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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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석[5]
국회의원
<colbgcolor=#f35e19><colcolor=#fff> 의창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김종양 (초선)
성산
허성무 (초선)
[[창원시 마산합포구(선거구)|
마산합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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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두 (재선)
[[창원시 마산회원구(선거구)|
마산회원
]]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윤한홍 (3선)
진해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이종욱 (초선)
상징 시화 벚꽃
시목 소나무
시조 괭이갈매기
지역번호 055-2**[6], 54*[A], 55*[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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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징3. 역사
3.1. 특례시 지정
3.1.1. 특례시 박탈 가능성?
4. 지리
4.1. 지형4.2. 기후4.3. 뚜렷한 지역성
5. 인구6. 교통7. 경제8. 관광
8.1. 관광지8.2. 주요 행사8.3. 특산물
8.3.1. 먹을거리8.3.2. 가전제품 및 기계 설비류
9. 생활 문화10. 정치11. 군사12. 하위 행정구역13. 논란
13.1. 탈성매매여성 매입임대주택 지원 특혜 논란
14. 여담15. 출신 인물16. 관련 문서17. 자매 도시
17.1. 국내17.2. 해외
1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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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Plus Changwon, 창원특례시
플러스 창원, 동북아 중심도시 창원

2010년 UN선정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경상남도의 시. 경상남도 최대도시로 경상남도청 소재지이자 비수도권에서 유일한 특례시다.[9] 한국의 기초자치단체 중에서는 가장 많은 5개의 일반구가 설치되어 있고[10], 시의원 선거구도 18개로 가장 많다.[11]

창원시는 경상남도의 중심 도시로 경상남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다. 경상남도청[12], 경상남도의회, 창원지방법원, 창원지방검찰청, 경남지방경찰청, 경상남도교육청, 정부경남지방합동청사, 그 외 정부 부처 및 관계 기관들의 경상남도 청사가 상당 부분 창원시에 몰려 있다.[13]

현재의 창원시 영역은 일제강점기 이전의 창원부 영역과 거의 일치한다. 1989년 부산에 편입된 천가면(현 가덕도동)이 사라진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같다. '창원'이란 명칭은 조선 태종 때 의'창'현과 회'원'현을 합쳐 부를 신설한 것에 기원하며 이후 조선시대까지는 줄곧 한동네였다. 이 두 지명은 현재도 일반구의 명칭인 의창구마산회원구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1914년 마산부 분리[14], 1955년 진해시가 분리[15]된 이후 2010년 7월 1일 다시 통합하기 전까지는 근 100년 남짓한 기간 동안 여러 개의 지자체로 나뉘어 존재해 왔다. 그러나 이 지역은 통합 이전부터 서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 곳이다. 기존 마산시, 창원시, 진해시 3개 시는 시내버스를 통합해서 운영했고, 오늘날 창원시의 주요 관문인 동마산IC를 비롯한 고속도로 출입구, 시외버스터미널 노선 또한 공유하는 등 교통, 문화, 인프라 부분에서 뿌리 깊게 연계, 협력하였고 지금도 인프라 상당 부분을 변함없이 함께 공유하고 있다.

경제 규모가 인구수 대비 상당히 큰 편이다. 2019년 기준 지역 내 총생산(GRDP)#이 약 39조 86백만으로 집계되었는데 이는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5위, 비수도권 기초자치단체 1위에 해당되며[16] 대전광역시(약 43조 9백만), 광주광역시(약 41조 51백만)와도 비견되는 수준이다. 그만큼 내로라하는 국내 대기업 공장들이 많이 상주해 있는 곳으로, 외국계 글로벌 기업 사업장도 다량 위치해 있다.

2. 상징

창원시의 CI
파일:창원시 CI.svg
Dynamic Change, Changwon
파일:마창진도시슬로건로고.jpg 파일:창원시 CI(2010).svg
통합 이전 마산, 창원, 진해 도시브랜드 슬로건 로고 2010년 7월 통합 직후 창원시 임시로고
창원시의 상징물
시화 벚꽃: 번식이 강하고 화사한 모습과 매혹적인 향기는 열심히 사는 창원시민의 모습이다.
시조 괭이갈매기: 창원시 마산만에서 오랜 세월동안 시민과 벗하여 왔으며, 예리한 관찰력과 부지런하고 협동심이 강한 것은 진취적 기상과 화합을 상징한다.
시목 소나무: 소나무는 의와 깨끗한 절개를 상징하며, 이것은 곧 창원시의 이미지를 대표한다.
창원시의 도시브랜드 슬로건
파일:창원시 BI.svg
창원시의 마스코트
파일:창원시 마스코트 피우미.svg
창원시의 꿈과 희망의 메신저, 피우미
창원시민의 노래
1절
아름다운 창원 뿌리깊은 고장
가슴가슴 이어지는 두터운 인정
무학천주산 어깨동무 장복산 감아돌고
가고파 푸른물결 진해만 손잡았네

2절
사랑하는 도시 마주보는 이웃
거리거리 삶터마다 넘치는 열정
꽃피운 예술향기 희망을 노래하고
언제나 푸른청춘 세계를 감싸안았네

3절
살기좋은 누리 함께하는 마음
믿음으로 하나가 된 든든한 기상
동남공단 힘찬도전 번영을 약속하고
꿈이있는 녹색마을 우리 힘으로 키우네

후렴
이어가자 찬란한 창원의 역사
거룩하다 민주성지 위대한 함성
남도일등 행복시 우리네 창원
영원하라 길이 빛나라라
창원 문인 일동 작사 / 임긍수 작곡

3. 역사

파일:창원시 CI.svg 창원시 행정구역 변천사
창원부
(昌原府, 1908년)
마산부
(馬山府, 1910년)
창원군
(昌原郡, 1914년)
마산시
(馬山市, 1949년)
창원군
(昌原郡)
진해시
(鎭海市, 1955년)
마산시
(馬山市)
의창군/창원군
(義昌郡/昌原郡,
1980년~1990년/1991년~1994년)
창원시
(昌原市, 1980년)
진해시
(鎭海市, 1983년)
마산시
(馬山市, 1995년)
창원시
(昌原市, 1995년)
진해시
(鎭海市)
창원시
(昌原市, 2010년 7월 1일)
역사적으로 조선시대부터 한 지역이었으며, 일제의 정책에 의해 행정적으로 완전히 분리되기 시작했다가 2010년 7월 1일 다시 하나의 지역으로 통합됐다.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창원시/역사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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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창원시/통합 이전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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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진해시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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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특례시 지정

<rowcolor=#fff> 2022년, 창원특례시 출범 공식 영상

2022년 1월 13일, 특례시로 지정되었다.

3.1.1. 특례시 박탈 가능성?

창원시 인구가 감소하면서 특례시 지위를 상실 할 수 있다는 보고서가 나오고 있다. 2024년 3월 기준 100만 명선 붕괴가 약 5,500여 명밖에 남지 않은 상태인데, 창원시에서 갖은 노력을 해도 감소세가 꺾이지 않고 있기 때문. 지방자치법 시행령 118조는 해당 인구 인정기준을 근거로 전년도 인구가 2년 연속해서 100만 명 미만이면 특례시 지위를 박탈하도록 규정한다. 따라서 2025~2026년 특례시 지위 박탈이 사실상 확정인 상태이다.

4. 지리

4.1. 지형

경상남도의 남동부에 위치하며 동쪽으로는 부산광역시 강서구김해시, 북쪽으로는 낙동강을 경계로 밀양시창녕군, 서쪽으로는 함안군, 진주시, 고성군에 접한다. 시의 중앙에는 마산만이, 남쪽에는 진해만이 있다.

부산처럼 산이 많다. 구 창원 시가지는 정병산, 대암산, 불모산, 장복산, 팔용산, 천주산에 둘러싸인 전형적인 분지 지형이며, 마산회원구 북쪽에는 무학산도 있다. 성주동 불모산에서 발원하는 남천이 서쪽으로 흘러 마산만으로 유입하는데 창원천, 안민천, 토월천 등 (구)창원시 남부의 하천 대부분이 남천으로 합류한다.

마산회원구, 마산합포구진해구 지역은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 마산은 무학산을 등에 지고 마산만을 맞대고 있으며, 진해구는 장복산을 등에 지고 진해만을 맞댄 형태. 특히 마산같은 경우 좀 평평하다 싶은 지역은 죄다 시가지 확장 중에 생긴 매립지들이다. 이 과정은 항구 도시로 번창하던 일제강점기부터 실시되어 왔으며 현재까지도 해양신도시 사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지형 때문에 2003년 태풍 매미가 들이닥쳤을 때 남마산 일대가 모조리 물바다가 되어버린 적도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낙동강에 접한 의창구동읍대산면 지역에는 꽤 넓은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이 지역은 원래 논농사가 흥해서 농업 용수를 공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거대한 저수지를 만들어 놨는데, 이것이 주남저수지이다. 하지만 근래엔 논농사보다는 지역 특산물로 떠오른 단감을 재배하는 과수원이 늘어나는 바람에 지금의 주남저수지는 인간의 손을 벗어나 철새의 낙원으로 재탄생했다.

현재의 창원시의 영역은 구 마산시[17]의 지형과 거의 똑같다고 볼 수 있다.

4.2. 기후

"따뜻한 남쪽바다" 한마디로 설명이 가능한 지역이다. 인근의 부산과 매우 비슷한 기후특성을 보이지만, 동해/남해상에 접하고 있는 부산에 비해 창원은 마산만이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어 부산보다는 좀 더 내륙분지적 특성이 강하다. 그래서 우선 여름엔 무진장 덥다. 한반도에서 열대야가 가장 많이 관측되는 지역이기도 하다.

대신 겨울에는 타 지역에 비해 별로 춥지도 않고 결정적으로 눈도 거의 안 온다. 물론 추위는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거지 겨울되면 춥기는 해서 시민들도 타이즈+티셔츠+스웨터+패딩 입고 다닌다. 하지만 따뜻한 남쪽 해안지방답지 않게 의외로 눈이 일단 매년 한 번씩은 따박따박 오기는 온다, 얼마 안 와서 그렇다. 와봤자 쌓이지 않을 정도로만 잠시 내리는 전국에서 몇 안 되는 곳이기도 하다. 2012년 7월 현재, 눈이 몇 cm 쌓여 꽤나 오래 눈이 남아 있었던 것은 2015년 2월이 마지막이다. 이후로는 눈이 쌓이지 않았거나 쌓이고 하루이틀 만에 다 녹아버렸다. 그래서 이 곳에서 평생 살아온 사람들은 빙판이 뭔지 실제로 모르는 경우도 있다. 타 지역처럼 눈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두껍게 어는 빙판이 아니라, 응달에 고여 있던 물웅덩이가 살짝 언 정도의 매끈한 빙판 정도만 경험한다. 물론 육군 예비역들은 거의 다 전방을 다녀오기 때문에 눈 하면 이를 가는 건 타지 사람들과 마찬가지긴 한데 지역 특성상 공군, 해군에 지원하는 비율도 타 지역보다 높은 편이라 눈이 익숙하지 않은 비율이 더 올라간다.

이처럼 시민들이 눈에 대한 대비가 거의 안 되다 보니, 정말 십몇 년에 한번 눈이라도 쌓일라 치면 서울에서는 이 정도 눈쯤 하며 씽씽 달리는 차들이, 창원시에서는 15~30km 거북이 운행을 하며 골목골목에서 접촉사고가 나는 난리가 벌어지기도 한다. 산복도로를 끼고 있는 마산합포구 권역은 정말 헬게이트가 벌어진다. 실제로 눈이 쌓였던 날 평소 30분 정도 걸리던 출퇴근 시간이 3시간 이상 걸리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수도권에선 진눈깨비에 불과한 눈이 내렸을 뿐인데 생긴 일이라는 것이다. 1997년 약 10cm 정도의 적설량을 보였을 때에는 단 1개 노선[18]만 제외하고 대중교통이건 승용차건 화물차건 모두 운행을 중단했던 적도 있다.

진해구 지역은 장복산이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고 있고 남쪽으로 바다가 트여 있어 창원에서 가장 따뜻한 기후를 보이는데 이 때문인지 약 50년 동안 기록된 최대 적설량이 4cm이다.

바다에 바로 접해 있는 옛 마산 지역이나 진해구 쪽은 여름~가을에 걸쳐 태풍집중호우로 인한 침수 피해와 강풍 피해를 종종 입는 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3년 내습한 태풍 매미로 인한 피해. 이때는 만조와 강풍으로 인한 5m 높이의 해일까지 덮쳐 엄청난 재난을 겪었다. 덕분에 2003년 이후 해안가에 지어진 아파트들은 터돋움식으로 지어서 아파트 1층이 다른 건물 2~3층 높이로 올려 지어지는 진풍경을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비교적 내륙인 양덕동에도 2000년 초반에 완공한 한일4차부터 2015년 후반에 지어진 창원 메트로시티 2차까지 모두 터돋움식이다.

1987년에는 최악의 겨울 가뭄으로 저수지가 다 말라붙었고, 1999년과 2009년에는 7월에 게릴라성 집중호우가 내리기도 했다. 그리고 2013년 여름 8월에는 제대로 된 비는 다섯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땡볕이 쏟아졌다.[19] 일기예보에서 전국(남부 지방 포함) 비 예보를 할 때조차 땡볕이었다! 뉴스를 볼 때마다 밥 먹다 숟가락 던지는 사람도 많다. 경남 지역 뉴스의 일기예보조차 맞지 않아 각 개인이 날씨에 대비할 수밖에 없다.

더위 관련은 예보를 뛰어넘는 찜통을 보여준다. 2016년 7월 31일을 기준으로 2016년 전국 최고기온을 달성한 적도 있으며(36.7°C), 대개 숫자상 최고기온은 내륙의 대구, 경산, 밀양이 갖고 가지만 창원은 거기보다는 최고기온은 조금 덜할지라도 해안가+분지+열섬으로 인해 최저기온이 그쪽 지역보다 높아 평균기온은 이들 지역과 맞먹는다. 창원기상대는 마산합포구 해안가의 옛 마산측정소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구 창원 권역은 분지 지형이라 열섬 현상에 분지 특성까지 얹어서 더 덥다.

4.3. 뚜렷한 지역성

이명박 정부 들어 많은 인센티브를 거론하며 기초자치단체 간 통합을 유도했으며, 당연히 그전부터 경제/사회/문화적 교류가 많은 소위 마창진(마산, 창원, 진해)에 대한 이목이 집중됐다. 이에 자극받은 3개 시는 지난한 정치적 협상 및 행정적 조율을 거쳐 드디어 2010년 7월 통합 창원시가 출범하게 됐으며,[20] 이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 수립 이후 첫 번째 사례다. 이 과정에서 함안군도 포함될 뻔했으나 제외됐다.

