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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북도의 시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fff><tablebgcolor=#fff> 사리원시 沙里院市 Sariwŏn City |
<colcolor=white><colbgcolor=#ED1C27,#222222> 행 정 구 역 | <colbgcolor=#ED1C27,#222222><colcolor=white> 상위 | 황해북도 |
하위 | 31동 9리 | |
주 요 인 물 | 대의원 | |
시당 | 김봉남[1] (사리원시당 책임비서) | |
인민위 | 최성봉[2] (사리원시 인민위원회 위원장) | |
면적 | 187.91㎢ | |
시간대 | UTC+9 | |
인구 | 307,764명 (2008년) | |
인구밀도 | 1,688명/km² (2008년) |
[clearfix]
1. 개요
사리원 시내(2019년)[3] |
대한민국에서는 의정부시가 사리원시와 가장 유사한 도시 구조를 보이고 있다. 의정부시와 사리원시가 해당 도의 제2청사(황해북도도 황해도에 속하면 해주-사리원 이원체제) 위치이기도 하고, 남북 분단 상황에서 (개성을 제외하고) 각각 접경지에 가장 가까운 지역 중심 도시라는 점이 같다.
대한민국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과 동일한 위도에 위치해 있다.
2. 외국어 표기
<colbgcolor=#ddd,#222> 언어별 명칭 | |
한국어 | 사리원 |
영어 | Sariwon |
프랑스어 | Sariwŏn |
스페인어 | Sariwon |
러시아어 | Саривон |
중국어(간체자) | 沙里院 (Shālǐyuàn) |
아랍어 | ساريوون |
광동어 | 沙里院 (saa1 lei5 jyun2) |
마인어 | Sariwon |
몽골어 | Сариун |
베트남어 | Sariwon |
일본어 | 沙里院 / サリウォン |
중국어(번체자) | 沙里院 (Shālǐyuàn) |
태국어 | ซารีว็อน |
페르시아어 | ساریوون |
히브리어 | סריוון |
힌디어 | सारिवोन |
그리스어 | Σάριον |
네덜란드어 | Sariwŏn |
독일어 | Sariwŏn |
스웨덴어 | Sariwon |
이탈리아어 | Sariwon |
튀르키예어 | Sariwon |
포르투갈어 | Sariwon |
폴란드어 | Sariwŏn |
라틴어 | Sariwon |
에스페란토 | Sarivon |
3. 지리
2017년, 시 중심부 경암산 인근에서 촬영한 사리원 시내. 멀리 보이는 산이 정방산이다. 구글맵에서는 경암산이 정방산으로 잘못 표기되어 있다.
서쪽으로는 넓은 재령평야를 바라보고, 동북쪽으로는 경암산과 마주한다. 평야에 있는 도시인 만큼 북한 제일의 농업도시로, 일제강점기 때나 지금이나 농사 시험장이 있다.
시내에는 재령강 쪽으로 향하는 운하를 뚫어놓은 것이 특징. 시내 중심부 경암산(景岩山) 공원에는 민속거리라는 것을 조성해 놓았는데, 한반도 주요 역사 유적들의 미니어처를 전시하고 있다. 북한 유적뿐만 아니라 경주에 있는 첨성대 미니어처도 있으며, 조선 시대 건물인 경암루가 그 안에 있다.
사리원시의 정방산은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자생하는 전갈의 서식지로, 북한 천연기념물 171호로 보호하고 있다.
기후는 서울에 비해 모든 달의 최고기온과 최저기온이 각각 2℃가량 낮다. 냉대동계건조기후(Dwa)에 속한다. # 강원도 춘천과 기온이 비슷하되 강수량이 대구보다 약간 낮다.
