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03 18:43:46

군북역

폐역 함안 - [ruby(신음, ruby=~1927)] - 군북 - [ruby(원북, ruby=~2012)] - [ruby(평촌, ruby=~2012)] - [ruby(진주수목원, ruby=~2012)] - 반성
군북역
부전·동대구 방면
함 안
← 7.0 ㎞
목포 방면
반 성
13.5 ㎞ →
역명 표기
경전선 군북
Gunbuk
郡北 / [ruby(郡北, ruby=クンブク)]
주소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의산삼일로 1992
(동촌리 783)
관리역 등급
무배치간이역 (KN 여객사업처)
(진주역 관리 / 코레일 부산경남본부)
운영 기관
경전선 한국철도공사
개업일
경전선 1923년 12월 1일
무궁화호 1984년 1월 1일
철도거리표
경전선
군 북

1. 개요2. 역 정보3. 일평균 이용객4. 승강장5. 역 주변 정보
5.1. 관광지5.2. 대암 이태준 기념관과 함안독립공원
6. 기타7.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파일:attachment/Gunbuk.jpg
현 역사 (2012년 준공)
파일:external/file2.nocutnews.co.kr/22170315467_60200010.jpg
3대 역사 (1997년 준공, 2020년 철거)[1]
파일:옛 군북역.jpg
2대 역사 (1968년 준공, 1997년 철거)[2]
급수탑이 있었던 경남 서북부의 관문
군북역은 1923년 경전선 보통역으로 시작, 처음 역사가 건립되었을 당시에는 급수탑이 설치되어있었으며, 마산-군북 간 설치되었던 사설 철도의 종착역으로 역할 했을 만큼 대표적인 지역 교통의 중심지였다. 넓은 역사 광장에 승강장을 지키던 향나무와 조차장을 둘러싼 벚나무까지, 서북부 경남의 관문으로 손색이 없던 옛 군북역. 옛 군북역의 위상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군북역 물류창고이다. 1923년 역사와 함께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창고로 현재는 물류회사의 창고로 이용되고 있다. 1997년 새로운 역사가 신축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2012년 경전선 복선전철화사업으로 이설되어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국가철도공단 공식 소개 문구

경전선철도역.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의산삼일로 1992 (동촌리)[3] 소재.

구 역사는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지두2길 50 (덕대리)[4]에 위치해 있었다. 신 역사 기준 삼랑진역 기점 64.6 ㎞. 승강장은 쌍섬식. 아직 관내에 철도가 없는 의령군의 철도 관문 역할도 한다.

2. 역 정보

파일:구 군북역 승강장(1).jpg<nopad>파일:구 군북역 승강장(2).jpg<nopad>파일:구 군북역 승강장(3).jpg
구 군북역 승강장 구 군북역 구내 선로 구 군북역 유치선

3대 역사는 2대 역사를 밀어버리고 그 자리에 1997년 신축되었는데, 경전선 복선 전철화 사업이 완료되면서 지어진 지 불과 15년 만에 '구 역사'가 되어버렸다. 섬식 승강장에 본선 외 대피선 1쌍이 있는 흔한 역 구내 구조였다. 그리고 짧게나마 유치선도 있었는데 사진에서 보듯 모터카 등이 주박하는 용도였다. 이외에도 역사(驛舍) 쪽 대피선 옆으로는 대한통운 창고가 있고, 이에 대응하는 화물용 고상홈이 있어서 유개화차에 그대로 짐을 싣고내릴 수 있었다.

그리고 구 역전에 있던 동네 병원인 '구자운의원'이 이 건물을 낼름 먹었다.(....) 군북면에서 외과수술이 가능한 몇 안되는 의원인데다 병원 원장이던 구자운 박사[5]가 뼈를 잘 고친다고 예로부터 소문이 나서 인근 농군 노인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관련사진 구자운의원은 이후 2019년에 원래 있던 곳으로 다시 신축 이전하여, 구 역사는 방치되었다가 2020년 철거되었다.

현재 구 역사 터에는 독립운동가인 대암 이태준 기념관이 들어섰다. 2021년 6월 준공하여 동년 11월 16일 개관식을 가졌다.

현재 하루 상하행 합쳐서 14회의 무궁화호가 정차한다. 여객수요 자체는 꽤 있는 편. 게다가 부근으로 제39보병사단이 이전하였으므로 전망도 나쁘지는 않은 편. KTX는 정차하지 않는다.