마산과 함안이 밀었던 모델은 마산+창원+함안이었고 창원시가 밀었던 모델이 마산+창원+진해였다. 당시 마산시의 생각은 이 3도시가 통합되면 마산은 발전 동력이 다해 쇠퇴하던 도시가 다시 도시 중심부가 되어 새로운 발전 동력을 얻을 수 있었고, 함안은 새로이 공장이 들어서는 발전 가능성이 높은 도시였으나 재정자립도가 낮은 탓에 과감한 투자를 할 수 없으므로 많은 재정을 유치할 수 있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창원시는 아직도 북면 등 미개발 지역이 남아 있고 함안과의 연동으로는 별다른 이점을 찾을 수 없었던 터라 함안과 마산을 제외하고 신항이 들어서던 진해와 합쳐서 항만도시로의 발전을 추구하는 게 낫다고 판단하고 도시 통합을 추진했다.

통합시 출범 당시 명칭으로 '마창진'이니 '진창마'니 '창마진', '가야', '산해원', '경남' 등 여러 안이 나왔는데, 결국에는 그냥 '창원'이 됐다. 통합시청사 역시 기존 창원시청으로 결정됐다. 하지만 새 시청사 소재지는 심각한 갈등으로 인해 결정이 나지 못하고 기존 창원시청이 여전히 시청으로 기능하는 중이다. 한때는 구 39사단 부지로 결정되었다는 허위 사실을 문자로 유포해 난리를 쳤던 적이 있었다. 결국 시청 소재지를 놓고 대립이 일어난 끝에 창원시 의회에서 "그냥 원 상태로 되돌아가자"라는 결의안을 통과시켜서 파문이 일었다. 2011년 11월 4일 창원시의회 임시회에서 이 결의안이 통과돼버린 것. 결의안을 제시한 의원은, "지역 이기주의가 극심한 몇몇 의원 때문에 통합의 정신이 흔들린다"라고 했다. 그런데 웃긴 것은 같은 날 통합 창원시의 시청사 입지를 조속히 선정하자는 결의안도 통과됐다.

물론 창원시는 이제 와서 다시 마산, 진해가 분리되는 건 무리라고 말하고 있다. 당장 자진통합으로 중앙정부에서 받아먹은 추가 재정지원이 교부세만 연간 10% 수준인데 재분리한다고 하면 중앙정부가 가만있을 리도 없을뿐더러 교부세 추가분을 반환한다고 하면 분담률을 두고 내분이 일어날 것이다. 어이없는 사실은 이 결의안을 통과시키기 전에 통과시킨 결의안이 2011년 안에 통합시청사 부지를 선정하자라는 것. 2011년 안에 통합시청사 부지를 선정한 뒤에 세 도시로 분리된, 원 상태로 되돌리자라는 거라 앞뒤가 안맞는다는 비난이 나왔다. 이런 모순된 결의안들이 통과된 이유는 구 마산, 구진해 측과 구 창원 측에서 서로 자기들에게 유리하도록 통합시청사 소재지를 결정하기 위한 힘겨루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19대 총선 때는 시청사 소재지를 두고 후보들 간에 치열한 대립각을 세웠다. 옛 창원 지역에서는 현 청사 리모델링을, 옛 마산 지역에서는 마산으로의 이전을 주장하고, 옛 진해 지역의 야권, 무소속 후보들은 진해 분리독립을 주장했다. 선거 결과를 보면, 진해구에서 막판에 간신히 야권 단일화를 이루었음에도 꽤 큰 차이로 여당 후보에게 패한 것을 볼 때, 다시 나누어지는 파국으로 치달을 생각까지는 없어 보이지만 통합의 후유증이 상당히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창원시의회에서 구 마산시 분리 건의안과 현 임시청사의 시청사 확정안이 동시에 통과됐다. # # 마산 지역에서는 시 명칭, 청사 소재지, 야구장 등 어느 하나도 얻지 못했다는 박탈감과 소외감이 고조되어 분리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으며, 이주영 마산합포구 국회의원이 국회에 마산 분리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지 국회에서는 제대로 논의가 진행되지 않고 다시 논의할 가망도 없어 사실상 무산되었다.#[21].

당연한 말이지만 통합을 한다고 지역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당장 서울이나 부산, 대구, 인천처럼 주변 지역을 흡수하며 성장한 대도시들이 도시 안에서 옛 지역명으로 구분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예컨대 부산의 서면은 본래 동래군 서면, 대구의 칠곡은 본래 칠곡군에 속했던 지역. 그 외 구명은 대체로 과거의 지역명을 따른다. 다만, 고만고만한 동네를 서서히 흡수한 게 아니라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지역을 단번에 통합한지라 이렇게 갈등이 심한 것이다. 비슷한 사례로는 삼여 통합으로 탄생한 여수시, 사천군삼천포시를 통합한 사천시가 있다.

문제는 마산 지역 중장년층이 마산이라는 지명에 대해 가지는 자부심이 타 지역과는 궤를 달리한다는 데 있다. 발단은 원 창원 지역이 1973~1980년 사이에 마산시에 편입되어 있었던 데 있다. 즉 이 시기를 겪어봤던 마산 중장년층의 입장에서는 '새로 생긴 촌동네가 박혀 있던 마산 지명을 밀어냈다'고 인식[22]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지역 통합에서 이리저리 치고받고 볶은 지역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 한 쪽의 명칭이 역사성이나 인지도에서 압도적이었던 데 반해[23] 마산은 창원에 비해 인지도 면에서도, 역사성 면에서도 뒤지지 않고 오히려 앞선 적도 있다 보니 계속해서 마산 지명 사용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마산은 창원에 맞서 자신들이 통합의 주체이자 중심이 되려고 시도하기도 했고 그랬으면 통합마산시가 출범할 수 있었으리라고 믿고 있지만 그러나 같은 마산에서도 청년층은 이미 유소년기부터 지역의 몰락을 봤다. 2019년 기준 만 30세인 1989년생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마산의 구 폐지를 겪었다. 즉 이들이 눈 뜨고 말 익힌 후로 알고 있는 마산의 모습은 1990년대에 이미 15만의 인구가 빠져나가고 한일합섬이 이전해 몰락해 버린 인구 30만 수준의 지방 중소도시일 뿐이다. 이들은 마창진 지역에서 창원시의 종주권을 받아들이며 살아오다보니 중장년층의 마산 바라기에 쉽게 동조하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이런 사례처럼 지역 중장년층들의 마산 타령이 동네 망신만 시킨다면서 비판적인 입장이다[24].

아무튼 2010년 통합한 이후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으나 기존 3개 시 지역을 중심으로 여전히 뚜렷한 지역성을 보유하고 있다. 옛 마산시와 진해시는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도시권이 형성되어 온 곳인지라 동 지역 급의 좁은 범위(예: 북마산, 신마산 등)에도 별칭이 붙어 있을 정도이고, 뒤늦게 도시로 출범한 옛 창원시는 창원공단의 조성으로 대규모 이주해온 외지인들로 구성된 계획도시인 데다가 진해는 특히 군사도시라는 뚜렷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 창원-진해 사이는 장복산으로, 창원-마산 사이는 팔룡산으로 가로막혀 있어 3개 시의 지역성이 모두 제각기 뚜렷하게 나타나게 된 것이다. 특히 일산신도시분당신도시의 사례처럼[25] 지역간 자부심 문제로, 마산회원구와 마산합포구의 주민들은 마창진 통합 이후에도 본인을 주로 "창원 사람"보다는 "마산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창원에 산다."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물론 타 지역 사람이 물을 경우 창원에 산다고 대답을 하는 "마산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26].

반면 각 지역간을 오가는 교류는 굉장히 활발하게 이어져 왔다. 마산, 창원, 진해의 3개 도시가 '마창진'이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여 동일한 생활권으로 인식되어 온 주된 이유. 이들 3개 지역에 시내버스가 통합 운행을 시작한 건 1977년의 일이었고(마창시내버스협의회의 출범과 함께), 창원의 대규모 계획도시가 1970년대부터 조성에 들어갔음에도 마산의 창동, 오동동 상권이 1990년대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도 창원공단에서 근무하던 직장인이 퇴근 후 마산으로 넘어와 주류를 즐기는 문화가 정착되었기 때문이다. 지역번호를 누르면 칼같이 시외전화 요금을 받던 시절[27]에도 마산/창원은 0551로 동일하였고 시내요금으로 통화가 가능했다.[28] 그러나 상남동의 상권 개발 이후로는 오히려 마산 지역 사람들이 공단에서 퇴근하고 근처 상남동에 가서 술을 마신 뒤 마산으로 돌아가는 문화가 정착했다. 역사적으로도 창원과 마산은 1300년대에 의창현[29]와 회원현[30]이 합쳐서 만들어진 창원도호부가 그 시작이 된 도시로 일제 강점기 시절 일제의 필요에 의해 마산이 새로이 탄생하기 이전까지는 같은 도시였다.

현재 창원시의 경제적 규모는 광역시 급이며, 통합시 출범을 토대로 2010년 중후반 광역시 승격을 노렸었다. 사실 창원의 광역시 승격 떡밥은 노태우 정부 시절부터 있었으나[31] 실현되지 못했고 안상수 시장 시절에 적극적으로 창원광역시 승격을 추진했으나 경상남도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기초자치단체 간 통합 시 규모가 큰 쪽이 작은 쪽을 흡수하는 형태로 아는 경우가 많은데 법률상으로는 그렇지 않다. 법률상으로는 기존 지자체를 모두 폐지한 후 그 자리에 새로운 지자체를 설치하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구 창원시도 마찬가지지만 창원 이전의 통합시인 여수시, 제주시, 서귀포시는 물론 이후의 통합시인 청주시 역시 각각 구 여수시, 구 제주시, 구 서귀포시, 구 청주시의 명칭만 잇고 있을 뿐 이들도 여천시여천군, 북제주군, 남제주군, 청원군과 마찬가지로 통폐합되어 사라진 건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들 지자체의 홈페이지에서는 기존 시군의 시장 및 군수, 통합시의 시장을 분리해서 설명하며 통합시장은 초대부터 시작하고 있다. 창원도 현재의 창원시와 통합 전 마산, 창원, 진해시를 분리해서 설명하며 시장도 통합 창원시 시장을 다시 초대부터 시작했다.

창원시의 난리버거지를 현재진행형으로 겪고 있는 상황에서, 2000년대에 한 때 유력하게 제시되었던 도 폐지와 기초자치단체 광역화 논의는 그야말로 쏙 들어가버렸다. 나름대로 지역간 교류가 활발해 통합이 당연하다고 여겨질 정도였던 창원이 이 지경이니, 아예 남남인 지자체를 묶어버리자는 도 폐지론은 지자체고 중앙정부고 민간학계고 간에 손을 댈 엄두조차 못 내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늘어난 인구를 근거로 광역시 승격까지 해달라고 난리를 치니 중앙정부로서는 이렇게 난감한 일도 없는 상황이다.

관습적 지명으로서 '창원'이라고만 하면 통합 이전의 창원시 영역만을 마산·진해와 구분해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도 하고, 통합 창원시 전체를 일컫는 말로 쓰이기도 하니 문맥에 따라 잘 구분해야 한다[32].

5. 인구

경상남도 창원시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66년 410,362명 (마산시 154,600명 + 진해시 80,496명 + 창원군 175,266명)
1970년 440,699명 (마산시 186,890명 + 진해시 89,867명 + 창원군 163,942명)
1973년 7월 1일
창원군 창원면·상남면·웅남면 → 마산시 편입
창원군 웅천면 → 진해시 편입
1975년 571,424명 (마산시 371,917명 + 진해시 103,640명 + 창원군 95,827명)
1976년 9월 1일 마산시 中 현재 성산구·의창구 동 지역 → 경상남도 창원지구출장소 설치
1980년 4월 1일 경상남도 창원지구출장소 + 마산시 의창동 → 경상남도 창원시 승격 분리
경상남도 창원군 → 의창군 개칭
1980년 698,277명 (창원시 111,676명 + 마산시 386,751명 + 진해시 112,024명 + 의창군 87,826명)
1983년 2월 15일 의창군 웅동면 → 진해시 편입
1985년 818,484명 (창원시 173,508명 + 마산시 448,746명 + 진해시 121,341명 + 의창군 74,889명)
1989년 1월 1일 의창군 천가면 → 부산직할시 강서구 편입
1990년 1,009,020명 (창원시 323,223명 + 마산시 493,731명[33] + 진해시 120,212명 + 의창군 72,214명)
1991년 1월 1일 의창군 → 창원군 명칭 환원
1995년 1월 1일 창원군 폐지 → 창원시와 마산시로 분할 편입
1995년 1,048,933명 (창원시 481,694명 + 마산시 441,242명[34] + 진해시 125,997명)
2000년 1,079,359명 (창원시 517,410명 + 마산시 434,371명[35] + 진해시 127,578명)
2005년 1,079,837명 (창원시 501,705명 + 마산시 428,069명 + 진해시 150,063명)
2010년 7월 1일 창원시 + 마산시 + 진해시 → (신) 창원시 통합
2010년 1,090,181명
2012년 5월 1,092,554명 (정점)
2015년 1,070,064명
2020년 1,036,738명
2024년 3월 1,005,519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110만 명
읍면동별 인구 통계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내서읍 60,341명
의창동 49,142명
사파동 45,471명
웅동2동 43,625명
북면 43,114명
월영동 41,424명
반송동 39,621명
명곡동 39,264명
가음정동 37,926명
중앙동 34,520명
양덕2동 32,319명
봉림동 29,804명
용지동 26,749명
상남동 26,681명
성주동 25,536명
팔룡동 25,402명
풍호동 25,043명
자은동 20,415명
교방동 19,058명
동읍 18,732명
오동동 18,467명
석동 17,230명
석전동 16,144명
충무동 15,898명
현동 13,686명
반월중앙동 13,426명
웅천동 13,086명
진동면 11,701명
산호동 11,630명
문화동 10,972명
경화동 10,604명
양덕1동 10,537명
회원1동 9,687명
회원2동 9,681명
덕산동 9,493명
자산동 9,277명
구암2동 8,940명
합성1동 8,804명
완월동 8,573명
구암1동 8,415명
이동 8,386명
여좌동 8,002명
웅동1동 7,733명
웅남동 7,251명
합성2동 7,088명
병암동 7,043명
대산면 6,755명
합포동 6,731명
회성동 5,389명
구산면 3,971명
진전면 3,680명
태백동 3,554명
가포동 3,375명
진북면 3,166명
봉암동 2,957명
2024년 3월 기준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 그래프 최대 값은 5만 명, 각 행정동별 색깔은 각각 의창구, 성산구, 마산합포구, 마산회원구, 진해구 지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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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직후에는 수원시의 인구를 추월하여 잠시 동안 전국 기초자치단체 1위였으나, 다시 감소하여 1위 자리를 내주고 2010년대 수도권 집중화로 인하여 고양시용인시의 인구가 창원을 따돌리면서 현재는 특례시 중 인구 순위 4위이다.[36] 그래도 여전히 비수도권 기초자치단체 중에서는 1위를 유지하고 있다.[37]

2023년 11월 기준 창원시의 인구는 101만마저 붕괴하는 등 인구 감소세가 매우 심각하다. 이 같은 인구 감소 추세로는 특례시의 기준인 인구 100만의 붕괴가 기정 사실이기 때문에 창원시청에서도 이에 대해 사활을 걸고 있다. 하지만 현재 추세로는 2025년 100만 인구가 무너지며 그 후로도 계속 줄어들 예정이라 특례시 기준이 하향되지 않는 이상 특례시 박탈이 불가피하다.

