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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에트 연방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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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d0000><colcolor=#ffd700> 소비에트 연방 영웅
Герой Советского Союза
Hero of the Soviet Union
파일:소비에트 연방 영웅 메달.svg
제정일 1934년 4월 16일
국가
[[소련|]][[틀:국기|]][[틀:국기|]]
종류 영웅 칭호
수여 횟수 12,777회
수훈 대상 소련 시민 및 단체, 외국인 및 단체

1. 개요2. 수훈3. 혜택
3.1. 주요 수훈자
3.1.1. 1회 수훈3.1.2. 2회 수훈3.1.3. 3회 수훈3.1.4. 4회 수훈
4. 후신5. 기념 우표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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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34년 4월 16일 소련 중앙집행위원회(ЦИК СССР)가 소련 영웅 칭호를 제정
1939년 8월 1일 소련 최고회의 상무회(Президиум ВС СССР)가 금성메달을 제정
1973년 5월 14일 소련 최고회의 상무회에 의해 새 영웅칭호 수여에 대한 규정 승인

소련의 영웅 칭호로 1934년에 제정되었으며 소련에서 수훈할 수 있는 최상위 칭호이자 가장 높은 훈격이다.

순도 95%의 으로 만들며 메달 자체는 금성메달(Медаль "Золотая Звезда")이라고 불린다. 원래 무공훈장으로 출발한 것은 아니었지만 거의 대부분이 독소전쟁 기간에 수여되었고 민간 부문은 사회주의노력영웅이 맡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무공훈장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사실상'일 뿐이고 원칙적으로는 영웅 '칭호'이기 때문에 법적 기준으는 전승'훈장'보다 격이 높다.

1939년 이전에는 영웅칭호(Звание Героя)만 존재하였고 인증서와 레닌훈장만을 수여하였다. 1939년 금성메달 제정 이후 메달 제정 이전에 영웅 칭호를 받은 사람들도 금성메달을 받았다. 이런 취지의 영웅칭호는 동독, 중국, 베트남, 체코슬로바키아, 유고슬라비아, 알바니아, 루마니아, 몽골 같은 공산주의 국가에 전파되었고 북한에서 사용하는 공화국영웅 칭호의 원조도 이것이다.

한편 소련 붕괴 후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는 같은 디자인의 영웅 칭호를 만들어서 사용 중이다.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등의 다른 소련 소속국은 다른 디자인을 사용하고 있다. 러시아에서는 '러시아 연방 영웅'이라는 명칭으로 사용하며 금색 별은 그대로고 리본만 러시아 3색기 색으로 변경하여 사용한다.

2. 수훈

소련 정권과 사회주의 사회에 대한 영웅적인 위업의 달성, 용맹스러운 공적을 치하하기 위해 수여된다.

즉, 분야에 관계없이 최고이기만 하면 누구나 받을 수 있다.

수훈 대상 : 다음에게 수여된다.
소련 국적자
소련 내의 단체[1]
외국인 및 외국 주재 단체
한마디로 아무나 또는 그 무엇이든

1934년 4월 20일에 처음 수여되었다. 북극 탐험을 위해 출항했다가 북극해에서 조난된 쇄빙선 '첼류스킨(Челюскин)'의 승조원들을 구조한 파일럿 10여명에게 수여되었으며 소련 붕괴 순간까지 약 1만 2천명이 이 칭호를 수여받았다.[2] 주로 독소전쟁 시기에 많은 수가 수여되었고 전쟁이 끝난 후에 밝혀진 전쟁 영웅들에게도 사후 수여되었다. 유리 가가린 이후 우주인은 우주 비행을 성공하면 1개를 받았다. 사회주의노력영웅 칭호와 마찬가지로 수여시 레닌훈장1+1으로 같이 준다.

