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40:35

배리 본즈/선수로서의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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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분석
2.1. 약물 이전으로 추정해 볼 여지가 있는 시기2.2. 약물 이후
2.2.1. 세이버매트릭스 아웃라이어에 대한 반론
2.3. 본즈 VS 주요 투수
3. 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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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약물 선수는 커리어를 통째로 부정해야 한다는 일반적인 의견을 따르면, 선수 평가가 굳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의 결과(대체선수만도 못한 선수)가 나오고 굳이 서술할 필요성도 없다.

애매하게나마 짐작되는 약물 투여 시점 전후로 커리어를 나누는 친약물파의 견해를 따르면, 비로소 분석해볼 여지가 생기고 그 결과물을 아래에 서술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금지 약물 복용 시점을 추정해 봐야 한다. 디 고든의 경우와 같이 멸치도 남성호르몬제와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를 모두 섭취한 경우가 있다는 점에서 또 본즈는 스테로이드 외에도 온갖 금지 약물을 섭취했다는 것이 입증되었다는 점에서, 본즈의 금지 약물 복용 시작 시점을 알렉스 로드리게스처럼 고등학교 때라고 의심할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보면 커리어의 전면부정과 다를바가 없으므로, 일단은 본격적으로 근육돼지가 된 1999년을 금지 약물 복용 시점으로 의제한다.

참고로 본즈의 옛 애인인 킴벌리 벨은 "본즈가 1999년 팔꿈치를 다치자 '스테로이드 때문에 근육과 힘줄이 더 빨리 자라면서 관절이 감당할 수 없어 팔꿈치가 터진 꼴이 돼버렸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사실 금지약물 사용이 걸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커리어 전체를 부정할 정도가 되며,[1] 이 문서는 그냥 의미 없는 가정법을 통해 거포 시절 본즈와 호타준족 시절 본즈를 나누어 둔 것이고, 그 정도 스탯을 기록한 가상의 선수가 있다면 어느 정도 위상이었을지 알아보는 정도로 보는게 좋다.

2. 분석

2.1. 약물 이전으로 추정해 볼 여지가 있는 시기

청정이라고 의제한 1986년부터 1998년까지의 평균 성적은 타 .290 출 .411 장 .556 OPS .967 32홈런 94타점 34도루 wRC+ 159 fWAR 7.6이다.

2000년대 최고의 선수인 알버트 푸홀스의 아름다운 10년(2001~2010)과 1990년대 최고의 선수인 본즈의 10년(1989~1998)을 비교해 보면

본즈: 타 .299 출 .429 장 .581 OPS 1.009 35홈런 105타점 36도루 wRC+ 168 fWAR 8.5

푸홀스: 타 .331 출 .426 장 .624 OPS 1.050 41홈런 123타점 3도루 wRC+ 169 fWAR 7.7

이라는 성적이 나오며 세부적인 항목은 하술한다.
본즈 순위[2] 항목 푸홀스 순위
1491 2위[3] 경기 1558 3위[4]
6391 3위[5] 타석 6782 5위[6]
5119 14위[7] 타수 5733 11위[8]
1529 10위[9] 안타 1900 3위
313 7위[10] 2루타 426 1위
346 2위[11] 홈런 408 1위[12]
778 37위 삼진[13] 646 116위
1166 1위 볼넷 914 6위[14]
1.50 8위 볼삼비 1.41 3위[15]
360 5위 도루[16] 75 90위
99 55위 병살[17] 203 2위
1051 1위 타점 1230 1위[18]
1096 1위 득점 1186 1위
.299 34위[19] 타율 .331 1위
.429 2위 출루율 .426 2위[20]
.581 2위[21] 장타율 .624 1위[22]
1.009 2위 OPS 1.050 1위[23]
168 2위 wRC+ 169 1위[24]
85.1 1위[25] fWAR 77.5 1위

본격적인 전성기는 1990년 첫 MVP를 수상하면서부터다. 약물을 복용 시점으로 추정되는 1999년 이전에 이미 미키 맨틀, 윌리 메이스와 함께 역사상 최고의 5툴 플레이어, 역대급의 괴물로 평가받았다. 날렵한 몸매로 30개 이상의 도루를 기록하면서[26] 1993년엔 46홈런으로 홈런왕도 기록할만큼 파워 또한 출중했고 따라서 90년대 본즈는 거의 매년 30+홈런과 30+도루를 기록했다.[27] 또한 2010년 이전까지의 외야수 골드 글러브는 포지션 구분없이 시상에 들어갔기 때문에 중견수 3명이 독식하는 일이 많았는데 본즈는 좌익수라는 페널티에도 불구하고 8개의 골드 글러브를 따냈을 정도로 수비력도 일품이었다. 본즈의 천재성을 알려주는 일화 몇개를 소개하자면....

사례1
본즈는 2회 만루홈런을 치고 베이스를 돌며 상대팀 콜로라도 2루수 에릭 영에게 "다시 올게"라는 말을 했다. 다음 타석에서 2루타를 치고 영에게 정말 다시 와서 "볼넷을 얻어낼게"라 말했고 정말 다음 타석에서 해냈다.

사례2
본즈는 상대투수가 어떤 공을 던질지 귀신같이 예측했다. 한번은 대기타석에 준비하고 있는 투수 제프 쥬든에게 "처음에 몸쪽 패스트볼, 2구는 체인지업을 던지고 나는 그걸 골라낼 것이고 다음으로 던질 패스트볼을 쳐서 좌익수쪽에 보낼 것이다". 라고 예측했다. 그리고 상대투수 스티브 민츠는 본즈의 예언대로 패스트볼, 체인지업을 던졌고 본즈는 3구로 날아온 패스트볼을 받아쳐 440피트짜리 대형 홈런을 날려버렸다.

첫 MVP를 수상한 1990년 34홈런-52도루로 30-50을 달성했으며, 1996년 42홈런-40도루로 역사상 2번째로 40-40 클럽에 가입했으며, 1997년에는 40홈런-37도루로 또다시 40-40에 근접한 기록을 보여주었다.[28]

거기에 1990년부터 1998년까지 9년간 .305의 타율을 기록할 정도로 정교함도 보유했고, 매년 .400 이상의 출루율을 찍으며 선구안 또한 단연 발군이었다. 지금처럼 볼넷과 출루율의 가치를 높게보지 않던 1990년대였음에도 한 시즌 150개의 볼넷을 골라낸 적이 있는 괴물이었다.[29] 거기에 홈런왕을 기록할 정도의 장타력까지 갖추었다. 이런 괴물과 상대하고 싶지 않은 상대팀 투수와 감독들은 본즈를 연신 고의사구로 출루시켰고, 훗날 120개라는 엄청난 기록 이전에도 당대 고의사구를 가장 많이 얻어내는 상대팀의 공포였다.

가장 충격스러운 일은 9회말 2아웃 만루에서 고의사구를 얻어냈던 사건. 얻어맞는 것보다 한점만 주자는 극한의 전략으로 1998년 5월 28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벅 쇼월터 감독이 마무리 투수 그렉 올슨에게 8:6의 상황에서 본즈를 고의사구하라 지시. 1점을 내주고 다음 타자인 브랜트 메인을 범타[30]로 잡아내며 승리를 쟁취했다.[31] 이전까지 없었던[32] 충격적인 일이자 본즈가 어떤 레벨인지를 증명하는 사건이다.

천재적인 주루 능력과 더불어 외야수로서 통산 8번이나 골드 글러브[33]를 수상할 정도로 수비까지 완벽한 선수였다. 본즈는 당대 최고의 외야수 중 하나로, 켄 그리피 주니어의 화려함에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 최고의 수비수였다. 단적으로 본즈는 1989년부터 1992년까지, 1995, 1997, 1998년에 좌익수 자살 1위에 올랐으며, 1989~1991년, 1994, 1995, 2004년에는 보살 1위에 올라 역대 좌익수 자살 1위, 보살 6위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또한 팬그래프의 역대 수비 지표에서 좌익수 역대 2위이며, 레퍼런스의 Total Zone Runs에서도 1위를 점하고 있다.