인구 감소의 첫 번째 원인은 주요 산업인 조선, 기계, 자동차 산업의 불황으로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지역 내 일자리 감소가 크다는 점이고, 두 번째로는 여타 지방과 마찬가지로 수도권 집중 문제 때문이다. 일자리가 기형적으로 수도권에 집중되면서 막 학령 인구를 벗어난 다수의 20대들이 새로운 양질의 일자리를 찾기 위해 고향을 떠나 수도권으로 떠나는 추세가 창원에서 특히 극심하다. 2023년 하반기에는 기초지자체 인구감소율 전국 1위를 경신하기도할만큼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세 번째로는 비싼 집값을 피해 상대적으로 공동주택의 공실이 많아 저렴한 집값의 인근 지역 김해장유진영[38], 양산 등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5.1. 의창구, 성산구

파일:창원시 CI.svg 의창구 · 성산구 인구추이
경상남도 창원군 창원면, 동면[39], 북면, 대산면, 상남면, 웅남면
1966년 96,506명
1970년 88,692명
1973년 7월 1일 창원군 상남면, 웅남면, 창원면 → 마산시 편입
창원면을 의창1동, 의창2동으로, 웅남면을 웅남1동, 웅남2동으로, 상남면을 상북동, 성주동, 용지동으로 전환
1975년 87,141명
1976년 9월 1일 舊상남면, 웅남면, 창원면 지역 → 경상남도 창원지구출장소 승격
1980년 4월 1일 경상남도 창원지구출장소 + 마산시 의창동 → 창원시 승격
1980년 149,520명
1985년 207,591명
1990년 357,794명
1995년 1월 1일 창원군 폐지로 동면, 북면, 대산면 → 창원시 동면, 북면, 대산면으로 조정[40]
1995년 481,694명
2000년 517,410명
2005년 501,705명
2010년 7월 1일 창원시+마산시+진해시 통합 → 통합창원시 출범 성산구, 의창구
2010년 502,720명(의창구 251,647명 + 성산구 251,073명)
2015년 490,870명(의창구 256,471명 + 성산구 234,399명)
2020년 476,978명(의창구 262,408명 + 성산구 214,570명)
2021년 7월 1일 의창구 일부 → 성산구 편입
2024년 3월 455,968명(의창구 212,213명 + 성산구 243,755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55만 명
통합 이전 구 창원시는 원래 산으로 둘러싸인 깡촌이었다. 그러다가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1974년, 인구 30만 명이 거주할 수 있는 중화학 기계 공업도시로 계획되었고[41], 1983년부산에 있던 경남도청이 이전해오면서 예상했던 인구 30만 명을 훌쩍 뛰어넘어 2000년에 인구 정점을 찍었을 무렵에는 50만을 돌파하여 전국 10대 도시 안에 들 정도로 매우 큰 도시로 급성장하였다.[42]

그러나 외환 위기를 거치며 2000년대부터 인구 증가와 감소가 반복되는 상황이었다가 2010년대 들어서는 인구 감소세가 심각한 실정이다. 2000년대 초반~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창원시는 부산광역시, 울산광역시보다도 집값이 높게 형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마산시는 아파트 수가 옛 창원시에 비해 적었고, 진해시는 군사도시로서 공동주택 개발이 고도 제한이 걸린 채 개발되다 보니 창원의 인구를 많이 흡수하지 못했고[43] 창원에서 유출된 인구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고층 대단지 아파트가 밀집해 있고, 부산 및 창원과의 접근성이 뛰어난 김해시로 상당 부분 이동하여, 현재 옛 창원시 시가지 인구는 김해시 시가지 인구보다 못 미치는 실정이 되었다.

성산구의 경우 현대로템, LG전자 등 굵직굵직한 대기업이 아직도 버티고 있는데다 상대적으로 새로 조성된 신시가지가 많기 때문에 어느정도 버티고 있지만, 의창구는 정주요건이 성산구에 비해 안 좋고 상대적으로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의 비중이 높아 그 감소세가 더욱 가파르기에 다른 대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의창구, 성산구 읍면동별 인구 #====
파일:창원시 CI.svg동읍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66년 18,104명
1970년 15,887명
1975년 15,954명
1980년 14,849명
1985년 13,553명
1990년 13,925명
1995년 3월 2일 창원시 동면 → 동읍 승격[44]
1995년 16,387명
2000년 22,890명
2005년 23,866명
2010년 23,673명
2015년 23,038명
2020년 20,051명
2024년 3월 18,732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5만 명
파일:창원시 CI.svg북면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66년 16,614명
1970년 14,556명
1975년 12,717명
1980년 10,692명
1985년 9,583명
1990년 9,809명
1995년 9,529명
2000년 11,755명
2005년 11,334명
2010년 11,705명
2015년 28,932명
2020년 43,411명
2024년 3월 43,114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4.5만 명
파일:창원시 CI.svg대산면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66년 18,676명
1970년 15,941명
1975년 14,231명
1980년 12,303명
1985년 10,947명
1990년 10,837명
1995년 9,537명
2000년 8,920명
2005년 8,037명
2010년 7,975명
2015년 7,420명
2020년 7,225명
2024년 3월 6,755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만 명
파일:창원시 CI.svg의창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66년 13,586명
1970년 14,167명
1973년 7월 1일 창원군 창원면 → 마산시 편입 및 폐지
창원면 → 의창1동, 의창2동 분리
1975년 10,830명
1976년 4월 1일 의창1동 → 의창동 개칭
1980년 4월 1일 의창동 → 의안동, 동정동, 소계동 분동
1980년 22,768명(의안동 9,703명 + 동정동 6,985명 + 소계동 6,080명)
1985년 27,353명(의안동 11,704명 + 동정동 8,976명 + 소계동 6,673명)
1990년 37,685명(의안동 17,119명 + 동정동 10,297명 + 소계동 10,269명)
1995년 3월 1일 의안동 → 의안동, 도계동 분동
1995년 49,945명(의안동 19,519명 + 동정동 20,432명 + 소계동 9,994명)
1997년 7월 14일 창원시 대동제 실시
의안동 + 동정동 + 소계동 → 의창동 합동
2000년 39,602명
2005년 39,264명
2010년 37,570명
2015년 38,178명
2020년 50,992명
2024년 3월 49,142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5만 명
파일:창원시 CI.svg팔룡동 인구 추이
(1975년~현재)
1973년 7월 1일 창원군 창원면 → 마산시 편입 및 폐지
창원면 → 의창1동, 의창2동 분리
1975년 11,005명
1976년 4월 1일 의창2동 → 팔용동 개칭
1980년 4월 1일 팔용동 → 팔용동, 두대동 분동
1980년 5,800명
1985년 6,287명
1990년 8,159명
1995년 16,438명
1997년 7월 14일 창원시 대동제 실시
팔용동 + 대원동 → 팔룡동 합동
2000년 45,299명
2005년 44,304명
2010년 46,118명
2015년 38,989명
2020년 37,958명
2021년 7월 1일 팔룡동 일부 → 성산구 중앙동 편입
2024년 3월 25,402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4.75만 명
파일:창원시 CI.svg명곡동 인구 추이
(1975년~현재)
1973년 7월 1일 창원군 상남면 → 마산시 편입 및 폐지
상남면 → 상북동, 용지동, 성주동 분리
1975년 3,505명
1980년 4월 1일 상북동 → 상북동, 봉림동, 반송동 분동
1980년 3,207명
1985년 12,242명
1990년 41,573명
1991년 8월 28일 상북동 → 명서동, 봉곡동 분동
1992년 9월 1일 명서동 → 명서1동, 명서2동 분동
1995년 3월 1일 의안동 → 의안동, 도계동 분동
1995년 60,167명(명서1동 25,544명 + 명서2동 14,191명 + 도계동 20,432명)
1997년 7월 14일 창원시 대동제 실시
명서1동 + 명서2동 + 도계동 → 명곡동 합동
2000년 60,994명
2005년 57,086명
2010년 53,202명
2015년 52,374명
2020년 42,402명
2024년 3월 39,264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6.25만 명
파일:창원시 CI.svg봉림동 인구 추이
(1980년~현재)
1980년 4월 1일 상북동 → 상북동, 봉림동, 반송동 분동
1980년 1,560명
1985년 8월 1일 봉림동 → 사림동 개칭
1985년 3,257명
1990년 11,780명
1991년 8월 28일 상북동 → 명서동, 봉곡동 분동
1995년 33,132명(사림동 10,194명 + 봉곡동 22,938명)
1997년 7월 14일 창원시 대동제 실시
사림동 + 봉곡동 → 봉림동 합동
2000년 38,212명
2005년 38,278명
2010년 34,224명
2015년 37,061명
2020년 30,336명
2024년 3월 29,804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4만 명
파일:창원시 CI.svg반송동 인구 추이
(1980년~현재)
1980년 4월 1일 상북동 → 상북동, 반송동 분동
1980년 12,400명
1985년 20,753명
1990년 47,650명
1991년 8월 28일 반송동 → 반림동, 반지동 분동
1995년 51,731명(반림동 29,235명 + 반지동 22,496명)
1997년 7월 14일 창원시 대동제 실시
반림동 + 반지동 → 반송동 합동
2000년 47,881명
2005년 34,870명
2010년 50,931명
2015년 47,831명
2020년 41,935명
2024년 3월 39,621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5.25만 명
파일:창원시 CI.svg용지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66년 15,442명
1970년 14,017명
1973년 7월 1일 창원군 상남면 → 마산시 편입 및 폐지
상남면 → 상북동, 용지동, 성주동 분리
1975년 10,381명
1980년 4월 1일 용지동용지동, 토월동, 내동, 외동 분동
1980년 8,783명(용지동 3,243명 + 토월동 5,540명)
1985년 8월 1일 용지동 → 용호동 개칭
1985년 18,772명(용호동 7,844명 + 토월동 10,928명)
1990년 5월 1일 토월동 → 신월동, 사파동 분동
1990년 41,714명(용호동 18,964명 + 신월동 22,750명)
1995년 42,318명(용호동 18,862명 + 신월동 23,456명)
1997년 7월 14일 창원시 대동제 실시
용호동 + 신월동 → 용지동 합동
2000년 40,212명
2005년 40,163명
2010년 37,180명
2015년 30,479명
2020년 30,033명
2024년 3월 26,749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4.25만 명
파일:창원시 CI.svg중앙동 인구 추이
(1980년~현재)
1980년 4월 1일
용지동 → 용지동, 토월동, 내동, 외동 분동
팔용동 → 팔용동, 두대동 분동
1980년 23,473명(두대동 6,468명 + 내동 8,715명 + 외동 8,290명)
1985년 8월 1일
두대동 → 대원동 개칭
외동 → 중앙동 개칭
1985년 37,276명(대원동 11,605명 + 내동 7,594명 + 중앙동 18,077명)
1990년 46,912명(대원동 15,584명 + 내동 9,128명 + 중앙동 22,200명)
1995년 43,262명(대원동 14,008명 + 내동 8,590명 + 중앙동 20,664명)
1997년 7월 14일 창원시 대동제 실시
팔용동 + 대원동 → 팔룡동 합동(대원동 인구 일시 제외)
내동 + 중앙동중앙동 합동
2000년 25,806명
2005년 25,482명
2010년 24,689명
2015년 24,638명
2020년 22,953명
2021년 7월 1일 팔룡동 일부 → 중앙동 편입
2024년 3월 34,520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4.75만 명
파일:창원시 CI.svg상남동 인구 추이
(1995년~현재)
1995년 3월 1일 사파동 → 사파동, 상남동 분동
1995년 35,240명
2000년 35,923명
2005년 35,206명
2010년 34,364명
2015년 31,998명
2020년 28,257명
2024년 3월 26,681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3.75만 명
파일:창원시 CI.svg사파동 인구 추이
(1990년~현재)
1990년 5월 1일 토월동 → 신월동, 사파동 분동
1990년 20,255명
1994년 9월 1일 남산동 → 남산동, 대방동 분동
1995년 3월 1일 사파동사파동, 상남동 분동
1995년 59,645명(사파동 35,240명 + 대방동 24,405명)
1997년 7월 14일 창원시 대동제 실시
사파동 + 대방동 → 사파동 합동
2000년 55,990명
2005년 59,774명
2010년 57,804명
2015년 53,826명
2020년 45,636명
2024년 3월 45,471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6만 명
파일:창원시 CI.svg가음정동 인구 추이
(1980년~현재)
1980년 4월 1일
성주동 → 성주동, 가음정동, 남산동 분동
1980년 10,356명(가음정동 4,831명 + 남산동 5,525명)
1985년 22,303명(가음정동 14,768명 + 남산동 7,535명)
1990년 39,672명(가음정동 24,332명 + 남산동 15,340명)
1994년 9월 1일 남산동 → 남산동, 대방동 분동
1995년 55,544명(가음정동 23,438명 + 남산동 32,106명)
1997년 7월 14일 창원시 대동제 실시
가음정동 + 남산동 → 가음정동 합동
2000년 54,967명
2005년 50,546명
2010년 46,378명
2015년 38,133명
2020년 41,241명
2024년 3월 37,926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5.5만 명
파일:창원시 CI.svg성주동 인구 추이
(1975년~현재)
1973년 7월 1일 창원군 상남면 → 마산시 편입 및 폐지
상남면 → 상북동, 용지동, 성주동 분리
1975년 5,883명
1980년 4월 1일 성주동성주동, 남산동, 가음정동 분동
1980년 4,811명
1985년 4,629명
1990년 5,161명
1995년 4,502명
2000년 16,794명
2005년 22,992명
2010년 26,589명
2015년 28,321명
2020년 26,615명
2024년 3월 25,536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75만 명
파일:창원시 CI.svg웅남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66년 14,084명
1970년 14,124명
1973년 7월 1일 창원군 웅남면 → 마산시 편입 및 폐지
웅남면 → 웅남1동, 웅남2동 분리
1975년 12,540명(웅남1동 7,357명 + 웅남2동 5,183명)
1980년 4월 1일
웅남1동 → 웅남동 개칭
웅남2동 → 양곡동, 삼귀동 분동
1980년 18,518명(웅남동 8,103명 + 양곡동 8,650명 + 삼귀동 1,765명)
1985년 8월 1일 양곡동 → 신촌동 개칭
1985년 20,636명(웅남동 6,476명 + 신촌동 12,038명 + 삼귀동 2,122명)
1990년 22,662명(웅남동 1,246명 + 신촌동 19,363명 + 삼귀동 2,053명)
1995년 3월 1일 웅남동 + 신촌동 → 신촌동 합동
1995년 16,285명(신촌동 14,416명 + 삼귀동 1,869명)
1997년 7월 14일 창원시 대동제 실시
신촌동 + 삼귀동 → 웅남동 합동
2000년 12,165명
2005년 10,503명
2010년 10,318명
2015년 9,652명
2020년 7,933명
2024년 3월 7,251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25만 명


