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5 23:18:12

유선(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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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한 제2대 황제
유선 | 劉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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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207년
후한 형주 신야
(現 허난성 난양시 신예현)
즉위 223년 6월 10일
촉한 성도
(現 쓰촨성 청두시)
사망 271년 (향년 64세)
서진 하남군 낙양
(現 허난성 뤄양시)
재위기간 촉한의 황태자
221년 5월 15일 ~ 223년 6월 10일
촉한의 황제
223년 6월 10일[1] ~ 263년 11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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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禪)
부모 부황 소열황제
모후 소열황후
형제자매 3남 중 장남
배우자 경애황후, 황후 장씨
자녀 7남 3녀
아명 아두(阿斗)
공사(公嗣)
작호 안락공(安樂公)
시호 서진: 사공(思公)
전조: 효회황제(孝懷皇帝)[3]
제호 후주(後主)
연호 건흥(建興, 223년 ~ 238년)
연희(延熙, 238년 ~ 258년)
경요(景耀, 258년 ~ 263년)
염흥(炎興, 26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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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평가4. 가족 관계5. 기타6. 미디어 믹스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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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주는 현명한 승상에게 정치를 맡겼을 때는 도리를 따르는 군주였지만, 환관에게 미혹되었을 때는 어리석은 군주였다. 경전에서 말하기를 "흰색 실은 일정한 색깔이 없고 물들여질 뿐이다." 라고 했는데, 정말 그렇구나!
《삼국지》 <촉서> -후주전-
삼국시대 촉한의 제2대 군주이자 마지막 황제(재위 223년 ~ 263년)이다. <촉한정통론>을 인정하면 470년을 이어온 한(漢)나라의 제31대 황제이자 마지막 황제로서 그는 선주인 유비를 계승했으므로 후주(後主)라는 명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4]

소열제 유비의 장남이자 소열황후 감씨의 소생이었으며, 아명은 아두(阿斗)였다. 이는 태몽이 북두칠성과 관련된 꿈이었기 때문이다.[5] 현대 중국어에서 阿斗는 어리석고 아둔한 사람을 지칭하는 비유적인 단어로 그 의미가 굳어졌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6] 암군으로 평가되는 인물이다. 현대의 평가에 대해서는 후술한다.

참고로 유봉의 이름인 봉(封)은 소열제의 친자인 유선의 선(禪)과 더불어 봉선(封禪)[7]이 되는데 여기서 두 아들의 이름을 이렇게 지은 소열제의 야심을 알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사실 유봉은 양자 출신이었므로 애초에 봉은 소열제가 지어준 이름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에는, 마침 양자의 이름이 봉이라, 거기에 맞춰서 친아들의 이름을 선으로 지었다고 주장한다. 정사에서는 유봉이 먼저 양자로 들어온 뒤 유선이 출생했으나, 《삼국지연의》에서는 순서가 바뀐 것도 미묘한 일이라며 소열제가 개인적인 야심으로 아들의 이름을 지어줬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삼국지연의》에서는 순서를 바꾸었다는 음모론도 있다. 물론 소열제가 정말 봉선에서 이름을 지었다는 근거는 없다.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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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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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가족 관계

5. 기타

유선빠와는 별 상관없지만 유선도 모에선의 수혜를 피할 수는 없어서 (주로 여성향 쪽에서) '너무 위대한 아버지 때문에 비뚤어져버린 시니컬 미청년'이라든가 '천연 미소년'으로 미화되기도 한다. 때론 천하의 주인이 누가 되던, 백성들의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는 전쟁을 그만두는게 최선으로 생각하기에 본인이 일부러 바보짓을 한다는 속뜻을 지닌 캐릭터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부분을 실제로 실현시킨 내용으로 나온 게 진삼국무쌍 시리즈유선.

장비의 딸들을 연이어 황후로 맞이했다. 유선의 첫 번째 부인이 장비의 딸들 중 언니인 경애황후 장씨였으며, 두 번째 부인이 동생인 장황후였다. 경애황후가 죽자 이듬해 동생을 황후로 맞이했다. 경애황후가 죽은 해와 장황후가 귀인으로 입궁한 연도는 건흥 15년(237년)으로 같으며 어느 쪽이 먼저인지는 불확실하다.

상당히 오래 재위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정치를 대부분 재상들에게 맡겨두며 자신은 의례적인 일만 맡았기 때문에 유선의 재위 기간에 대해서는 후반부의 병크를 제외하면 별다른 설명 없이 넘어가는 경우가 매우 많다.

