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19 01:36:06

스페인-멕시코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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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멕시코
1. 개요2. 역사적 관계
2.1. 현대 이전2.2. 현대
3. 문화 교류4. 대사관5. 관련 문서

1. 개요

스페인멕시코의 관계에 대한 문서.

멕시코는 스페인의 장기간 식민 지배, 멕시코 이주 및 대규모 혼혈(메스티소), 전염병으로 인한 원주민 인구 감소 등의 영향으로 스페인어가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고, 대다수가 가톨릭을 신봉하며, 문화적으로도 유사한 면(투우 등)이 있다. 다만 멕시코는 아즈텍 신화의 내용을 국기에 담고 있으며, 영웅으로 추앙되는 꾸아우떼목의 이름을 여러 곳에 넣는 등 피침략 원주민 정체성을 강조하는 면도 있다.

2. 역사적 관계

2.1. 현대 이전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누에바에스파냐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대영제국에게 인도, 프랑스 식민제국알제리, 일본 제국에게 조선이 있었다면 스페인 제국의 왕관의 보석이라 할만한 핵심 식민지는 현대 멕시코인 누에바에스파냐 부왕령, 그것도 아즈텍 제국의 핵심 국토 자체였던 멕시코 중부 고원지대였다.[1]

사실 스페인 제국 시절 중남미 식민지라고 해도 다 격이 같은 게 아닌지라 스페인인들 본인들이 다른 로마 제국에서 기원한 지중해 문명권과 마찬가지로 소위 '문명화된' 생활, 국가 건설에 있어 도시의 역할을 엄청나게 강조하고 중요시했던 만큼[2] 유럽인들의 기준에서도 테노치티틀란 같은 휘황찬란한 도시를 건설한 민족이었던 아즈텍과 현대 멕시코 시티 일대 중부고원의 중심 민족이었던 나후아인들은 스페인 제국에서 비유럽 유색인종 민족 중 굉장히 높은 대접을 받았다. '(사회적)다윈주의 이전 인종학'이라고 부를 만한 전성기인 16-17세기 스페인의 문화인류학적 책들을 보면 세계 인종, 민족 중에서 (당연히) 유럽인, 특히 자국 스페인인들을 최고로 두지만 그 바로 아래로 무슬림 사라센, 동아시아인들과 맞먹는 자리에 멕시코와 잉카 제국 안데스 산맥의 원주민들을 두고 가장 밑바닥에 사하라 이남 흑인들과 현대 아마존, 칠레 남부, 북미 평원 등 근세 기준에서도 확실히 '오지'였던 지역의 원주민들을 분류하는게 일반적이었다. 아직 스페인의 통치 체계가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16세기 전반만 하더라도 막상 현지 행정 실무는 멸망한 아즈텍 제국과 현지 나후아 공동체 중심으로 돌아가는 게 일반적이었고 카톨릭 개종과 동시에 귀족 작위를 받으면서 본인들도 콩키스타도르 대지주 비슷하게 되어 버린 원주민 출신 엔코미엔다 지주들도 나후아계에서 가장 압도적으로 많이 배출되었다.

적어도 멕시코 시티를 중심으로 한 중부 고원의 식민도시들은 식민 시절 동안 쿠바의 아바나, 콜롬비아의 카르타헤나, 페루의 쿠스코-리마 등과 함께 광활한 스페인 제국 내에서 경제력이나 중요성이나 최상석을 차지하는 훗날 대영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제관의 보석'이라고 할 만한 곳이었으며 식민관료나 선교사들도 파견되기 꺼렸던 어디 중부아메리카, 안데스 산맥, 라플라타강 오지 따위와는 비교도 못 할 위상을 지니고 있었다. 콜럼버스 이전 원주민 제국들은 어쨌든 아메리카 대륙외 세계와는 접촉 없이 지냈으니 진정한 '세계사'적 의미에서 멕시코의 최고 아웃풋 시절은 독립 국가로서가 아니라 식민지 시절이었던 셈이다.

1821년 멕시코의 독립이 이뤄진 직후 스페인은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재정복을 시도했으나 1829년 탐피코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물러갔다.