참고로 1989~1998까지 외야수들의 팬그래프 수비 점수는 다음과 같다.[34]

파일:본즈외야수비점수.png

이런 본즈는 1990년대 최고의 선수라는 말이 가장 익숙했었고, 인기에서 그리피에게 밀리긴 했어도 실력으론 자타가 공인하는 메이저리그의 No.1 이었다. 명예의 전당이야 1998년에 은퇴했어도 당연한 일이라고 여겨질 수준이다.

거기에 1998년 역사상 최초로 400홈런-400도루 고지를 점령하고, 98년까지 거의 2000개에 육박하는 안타를 쳤기 때문에 이미 정점을 찍은 상태였다. 400-400을 달성한 시점의 그의 나이는 고작 33세였기에 미국의 일부 야구 전문가들은 본즈가 논란의 이전 시기와 같은 스타일을 유지했을 시, 600홈런과 함께 전무후무한 600-600 클럽도 가능했을 수도 있다고 했다.[35] 400-400은 말할 것도 없고, 300홈런-300도루를 동시에 달성한 인물도 본즈를 제외하고 고작 7명에 불과할 정도로 희소가치가 높은 기록이다. 2017년 현재까지 달성자는 그의 대부 윌리 메이스(660홈런, 338도루)[36][37]와 아버지 바비 본즈(332홈런 461도루)를 비롯, 안드레 도슨, 레지 샌더스, 스티브 핀리, 알렉스 로드리게스, 카를로스 벨트란.

이동안 본즈가 기록한 99.2 fwar, 99.9 bwar은 충분히 어마어마한 수치이다. 이는 역대 좌익수 세 손가락 안에 든다는 칼 야스트렘스키의 통산 war를 뛰어넘는 수치이고, 이것이 33세 시즌임을 감안하고 본다면 조금 낙관적인 경우 이 시기의 성적으로 예측해도 충분히 역대 야수 10위 안에는 들 수 있었다. 조금 안 풀리는 경우였어도 웬만해서는 리키 헨더슨의 통산 war은 넘었을 가능성이 크고, 이정도만 해도 역대 최고의 좌익수 논쟁에서는 절대 빠지지 않을 것이다.[38] 어차피 이 전망들은 도핑 때문에 의미는 없다만...

그야말로 본즈는 잘 치고 잘 달리고 잘 잡고 잘 넘기고 잘 골라냈다. 그의 대부이자 MLB 역사상 최고의 외야수로 꼽히는 윌리 메이스 이후 최고의 야구선수라는 말에 누구도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 그가 메이스보다 부족한 것은 오로지 인성(혹은 매력)이라는 야구 외적인 요소일 뿐.[39][40] 그래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던 자신의 고급스럽고 수준 높은 야구가, 자신이 경멸하던 약물 돼지들의 단순한 홈런 개수보다 초라하게 취급받는 것을 견딜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2.2. 약물 이후

1999년부터 2007년의 평균성적은 타 .316 출 .505 장 .712 OPS 1.217 39홈런 87타점 8도루 fWAR 7.2 최전성기를 달리던 2001년부터 2004년의 평균성적은 타 .349 출 .559 장 .809 OPS 1.368 52홈런 109타점 8도루 fWAR 11.9를 기록했다. 참고로 이게 4년간 가장 잘한 수치만 모은 게 아니고 평균성적이다.

클래식 스탯이라든가 타출장은 확실하게 올랐지만 정작 fWAR가 그 이전에 비해 오히려 줄어든 이유는 명확하다.

1. 평균 자체를 2007년까지로 잡았기 때문
본즈는 2005년에 부상으로 14경기밖에 소화하지 못하였으므로 평균을 내면 굉장히 깎이게 된다. 2006, 2007년 경기수가 조금 줄은 것은 그냥 늙은 선수들이 보여주는 보통의 모습이다. 또한 1999년은 부상으로 434타석 밖에 서지 못했다.

2. 세이버 메트릭스 자체가 완벽하지 않음
세이버 메트릭스란 결국 응용 통계학의 한 분야에 불과하다. 하지만 통계학에서 완벽함이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신뢰도는 잘 쳐줘야 99%일 따름이며, 예외의 경우가 통계인 이상 당연히 발생한다. 그런데 역사상 유일하게 단일시즌 볼넷 200개 이상을 기록한 선수가 예외의 경우에 속함은 당연한 것 같다.

풀어 말해, 현재의 세이버메트릭스는 기회비용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원초적 결함을 안고 있다. 누구나 알고 있듯, 볼넷과 홈런의 가치는 다르며 따라서 WAR 수치에서도 다르게 반영된다. 73홈런을 때려낸 01시즌 이후, 02시즌부터 04시즌까지 본즈는 기껏해야 45홈런 언저리에 머물렀다. 하지만 이 기록의 까닭은 누구나 다 알고 있듯, 무수한 고의사구 때문이었다.[41] 본즈의 고의사구 비중이 상식적인 수준이었다면, 그가 70+홈런을 02~04시즌 중에는 언제라도 기록할 수 있었음은 분명하다. 그렇게 생각할 때 본즈의 실력, 본즈의 가치가 변한 것일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고의사구 비중이 얼마가 되었든 본즈는 본즈일 따름이며, 그는 단지 팀에 기여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플레이했던 것일 뿐이다. 얼마든지 홈런을 때려낼 수 있지만, 본인이 선택하지도 않은 볼넷으로 걸어나가야 해서, 선수의 가치와 팀 기여도가 떨어진다는 결론은 실로 괴상하기 짝이 없다.[42] 현재 WAR의 기준이 되는 wRAA의 기반이 되는 wOBA는 고의사구를 분자와 분모에서 모두 빼버린다. 이는 고의사구 자체가 그리 많이 나오는 일이 아닐 뿐더러 선수 자체의 위상보다는 작전의 경향이 강하다고 보기 때문인데,[43][44] 본즈는 선수에 대한 두려움으로 한 시즌에 세 자리수의 고의사구를 기록했던 유일한 선수라는 점에서 이러한 wOBA 계산법에서 어느 정도 손해를 보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사회에서든, 특정인의 가치를 평가할 때 그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의 범위 안에서만 논해야 함은 실로 당연하다. 예컨대 법률의 세계에서는 이러한 상식을 받아들여 위법성조각사유[45] 따로이 마련해 놓고 있다. 본즈의 경우는 어떠한가? 그 무수한 볼넷들은 본즈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역대 고의사구 랭킹 2, 3위를 각각 차지하고 있는 알버트 푸홀스행크 애런의 경우, 개별 시즌을 놓고 볼 때 해당 기록 수치들이 시즌 전반의 통계를 위협할 수준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공식적으로 기록된 것만 고의사구가 120개인 경우는, 현재의 세이버 메트릭스로써는 도저히 명확하게 해석할 수 없는 거의 유일한 사례다.

흔히 4할 출루율이라고, 출루율이 타율보다 1할 정도 높으면 매우 뛰어난 선구안을 가졌다거나 위압감이 강력한 타자라 칭하지만, 본즈는 그 갭이 2할을 넘나들었다.[46] 흔히 순수장타율(ISO)이 2할이고 컨택도 괜찮아서 장타율이 5할을 찍으면 수준급의 슬러거라 하지만, 본즈는 순수장타율이 5할이었다. 3-4-5 타자는 OPS가 못해도 0.900을 찍는 법이고 3-4-5가 아니더라도 흔히 강타자를 평가할 때 OPS 9할을 기준으로 삼고, 리그 평균 OPS가 7~8할 사이를 오가서 OPS 8할이 넘으면 준수한 타자로 평가하는데 최전성기 본즈는 장타율만 8할이 넘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수준인 것이다. 거기에 본즈의 커리어 하이 OPS는 2004시즌의 1.422였다.[47] 참고로 2004시즌 메이저리그 전체 OPS 2위가 토드 헬튼의 1.088였고[48] 전체 100위는 칼 크로포드의 0.781이었다. 즉 1위와 2위의 격차가 2위와 100위의 격차보다 더 컸다(...). 더구나 메이저리그 평균 OPS는 0.763으로, 1위와 2위의 격차가 2위와 리그 평균과의 격차보다 더 컸다.