현재 위치로 이설 직후에는 열차운전시행규칙 제7조에 따른 1명 근무지정역이어서 역장 혼자서 근무했었다. 그 이전에는 보통역이었으나 경전선 직선화로 관리할 간이역이 줄어서 격하되었다. 사실 군북면 자체가 지나치게 쪼그라들어서겠지만.. 그리고 2015년 7월 25일에 개정된 열차운전시행세칙에 따라 운전간이역에서 무배치간이역으로 격하되었다.

이 역과 반성역의 거리차이는 13.5㎞로 꽤 먼 편. 중간의 원북역, 평촌역이 있었으나 경전선 직선화의 영향으로 폐역되었다.

3. 일평균 이용객

||<tablebgcolor=#fff,#1f2023><tablebordercolor=#f55839><bgcolor=#f55839> 연도 || [[무궁화호|
무궁화호
]] ||<bgcolor=#f55839> 비고 ||
2004년 162명
2005년 221명
2006년 220명
2007년 219명
2008년 169명
2009년 149명
2010년 145명
2011년 161명
2012년 161명
2013년 137명
2014년 132명
2015년 116명
2016년 149명
2017년 155명
2018년 179명
2019년 184명
2020년 109명
2021년 99명
2022년
2023년 145명
출처
철도통계연보

4. 승강장

함안
1 2 3 4
반성
1·2 경전선 [[무궁화호|
무궁화호
]]
마산·동대구·부전 방면
3·4 진주·순천·목포 방면

5. 역 주변 정보

한국철도공사 군북시설사업소, 신창동회관과 신창리 마을, 동촌동회관, 제39보병사단 사령부 정도가 역 주변의 전부다. 신창리에는 심지어 요즘은 흔한 편의점도 하나 없고 "전빵"이라 부르는 동네 구멍가게 하나가 전부. 군북역에서 군북면 소재지가 가깝긴 하지만 1029번 지방도(의산삼일로)를 타고 한참 걸어가야 한다. 도보 30분 가량인데 택시 타기엔 돈이 아깝고 그렇다고 농어촌버스는 하루에 세 번 들어오면 많이 오는(...) 그런 곳이다. 그래서 다리가 불편하신 고령자층의 택시 이용률이 의외로 높다.

그리고 군북면은 이설하기 전부터 면 북쪽에 남해고속도로 군북IC장지IC가 생겨나면서 군북역을 이용하지 않게 되었다. 남쪽부터 군북역 - 군북면소재지 - 군북IC/장지IC가 있는 구조인데 군북면 사람들이 주로 1029번 지방도를 타고 장지IC를 이용하게 되며 군북역은 큰 타격을 받았고 군북면소재지도 급격히 쇠퇴하고 있다. 아래 '이야기들' 항목 서술 참조.

5.1. 관광지

주변에 명산 고찰이 몇 군데 있지만 교통편 연계는 불편하다. 낙남정맥의 거봉 여항산과 그 줄기인 각대미산(서북산)에는 신라 고찰인 의상대라는 암자가 있다. 참고로 의상대사와 원효대사가 항상 셋트로 엮이듯 여기도 원효암이란 절 소속이다. 원효암은 6.25때 한 번 불타고 재건했는데 또 화재가 났고 지금은 중건해서 칠성각, 의상대, 대웅전이 다 원효암에 부속된 절집이다. 이름에서 보듯 의상대사와 연관이 있는 절이며, 신라시대 의상대사와 원효대사가 수련하던 수도처가 기원이라고 한다. 한밤중에 군북역에서 여항산 쪽을 보면 산 중턱에 웬 전깃불이 반짝반짝 혼자 빛나는 게 보이는데 그게 원효암 절이다.

이외에도 역 바로 앞에 백이산이란 봉우리가 자리잡고 있는데, 적당히 트래킹하기 좋은 산이라 등산객들이 자주 찾기도 한다. 사실 정상부에 공원 운동시설이 생긴 후에는 거의 동네 앞산 취급이다. 인왕산보다는 약간 높은 편이고(인왕산 338m, 백이산 368m) 등반 난이도는 비슷하다. 39사단 간부들 중에는 아침 운동으로 꼭대기까지 뛰어올라갔다가 출근하는 용자들도 있다(...) 백이산 바로 남쪽에 붙어 있는 숙제봉 기슭에는 고성 상족암과 비슷한 크기의 공룡 발자국 화석도 있다.