사마소와의 연회는 이문열이 본인의 소설인 《이문열 평역 삼국지》에서 옹호하기도 했다. 유선을 옹호하다가 너무 극심해진 것인지 김운회 교수 등 유선빠(!)가 간혹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사람은 혼돈의 시대에서 평생 호의호식하며 살아간 진정한 행운아였다. 본인이 기억할 수 있는 한도에서는 고생을 해보지 않았으며, 생명의 위협도 어렸을때 빼면 없었다. 수없이 많은 잘났다고 하는 사람들이 서로 치고박고 싸우며 대치하는 100년 안되는 《삼국지》의 난세 동안 이처럼 고생 안해보고 평생동안 잘 먹고 잘 살며, 적어도 허울만이라도 좋은 대접을 받은 사람은 통틀어서 얼마 없다.

놀라운 것은 조선정조도 사마소와의 연회 부분에 대해 평가를 내리면서 유선에 매우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다. 유선이 정말로 사마소를 속이기 위해 연기한 것인지 아닌지는 이미 몇 백년 전부터 꽤나 평가가 분분한 부분이었던거 같다.
"후주(後主)가 촉(蜀)을 생각한다고 대답한 것은 천고의 비웃음거리가 될 만하다. 그러나 그 말의 뜻을 자세히 음미하면 혹 자신을 보전하려는 계책에서 일부러 이러한 말을 하여 속마음을 감추려고 한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대저 그 사람은 참으로 말할 것이 없고, 평소 그의 사적(事蹟)을 살펴보더라도 진 혜제(晉惠帝)에 비할 수 없으니, 그렇다면 비록 극정(郤正)이 말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어찌 촉을 그리워하는 한 생각이 없겠는가. 이는 참으로 말을 해도 아무 소용이 없고 단지 저들의 의심만 야기시킬 뿐이기 때문에 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극정이 말한 것에 대해서도 가부를 살피지 못했어야 하는데, 오히려 어떻게 극정을 너무 늦게 알았다고 한스러워할 수가 있겠는가."
유학 이지연(李志淵)이 대답했다.
"후주는 제 환공(齊桓公)과 같은 자품을 지녔음은 물론 그보다 더 뛰어난 점이 있습니다. 온 나라를 들어 공명(孔明)에게 맡긴 것은 제 환공이 관중(管仲)에게 위임한 것에 부끄러울 것이 없고, 장완(蔣琬), 비위(費褘), 동윤(董允) 등 제현(諸賢)을 들어 쓰는 것을 잊지 않은 것은 제 환공이 역아(易牙)를 써서 국난을 야기한 것보다 한 단계 높으니, 참으로 용렬하고 아둔한 자가 이와 같이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촉을 생각한다고 대답한 것은 그가 진심으로 한 말이 아님을 참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가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이 전연 없다는 것을 보여 저들로 하여금 의심하지 않도록 하고 다시 자신의 진심을 토로하는 듯이 ‘삼가 분부대로 하겠다’고 하여 매우 어리석은 행동으로 자신의 진심을 숨겼으니, 이것은 자못 선주(先主)가 젓가락을 떨어뜨린 것과 같은 것입니다." 출처

원본은 《홍재전서》 <위 원제>편이다.

춘추시대 초기 제환공의 경우, 자신의 아들은 신의있는 인물에게 부탁했기 때문에 나라를 보존하고 아들에게 공위를 물려줄 수 있었지만, 관중이 자신의 후임자를 지정하지 않은 상태로 죽었고 이후 관중이 쓰지 말라고 한 신하들을 중용했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반면 유선은 비록 나라는 망하고 아들들이 자살하거나 살해당하는 불상사를 맞이했지만 현명한 재상이 살아있을 적에는 그에게 국사를 일임하고 그가 정해준 후임을 중용했으며 나라가 망한 뒤에도 처신을 잘 함으로써 망국의 군주치고는 평안한 삶을 살다 갈 수 있었다. 물론 누가 더 낫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참으로 대조되는 삶이라 할 수 있다.

중국 속담 중에
'일으켜 세우지 못할 아두'
라는 말이 있다. 다 된 밥상에 숟가락도 얹지 못하는 구제불능자를 빗대는 것으로, 유선에 대한 후대 사람들의 시선이 잘 나타난 속담이다. 그 때문인지 제갈량을 모신 무후사에 유선의 목상을 가져다 놓은 적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보이는 족족 부숴 버려서 결국엔 치워버렸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소쩍새의 수많은 이름[8]들 가운데 하나인 귀촉도(歸蜀途)는 유선의 이야기가 아니다. 놀고 먹다가 신하에게 배신당해 죽은 촉의 망제 두우라는 황제를 다룬 이야기다. 촉하면 촉한의 이미지가 커서 유선으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촉은 삼성퇴 유적으로 유명한, 엄연히 고대에 존재하던 국가의 이름이다. 무엇보다 이 이야기가 나오는 《촉왕본기》는 유선은 태어나지도 않은 전한시대의 책이다.