천재가 약물의 힘을 빌어 야구의 상식을 초월한 괴물이 되어버렸으니 투수들은 더 이상 스트라이크 존 어디에도 던질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2002년 47삼진 198볼넷, 2003년 58삼진 148볼넷, 2004년 41삼진 232볼넷이라는 그야말로 정신나간 볼삼비를 기록했다. 약물에 의해 선구안이 좋아진 게 아니라 약물에 의한 스윙스피드와 파워의 조화를 유지하고, 이를 바탕으로 모든 코스의 공을 다 때려낼 수 있게되는 바람에, 투수들이 도저히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 없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아예 2002년부터 현대야구에서 상식을 벗어난 고의사구를 기록한 이후, 2004년 고의사구 120개라는 야구 기록의 파괴를 극한까지 보여주었다. 그리고 공식적인 고의사구가 120개일 뿐, 투수들은 아예 대놓고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않기 시작했으며, 사실상 고의사구는 200개에 근접했다고 볼 수 있다.[49][50] 게다가 2004년에는 41삼진 45홈런으로 홈런이 삼진보다 많은 진기록을 세웠다!

그나마 2001년에는 170개가 넘는 말도 안되는 볼넷을 얻었지만, 그래도 투수들은 본즈와 맞서야할 때는 최선을 다해 승부했으나....[51] 그 결과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기록이라던 마크 맥과이어의 70개를 3년만에 갈아치워버린 73개의 홈런이었다. 그 후 본즈와 상대하는 팀들은 아예 상식을 초월한 존재로 대하면서 당연히 거르고, 나머지 선수들만 모아서 경기하는 것과 같았다. 이런 인식은 갈수록 극에 달해, 본즈가 타석에 서면 스트라이크 존에 공을 던지지 않는 투수가 정상으로 보였다. 한 예로 2004년 4월 본즈는 2번이나 4타석 4고의사구 경기를 치렀다. 4월 마지막 3연전에서는 첫날 홈런 하나, 안타 2개, 볼넷 2개, 고의사구 1개를 기록했는데, 이후 2경기에서 볼넷 7개와 고의사구 5개를 얻었다.[52]

이처럼 본즈의 기록은 '당대 최고'나 '역대급' 정도로 표현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본즈와 함께 하는 경기장 안의 선수들은 물론, 경기를 지켜보는 팬들도 너무나 큰 위화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으며, 야구의 본질이 흔들리고 야구의 역사가 쌓아온 업적을 허무하게 파괴하는 등, 상식선에서 감내할 수 있는 한계치를 멀찌감치 초월해 버렸다.

약본즈의 기록, 특히 01~04년의 기록은 체격과 기술의 발달로 실력의 상향평준화가 이루어진 현대야구에서는 야구의 신이 현세에 강림한다고 해도 금지 약물 복용이라는 cheating 없이는 나올 수 없는 기록이었다.

참고로 약본즈를 가장 효과적으로 제압한 투수는 그렉 매덕스였다.
파일:약본즈가약한투수.png

또한 본즈는 커리어 내내 병살타가 상당히 적은 편인데(22시즌 165개, 시즌 평균 7.5개) 기본적으로 좋은 공만 치는 선구안으로 나쁜 타구를 만들지 않았고 커리어 초중반에는 빠른 주력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그런데 3개의 병살을 친 94년 단축 시즌을 빼면 특히 99~04년에 병살의 수가 극단적으로 줄어 한 자리수 중반에 불과했다. 노쇠화와 약물로 주력이 떨어졌음을 생각하면 병살이 될만한 타구 자체가 나오지 않았다는 이야기인데 약으로 인해 타구의 질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알 수 있다.[53]

2.2.1. 세이버매트릭스 아웃라이어에 대한 반론

2항에서 나온 자료에 기반하지 않은 상상(예: 마음만 먹으면 타율 4할 도전 가능, 실질적 고의사구 약 200개)은 각자의 상상에 맡기고, 자료로써 증명할 수 있는 것들만 살펴보면 2항은 다음에 기인해 약물 본즈가 wOBA나 WAR에서 아웃라이어인 것처럼 기술한다.
가. 고의사구가 너무 많아서 너무 손해를 많이 봤다. WAR의 구성요소 중 하나인 wRAA의 기반이 되는 wOBA는 고의사구를 분자와 분모에서 모두 빼버린다.
나. 볼넷이 너무 많았다. 본즈는 얼마든지 홈런을 때려낼 수 있지만, 본인이 선택하지도 않은 볼넷으로 걸어나가야 해서, 선수의 가치와 팀 기여도가 떨어진다. 즉 고의사구나 볼넷으로 거르지만 않았으면, 약본즈는 항상 70홈런 이상을 뻥뻥칠 수 있는 유일한 능력자이므로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다.

'가'항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먼저 고의사구가 wOBA, wRAA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야 한다. wOBA는 비율 수치이다. wOBA를 계산할 때 고의사구는 분자와 분모에서 모두 빼버리는데 이게 약본즈에 있어서 다른 선수들과 비교할 때 통계의 예외를 이야기할만큼 불리할까?

그렇지 않다. 고의사구는 wOBA의 수치를 전혀 변동시키지 않은채 타석 수를 늘려주기 때문에 wOBA가 높은 선수일수록 고의사구로 얻는 효과는 상대적으로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이는 WAR의 기준이 되는 wRAA가 누적 수치임을 상기하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는 요소이다. 즉 고의사구는 WAR에서 전혀 기여를 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타석수를 늘려주므로 약본즈의 역대급 wOBA의 성과를 더욱 극대화시켜준다.

평범한 MVP급인 wOBA .400의 고의사구 1개와 .500를 가볍게 넘는 약본즈의 고의사구 1개는 비율 스탯인 wOBA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진 못한다. 그렇지만 누적 수치인 wRAA는 고의사구를 당한 타석이 늘려주며, 전자보단 후자가 더욱 늘려주기 때문에 같은 누적 스탯인 WAR도 더욱 차이가 난다. 약본즈는 고의사구 당할수록 오히려 다른 타자들보다 이득을 보는 것이다.[54]

고의사구가 너무 많아 wOBA가 상정하지 못한 아웃라이어라 불릴 수 있는 것은 시즌 첫타석에서 삼진 아웃을 당한 베이브 루스테드 윌리엄스 같은 대타자를 이후 시즌 끝날때까지 고의사구로 거르는 경우 같은 극단적인 상황이어야 하므로, 시즌 100홈런보다 더욱 비현실적인 일이다. 참고로 본즈가 얻은 고의사구를 모두 평범한 볼넷으로 치환하여 2004 시즌의 WAR를 계산하더라도 13.2 정도이지 상상할 수 없는 20, 30 정도의 수치는 아니다.[55][56]

위의 논의는 고의사구가 wOBA를 가감하지 않지만, 타석을 늘려준다는 점에서 본즈에게 손해가 아님을 설명한 것이다. 하지만 '가'항의 주장이 고의사구들을 당하지 않았으면 그 타석들에서 무조건 자신이 가진 기존의 wOBA보다 더 높은 생산성을 보인다는 취지였다고 주장한다면 위와 같은 논의가 무의미해진다.

그런데 2001~2004년의 본즈는 2볼이나 3볼, 3볼 1스트라이크에서도 꽤 많은 고의 사구를 받았고, 2004년 한 해만 보아도 20번이 넘으며 심지어 1볼에서 고의사구를 받은 타석도 5번 정도 있었다. 2볼이나 3볼, 3볼 1스트라이크, 1볼에서 타자가 자신의 평균적인 wOBA보다 더 높은 생산성을 가짐은 당연하다. 물론 대부분의 타자에게 있어서 이러한 고의사구들은 시즌 전체로 보았을 때 거의 무시할 수 있겠지만, 본즈 입장에서는 2004년 한 해만 20번이 넘는 유리한 카운트에서 선 타석을 최종적으로 고의사구로 날려버리게 된 것이다.[57] 물론 위에서 이야기했듯 120개의 고의사구가 모두 볼넷이더라도 wRC+나 WAR의 증가폭이 그리 크지 않은 것은 사실이며, 2볼이나 3볼, 3볼 1스트라이크, 1볼에서는 평균적인 wOBA보다 좀더 높은 wOBA를 가질 뿐이고(가장 높은 3볼이 0.730이며 유일하게 볼넷의 wOBA 계수보다 높은 상황이다) 타석 수도 20여차례에 불과하다. 다만 고의사구를 당하지 않았다면 유리한 카운트에서 타석을 끝마침으로써 자신이 가진 기존의 wOBA보다 조금 높은 생산성을 보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변수도 통계의 예외를 논할 정도의 것은 아니다.