영웅 칭호는 다른 훈장들과 급이 다르기 때문에 당연히 그에 걸맞은 조치들이 내려진다. 일단 수훈자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고향에 영웅의 칭호가 새겨진 청동제의 표식(비문)을 설치한다. 영웅의 칭호를 받은 자는 소련의 각 명판에 이름이 기록되어 기념되며 생가는 영웅의 출생지로서 마찬가지로 명판이 세워진다. 소련 최고회의 상무회의 기록에도 영웅으로 기입되며 신문 기사 등에서 해당 수훈자를 명기할 때는 거의 반드시 소련 영웅(Герой Советского Союза)이라는 호칭을 앞에 붙인다.

대부분의 수상자가 1회를 받았다. 원래 영웅 칭호는 다른 훈장들과 달리 말 그대로 명예로운 칭호로 제정되었지만 나치 독일의 침공 이후 영웅이 폭발하면서 2중 영웅, 3중 영웅 등의 기현상이 발생하였다. 특히 공식적으로 수상 제한은 3회였지만 주코프나 브레즈네프 같이 이를 초월하고 4회까지 받은 경우도 있었다.[3] 특히 전쟁이 끝나고 평화기에 접어들면서 소련 공산당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이 별 이유 없이 수여받는 일이 잦았던 덕택에 1988년부터는 복수 수훈이 금지되었다.

군복에는 위/아래 카라의 사이와 수평에 위치하는 직선 상에 패용하게 되어 있으나 민간인 수훈자는 1개만 받았을 때는 카라 단추구멍에 패용하는 경우도 있다. 소련영웅 금성메달과 사회주의노력영웅 금성메달이 같이 존재할 경우 소련영웅 메달을 안쪽에 패용한다. 러시아 연방 영웅 칭호를 같이 가지고 있을 경우에도 소련영웅 칭호를 안쪽에 패용한다.

군공 훈장인 만큼 소련군 최고위 계급인 대다수의 소련 원수들은 2차대전을 거치면서 적어도 한 개는 받았을 정도로 흔한 칭호였고 표도르 톨부힌처럼 생전에 못 받은 경우에도 사후 수훈 형태로 달아주는 것이 보통이었다. 다만 못 받은 경우도 없는 건 아닌데 니콜라이 불가닌은 소련 원수 계급은 갖고 있었지만 원래 군인이 아니라 정치인이었기 때문에 이 칭호 대신 사회주의노력영웅 칭호를 받았다. 필리프 골리코프도 군사기밀을 다루는 정보 계통에서 주로 근무하며 원수까지 오른 인물이었지만 독소전쟁 초기에 잠깐 야전 지휘관을 맡았다가 자신의 담당 정치장교였던 흐루쇼프와 정치적 충돌을 빚으며 단단히 찍혔기 때문인지 이 칭호를 받지 못한 채로 원수 진급 후 불과 1년 뒤 퇴역했다.

소련 최후의 원수이자 실질적으로 마지막 국방장관이었던 군부 보수파의 거두 드미트리 야조프도 고르바초프가 다소 고깝게 봤는지 영웅 칭호를 수여하지 않았고 야나예프 부통령 등 정계 보수 인사들과 손잡고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실패하고 소련이 망하면서 영웅과는 영원히 멀어져 버렸다. 그래도 나중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을 때 자신이 잘못했다고 순순히 인정했던 까닭에 오래 복역하지 않고 석방되어 러시아군 군사 고문으로 재직했지만 소련 붕괴 후의 러시아에서도 쿠데타 가담자에게 영웅 칭호는 과분하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조국공훈훈장 4급과 명예훈장 정도만 서훈했다.

용감히 싸웠으나 대조국전쟁에서 포로가 되었다가 살아 돌아온 군인들은 스탈린 시대에는 출당당하고 불이익을 받았으나 흐루쇼프 시대 이후 영웅 칭호를 받았다. 브레스트 요새 방어전의 영웅 표트르 가브릴로프와 여성 파일럿 안나 예고로바는 항복하지 않고 용감히 싸우다가 부상을 입고 실신하여 포로가 되었지만 포로에서 풀려난 후 모욕적인 심문을 받았고 굴라크 수용소에 가지는 않았지만 공산당에서 출당당했다. 그러나 흐루쇼프 시대 이후 공적을 인정받아 가브릴로프는 1957년, 예고로바는 1965년 영웅 칭호를 받았다.

