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13 20:52:08

세뇰 귀네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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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ürkiye Millî Futbol Takım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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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셰뇰 귀네슈
Şenol Güneş
출생 1952년 6월 1일 ([age(1952-06-01)]세) /
터키 트라브존주 트라브존시
국적 터키 파일:터키 국기.png
신체 179cm
직업 축구선수(골키퍼 / 은퇴)
축구감독
소속 선수 에르도으두 겐출리크(1967~1968 / 유스)
세바트스포르(1968~1969 / 유스)
트라브존스포르(1969~1970 / 유스)
세바트스포르(1972~1973)
트라브존스포르(1973~1987)
감독 트라브존스포르(1988~1989 / 수석코치)
볼루스포르(1989~1992)
이스탄불스포르(1992~1993)
트라브존스포르(1993~1997)
안탈리아스포르(1997~1998)
사카리아스포르(1998~1999)
터키 대표팀(2000~2004)
트라브존스포르(2005)
FC 서울(2007~2009)
트라브존스포르(2009~2013)
부르사스포르(2014~2015)
베식타슈 JK(2015~2019)
터키 대표팀(2019~ )
국가대표 31경기 0골(터키 / 1975~1987)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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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이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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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
3.1. 지도자 경력 초기3.2. 트라브존스포르 감독 1기3.3. 안탈리아스포르 감독3.4. 사카라이스포르 감독3.5. 터키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1기3.6. 트라브존스포르 감독 2기3.7. FC 서울 감독3.8. 트라브존스포르 감독 3기3.9. 한국 대표팀 감독 부임설3.10. 부르사스포르 감독3.11. 베식타슈 JK 감독3.12. 터키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기
4. 수상5. 여담6. 관련 문서

1. 개요

터키축구선수 출신 감독. 2019년부터 터키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다.

FC 서울을 제외하면 터키내에서만 지도자 생활을 한 이력의 소유자이고 터키에서 국민적인 감독으로 꼽힌다.

2. 선수 경력

고향 트라브존의 프로팀 트라브존스포르[1]에서 골키퍼 생활을 했다. 선수로서는 트라브존스포르의 레전드인데, 골키퍼로 453경기에 출전했고, 무엇보다 그가 주전으로 활약하던 시기에 리그 우승을 6차례 기록했다. 그리고 2010년까지 이 6번의 우승이 트라브존스포르가 차지한 리그 타이틀의 전부다. 이러한 공로를 높이 사 트라브존스포르 구단은 2016년 12월 개장한 홈구장 명칭을 세뇰 귀네슈 스타디움으로 명명했다.

3. 지도자 경력

3.1. 지도자 경력 초기

은퇴 후 1988년부터 1989년까지 친정팀 트라브존스포르에서 수석코치로 활동하다가, 1989년 당시 터키 쉬페르리그의 하위팀이던 볼루스포르의 감독으로 부임하며, 감독생활을 시작했다. 2부리그와 1부리그를 왔다갔다하던 볼루스포르를 3시즌동안 슈퍼리그에 잔류시키며 명성을 쌓았다. 1992년부터 1993년까지는 이스탄불스포르의 감독을 맡았다.

3.2. 트라브존스포르 감독 1기

1993년 친정팀인 트라브존스포르에 감독으로 복귀하여 1997년까지 4년동안 트라브존스포르에서 감독 생활을 했다. 4년간 트라브존스포르 감독직을 수행하며 94-95시즌 터키 컵 우승을 이끌었고, 리그에서는 94-95시즌과 95-96시즌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3.3. 안탈리아스포르 감독

1997년에는 안탈리아스포르로 자리를 옮겼으나 리그 12위에 그치는 부진한 성적으로 1998년 한 시즌만에 사임했다.

3.4. 사카라이스포르 감독

안탈리아스포르에서 사임한 직후인 1998년부터 1999년까지는 2부리그 구단인 사카라이스포르의 감독을 맡았으나 승격에는 실패했고 곧 팀을 떠났다. 골키퍼 출신이지만, 전술은 수비보다 공격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3.5. 터키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1기

2000년 터키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였고,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 진출시켰다. 터키로서는 48년만의 월드컵 본선 진출이었던 동시에 월드컵 본선에서는 터키 대표팀을 3위로 이끄는 대활약을 펼쳐 그 해 세계적으로도 이름을 떨치며 국내에도 이름이 알려지게되고, 2002년 UEFA 올해의 감독에 선정된다. 그러나 2004년 유로 2004 진출에는 실패해 결국 대표팀 감독에서 경질되었다.