2.2. 현대

스페인의 통치 기간 자체가 워낙 길고 현대 멕시코는 스페인어를 쓰고 주류 종교가 가톨릭인 스페인어권 국가인 만큼 현대 멕시코 국체를 구성하는 이념과 대중 담론의 스페인에 대한 인식은 굉장히 복잡하고 미묘하며 이는 근본적으로 본질적으로 다른 '조선인', '일본인'으로서 국가 및 민족 정체성이 이미 완성된 시절에 제국주의적 침탈이 이루어져 일제강점기를 온전하게 완전히 다른 외세의 침략으로 인식한 한일관계와 대응시켜 이해하기 힘들다.

굳이 설명하자면 아일랜드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영국에게 맞서 싸운 건 자랑스러워지만 마찬가지로 영문학에서 아일랜드인 작가들이 차지한 비중은 또 자랑스러워하는 것과 비교할 만하다. 일단 근본적으로 피억압자의 악감정도 분명히 남아 있고 현대 멕시코 민족주의자들은 민족과 국체의 기원을 스페인 식민통치기인 누에바에스파냐 부왕령이 아니라 식민화 이전 아즈텍 원주민 국가들로 더 강조하는 편이다. 특히 역사학계의 가열찬 반발에도 불구하고 말린체매국노로 여기는 풍조는 여전하고 역사책에서도 부정적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반대로 틀락스칼텍의 젊은 지도자인 치코텐카틀은 스페인의 지배에 대항했기 때문에 멕시코 역사책에서는 긍정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스페인 출신이지만 마야 부족민이 되어 스페인의 침략에 저항한 곤살로 게레로도 긍정적으로 묘사된다.

반면 아무리 정치적으로 반스페인적, 원주민 정체성을 강조하더라도 어쨌든 현대 멕시코는 나후아, 마야 제어가 아니라 스페인어를 모국어로 쓰며 가톨릭이 주류 종교인 데다 20세기 초중반만 하더라도 엘리트는 죄다 스페인 '본토'의 살라망카, 마드리드 등에서 교육받던 히스패닉권 국가들 중에서도 국력이나 존재감으로 상석이란 사실도 무시할 수 없다. 현대에 와서 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지지만 멕시코인들이 자격지심을 느끼는 뉴욕, 보스턴, 필라델피아 같은 영미권 북미 대도시들이 그냥 북미 원주민들 뛰놀던 벌판이었던 시절부터 멕시코 시티, 푸에블라, 베라크루스 같은 누에바에스파냐 부왕령의 식민 대도시들은 스페인 제국의 패권 아래 대서양 삼각무역, 태평양 무역[3]의 중심지로서 번영을 가구했고 아직도 스페인 본토의 문화유산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 본토 출신 당대 최고의 예술가, 건축가들이 지었던 식민도시 구시가지의 찬란한 문화유산이 이를 계속 살아서 증언하기 때문이다.