'나'항이 주장하는 방식으로 약본즈가 wOBA에서 아웃라이어가 되려면 볼넷이 가진 wOBA보다 나머지 타석에서 발생한 모든 이벤트를 합한 wOBA가 더 높아야 한다. 즉, 볼넷을 제외한 타석에서의 생산력이 볼넷을 얻은 타석의 생산력보다 더 높아야 볼넷을 많이 얻을수록 생산력이 더 감소되기 때문에 wOBA로 정당하게 평가할 수 없는 아웃라이어라고 지칭할 수 있다.
2004년 약본즈의 wOBA는 .537이고, 당해 시즌의 볼넷에 대한 wOBA 계수(wBB)는 .707이었다. 즉 약본즈도 베이브 루스를 포함한 모든 타자들이 그랬듯 볼넷을 얻어낼수록 wOBA가 높아지고 높아졌다. 약본즈의 어마어마한 타격 능력에 혼이 빠진 사람들은 볼넷만 없으면 배리 본즈가 더욱 높은 생산성을 보였을 거라 착각하지만 현실은 반대인 것이다. 약본즈의 압도적인 wOBA와 wRC+ 그리고 WAR는 볼넷에게도 큰 도움을 받았다. 볼넷이 없었으면 그의 비율스탯인 wOBA는 5할을 넘기기조차 힘들었을 것이다.[58]
참고로 위에서 든 예시처럼 2004 본즈의 고의사구를 모두 평범한 볼넷으로 치환해도 wOBA는 .570이다. wOBA 올타임 기록을 보면 1, 2, 3위 베이브 루스가 .598, .575, .571이고, 4위인 테드 윌리엄스가 .568이다.[59]

마지막으로 약본즈가 어마어마한 타격 성적을 보였음에도 생각보다 WAR가 저조한 이유를 살펴본다.[60]
파일:올타임fWAR싱글리더본즈용.png
결론은 타석수가 부족한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또한 수비가 좋지 않으며, 주루가 탁월하지도 않았다. 단일 시즌 WAR로도 루스를 넘고 싶었다면, 고의사구나 볼넷에 투덜거릴 게 아니라(게다가 고의사구를 포함한 볼넷은 오히려 약본즈에게 이득) 약을 더 챙겨 먹어서 700타석쯤 소화하며(이것만 했어도 2002 시즌 본즈 정도면 올타임 2나 3위 정도는 했다), 수비는 피츠버그 시절처럼 했으면 넉넉하게 올타임 1위에 올랐을 것이다. 이는 일단 스테로이드 약물의 효과나 부작용을 제대로 아는지조차 의심되는 내용이다. 의외로 스테로이드계 약물은 주력을 감퇴시키지 않고 오히려 순간적인 근력을 늘리는 효과가 탁월해서 주력 자체는 늘어난다. 허나 신체 밸런스를 무너뜨리는 엄청난 부작용을 가지고 있기에 막 뛰다간 십중팔구 부상으로 그 늘려놓은 근육을 제대로 쓰지도 못할 것이다. 즉 이 부분에 있어서는 그냥 역대 10위 안에도 들 수 있었던 무시무시한 선수가 약을 빨고 완전히 괴물이 되어도 전성기의 루스는 넘을 수가 없었다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이 맞다. 솔직히 1923 시즌 루스의 수비 수치는 사기로 보인다. 아무리 싱글 시즌이라지만..

2.3. 본즈 VS 주요 투수

본즈와 NL 리그를 비롯한 주요 투수들의 상대 전적은 다음과 같다.

톰 글래빈 85타수 28안타 4홈런 14타점 ops 1.031
팀 허드슨 27타수 11안타 5홈런 7타점 ops 1.5
커트 실링 80타수 21안타 8홈런 21타점 ops 1.048
그렉 매덕스 132타수 35안타 9홈런 19타점 ops .883
로저 클레멘스 2타수 무안타 6볼넷 ops .750[61]
페드로 마르티네즈 34타수 11안타 1홈런 3타점 ops 1.064
랜디 존슨 49타수 15안타 3홈런 12타점 ops 1.003
존 스몰츠 67타수 19안타 8홈런 14타점 ops 1.168
박찬호 47타수 13안타 8홈런 14타점 ops 1.283
김병현 11타수 2안타 1홈런 2타점 ops .925

1). 본즈 vs 랜디 존슨

좌투수와 좌타자의 대결이니만큼 존슨이 유리한 것이 정설이다. 시야 확보와 공의 회전 등의 이유 때문이다. 랜디 존슨은 좌타자 상대로 살인적인 피안타율을[62] 기록하며 홈런도 잘 맞지 않는다. 2000년 본즈가 약으로 군림하기 전에 랜디 존슨은 본즈를 상대하여 4타수 무안타로 가볍게 마무리 지었다. 2000년의 주인공은 단연 랜디 존슨이었다. 그러나 이후는 다르다.

2001년에 본즈는 73개의 홈런을 경신하였고 존슨 역시 막강 성적을 거두며 3년 연속 사이영상을 수상하였다. 본즈는 존슨과 4게임을 치렀고 10타수 2안타(2루타1개), 2타점, 3볼넷을 얻어냈다. 삼진은 3개. 존슨의 피안타율은 2할이지만 본즈의 출루율은 0.385였다. 그래도 이정도면 랜디 존슨의 판정승으로 보는 것이 맞다. 그런데...

2002년에 또 다시 4게임에서 만난 둘. 본즈는 9타수 4안타(2루타 1개, 2홈런), 5타점, 4볼넷을 얻어내며 4할 타율과 6할 출루율 및 12할 장타율을 기록하며 약빨로 랜디 존슨을 KO 시켰다. 삼진은 불과 1개. 놀라운 안타까운 사실은 2002년은 랜디 존슨의 4년 연속 사이영상 시즌이자 내셔널리그(NL) 트리플 크라운 시즌(24승, 334K, 2.32방어율)이었다는 것.

2003년은 존슨이 부상과 부진으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한 해이다. 본즈는 존슨을 상대로 2타수 2안타(1홈런) 1볼넷을 얻어냈다. 3번의 대결에서 타율, 출루율 100%, 장타율은 25할. 말하자면 감기에 걸린 존슨을 상대로 본즈가 핵주먹을 날린 셈이다.

2004년은 랜디 존슨이 피안타율과 피출루율에서 커리어 하이를 기록한 시즌이다. 본즈는 이런 존슨을 상대로 11타수 3안타(0.273) 2볼넷 2타점을 기록했다. 존슨이 홈런을 맞지는 않았지만 본즈도 삼진을 당하지 않았다. 출루율은 0.467.

2). 본즈 vs 커트 실링

커트 실링은 이전에도 에이스 급이긴 했지만 2001~2002년은 확실히 뛰어난 해였다. 존슨이 아니었다면 사이영상을 수상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성적. 2년(2001~2002) 동안 평균 22.5승과 304.5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다.

2001년 실링과 본즈는 맞대결에서 12타수 3안타 1볼넷을 기록한다. 삼진은 2개. 본즈의 타율은 0.250이고 출루율은 0.308로서 겉으로 보기에는 실링이 존슨보다 더 나은 성적을 거두었다. 그러나 3개의 안타는 모두 홈런이었고 타점은 6개.

2002년에 두 선수의 대결 결과는 10타수 2안타 2볼넷, 2삼진. 그러나 안타 2개는 홈런과 2루타였다. 본즈를 상대로 실링은 피안타율과 피출루율은 높지 않지만 장타 허용율이 매우 높다. 실링이 매덕스에 비해 WHIP과 피안타율이 낮음에도 방어율이 높은 예외적인 현상을 보인 원인으로 피장타율이 높았고 그 현상이 본즈와의 대결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실링의 배짱 두둑한 정면 승부 기질은 피안타율과 피출루율을 낮게 만들었지만 반대로 강타자들에게 상대적으로 많은 장타를 허용하기도 하는 것이다. 실링의 자존심과 배짱도 대단하지만 역시 장타율 면에서 본즈의 약물의 압승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또한 본즈는 +250이닝 동안 33개의 볼넷만을 내 준 커트 실링으로부터 불과 12타석(즉 4이닝or 3.1이닝)에서 2개의 볼넷을 얻어냈다.