3.6. 트라브존스포르 감독 2기

2005년 1월 다시 친정팀인 터키 트라브존스포르 감독으로 부임했다. 하지만 팀을 2위로 이끌었음에도 불구하고 6개월만에해임되었다. 높은 명성에 비해 15-16시즌 이전까지 우승경력이 없었는데, 이유는 한국에서 보낸 3년을 빼면 자국 터키에서만 감독 생활을 하며 고향팀 트라브존스포르에 강한 애착을 보이며 터키 축구판을 지배하는 이스탄불 팀(페네르바체,갈라타사라이, 베식타슈)에서 감독생활을하지 않았기 때문. 대신 트라브존스포르에서 준우승만 4번을 했다.

3.7. FC 서울 감독

트라브존스포르에서 경질된 뒤 약 2년동안 휴식을 취하던 귀네슈는 2006년 12월 FC서울에 부임한다. 그리고 2007 시즌부터 2009 시즌까지 FC 서울 감독을 지냈다. 역대 K리그 감독들 중에선 감독 커리어가 가장 화려한 인물이다. [2]

감독으로서의 역량은 뛰어났지만, 어그로를 끌어 내부를 단결시키는 유럽식 언플을 많이 해서 안티들에게 입네슈라고 조롱을 받았다. 하지만 FC 서울이 연고이전을 했던 경력 때문에 무슨 말을 하든지 일단 욕먹고 봤다는 점을 고려하면 안받아도 될 비판까지 지나치게 받은 측면도 있다. 심판판정 항의만 해도 2010년 들어 국내파 감독들이 훨씬 더 심하게 돌아가면서 했다.

2007년 처음 등장했을 때 기존 K리그 감독들의 교과서적인 멘트와 달리, 흥미로운 멘트를 던지는 인물이었다. "우리 팀은 우승을 위한 팀, 우리 팀 정도면 모든 대회 우승을 노려야 한다." 등등이 바로 그것들이었다. 차범근 감독이 이끌던 호화군단 수원 삼성을 2007년 3월 4:1로 대파하며 이목을 끄는데, 4월에는 수원 삼성에 홈에서 0:1로 패하며 호각세를 이룬다. 차범근 감독도 귀네슈 특유의 언플에 화답하며 이 때를 기점으로 수원 삼성과 FC 서울은 완벽한 숙적으로 자리잡았고, 이는 K리그의 흥행에도 큰 기여를 했다.

하지만 2009 피스컵 코리아 대회 4강전에서 FC 서울 선수들이 괜히 심판에게 항의하다 단체로 퇴장당하고[3] 포항에 5:2로 개발린 다음에 말한 '친한 감독 3명이면 우승가능', '야구나 보지 뭐하러 K리그 보나'로 돌출발언이 절정을 이룬다.

비록 컵 대회에선 포항에 대패하긴 했으나 이 때가 (2009. 08. 27) 서울이 정규리그에선 1위를 달리던 시점인 데다, 하필 상대였던 포항 스틸러스가 스틸러스 웨이로 깔끔한 경기 매너를 지키려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대팀 감독 파리아스와 대비되면서 더욱 혹독히 비난 받았다. 물론 누가 진짜 더 뛰어난 감독이었는지는 이후 커리어가 증명해줬다만.

감독 역량은 나쁘지 않은데, 그 놈의 FC 서울 선수들의 공대 기질 때문에 여러 모로 도매금으로 까였다. 감독 본인도 뒤에선 선수들 많이 혼내곤 한다는데, 선수단 내에서 중심을 잡고 분위기를 제대로 조성해줘야 할 김한윤, 이을용 같은 고참급들이 앞장서서 날뛰는 통에 감독 혼자 힘으론 한계가 있었다. 결국 이 문제는 2010년에 베테랑 선수들을 대대적으로 수혈하면서 해결되었다.

FC 서울에서 보여준 매력적인 축구나 FC 전후로 쌓은 커리어에서 알 수 있듯 충분히 뛰어난 감독이었으나, K리그에서 우승컵을 반드시 한 번은 들고 고국으로 돌아가겠다는 목표는 결국 이루지 못했다. 2009년 계약 만료인데 처음 3년 계약 당시 2+1(옵션 계약)으로 2009년엔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계약을 했는데 결국 아무 타이틀도 얻지 못한 것이다.

