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Friedrich August Eberhard von Mackensen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에버하르트 폰 마켄젠[1] |
출생 | 1889년 9월 24일 |
독일 제국 서프로이센주 브롬베르크[2] | |
사망 | 1969년 5월 19일 (향년 79세) |
서독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 노이뮌스터 | |
최종 계급 | 육군 상급대장(Generaloberst) |
주요 참전 |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
복무 | 독일 제국군 1908년 ~ 1918년 국가방위군 1918년 ~ 1935년 독일 국방군 1935년 ~ 1944년 |
가족 | 아버지 아우구스트 폰 마켄젠 형 한스 게오르크 폰 마켄젠 |
주요 서훈 | 곡엽 기사 철십자 훈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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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초기 행적
독일 제국의 영토였던 포젠 주 브롬베르크[3]에서 제1차 세계 대전의 전쟁영웅인 아우구스트 폰 마켄젠 원수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908년 군에 입대하였으며 기병 장교가 되었으며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였다. 종전 후 잠시 국가방위군에 남았으나 이후 자유군단에 가입하였다. 독일 국방군이 창설되면서 1 기병여단의 지휘관을 역임하였고 이후 빌헬름 리스트의 참모가 되었다.3. 제2차 세계 대전
4. 전후 전범재판과 최후
14군 사령관 시절에 로마 주둔군의 지휘관으로써 당시 공산주의 파르티잔에게 독일군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아돌프 히틀러의 재가를 받은 보복명령이 내려졌다. OKW 지휘참모부장 알프레트 요들 상급대장, 남부전선 사령관 알베르트 케셀링 원수의 지휘체계로 이어진 상부의 명령을 그대로 하달하였으며 이때의 일로 종전 후인 1946년 로마에서 열린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는다. 하지만 이후 21년형으로 감형[6]되었으며 1952년에 석방된다.이후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았으며, 1969년 서독 북부 노이뮌스터에서 사망하였다.
[1]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 용례대로는 '폰마켄젠'으로 표기한다. 게르만어권 인명의 전치사 및 관사는 뒤 요소와 붙여 적도록 하고 있다.[2] 現 폴란드 쿠야프스코포모르스키에 주 비드고슈치(Bydgoszcz)[3] 베르사유 조약 이후 폴란드 제2공화국의 영토로 할양되고 나서 원래 이름인 비드고슈치로 돌아왔다.[4] 기계화 군단이었으며 2차 하르코프 공방전 이후 3기갑군단으로 재편성되었다.[5] 57군 사령관 쿠즈모 포들라스는 이 포위에서 퇴각하던 도중 전사했다.[6] 이때 연합국 측의 탄원도 있었고 비오 12세도 감형을 탄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