고우영 화백은 《만화 삼국지》에서 조운이 유선을 구해올 때 소열제 유비가 신하를 잃느니 아들이 죽는게 낫다며 아기인 유선을 내던질 때 그 충격으로 바보가 되어버렸다는 의견을 보이기도 했다.

도홍경(452년 ~ 536년)의 책 《고금도검록》에 따르면 유선은 대단한 명검을 만들어 소유했다고 한다. 물론 후세까지 전해지지는 않았다.
후주 유선은 연희 2년, 한 자루의 큰 검을 만들었는데, 길이가 1장 2척이었다. 칼날이 산을 진정시켰고, 왕왕 사람이 볼 때 빛을 뿜었는데, 후세 사람이 이를 구하려 하였으나 얻을 수 없었다.

유비가 불혹을 훌쩍 넘긴 나이에 태어난 아들이라서 조조의 아들들이나 손견의 아들들과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편이다. 특히 손견의 장남 손책과도 30살 차이가 넘어서 아버지와 아들뻘이며[9] 손권에게도 아들뻘이었다.[10] 조조의 아들 조비와는 딱 20살 차이인데다가 손자 조예보다도 2살 연하다. 조창이나 조식과도 당연히 나이 차이가 꽤 나는 편이다. 일찌감치 요절한 아들인 조충도 당연히 유선보다는 10살이나 넘게 연배가 높다.

삼국의 후왕들 중 별다른 분쟁 없이 무탈하게 왕위를 이어받은 거의 유일한 인물이었다.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장남을 잃고 다 늙어서까지 후계를 못 정한 조조영특한 장남들이 전부 요절해버린 손권 모두 후계 자리를 두고 자식들 간의 분란을 초래했다는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는 데 반해, 유비는 죽기 직전 제위를 이어받을 만큼 장성한 인물이 유선 하나밖에 없었던 것도 있고 양자 유봉도 이미 죽고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별다른 반발 없이 자연스럽게 선위가 이루어졌다.

6. 미디어 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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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음력 4월 24일.[2] 멸망 날짜는 음력 기준으로 양력으로 환산하면 263년 12월 18일~264년 1월 16일 사이이다.[3] 오호십육국시대 초기, 한(漢, 훗날의 전조)을 세운 흉노 출신의 유연(劉淵)한나라의 계승자라고 자처하면서 유선에게 효회황제(孝懷皇帝)라는 시호를 올렸다.[4] 이는 《정사 삼국지》에서 비롯된 명칭으로 저자인 진수(陳壽)조위를 정통으로 썼기에, 촉한의 군주들에게는 제(帝)자를 붙이지 않았고, 대신 유비는 선주(先主), 그리고 유선은 후주(後主)라고 지칭했다. 참고로 동오 황제들의 경우는 '오주(吳主)' 뒤에 이름을 기술하는 방식이였다.[5] 사식의 《황제들의 중국사》에서는 아승(阿升)이 진짜 아명이라고 했다. '두'와 '승'자가 비슷하여 후대에 잘못 표기했다는 것이다. 《위략》에 나오는 위명제 조예의 포고 기록에서 '유승지'라는 언급이 나오는 것을 증거로 제시했다.[6] 예를 들어 你真是个扶不起的阿斗(넌 정말 아무리 도와줘도 안 되는 아두 같은 놈이다.)[7] 흙을 쌓아 올려 하늘에 지내는 제사를 (封), 땅을 깨끗이 하고 산천에 지내는 제사를 (禪)이라 하는데, 중국의 역대 제왕이 정치상의 성공을 천지에 보고하기 위해서 태산에서 행한 국가적인 제전이다. 이 봉과 선은 원래 별개의 유래를 가지는 제사였다가 양자를 합쳐 봉선이라는 이름으로 같이 지냈다.[8] 소쩍새는 전설이나 설화의 소재가 된 덕분에 이명이 많기로 유명하다. 이조년의 <다정가>에 등장하는 자규(子規), 여인에 빠져서 나라를 잃은 황제에 관련된 망제혼(望帝魂) 혹은 두우(杜宇), 불여귀(不如歸) 또는 두견새, 솥이 적다라고 가난과 관련된 소쩍새, 의붓어머니와 관련하여 동생을 걱정하는 접동새가 죄다 한 가지 새를 일컫는 말이다. 그리고 이들은 각각 소설 또는 시의 소재가 되었다.[9] 참고로 유선이 태어날 무렵에 손책은 이미 고인이 된지 오래였다.[10] 손권의 동생이 잠시 유비의 부인이기도 했으니 따지고 보면 외숙부라고 부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