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부터 2001년까지 발칸 지역에서 벌어진 전쟁에 대한 내용은 유고슬라비아 전쟁 문서 참고하십시오.
1. 개요2. 제1차 발칸 전쟁(1912~1913)
2.1. 이탈리아 - 튀르크 전쟁2.2. 발칸 국가들의 교섭의 움직임2.3. 불가리아 왕국 + 세르비아 왕국 + 그리스 왕국의 동맹 ( + 몬테네그로 왕국 지지): 발칸 동맹2.4. 몬테네그로 왕국의 개전: 1912년 10월 8일2.5. 전쟁의 진행: 오스만 제국의 연패와 휴전 요청2.6. 오스만 내부의 쿠데타와 전쟁의 재개2.7. 런던 강화조약: 1913년 5월 30일
3. 제2차 발칸 전쟁(1913)3.1. 발칸 동맹 내부의 마찰3.2. 전쟁의 시작: 1913년 6월 29일3.3. 전쟁의 진행: 불가리아의 연패3.4. 강화신청: 1913년 7월 30일 → 부쿠레슈티 회담(8월 10일)
4. 영향4.1. 타 민족들에 대한 인종청소
5. 3차 발칸 전쟁(제1차 세계 대전)6. 4차 발칸 전쟁(제2차 세계 대전)7. 둘러보기1. 개요
Balkan Wars1912년 10월부터 1913년 8월까지 2차에 걸쳐 치러진 전쟁. 당시 유럽 열강의 세력 확대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전쟁이다. 이 전쟁에는 발칸반도 국가들의 오스만 제국 치하 독립운동,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보스니아 병합, 러시아 제국의 발칸 반도에서의 영향력 증대 계획 등 복잡한 관계들이 얽혀 있다.
제1차 발칸 전쟁은 발칸 동맹(불가리아 왕국+세르비아 왕국+그리스 왕국+몬테네그로 왕국) VS 오스만 제국의 구도로 이루어져 발칸 동맹의 승리로 끝났고, 제2차 발칸 전쟁은 불가리아 왕국 VS 반(反)불가리아(세르비아 왕국+그리스 왕국+몬테네그로 왕국+오스만 제국+루마니아 왕국)의 구도로 이루어져 반불가리아 진영의 승리로 끝났다.
여러 면에서 제1차 세계 대전의 전주곡이라고 볼 수 있다.
2. 제1차 발칸 전쟁(1912~1913)
하루마다 영토 변화를 반영한 지도 동영상.
2.1. 이탈리아 - 튀르크 전쟁
당시 오스만 제국은 제2차 모로코 위기를 틈타 리비아 트리폴리와 도데카니사 제도를 강제 점령한 이탈리아 왕국과 1911년부터 이탈리아-튀르크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오스만 제국은 이 전쟁에서 연전연패를 거듭하며 동시에 러시아와 발칸 동맹은 오스만 제국에 쳐들어가기 좋은 타이밍을 엿보던 중이었다.2.2. 발칸 국가들의 교섭의 움직임
20세기 초 발칸 국가들은 과거 종주국 오스만 제국의 잠재적인 위협과 위기감을 느끼고 다른 한편으로는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영토를 확보하려고 했기 때문에 국가들 간에 교섭의 움직임이 생겨났다.2.2.1. 세르비아 왕국, 불가리아 왕국
먼저 주도적인 움직임을 보였던 국가는 세르비아 왕국과 불가리아 왕국이었다. 당시 세르비아는 보스니아와 알바니아, 달마티아를 확보하여 아드리아해로의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었으며, 불가리아는 마케도니아와 트라키아 지방의 장악과 더 멀리는 차리그라드[1]까지의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2.2.2. 그리스 왕국
한편 그리스 왕국은 1896-97년 오스만과의 전쟁에서 패하면서 크레타를 합병하지 못한 것에 분해하였으며 그리스인이 주로 사는 마케도니아, 특히 에게해의 항구 도시이자 동로마 제국과 오스만 제국의 주요 도시인 테살로니키가 다른 나라에게 넘어 갈까봐 심히 우려하였다.서로의 속셈이야 어찌됐든 적이 오스만 제국이라는 접점 덕분인지, 1908년부터 동맹 혹은 교섭의 움직임이 있었으며, 특히 1911년 이탈리아 왕국이 당시 오스만 영토이던 리비아와 도데카니사 제도를 침공하면서 오스만 제국과 이탈리아 왕국과의 전쟁이 발발한 이후 교섭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러시아 제국이 적성국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후방인 발칸 반도에 친 러시아 동맹을 세워 오스트리아-헝가리의 뒤통수를 간지럽히고 역시 또다른 적성국인 독일에 가까워 지고 있던 오스만 제국을 견제하기 위해 이들 발칸 국가들의 발칸 동맹을 적극적으로 후원하였다.