5.2. 마산합포구, 마산회원구

파일:창원시 CI.svg 마산합포구 · 마산회원구 인구추이
경상남도 마산시 및 창원군 내서면, 구산면, 진전면, 진북면, 진동면
1966년 209,204명
1970년 239,973명
1973년 7월 1일 창원군 상남면, 웅남면, 창원면, 구산면 일부[45], 내서면 일부[46] → 마산시 편입
창원면을 의창1동, 의창2동으로, 웅남면을 웅남1동, 웅남2동으로, 상남면을 상북동, 성주동, 용지동으로 전환
1975년 357,664명[47]
1980년 425,015명
1976년 9월 1일 마산시 中 현재 성산구·의창구 동 지역 → 경상남도 창원지구출장소 설치
1980년 4월 1일 경상남도 창원지구출장소 + 마산시 의창동 → 경상남도 창원시 승격 분리
1985년 485,052명
1989년 1월 1일 함안군 여항면 산서출장소 → 진전면 편입
1990년 7월 1일 마산시 회원구, 합포구 설치
1990년 531,374명[48]
1995년 1월 1일 창원군 일부[49] → 마산시 합포구 일부[50], 창원군 내서면 → 회원구 내서면[51]
1995년 441,242명(합포구 215,748명 + 회원구 225,494명)
2000년 434,371명(합포구 213,094명 + 회원구 221,277명)
2000년 12월 31일 마산시 회원구, 합포구 폐지
2005년 428,069명
2010년 7월 1일 창원시+마산시+진해시 통합 → 통합창원시 출범 마산회원구, 마산합포구
2010년 411,602명(마산합포구 186,420명 + 마산회원구 225,182명)
2015년 393,461명(마산합포구 181,670명 + 마산회원구 211,791명)
2020년 367,005명(마산합포구 175,716명 + 마산회원구 191,289명)
2024년 3월 359,439명(마산합포구 179,137명 + 마산회원구 180,302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55만 명
마산시의 인구는 무역항구의 발달과 수출자유무역지역의 혜택으로 급증하기 시작했고 한때 경상남도 최대도시로 성장했고[52] 1990년 인구가 근 50만 명을 달성하면서 대도시 특례를 받을 수 있게 되어[53], 구제가 실시되며 합포구, 회원구로 분구되었다. 하지만 옛 창원시 지역이 계획도시로 지정되어 급격한 성장을 이루면서 상대적으로 낙후된 인프라를 보유한 마산은 창원에게 인구와 각종 시설이 빨려들어가[54] 1990년대부터 인구가 빠르게 감소하기 시작하였고, 1990년대 중반에는 옛 창원시에 인구가 밀려버렸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중반에는 김해시[55]에도 밀려버렸다. 통합 이후 다시 부활하기는 했지만 인구 감소로 2001년 1월부로 구제가 폐지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마산자유무역지역의 IMF 이후 외국 기업 사업장 다량 철수, 한일합섬 부도 등 지역 경제를 지탱하던 산업들이 대거 무너지며 발생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마산시는 이때까지만 해도 아파트가 많이 없어서 상대적으로 양질의 새 아파트가 많았던 구 창원시 지역이나 김해시 장유로 하나둘씩 마산에서의 인구 유출이 일어날 시기였다.

2010년대에 들어서부터 북마산 노후 주택단지를 아파트 단지로 재개발하고, 한일합섬 터 및, 한국철강 부지가 초대형 아파트 단지로 개발되며 인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인구 감소는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인 문제로 남아 있다. 창원에서 양덕2동, 가포지구, 보금자리 주택 등으로 활발한 재개발 사업을 벌이고는 있지만, 과거 기대를 많이 받았던 로봇랜드는 2009년부터 시작된 사업임에도 아직까지 잇다른 문제로 완성되지 않은 상태이며# 마산해양신도시 역시 2003년부터 개발계획이 수립됐지만 4번이나 민간사업자를 공모했음에도 실패하여 2019년 완공 이후 2023년 현재까지도 아직 텅빈 공터에 불과한 상태라 전망이 좋지 않다.

====# 마산합포구, 마산회원구 읍면동별 인구 #====
파일:창원시 CI.svg구산면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66년 13,950명
1970년 12,936명
1973년 7월 1일 창원군 구산면 덕동리·예곡리·우산리·현동리 → 마산시 편입 및 현동 신설
1975년 8,899명
1980년 7,846명
1985년 6,901명
1990년 6,768명
1995년 5,531명
2000년 5,312명
2005년 4,921명
2010년 5,427명
2015년 4,865명
2020년 4,318명
2024년 3월 3,971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1.5만 명
파일:창원시 CI.svg진동면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66년 8,954명
1970년 8,029명
1975년 8,921명
1980년 9,178명
1985년 9,233명
1990년 9,678명
1995년 9,230명
2000년 9,433명
2005년 9,320명
2010년 9,978명
2015년 12,688명
2020년 12,349명
2024년 3월 11,701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1.25만 명
파일:창원시 CI.svg진북면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66년 8,089명
1970년 7,084명
1975년 6,524명
1980년 5,649명
1985년 4,977명
1990년 4,937명
1995년 4,977명
2000년 4,760명
2005년 4,851명
2010년 4,343명
2015년 4,080명
2020년 3,544명
2024년 3월 3,166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8천 명
파일:창원시 CI.svg진전면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66년 10,179명
1970년 8,841명
1975년 8,352명
1980년 7,311명
1985년 6,366명
1989년 1월 1일 함안군 여항면 산서출장소 → 의창군 진전면 편입 및 폐지
1990년 6,643명
1995년 5,467명
2000년 5,619명
2005년 4,935명
2010년 4,556명
2015년 4,393명
2020년 4,004명
2024년 3월 3,680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1만 명
파일:창원시 CI.svg현동 인구 추이
(1975년~현재)
1973년 7월 1일 창원군 구산면 덕동리·예곡리·우산리·현동리 → 마산시 편입 및 현동 신설
1975년 4,916명
1980년 4,941명
1985년 4,408명
1990년 4,048명
1995년 3,835명
2000년 3,398명
2005년 2,448명
2010년 2,274명
2015년 6,677명
2020년 14,293명
2024년 3월 13,686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1.5만 명
파일:창원시 CI.svg가포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58년 8월 15일 마산시 행정동제 실시
가포동(법정동) → 가포동(행정동)
1963년 4월 15일 가포동가포동, 가율동 분동
1966년 1,663명(가포동 762명 + 가율동 901명)
1970년 1월 1일
가포동 → 가포1동 개칭
가율동 → 가포2동 개칭
1970년 1,682명(가포1동 714명 + 가포2동 968명)
197?년 ??월 ??일 가포1동 + 가포2동 → 가포동 합동
1975년 3,099명
1980년 2,677명
1985년 2,680명
1990년 3,850명
1995년 3,122명
2000년 2,489명
2005년 2,204명
2010년 1,770명
2015년 1,192명
2020년 941명
2024년 3월 3,375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4천 명
파일:창원시 CI.svg월영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58년 8월 15일 마산시 행정동제 실시
대내동 + 월영동 + 화영동 + 해운동 → 월영동 신설
1963년 4월 15일 월영동월영동, 월포동 분동
1966년 6,832명
1970년 1월 1일 월영동 → 월영2동 개칭
1970년 10,402명
1975년 15,030명
1980년 15,706명
1985년 16,621명
1990년 18,594명
1995년 23,906명
1997년 5월 12일 월영2동 → 월영동 개칭
2000년 39,901명
2005년 38,665명
2010년 34,376명
2015년 30,674명
2020년 35,173명
2024년 3월 41,424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4.25만 명
파일:창원시 CI.svg문화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58년 8월 15일 마산시 행정동제 실시
대외동 + 두월동3가 + 월남동3가~5가 + 유록동 + 창포동1가~3가 + 청계동 + 홍문동 → 창포동 신설
대창동 + 두월동1가 + 두월동2가 + 문화동 + 신창동 + 월남동1가 + 월남동2가 + 평화동 → 월남동 신설
1963년 4월 15일 월영동 → 월영동, 월포동 분동
1966년 15,278명(월포동 4,099명 + 창포동 6,015명 + 월남동 5,164명)
1970년 1월 1일 월포동 → 월영1동 개칭
1970년 16,173명(월영1동 3,576명 + 창포동 4,904명 + 월남동 7,693명)
1975년 20,603명(월영1동 6,286명 + 창포동 6,478명 + 월남동 7,839명)
1980년 19,494명(월영1동 5,459명 + 창포동 5,541명 + 월남동 8,494명)
1985년 20,207명(월영1동 5,437명 + 창포동 6,056명 + 월남동 8,714명)
1990년 20,112명(월영1동 4,659명 + 창포동 6,616명 + 월남동 8,837명)
1995년 18,635명(월영1동 3,906명 + 창포동 8,032명 + 월남동 6,697명)
1997년 5월 12일 월영1동 + 창포동 + 월남동 → 문화동 합동
2000년 17,071명
2005년 15,406명
2010년 13,673명
2015년 12,873명
2020년 11,277명
2024년 3월 10,972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25만 명
파일:창원시 CI.svg반월중앙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58년 8월 15일 마산시 행정동제 실시
대성동1가 + 반월동 + 신월동 + 월포동 + 장군동1가 + 중앙동1가 → 반월동 신설
대성동2가 + 신흥동 + 장군동2가 + 장군동3가 + 중앙동2가 + 중앙동3가 → 중앙동 신설
1963년 4월 15일 중앙동 → 장군동 개칭
1966년 18,597명(반월동 9,407명 + 장군동 9,190명)
1970년 1월 1일 장군동 → 중앙동 개칭
1970년 19,174명(반월동 9,937명 + 중앙동 9,237명)
1975년 26,042명(반월동 12,247명 + 중앙동 13,795명)
1980년 24,138명(반월동 13,564명 + 중앙동 10,574명)
1985년 27,040명(반월동 14,400명 + 중앙동 12,640명)
1990년 27,388명(반월동 14,250명 + 중앙동 13,138명)
1995년 22,049명(반월동 11,567명 + 중앙동 10,482명)
2000년 20,442명(반월동 10,237명 + 중앙동 10,205명)
2005년 13,885명(반월동 6,061명 + 중앙동 7,824명)
2010년 18,550명(반월동 9,552명 + 중앙동 8,998명)
2015년 17,587명(반월동 8,922명 + 중앙동 8,665명)
2017년 1월 1일 반월동 + 중앙동 → 반월중앙동 합동
2020년 14,882명
2024년 3월 13,426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75만 명
파일:창원시 CI.svg완월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58년 8월 15일 마산시 행정동제 실시
완월동 + 장군동4가 + 장군동5가 → 완월동 신설
1966년 9,357명
1970년 11,895명
1975년 16,873명
1980년 16,786명
1985년 17,531명
1990년 18,202명
1995년 16,330명
2000년 13,558명
2005년 13,402명
2010년 12,280명
2015년 11,180명
2020년 9,274명
2024년 3월 8,573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만 명
파일:창원시 CI.svg자산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58년 8월 15일 마산시 행정동제 실시
자산동(법정동) → 자산동(행정동)
1966년 9,585명
1970년 11,335명
1975년 15,418명
1980년 15,803명
1985년 15,450명
1990년 18,507명
1995년 18,576명
2000년 17,091명
2005년 16,352명
2010년 14,563명
2015년 13,103명
2020년 10,874명
2024년 3월 9,277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만 명
파일:창원시 CI.svg교방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58년 8월 15일 마산시 행정동제 실시
교방동, 교원동, 상남동(법정동) → 교방동, 교원동, 상남동(행정동)
1963년 4월 15일 상남동 → 상남동, 상원동 분동
1966년 17,701명(상남동 6,133명 + 교원동 7,454명 + 교방동 4,114명)
1970년 1월 1일 상남동 → 상남1동 개칭
1970년 20,353명(상남1동 7,772명 + 교원동 6,283명 + 교방동 6,298명)
1975년 28,957명(상남1동 10,873명 + 교원동 8,383명 + 교방동 9,701명)
1980년 31,270명(상남1동 11,385명 + 교원동 8,378명 + 교방동 11,507명)
1985년 34,741명(상남1동 10,285명 + 교원동 7,633명 + 교방동 16,823명)
1990년 36,419명(상남1동 8,553명 + 교원동 8,145명 + 교방동 19,721명)
1995년 28,688명(상남1동 7,446명 + 교원동 5,394명 + 교방동 15,848명)
1997년 5월 12일 상남1동 + 교원동 → 노산동 합동
2000년 24,310명(노산동 10,307명 + 교방동 14,003명)
2005년 19,199명(노산동 8,352명 + 교방동 10,847명)
2010년 19,261명(노산동 7,134명 + 교방동 12,127명)
2015년 18,441명(노산동 7,446명 + 교방동 10,995명)
2020년 1월 1일 노산동 + 교방동교방동 합동
2020년 15,508명
2024년 3월 19,058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3.75만 명
파일:창원시 CI.svg오동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58년 8월 15일 마산시 행정동제 실시
서성동 + 수성동 + 신포동1가 + 신포동2가 → 서성동 신설
남성동 + 동성동 → 동성동 합동
부림동 + 창동 → 부림동 신설
추산동, 중성동, 성호동, 오동동(법정동) → 추산동, 중성동, 성호동, 오동동(행정동)
1966년 37,615명[56]
1970년 39,046명[57]
1975년 50,612명[58]
1980년 42,843명[59]
1985년 39,179명[60]
1990년 40,884명[61]
1995년 23,159명[62]
1997년 5월 12일
서성동 + 동성동 + 부림동 → 동서동 합동
추산동 + 성호동 → 성호동 합동
중성동 + 오동동오동동 합동
2000년 18,660명(동서동 6,473명 + 성호동 6,363명 + 오동동 5,824명)
2005년 20,868명(동서동 9,656명 + 성호동 5,787명 + 오동동 5,425명)
2010년 21,330명(동서동 11,102명 + 성호동 5,028명 + 오동동 5,200명)
2015년 22,358명(동서동 11,390명 + 성호동 4,386명 + 오동동 6,582명)
2017년 1월 1일 동서동 + 성호동 + 오동동오동동 합동
2020년 19,688명
2024년 3월 18,467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5만 명
파일:창원시 CI.svg합포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63년 4월 15일
상남동 → 상남동, 상원동 분동
산호동 → 산호동, 합포동 분동
1966년 8,958명(상원동 6,150명 + 합포동 2,808명)
1970년 1월 1일
상원동 → 상남2동 개칭
합포동 → 산호2동 개칭
1970년 15,598명(상남2동 6,031명 + 산호2동 9,567명)
1975년 20,726명(상남2동 7,443명 + 산호2동 13,283명)
1980년 18,482명(상남2동 6,502명 + 산호2동 11,980명)
1985년 18,726명(상남2동 6,150명 + 산호2동 12,576명)
1990년 18,622명(상남2동 6,436명 + 산호2동 12,186명)
1995년 11,471명(상남2동 3,549명 + 산호2동 7,922명)
1997년 5월 12일 상남2동 + 산호2동 → 합포동 합동
2000년 11,116명
2005년 9,180명
2010년 8,465명
2015년 7,585명
2020년 6,921명
2024년 3월 6,731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만 명
파일:창원시 CI.svg산호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58년 8월 15일 마산시 행정동제 실시
산호동(법정동) → 산호동(행정동)
1963년 4월 15일 산호동산호동, 합포동 분동
1966년 7,760명
1970년 1월 1일 산호동 → 산호1동 개칭
1970년 5,493명
1975년 16,686명
1980년 24,835명
1985년 29,830명
1990년 30,922명
1995년 20,772명
1997년 5월 12일 산호1동 → 산호동 개칭
2000년 19,934명
2005년 17,584명
2010년 15,574명
2015년 13,974명
2020년 12,670명
2024년 3월 11,630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3.25만 명
파일:창원시 CI.svg내서읍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66년 13,432명
1970년 16,193명
1973년 7월 1일
창원군 내서면 두척리·회성리 → 마산시 편입 및 회성동 신설
창원군 내서면 구암리·합성리 → 마산시 편입 및 합성동 신설
1975년 7,195명
1980년 8,280명
1985년 8,829명
1990년 9,617명
1995년 3월 2일 마산시 회원구 내서면 → 내서읍 승격
1995년 30,054명
2000년 50,731명
2005년 74,236명
2010년 73,767명
2015년 71,820명
2020년 64,835명
2024년 3월 60,341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7.5만 명
파일:창원시 CI.svg회원1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58년 8월 15일 마산시 행정동제 실시
회원동(법정동) → 회원동(행정동)
1963년 4월 15일 회원동 → 회원동, 회산동 분동
1966년 5,083명
1970년 1월 1일 회산동 → 회원1동 개칭
1970년 6,202명
1975년 13,456명
1980년 23,528명
1985년 22,755명
1990년 25,185명
1995년 18,912명
2000년 15,272명
2005년 13,785명
2010년 13,408명
2015년 12,115명
2020년 10,504명
2024년 3월 9,687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5만 명
파일:창원시 CI.svg회원2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63년 4월 15일 회원동 → 회원동, 회산동 분동
1966년 8,592명
1970년 1월 1일 회원동 → 회원2동 개칭
1970년 12,016명
1975년 15,767명
1980년 16,870명
1985년 23,918명
1990년 32,112명
1995년 24,235명
2000년 19,370명
2005년 16,979명
2010년 15,180명
2015년 13,471명
2020년 9,994명
2024년 3월 9,681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3.25만 명
파일:창원시 CI.svg석전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58년 8월 15일 석전동(법정동) → 석전동(행정동)
1966년 2,431명
1970년 5,120명
1975년 11,626명
1980년 23,517명
1983년 10월 1일 석전동 → 석전1동, 석전2동 분동
1985년 31,977명(석전1동 15,784명 + 석전2동 16,193명)
1990년 36,284명(석전1동 17,974명 + 석전2동 18,310명)
1995년 28,335명(석전1동 14,170명 + 석전2동 14,165명)
2000년 23,170명(석전1동 11,288명 + 석전2동 11,882명)
2005년 21,198명(석전1동 10,184명 + 석전2동 11,014명)
2010년 18,955명(석전1동 8,862명 + 석전2동 10,093명)
2015년 17,344명(석전1동 7,524명 + 석전2동 9,820명)
2017년 1월 1일 석전1동 + 석전2동 → 석전동 합동
2020년 17,142명
2024년 3월 16,144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3.75만 명
파일:창원시 CI.svg회성동 인구 추이
(1975년~현재)
1973년 7월 1일 창원군 내서면 두척리·회성리 → 마산시 편입 및 회성동 신설
1975년 8,510명
1980년 11,469명
1985년 15,686명
1990년 18,873명
1995년 14,688명
2000년 11,615명
2005년 9,943명
2010년 8,729명
2015년 7,698명
2020년 6,298명
2024년 3월 5,389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만 명
파일:창원시 CI.svg양덕1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58년 8월 15일 마산시 행정동제 실시
양덕동(법정동) → 양덕동(행정동)
1963년 4월 15일 양덕동 → 양덕동, 율림동 분동
1966년 1,584명
1970년 1월 1일 양덕동 → 양덕1동 개칭
1970년 6,330명
1975년 22,717명
1979년 5월 1일 양덕1동양덕1동, 양덕3동 분동
1980년 15,195명
1985년 19,542명
1990년 21,095명
1995년 17,618명
2000년 16,201명
2005년 15,143명
2010년 13,991명
2015년 12,953명
2020년 11,289명
2024년 3월 10,537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25만 명
파일:창원시 CI.svg양덕2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63년 4월 15일 양덕동 → 양덕동, 율림동 분동
1966년 1,598명
1970년 1월 1일 율림동 → 양덕2동 개칭
1970년 3,254명
1975년 6,064명
1979년 5월 1일 양덕1동 → 양덕1동, 양덕3동 분동
1980년 24,355명(양덕2동 6,483명 + 양덕3동 17,872명)
1985년 24,196명(양덕2동 6,520명 + 양덕3동 17,676명)
1990년 24,533명(양덕2동 7,039명 + 양덕3동 17,494명)
1995년 16,435명(양덕2동 7,728명 + 양덕3동 8,707명)
1997년 5월 12일 양덕2동 + 양덕3동 일부 → 양덕2동 합동
2000년 20,013명
2005년 24,898명
2010년 29,751명
2015년 31,491명
2020년 31,851명
2024년 3월 32,319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3.25만 명
파일:창원시 CI.svg합성1동 인구 추이
(1975년~현재)
1973년 7월 1일 창원군 내서면 구암리·합성리 → 마산시 편입 및 합성동 신설
1975년 11,627명
1979년 5월 1일 합성동 → 합성1동, 합성2동 분동
1980년 31,432명
1981년 2월 15일 합성1동 → 합성동 개칭
1982년 9월 1일 합성동 → (신) 합성1동, 합성2동 분동
1985년 20,270명
1990년 24,482명
1995년 18,329명
2000년 15,246명
2005년 12,625명
2010년 10,981명
2015년 7,895명
2020년 9,479명
2024년 3월 8,804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3.25만 명
파일:창원시 CI.svg합성2동 인구 추이
(1985년~현재)
1982년 9월 1일 합성동 → (신) 합성1동, 합성2동 분동
1985년 19,413명
1990년 22,421명
1995년 16,049명
2000년 12,654명
2005년 12,570명
2010년 10,973명
2015년 10,181명
2020년 7,772명
2024년 3월 7,088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25만 명
파일:창원시 CI.svg구암1동 인구 추이
(1980년~현재)
1979년 5월 1일 합성동 → 합성1동, 합성2동 분동
1980년 14,768명
1981년 2월 15일 합성2동 → 구암동 개칭
1985년 10월 21일 구암동→ 구암1동, 구암2동 분동
1985년 17,129명
1990년 22,358명
1995년 19,678명
2000년 17,002명
2005년 14,740명
2010년 12,612명
2015년 11,244명
2020년 9,082명
2024년 3월 8,415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25만 명
파일:창원시 CI.svg구암2동 인구 추이
(1985년~현재)
1985년 10월 21일 구암동→ 구암1동, 구암2동 분동
1985년 14,312명
1990년 17,406명
1995년 12,738명
2000년 13,816명
2005년 12,526명
2010년 12,029명
2015년 11,295명
2020년 9,674명
2024년 3월 8,940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1.75만 명
파일:창원시 CI.svg봉암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58년 8월 15일 마산시 행정동제 실시
봉암동(법정동) → 봉암동(행정동)
1963년 4월 15일 봉암동봉암동, 봉덕동 분동
1966년 1,872명(봉암동 929명 + 봉덕동 943명)
1970년 1월 1일
봉암동 → 봉암1동 개칭
봉덕동 → 봉암2동 개칭
1970년 2,817명(봉암1동 1,075명 + 봉암2동 1,742명)
197?년 ??월 ??일 봉암1동 + 봉암2동 → 봉암동 합동
1975년 5,195명
1980년 8,642명
1985년 13,135명
1990년 11,434명
1995년 8,413명
1997년 5월 12일 양덕3동 일부 + 봉암동봉암동 합동
2000년 6,187명
2005년 6,206명
2010년 4,812명
2015년 4,284명
2020년 3,369명
2024년 3월 2,957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1.25만 명