또한 서편의 방어산과 마애불, 원북역 서산서원까지도 역 주변 명승지로 넣을 수 있겠지만 조금 멀다.

파일:여항산_상데미산_피바위_골새미산.jpg
남쪽의 여항산은 과거 마산 전투의 전장이었고 현재는 나무와 수풀이 우거진 등산하기 좋은 산이다. 꼭대기에 올라서면 북쪽으로는 의령의 자굴산, 동쪽으로는 창원의 무학산이 보이고 칠원 부근을 제외한 함안군 전체가 시야에 시원하게 들어온다. 여항산보다 군북역에 더 가까이 보이는 상데미봉(피바위)에는 함안군 유일의 초급 암벽등반 코스가 설치되어 있다.[6]

2015년 6월부터 새로운 명승지(?)가 추가되었다.(...)

구 군북역 자리는 독립운동가 이태준 선생을 기리는 대암이태준기념관이 들어섰고, 조차장 자리는 기존 조경을 활용해 "함안독립공원"이 조성되고 증기기관차 목업을 갖다놓았다.

5.2. 대암 이태준 기념관과 함안독립공원

파일:이태준기념관.jpg
파일:군북역 함안독립공원 항공뷰.jpg
  • 2021년 11월 16일, 옛 역사 터에 이태준기념관이 개관하였다. 대암 이태준 선생은 군북면 명관리[7] 출신 호는 대암이지만 대암리(턱골) 출신이 아니다 독립운동가로 몽골에서 의료활동을 하였으며 의열단에 투신하였다. 옛 군북역 건물 부지에 기념관 건물이 들어서 있고, 역 조차장 부지의 향나무를 비롯한 수목들을 그대로 살려 공원으로 만들어 조경에 활용하였으며 역전 광장도 깔끔하게 새로 포장하여 최대한 옛 역 구조를 그대로 살린 건축미가 돋보인다.
  • 함안군 측은 이태준기념관 개관에 앞서 역 조차장 부지 전체를 공원으로 조성하였는데, 공원 이름은 명칭 공모를 거쳐# '함안독립공원'으로 결정했다.# 이 사업은 지난 2014년 농림축산식품부 공모사업에 선정되면서 군북면 농촌중심지활성화사업비 65억원을 확보하여 진행될 수 있었다. 함안군은 2015년 사업에 착수하고 2020년 12월 사업을 완료했다. 특히 옛 군북역은 그 입지 때문에 장터가 있는 면 중심지(중암리, 지두리)와 남쪽의 동촌리 일대가 단절되어 있었는데 이 공원 조성을 통해 도보 통행이 편해졌다.
"특히 은 일제강점기 마산∼군북선 철도 종착역으로 옛 군북역이 있던 곳을 기념하고 상징하고자 증기기관차를 설치해 일제강점기 역사를 체험하는 장소로 만들 계획을 세웠다.
이를 통해 양곡수탈 현장을 널리 알리고, 이태준기념관과 수많은 함안 독립열사, 3·20독립만세운동 등 독립을 주제로 함안군 랜드마크가 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었다. 이 계획에 따라 군은 사업비 3억 원을 들여 지난해 8월 증기기관차 및 객차 제작에 들어가 지난 2월 설치를 완료했다."
- 함안군청 배포 보도자료, 경남도민일보 보도 재인용#
파일:군북역 증기기관차 모형.jpg<nopad>파일:군북역 함안독립공원 증기기관차 목업 2.jpg
군북역 터에 전시된 증기기관차 목업 앞에서 기념촬영 중인 조근제 함안군수와 공무원, 지역 유지 등 관련 내빈들.
  • 함안독립공원 조성에 가장 투자를 많이 한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증기기관차 모형을 공원 전시물로 갖다놓은 것이다. 이 항목 앞쪽에도 서술되어 있듯 군북역의 급수탑이 역사적 모멘트인지라 급수탑의 취수부도 구현해놓았다. 증기기관차는 미카3형 패찰을 달고 있으며[8] 뒤에는 탄수차와 그 시절 보통객차 도색을 한 객차 1량도 달려있고, 관람객이 올라가볼 수도 있어서 좋은 관광 포인트가 되고 있다. #언론보도 참조.
  •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전시물은 실제 증기기관차를 가져와 정태보존한 것이 아니라 그냥 모형인데 문제는 현실에 전혀 맞지 않는 물건이다.
    • 이 모형은 차륜이 2-6-4 배열이고 앞부분에는 배장기도 구현되어 있는데, 뭔가 어설프게 만들어놓은 모양새다.[9] 반면 실제 미카형 증기기관차는 보기륜도 2-8-2 배열이고 배장기가 없이 프레임 앞에 연결기만 달려 있다.
    • 사실 이 전시물은 따지고 보면 당대 미국에서 운행하던 증기기관차를 구현한 것이다. 보기륜을 보면 2-6-4 구성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동시대 미국에서 운행되던 미카형과 비슷한 체급의 증기기관차(스테이션형)에 쓰이던 배열이다. 이 말인즉 목업을 만들면서 한국에 보존된 미카형 기관차를 기반으로 만든 게 아니라, 미국 쪽 사진자료 데이터를 보고 만들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의외의 곳에서 재현 오류가 아니다 그런데 보일러 화통 윗부분은 또 미카형을 재현해놓은 짬뽕이다.(...)