결국 2009년 리그를 마지막으로 FC 서울과 계약 만료.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밝힘으로서 3년 간의 K리그 생활을 마무리 짓게 되었다. 떠나면서 솔직하지 못하면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말을 남겼다.

3년간 FC 서울을 맡으면서 선수 조련과 전술적인 면에서 그 성과를 부정할 수 없으나, 결국 선수들의 멘탈을 잡지 못했다는 점과 여러가지 악재가 겹치면서 우승컵을 들어올리지 못했다는 점에서 K리그를 거쳐간 비운의 외국인 감독 중 한 명으로 남았다.

하지만 성과도 많았다. 이장수 시절의 투박한 축구에서 벗어나 서울의 컬러가 된 빠른 템포와 패싱을 골자로 하는 공격 축구를 정립시켰고 이청용기성용처럼 서울의 자랑이 된 젊은 선수들을 발굴한 성과들 덕분에 10년이 지난 지금도 귀네슈 감독에 대한 서울 팬들의 지지도는 절대적이다. 재임 기간에 트로피는 하나도 없었음에도 서울은 이 시기를 기점으로 탄탄한 기반의 인기구단으로 떠올랐다. [4] 한동원, 송진형, 고명진, 김동석 같은 다른 유망주들보다 존재감이 없었던 이청용을 국가대표에 승선 가능한 재능이라 평하며 중용해 능력을 꽃 피울 수 있도록 도왔으며, 기성용 역시 귀네슈 취임 후 중용되었다. 귀네슈 감독의 재직 시절 이청용, 기성용, 박주영 등이 유럽 리그로 진출했고 2010년 월드컵 원정 16강의 주역이 된다.

선수단 운영에 있어선 자율을 많이 부여하고 마찰이 있어도 너그럽게 대처하는 편이었다. 이런 성향은 그의 밑에서 지도자 경험을 쌓은 최용수 감독에게도 영향을 미쳐 최용수 감독은 젊은 지도자들 중에서도 상당히 널널한 스타일로 유명했다.[5] 다소 강압적인 편이었던 이장수 시절보다 화기애애해지고 젊은 선수들이 치고 올라올 수 있게 하는 장점이 있었으나 젊은 선수들의 멘탈 통제가 제대로 안되었던 단점도 존재했다.

3.8. 트라브존스포르 감독 3기

한국을 떠난 귀네슈는 이전에 여러 차례 맡았던 터키 쉬페르리그 트라브존스포르 감독직을 다시 맡아 09/10 시즌 튀르키쉬 쿠파스(FA컵) 우승을 차지하며 유로파 리그 진출권을 획득했다. 비록 3차 예선에서 리버풀 FC에게 덜미를 잡혀 일찍 탈락했지만....

2010/11 시즌 28라운드까지 페네르바흐체 SK를 승점 2점으로 제치고 1위를 기록 중이다. 선수 시절 트라브존스포르에서 리그 우승을 경험해봤지만 감독으로서 우승 경험은 없기에 이번에 감독으로서 팀을 27년 만에 리그 우승을 거둘지 아니면 페네르바흐체의 3년 만에 리그 탈환일지 더 두고봐야겠다. 막판 30라운드 에스키히얀스포르 원정에서 아쉬운 0:0 무승부로 골득실에 밀려 2위로 내려가면서 상대인 페네르바흐체의 경기 여부에 따라 우승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리그 33라운드. 안탈리야스포르를 3-1로 이겼으나 페네르바흐체가 앙카라귀취를 6-0으로 크게 이기는 바람에 골득실에서 7점으로 떨어져 사실상 우승이 어렵게 되었다. 34라운드 시바스스포르(15위)가 페네르바흐체를 반드시 이기거나 비기고 트라브존스포르가 카르디미르 카라북스포르를 이기면 역전 우승이 가능해지지만... 시바스스포르가 아쉽게 3-4로 지면서 마지막 경기를 4:0으로 이기고도 트라브존스포르는 27년만의 리그 우승을 놓치며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결국 챔피언스리그 최종예선에선 포르투갈의 벤피카에게 1무 1패로 밀려 탈락했다.