5.3. 진해구

파일:창원시 CI.svg 진해구 인구추이
경상남도 진해시 및 창원군 웅천면, 웅동면
1966년 98,266명
1970년 106,358명
1973년 7월 1일 창원군 웅천면 → 진해시 편입 및 웅천1동, 웅천2동 분동
1975년 111,097명
1980년 119,150명
1983년 2월 15일 창원군 웅동면 → 진해시 편입 및 웅동1동, 웅동2동 분동
1985년 121,341명
1990년 120,212명
1995년 125,997명
2000년 127,578명
2005년 150,063명
2010년 7월 1일 창원시+마산시+진해시 통합 → 통합창원시 출범 진해구
2010년 175,859명
2015년 185,733명
2020년 192,755명
2024년 3월 190,112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0만 명
2022년까지는 창원에서 유일하게 인구수가 안정적으로 늘어나는 지역이었다. 해군 사령부가 있어서 군사시설이 많은 특성상 고도 제한이 있었기에 통합 직후에는 5개 구 중 가장 적었지만, 2015년에 마산합포구, 2020년에는 마산회원구의 인구수를 추월했다. 특히 여좌지구에의 첨단산업단지 조성 계획과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의 영향으로 창원시에서 인구수가 유일하게 늘어나는 지역이었다. 2022년을 기점으로 진해구도 인구 감소세로 들어서기 시작했지만 경제자유구역의 개발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아파트 개발이 예정되어 있어 반등 가능성은 아직 존재한다.

====# 진해구 행정동별 인구 #====
파일:창원시 CI.svg충무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55년 9월 1일 창원군 진해읍 → 진해시 승격
충무로1가동~충무로6가동 신설
1966년 26,214명[63]
1970년 27,708명[64]
1975년 28,846명[65]
1980년 28,717명[66]
1985년 28,299명[67]
1990년 25,717명[68]
1995년 23,975명[69]
1996년 7월 1일
충무로1가동 + 충무로4가동 → 중앙동 합동
충무로2가동 + 충무로3가동 → 태평동 합동
충무로5가동 + 충무로6가동 → 충무동 합동
2000년 20,698명(중앙동 7,206명 + 태평동 7,504명 + 충무동 5,988명)
2005년 18,353명(중앙동 5,977명 + 태평동 7,396명 + 충무동 4,980명)
2010년 17,368명(중앙동 4,855명 + 태평동 7,408명 + 충무동 5,105명)
2015년 20,492명(중앙동 9,331명 + 태평동 6,731명 + 충무동 4,430명)
2020년 1월 1일 중앙동 + 태평동 + 충무동충무동 합동
2020년 17,355명
2024년 3월 15,898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3만 명
파일:창원시 CI.svg여좌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55년 9월 1일 창원군 진해읍 → 진해시 승격
여좌1가동, 여좌2가동 신설
1966년 15,930명(여좌1가동 8,379명 + 여좌2가동 7,551명)
1970년 19,564명(여좌1가동 10,643명 + 여좌2가동 8,921명)
1975년 21,564명(여좌1가동 12,155명 + 여좌2가동 9,409명)
1980년 22,685명(여좌1가동 12,540명 + 여좌2가동 10,145명)
1985년 22,780명(여좌1가동 12,489명 + 여좌2가동 10,291명)
1990년 21,372명(여좌1가동 11,506명 + 여좌2가동 9,866명)
1995년 16,696명(여좌1가동 10,521명 + 여좌2가동 6,175명)
1996년 7월 1일 여좌1가동 + 여좌2가동 → 여좌동 합동
2000년 15,858명
2005년 13,966명
2010년 13,151명
2015년 11,050명
2020년 8,754명
2024년 3월 8,002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5만 명
파일:창원시 CI.svg태백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55년 9월 1일 창원군 진해읍 → 진해시 승격
여좌3가동, 태백동 신설
1966년 10,116명(여좌3가동 4,750명 + 태백동 5,366명)
1970년 11,404명(여좌3가동 5,735명 + 태백동 5,669명)
1975년 12,077명(여좌3가동 5,637명 + 태백동 6,440명)
1980년 14,205명(여좌3가동 5,455명 + 태백동 8,750명)
1985년 14,483명(여좌3가동 5,046명 + 태백동 9,437명)
1990년 13,779명(여좌3가동 4,603명 +태백동 9,176명)
1995년 11,184명(여좌3가동 3,693명 + 태백동 7,491명)
1996년 7월 1일 여좌3가동 + 태백동 → 태백동 합동
2000년 9,272명
2005년 8,222명
2010년 7,494명
2015년 6,552명
2020년 5,040명
2024년 3월 3,554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1.5만 명
파일:창원시 CI.svg경화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55년 9월 1일 창원군 진해읍 → 진해시 승격
경화1가동, 경화2가동 신설
1966년 7,863명(경화1가동 4,527명 + 경화2가동 3,336명)
1970년 8,583명(경화1가동 4,865명 + 경화2가동 3,718명)
1975년 9,097명(경화1가동 5,164명 + 경화2가동 3,933명)
1980년 11,420명(경화1가동 6,105명 + 경화2가동 5,315명)
1985년 11,878명(경화1가동 6,441명 + 경화2가동 5,437명)
1990년 12,015명(경화1가동 6,431명 + 경화2가동 5,584명)
1995년 10,967명(경화1가동 5,353명 + 경화2가동 5,614명)
1996년 7월 1일 경화1가동 + 경화2가동 → 경화동 합동
2000년 9,951명
2005년 9,411명
2010년 11,798명
2015년 10,733명
2020년 11,402명
2024년 3월 10,604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1.25만 명
파일:창원시 CI.svg병암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55년 9월 1일 창원군 진해읍 → 진해시 승격
경화3가동 신설
1966년 5,080명
1970년 5,644명
1975년 5,809명
1980년 6,403명
1985년 6,998명
1990년 8,762명
1995년 8,931명
1996년 7월 1일 경화3가동 → 병암동 개칭
2000년 8,914명
2005년 8,393명
2010년 8,744명
2015년 8,635명
2020년 7,545명
2024년 3월 7,043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9천 명
파일:창원시 CI.svg석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55년 9월 1일 창원군 진해읍 → 진해시 승격
석동 신설
1966년 987명
1970년 1,024명
1975년 1,121명
1980년 1,291명
1985년 1,634명
1990년 1,897명
1995년 2,257명
2000년 3,387명
2005년 8,738명
2010년 18,838명
2015년 19,174명
2020년 17,463명
2024년 3월 17,230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만 명
파일:창원시 CI.svg이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55년 9월 1일 창원군 진해읍 → 진해시 승격
이동 신설
1966년 4,526명
1970년 5,204명
1975년 5,642명
1980년 6,814명
1985년 6,937명
1990년 6,968명
1995년 12,281명
2000년 12,584명
2005년 11,849명
2010년 11,378명
2015년 10,820명
2020년 8,576명
2024년 3월 8,386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1.25만 명
파일:창원시 CI.svg자은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55년 9월 1일 창원군 진해읍 → 진해시 승격
자은동 신설
1966년 3,367명
1970년 3,799명
1975년 4,011명
1980년 5,496명
1985년 5,924명
1990년 6,307명
1995년 10,265명
1998년 9월 14일 자은동 일부 → 덕산동 편입
2000년 12,088명
2005년 12,291명
2010년 12,514명
2015년 15,539명
2020년 21,460명
2024년 3월 20,415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25만 명
파일:창원시 CI.svg덕산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55년 9월 1일 창원군 진해읍 → 진해시 승격
덕산동 신설
1966년 2,336명
1970년 2,616명
1975년 2,759명
1980년 2,816명
1985년 2,810명
1990년 3,980명
1995년 3,960명
1998년 9월 14일 자은동 일부, 풍호동 일부 → 덕산동 편입
2000년 6,977명
2005년 8,233명
2010년 11,602명
2015년 12,080명
2020년 10,224명
2024년 3월 9,493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1.25만 명
파일:창원시 CI.svg풍호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55년 9월 1일 창원군 진해읍 → 진해시 승격
풍호동, 장천동, 행암동 신설
1966년 4,030명(풍호동 1,222명 + 장천동 2,030명 + 행암동 778명)
1970년 4,321명(풍호동 1,746명 + 장천동 1,927명 + 행암동 648명)
1975년 4,497명(풍호동 1,881명 + 장천동 2,005명 + 행암동 611명)
1980년 4,523명(풍호동 1,871명 + 장천동 1,975명 + 행암동 677명)
1982년 9월 1일 웅천2동 일부 → 행암동 편입
1985년 4,474명(풍호동 1,739명 + 장천동 1,837명 + 행암동 898명)
1990년 4,192명(풍호동 1,696명 + 장천동 1,655명 + 행암동 841명)
1995년 11,158명(풍호동 9,876명 + 장천동 1,203명 + 행암동 791명)
1996년 7월 1일 장천동 + 행암동 → 장암동 합동
1998년 9월 14일 풍호동 일부 + 장암동 → 풍호동 합동
2000년 11,812명
2005년 13,964명
2010년 18,345명
2015년 23,222명
2020년 26,083명
2024년 3월 25,043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75만 명
파일:창원시 CI.svg웅천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66년 9,161명
1970년 8,403명
1973년 7월 1일 창원군 웅천면 → 진해시 편입 및 폐지
웅천면 북부리·서중리·성내리·남문리·제덕리·수도리·연도리 → 웅천1동 신설
웅천면 명동리·죽곡리·원포리 → 웅천2동 신설
1975년 8,258명(웅천1동 5,104명 + 웅천2동 3,154명)
1980년 7,834명(웅천1동 4,749명 + 웅천2동 3,085명)
1982년 9월 1일 웅천2동 일부 → 행암동 편입
1985년 7,416명(웅천1동 4,850명 + 웅천2동 2,566명)
1990년 7,084명(웅천1동 4,647명 + 웅천2동 2,437명)
1995년 5,914명(웅천1동 4,190명 + 웅천2동 1,724명)
1996년 7월 1일 웅천1동 + 웅천2동 → 웅천동 합동
2000년 5,349명
2005년 5,385명
2010년 5,039명
2015년 4,196명
2020년 12,733명
2024년 3월 13,086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1.5만 명
파일:창원시 CI.svg웅동1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66년 8,609명
1970년 8,088명
1975년 7,457명
1980년 7,126명
1983년 2월 15일 의창군 웅동면 → 진해시 편입 및 폐지
웅동면 남양리·마천리·소사리·대장리·두동리 → 웅동1동 신설
웅동면 청안리·안골리·용원리·가주리 → 웅동2동 신설
1985년 3,539명
1990년 3,747명
1995년 3,813명
2000년 3,941명
2005년 6,610명
2010년 8,661명
2015년 8,492명
2020년 6,465명
2024년 3월 7,733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9천 명
파일:창원시 CI.svg웅동2동 인구 추이
(1985년~현재)
1983년 2월 15일 의창군 웅동면 → 진해시 편입 및 폐지
웅동면 남양리·마천리·소사리·대장리·두동리 → 웅동1동 신설
웅동면 청안리·안골리·용원리·가주리 → 웅동2동 신설
1985년 4,169명
1990년 4,392명
1995년 3,884명
2000년 6,747명
2005년 24,648명
2010년 30,927명
2015년 34,748명
2020년 39,655명
2024년 3월 43,625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4.5만 명