6. 기타

  • 역의 유래는 일제강점기 사설철도(마산-군북)의 종착역. 그래서 당시 기준으로 역전 광장이 매우 넓었고,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꽤 큰 규모의 5일장(군북장)이 열렸다. 현재 면사무소가 있는 일대인 지두리, 중암리, 안도리, 덕대리 등은 전형적인 지리학상 교통취락 발전상을 띤다.[10] 군북장의 규모는 함안장이나 의령장보다도 컸다(!). 쌀을 팔고사는 미전이 10군데나 있었다고 한다. 이후 철로는 일제강점기 중반에 이미 진주까지 연장되었지만 군북역은 여전히 물동량이 많았다. 군북역 자체가 의령/합천/거창과 부산/마산/일본을 잇는 관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즉 이 지역의 쌀이나 기타 물자들은 현재의 79번 국도를 따라 수송되어[11] 군북역 마당에 집하되었다. 현재도 남아 있는 대한통운 창고와 넓은 광장이 그 흔적. 군북역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서북부 경남의 관문으로 흥했지만, 경남 서부가 경제 개발 정책에서 제외되고 인구가 많이 유출되었으며, 그리고 경전선 자체가 단선 + 많은 굴곡진 노선 형태 + 엄청 나빴던 여객열차의 배차 간격 등으로 인해, 이용객이 급속도로 감소하다가 남해고속도로가 4차선으로 확장 개통되면서, 군북역은 작은 시골역으로 전락했다.
  • 대한통운 창고와 소화물 플랫폼 철로 맞은편에는 증기기관차용 급수탑이 있었다. 이 급수탑 아래에는 자연적으로 솟아나오는 샘물이 있는데 수량이 매우 풍부하고 샘 자체도 매우 깊다. 단 지금은 급수탑도 헐리고 플랫폼과 창고가 들어서 있어 현재는 물줄기가 대한통운 창고 뒤 구자운의원 옆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발원지는 지금도 지역 주민의 빨래터로 쓰이며 군북장터를 지나 최종적으로는 남강으로 흐른다. 재미있는 것은 근원이 샘물이라 그런지 어떤 추운 날씨에도 절대로 얼지 않는다는 것. 또한 최근 밝혀진 바에 의하면 이 샘물의 지하수원은 헌 군북역 이전지인 동촌리 인근에서 분수령이 되어 신창리 인근에서 지하로 스며드는데, 이 근방에는 효성그룹으로 유명한 조홍제 창업주의 생가가 있고[12] 산 너머에는 함안 조씨 문중의 재실이 있다. 지역 주민들은 효성그룹이 흥한 것이 의령 정암바위와 함께 이 냇물의 기를 받아서라고 이야기한다 카더라.[13] 그리고 우연의 일치겠지만 군북역 이설 후 선로가 효성그룹 문중의 재실 뒷산을 갉아먹고 난 직후인 2012년, 효성그룹은 3세 경영진들이 줄줄이 비리사건에 연루되어 장터에서 또 한 번 이 지역의 기운이 잠깐 화제에 올랐다(...)
  • 증기기관차가 다니던 시절에는 특유의 급구배 때문에 진풍경이 벌어지던 곳이기도 하다. 기차 화통 출력이 딸려서 군북역에서 출발하여 소포리 고갯길을 올라가던 열차가 도로 미끄러져 내려오기가 다반사였다고 한다. 심지어는 남자 승객(청년들과 인근 마산으로 통학하던 학생들)들이 내려서 기차를 밀었다!(...) 그리고 잽싸게 다시 열차에 올라서 함안역으로 갔다는 증언들이 있다.[14] 실제로 이 구간은 직복선화 전까지만 해도 구배로 악명높은 산인고개, 어씨굴(원북역-평촌역 구간), 소포리 S자커브 구배 등 거의 옛 4급선 수준의 구간이었기에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새마을호 PP동차의 투입을 웬만하면 꺼리고[15] 객차견인형 새마을호만 투입되었었다.