2.3. 불가리아 왕국 + 세르비아 왕국 + 그리스 왕국의 동맹 ( + 몬테네그로 왕국 지지): 발칸 동맹
불가리아 왕국과 세르비아 왕국의 동맹이 맺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1912년 5월에는 그리스 왕국과 불가리아 왕국이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서 동맹을 체결하였다. 당시, 몬테네그로 왕국은 가맹하지는 않았지만 지지를 표명하였다.2.4. 몬테네그로 왕국의 개전: 1912년 10월 8일
1912년 10월 8일, 세르비아 왕국과 불가리아 왕국, 그리스 왕국과 몬테네그로 왕국으로 이루어진 발칸 동맹은, 먼저 몬테네그로가 전쟁 전부터 줄기차게 내세우던 '마케도니아에 대한 자치'를 빌미로 오스만 제국에 전쟁을 선포하고, 그 뒤에 다른 국가들이 선전 포고를 하는 형식으로 개전하였다.당시 참전한 세르비아를 견제하고 있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세르비아가 알바니아를 차지하는 것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알바니아의 독립을 지지하였으며, 이탈리아와 독일 제국이 이에 동조하였다. 이에 세르비아는 전쟁까지 고려하였으나 러시아 제국이 전쟁 준비가 미비하다는 이유를 들어서 세르비아에 자중을 요청하여 한발 물러섰다.
2.5. 전쟁의 진행: 오스만 제국의 연패와 휴전 요청
각설하고 전쟁이 진행되자, 오스만 제국은 열강들이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패전을 거듭했으며, 불가리아를 통해서 동맹국들에 휴전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1912년 12월 16일부터 시작한 런던 회의에서 그리스를 제외한 발칸 동맹국들과 오스만 제국 사이에 휴전이 성립되었다.2.6. 오스만 내부의 쿠데타와 전쟁의 재개
하지만 그 사이 아드리아노플(현 터키의 에디르네) 할양 문제를 둘러싸고 회담이 장기화되는 동안 오스만 제국 내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게 된 우익파들(이스마일 엔베르 등)이 득세하자, 발칸 동맹국은 휴전을 깨고 1913년 2월 4일 다시 전쟁을 시작하였다.2.7. 런던 강화조약: 1913년 5월 30일
전세가 불리함을 느낀 오스만 제국은 결국 1913년 5월 30일에 런던에서 강화 조약을 맺었다. 그 결과 오스만 제국은 에노스-미디아 선으로 코스탄티니예와 그 주변[2]을 제외한 유럽의 모든 영토(트라키아, 크레타 섬까지 포함)를 상실하였다. 에게해의 모든 섬들, 심지어 터키 본토 바로 앞바다의 섬들까지 모두 그리스 영토가 된 것도 이 전쟁 때문이다.그리하여 해군력 강화의 필요성을 느낀 오스만 제국이 무리하게 프랑스에게서 차관을 얻어가며 영국에 전함 2척을 주문했으나 제1차 대전이 터지면서 당시 영국의 해군 장관 윈스턴 처칠은 일방적으로 그 두 척을 압류하였다.[3] 강탈당한 함들은 HMS 애진코트와 HMS 에린으로 명명되었고, 오스만 제국은 크게 분노하였다.