4. 역사
본래 봉산군의 일부로 시 승격 이전에는 봉산군 사원면이었다. 이전의 역사는 봉산군 문서 참고.사리원은 '-원(院)'이라는 지명에서도 알 수 있듯 평양과 개성을 잇는 교통로 상에 위치한 교통 취락으로 발전한 곳이다. 고려 시대까지 평양과 개성을 잇는 주요 교통로는 자비령을 넘는 길이었지만, 조선시대에 자비령을 넘는 길을 폐쇄하고 서쪽의 동선령(洞仙嶺)을 넘는 길이 그 역할을 대신 맡게 되었다. 이때 동선령을 넘는 사람들이 동선령 남쪽 사리(沙里)에서 숙박을 많이 하게 되었고 이윽고 사리에 숙박시설인 역원(驛院)이 설치되어 '사리원'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되었다. 이후 사리원은 교통의 요지로 번창하여 읍치인 동선면보다 더욱 번화하게 되었다. 유명한 봉산탈춤도 여태 전승되던 동선면이 아닌 사리원에서 열리게 되었다.
그래서 잘 알려져있지는 않지만, 사리원은 조선시대 시절부터 한반도 북부 지역을 대표하는 교통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실제로 인덕원, 이태원, 조치원, 퇴계원처럼 지명에 '원'이 들어가는 지역은 대부분 조선시대부터 교통의 중심이 되는 역원(驛院)이 존재하던 지역이라서 붙은 이름인데, 지금으로 비교하면 고속도로 휴게소같은 역할을 했다.#
1905년 서울과 의주를 잇는 경의선이 사리원을 통과하고 1912년 동선면에 있던 봉산군청까지 사원면으로 이전하면서 사리원은 확고부동한 봉산군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후 1921년 사리원면으로 개칭되고 1931년 사리원읍으로 승격되었다. 1945년 기준 사리원읍은 면적 31.77㎢, 12개 리로 구성되었다. 아래 이북5도위원회 행정구역 참고. 8.15 광복 이후 북한 치하에서 1947년 시로 승격되어 봉산군에서 분리되었다. 대한민국의 이북 5도 체계로는 1947년이 아니라 1945년 광복 직후에 봉산에서 떨어져 '사리원시'가 되었다고 간주한다.
6.25 전쟁 당시 대한민국 국군과 유엔군이 북진 레이스를 벌리던 시점에 짧은 전투 후 사리원을 함락시켰는데, 이 때 잠시 대한민국에서 사리원시 임시 시장을 파견한 적도 있다.[6] 물론 중국 인민지원군이 밀고 내려오면서 사리원시를 다시 북한에 내주고 사리원 시장도 남쪽으로 피난갔다. 이 때문에 임기는 3개월이 채 못 됐다고... 이북 5도에서 사리원을 별도로 관리하는 이유는 대한민국 정부에서 사리원 시장을 파견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 문서로 남아있는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2022년 현재 이북 5도에서 사리원시와 송림시를 별도로 관리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북에 있는 데다가 딱히 잘 알려진 곳은 아니지만, 국사를 열심히 공부했다면 고려 시대 다포식(多包式) 건축 양식을 보전[7]하고 있는 응진전이 있는 성불사가 부근[8]에 있음을 알 것이다. 참고로 이 성불사가 가곡 <성불사의 밤>의 무대로 알려져 있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보면 지금도 북한 사람들 사이에서 사리원의 관광명소로 성불사가 아주 유명하다고 한다.
성불사를 보호하듯이 두르고 있는 정방산성 역시 고려시대에 세워지고 조선 후기 김자점이 대대적으로 보수한 12km 규모[9]의 거대한 산성으로, 전근대 시기 황해도 최대의 군사 거점이었다. 병자호란 당시 김자점이 5천여 병력과 주둔했으나, 청나라 군대가 산성들을 모두 무시하고 한성으로 바로 진격하면서 무력화되었다. 정문격인 남문 정방루[10] 인근 성벽은 7~9m에 달하 위용을 자랑하고, 치성과 곡성 및 4개의 장대를 갖추고 있다. 성벽의 성가퀴 및 여장도 잘 남아 있으며, 총안과 사혈용 구멍이 무려 6천여개나 있다. 북한의 국보 89호로 지정되어 있다.