스페인 제국에서 멕시코의 비중이 이렇게 크다보니 정복으로부터 100년 쯤 지난 17세기 무렵이면 루이스 데 알라르꼰, 후아나 데 아스바헤 수녀 같이 멕시코 출신으로 스페인 본토에서도 대성한 문필가들도 배출되고 지금까지도 스페인을 넘은 범히스패닉권 전반에서 멕시코의 문화적 위상은 아르헨티나, 페루, 쿠바와도 비교해도 더 크며 스페인 본토와 맞먹을 만하다. 이러다보니 멕시코인들에게 있어 스페인 식민통치의 유산은 전적으로 '남의 것'인 청산의 대상으로만 보기엔 너무나도 비중이 큰 역사인데 여기에다가 현대로 가면 갈수록 엉뚱하게 미국내 멕시코인들의 비중과 존재감, 그리고 이민자 집단으로서 갈등도 심해지면서 당장 영어와 구분되는 스페인어를 쓰는 히스패닉이란 포괄적 정체성은 갈수록 더 강해지면 오히려 더 강해지다 보니 멕시코와 스페인의 문화, 사회적 밀접함은 여전히 더 지속될 전망이다. 역사문화적 맥락이 이러다 보니 현대 멕시코인들은 스페인 식민 통치의 유산을 결코 일방적으로 부정적으로만 보는 건 아니고 오히려 저런 언어문화적 측면에선 우리야 말로 황금기 스페인 문화의 적자란 식의 선택적 자부심도 강하게 드러난다. 한편으론 식민화 이전에도 강성한 원주민 국체가 있었으며 지금도 독자적으로도 (내부 문제는 여전히 많다고 해도) 중요한 대국으로서 멕시코인들의 내셔널리즘도 강하지만 그 멕시코 내셔널리즘에서 히스패닉 문화적 정체성도 막강하기 때문에 현대 멕시코인들의 스페인에 대한 역사적 감정은 저항과 자부심이 반반 섞인 대단히 복합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스페인 내전 당시 그나마 공화파에 유화적이었던 라틴 아메리카 국가였기 때문에 멕시코로 망명한 스페인인들이 많다. 원래 멕시코인 중 80~90%가 어떻게든 스페인 혈통을 이어받았다지만 내전 시기에 이주한 스페인계 멕시코인들도 나름 멕시코 사회에서 개성과 존재감이 강한 사람들이기도 했다. 때문에 라틴 영화의 거장이라 할 수 있는 루이스 부뉴엘이 대표적인 내전 당시 이주한 스페인계 멕시코인에 속하며[4] 멕시코 영화 중에도 스페인 내전을 다루는 영화가 있고 스페인 기업들이 멕시코에 많이 진출하는 경우도 있다.[5] 반대로 모빌리티 ADO처럼 멕시코 업체가 스페인에 진출한 사례도 있다.[6] 멕시코는 스페인과 함께 이베로-아메리카 공동체, 라틴 연합에도 가입되어 있고 멕시코인들 중에는 스페인으로 이민을 가는 경우도 많이 있다. 반대로 스페인인들도 멕시코에 이주한 경우가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편이고 현재에도 일부 스페인인들이 멕시코로도 이주하는 경우가 있다.

2019년 3월 25일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스페인과 교황청에게 500년 전에 미주를 정복한 것을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2019년 11월 8일에 몬테수마 2세의 후손과 에르난 코르테스의 후손의 500년 만의 역사적인 만남(!)이 멕시코 시티에서 있었고 500주년 기념일이 분열이 아닌 통합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2022년 2월 9일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이 스페인과의 외교관계에서 일시정지를 원한다고 하여 논란이 되었다.#

3. 문화 교류

누에바에스파냐 시절 멕시코에는 유럽에서 온 예수회 선교사들이 유럽산 작물 재배법 및 치즈 가공법 등을 전수하였으며 다른 한편으로 멕시코의 옥수수와 토마토, 초콜렛 등이 스페인을 통해 구세계 각지로 전파되었다.

스페인 문화나 멕시코 문화나 그게 그거겠거니 생각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비교하자면 한국과 필리핀이 서로 다른 수준으로 엄청 다르다고 보면 된다. 20세기 중반 스페인 내전 당시 멕시코로 망명한 스페인계 멕시코인 이민자들은 스페인에서의 식습관대로 와인을 즐겨 마셨는데[7] 이를 두고 멕시코인들은 반도에서 온 스페인인들이 데킬라 대신 와인을 마시며 부심 부린다고 손가락질했다고 한다. 스페인이 멕시코를 식민지배하던 시절 스페인 정부가 와인 양조와 올리브 재배를 금지했던 영향으로 멕시코 식문화에서 올리브나 와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8] 스페인 같은 경우 여타 남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흡연에 대한 인식이 매우 관대한 편인데 대조적으로 멕시코는 마약이 흔해서인지는 몰라도 흡연율이 상당히 낮은 편이다.

이를테면 스페인 같은 남유럽 국가들은 안전한 치안과 무료 자전거 같은 인프라가 충분히 잘 갖추어진 덕분에 일상 사회 생활이 주로 시내 광장[9]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서 심지어 오타쿠들조차도 아무 위화감 없이 인싸들과 같이 어울려 노는 분위기라면 멕시코는 치안 불안과 빈부 격차가 심각해서 무료 자전거를 갖다놓으면 금방 증발하기 마련이고 저녁 늦게 광장에서 사람들과 떠들면서 시간 때우는 문화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 해변도 외국인 관광객들이 이용하는 호텔 리조트용 호텔과 멕시코 현지인들이 노는 구역이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다. 즉, 오늘날의 멕시코의 빈부격차 및 사회 부조리는 스페인과 멕시코 사이의 문화 격차를 더 벌려 놓는다고 볼 수 있다.