때마침 이를 이용해 독일이 영국 해군에 막혀 본국으로 귀환시킬 수 없게 된 지중해 파견대의 순양전함 1척과 경순양함 1척을 오스만 제국에게 무상으로 넘겨준다며 꼬드기는 바람에 오스만 제국이 제1차 대전에 참전하게 되기도 하였다.
물론 저 2척을 준다고 꼬시기만 한 건 아니고, 다짜고짜 코스탄티니예 항에 정박한 군함 2척이 입으로는 치켜세워 주면서, 실제론 함포를 황궁에 겨누고 있는 상황이었다. 어이없이 수도를 제압당한 꼴이 된 후, 터키는 수도를 내륙의 앙카라로 옮긴다. 약체화된 국력으로는 이스탄불을 지킬 해군 양성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었다.
3. 제2차 발칸 전쟁(1913)
불가리아 군대의 모습
하루마다 영토 변화를 반영한 지도 동영상.
발칸 전쟁 승리로 얻은 점령지의 배분 문제로 발칸 국가 사이에 갈등이 생겨 일어났으며, 불가리아 vs. 세르비아 + 그리스 + 몬테네그로 + 루마니아 + 오스만 제국의 다굴 구도로 발생.
3.1. 발칸 동맹 내부의 마찰
- 세르비아의 북부 마케도니아 점령: 제1차 발칸 전쟁의 전승국들은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얻은 영토를 분할하다가 마찰을 빚는다. 전쟁 전 세르비아와 불가리아는 북부 마케도니아[4]는 양국이 절반으로 분할하고 알바니아는 세르비아가 가지는 것으로 합의하였다. 그러나 불가리아가 오스만 제국의 수도와 인접한 트라키아 전선에서 애먹은 사이 세르비아군이 북부 마케도니아 일원을 점령하였다.
- 알바니아의 독립국화: 문제는 세르비아가 아드리아 해로 진출하는 것을 볼 수 없었던 두 열강 오스트리아-헝가리와 이탈리아의 압력으로 알바니아가 세르비아령이 아닌 따로 독립국이 된 것이었다. 몬테네그로와 그리스도 각각 북부와 남부 알바니아 일부를 점령했었는데, 이들 또한 영토를 도로 토해내야 했다.
- 점령지 불가리아에 양도 거부: 결국 피는 흘렸는데 과실은 제대로 보지 못한 것에 불만을 품은 세르비아가 자신들이 점령한 영토를 불가리아에 양도하는 것을 거부했다.
- 사실 세르비아와 불가리아는 1차 발칸 전쟁 당시부터 이미 균열의 조짐이 보이고 있었다. 불가리아군이 트라키아의 중심도시인 에디르네를 공략할 당시 도시 공략에 진전이 보이지 않자 세르비아에 지원을 요청했는데 세르비아는 여기에 호응해 5만에 달하는 세르비아군을 보내줬다. 그렇게 해서 불가리아-세르비아 연합군은 합동으로 에디르네를 함락시키는데 성공했는데 정작 불가리아군은 도시를 점령하자마자 세르비아군이 에디르네에 입성하는 것을 거부하고 오로지 자기들만의 힘으로 에디르네를 차지한 것마냥 선전을 했다. 불가리아의 후안무치에 분개한 세르비아는 나중에 있을 불가리아와의 전쟁 준비에 들어간다.
- 對불가리아 동맹 (세르비아 + 그리스) vs 불가리아: 불가리아는 불가리아대로 가장 피를 많이 흘린 것이 자기들인데 알짜배기는 세르비아와 그리스가 다 가져갔다고 생각해 힘으로 빼앗을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이를 경계한 세르비아와 그리스가 對불가리아 동맹을 맺는 것으로 결정타를 찍게 된다. 이 단계에서 그리스는 불가리아의 개전 여론을 영국에 알렸고, 영국은 그리스를 후원하게 된다.