그런데, 터키 쉬페르리그 승부조작으로 우승팀 페네르바흐체의 챔피언스리그 32강 진출권이 박탈되어 트라브존스포르가 챔피언스리그 32강 본선 진출권을 얻는 행운을 누리게 된다. 조추첨에선 인테르, 릴 OSC, PFC CSKA 모스크바와의 32강 조대전이 이뤄졌다.

자신의 처음이자, 트라브존스포르로서도 처음인 챔피언스리그 첫 경기인 인테르 원정은 아무래도 힘들겠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는데, 체코 출신인 온드레이 셀루츠카가 골을 기록하여 1:0으로 인테르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는 이변을 낳았다. 2007/08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 페네르바흐체가 안방에서 인테르를 1-0으로 이긴 걸 계기로 조 2위를 차지하며 챔피언스리그 16강에 오르고 8강까지 최종성적을 낳았던 바 있지만 적어도 인테르 원정에서는 고전하고 져왔던 터키 팀 역사상 처음으로 원정에서 이긴 거였다. 당시 리그에서 동네북이었던 인테르지만 챔피언스리그에서 1위로 16강에 올랐던 걸 생각하면 거저 이긴 건 절대 아니었다.

그러나 이후론 릴과 인테르에게 안방경기를 모두 비기는 아쉬움[6] 속에 모스크바에게 승점 1점차로 밀려 아깝게 32강에서 탈락했다. 그나마 릴을 1점차로 앞서 UEFA 유로파 리그나마 진출하게 되었다. 그러나 32강에서 만난 PSV 아인트호벤에게 1:2, 2:6 대패를 당하면서 탈락했다.

하지만 이와 달리 리그에선 29차전에는 49점으로 3위로 올라섰다. 챔스리그에 주력하느냐 한때 리그 11위까지 떨어졌다가 1월부터 2월까지 6승 1무 1패라는 상승세를 찾고있다.이대로 남은 5경기를 잘 지내면 4강 플레이오프인 쉬페르 피날 진출권을 가져서 리그 우승을 노릴 기회를 가지게 된다.(승부조작 파동으로 11-12 시즌부터 플레이오프제를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쉬페르 피날에서도 3위로 마무리하면서 유로파리그 진출권을 차지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2012/13 시즌 리그와 유로파리그에서 모두 고전하면서 리그 11위로 추락하고 유로파리그에서도 약체이던 헝가리 비데오톤에게 2경기 모두 득점없이 비겨서 가진 승부차기에서 2:4로 패하며 일찌감치 탈락했다. 2013년 1월 들어서 강등권팀인 엘라지그스포르에게 1:3으로 완패하자 1월 27일 스스로 감독에서 사임하고 옛 팀동료이던 톨루나이 카프카스가 새로운 감독으로 들어왔다.

3.9. 한국 대표팀 감독 부임설

2013년 6월 들어서 최강희의 후임으로 한국 축구 국가 대표 팀 감독으로 귀네슈를 언급하는 주장이 나왔었다. 마침 무직 상태였고, 본인도 후보에 오르내린다는 걸 알고 있는지 한국은 나의 두 번째 고향이라면서 감독직 제안이 오면 기쁘게 받아들이겠다라고 언급했다. 허정무 부회장이 U-20 월드컵 대표팀의 한국 선수단 대표로 터키를 방문할 예정인데 이때 한국전을 관전하겠다는 귀네슈 감독과 접촉할 것으로 보여졌었고 당시 언론들의 보도에 의하면 귀네슈 감독은 어지간히도 한국 국대 감독직에 욕심이 있는 것 같다고 했었다. 터키의 팀에서도 감독 제안이 왔지만 이를 거절하고 한국에서 올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 대체로 마르셀로 비엘사 감독과 더불어서 최종 후보에 오른 두 명의 후보 중 한 명일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비엘사 감독도 명장이긴 하지만 1년도 안 되는 시간에 한국 축구를 전혀 모르는 비엘사보다는 K리그 감독을 했고 이청용, 기성용 등 한국 선수들을 잘 파악하고 있는 귀네슈가 더 낫다는 지적이 많다. 그러나 네티즌들은 결국 하고 싶다는 귀네슈는 결국 축협의 언플 희생양이 되고, 하기 싫다는 홍명보 감독을 억지로 찍어 눌러서 시킬 것이라고 보고 있었고 결국엔 이변없이 축구 대표 팀 감독은 홍명보가 되었고, 귀네슈 감독은 5월 말에 부르사스포르와 계약했다.