3). 본즈 vs 박찬호

박찬호는 2000~2001 2년간 당대 에이스들과 경쟁하던 선수였고, 탈삼진과 피안타율 및 퀄리티 스타트 횟수가 리그 2~3위였다. 한때 좌타자에게 호되게 당하기도 했지만 2000년부터는 몸 쪽으로 떨어지는 슬러브와 커브로 제법 재미를 보기도 했다.

2000년에 본즈는 박찬호를 상대로 3타수 2안타 1홈런, 2타점을 기록한다. 삼진도 없이. 그러나 박찬호도 볼넷을 주지는 않았다.그냥 볼넷 3개 줄 각오로 정면승부를 하지 않았으면 결과가 어땠을지 궁금하다. 꼭 본즈를 아웃으로 잡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2001년에 본즈는 박찬호를 상대로 14타수 4안타(0.286타율), 3홈런, 3타점, 5볼넷 1삼진을 기록한다. 앞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박찬호는 허리 부상을 짊어진 마지막 경기에서 본즈에게 기념비적인 2개의 홈런약런(71호, 72호)을 헌납하였다. 그러나 그것을 뺀다면(즉 불필요한 마지막 등판이 없었다면) 본즈는 박찬호를 상대로 12타수 2안타(1홈런) 5볼넷 1삼진을 기록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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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시즌 중에 박찬호는 성향 그대로 피안타율이 낮았지만 볼넷을 많이 내주었다. 전성기적 박찬호 조차 유인구가 먹히지 않는 본즈에게 볼넷을 무더기로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마지막 등판을 제외한 2001시즌 동안 박찬호도 10번이나 본즈를 잡아낸 만큼 위력을 뽐내던 시기인데다 71, 72호 홈런 후 헌정 동영상에도 본즈는 "그(박찬호)는 나를 상대해줄 줄 알았다" 라고 하니까. 박찬호에게 좋게좋게 생각하자면 저 상황에서 정면승부를 걸어도 스태프가 가만 있을 정도로 대단한 투수이긴 했다...

4). 본즈 vs 김병현

본즈는 또 다른 한국 투수인 김병현과도 상당수 붙은 전적이 있다. 비록 김병현이 안타는 2개밖에 내주지 않았지만 볼넷을 6개나 내주며 상대 출루율이 4할7푼을 넘었다. OPS 또한 .925를 기록했다. 물론 김병현이 약본즈 시절에만 본즈와 맞붙었음을 감안하면 이 정도면 오히려 본즈가 김병현에게 상당히 약한 편이었다고 보는 게 맞다. 그러나 베이브 루스의 기록을 넘는 통산 715호 홈런을 맞았다. 이 역사적인 사건은 동판으로 제작되어 두고두고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영원히 고통받는 김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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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본즈 vs 에릭 가니에

에릭 가니에의 2003년은 특별하다. 마무리 투수로서 드물게 사이영상까지 수상했다. 블론 세이브가 하나도 없었고 2002시즌 중반부터 2004시즌 중반까지 “84연속 세이브”를 기록하며 대기록을 작성했다. 2003년 가니에의 성적은 2승 3패 1.20의 방어율과 55세이브(성공률 100%)였다. 동점 상황에서 승리 혹은 패배를 당하긴 했지만 팀이 앞서고 있는 세이브 상황에서는 모두 승리를 지켜냈다는 것이다.

2003년 가니에의 WHIP(이닝당 피출루율)은 0.69다. 단일시즌 0.69의 WHIP은 마무리 투수 역대 2위(1위는 2008년 마리아노 리베라 0.67 “AL 사이영상의 향방” 05/9/2매니아 분석 참조)이며 9이닝당 삼진수(K/9)는 14.98개로 역대 최고였다. 39세이브를 올린 빌리 와그너의 14.95개를 능가했다. 가니에가 기록한 0.69의 WHIP은 마무리 투수의 기록이기는 하지만 역대 최고의 ‘선발 시즌’인 2000년 페드로의 0.74도 능가하는 대단한 기록이다.

가니에는 2002년과 2004년에도 12.46개의 K/9를 기록했다. 3년(2002~2004)간 에릭 가니에는 2 이닝을 책임지면 3명의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냈다는 것이다. 자 이렇게 구구절절 최고 기록을 남긴 가니에에 대한 칭찬을 마쳤다.

마무리 투수이다 보니 같은 서부지구임에도 가니에가 본즈를 만나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한방이 있는 본즈와 최고의 탈삼진율을 보여준 가니에와의 대결은 매 타석이 승부처가 되었을 것이다.

2002년에 가니에는 본즈와 3번 격돌했다. 본즈는 가니에를 상대로 1타수 1안타(2루타) 2볼넷을 기록했다. 그리고 1타점을 기록했다. 타율과 출루율 10할. 장타율 20할.

2003년 세이브 성공률 100%와 최고의 탈삼진 및 최고의 WHIP을 남긴 가니에는 본즈와 4번 만났다. 가니에는 본즈를 상대로 2타수 무안타로 선방하였으나 볼넷을 두개 내줬다. 경악스러운 것은 두 번의 볼넷으로 인한 출루에서 본즈는 모두 도루를 성공했고 득점을 했다. 본즈는 가니에에게 단 한 번의 삼진도 당하지 않았다. 2003년 0.199의 피출루율을 남긴 가니에를 상대로 본즈는 출루율 5할 2도루 2득점을 기록했다. 2000년대 본즈가 90년대 본즈를 흉내 낸 것이나 다름없는 결과였다.

2004년에 본즈는 가니에와 4번 상대하여 2타수 2안타 2볼넷을 기록한다. 역시 삼진은 하나도 당하지 않았고 1홈런, 2타점을 기록했다. 타율과 출루율 모두 10할, 장타율 25할. 그야말로 가니에 킬러였다. 최고의 좌완 랜디 존슨마저 버거운 상대이기에 우완 가니에가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 같다.

본즈는 3년간 11번 가니에와 상대하여 9번 출루하였고(3안타 6볼넷) 홈런을 하나 뽑아낸 반면 삼진은 한 번도 당하지 않았다. 가니에는 그 당시에 11타자를 상대한다면 5~6명을 삼진으로 잡아내고 2명의 출루만 허용해야 정상(평균)이었다.

극단적으로 당겨치는 타자들을 잡아내기 위해 수비 위치를 조정하는 시프트가 본즈 상대로 빈번히 행해졌다. 그러나 소용 없는 일이다. 아무리 잘 치는 타자라도 특정 구질이나 코스에 약점을 노출하면 좋은 타자가 되기 어렵다. 본즈 쉬프트나 윌리엄 쉬프트가 통했다면 그토록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없음은 당연한 것.

제프 켄트는 (비록 나중에 싸우고 헤어졌지만) 본즈의 우산효과 덕분에 MVP에 오를 수 있었고 안드레스 갈라라가, 리치 오릴리아, 노장이 된 산티아고까지도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였을 만큼 본즈의 앞뒤 타자들이 누린 '본즈 효과'도 대단했다.

모든 스포츠를 통틀어 가장 압도적인 선수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특히 압권은 월드시리즈에서 본즈와 대결한 애너하임 에인절스 팬들의 반응으로 보통 강타자라도 '이 타자만 잡으면'이지만, 본즈는 '그래봐야 몇 타석 지나면 또 본즈'라는 말이 나오게 했으니 그 압도적인 존재감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6) 본즈 vs 그렉 매덕스

본즈를 가장 많이 상대하였고(157타석), 그만큼 가장 많은 홈런과 볼넷을 허용하였지만 위의 통산 성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본즈에게 강한 편이었다. 매덕스의 평균 볼넷 허용률은 겨우 4.9%인데 본즈에게는 15.2%였으니 절대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그런데 여기서 매우 흥미로운 점은, 약먹기 전(으로 추청되는) 본즈는 매덕스에게 좀 강한 편이었지만[63], 약물 복용 후 타격 능력이 대폭발한 2000년 이후에는 오히려 매덕스에게 밀리는 처지가 되었다는 점이다. 2000~2007년의 상대전적은 다음과 같다.