3.2. 전쟁의 시작: 1913년 6월 29일
1913년 6월 29일, 불가리아의 장군 미하일 사보프가 독단으로 그리스와 세르비아를 공격하는 것을 시작으로 제2차 발칸 전쟁이 시작되었다. 전쟁이 일어나자, 세르비아의 형제국이자 동맹국이던 몬테네그로 왕국, 남부 도브루자 지역을 탐낸 루마니아 왕국, 트라키아 일대의 수복을 노리던 오스만 제국이 가담해서 불가리아와 교전하였다. 불가리아는 1대5로 맞짱을 뜨게 된 셈. 불가리아는 세르비아와 그리스랑만 싸우려고 했겠지만, 뒤쪽에 영토 분쟁이 있던 루마니아와 방금까지 전쟁했던 오스만이 있고 러시아도 불가리아를 지지하지 않는 상황에서 전쟁을 감행한 것은 무모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3.3. 전쟁의 진행: 불가리아의 연패
선제 공격한 것은 불가리아지만, 제대로 진격하지 못하고 특히 그리스군의 역습에 영토를 빼앗기는 상황까지 몰린다. 당시 불가리아의 전군이 세르비아와 그리스 전선에 투입되어 있었는데, 루마니아가 7월 10일, 오스만 제국이 7월 20일에 각각 불가리아를 침공했다. 무주공산이나 다름없는 불가리아를 휘저으며 루마니아는 남부 도브루자를 점유하고 수도 소피아 인근까지 육박했으며, 오스만 제국 역시 빼앗겼던 에디르네를 탈환하고 더 나아가 불가리아 남부까지 진격했다.3.4. 강화신청: 1913년 7월 30일 → 부쿠레슈티 회담(8월 10일)
사면초가에 몰린 불가리아는 강화를 신청했고, 결국 1913년 7월 30일부터 부쿠레슈티에서 회담을 한 끝에, 8월 10일에 평화 협정을 조인했다(부쿠레슈티 조약). 이 조약으로 불가리아는 루마니아에게 남부 도브루자를 할양했고, 그리스와 세르비아에게 마케도니아 지방을 완전히 넘겨주었다. 루마니아가 오스만을 강화조약에 참여시켜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여 부쿠레슈티 조약에서 오스만 제국은 빠지게 되었고, 불가리아는 9월 29일 오스만 제국과 따로 콘스탄티노플 조약을 체결하여 트라키아 동부를 넘겨주었다.결국 불가리아는 제1차 발칸 전쟁에서 얻은 영토를 트라키아 일부 지역을 빼고 몽땅 잃어버렸다.
4. 영향
1, 2차 발칸 전쟁의 결과, 러시아 제국의 외교정책은 말 그대로 개박살이 났다. 발칸 동맹의 형성을 추진하고 협조했던 국가는 러시아였다. 하지만 발칸 전쟁이 모두 종결된 시점에서 발칸 동맹의 일원인 국가들이 적대관계로 돌아섰기 때문에 동맹은 당연히 해체되었고, 발칸 동맹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대항하는 수단으로 삼으려 했던 러시아에는 큰 타격이었다.거기에 불가리아와 러시아의 관계도 틀어졌다. 러시아는 불가리아의 공격적인 태도에 질려버렸다. 불가리아군이 오스만의 마지막 방어선인 차탈차에 돌입했을 때 러시아는 불가리아군이 코스탄티니예를 공격할 경우 바로 전쟁 상태에 돌입하겠다고 최후통첩을 날렸을 정도였다. 이후 親세르비아 태도로 일관한 러시아는 2차 발칸 전쟁에서 불가리아와 세르비아가 적대 관계가 되었기 때문에 세르비아의 뒤를 봐주던 러시아와는 당연히 관계가 악화되었다. 이렇게 되자 불가리아는 反세르비아 교두보라는 가치를 강조하며 삼국 동맹에 접근하는 과거의 외교 방식으로 회귀했다. 이러한 전개가 되자 세르비아는 발칸 반도에서 고립된 상태였기 때문에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때 러시아를 끌어들이게 되었다.