한국 대표 팀 감독을 강하게 희망한 것에서 드러나듯 한국과 FC 서울에 대한 애정은 깊다. 서울 시절 제자들이 어려움에 처했을때 이를 도와주려 애쓰기도 하는데 기성용이 셀틱 이적 주전에서 밀려나 폼이 떨어지자 트라브존스포르로 임대해 오려 한 바 있으며 무직 신세가 된 박주영에게도 관심을 보인다는 보도가 나왔었다. 이후 2014년 7월 17일 터키 언론과의 인터뷰 기사가 올라왔는데 한국에 대한 애정과 한국 대표 팀 감독에 대한 열망이 굉장히 강했고 결국 불발된 것에 대한 회한도 깊어 보인다.

3.10. 부르사스포르 감독

부르사스포르 취임 첫 해 리그 팀 득점 1위로 만들고 리그 6위, 튀르키예 쿠파스 결승까지 올려서 다시 지도력을 인정받아 베식타슈 등 여러 구단에서 감독으로 점찍게 되었다.

3.11. 베식타슈 JK 감독

14-15 시즌 베식타슈 감독이 되어 15-16시즌 7년만에 팀을 리그 우승을 시켰다. 귀네슈 개인에게도 20년이 넘는 감독 생활에 처음해본 우승이었다. 그리고 다음 시즌도 리그 우승을 거두며 그간 베식타슈에게 25년만에 리그 2연패 우승을 안겨줬다.

2017년 슈틸리케호가 월드컵 본선 탈락 위기에 처하면서 또다시 그를 한국 대표팀 차기 감독으로 언급하는 의견도 보인다. 하지만 터키에서 손꼽히는 인기구단 베식타슈에서 25년 만에 리그 2연패를 거두며 승승장구 중인 감독이 미쳤다고 팀의 재계약 제안을 물리치고 월드컵 진출도 불확실한 팀에 부임할까? 귀네슈는 2014년 포포투 선정 역대 감독 순위 50위 안에 들었고 터키에서는 역사상 월드컵 최고 성적인 3위를 선물한 올타임 넘버원 감독이다. 또한, 2017/18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선 포르투갈 원정에서 포르투를 3:1로 이기고[7] 분데스리가 2위 팀 라이프치히를 홈에서 2-0, 리그 앙 챔피언인 모나코를 원정에서 2-1로 이기며 3연승을 기록하고 조 1위를 차지했고 결국 마지막 1경기랑 상관없이 5라운드에서 조 1위를 확정지었고 4승 2무 무패로 조 예선을 끝내며 느긋하게 16강에 올라갔다. 이는 터키 쉬페르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조예선 1위로 16강에 오른 기록이다. 2000년대 와서 터키 구단으로서 챔피언스리그 2라운드를 넘어선 갈라타사라이와 페네르바흐체는 모두 조 2위였고 원정 경기에서 고전하던 걸 생각하면 원정경기에서 엄청 선전한(되려 홈경기 2경기를 비겼고 원정은 모두 이겼다.) 베식타슈가 돋보였다.

결국 차기 국대 감독은 신태용으로 정해졌고, 현재로서는 귀네슈감독과 한국 국대가 인연을 맺게 되는 미래를 상상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단, 앞으로도 수년간은 국대 감독을 찾을 때 귀네슈가 하마평에 오르내릴 것도 분명하다.

2017/18시즌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에서 라이프치히, 모나코, 포르투와 한조가 되었고 5라운드까지 3승 2무를 거둬 조1위로 16강 진출을 확정지었다. 유러피언컵에서 지금의 챔피언스리그 체제로 개편된 후 갈라타사라이와 페네르바체가 조별예선을 통과한적이 있으나 조별예선 1위로 통과한 건 베식타슈가 최초다.

하지만 16강 상대는 우승후보 뮌헨. 결국 1차전 원정에서 0-5로 대참패하면서 16강전에서 최다실점패를 당하고 만다.

18년 4월 19일 페네르바흐체 SK전에서 관중이 투척한 물건에 맞아서 머리를 다치는 사고가 벌어졌다.*

전체적으로 준수한 성적을 보여주었으나, 2017/18, 2018/19 시즌에는 우승컵을 들어올리는데는 실패했다.