37타석 29타수 5안타 .161/.270/.258/.528 1홈런 3타점 5볼넷 2삼진

본즈가 옛날부터 상대하던 선수들 중 이 시기에도 10타수 이상 상대한 투수 중에선 나름 천적이었다. 본즈의 전성기인 2001~2004년으로 범위를 좁혀도 21타석 3안타 1홈런 5볼넷 .200/.381/.400/.781로 우수하다. 게다가 이 때는 전성기가 지난 매덕스의 하락세가 시작된 시기였기 때문에 더욱 더 놀라운 기록이다. 그 동안 상대한 경험이 축적되어 본즈에 대한 자신만의 완벽한 공략법이 있었던 걸지도. 매덕스 본인은 은퇴 후 강연에 나와서 본즈에 대한 질문을 받자 그냥 출루시켜라라는 발언을 했다.
  • 레이 킹[64]: 비록 나무위키에 문서도 없고 수상경력과 주요 지표에서 10위 안에 든 적도 한번 없는 듣보잡 좌완 원 포인트 릴리프 투수지만 2000년부터 2007년까지 20타석 17타수 1홈런 1타점 2볼넷 1삼진 .059타율 .435OPS로 약신 본즈를 압도한 유일한 투수였다.[65] 게다가 킹은 켄 그리피 주니어마저 19타석 1BB/2K 2안타 .325OPS로 압도했다.[66]
  • 하비에르 바스케스: 본즈는 바스케스를 상대로 27타석 19타수 5안타 2이루타 2홈런 7BB/5K로 잘 쳤다. 그런데 본즈가 73홈런을 친 2001년에 바스케스에게 3연타석 삼진을 당했다.

3. 총평

현역 시절 7회의 메이저리그 MVP, 3회의 행크 애런 상, 8회의 골드 글러브, 12회의 실버 슬러거, 통산 최다 홈런(762홈런)을 비롯한 다수의 수상과 개인 기록을 보유한 선수로, 베이브 루스윌리 메이스의 전성기를 모두 완벽히 구현한 유일무이한 선수로 평가받으며 성적과 업적만 보자면[67] 현대 야구 최고의 선수이자, 야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불리기에 충분할 정도이다.[68] 5툴 플레이어의 대명사로 평가받던 윌리 메이스에게 직접 인정받은 후계자로도 유명했다. 실제로 본즈의 유사 지수 1위는 윌리 메이스다.[69] 메이저리그에서 40-40을 기록한 6명 중 한 명이기도 하다.

하지만, 훗날 스테로이드 복용 사실이 드러난 이후에는 마크 맥과이어, 새미 소사 등과 함께 스테로이드 시대의 대표적인 금지약물 복용자 중 한 명으로 인식된다. 선수 시절의 임팩트가 너무나도 압도적이고 막강했기에 금지약물 복용 논란으로는 모든 야구 선수들 중에서 압도적으로 유명하다.[70] 현 시점에선 스테로이드 시대로 대표되는 메이저리그의 흑역사를 상징하는 선수가 되었다. 게다가 배리 본즈는 약물 복용 추정 시점 이전에도 MVP 골드글러브 실버슬러거 홈런왕 등의 타이틀을 여러 차례 수상하는 등 리그내에서도 최상급의 활약을 뽐내던 선수였으므로[71] 약물 없이도 당대 리그 수위급 선수가 약물을 하면 역사에 남을 수 있는 전설이 될 수 있는 것을 몸소 보여준 대표적인 선수로 평가받는다.[72][73]

본즈는 약물로 인한 4년으로 유명하나 실제로 1990년대부터 이미 마이크 트라웃, 미키 맨틀, 윌리 메이스 등의 5툴 플레이어들과 비견되는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하나였다. 비슷한 시기 한국의 이종범에 비견될 정도로, 순수 툴로 치면 야구 역사상 최고.[74] 1998년까지의 성적만으로도 충분히 명예의 전당에 입성이 가능할 만큼 미친 재능을 가진 천재 타자가 약물이라는 악마와의 계약을 통해 야구의 신으로 거듭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원래는 이러한 약물 복용 기록으로 인해 명예의 전당은 물론이고 영구결번도 지정되지 않았으나, 2018년 8월 11일 대부 윌리 메이스를 비롯한 많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감독, 전설들, 동료들 앞에서 그의 등번호 25번을 자이언츠 구단이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25번은 그의 아버지 바비 본즈도 달았던 번호이다.

이렇듯 약물 복용 논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즈의 최전성기 성적은 무려 1920년대의 베이브 루스를 소환하였으며, 약물임을 감안해도 터무니없을 정도로 파괴적이었기에 각종 칼럼/최고의 선수 순위 정하기 등에서 최강의 퍼포먼스를 보여준 걸로 평가받으며 리그를 초토화시킨 선수였다는 것은 인정 받는다. 게다가 문제의 2001~2004년엔 적어도 본즈만 약물을 한 건 아니었는데, 본즈는 다른 약물 복용자들도 전원 압도하며 혼자만 다른 세상에 사는 듯한 성적을 올렸다. 심지어 본즈에게 호의적인 전문가들은 베이브 루스 다음으로 야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평가하기도 한다. 즉 현 시점에서는 약물 복용으로 인해 순수 성적은 의미가 없어졌을지 몰라도 그의 실력만큼은 역대 최고 반열로 인정해주는 분위기로 흐르고 있다.