멕시코는 스페인어 사용 국가들 중에서는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다. 단, 일부 표현이나 어휘는 스페인 본토와는 다른 경우가 많다. 토르티야는 멕시코에서는 빵의 일종이지만 스페인에서는 오믈렛의 일종이다. 스페인 본토에서 2010년 11월 스페인 한림원에서 ch와 ll, q를 포함한 발음기호와 강세를 표시하는 부분을 없애는 등 스페인어 개정을 내자 멕시코를 중심으로 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제국주의적인 발상", "영국에서 영어를 바꾸면 미국도 따라야 하는거냐"며 반발한 바 있다.기사

17세기 누에바에스파냐 출신 작가, 철학자인 후아나 데 아스바헤는 오늘날 멕시코 이외에 스페인에서도 활발하게 재해석되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양국은 언어시험을 각각 실시하고 있는데 스페인은 DELE 시험, 멕시코는 CELA를 시행하고 있다.[10]

가톨릭도 스페인 본토와는 달리 멕시코 현지식으로 토착화된 상태다. 대표적으로는 과달루페의 성모를 들 수 있다.

여담으로 투우는 스페인 외에도 멕시코에도 존재한다.

4. 대사관

양국 모두 대사관을 두고 있다. 멕시코 시티에는 주 멕시코 스페인 대사관, 마드리드에는 주 스페인 멕시코 대사관이 존재한다.

5. 관련 문서



[1] 의외로 포르투갈 식민제국은 진짜 전성기인 16-17세기만 하더라도 브라질은 거의 깃발만 꽂아 둔 땅이었고 인도-아시아의 고아, 말라카, 마카오가 가장 중요하고 공들여 개발한 식민지였다. 브라질의 개발은 아시아 식민지를 하나둘씩 상실하거나 에도 막부의 쇄국령과 명말청초로 인해 무역망의 근원이었던 동아시아 문이 닫혀버린 18세기에나 본격적으로 궤도에 올랐다.[2] 영미권에 비해서도 라틴권 도시들은 동네 주교좌 성당, 중앙 광장, 시청, 대시장이란 도시의 핵심 기관들이 딱 붙어 있는 '중심'이 더 강조되는 이유가 이런 문화적 맥락 때문이다.[3] 19세기까지만 하더라도 필리핀 총독령도 행정상으론 누에바에스파냐 부왕령 산하였다.[4] 부뉴엘의 유성 영화는 대다수가 멕시코 시절 영화다. 이외 말기에 프랑스에서 활동한 게 전부다.[5] 대표적으로 멕시코 의 유명 호텔 체인 상당수가 스페인이 본사다. 멕시코 시티 공항의 NH 호텔 등등. 게다가 멕시코 고속도로멕시코도로공사 (CAPUFE)가 운영하는 재정구간을 제외한 민자 고속도로 중 상당수는 스페인계 회사에서 운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이 받아먹는 통행료가 매우 비싸서 원성을 사고 있다. 대표적으로 멕시코시티 - 라 마르케사 고속도로라던지 아르코 노르테가 있다.[6] 아반사스페인고속이 대표적인 모빌리티 ADO 계열사다.[7] 당시 주로 카탈루냐인들과 바스크인들이 망명하였는데 해당 지역들은 프랑스와 인접한 것도 있어서 유럽식 식생활을 고집하던 편이었다.[8] 라틴아메리카 남부의 아르헨티나나 칠레 같은 경우 독립 이후 유럽계 이민자들이 대규모로 정착하면서 와인 문화가 다시금 정착하였지만 멕시코는 독립 이후 유럽계 이민자들이 별로 오지 않았다.[9] 만약 바르셀로나나 발렌시아처럼 해안가에 위치한 도시라면 여름에는 해변이 중심이 되기도 한다.[10] DELE와 CELA는 대한민국에서도 치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