6. 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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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의 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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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중심 도시인 만큼 교통이 전반적으로 잘 발달되어 있지만 도로 교통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 창원시 시내버스는 시내를 오가는 핵심적인 대중교통 수단으로 자리매김 중이며, 광역철도는 부전-마산 광역철도가 개통되면 들어오고, 그 이전에는 창원 도시철도가 계획되었다가 무산되었으나 2021년 들어 재추진되고 있다. 전국에서 최초로 고급간선급행버스체계(S-BRT)를 2023년 말 준공을 목표로 착공에 들어갔는데 추후 트램 전환을 염두에 두고 건설된다.

고속철도는 KTX마산역, 창원역, 창원중앙역 3개 역에 정차[70]할 정도로 정차 역사는 많지만, 문제는 경전선 KTX라 철도 이용 수요에 비해 운행 횟수가 현저히 적다. 수서평택고속철도(SRT)는 6년 간의 기나긴 요구 끝에 국토교통부에서 2023년 9월 왕복 2회(일 4회) 개통할 예정이라고 했지만 이것만으로는 창원의 철도 수요를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기에 국토교통부에서는 현재 경부고속선이 포화상태라 2027년 평택-오송 간 고속선로 복복선화 사업이 완료되면 증편하는 것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발표하였다.

7.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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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경제 성장사에서 울산광역시와 더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이며, 현재도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 힘입어 기계 공업, 수출 산업이 견고하게 형성되어 있다. 특히 외환 위기 당시 외화가 부족했던 국내에 많은 달러를 벌어다 준 마산자유무역지역과 창원국가산업단지, 마산항은 한때 한국 수출 산업의 메카였으며, 거제 조선소들에게 전달되는 선박 관련 엔진, 기계 설비 상당 부분이 창원시에서 생산된다.

현대자동차그룹(현대위아, 현대로템, 현대모비스, 현대비앤지스틸), LG그룹(LG전자), 한화그룹(한화에어로스페이스), 두산그룹(두산중공업, 두산인프라코어[71]), 효성그룹(효성중공업) 등 많은 재벌기업들이 창원에 공장을 갖고 있다.[72] 심지어는 정부, 정확히는 대한민국 육군에서도 초대형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2024년 3월 창원국가산업단지 일대의 직장인들의 직무와 연차별 연봉에 대해 진학사 계열의 캐치TV가 거리 인터뷰를 가졌다. 생각보다 높은 연봉의 직장인이 많은편이나, 창원과는 연이없는 예체능계열 직업을 가진 직장인들의 애환도 동시에 보여주며 창원시의 일장일단이 여실히 보여주는 영상.

8. 관광

8.1. 관광지

<colbgcolor=#f35e19><colcolor=#fff> 용지호수공원 창원시 도심 한가운데에 있는 호수로 창원시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이용되며 각종 예술제, 연등제, 음악회 등도 이곳에서 열린다. 호수의 음악분수가 예쁘다. 또 호수 내에서 8인승 보트도 탈 수 있으며, 여러 조형물 등이 있어 야경이 예쁜 곳으로도 꼽힌다.
창원 옥계마을 창원 옥계마을에서는 해군부대와 풍호동과 창원해양공원이 보인다. 가끔 밤에 멸종위기종 수달을 볼 수 있다. 위치는 마산합포구 구산면 옥계리.
창원의 집 200년 전, 순흥 안씨 5대조인 안두철 선생이 거주하던 조선시대 전통 한옥이다.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 창원의 대표 카페 거리. 경남도청 인근에 위치해 있다.
죽동마을 메타세콰이어 길 동읍 죽동마을에 위치한 메타세콰이어 길. 도심 외에 있어 풍경 사진을 찍으러 오는 사람이 잦다.
창원실내체육관 창원 LG 세이커스의 홈구장으로 농구 도시 창원시의 농구 열기를 느낄 수 있다.
창원축구센터 경남 FC창원시청 축구단의 홈구장이다. 비록 창원시청은 세미프로인 내셔널리그-K3리그에 있어 관심도가 떨어지고 프로 팀인 경남은 K리그2에 있지만, 경남이 2018년 K리그1 준우승과 2019년 AFC 챔피언스 리그 진출을 이루며 큰 명예를 얻어내면서 이전보다 많이 알려졌다. 축구 전용 구장이다 보니 가장 좋은 시야로 경기를 관람할 수 있다.
저도 콰이강의 다리 저도연륙교. 주변에 카페들이 많으며 야경이 예뻐 사진찍기 좋은 장소이다.
안민고개 성산구와 진해구를 잇는 장복산 자락의 고갯길로 진해 시가지 야경이 뛰어나다. 봄철에는 벚꽃 명소 중 하나이다.
마산 상상길 불종거리에서 부림시장을 잇는 약 150m의 아름다운 거리이다.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인기 있으며 많은 맛집들이 이곳에 위치한다.
마산 어시장 230년의 전통을 가진 경남 최대의 어시장이다.
마산로봇랜드 총 7천억의 사업비를 투자해 만들어진 로봇을 테마로 한 놀이공원이다.
창원 돝섬 전국 최초의 해상 유원지. 동물원과 유희시설을 갖춘 명소였지만 현재는 위락 시설은 모두 제거되고 소규모의 휴양 공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창원 NC 파크 NC 다이노스의 홈구장으로 2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와 메이저리그 구장급 시설로 야구 시즌이면 많은 시민들이 찾는다. 야구장 건물에는 상점, 음식점, 야구 박물관, 카페 등이 위치해 있다. 구장 자체도 예쁘고, 주변 공원, 야구공 조형물, 메트로시티 등과 어우러져 사진 찍기에도 좋다. 야구 경기가 있는 날에는 주변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이 꽉 차고 교통난이 심각하다.
창동예술촌 창동은 과거에 경남의 명동으로 불리던 중심가다. 2000년을 전후로 쇠락의 길을 걷다가 창동예술촌을 주축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창원시는 창동 일대 빈 점포를 예술가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했고, 이를 중심으로 세계적인 조각가 문신 선생의 이름을 딴 문신예술골목, 마산 예술의 역사를 담은 마산예술흔적골목, 상점과 예술을 접목한 에꼴드창동골목이 차례로 생겨났다.
창원해양공원 舊 진해해양공원. 높이 136m의 창원 솔라타워 외에 어류생태학습관, 해전사체험관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최근에 99m 짚트랙이 조성되었다.
해양드라마 세트장 콰이강의 다리 근처에 있는 곳으로, 큰 규모는 아니지만 바닷가에 있어 아름다운 곳이다.
진해루 해변공원 내에 있어 진해만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귀산 카페거리 마창대교와 바닷가를 바라보는 푸드트럭, 카페, 식당들이 즐비해 있다. 특히 인스타 핫플, 데이트 명소로 유명하다.
무학산, 장복산, 용추계곡&폭포, 성주사, 진동리유적, 진해우체국, 시티세븐, 문신미술관, 오동동거리, 경화시장, 주남저수지, 창원시 국제사격장

8.2. 주요 행사

  • 진해 군항제: 창원시에서 가장 크고 성대한 행사. 일년에 딱 한 번 이때만큼은 진해구 전체가 사람으로 미어터진다. 한때 통합 후 제1회 창원 군항제로 변경하여 진행했다가 비난이 커지자 원래대로 바꾸었다.
  • 마산가고파국화축제: 국화가 유명한 마산지역의 명성을 이용하여 대규모 꽃축제를 매년 가을에 연다. 원래는 마산앞바다의 돝섬 유원지에서 열었으나 섬이라는 특성상 입/퇴장에만 세 시간이 걸리는 헬게이트가 열리는 등 여러 부작용으로 2016년까지는 용도폐기된 제1부두에서 열렸다.[73] 그러다 마산 어시장 해안대로변 마산수협위판장 등지에서 진행하다, 2020년부터 마산해양신도시 인공섬에서 개최되고 있다.
  • 만날재: 마산합포구 문화동과 예곡리를 잇는 고개인 만날재에 전해지는 민담을 주제로 20세기 후반에 재구성한 축제. 舊 마산시의 마스코트인 '만남이'의 이름은 여기서 유래했다. #창원시 홈페이지
  • 창원시 진동 미더덕축제: 미더덕 생산량이 전국 2~3위권을 다투는 곳이라 이를 이용한 향토축제를 열고 있다.
  • 창원 시민의 날 축제
  • 천주산 진달래 축제: 동요 고향의 봄의 무대가 된 천주산의 진달래를 이용한 향토축제.
  • 창원시립교향악단 연주회: 2010년 7월 통합으로 마산시립교향악단이 창원시립마산교향악단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가 2012년 4월 두 악단이 통합되었다.
  • 창원 길마켓: 시민을 대상으로한 대규모 중고장터로 매달 셋째주 토요일 성산 아트홀 가로수길에서 열린다. 꼭 창원시민이 아니라도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축제.
  • 창원KPOP월드페스티벌: 전세계 사람들과 함께하는 KPOP축제로 당대 유명 아이돌 들도 많이 참석한다.
  • NC 다이노스 홈 경기, 특히 NC 다이노스 VS 롯데 자이언츠 경기. 흉악한 마산아재들과 부산아재들이 야구장을 가득 메운다.

8.3. 특산물

8.3.1. 먹을거리

  • 각종 해산물: 250년간 이어져 온 거대한 어시장이 있기에 생선을 비롯한 해산물의 질이 웬만한 고급 백화점 뺨친다.
  • 마산 아구찜: 마산합포구 오동동에는 아예 아구찜 거리가 있을 정도다.
  • 복국: 복어를 조리해서 탕(지리)처럼 끓여 먹는 냄비 요리. 복국골목은 2000년대 들어 활성화되고 있는 중이다.
    • 전어: 전어는 대개 가을에 서해안에서 잡힌 것을 최고로 치지만 마산 전어는 그에 못지않은 고퀄리티를 자랑한다. 옛 마산시 시절부터 시작하여 현재도 매년 전어축제를 열고 있다.
    • 미더덕: 전국 수위권의 생산량이며 일단 이 동네 된장찌개에는 높은 확률로 들어간다. 쇠고기는 안 넣어도 미더덕은 넣는다.
    • 멍게: 미더덕과 함께 많이 양식되는 해산물이다.
  • 무학소주: 진짜 마산 야구장에서 보면 지역 특산물 같아 보인다. 마산아재 문서로. 舊 마산시 시절에는 9경 5미라고 해서 나름 밀던 콘셉트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현재의 두월동 인근에 있었던 시미즈 양조장의 명맥을 계승한다.
  • 하이트맥주: 하이트 제2공장이 천주산(마산역과 창원역 사이)에 있다.[74] 창원시의 지질이 화강암반이라 물맛이 좋다는 장점이 있었고, 1990년 페놀사태 당시 이 점을 크게 활용하여 광고했다. 그 결과 하이트가 히트 상품이 되었고 사명을 아예 조선맥주에서 하이트맥주로 바꿔버렸다.
  • 몽고간장: 일제강점기 몽고정 옆에 있던 간장 양조장. 현재도 몽고식품 본사가 이 자리에 있고, 경남지역 간장 시장 점유율 부동의 No.1이다. 수도권에서는 기성 업체에 밀려 보기 힘들지만 가성비가 괜찮기 때문에 가끔 수도권의 오래된 식당들이 플라스틱 벌크째로 사다가 쓰는 게 관측되기도 한다.
  • 단감: 창원시 하면 국가산업단지의 정밀기계공업이 많이 알려져 있어 공업도시 이미지가 강한데, 의외로 단감의 전국 최대 생산지이다. 북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논과 밭이 펼쳐져 있고 감나무 과수원과 산에 빼곡하게 심어진 감나무를 볼 수 있다. 단감은 창원과 가까운 진영이 전국적으로는 더 많은 지명도를 가지고 있지만 의외로 생산량은 창원이 더 많다. 진영이 더 알려진 이유는 진영에도 단감이 많이 생산되는 이유도 있지만 폐쇄적인 지형의 창원은 유통이 불편해 창원에서 나는 단감을 진영에 가져가 팔아 전국적인 생산지로 진영이 더 알려졌다.
  • 얼큰이: 문서 참조.