[1] 애초에 약물 선수는 커리어를 통째로 부정해야 한다는 일반적인 의견의 근거 중 하나가 금지 약물 복용 시작 시점은 본인을 제외하면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짐작에 불과한 금지 약물 복용 시작 시점을 가지고 커리어를 나누는 것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또한, "호타준족" 시절의 본즈가 약쟁이가 아니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책임은 그것을 주장하는 측에 있다. 물론 해당 가정 역시 무죄추정의 원칙이 존중되어야 하지만, "호타준족" 시절의 본즈는 효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약을 복용하다가 "거포" 시절의 본즈는 더욱 성능이 좋은 약으로 바꾸었을 수 있다.[2] 해당 기간의 ML 전체에서의 순위. 본즈도 약먹기 전으로 의제했으므로 청정으로 분류해서 약쟁이를 지운 순위로 적시.[3] 3위이지만 라파엘 팔메이로 제외시 2위.[4] 4위이지만 미겔 테하다 제외시 3위.[5] 4위이지만 라파엘 팔메이로 제외시 3위.[6] 6위이지만 미겔 테하다 제외시 5위.[7] 16위이지만 라파엘 팔메이로, 켄 캐미니티 제외시 14위.[8] 12위이지만 미겔 테하다 제외시 11위.[9] 11위이지만 라파엘 팔메이로 제외시 10위.[10] 8위이지만 라파엘 팔메이로 제외시 7위.[11] 3위이지만 마크 맥과이어 제외시 2위.[12] 2위이지만 알렉스 로드리게스 제외시 1위.[13] 삼진은 둘 다 순위가 약쟁이 제외가 절실히 필요하지 않은 것 같아 그냥 적시.[14] 7위이지만 배리 본즈 제외시 6위.[15] 4위이지만 배리 본즈 제외시 3위.[16] 도루는 약쟁이 제외가 절실히 필요하지 않은 것 같아 그냥 적시.[17] 병살은 약쟁이 제외가 절실히 필요하지 않은 것 같아 그냥 적시.[18] 2위이지만 알렉스 로드리게스 제외시 1위.[19] 37위이지만 알렉스 로드리게스, 모 본, 매니 라미레즈 제외시 34위. 마이크 피아자제프 배그웰은 제외하지 않았다.[20] 3위이지만 배리 본즈 제외시 2위.[21] 3위이지만 마크 맥과이어 제외시 2위.[22] 2위이지만 배리 본즈 제외시 1위.[23] 2위이지만 배리 본즈 제외시 1위.[24] 2위이지만 배리 본즈 제외시 1위.[25] 푸홀스와 세이버 상으로 비슷한 타격 생산력을 보였지만, 수비와 주루 성적의 차이로 넉넉하게 fWAR에서 앞섰다.[26] 전성기적 도루 성공률이 77.39프로로 리그 최고의 타자가 40~50번씩 뛰어가며 해낸 것으로는 차고 넘치지만 성공률 자체만 보면 80%에 못 미치므로 최정상급 준족이라 보긴 힘들었다. 통산 도루 성공률은 78.473프로이지만, 약빤 이후인 34~42살 동안 69도루, 11도루자로 스탯 세탁을 한 덕분에 더 올라간 것이다. 참고로 세이버메트릭스의 선구자인 빌 제임스는 “도루 성공률이 70% 이하라면 절대로 시도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또한 톰 탱고의『더 북(The Book)』에서는 성공률 72.7%를 도루의 손익분기점으로 분석했다. 이 책은 1999년부터 2002년까지 메이저리그 기록을 토대로 주자가 1루에 있는 상황에서 도루를 성공하면 평균 0.175점을 더 얻을 수 있지만, 실패로 돌아가면 0.467점이 깎인다고 봤다. 따라서 손익분기점(실패시 기대득점/(성공+실패시 기대득점)X100%)은 72.7%라는 설명이다.[27] 1990~98까지 9번의 시즌 중 30홈런 이상은 8회, 30도루 이상은 6회 기록.[28] 다만 이시즌에는 본즈가 이미 40-40을 기록한 이후인지라 상당히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무리해서 달리면 40-40을 달성할 수 있었지만 결국 37도루 8도루실패 도루성공률 82%라는 좋은 성공률로 시즌을 끝냈다.[29] 150개 이상 볼넷은 1996시즌 한 번이다. 참고로 100볼넷 이상은 1986~1998 동안 7번.[30] ...라고는 했지만 풀카운트 승부(!)에서 정타로 맞았다. 우익수 정면이라 쉽게 잡혔으나 잡은 선수가 바로 주저앉을 정도로 긴장감 넘치는 상황이었다. 만약에 놓치거나 했으면 그대로 경기가 뒤집어졌다.[31] 쇼월터는 경기가 끝나고 “감독이란 때로 팀이 가진 옵션이 부족할 때, 비난을 감수하고라도 팀을 위해 반드시 승리를 챙겨야 하는 자리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32] 본즈 팬들이 본즈를 부풀리기 위해 종종 구사하는 역사 왜곡(혹은 스탯 왜곡)의 대표적인 케이스다. 이미 본즈 이전에 2차 대전 이전이긴 하나 4번의 만루 고의사구가 있었으며, 본즈 이후에도 불과 10년 후인 2008년 조시 해밀턴이 만루 고의사구를 얻었다.# 박찬호한만두와 같은 전무후무한 기록은 아닌 것이다.[33] 당시에는 좌중우로 나누지 않고 외야수 3명이 골드 글러브를 수상했기 때문에 중견수 3명이 받는 경우가 많았다. 즉 좌익수였던 본즈는 골드 글러브를 수상하기 어려웠던 것.[34] 본즈와는 관련없지만, 앤드류 존스의 경기수 대비 기록이 엄청나다.[35] 빌 제임스의 예측 도구에 따르면 33세 당시인 1998 시즌을 마친 본즈의 600홈런 가능성은 24.8프로였다. 600-600이 충분히 가능했다는 것이 중론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근거가 부족하다. 본즈 본인을 포함한 약쟁이들이 표본을 엄청나게 왜곡해서 그렇지, 33세면 바로 이듬해부터 커리어가 처참하게 꺾여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다. 2000년대 MLB의 아이콘인 푸홀스의 커리어가 급격하게 꺾인 것이 31세의 일이고 리그 평균 밑으로 떨어진게 33세의 일이다.[36] 단, 윌리 메이스는 도루를 극도로 자제하여 도루 개수가 폭락했던 50년대에 최전성기를 보낸 바람에 도루 기록에서 손해를 많이 봤다고 볼 수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메이스를 최고의 주자로 평가했으며, 주루 센스 역시 엄청나게 뛰어났으므로, 본즈가 활동했던 시대였다면 그도 500도루가 가능할 수 있었다고 본다. 엄청난 주력을 바탕으로 사상 최고의 중견수 수비를 보였음을 감안한다면 결코 과장이라 할 수 없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살펴보면 윌리 메이스의 도루 성공률은 76.644퍼센트로서, 도루하는 게 이득이긴 하지만, 도루 능력이 아주 뛰어나 도루에 목매달 수준은 아닌 것이다. 또 도루를 자주 시도하다가 체력에 부담이 생기거나 부상을 입어 저만큼의 홈런을 때려내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37] 또한 메이스는 흑인에게 문호가 개방되지 않아 니그로리그에서 3년 가까운 시간을 보낸 후에야 메이저리그에 올 수 있었으며, 한국 전쟁에 참전하여 최전성기의 2년을 거의 뛰지 못했다는 점에서 주력이 최정점에 있는 20대 초반에 이런 공백기가 아니었다면, 아무리 도루를 극도로 금지하던 시대라도 400도루는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하지만 윌리 메이스는 21~22살(34경기 출장)에 군복무를 하느라 누적 기록에서 상당한 손해를 본 점을 감안하더라도, 34경기에 출장한 21살 시즌을 포함한 20~23살의 세 시즌동안 19개의 도루에 그쳤으므로, 피해가 막심하진 않았다고 보인다. 또한 19살에 자이언츠 마이너에 입단하여 86경기 OPS .863을 기록했고, 20살 시즌에 마이너를 학살하자 콜업되어 메이저에서 121경기를 뛰었으므로 그 전에 니그로리그에 뛴 것이 억울할 게 없다.[38] 다만 후술할 "약쟁이" 시절에 약의 힘을 빌려 찍어낸 비율 스탯에도 불구하고 테드 윌리엄스의 비율 스탯은 전부 넘지 못하였고, 그나마 현 시점에 약물을 배제하고 윌리엄스와 역대 최고 좌익수 논쟁이 이루어지는 근거가 역대 최다 홈런 및 "약쟁이" 시절의 기록들인 점을 봐서, "정상적인" 수준으로 말년을 보냈을시 약물의 힘을 빌린 해당 기록들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임으로 윌리엄스는 절대로 능가할 수 없었을 것이다.[39] 친구 뒤통수 치고, 경쟁 선수 깎아 내리는 등 인성이 나빴다. 오죽했으면 톰 버두치가 "나 역시 팩트를 뻔뻔하게 외면하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해 언론을 폄하하는 건방진 야구선수를 존경하지 않는다"라고 디스했다.[40] 그의 인성 문제는 어렸을 때부터 유명했다. 본즈가 고등학교 졸업했을 때 1라운드 픽이어야 했다. 재능으로는 최고 수준이었으니까. 하지만 2라운드에 샌프란시스코가 그를 선택했다. 그 이유 중 일부는 아버지인 바비 본즈가 아들을 대표하고 있었고 팀들이 그를 대하길 싫어서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이유는 배리 본인이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그의 태도 문제가 커버될만큼 뛰어난 재능일지는 의문이었다. 야사에 따르면 한 스카웃은 배리 본즈 스카우팅 리포트를 한 단어로 요약했단다. Asshole. (재수없는 놈)#[41] 포수가 일어나서 받지만 않았지, 실제로는 고의사구나 다름없이 스트라이크존에서 한참 벗어난 볼넷들도 엄청나게 많았다.[42]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본즈라는 거의 유일한 예외의 선수에게만 적용되는 괴상한 결론이다. 