5. 경제
국토연구원은 사리원은 농업 중심의 도시였으나 최근 주민 생활에서 상업 활동의 비중이 점차 증가한다고 평가한다. 분단 체제 하에서 신의주, 청진보다 시장화 진전에 불리하다고 평가 받는다.국토연구원은 농업·행정 기능 중심에서 상업 기능에의 의존도가 심화되고 있으며, 2013년경 같은 시기에 탈북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청진에 비해 민간 주택 개발은 그리 활성화되어 있지 않다고 평가하였다. 계층별 주거지 분화가 시작된 정도다. 그러나 큰 차이는 아니라서 2019년 인근 봉산군 등지에서 주택 건축이나 물류 사업을 하는 개인 돈주들에 고용되면 농촌에서 일하는 것보다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다고 한다. 소위 '농민 일공[11]'이라고 하는 일용직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농민이 이렇게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은 그 돈으로 곡식을 바치겠다고 해도 불법이다. #
주민 대부분이 장마당을 통하여 생활 물자를 조달하고 있는 상황이다. 구천장이나 대성장은 국가 계획에 따른 승인된 공식장이고, 상매동 등의 소형 장마당은 도내에서 승인을 해준 것이라고 한다. 시 외곽에 장마당이 있으나 2010년대 들어 인근의 집값이 올라갔다고 한다.
평양을 수도로 하는 분단체제 하에서 꽤 재미를 보고 있다. 우선 수도 평양과 해주, 개성 등 남부 주요 도시를 이어주는 교통 요충지에 자리 잡고 있으며, 더불어 평양과 강원도 주요 지역들 사이의 교통도 분단된 현재로서는 사리원을 거쳐야 하는 형편이다.[12] 이러다 보니 북한 최대의 도매시장인 평성시장에서 황해도, 강원도로 들어가는 물자들은 거의 무조건 사리원을 경유하고 있다. 또한 원산을 통해 반입된 일본산 고급 제품들, 해주에서 강원도나 함경도로 반출되는 쌀 등의 제품들도 사리원을 경유한다. 한 마디로 평성시장의 하위호환인 셈이며, 별다른 산업 시설이 없던 사리원은 이런 지리적 이점을 기반으로 서비스업이 크게 발달해 있다. 그리고 평야 지역답게 쌀이 유명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 나온 사리원 출신 탈북자는 사리원 쌀은 굉장히 부드럽고 맛있다 한다.
개성과 연계 발전을 위한 관광 개발이 국가적 사업으로 추진되어, 유튜브에 사리원을 방문한 외국인의 동영상이 있는 편이다. 네덜란드인 유튜버 아이고바트도 방문한 적 있다. 중국의 비리비리 같은 사이트에서도 중국어로 "沙里院"이라고 검색하면 나온다. '민속놀이터'라고 하는 시설 근처에 호수가 있는 공원이 있다. 한복을 대여할 수 있고 지역 특산물인 막걸리[13]를 주기도 한다고 한다. 문제는 한국어를 하는 사람이 주민과 대화를 하면 감시요원이 있는지 확인하고 주민들이 도망간다는 점이다. 그런 감시요원이 없으면 주민들이 상당히 반겨준다고 한다. (대한민국계 교포의 개성, 사리원 방문기)
6. 교통
철도는 평부선의 사리원청년역 - 동사리원역이 있다. 사리원역은 황해청년선의 분기역으로, 신천이나 해주 방면으로 갈 수 있다. 평양개성간 고속도로가 시가지 북부를 지나고 있으며, 평양-개성간 1급도로와 사리원-해주간 1급도로가 개설되어 있다.택시와 버스도 있다.
시의 서쪽 경계인 재령강에서 시내로 가는 운하가 있다.
서울에서 직선으로 약 150km, 철도로는 200km 거리에 있다.
