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0 11:18:59

에리히 마르크스


파일:나치 독일 국장(화이트).svg 독일 국방군의 장성급 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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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마르크스Marcks.jpg
이름 Erich Marks
에리히 마르크스
출생 1891년 6월 6일
독일 제국 프로이센 왕국 쇤베르크
사망 1944년 6월 12일 (향년 53세)
프랑스 군정청 세인트 로
복무 국가방위군(1921년 ~ 1933년)
독일 국방군(1933년 ~ 1944년)
최종 계급 육군 포병대장(General de artillerie)
주요 참전 폴란드 침공
프랑스 침공 바르바로사 작전
노르망디 상륙 작전
주요 서훈 2급 철십자 훈장
1급 철십자 훈장
백엽 기사십자 철십자상
1. 개요2. 생애3. 제2차 세계 대전에서
3.1. 폴란드와 프랑스, 그리고 소련 침공 계획의 제시3.2. 독소전쟁3.3. 노르망디 상륙 작전과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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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활약했던 독일 국방군의 포병 장교이다. A-A선을 처음 구상하고 바르바로사 작전의 초기 계획안을 제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2. 생애

에리히 마르크스는 1891년 독일 제국 쇤베르크에서 태어났다. 마르크스는 중위 계급으로 1910년 독일 제국군에 입대하였고 몇년 뒤 벌어진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였고, 이 때 부상을 입는 바람에 상단 사진처럼 얼굴(특히 코 부분)이 변형된다. 그는 1917년 참모 교육을 완수하였고, 이후 1918년에는 제국 참모부로 영전했다. 마르크스는 전쟁 당시 2급과 1급 철십자 훈장을 수훈 받았다.

전쟁이 끝난 후 마르크스는 우익민병대 자유군단[1]에서 활동하였다. 이후 1921년 그는 바이마르 공화국 국가방위군 국가방위대에 입대하였다. 그리고 1933년 4월, 히틀러가 정권을 잡고 국가방위군이 독일 국방군으로 바뀌자 마르크스는 자연스럽게 독일 국방군 육군 소속 장교가 되었으며, 그와 동시에 제8군의 참모장으로 임명되었다.

참고로 이 과정에서 위기가 있기도 했는데, 그는 장검의 밤 당시 살해당한 쿠르트 폰 슐라이허와 절친한 사이였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가 처세를 잘한 덕에 마르크스는 사태를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다.

3. 제2차 세계 대전에서

3.1. 폴란드와 프랑스, 그리고 소련 침공 계획의 제시

1939년 9월 1일, 나치 독일의 폴란드 침공이 시작되었다. 이때 마르크스는 공훈을 세워 제18군의 참모장으로 승진했으며, 1940년에는 프랑스 침공에 참여한다. 그리고 1940년 여름, 육군최고사령부(OKH)의 수장 프란츠 할더는 마르크스에게 구체적인 소련 침공 계획을 세우라는 임무를 부여했다. 그리하여 그는 "독일 본토가 적 폭격기에 의해 안전하다"는 전제 하에 소련 침공 계획은 동쪽 진군 작전 (Operation draft east)를 제시했다. 이 작전에서는 처음으로 A-A선에 관련된 내용이 작성되었으며, 마르크스 본인은 이 작전대로라면 모스크바를 함락시키고 A-A선에 도달하는데 짧으면 9주, 길면 17주가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바르바로사 작전의 위험성과 목표 달성이 9주안에 불가능하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고, 오히려 OKH에 바르바로사 작전이 실패하고 상황이 꼬인다면 1942년을 기점으로 대대적인 연합군의 반격에 직면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올렸으나 그 보고서는 무시당했다.

어찌되었든 마르크스가 세운 동쪽 진군 작전은 채택되었고 이후 좀 더 세부적으로 보완되고 가다듬는 과정을 거쳐 그 유명한 바르바로사 작전이 수립되었다. 마르크스가 소련 침공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알 수 있는 부분.

3.2. 독소전쟁

1940년 12월 마르크스는 제101 경보병사단의 사단장으로 임명되었다. 1941년, 독소전쟁이 한창이던 때 마르크스는 우크라이나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었고, 그에 따라 왼쪽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마르크스의 장남도 같은 해 전사했다.[2]

이후, 부상으로부터 회복한 이후 마르크스는 1942년 3월부터 1942년 10월까지 약 6달간 제337 보병사단을 지휘했다. 1942년 9월 그는 병과대장[3]으로 진급함과 동시에 제84군단의 지휘를 맡게 되었다.

3.3. 노르망디 상륙 작전과 죽음

1944년 6월 6일, 그의 53번째 생일날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했고, 마르크스는 자신의 84군단을 이끌고 싸웠다. 그리고 정확히 6일 후인 1944년 6월 12일, 그는 연합군의 공습으로 허벅지에 맞은 총탄이 대동맥을 지나가서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사후 그에게는 백엽 기사십자 철십자상이 수여되었다.
[1] 사실상 극우테러조직이었다.[2] 마르크스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장남은 1941년, 차남은 이후 1943년에 전사했다.[3] 정확하게 말하자면 포병대장, 3성 장군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