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31 15:10:04

군신


1.
1.1. 신화1.2. 여러 전투에서 뛰어나게 활약한 인물을 이르는 말
1.2.1. 실존 인물
1.3. 대중매체
2. 3. 흉노의 4대 선우

1.

다신교 신의 종류
정렬 가나다순

전쟁의 신, 군인의 신을 의미한다. 다신교 신화 등에 나오는 장졸들에게 전쟁에서의 승리와 무사귀환을 보장해준다고 하는 신.[1] 전신(戰神)이라 부르기도 한다.

고대로부터 각 신화나 세계관에서 '천부신'과 '지모신' 등과 함께 가장 위대한 신으로 섬겨진 경우가 많았다. 고대의 세계에서는 타국가나 타민족과 전투를 하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자신들의 승리를 위해 전쟁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경우가 많았다. 동양권에서는 치우가 전쟁의 신으로 유명하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는 전쟁의 신 아레스(마르스)의 가장 유명한 별칭에 해당된다. 특히 군사국가로 출발했던 고대 로마에서는 시조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가 군신 마르스(아레스)의 아들이라고 믿었을 정도. 동양에서는 으레 도교에서 섬기는 북두칠성의 끄트머리 별인 파군성이 전쟁의 신으로 간주되고, 관우 등 생전에 전쟁에서 공을 세웠던 무장들을 신격화해서 군신으로 모시기도 했다. 불교가 전래된 뒤에는 불교의 수호신장이나 사천왕을 군신으로 받들기도 했다.

중국에선 관우를 대표적인 군신(軍神)으로 모신다. 관우 이전에 전통적으로 무신(武神)으로 모셔진 신은 강태공이었다. 강태공이 국가 전례에서 공자와 비견될 정도로 존숭되었던 시기는 당대였는데 양경(兩京)과 지방에 제태공묘(齊太公廟)라는 이름으로 그의 사당이 건립되었고 상원 원년(760년) 강태공이 무성왕(武成王)으로 봉해져 공자인 문선왕(文宣王)과 짝을 이루게 되었고, 건중 3년(782)에는 문묘처럼 무성왕묘에도 역대 장수들을 10철, 72제자로 구분하여 종향(從享)하였는데 정원 4년(788년) 이후 문(文)과 무(武)는 분리될 수 없고 무묘가 문묘와 병립할 수 없다는 이유로 무성왕묘에 모셔진 종향위들을 모두 제거하고 강태공만을 모시는 형태로 바뀌었다. 그 뒤 송태조가 무성왕묘를 건립하고 다시 문묘와 대등하게 지위를 높이고 직접 행차할 정도로 관심을 보였다.[2]

일본에서는 주로 하치만신(八幡神)이 무가의 수호신으로 모셔졌는데, 진구 황후가 신라를 침략하고 오는 길에 쓰시마에서 전승 기원을 할 때 제단 위에 깃발 여덟 개가 나타났다는 데서[3] 하치만이라는 이름이 유래했다는 전승이 있고, 으레 하치만신은 오진 덴노(應神天皇)로 간주되는데 진구 황후는 실존 가능성이 없는 전설적인 인물로 판명이 나 있는 고로(...) 본디 하치만은 규슈의 호족이었던 쿠니노미야츠코(国造) 우사(宇佐) 씨족이 섬기던 신인데 어쩌다 야마토 조정과 엮여서 조정의 조상신이 되었다. 초기에는 군신이라기보다는 그냥 신탁을 잘 내리는 신 정도로만 인식되었는데 타이라노 마사카도의 난 이후에 타이라노 마사카도의 난을 진압하는데 하치만신이 도왔다는 믿음이 퍼지면서 하치만신이 군신으로 간주되었고[4] 특히 하치만신을 모신 무가 가와치 겐지(河內源氏) 일족이 하치만신을 자신들의 조상신으로 받들고[5] 하치만신을 모시는 신사를 각지에 모셨는데 이후 겐지 일족이 일본에서 무사들의 수장 지위를 차지하게 되면서[6] 나중에는 불교와 습합해서 하치만대보살(八幡大菩薩)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각지에 하치만신을 모시는 하치만구(八幡宮)가 세워졌다. 하치만구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세운 가마쿠라시의 츠루가오카 하치만구(鶴岡八幡宮)이고, 하치만신에게 봉납하는 의례로써 행해졌던 것이 야부사메이다. 인간으로써 사후 군신으로 모셔지게 된 이는 생전에 비사문천의 화신으로 스스로를 자처했던 우에스기 겐신 외에도 남북조 시대 남조를 도와 아시카가 다카우지와 싸운 구스노키 마사시게가 있고, 근대에 와서는 러일전쟁 때 육군대장이었던 노기 마레스케가 군신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전쟁에서 뛰어난 지휘와 전략전술로 명장으로 여겨졌던 이들을 군신으로 받드는 것은 생전에 이들이 지녔던 이름과 재능을 이어받는다는 의미도 있었고 동시에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그리고 살아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고 전공을 세운 이들을 추앙함으로써 전쟁에서 장졸들의 투지를 고취시키는 효과도 있었는데, 안 좋은 방향으로 가는 경우 아무 의미나 명분이 없는 전쟁이나 그에 수반되는 온갖 전쟁범죄를 성전(聖戰)이니 정의로운 전쟁이니 하는 식으로 미화해 사람들의 죄의식을 약화시키고 일반 민중들에게 참전을 독려하는 선전에 이용되는 경우도 굉장히 많았다.[7] 이게 가장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간 것이 야스쿠니 신사로, 자국의 제국주의 침략전쟁에서 온갖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패전 뒤에 처형되거나 그 전쟁에 적극 참전해 죽은 자들을 버젓이 신으로 받들면서 덴노를 위해 죽으면 신으로 모셔지는 영광을 누릴 수 있다고 꾀는가 하면, 우리는 고대로부터 신이 지켜주는 나라이니 이번에도 신이 도와 전쟁을 이기게 해주실 것이라며 병사들을 가이텐이나 가미카제 같은 자살특공대로 써먹거나 학살 등의 온갖 전쟁범죄를 신의 뜻으로 미화하는가 하면, 타치바나 요시오 같은 인간쓰레기도 신사의 신으로 모시는 어처구니 없는 사태까지 생겨났다.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외부의 적에 대한 승리와 패배(그리고 죽음)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고 살아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하는 존재인 동시에 전쟁 속에서 벌어지는 살인, 약탈 같은 처참하고 반인간적인 행위를 신의 뜻이라며 당연한 것으로 미화시키고 죄의식을 사라지게 만들어 온갖 전쟁범죄를 가능하게 하는 존재 역시 전쟁에서의 승패와 참전자들의 생환을 관장하는 신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이었다고 할 수 있다. 어찌 생각하면 '전쟁의 신'이라는 존재 자체가 종교의 관점에서 전쟁이 가진 양면성을 은유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8]