  • 현 역사 맞은편 논두렁에는 웬 바위들이 덜렁 앉아 있는데 이게 사실 고인돌이다(...) 전형적인 남방식. 학계에서 부르는 정식 이름은 함안 군북면 지석묘군(支石墓群) 이라고 하는데 원래 동촌리에 27기, 덕대리에 5기 등 상당히 많은 수가 있었으나 현재는 16기 정도가 남아있고 10기는 다른 데로 이전했다고 한다. 그와중에 1기는 매몰되었다고 함안군 공식 블로그에 사진과 관련 이야기가 실려 있으니 참고하자.
  • 마산 전투의 주요 전장이기도 했다. 해당 항목 참조.
파일:b0007832_16104719.jpg<nopad>파일:b0007832_11050068.jpg
  • 이 역은 희한하게 나무와 얽힌 이야깃거리들이 많이 있는 편이다. 구 역사 플랫폼에는 군북역의 상징인 향나무가 있고, 조차장 주위를 벚나무가 둘러싸고 있어 한철때에는 진해 군항제 때의 경화역 못지않게 벚꽃이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외부인에게 취재허가를 좀처럼 내주지 않던 곳으로 악명(?)이 높았다. 그래서 한 철도동호인이 펴낸 "간이역 여행" 단행본에서 유일하게 내용이 누락된 역이다. 심지어 커버스토리도 인근의 원북역이 되었다고.. 사실 원북역이야말로 문자 그대로의 간이역에 어울리긴 하지만.
    구 역사에는 벚꽃나무 외에도 지금보다도 훨씬 울창하게 자란 나무가 많았다. 이 나무들은 5공시절 조경용으로 캐내져 어디론가 팔려갔다고 한다. 군북면 출신 중에 5공 시절 유력자들이 좀 있는데 그와 관련있지 않을지 지금으로서는 짐작만 할 뿐이다.(라고 말하는 어르신 면민들이 많다.)
  • 특히 군북역의 구 역사 터와 현 역사 사이 서쪽에 뻗어있는 구릉지 위에는 커다란 나무가 꼭대기마다 하나씩 총 3개가 있는데, 덕촌리 입구나 39사단 쪽에서 서남쪽을 보면 산 위로 커다란 나무가 줄줄이 있는 광경은 확실히 인상적이다. 개중에 가장 북쪽의 군북초등학교 앞에 있는 나무를 '당산나무'라고 해서 동네에서 신성시하며 매년 하루씩 날 잡아서 굿판 비스무레한 것도 한다.[16] 이외에도 인근의 군북초등학교 교정에는 마치 바닥이 둥근 컵을 거꾸로 엎어놓은 듯한(혹은 버섯구름같이 생긴) 커다란 나무가 있는데, 수종이 "말눈가시나무"라고 하는 종류이다. 이 나무는 6.25 마산 전투 당시 학교가 홀라당 타버렸는데 홀로 꿋꿋이 살아남은 것으로 유명하여 현재 군북초등학교 교목으로 지정되어 있다. 심지어 이게 교내에서 가장 큰 나무도 아니다. 가장 우람한 나무는 수령이 수백 년은 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운동장 남켠의 느티나무로, 학교가 생기기 수백 년 전부터 동네 어귀의 정자나무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수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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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역으로 쓰인 기간은 15년에 불과하다. 90년대에 지어진 역사가 이러한 편. 