그러나 러시아의 가장 큰 문제는 1913년 이후였다. 발칸 반도는 부동항을 얻고 싶어했던 러시아에겐 매우 큰 의미가 있었고, 그 지역에서 영향을 줄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인 세르비아를 놓칠 수는 없었다. 따라서 러시아로서는 무조건적으로 세르비아를 지원하는 수밖에 없게 되어 러시아 측의 외교수단은 완전히 고립되었다. 손발이 묶인 것이다.
그 후 발칸 반도에서 고조되는 긴장감과 갈등이 터져 나오는 걸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1914년 7월, 보스니아의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 부처가 세르비아 군의 비밀결사인 검은 손과 연계 된 청년에게 암살당한 사건이 발생했다(사라예보 사건). 이는 제1차 세계 대전의 발발의 서막이었고, 러시아에는 파멸의 신호였다.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대규모 전쟁을 치를 준비가 많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러시아 혁명이 발발하여 러시아 제국은 무너지고 소련이 탄생하게 된다.
그리고 러시아와 세르비아를 적으로 돌린 불가리아는 마케도니아 영토를 뺏어간 세르비아와 그리스에게 복수하기 위해 동맹국 측에 가담하고 지난번의 패전의 복수를 하자는 일념 아래 세르비아군, 그리스군, 루마니아군은 물론 발칸 반도로 원정 온 영국군, 프랑스군까지 바르며 발칸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불과 1년 전까지 적으로 싸우던 오스만 제국과 같은 편으로 싸우게 되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전쟁은 결국 협상국의 승리로 끝났고 불가리아는 전쟁에서 잘 싸웠음에도 결국 전쟁에서 지는 바람에 전쟁 전보다 영토를 더 잃어버렸다.
이 시기, 러시아의 가장 유명한 군가중 하나인 슬라브 여인의 작별이 작곡 되기도 하였다.
4.1. 타 민족들에 대한 인종청소
이 전쟁은 극단적인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명분으로 했다는 점에서 훗날 유고슬라비아 전쟁을 연상케하는 학살과 인종청소를 목적으로 한 강간이 자행되었다. 또한 그리스는 자국 내에 거주하는 루마니아계 아로마니아인들과 알바니아인, 슬라브인에 대해 그리스계 성씨 사용을 강제하고 그리스어 이외의 언어의 사용과 교육을 금지하는 등 그리스화 정책을 펼쳤으며 세르비아나 불가리아 역시 자국이 차지한 영토에 존재하는 소수민족들을 대상으로 강제 동화를 실시했다. 이 혼란상에서 가장 많은 박해를 받던 이들은 튀르크 놈들의 앞잡이로 낙인찍힌 발칸 반도의 무슬림들로 이들을 대상으로 한 학살과 강간, 약탈 등이 셀 수 없이 벌어졌으며 살아남은 이들 역시 상당수가 강제로 개종을 당하거나, 아니면 전 재산을 잃고 고향을 떠나 오스만 제국으로 향해야 했다. 이렇게 오스만 제국으로 흘러들어온 무슬림 피난민들의 수는 거의 100만여 명에 달한다. 이들은 자신들을 고향에서 내쫓은 기독교인들에게 극도의 적개심을 품었고, 이후 아르메니아 학살 등 오스만 제국 내 비무슬림계 소수민족들을 대상으로 한 제노사이드에 동조하기도 했다.5. 3차 발칸 전쟁(제1차 세계 대전)
외국에서는 제1차 세계 대전에서의 발칸 전선을 3차 발칸 전쟁이라고도 부른다.불가리아 왕국, 오스만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동맹국) vs 그리스 왕국, 루마니아 왕국, 세르비아 왕국, 알바니아 공국,몬테네그로 왕국(협상국)
6. 4차 발칸 전쟁(제2차 세계 대전)
외국에서는 제2차 세계 대전의 발칸전선을 4차 발칸 전쟁이라고도 한다.헝가리 왕국, 루마니아 왕국, 불가리아 왕국 (추축국) vs 그리스 왕국[5], 유고슬라비아 왕국[6] (연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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