창원향토문화백과에 따르면 이외에도 국화, 수박(대산면), 고구마(평촌), 멜론이 있다고 한다. 지리적 표시제에는 마산합포구 진동면의 진동 미더덕이 등록되어 있다. 창원시는 야자수가 자랄 수 있을 정도로 온난한 지역이다. 부산과 마찬가지로 눈 보기가 힘들 정도로 따뜻한 지역이기에 고구마가 한국에 제일 처음 도입되었을 때도 기후가 맞는 곳을 찾아 현 진해구(옛이름 웅천)에서 실험 재배했을 정도다. 그래서 아열대 과일도 잘 자랄 수 있다.

8.3.2. 가전제품 및 기계 설비류

이 항목들은 디지털창원문화대전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기계공업이 흥한 창원의 특성 때문인 듯.

9. 생활 문화

구 창원은 계획도시답게 넓은 도로, 인도 및 자전거 전용 도로가 있으며, 공공 자전거 서비스를 전국 최초로 실시하였다. 창원시 공공 자전거 서비스는 누비자 참조. 도심 곳곳에 공원 등 녹지도 많아 좋은 외관을 자랑한다.

CGV,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등 대형 프랜차이즈 영화관이 11개 점이 있으며 롯데백화점 창원점, 신세계백화점 마산점, 시티세븐 등 백화점 및 쇼핑몰 5개 점, 이마트, 홈플러스, 농협 하나로마트 등 대형마트가 15개 점이 있다. 창고형 대형마트의 경우 2022년 현재 롯데마트 맥스 창원중앙점 1개가 있으며 차후 2025년 완공 예정인 스타필드와 더불어 트레이더스 홀세일 클럽이 추가적으로 생길 예정이다.

하지만 진해 지역은 여러 가지 개발을 벌이고는 있지만 아직 구 창원과 마산에 비하면 부족하다.[75]

9.1. 교육, 문화 시설, 의료 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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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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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연고 마산고등학교 | 마산용마고등학교 | 김해고등학교
물금고등학교 | 울산공업고등학교 | 창원공업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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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와 함께 현재 특례시 기준 프로스포츠 3대 종목을 보유한 연고지이다. 프로스포츠 구단으로는 농구의 창원 LG 세이커스를 시작으로 축구의 경남 FC와 야구의 NC 다이노스, 핸드볼의 경남개발공사 여자 핸드볼단두산 핸드볼단이 있다. 그 중 경남 FC는 엄밀히 따지면 창원시의 연고 구단은 아닌 경상남도 전체가 연고지이지만 주 경기장으로 창원축구센터를 사용한다. 또한 세미프로 축구팀으로는 3부리그 K3리그에 참가하는 창원시청 축구단이 있다.

9.3. 방송 수신 환경

KBS창원, MBC경남 창원방송, 창원극동방송 등 창원에 위치한 대부분 방송사들이 불모산에 송신소 및 중계소를 두고 있다. 양산을 제외한 동부경남 지역을 가청권으로 하나, FM 라디오의 경우 동부경남과 인접한 서부산[76], 양산[77], 진주, 청도[78] 일부에서도 수신 가능하다.

예외로 부산불교방송, 부산가톨릭평화방송 중계소가 천주산에 있는데, 산 정상 대신 정렬대로 도로변에 송신 시설이 있어서 중계소 고도가 100m 정도로 매우 낮다. 게다가 창원시를 온전히 커버하지 못할 정도로 가청권역이 상당히 좁다. 일례로 창원의 외곽 지역 중 하나인 의창구 대산면에서는 부산 주파수로 수신하는 것이 유리하다. 경남교통방송(당시 창원교통방송) 역시 천주산 자락에서 송출했으나 2016년에 불모산으로 송신소를 이전하여 가청권역이 넓어졌다.

위치에 따라 부산 황령산/봉래산, 진주 장군대산, 거창 감악산 전파가 추가로 잡히기도 한다.

10.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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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군사

진해구는 한국 해군의 최대 거점도시로 유명하다. 구한말에 일본 해군이 주둔할 만큼 입지가 그 정도로 좋아서 해방 직후부터 해군의 핵심이자 중심지 역할을 해왔으며, 지금도 해군의 핵심 주둔지인 진해 해군기지에는 매번 입대 철마다 전국 여러 각지에서 오는 해군 신병들을 교육하여 수병으로 만드는 해군기초군사교육단, 해군의 각종 보급들을 담당하는 해군군수사령부, 해군 뿐만 아니라 해병대의 장교를 양성하는 4년제 특수대학인 해군사관학교진해기지사령부가 있다. 과거 해군작전사령부도 진해에 있었으나 부산으로 이전. 이러한 이유로 진해구 예비군은 해군에서 담당하며, 예비군훈련장은 행암동 끝쪽에 있다.

진해기지사령부 안에는 국방부해양경찰청 소속의 모든 선박들을 정비하는 해군정비창이 있어 각 함대 수리창에서 정비가 안 되는 함정들은 모두 진해로 온다. 해군 및 육군의 헬기 정비창도 풍호동에 위치해 있고 육, 해군의 헬기부대를 운용하는 진해비행장도 마련되어 있다.

창원기계공업단지에는 장갑차 등 무기를 직접 생산하는 현대로템을 필두로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방위산업체들이 몰려 있어 전시에는 가장 중요한 군수물자 생산 기지가 되는 도시다. 이 때문에 전쟁 발발시 서울 국방부 청사가 제 1순위 폭격지역으로 지목되고, 다음 순위 폭격 지역으로 창원 군수공장 단지가 지목받기도 한다. 만약 전시에 이곳이 단기간에 완파되고 말 경우 스타크래프트에서 아군 본진 군수공장 단지가 날아갔을 때와 똑같은 상황을 현실에서 겪게 될 확률이 높다. 한국은 땅이 좁은 까닭에, 2차 대전소련나치 독일한테 진창 두들겨 맞아 막장이 된 상황에서도 생산 시설을 저 머나먼 우랄 산맥 너머로 옮겨 독일 국방군이 진군해 오는 동안 그 새로 만든 생산 시설에서 화기를 뽑아서 막아내는 그런 일을 하는 게 불가능하므로, 그 방어가 상당히 중요할 수밖에 없는 도시이다.

전군 지상 공통 장비에 대한 창정비 지원을 하는 육군종합정비창동읍에 주둔한다. 그와 함께 국방과학연구소의 기동시험장 역시 창원 동읍에 있다. 경상남도 지역의 방어를 담당하는 제39보병사단 사령부도 창원에 존재했었으나, 2015년 5월부로 함안군 군북면으로 이전했다. 그래도 함안은 창원 바로 옆이라 그렇게 멀지는 않다.

창원대로가 10km 넘는 길이로 일직선으로 쭉 뻗은 것도 유사시 활주로 대용으로 쓰려고 만든 설계다. 계획도시답게 다른 주요 도로가 꼬박꼬박 중앙 분리대를 끼고 있는 와중에도 기본이 왕복 10차선인 대로에 중앙 분리대가 없었던 것이 그 증거. 2010년 즈음부터 중앙 분리대를 깔기 시작하며 활주로 기능은 상실했으나, 본 목적이 전시 상황의 비상 활주로 역할인 만큼 창원시는 계룡시 못지않은 비상용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예비군훈련장은 구 창원 지역은 반계동에, 구 마산 지역은 내서읍 삼계리에 있으며 둘 다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기가 굉장히 불편하다.

12. 하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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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논란

13.1. 탈성매매여성 매입임대주택 지원 특혜 논란

2020년부터 창원시는 서성동 성매매 집결지를 탈성매매화하기 위해 성매매 여성에게 지원금을 주고 성매매 집결지를 폐쇄해 근린공원을 조성하는 정책을 펼쳐 시민들의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 부동산 투기 사건 이후 창원시가 한국토지주택공사 경남 본부와 계약해 탈성매매 여성에게 매입임대주택을 4년간 지원한다는 협약을 맺자, 집을 구하기 어려워진 일반 시민을 도외시하고 탈성매매 여성에게 먼저 주택을 임대하는 특혜라는 반발을 사게 되었다.

창원시는 성매매 특별법 중 성매매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3조(이하 성매매피해자보호법)에 근거해 시행을 도와달라고 호소하는 입장이지민, 국민들은 대한민국 국군 자가격리 장병 부실 식사 제공 논란이 일어날 정도로 똥별똥군기에 고통받는 일반 병사나 의식주에 어려움을 겪는 고아 등의 진짜 사회적 약자부터 먼저 도우는 것이 맞다는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무엇보다 혜택을 받아 기록이 남거나 낙인이 찍히게 되어 취업과 사회생활에 지장이 있을까 봐 성매매 여성 사이에서도 쉽게 말하기 어려운 제도다.

14. 여담

구 창원시 지역의 경우 법정동 구획이 굉장히 이상하다. 여느 시들처럼 시 승격 이전에 쓰던 법정리들이 일단 계승되었는데, 산지는 남겨두고 딱 개발 구획 한정으로 새로운 법정동을 마치 포토샵 레이어 쓰듯 덮어썼기 때문에, 시내 곳곳에 있는 미개발된 언덕이나 시가지 둘레의 산지에 한해서 법정리 시절부터 있던 법정동이 남아 있고 개발된 지역은 네모반듯한 법정동이 만들어져 있으며 이로 인해 월경지나 땅거스러미 등이 난무한다. 관련 글 한국에서 가장 늦은 날짜에 열린 축구 경기가 이곳에서 열렸는데 그날이 성탄절이었다.

15. 출신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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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관련 문서

