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6-12 22:05:08

경주 전투

1. 임진왜란경주읍성에서 벌어진 두 번의 전투
1.1. 제1차 경주 전투1.2. 제2차 경주 전투
2. 한국전쟁 초반에 벌어진 전투

1. 임진왜란경주읍성에서 벌어진 두 번의 전투

임진왜란정유재란 전투 목록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임진왜란 (일본군 대규모 상륙), 일본군 진격 시기
1592년 <colcolor=#f0ad73,white>
음력
4월
부산진 전투[日] · 다대포진성 전투[日] · 동래성 전투[日] · 김해성 전투[日] · 경상도 방어선 · 상주 전투[日] · 충주 탄금대 전투[日]
5월
한강 전투[日] · 기강 전투[朝] · 제1차 경상좌병영 탈환 전투[朝] · 옥포 해전[朝] · 합포 해전/적진포 해전[朝] · 해유령 전투[朝] · 임진강 전투[日] · 정암진 전투[朝] · 사천 해전[朝]
6월
당포 해전[朝] · 제1차 당항포 해전[朝] · 용인 전투[日] · 무계 전투[日] · 율포 해전[朝] · 금화 전투[日] · 제1차 평양성 전투[日]
7월
웅치 전투[日] · 안덕원 전투[朝] · 전주성 전투[朝] · 이치 전투[朝] · 한산도 대첩[朝] · 제1차 금산 전투[日] · 안골포 해전[朝] · 우척현 전투[朝] · 제2차 평양성 전투[日] · 삭녕 전투[日] · 해정창 전투[日] · 영천성 전투[朝] · 지례 전투[朝]
8월
제3차 평양성 전투[日] · 청주 전투[朝] · 제1차 경주 전투[日] · 제2차 금산 전투[日] · 영원산성 전투[日] · 장림포 해전[朝]
9월
부산포 해전[朝] · 연안성 전투[朝] · 제2차 경주 전투[朝] · 북관 대첩[朝] · 노현 전투[日] · 창원성 전투[日]
10월
제1차 진주성 전투[朝]
12월
길주성 전투[朝] · 독성산성 전투[朝]
조명연합군 진격 시기
1593년
1월
제4차 평양성 전투[朝明] · 수원 전투[朝] · 성주성 전투[朝] · 벽제관 전투[日]
2월
웅포 해전[朝] · 죽주 전투/상주 전투[朝] · 행주 대첩[朝] · 노원평 전투[朝]
전선 고착화 및 국지전 시기, 정유재란 (일본군 대규모 재상륙)
1593년
6월
제2차 진주성 전투[日]
1594년
3월
제2차 당항포 해전[朝]
7월
거제도 진공작전[朝]
1597년
2월
부산 진공작전[朝]
3월
기문포 해전[朝]
6월
가덕도 해전[朝]
7월
칠천량 해전[日]
일본군 진격 시기
1597년
8월
고령 전투[朝] · 남원 전투[日] · 황석산성 전투[日] · 어란포 해전[朝]
9월
벽파진 해전[朝] · 직산 전투[明] · 명량 해전[朝] · 제1차 석주관 전투[日]
사로병진책, 조명연합군 진격 시기
1597년
11월
제2차 석주관 전투[日]
12월
제2차 경상좌병영 탈환 전투[朝明] · 제1차 울산성 전투[日]
1598년
7월
절이도 해전[朝明]
9월
사천성 전투[日] · 제2차 울산성 전투[朝明] · 왜교성 전투[日]
11월
노량 해전[朝明] · 남해왜성 소탕전[朝明]
각주: [朝]: 조선군의 승리 / [日]: 일본군의 승리 / [明]: 명나라군의 승리
}}}}}}}}} ||

1.1. 제1차 경주 전투

1592년 9월 25일(음력 8월 20일). 당시 경주읍성을 지키고 있던 것은 후쿠시마 마사노리 휘하의 5군 병력. 경상좌도 병마절도사 박진은 의병장 권응수, 정세아의 5천명의 병력과 관내 읍병을 합쳐 1만여 군사를 거느리고 왜군이 차지한 경주읍성을 탈환하기 위해 공격했지만 오히려 왜군이 북문으로 나와 조선군 600명을 사살하면서 실패로 끝났고 박진은 안강의 본진으로 후퇴했다.

1.2. 제2차 경주 전투

한 달 뒤인 10월 12일(음력 9월 8일)에 박진은 다시 군사를 정비한 후 관군 5천명을 이끌고 경주읍성을 다시 공격했다.[1] 이때는 비격진천뢰화차 등을 이용해 막강한 화력을 투사해 경주읍성을 탈환하는 데 성공하고 경상도 지역의 왜군들을 해안 쪽으로 압박하는 데 성공했다.[2] 당시 일본군은 이 비격진천뢰의 위력에 상당히 놀란 모양인지 「정한위략」에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적진에서 괴물체가 날아와 땅에 떨어져 우리 군사들이 빙 둘러서 구경하고 있는데 이것이 갑자기 폭발하자 소리가 천지를 흔들고 철편이 별가루같이 흩어져 맞은 자는 즉사하고 맞지 않은 자는 폭풍에 날아갔다. 기이하고 놀라서 서생포로 돌아왔다."

2. 한국전쟁 초반에 벌어진 전투

공식 명칭은 안강-기계 전투이며, 경주시 안강읍과 포항시 기계면 일대에서 북한군이 경주로 침입하려는 걸 두고 싸워서 경주 전투로도 불리고 있다. 다만 이 전투는 위와 달리 경주 시가지에서 벌어지진 않았다.

[1] 참고로 야간 공격을 감행했다.[2] 조총이 야간 공격 시에는 정확성이 떨어지는 것도 한 몫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