개인뿐만이 아니라 전시에 영웅적으로 싸운 도시요새에게도 영웅칭호가 주어졌는데 이런 경우 도시는 영웅 도시라고 부른다. 세바스토폴이 대표적인 사례고 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레닌그라드)도 영웅 도시다.

파일:세바스토폴 시장.svg

세바스토폴 연방시의 시장. 별이 달려 있는 훈장이 바로 금성메달이다.

파일:볼고그라드 시장.svg

과거 스탈린그라드였던 볼고그라드시의 문장. 윗부분에 금성메달이 보인다.

3. 혜택

선정되면 엄청난 혜택을 받았다. 마치 여러 국가에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에게 주는 것과 비슷한 혜택을 받았다.
  • 출신지나 주거지에 소련 영웅의 출신 혹은 주거지라는 표지가 붙었다. 묘지에도 특별한 표식을 붙일 수 있었다.
  • 매월 연금을 지급받으며, 본인이 죽으면 액수는 줄어들지만 배우자나 자녀도 일정한 연금을 받았다.
  • 집이 없는 자는 주택 배급에서 최우선순위를 받았다.
  • 여러 국영상점에서 파는 상품의 할인혜택도 받았다.
  • 의료혜택도 최우선순위에 배정되었다. 즉 1차 기관의 진료 없이도 바로 대도시에 있는 종합병원에서 의료진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
  • 열차, 항공기와 같은 교통수단도 무료거나 혹은 대폭 할인을 받았다.
  • 명문 대학에 특별 전형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학비는 무료였지만 장학금도 받았다.

3.1. 주요 수훈자


외국인은 주로 소련 우방국인 공산권 국가의 인물에게 주어졌으며 대표적으로 피델 카스트로, 발터 울브리히트, 가말 압델 나세르 등이 있다. 외국인 우주비행사, 2차대전 전투기 파일럿들도 받았다.

3.1.1. 1회 수훈

3.1.2. 2회 수훈

3.1.3. 3회 수훈

3.1.4. 4회 수훈

4. 후신

소련 붕괴소련을 이루던 각 공화국들도 독립 후 소련영웅에 대응하는 칭호와 형상이 비슷한 훈장을 제정했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파일:소비에트 연방 영웅 메달.svg
파일:소련 국기.svg 소비에트 연방 영웅
파일:러시아 연방 영웅 메달.svg 파일:우크라이나 영웅.svg 파일:벨라루스 영웅 메달.svg 파일:카자흐스탄 영웅 메달.svg 파일:우즈베키스탄 영웅 메달.svg
파일:러시아 국기.svg 러시아 연방 영웅 파일:우크라이나 국기.svg 우크라이나 영웅 파일:벨라루스 국기.svg 벨라루스 영웅 파일:카자흐스탄 국기.svg 카자흐스탄 영웅 파일:우즈베키스탄 국기.svg 우즈베키스탄 영웅
파일:타지키스탄 영웅 메달.svg 파일:Hero_of_the_Kirghiz_Republic.png 파일:TM_Gold_star.png 파일:아르메니아 조국훈장.svg 파일:800px-National_Hero_of_Georgia_PS_work_1.png
파일:타지키스탄 국기.svg 타지키스탄 영웅 파일:키르기스스탄 국기.svg 키르기스 공화국 영웅 파일:투르크메니스탄 국기.svg 투르크메니스탄 영웅 파일:아르메니아 국기.svg 아르메니아 국가영웅 파일:조지아 국기.svg 국가영웅 훈장 (조지아)
파일:800px-National_Hero_of_Azerbaijan.svg.png 파일:8ada6ed5ef23ca4ffc36fb8d446e71fc_751.jpg 파일:에스토니아 국기.svg 파일:라트비아 국기.svg 파일:리투아니아 국기.svg
없음[11]
파일:아제르바이잔 국기.svg 아제르바이잔 국가영웅 파일:몰도바 국기.svg 공화국 훈장 (몰도바)

5. 기념 우표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Stamp_Hero_of_the_Soviet_Union.jpg

2009년에 발행된 소련영웅 칭호 75주년[12] 러시아 기념우표. 비록 이 훈장은 소련 붕괴 후 사라졌지만 러시아 정부는 그 권위를 여전히 인정하고 있다.

