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23 02:2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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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
2.1. 일본 남성의 성매매 관광2.2. 한국 남성의 성매매 관광
3. 여성의 경우4. 문제점

1. 개요



성매매를 목적으로 하는 관광.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는 이런 식으로 비유적 표현으로 사용하였으나 시대가 변하면서 개념을 직관적으로 나타내는 직접적인 표현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성매매 관광이라는 용어로 사용되는 추세이다.

2. 상세

전세계적으로는 저렴하고 따뜻한 기후의 태국, 필리핀, 베트남 등의 동남아시아가 기생관광의 목적지로 인기가 많다. 특히 미국이나 캐나다 남자들의 경우 필리핀을 많이 간다.

서구권 남성들의 주요 행선지로는 주로 필리핀 같은 동남아국가, 도미니카나 코스타리카 같은 카리브 해 국가, 네덜란드, 독일 같은 유럽의 성매매 합법 국가와 우크라이나 등 동유럽국가들이다.

2.1. 일본 남성의 성매매 관광

이것의 원조격은 사실 일본이라고 볼 수 있다. 해외에서 근무하며 해당 국가의 매춘업소를 이용했던 미군의 경우가 아니라면 해외까지 나가며 성매매를 즐기는 사례는 드물었는데, 1950년대 항공기의 발전과 그에 따른 해외 여행의 활성화로 가장 먼저 성매매 원정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던 것은 바로 일본이었다. 1960년대, 일본은 도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높아진 국민 소득에 부응하기위해 해외여행을 자율화한다.

처음부터 일본인들의 '성매매 원정' 목적지가 한국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원래는 항공편이 많아 비용에서 부담이 적었던 대만이 전부터 일본인들의 호색을 위한 섹스 여행지 노릇을 해왔으나, 1972년 일본이 중국과 수교하며 대만과의 관계를 청산하게 되자 일본 여행사들이 대안으로 찾은게 바로 한국이었던 것이었다. 일본인들이 선망하는 '게이샤', 즉 기생을 한국관광 핵심 포인트로 잡아 대대적으로 선전했고 5만 엔 정도를 들고 2박3일 한국여행에 나서는 일본 중년남자가 속속 모였다.

1972년 일본교통공사에서 발행한 관광안내서에는 "한국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욕망을 충족시키는 나라"라며 아예 대놓고 성매매를 위한 관광지라고 홍보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일본 관광회사들도 "한국에선 하루 30달러만 쓰면 최고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며 최소 비용으로 최대의 향락을 누리는 소위 '섹스 가성비' 여행지로 소개했으며 관광단 모집 명칭부터 아예 '기생파티 관광단 모집'이라고 한 곳이 많았다. 흥청망청 밤마다 섹스 파티를 벌인다는 노골적 표현만 안 했을 뿐 한국만 가면 바로 기생을 끼고 놀 수 있으며 매매춘도 할 수 있다고 선전했다. 실제로 72년 그 해에 한국을 찾은 일본 관광객의 80%는 아내나 가족동반이 아닌 독신의 중년남성들이었다.

72년 중반 무렵부터 신문들은 일본인들의 매춘관광 실태를 경쟁적으로 보도했다. 관광단 뒤를 쫓으며 르포기사를 쓴 신문도 있었다. "한국관광 첫날, 낮에 고궁 몇 군데를 대충 둘러본 뒤 바로 관광요정으로 향한다. 1부에선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여인들이 나와 제비뽑기로 파트너를 정한다. 2부에선 서먹함을 감추려고 춤과 노래로 흥을 돋운다. 밤 9시쯤 3부가 시작된다. 바로 아가씨들과 호텔로 동행하는 것이다."

일본의 한 주간지는 자국민 섹스관광 실태를 이렇게 묘사했다. "50명 단체관광객이 모두 한 명씩 아가씨를 동반하고 희희낙락하며 호텔 엘리베이터에 몰려드는 꼴은 러시아워의 전철 정거장을 연상케 한다." 이 잡지는 "관광객은 원하는 대로 몇 번이고 즐길 수 있다. 기생은 결코 거부하지 않는다."는 낯 뜨거운 코멘트까지 고스란히 전하고 있다. 당시 미국의 시사 잡지 타임도 특집기사를 통해 "한국이 일본 호색한들의 도락장이 되었다"고 개탄할 지경이었다.