역이 현재 위치로 이전한 후에는 병원 건물로 쓰다가 이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인 이태준 선생의 기념관 건설을 위하여 2020년 10월 철거하였다.[2] 1925년 경남선 개통 때부터 쓰던 일제식 목조 건물이 1대 역사였으며, 그 건물이 6.25 때 한 번 불탔기 때문에 어쩌면 3대째일 수도 있다(...) 구 반성역이랑 비슷한 구조였으며 1997년에 철거되었다. 입구 포함하여 우측 3칸이 맞이방, 좌측 2칸이 역무실이었다.[3] 동촌리 781-1. 원래는 신창리였지만 군북면 인구가 쪼그라들어 크게 4개 동리로 다 통합되어버렸다.[4] 덕대리 14-54[5] 1936년생. 87세의 고령임에도 지금도 현역 의사이다. 이태준 기념관 건립에 기여하기도 했다.[6] 남쪽으로 쳐다봤을 때 동쪽부터 미산봉, 여항산, 전투산, 피바위가 줄줄이 보인다.[7] 인천 이씨 집성촌이 있다.[8] 미카 3 128호. 대전현충원에 전시중인 129호의 오마주로 추정된다. 김재현(철도 기관사) 항목 참조. 그런데 사실 김재현 기관사가 실제로 몰았던 차는 219호다...[9] 배장기 자체가 미국 서부 등지에서 버팔로가 선로에 앉아서 요지부동일 때 이걸 그냥 밀어내고 지나가기 위해 달아놓은 것이기 때문에 무지막지하게 튼튼하다. 유니온 퍼시픽 빅 보이에 있는 배장기는 거의 사람 키높이만하다.[10] 현재는 면이 쪼그라들면서 덕대리만 빼고 모두 중암리로 통합되었다.[11] 의령 정암나루는 조선시대부터 주요 길목이었다. 곽재우 장군이 침공해오는 왜군을 물귀신으로 만든 루트이기도 하다. 1955년 구 정암교(현재 이름은 정암철교)가 완공되었는데 이는 정주영의 첫 토목 공사로 유명한 고령교 완공보다도 2년이 더 빠르다.(!) 개통 당시에는 함안, 의령 사람들이 구경거리 났다고 개통식이 북새통을 이뤘다카더라. 현재는 안전상의 문제로 통행이 금지되고 4차로로 확장한 정암교로 79번 국도가 지난다.[12] 현 군북역 바로 앞 동네인 신창마을에 있다. 걸어서 3분도 걸리지 않을 정도.[13] 인근의 군북초등학교는 현재 두 자리수 학급이 채 안 되는 분교 수준인데도 불구하고 도시 학교 못지않은 체육관이 있다! 1986년에는 효성 8비트 컴퓨터로 무장한 컴퓨터실이 있어서 함안군 내 시범학교 지정까지 되었을 정도였고, 지금은 다른 농산어촌 학교들처럼 감소하는 듯 했지만, 인근에 새로 들어선 제39보병사단의 영향 때문인지 학생 수는 함안군 관내 초등학교 중 학생 수 다섯 손가락 안(4위)에 든다.[14] 의외로 증기 기관차 운행시 노하우가 필요한 부분이다. 일단 증기 견인기는 한 번 서면 다시 출발시키기가 까다롭기 때문에, 구배를 잘 살펴서 운행해야 하고 심지어 역 구내 입환시에도 사점(死点)을 잘 피해서 운행해야 한다. 현 전기견인기의 절연구간과 비슷하지만 운행 노하우는 훨씬 까다롭다. 한국에 디젤 견인기가 6.25 전쟁 당시부터 들어온 것이 단순한 전쟁구호 물자 성격만은 아니었던 이유로, 전시물자의 빠른 입환과 조차편성을 위해 디젤 견인기가 필요했던 것이다.[15] 정규편성에서 제외, 가끔 명절 대수송기간에만 PP와 구 무궁화 동차(NDC 개조 이전), CDC가 뛰었다.[16] 함안군 일대에서는 흔히 동짓날 혹은 정월대보름날에 이런 동네마다 있는 당산나무 앞에서 제를 지낸다. 함안 일대에서는 읍내에서 빤히 바라다보이는 절벽 위에 있는 검암리 당산나무의 동제가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