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666><colcolor=#FFF>이름 | Johannes Frießner 요하네스 프리스너 |
출생 | 1892년 3월 22일 독일 제국 작센 왕국 켐니츠 |
사망 | 1971년 6월 26일 (향년 79세) 서독 바이에른주 바트라이헨할 |
복무 | 독일 제국군, 프로이센군(1911년 ~ 1918년) 독일 국가방위군(1918년 ~ 1935년) 독일 국방군(1935년 ~ 1945년) |
최종 계급 | 육군 상급대장 |
주요 참전 | 제1차 세계 대전 독소전쟁 |
주요 서훈 | 백엽 기사 철십자 훈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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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892.3.22.~1971.6.26독일 국방군의 장군이다. 최종계급은 상급대장이다. 여담으로 독일 국방군의 상급대장 중 가장 어리다.
2. 생애
1892년 3월 22일, 요하네스는 독일 제국의 작센 왕국 켐니츠에서 테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건설엔지니어였다.1911년 독일 제국군에 입대하였으며, 전후에는 국가방위군에 남았다. 1940년 8월 1일에는 소장으로 진급했고, 1942년 5월 1일에는 동부전선에 배치 되어 제 102 보병사단의 지휘관이 되었다. 5개월 뒤 그는 중장으로 진급하였고, 1943년 1월 19일 부터 12월 11일까지 제 23군단을 지휘 하였다. 이후 1944년 2월에 육군 분견대 나르바를 지휘하였고, 7월 1일 상급대장이 되어, 3일뒤 요하네스는 북부집단군의 총사령관이 되었다. 이후 7월 1일 상급대장이 되었고, 25일 까지 북부집단군의 사령관으로 지냈다. 이후, 에리히 폰 만슈타인의 후임으로 남부집단군의 총사령관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우크라이나에서 로디온 말리놉스키 원수의 공세를 막지 못하여 12월 28일, 해임당했다. 그렇게 프리스너는 전쟁의 끝을 맞았다.
전후 그는 독일병사연맹(VdS)[1]의 회장이 되었지만, 독일군의 침공을 정당화한 이후 물러나야 했다. 그는 폴란드 침공을 폴란드에 있는 독일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정당화하였다. 1950년대에는 독일 연방군의 재건에 영향을 주었고 1960년대에 자신의 회고록을 작성하고 1971년 6월 26일에 죽었다.
[1] 독일연방군은 2004년 VdS와의 모든 협력을 금지했을 뿐만 아니라 접촉도 금지되었고, 2016년 이후 해체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