이렇게 섹스 관광을 하러 들어온 일본인 무리들은 매너도 엉망이었다. 고궁 담벼락에 오줌을 누는 사람, 호텔 로비를 맨발로 다니거나 욕실 옷을 입은 채 거리로 나오는 사람도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구두를 벗어드는가 하면 모든 층 단추를 눌러 엘리베이터가 설 때마다 시시덕거리는 등 그야말로 각양각색의 인간이 갖가지 추태를 부렸다. 어느 칼럼니스트는 일단의 일본관광객이 술이 취해 목청껏 일본 군가를 부르는 걸 듣고는 "이런 걸 방관하는 한국이란 나라는 도대체 어떻게 된 나라냐?"며 울분을 터트리기도 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당시 한국 정부는 손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방관하며 외화수입이 느는 것만 즐기고 있었다. 경제개발계획을 세우고 집행하는 정부에겐 당장 한 푼의 외화가 더 중요했다. 경제부처는 물론 모든 장관들은 "적극적 외화획득이 곧 애국"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여기에 고무되어서 일까, 기생관광에 종사하는 어느 여성은 외신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자신이나 가족,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 일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경제발전을 위해 많은 외화가 필요합니다."고 말해 화제가 되었다.

성병이나 바가지 요금을 막기 위한 것은 물론이고, 삼청각, 대원각[1] 등의 요릿집 등에 대해서는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서 관광유흥음식점으로 지정해서 지방세 감면 등의 특별한 세금 혜택을 줬었다. 이는 "1970년대 당시 외국인을 대상으로 국가에 기여하는 유흥음식점이라는 역할을 기대하고 세제 혜택을 줬을 것"이라는 발언대로 1975년 지정된 것으로 지정 유흥업소 종사자의 경우는 통행금지도 면제되는 등의 특혜가 줄을 이었다. 이런 혜택에 대해서 관리를 했다는 것이 빈말이 아닌 것이 이런 혜택을 위해서는 국가등록을 받아야 했고, 이런 특혜가 있다는 것은 당연히 관리감독이 따른다는 의미이다. 특혜 중 세금 관련 일부는 2010년대까지 폐지되지 않고 남아 있어서[2],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을 들었다.

이렇듯 정부가 기생관광을 국제매춘보다 외화획득의 발판쯤으로 생각하다보니 그 일을 하는 사람의 숫자도 늘었다. 73년 여름 로이터통신은 "한국관광공사엔 안내양이 1천5백 명으로 등록돼 있지만 그보다 8천 명이 많은 규모가 일본인 접대 업무에 종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보도했다. 신문에는 '요정 근무, 초보 우대, 옷 선불 제공' '관광호텔 근무, 초보 환영, 월수 25만 보장' 같은 광고가 심심치 않게 실렸다. 서울 풍속도 연재소설을 쓴 한 작가는 일본인을 상대로 매춘하는 여성을 '단순 매춘부' '콜 걸' '현지처' '고급 계약자'로 구분해 화제가 되었다.

결국 1973년, 한해 10만 미만이던 일본 관광객은 50만 명으로 폭증했다. 이에 여성계에서는 기생관광 반대운동이 본격적으로 일어났다. 한국교회 여성연합회 등이 일본의 기독부인회 등과 연대해 조직적으로 반대운동을 벌였다. 12월 19일에는 이화여대생들이 김포공항 입국장에서 '섹스 애니멀 고 홈'이란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학생들은 이날 나눠준 유인물에서 "정신은 부패하고 도덕은 타락하면서 달러는 벌어 뭐하느냐" "내 조국을 일본남성의 유곽지대로 만들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12월 22일에는 서울대 기독학생회원들이 일본대사관에 들어가 매춘 관광 반대 구호를 외쳤다. 25일에는 일본 하네다 공항에서 22개 일본 여성단체가 연합한 데모가 벌어졌다. 부인들은 '한국에 대한 섹스 침략 반대' '기생관광을 위한 한국여행은 집어치워라'는 구호를 외치며 일본 남성들의 각성을 촉구했다. 외신들이 이날 피켓 데모를 긴급기사로 타전한 탓에 세계는 다시 한 번 추한 일본인들에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그 정도가 다였다. 여성계의 반대운동이 아무리 거세도 한번 시작한 일본의 한국 섹스관광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물론 외화 획득을 통한 경제발전 구호만을 꿰고 있던 정부도 일본인의 섹스 관광을 막을 의도가 전혀 없었다.