7. 문화
문화시설로 사리원민속촌, 경암호, 경암루, 사리원청년경기장(2009년 준공, 2016년 재건축 / 2만 2천 명 수용), 사리원체육관(2021년 준공 / 1천 명 수용), 황해북도예술극장(2009년 준공 / 1천 명 수용), 사리원청년야외극장(2020년 준공)이 있다.8. 남북통일 이후 전망
통일이 되면 경의고속철도가 경유할 가능성이 높다. 서울과 평양 사이의 중간지점에 위치한 곳인데다가 너른 평야 지역에 개발할 수 있는 땅은 넘쳐나서 이 근방 지역을 중심으로 신도시로 개발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리고 봉산군과 도농통합할 가능성도 높다.[14]9. 이북 5도 기준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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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의 미수복 행정구역 {{{#!wiki style="margin: -5px -10px; display: inline-table" | <tablebordercolor=#ffffff,#1f2023><tablebgcolor=#ffffff,#1f2023> | 사리원시 沙里院市 Sariwon city | }}} | |||
<colbgcolor=#6F132C><colcolor=#ffffff> 시청 소재지 | 황해도 사리원시 동리 ??번지 | |||||
상위 행정구역 | 황해도 | |||||
하위 행정구역 | 10행정동, 12법정리 | |||||
면적 | 37.41㎢ | |||||
인구 | 443,140명(1946년) | |||||
인구밀도 | 228.67/㎢ (1944년 기준) | |||||
명예시장 | 우하룡 | |||||
명예동장 | 10석 | |||||
홈페이지 | 이북5도위원회 황해도 사리원시 소개 |
아래 행정동과 법정리는 《이북5도 명예읍·면·동장 위촉에 관한 규정》 제8조 별표2에 규정되어 있다.
행정동 | 법정리 |
경암동 | 경암리(景巖里) |
대원동 | 대원리(大元里) |
동동 | 동리(東里) |
사동 | 사리(沙里) |
사원동 | 사원리(沙原里) |
상하동 | 상하리(上下里) |
서북동 | 북리(北里)·서리(西里) |
신구동 | 구천리(駒泉里)·신양리(新養里) |
신창동 | 신창리(新昌里) |
철산동 | 철산리(鐵山里) |
10. 북한 기준 행정구역
2008년 기준. 그 이후 2019년 여름 촬영된 위 관광객의 영상에서는 시내에 류경동, 문화동, 선경동 같은 지명이 보인다. 2011년에는 대한민국 조국평화통일불교협회가 '영광동'의 빵공장에 밀가루를 전달하기도 했다. # 시내의 행정구역을 2010년대 대대적으로 개편한 것으로 보이나 위치는 위와 같은 영상에서 확인되나 기존 동의 폐지 여부는 확인되고 있지 않다. 황해북도예술극장 근처 시내 중심부에서 도로를 경계로 하는 동으로 파악되고 있으며(위치), 기존 북1동에서 북4동, 동1동에서 동2동의 영역과 일부가 겹치거나 아예 개편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영역에서 동을 추가하는 근거가 되는 인구의 증가가 크지 않았지만 바뀐 4개의 동 이름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아예 기존 동이 폐지되고 새 동이 신설된 것으로 보인다.- 관할 동: 경암동, 광성동, 구천1동, 구천2동, 구천3동, 구천4동, 대성동, 도림동, 동1동, 동2동, 만금동, 북1동, 북2동, 북3동, 북4동, 산업동, 상매1동, 상매2동, 상하동, 서리동, 성문동, 신양동, 신창동, 신흥1동, 신흥2동, 어수동, 운하1동, 운하2동, 원주동, 은별동, 철산동
- 관할 리: 구룡리, 대룡리, 문현리, 미곡리, 봉의리, 선정리, 성산리, 정방리, 해서리
2022년 11월 22일 기사에서는 '신매2동'이라는 지명이 언급되었다.