한국 신화에 등장하는 군신은 군신(한국 신화) 문서 참조.

1.1. 신화

1.2. 여러 전투에서 뛰어나게 활약한 인물을 이르는 말

나라마다 무공으로 유명한 왕이나 장군이 하나쯤은 있고, 군신이라 하면 그 인물을 가리키기도 한다. 중국과 동아시아 공통으로는 보통 실제 신으로 추앙받는 관우나,[10] 가장 강한 자의 의미로 항우를 일컫는다.[11] 한국에서는 이순신을 군신으로 꼽는 경우가 많다.[12] 그 외에도 일본에서는 전국시대우에스기 겐신이 군신이라는 별명으로 칭해진다.[13]

서양에서 군신으로도 추앙 받는 인물로는 알렉산드로스 3세, 한니발 바르카, 리처드 1세, 할리드 이븐 알 왈리드, 칭기즈 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등이 있다. 나폴레옹은 클라우제비츠가 본인의 그 유명한 저서 전쟁론의 '전쟁천재' 챕터에서 '전쟁의 신 그 자체(der Kriegsgott selbst)'라 하기도 했다.

그 이외에도 군신이나 투신같은 칭호로 불리는 사람들이 몇몇 있는데, 정작 격투기나 검도같은 파이터 계열이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 그러한 칭호로 불리는 사람들도 있다.

서브컬처 등에서는 일신의 무력이 뛰어난 장군보다 전략수립 능력이나 전술 활용 등 지휘능력이 뛰어난 무장들에게 붙는 칭호다.[14] 되레 무력이 뛰어난 장수는 용장으로 표현한다. 비슷한 표현으로 투신, 전신, 무신 등이 있다.

1.2.1. 실존 인물

실제로 신으로 추앙받거나 별명이 있는 사람들만 추가. 그렇지 않은 경우 명장 항목 참조.

1.3. 대중매체

2.

임금과 신하를 합쳐 부르는 말로 옛날에는 임금과 신하의 관계에 대한 말을 많은 위인들이 남기기도 하였다.

삼강오륜에서 나오는 군신유의, 군위신강 등이 대표적인 말들이다.