다음해인 1974년 8월15일. 광복절 경축식장에서 대통령부인 육영수 여사가 재일본 조총련계 문세광의 총탄에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이 일어났다. 그리고 10여일 후 30대 일본인 주부가 아파트에서 피살된 사건이 일어났다. 처음 경찰은 육 여사 저격에 분노한 애국단체 회원이 불특정 일본인을 보복 살해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수사를 벌였는데, 피살자 남편인 일본 상사원의 한국인 현지처가 범인으로 밝혀지면서 다시 한국에서 무절제하게 놀아나고 있는 일본인 행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이후 1975년에도 한 일본인 관광객이 유흥업소에서 알게된 여대생을 학교로까지 찾아가 돈을 갈취해 달아나는 사건이 일어났다.

1971년 당시 10만명에 불과하던 일본인 관광객은 1979년 한 해 65만명으로 늘어났으며 이 중 85%가 남성이었다고 한다.[3] 74년 당시 한국에 상주하는 일본인 천명 중 독신자가 700명이고 그 중 500명이 현지처와 함께 살고 있는 것으로 경찰은 추산했다. 80년대 초에는 한국 상주 일본인은 약 3천 명이었고 그 중 가족을 동반한 경우는 2백40명에 불과했다. 79년 뉴욕타임스는 일본의 섹스관광이 동남아에서 주로 서울 타이페이 방콕에서 이루어진다고 보도하며 50만 명의 일본인이 서울을 찾는데 그 중 여성은 3만에 불과하다고 보도했다.

1973년 4월 당시 민관식 문교부장관이 기생관광을 옹호한 발언을 했다는 논란이 있다.

리영희는 70년대 중반에 낸 '전환시대의 논리'에서 일본인 섹스관광에 대해 이렇게 개탄했다. "정부나 국가가 그 여성국민에게 통행금지 면책특권을 주면서까지 외국인 사나이들을 끌어들이는 정책은, 딸을 바치고 그 대가로 부자가 되는 아비와 얼마나 도덕적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 돈으로 국민이 얼마나 부해지며 국가가 얼마나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지…"

호소노 후지히코의 '레저베이션 플리즈'에서 한국 수학여행 에피소드 중 관련 내용이 언급되었다. 1980년대 홍콩의 3류 에로영화에도 서울을 배경으로 해서 꽤 자주 목격되기도 했다.

2.2. 한국 남성의 성매매 관광

1990년대부터는 한국인들이 중국, 일본이나 동남아, 동유럽 지역으로 기생관광을 떠나는 사례가 늘어 악명을 떨치고 있다.[4]

음지의 영역이다보니 실태파악은 쉽지 않지만 정식 발표된 논문 자료[5]를 참고로 하자면 한국남성이 성매매 관광을 떠나는 8개 나라를 조사했는데 특히 두드러진 나라는 중국이었다. 베이징, 상하이, 다롄, 텐진 등 성매매 목적지는 중국 전역이었으며, 칭다오에만 한국인 전용업소가 100개 넘는다고 조사되었다. 상하이 한 업소는 한국인을 상대로 하는 중국 성매매 여성 500명이 있다고 한다.[6] 또한 한국남성 대상으로 중국여성과 성매매 관광을 알선하는 사이트만 33개가 고소되었다.[7]

태국에서 기생관광을 즐기다가 에이즈에 걸린 상류층들의 이야기가 종종 들리기도 했는데, 21세기 들어 상류층이 아니라 그냥 일반인도 사실상 가능할 정도로 일반화가 되었다. 남초 사이트디시인사이드의 각 국가별 여행 관련 갤러리를 봐도 다른 갤러리들은 일반적인 여행 관련 글이 많은데 유독 동남아시아 갤러리는 기생관광 관련 이야기가 압도적으로 많다. 일본으로 성매매를 하러 가는 경우도 늘고 있다. 과거에는 일본의 관련 업소들이 한국인을 비롯한 외국인을 안 받는 경우가 많았지만 수요가 있어 점점 받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3. 여성의 경우

주로 돈 많은 중년 여인들이 아프리카남유럽, 튀르키예 등에 가서 젊은 남자들에게 물질적 보상을 해주고 관계를 맺는다. 남성의 기생관광보다 비율은 적어도 꽤 기승을 부리고 있다.