6. 관련 문서



[1] 지방자치단체(시, 군 등), 군대를 포함해 소련에 존재하는 모든 단체가 수여받을 수 있다.[2] 이 칭호(훈장)의 대상자에는 소련 군인뿐 아니라 민간인도 포함하기 때문에 1만 2천이라는 숫자는 거대한 소련이라는 나라의 인구를 생각해 보면 지극히 적은 숫자라고 할 수 있다.[3] 주코프는 공적이 엄청나게 많기 때문에 중복으로 수여받을 만하다고 인정되지만 브레즈네프는 4회를 모두 자신이 자신에게 직접 수여한 자뻑에 불과했다.[4] KGB 공작원 예브게니 킴이 1987년에 영웅칭호를 수훈했고 소련 붕괴 후에는 올레그 최가 러시아연방영웅이 되었다. 참고로 이 훈장보다 한 단계 격이 낮은 사회주의노력영웅을 고려인 출신 김병화가 2번 수훈받았다.[5] 조르게도 독소전에서 공을 세웠는데 일본군이 진주만의 미군을 공격하고 태평양과 동남아시아를 침공하며 소련과 전쟁할 의사가 없는 것을 알아내 알렸다. 이 정보로 소련이 일본의 뒤통수를 걱정하지 않고 독일과의 전쟁에 극동과 시베리아의 병력을 동원할 수 있었다.[6] 소련 붕괴 후에 새로 제정된 러시아 연방영웅 훈장을 첫 번째로 수훈한 사람이기도 하다.[7] 고작 3대라고 여길 수도 있는데 티거2는 T-34 몇 대가 다굴을 놓아야 잡을 수 있다. 그것도 정면으론 어림도 없고 옆이나 뒤를 잡아야 그나마 가능하다는 점을 보면 흠좀무하다. 물론 나치의 전차 운용법 자체가 부족한 전차를 몰아서 한곳에 배치하여 상대 전차의 숫자를 맞춰서 상대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T-34 수십대가 티거2 1대를 상대로 몰려오는 경우는 전혀 없었고 있다면 T-34 한두대 잡고 티거2가 터지는 게 정상이다. 비록 교전 거리까지 가기 전에 티거 2 전차포에 최소 10대는 터지겠지만. 물론 전쟁 말기에 베를린 전투에서 티거 2대가 각각 T-34를 30여대씩 잡고 리타이어하거나 티거2 5대가 몰려오는 소련군을 상대로 엘베강으로 가는 길을 며칠간 수비한 사례가 있긴 하지만 대체적인 통계를 보면 결과적으로 10:1 수준의 전투 교전비는 리버 6마리가 한 부대씩 몰려오는 히드라를 한 5번 정도 막아서 나온 교전비라고 보면 되며 물론 히드라의 본진테러를 막으려다가 퍼지고 스캐럽 만들 돈도 없어서 전쟁에서 T-34에 발린 것도 동일하다.[8] 생전에 1회 수훈받은 상태였으나 소유즈 1호 추락사고로 사망 이후 사후 1회가 더 추서되었다.[9] 소련 해군의 아버지인 쿠즈네초프는 1개. 역시 사람은 오래 살고 볼일이다.[10] 브레즈네프는 권력욕과 과시욕이 심한 것으로 유명했는데, 탐이 난다는 이유로 별 전공도 없이 서기장이 된 후에 자기 손으로 그냥 달았다(...)[11] 1940년 소련에 강제로 편입발트3국은 이에 대응되는 훈장 및 칭호가 없으며 각자 소련 강제병합 이전의 최고훈장을 다시 제정하여 사용 중이다.[12] 영웅칭호(Звание Героя)의 75주년. 우표에 도안된 금성메달이 제정된 것은 1939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