3.12. 터키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기

2019년 2월 28일부로 터키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복귀했다. 베식타슈 JK와의 계약기간이 남아있음에 따라, 2019년 5월까지는 베식타슈 감독직과 국대 감독직을 겸직하고, 2019년 5월부터는 전임으로 터키 국가대표팀을 이끈다. 이후 팀을 재정비하여 유로 2020 예선전에서 알바니아몰도바를 상대로 완승을 거뒀다. 6월 8일에는 예선 3차전에서 직전 러시아 월드컵 우승팀 프랑스를 만났는데, 특유의 빠른 압박 축구로 프랑스의 유효 슈팅을 0개로 묶으며 2-0 완승을 거두는 파란을 일으켜 자신이 유능한 감독임을 증명했다. 프랑스 원정도 1-1로 비기면서 터키를 12년만에 유로컵 본선에 진출시켰다.

4. 수상

5. 여담

  • 한국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터키인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한국 내에서의 인지도로 치자면 아타튀르크, 에르도안 못지 않다.
  • 포포투 한국어판에 의하면 포포투 기자가 귀네슈가 Fc 서울 감독 시절, 인터뷰할때 앗살람 알라이쿰이라는 아랍어 인사를 먼저 건네자 순간 귀네슈 감독의 얼굴이 ㅡ ㅡ...........이렇게 되었다고 한다. 통역을 맡던 에네스 카야가 거긴 아랍어 인사이고 터키는 메르하바라는 인사말이 따로 있다고 하여 기자가 정색하고 사과했다고....
  • 한국에서 생활할때 맛에 반해 그전까진 입에 안대던 흰쌀밥에 김을 싸먹길 즐겼다고 한다.
  • 트라브존스포르에서는 레전드로 추앙받고 있다. 선수 시절에는 트라브존스포르의 원클럽맨으로 골키퍼로 맹활약하며 우승을 이끌었고 감독을 역임하면서는 세 차례의 리그 준우승과 두 차례의 컵대회 우승을 이뤄낸 업적 때문이다. 이후 트라브존스포르 구단은 경기장의 이름을 셰놀 귀네슈 스타디움으로 개칭했다.
  • FC 서울 감독시절 이천수가 어디서 터키 감독 하나 와가고 어쩌구...라며 디스하기도 했다.

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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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기서 이을용이 선수 생활을 하기도 했다.[2] 챔피언십 결승에 나온 독일인 심판이 귀네슈 감독을 알아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UEFA 올해 감독을 차지했던 이 사람이 한국에 있을 줄 전혀 몰랐다고...[3] 이전에 포항은 김형일이 퇴장당했으나 별다른 항의가 없었고, 이미 경기는 3:2로 뒤집어졌으나 추스려서 연장까지 끌고 갈 수 있는 상황. 그러나 처음 퇴장당한 선수 이후 추가로 심판에게 항의하고 포항 선수에게 머리박기를 하는 꼴사나운 장면 끝에 결국 김치우와 김치곤 2명이 퇴장당해 전세가 역전되어 버렸다.[4] 이전에는 박주영 등 스타 마케팅을 활용한 반짝 인기 성격이 강했다.[5] 최용수 감독 스스로 감정 추스리고 선수들 대하는 법에 대해 많이 배웠다고 언급한 바 있다.[6] 터키 여행을 가서 리그 경기와 챔피언스리그를 직접 본 샤다라빠가 그린 만화만 봐도 여러 기회를 골대에 맞힌다든지 해서 놓친 끝에 인테르에게 안방에서 비긴 걸 아쉽게 그렸다. 만일 이겼더라면 모스크바를 제치고 2점차로 앞서 팀 역사상 처음으로 챔피언스리그 16강에 조 2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만일 대량득점으로 이겼더라면 골득실에 앞서 인테르를 제치고 조 1위로 올라갈 수도 있었고. 그랬으니 귀네슈 감독도 아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7] 터키 쉬페르리그 팀은 이상하게도 포르투갈 리그 팀과 챔피언스리그 경기성적이 아주 나쁘다. 원정만 가면 싸그리 졌다고 봐야할 지경인데 벤피카와 더불어 포르투갈 리그 우승을 다투는 포르투를 그것도 원정에서 이겼으니 그 뜻이 더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