노르웨이, 스웨덴 출신의 북유럽 여성들이 여름휴가 때 그리스에 와서 이런 짓을 하는 경우가 제법 있다고 한다. 이렇게 생긴 미혼모들이 꽤 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쪽은 미혼모에 대한 지원이 빵빵하기 때문에 일부러 미혼모가 되는 사례도 있다고. 물론 많지는 않다. 그리고 카리브해의 섬들에도 미국의 부유층 여성들이 와서 힘쎈 흑인 청년들과 즐기다 간다고 한다.

발리 섬에서 여성 섹스 관광객들을 찾아볼 수 있으며, 자메이카 같은 곳에서는 해변가에서 몸 좋고 힘 좋고 인물 좋은 남정네들이 와서 근육을 과시하며 축구를 하거나 푸시업을 하고 있으면 가만히 책을 읽고 있던 섹스 관광객 여성이 그 중 한 명을 골라서 어디론가 사라진다고 한다.

일본 여성들도 전세계로 이런 종류의 관광을 가는 것은 유명한데, 의외로 한국에서도 많이 온다고 한다.

중국 부유층 여성, 대만, 홍콩 여성들도 전세계로 많이 떠나며 한국도 많이 온다고 한다. 베트남 남성을 상대로 결혼빙자 성매매도 이루어진다고 한다.#

한국에서 중년 상류층 여성들끼리 가는 단체 해외 관광에서도 이런 일이 제법 벌어진다. "남편도 하는데 자기도 못할 건 없다"라는 심리와 남편의 무관심 혹은 중년에 들어서 넘쳐나는 성욕이 주 이유. 중년 상류층을 넘어서 재력에 여유가 있는 30대의 여성들도 동남아시아에서 이런 관광을 즐긴다. 몇몇 여초 사이트에서는 이에 관련된 정보 글이 공유되거나 직접 쓴 후기들이 올라오고 있다.

과거에는 가부장제 분위기로 인해 남성의 성매매만큼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으며, 남창들도 대놓고 돈을 요구하는 경우보다는 이런저런 경비를 내게하고 선물 형식으로 물질적 보수를 받았지만, 가부장제가 약화되면서 성매매를 목적으로 방문한 여성 관광객들도 노골적으로 성매매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4. 문제점

  • 대한민국 형법은 속인주의가 적용되기 때문에 기생관광을 하러 가는 나라의 매춘 합법 여부와는 관계없이 한국인의 성매매는 어느 국가에서든 불법이다. 특히 매춘이 불법인 국가에서는 한국 경찰이 매춘으로 의심된다고 현지 경찰한데 공조 요청을 보내서 수사하기도 하며, 공조 요청이 없더라도 현지 경찰이 자체적으로 수사한 뒤에 한국 경찰한데 통보하는 경우도 있다.[8]
  • 성매매 특성상 에이즈를 비롯한 성병 감염의 위험이 많다. 특히,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남아메리카 등 위생이 열악한 곳은 그 위험이 더 크기 때문에 그냥 하지 않는 것이 좋다.

[1]길상사[2] 기생관광 잔재 요정 아직도 세금혜택 기사[3] 강준만의 저서 <평화시장에서 궁정동까지> 참조[4] 그래도 동유럽보다는 아무래도 거리가 가까워 항공료가 적게 나오는 동아시아, 동남아시아로 가장 많이 간다.[5]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정재원 박사의 '한국형 성산업과 성매매 문화의 국제적 팽창' 논문[6] 한국인 해외 성매매 실태 보고서[7] 인터넷 해외 성 매매 확산[8] 다만, 매춘이 합법인 국가에서는 현지 경찰이 한국 경찰의 공조 요청에 응하지 않아, 실질적으로 본인이 직접 자수하지 않는 이상, 증거불충분으로 형사처벌이 사실상 불가능한 수준이다. 물론, 매춘이 합법인 국가들도 원조교제는 전 세계적으로 불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