11. 기타
- 마찬가지로 사리원 출신의 실향민인 김봉득이 6.25 전쟁 후 대전광역시에 정착하여 차린 평양냉면집이 사리원 면옥이다. # 따라서 (상단에서 언급했듯이) 사리원은 북한에서 불고기로도, 냉면으로도 유명한 도시는 아니다.
- 위에서 서술된 대전광역시에 위치한 사리원 면옥이 해당 상호명에 대한 독점적 사용권리를 주장하며 법적 분쟁으로까지 번진 적이 있었다. 상표법상 "현저한 지명" [16]에 해당하는 경우, 상표권을 주장할 수 없는데, <사리원>이라는 지명이 "현저한 지명"이라고 볼 수 있는지를 놓고 분쟁이 일어났던 것. 결국 대법원까지 가는 소송 끝에, 대법원이 특허법원의 판결을 깨고, "사리원"이라는 명칭은 현저한 지명으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있기에 누군가가 이 지명에 대한 독점적 사용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의 최다 득점자이자 스위스 리그 FC 루체른에서 활약했던 정일관이 이곳 출신이다.
-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수학한 사리원농업대학이 위치한 곳이다. 그 영향으로 싱하이밍 대사는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12. 참조 자료
- 북한의 도시계획 및 도시개발 실태분석과 정책과제(2016, 국토연구원)
[1] 2022년[2] 2022년[3] 관광객이 촬영한 사리원 모습. 10분이 넘는 분량으로 시내를 촬영한다. 25분 23초 무렵에 롤러스케이트장 같은 새로운 문물의 모습도 보인다.[4] 자세한 사항은 북한/행정구역 문단을 참조바란다. 소재지는 어떤 관청이 있다는 뜻이 아니라 중심지다. 즉 '도당'이니 '인민위원회' 등은 공기업 지사 마냥 소재지에다가 일을 하는 개념인데 대한민국을 무작정 대입하려다보니까 자꾸 오류가 편집된다. 미국, 일본, 중국과 같은 관행을 맞추려면 '도당 소재지', '인민위원회 소재지'를 중심지로 쓰는 개념은 오류다.[5] 이 '사리원 불고기'의 유래는 사리원 출신 실향민인 구분임 씨(1916~1980)가 당뇨병으로 고생하는 남편을 위하여 개발한 것이라 한다. 즉, 남한에서 만든 것이고, 탈북자에 의하면 실제 사리원은 불고기로 유명한 지역은 아니라고 한다.[6] 전쟁 와중이라 관련 기록이 부족해서 누구를 사리원 시장으로 보냈는지가 안 나온다. 다만 중앙일보가 2019년 소설가 김진명을 인터뷰한 기사에 따르면 당시 임시로 파견된 사리원 시장이 김진명 작가의 조부였다고 한다.[7] 조선 시대 중수는 했으나 양식은 거의 그대로 계승되었다고 한다.[8] 성불사는 광복 직후 행정구역상으로는 황주군 주남면 정방리, 북한 행정구역상으로는 봉산군 정방리에 위치한다.[9] 남한산성과 유사한 길이다.[10] 현재의 건물은 6.25 당시 파괴된 것을 복원한 것이다[11] 2010년대 후반에는 북한 농촌 지역에서는 흔한 현상으로 보인다.[12] 강원도 도소재지인 원산은 도내 주요 지역들과 평양을 이어주지 못하는 위치다. 이런 입지가 대일무역 중단 이후 원산의 몰락을 가속화시킨 요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13] 북한의 북쪽에서는 한동안 널리 생산되지 못한 술이다.[14] 구미, 포항처럼 원래 군명을 밀어내고 역통합한 사례가 있다 보니 봉산-사리원 도농통합 시 시명이 어느 쪽으로 결정될지는 불명이다.[15] 박찬민 아나운서의 셋째 딸.[16] 예를 들어, 서울, 부산, 평양과 같은 지명은 "현저한 지명"에 해당하기 때문에, 서울식당, 부산국밥, 평양냉면과 같은 이름으로 가게를 운영해도, 이에 대한 독점적 상표 사용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