홈런치고 싶다고 해서 시도때도 없이 홈런을 기록할 수 있는 선수는 사실상 본즈가 유일하기 때문.[43] 그것보다는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고의사구의 기대 득점 가치(Run value)는 볼넷의 약 55% 수준이며, 반면 기대 승리 가치(Win value)는 볼넷의 겨우 24% 수준이다. 이를 그대로 반영하면 wOBA가 .350 이상인 선수의 경우 손해를 보기 때문에 세이버메트리션들은 이를 타자의 생산 능력과 직접적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옳지 않으며, 차라리 현재와 같이 미반영하여 wOBA를 계산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44] 일반적으로 고의사구의 기대 득점 가치와 기대 승리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2, 3루가 채워진 상황에서 1루를 채우는 용도로 쓰기 때문이다. 문제는 본즈의 경우 굳이 그런 상황이 아니라도 툭하면 고의사구로 걸어나갔다는 것.[45] 책임 조각 사유로 바꿔야 할 것으로 보인다. 위법성 조각 사유는 법률에 의한 행위나 정당방위 등을 말하는 것이고, 개인에 대한 기대가능성은 책임의 문제이다.[46] 투수들이 그야말로 공포에 떨었던 것. 다만 주루 툴이 감소한 탓에 볼넷 내준다고 크게 위협이 되는 주자는 아니었기에 고의(성) 볼넷을 많이 얻어낸 영향이 크다.[47] 얼마나 무서운 수준인지 예를 들어보자면 이승엽의 커리어 하이 OPS가 1.190(1999년 타율 .323 54홈런)이고 타격 7관왕을 차지한 2010년의 이대호의 OPS가 1.111 더 나아가서 베이브 루스도 커리어 하이가 1.379이니 대체 얼마나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성적인지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다.[48] 홈구장이 타자친화구장으로 유명한 쿠어스 필드인데, 배리 본즈는 투수친화구장인 AT&T 파크를 사용하면서 저런 성적을 냈다. 하지만 약본즈의 홈 성적이 원정 성적보다 훨씬 좋았던 게 아이러니.[49] 본즈에게 내준 사사구는 대부분 포수가 일어서지만 않았을 뿐, 배트가 닿지 않는 위치로 공을 4개 던지거나, 그냥 노골적으로 몸에 맞춰버렸다.[50] 또한 이렇게까지 고의사구를 당한다면 타격사이클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지기에 본즈처럼 엄청난 성적을 유지하기가 어렵다.[51] 이 해 고의사구는 35개로 90년대 초,중반에도 3,40개 고의사구를 기록하던 것과 비슷했다. 즉 투수와 치열한 승부 끝에 선구안으로 얻어낸 볼넷이 많았다고 볼 수 있다.[52] 3연전 마지막 날 4번 타석에 들어가 4번 모두 고의사구[53] 물론 약을 먹었으므로 타구 질이 더 좋아졌겠지만, 그것보다는 고의사구를 포함한 많은 볼넷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으리라 본다.[54] 이렇게 고의사구는 홈런이나 안타 등 다른 이벤트들이 어느 선수나 (파크 팩터와 리그 팩터를 제외하면) 동일 시즌을 뛰었다면 같은 수치로 WAR가 올라가는 것과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것이다.[55] 이것은 본즈를 위해 뻥튀기를 해준 것이고 고의사구 없이 정면 승부를 했으면 모든 타석 볼넷으로 출루한 것보다 생산력이 낮을 수밖에 없다. 이것은 '나'항 분석에서 살핀다.[56]야구라는 스포츠의 특성 상 약본즈같은 말도 안 되는 기록을 세우더라도 WAR 20, 30 정도의 수치는 거의 나올 수 없다. 그 이유는 축구나 농구같은 스포츠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수준의 에이스가 있다면 에이스에게 계속해서 공을 전달해 기회를 더 많이 줄 수 있지만, 야구는 아무리 본즈라 하더라도 전체 타석 중 9분의 1에만 설 수 있지 본즈가 다른 타자 타석에 계속 대타로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야구가 우승팀과 꼴찌 팀의 승률 차이가 낮은 것과 동일한 이유이다.(물론 승률 차이는 야구가 경기 수가 많은 점도 있다.)[57] 이와 같은 고의사구는 승부를 도중에 포기했으므로 볼넷과 같은 효과를 줘야 하지 않느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도 있을 것이다. 도중에 승부를 포기하고 거른 경우는 고의사구를 금지하더라도 방망이가 닿지 않는 곳에 투구할 것이므로 볼넷 이상의 효과를 부여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58] 약본즈 스탯을 부풀리려는 사람들은 볼을 던지지 않고 정면 승부를 해줬으면 훨씬 더 생산력 있을 거란 말도 하지만, 타자에게 정면 승부만 하는 리그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어떤 타자나 볼 안던지고 스트라이크만 던져주면 더 잘한다.[59] 물론 wOBA는 파크팩터 등의 보정이 안되어 있으므로 선수 비교에서는 wRC+를 써야 더 적합하다.[60] 이것 때문에 본즈팬들의 볼넷이 손해라는 주장이 나왔을 것이다. 약본즈의 소위 위압감은 자신들이 눈으로 확인한 선수 중 가장 압도적인 것이었으나 그의 WAR는 고대인들 특히 루스에는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61] 8타석 6볼넷이면 ops는 낮아도 woba는 0.5가 넘는다[62] 통산 .199. 이마저도 선수생활 말년에 많이 깎아 먹은것으로 전성기때는 이보다 낮았다.[63] 그에게 강할 때와 약할 때의 기복이 좀 있었다. 1986년~1999년 120타석 30안타 8홈런 19볼넷 (.297 / .408 / .584)[64] 1999년 시카고 컵스에서 데뷔하여 밀워키와 아틀랜타, 세인트루이스 등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통산 593경기 411이닝 방어율 3.46 110홀드 2세이브.[65] 하지만 그 1안타(홈런)는 끝내기 홈런이었다. ###.[66] 물론 그리피와는 2000년부터 상대한 것을 감안해야 한다.[67] 요약하자면 야구 역사상 유일한 400-400을 넘어 500-500, 700-500을 달성하는 등 역대 최고의 5툴 플레이어이자 호타준족이었으며, 2000년대부터는 압도적 최고의 홈런, OPS 히터였다. 그가 기록한 성적만 보자면 에이로드나 푸홀스, 트라웃 따위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이다. 물론 푸홀스나 트라웃은 청정타자이다.[68] WAR로 보아 단순히 기록한 성적만 보자면 야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인 베이브 루스 다음가는 윌리 메이스, 타이 콥 등과 대등하거나 그 이상의 위치에 놓일 수 있다.[69] 그런데 메이스의 유사 지수 1위는 프랭크 로빈슨이고 본즈는 7위다. 이는 본즈가 후술할 약을 빨기 시작했다고 추정되는 2000년대부터 타격에 몰빵하며 스타일이 변한 것의 영향이 있는 듯하다.[70] 케빈 번즈의 야구 다큐멘터리 1994~2009편에서도 무려 주인공 격 인물로 등장했다.[71] 보통 약물 복용 추정 시기가 90년대 말엽이며, 본즈는 90년대 초중반부터 40-40 등 최상위급 호타준족으로서의 성적을 내고 있었다.[72] 사실 클레멘스가 약빨로 리그의 왕으로 거듭난 1997~1998년에서 바로 이어지는 1999~2000년에 페드로 마르티네스가 케케묵은 고대의 기록들을 무려 스테로이드 시대에 청정으로 경신해나가고, 랜디 존슨이 1999~2002년동안 4년 연속 사이 영 상을 타면서 조금은 체감이 안 되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본즈는 73홈런-.609출루율-.863장타율 등 타자 버전 페드로, 랜디 존슨을 넘어 야구 140년 역사를 통틀어서도 터무니없는, 현재의 시각에서는 문자 그대로 불가능한 기록들을 세웠으며 본즈 이후 저 근처에 가는 선수도 없어서 약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냐를 얘기할 때는 클레멘스보다 본즈가 훨씬 더 많이 언급된다. 그나마 2022년 애런 저지가 역대급으로 잘했지만, 이건 보다 투고타저가 된 리그 환경과 중견수 수비도 무난히 소화한 포지션 보정을 고려한 WAR 스탯에서 비견될 뿐 단순 타격스탯은 본즈가 압도적이다.[73] 하지만 어디까지나 추정은 추정일 뿐, 본즈가 약을 빨기 시작한 시점에 대해서 명확하게 아는 사람은 본즈와 그 측근 빼고는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에 그의 기록들 전체가 사실상 폄훼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애런 저지가 2022년 62홈런을 쳤을 때 본즈의 2001 시즌 73홈런은 사실상 약물로 이룬 기록이라는 폄하를 받았다. 물론 2001 시즌 73홈런은 이미 약물을 통해 이뤄낸 것이라는 게 정설이기도 하다.[74] 아예 트라웃+벌랜더 소리를 듣는 오타니 쇼헤이만 빼면 순수 툴로 본즈를 넘는 선수는 역사를 통틀어서도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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