17. 자매 도시

17.1. 국내

17.2. 해외

범례
(☆)마산시로부터 계승
(★)진해시로부터 계승

1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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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4년 3월 기준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2] 2024년 3월 기준.[3] 창원시 가선거구 (의창구 동읍, 북면, 대산면): 김우진, 권성현
창원시 나선거구 (의창구 의창동, 팔룡동): 김혜란, 구점득
창원시 다선거구 (의창구 명곡동, 봉림동): 안상우
창원시 라선거구 (성산구 반송동, 용지동): 강창석
창원시 마선거구 (성산구 중앙동, 웅남동): 이정희
창원시 바선거구 (성산구 상남동, 사파동): 김경수, 성보빈
창원시 사선거구 (성산구 가음정동, 성주동): 김영록
창원시 아선거구 (마산합포구 구산면, 진동면, 진북면, 진전면, 현동, 가포동): 이천수, 김이근
창원시 자선거구 (마산합포구 자산동, 오동동, 교방동, 합포동, 산호동): 홍용채, 서영권
창원시 차선거구 (마산합포구 월영동, 문화동, 반월중앙동, 완월동): 박선애, 정길상
창원시 카선거구 (마산회원구 내서읍): 남재욱
창원시 타선거구 (마산회원구 회원1동, 회원2동, 석전동, 회성동, 합성1동): 황점복
창원시 파선거구 (마산회원구 양덕1동, 양덕2동, 합성2동, 구암1동, 구암2동, 봉암동): 박승엽, 손태화
창원시 하선거구 (진해구 충무동, 여좌동, 태백동): 이해련
창원시 거선거구 (진해구 경화동, 병암동, 석동): 김헌일
창원시 너선거구 (진해구 이동, 자은동, 덕산동, 풍호동): 최정훈
창원시 더선거구 (진해구 웅천동, 웅동1동, 웅동2동): 한상석
비례대표: 김미나, 박강우, 김수혜
[4] 창원시 가선거구 (의창구 동읍, 북면, 대산면): 최은하
창원시 나선거구 (의창구 의창동, 팔룡동): 김묘정
창원시 다선거구 (의창구 명곡동, 봉림동): 김남수
창원시 라선거구 (성산구 반송동, 용지동): 박해정
창원시 마선거구 (성산구 중앙동, 웅남동): 김경희
창원시 바선거구 (성산구 상남동, 사파동): 한은정
창원시 사선거구 (성산구 가음정동, 성주동): 백승규
창원시 자선거구 (마산합포구 자산동, 오동동, 교방동, 합포동, 산호동): 이원주
창원시 차선거구 (마산합포구 월영동, 문화동, 반월중앙동, 완월동): 전홍표
창원시 카선거구 (마산회원구 내서읍): 이우완
창원시 타선거구 (마산회원구 회원1동, 회원2동, 석전동, 회성동, 합성1동): 서명일
창원시 파선거구 (마산회원구 양덕1동, 양덕2동, 합성2동, 구암1동, 구암2동, 봉암동): 문순규
창원시 하선거구 (진해구 충무동, 여좌동, 태백동): 김상현
창원시 거선거구 (진해구 경화동, 병암동, 석동): 정순욱
창원시 너선거구 (진해구 이동, 자은동, 덕산동, 풍호동): 이종화
창원시 더선거구 (진해구 웅천동, 웅동1동, 웅동2동): 심영석
비례대표: 오은옥, 진형익
[5] 창원시 제1선거구 (의창구 동읍, 북면, 대산면): 서민호 (초선)
창원시 제2선거구 (의창구 의창동, 팔룡동): 백태현 (초선)
창원시 제3선거구 (의창구 명곡동, 봉림동): 박해영 (재선)
창원시 제4선거구 (성산구 반송동, 용지동): 박준 (재선)
창원시 제5선거구 (성산구 중앙동, 웅남동): 이찬호 (초선)
창원시 제6선거구 (성산구 상남동, 사파동): 이재두 (초선)
창원시 제7선거구 (성산구 가음정동, 성주동): 박남용 (초선)
창원시 제8선거구 (마산합포구 구산면, 진동면, 진북면, 진전면, 현동, 가포동): 강용범 (재선)
창원시 제9선거구 (마산합포구 자산동, 오동동, 교방동, 합포동, 산호동): 정규헌 (초선)
창원시 제10선거구 (마산합포구 월영동, 문화동, 반월중앙동, 완월동): 정쌍학 (초선)
창원시 제11선거구 (마산회원구 내서읍): 진상락 (초선)
창원시 제12선거구 (마산회원구 회원1동, 회원2동, 석전동, 회성동, 합성1동): 이장우 (초선)
창원시 제13선거구 (마산회원구 양덕1동, 양덕2동, 합성2동, 구암1동, 구암2동, 봉암동): 조영명 (초선)
창원시 제14선거구 (진해구 충무동, 여좌동, 태백동, 경화동, 병암동, 석동): 박동철 (초선)
창원시 제15선거구 (진해구 이동, 자은동, 덕산동, 풍호동): 김순택 (초선)
창원시 제16선거구 (진해구 웅천동, 웅동1동, 웅동2동): 이치우 (초선)
[6] 舊 0551 사용 지역(의창구, 성산구, 마산합포구, 마산회원구), 추가 국번은 055-60*, 71* 국번.[A] 舊 0553 사용 지역(진해구).[A] [9] 전국 특례시 4곳 중 3곳은 경기도에 몰려 있으니 비수도권 기초자치단체 중에서는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용인시와 더불어 유이한 도농복합시의 특례시이다. 다만 인구 문단에 나오듯 100만명선 붕괴 초읽기 상황이고, 특례시 기준 인구 100만명 밑으로 떨어지면 자격을 박탈당하므로 지위를 잃을 가능성이 있다.[10]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기초자치단체인 수원시보다도 일반구가 1개 더 많다.[11] 일반적으로 시의원 선거구는 '가'~'하' 순서로 선거구 기호를 매기는데, 통합 이후 '하' 선거구까지 다 채우고도 모자라 '거'에서 '러'까지 매겼다. 참고로 거~러 선거구는 모두 진해구에 있다.[12] 원래 경상남도청은 진주에 먼저 들어섰으나 일제강점기부산으로 이전되었다. 이후 부산이 직할시로 승격되고 경상남도에서 분리되면서 도청을 이전해야 되는 상황이 나타났는데 이때 마산과 진주가 도청 유치를 놓고 서로 다투었으나 이전지는 이 둘이 아니라 창원으로 결정되었다. 1981년 도청이전지가 현재의 사림동으로 확정되었는데, 구 마산시 지역은 시내버스 탑승만으로 경상남도청에 손쉽게 접근이 가능하지만, 진주시에서는 고속도로를 타고 1시간을 달려야 한다. 다만 2015년 홍준표 前 경남지사가 진주의료원 자리에 경상남도청 서부청사를 개청하면서 도청의 일부 기능이 진주시로 환원되기는 했다.[13] 창원은 수원과 더불어 21세기 이전에 도청을 물려받은 지역이며 이는 기존 도청 소재지였던 서울과 부산의 분리 승격이 다른 광역시들보다 더 빨랐기 때문이다. 한참 급격한 경제 성장기에 수도권 집중도 지금만큼 심하지도 않았기에 도청을 비롯한 도내 주요 관공서들을 받아낸 창원이 대도시로 성장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되었다. 반면 창원도정이 시작되었던 1983년 당시 대구는 경상북도에서 분리독립한 지 겨우 2년이 지났을 뿐이며 광주, 대전은 각각 전라남도 광주시, 충청남도 대전시로 여전히 도 산하에 있었기 때문에 도청을 이전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이후 21세기에 들어와서야 경상북도, 충청남도, 전라남도도 비로소 관내로 도청을 이전했지만 이때는 지역 균형 발전 분위기가 매우 강해진 탓에 도내 주요 도시와는 동떨어진 지역, 거기에 두 개의 지역 경계에 도청 신도시를 갖다 박는 관행이 생겨버렸고 이는 주변 인프라 부족, 도청을 유치한 두 지역 간의 갈등 초래 및 수도권 집중도의 심화까지 겹쳐 도청을 받아내도 제대로 성장을 이루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왔다.[14] 1910년 창원부가 마산부로 개칭, 1914년 개항장 일대만 마산부로 남기고 나머지 지역은 창원군으로 분리됨.[15] 창원군 진해읍이 승격.[16] 창원보다 더 순위가 높은 기초자치단체인 화성시(약 74조 53백만), 서울 강남구(약 71조 85백만), 서울 중구(약 53조 82백만), 성남시(약 44조 8백만)는 모두 수도권이다.[17] 1995~2010년 당시 마산시를 의미.[18] 주간선 역할을 하던 구 21번 버스, 현재의 103번과 비슷한 노선이다.[19] 이는 우리나라 기후 특성상 강수량은 연도마다 들쭉날쭉하였기 때문이다. 연 강수량 대부분을 장마와 태풍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의 기후 특성 때문이다. 유달리 장마가 길고 태풍도 여러 개씩 통과하는 1987, 1995, 1998, 2002, 2009, 2011년에는 많이 내리는 경우도 있는 반면에 그렇지 않는 연도도 있다.[20] "경상남도의 창원시, 마산시 및 진해시를 각각 폐지한다."(경상남도 창원시 설치 및 지원특례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항), "경상남도에 창원시를 다음과 같이 설치한다."(같은 조 제2항. 제1항에 따라 폐지되는 창원시 일원, 마산시 일원 및 진해시 일원을 관할구역으로 하는 창원시 설치)[21] 재분리의 필요성이 높은 것도 아니고, 기존 지자체의 통합을 유도하는 방침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이기도 하니 성사될 리가 만무하다.[22] 고양시-일산신도시의 사례와 비슷한데 고양군 일산읍 시절이나, 일산신도시 초창기에 입주한 주민들은 고양시 전체를 일산이라고 부르는 사례가 허다하다. 마산이 창원보다 먼저 개발된 것 처럼, 고양시 일대도 일산신도시가 먼저 개발되고 덕양구 화정동이 그 다음에 개발되었다. 최초에는 원릉(원당+능곡)과 더불어 일산시로의 분리승격을 눈앞에 두고 있었을 정도이니.[23] 이미 도농 통합 직전에 군명을 시 지명과 맞춰 환원한 지역은 별 문제가 없었고, 군산-옥구, 포항-영일, 순천-승주, 울산-울주는 시 지명이 군 지명의 인지도를 압도했기 때문에, 익산-이리, 평택-송탄, 남양주-미금, 여수-여천, 청주-청원, 광양-동광양, 정읍-정주, 경주-월성, 사천-삼천포, 거제-장승포, 통영-충무는 전자의 역사성이 워낙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별 문제 없이 지명에 합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경군-점촌시, 아산군-온양시, 구미시-선산군의 경우처럼 통합시 명칭을 놓고 갈등이 있었던 사례도 없었던 건 아니고, 일산시·원당시·고양시 분할승격 대신 고양시로 통합된 고양군의 사례처럼 승격 이후에도 고양vs일산 대표지명 문제로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24] 분당신도시의 경우에도 비슷하게, 무조건적인 독립시 타령이 지역 망신이라며 자성론이 있다.[25] 성남시/고양시에 산다고 하지 않고, 분당구/일산동구·서구에 산다고 한다.[26] 반대로 창원보다는 마산의 인지도가 높은 점을 토대로, "마산에 산다"고 하는 "창원 사람"들도 간혹 있다.[27] 서울-성남/안양/구리/의정부/고양, 창원-진해도 당연히 시외요금이었다. 시내요금권역은 서울-과천·광명, 인천-부천, 대구-경산, 대전-두계(계룡) 등 정말 몇 안 되었고 거의 대부분 정책적 위성도시였다. 분당신도시의 서울전화 편입 논란도 있었을 정도로 시외전화라는 것에 민감하던 시절이었음을 상기하자.[28] 이 당시 시외전화라 그러면 10원짜리가 쭉쭉 떨어져 100원짜리를 2개는 준비해야 제대로 통화를 했던 시절이다. 시내요금은 20~50원으로 3분간 통화를 즐길 수 있었다.[29] 현 창원시 의창구[30] 현 창원시 마산회원구[31] 기사에 따르면 재정재립도나 인구수를 기준으로 할 때 울산과 창원이 우선적인 직할시 승격대상으로 거론된 것으로 나온다. 다만 정부에서는 지역균형발전을 고려하면 전주를 우선적으로 승격시키고 나머지는 추가적으로 검토 대상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32] 비슷한 경우로 '성남'의 경우 성남 본시가지만을 일컬을 때도 있고, 분당신도시판교신도시를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33] 합포구 237,548명, 회원구 256,183명[34] 합포구 215,748명, 회원구 225,494명[35] 합포구 213,094명, 회원구 221,277명[36]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자연적 감소와 수도권 이주로 인한 사회적 감소가 겹치면서 아주 빠른 시일내에 화성시에게 역전 당할 것이 확정적인 상황이다.[37] 비수도권 기초자치단체 인구 2위인 청주시와는 약 16만 정도의 격차를 보이고 있다. 의미는 없지만, 인구가 소폭 증가하는 청주시와는 달리 창원은 인구가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38] 2000년대 들어서는 김해시가 전략적으로 장유신도시, 진영신도시를 개발하며 창원시 인구를 상당 부분 흡수하였다.[39]동읍[40] 인구는 이전부터 합산하여 계산중이었음.[41] 창원대로 문서만 보아도 이렇게 직각형 식으로 드넓게 개발된 도시는 2020년대인 현재까지만 보아도 전국에서 거의 유일하다시피 하다.[42] 그러나 대동제의 첫 시범 대상으로 지정된 탓에 통합 이전까지는 분구를 하지 못했다.[43] 이후 고도 제한이 해제되어 공동주택이 다량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베드타운 역할이 강화되고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 등 산업 시설이 들어서면서 옛 진해시 영역을 차지하는 진해구의 인구수가 늘어나게 된다.[44] 도농복합시의 면중 1개는 읍으로 할 수 있다에 따라 승격[45] 예곡리·우산리·현동리·덕동리[46] 구암리·합성리·회성리·두척리[47] 위의 의창구, 성산구 인구추이에서의 마산시 편입지 인구 제외[48] 합포구 + 삼진 지역 265,574명 + 회원구 + 내서면(현 내서읍) 지역 265,800명[49] 내서면, 구산면, 진전면, 진북면, 진동면[50] 구산면, 진전면, 진북면, 진동면[51] 인구는 이전부터 합산하여 계산중이었음.[52] 부산이 직할시로 승격된 1963년~1985년 이전. 이 즈음에 마산시는 전국 7대 도시 중 한 곳이었다.[53] 특례시가 된 게 아니다. 특례시란 말은 2022년 1월 13일부터 시행된 지방자치법 이전까지는 법적으로 존재하는 명칭이 아니었다.[54] 한국은행 경남지역본부, 각종 관공서 및 금융기관 경남지부, KBS 방송국은 원래 마산에 있었다가 창원으로 이전했다. MBC 역시 창원으로 이전하려 했다가 마산의 필사적인 회유로 간신히 남았다.[55] 같은 시기 김해시의 인구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고 2010년에는 대도시 특례를 받을 수 있는 요건인 50만을 돌파하였다. 김해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게 된 계기는 장유신도시가 첫 신호탄이었다.[56] 서성동 7,050명 + 동성동 4,255명 + 부림동 2,910명 + 추산동 4,384명 + 중성동 4,494명 + 성호동 6,366명 + 오동동 8,156명[57] 서성동 7,592명 + 동성동 4,481명 + 부림동 2,869명 + 추산동 5,154명 + 중성동 4,190명 + 성호동 6,200명 + 오동동 8,560명[58] 서성동 10,826명 + 동성동 5,126명 + 부림동 3,727명 + 추산동 6,648명 + 중성동 5,389명 + 성호동 7,687명 + 오동동 11,208명[59] 서성동 9,528명 + 동성동 3,463명 + 부림동 2,613명 + 추산동 7,472명 + 중성동 4,198명 + 성호동 7,554명 + 오동동 8,015명[60] 서성동 9,058명 + 동성동 3,498명 + 부림동 2,150명 + 추산동 5,433명 + 중성동 3,786명 + 성호동 6,894명 + 오동동 8,360명[61] 서성동 10,554명 + 동성동 3,413명 + 부림동 2,529명 + 추산동 5,241명 + 중성동 3,689명 + 성호동 6,769명 + 오동동 8,689명[62] 서성동 6,451명 + 동성동 1,775명 + 부림동 1,209명 + 추산동 2,800명 + 중성동 1,945명 + 성호동 4,133명 + 오동동 4,846명[63] 충무로1가동 2,382명 + 충무로2가동 5,245명 + 충무로3가동 2,968명 + 충무로4가동 4,976명 + 충무로5가동 5,446명 + 충무로6가동 5,197명[64] 충무로1가동 2,385명 + 충무로2가동 5,516명 + 충무로3가동 3,341명 + 충무로4가동 5,287명 + 충무로5가동 5,582명 + 충무로6가동 5,597명[65] 충무로1가동 3,274명 + 충무로2가동 5,962명 + 충무로3가동 4,155명 + 충무로4가동 4,446명 + 충무로5가동 4,565명 + 충무로6가동 6,444명[66] 충무로1가동 4,154명 + 충무로2가동 5,558명 + 충무로3가동 4,218명 + 충무로4가동 4,297명 + 충무로5가동 4,517명 + 충무로6가동 5,973명[67] 충무로1가동 4,631명 + 충무로2가동 5,242명 + 충무로3가동 4,089명 + 충무로4가동 4,091명 + 충무로5가동 4,590명 + 충무로6가동 5,656명[68] 충무로1가동 4,687명 + 충무로2가동 5,208명 + 충무로3가동 3,595명 + 충무로4가동 3,561명 + 충무로5가동 3,672명 + 충무로6가동 4,994명[69] 충무로1가동 5,385명 + 충무로2가동 4,662명 + 충무로3가동 3,755명 + 충무로4가동 3,017명 + 충무로5가동 2,697명 + 충무로6가동 4,459명[70] 이용객 숫자는 창원중앙역마산역창원역 이용객수를 다 합친 숫자보다도 훨씬 더 많지만 필수정차역은 마산역이고 창원중앙역 쪽이 빈도가 더 많기는 해도 창원역과 더불어 선택적으로 정차한다. 원래는 창원역의 위치가 창원 구도심에 위치해 있고, 마산역과의 거리가 4km밖에 떨어지지 않은 애매한 위치의 역이라 창원중앙역 개통 후 창원역을 폐지하거나 일반열차만 정차시키려 했으나 지역민의 반발과 지역구 국회의원의 정치질로 무산되었다.[71] 현대중공업에 인수.[72] 이제는 외국계 기업이지만 삼성중공업 건설기계사업부도 있었다.[73] 마산항제1부두선 선로는 흙이 덮인 화단으로 쓰였다.[74] 원래는 한독맥주 공장이었으나 1976년에 금융 관련 사건으로 인해 도산하면서 이듬해에 조선맥주가 인수했다.[75] 애초에 당연한 것이 창원하고 마산은 인구가 각각 46만,36만이지만 진해는 인구 19만 정도의 도시이기 때문에 그렇다.[76] 황령산보다 송신소 고도가 높으며 동쪽은 높은 산이 있고 서쪽은 평야 지형인 특성상 창원 방송이 잘 들린다. 다만 만덕, 주례 등은 부산 전파가 잘 잡힌다.[77] 본시가지, 동면 서부, 물금, 원동, 상북, 하북 남부 등 꽤 넓은 지역을 커버한다.[78] 청도읍(읍내 이남 한정)에서 양호하게 수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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