3. 흉노의 4대 선우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군신선우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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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1] 당연히 기독교불교, 이슬람 같은 일신교에서는 그 종교에서 모시는 유일신이 군신의 역할도 겸한다. 로마 제국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의 상징을 내세워 밀비우스 다리 전투 등 반대파와의 전쟁에서 이기고 로마의 유일한 황제 자리를 차지했다거나 이슬람의 성사(聖使) 무함마드627년 3천 병력으로 메카의 원정부대 1만에 맞섰을 때 모래바람 덕분에 승리했다는 이야기가 대표적. 중세십자군 전쟁도 "신께서 그것을 원하신다"라는 교황의 한마디 구호로 수많은 광적인 신자들을 이슬람과의 전쟁터로 내몬 결과물이다.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내세우는 '이교도에 대한 지하드' 역시 유일신 알라가 그들의 승리를 돕고 설령 패배하더라도 명예로운 사후를 제공할 것이라는 믿음이 뒷받침된 결과이다.[2] 조선 세조 때에 양성지가 이 무성왕묘의 제도를 본떠서 우리나라에서도 무묘를 지어서 역대 명장들을 제사하자고 건의했지만 신료들의 반대로 실행되지 않았다.[3] 일본에서 여덟(8)이라는 숫자는 수사적으로 굉장히 많은 수를 의미할 때 쓰인다. 야오요로즈노가미(八白萬神)라는 신토 용어도 정말 신이 8백만 위(位)나 된다는 것이 아니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수사적 의미.[4] 타이라노 마사카도 자신은 자신이 신황(新皇)으로 즉위하게 된 것이 하치만신의 신탁에 의해서라고 주장했다.[5] 이 역시 하치만신을 오진 덴노로 보는 인식이 생겨난 뒤의 일인데, 아시다시피 겐지 자체가 황실로부터 갈라져 나온 성씨다.[6] 겐지가 일본에서 무가로써 위세를 떨치게 된 것은 간토에서 호족 아베, 키요하라 씨와 싸워 이긴 전9년의 역과 후3년의 역에서였는데, 조정으로부터의 지원이나 사후 포상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순전히 연줄만으로 무사들을 동원한 미나모토노 요시이에(源義家)가 자신을 도와 참전한 무사들을 자신의 개인 사재를 털어서 은상을 줌으로써 요시이에의 겐지 일족이 간토에서 무사들의 지지를 얻게 되었다. 요시이에는 교토의 이와시미즈 하치만구에서 관례를 올리고 스스로를 '하치만타로(八幡太郞) 요시이에'라고 칭했고, 요시이에에 대한 지지와 함께 하치만신에 대한 무사들의 믿음도 퍼져나가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7] 십자군 전쟁도 '이교도' 이슬람으로부터 더럽혀진 기독교의 성지를 되찾는다는 명분을 내세워서 벌인 침략전쟁이었고, 이슬람 역시 십자군에 맞서 자신들의 공동체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지하드를 선포하고 십자군에 맞서 싸웠다. 크리스찬이나 무슬림에게 있어 서로는 신의 뜻을 저버린 '사악한 이교도'였고, 서로를 잔인하게 학살하고 약탈하는 것은 죄는 커녕 사후 천국 직행 티켓이 보장되는 당당한 선행이었다.[8]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아테네와 아레스를 생각하면 된다. 모두 전쟁을 맡은 신이지만 아레스의 살육을 주저하지 않는 무자비한 폭력성과 공격성, 흉포함, 그리고 아테나의 평화를 위해 적수로부터 방어하고 싸워나가는 투철한 정의감과 용맹성, 그리고 면밀하게 짜여진 전략적인 측면이 전쟁의 두 얼굴이라고 할 수 있다.[9] 비교 신화학등에선 야훼의 기원을 시나이 반도의 유목집단이 숭배하던 뇌신이자 군신이었으며 초기엔 다신교적이던 히브리인의 신화에서도 주신으로 격상되기 전에는 군신으로 숭배되었을것으로 분석한다.[10] 아이러니한 것은 정작 본토인 중국에선 관우는 재물의 신 혹은 본인 그 자체로 천제로 표현되는 반면 이 '군신'이라는 표현은 일본에서만 쓰는 표현이다. 대표적으로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와 진삼국무쌍 시리즈에서 관우를 군신이라고 부른다.[11] 이쪽도 일반적으로는 패왕 칭호가 더 흔하다. 웃긴 것은 아레스와 약점도 비슷해 비꼬는 의미로도 군신이라 불리기도 한다.[12] 물론 마찬가지로 역사적으로 이순신을 군신으로 지칭한 경우는 없었고 보통 성웅이라 칭한다.[13] 라이벌이던 다케다 신겐도 군신으로 불리는 경우가 간혹 있다.[14] 예를 들어 길티기어 시리즈의 주인공 솔 배드가이는 성기사단에 잠깐 있던 시절 그 압도적인 무용으로 군신으로 불렸다.[15] 한삼걸의 다른 멤버인 소하장량은 각각 행정, 정치를 담당했다.[16] 타치바나 도세츠와 묶여 서국의 뇌신, 동국의 군신으로 불렸다.[17] 아레스를 죽이고 그 자리를 계승했다.[스포일러] 군신의 타케오미라 불리며, 그가 전장을 지휘하면 그 팀은 무조건 이긴다는 얘기가 있으나 사실은 낭설이었고, 오히려 동생소꿉친구의 위광에 의지하던 별 볼일 없는 인간이다.[19] 단, 이 캐릭터만 표기가 電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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