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7 12:24:23

우봉 이씨

한국의 성씨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8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00a495,#2d2f34><colcolor=#fff> · · · · · 강전 · · · · · · · · · · · · · · · · · · · · ·
· · · 남궁 · · · · ·
· · · · · · · 독고 · · · 동방 · · · 등정
· · · · · · · ·
· · 망절 · · · · · · · · 무본 · · · ·
· · · · · · · · · · · · · ·
· 사공 · · · · · 서문 · · · 선우 · · · · · 소봉 · · · · · · · · ·
· · · · · · 어금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장곡 · · · · · · 제갈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황목 · 황보 · ·
초록색: 2015년 기준으로 총 인구 100명 미만인 성씨
한자 표기가 다르더라도 한글 표기가 같으면 합산됨
}}}}}}}}}
牛峰 李氏
우봉 이씨
관향 <colbgcolor=#fff,#191919>황해도 금천군 우봉면
시조 이공정(李公靖)
집성촌 황해도 금천군 우봉면
황해도 금천군 좌면 고산리
대구광역시 북구 침산동, 산격동, 검산동, 동변동, 서변동 일원
경기도 양평군 일원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청용리
충청북도 옥천군 이원면 개심리
충청북도 옥천군 이원면 지정리
충청남도 보령시 미산면 혁전리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두류리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작천리
경상북도 문경시 마성면 일원
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 녹시리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수산리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감곡리
인구 23,902명(2015년)
웹사이트 우봉이씨 대종회 사이트
우봉이씨 모임 카페
우봉이씨 모임 밴드

1. 개요2. 상세3. 항렬자4. 해당 인물
4.1. 고려시대 인물4.2. 조선, 근대 인물4.3. 현대 인물

[clearfix]

1. 개요

황해도 금천군 우봉(牛峰)면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2. 상세

시조는 고려 무신정권 시대, 병부상서를 지낸 이공정(李公靖, 1137~1212)이다.

고려사의 기록에 따르면, 1193년(명종 23)에 김사미·효심의 난 때 대장군 전존걸의 지휘 아래 장군으로서 다른 장군 이지순·김척후·김경부·노식 등과 함께 출전하였으나 진압에 실패하였다고 한다.#1#2#3

족보에는 명종 때 벽상삼한삼중공신, 문하시중, 잠성부원군이 되었으나, 희종 때 병부상서로 좌천되었고, 사후 삼주백에 추증되고, 시호는 문경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고려사 열전 이자성 편에서는 부친 이공정이 병부상서였다고만 기록하였다.# 다만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족보를 인용하여 삼중공신, 문하시중, 잠성부원군, 시호 문경이라고 하였다.#

살펴보건대, 명종 재위기간(1170~1197)과 시조의 생몰년(1137~1212)을 감안할 때 1193년 종4품 무관직인 장군에서 4년 안에 수상(首相)인 종1품 문하시중에 올랐다고 보기는 힘들다. 연대상 병부상서로 좌천된 것이 아니라, 계속 승진하여 정3품 병부상서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의 국방부장관에 해당하는 관직으로 결코 낮은 자리가 아니다.

시조 이전의 역사는 실전되었으나, 관북 지방에서 발견된 전주 이씨 족보나 (구)원주 이씨 족보에 우봉 이씨 시조의 휘(諱)가 보여 연구가 필요하다. 특히 (구)원주이씨대동보의 원주이씨 원조록(原州李氏 遠祖錄)을 보면, 원시조 이진민(李眞民)[1]을 1세로 하여 27세 이도균(李道均)의 차남 이춘계(李春桂)가 분적하여 (구)원주 이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하고 있고, 3남이 이공정(李公靖)이라 하고 있다.[2] 시조와 휘가 같아 동일인 여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원주이씨 원조록의 이공정이 시조와 동일인이라고 하여도 원시조 이진민의 선계(先系)는 알 수 없는데, 일설에 따르면 신라 우장군(右將軍) 이두창(李頭昌)이 우봉 이씨의 비조(鼻祖)가 된다고 한다. 위서(僞書) 논란이 있는 신라삼성연원보(新羅三姓淵源譜, 1934)에 나오는 신라개국공신 이십대가(新羅開國功臣 二十大家) 중 한 명으로 옥저가 신라에 말[3]을 헌납하게 한 공이 있다고 한다.[4]

조선시대에 문과급제 43명, 무과급제 8명을 배출했다. 또한 내각총리대신[5] 1명, 우의정[6] 1명, 부부인[7] 1명 등 1품 이상 5명, 의정부 참찬•6조 판서•한성부판윤 등 정2품 이상 7명, 6조 참판•관찰사•순찰사 등 종2품 이상 7명을 배출하였다.[8]

우봉 이씨의 인구수는 2000년 기준으로 20,525명이고, 2015년 기준으로는 23,902명이다.

3. 항렬자

항렬자는 22세까지 오행상생법으로 쓰다가 23세에서 32세까지는 천간법을. 33세에서 44세까지는 지지법으로 항렬을 지었다.[9] 2002년판 족보 기준으로 가장 낮은 항렬은 30세이다.
23세○용(用)
24세○구(九)
25세병○(丙)
26세○녕(寧), ○형(衡)
27세무○(茂)
28세○범(範)
29세강○(康)
30세○재(宰)
31세성○(聖)
32세○규(揆)
33세학○(學)
34세○건(建)
35세인○(寅)
36세○경(卿)
37세진○(震)
38세○선(選)
39세년○(年)
40세○업(業)
41세○보(輔)
42세○준(遵)
43세성○(成)
44세○현(玄)

4. 해당 인물

4.1. 고려시대 인물

  • 이공정 - 시조. 병부상서. 시호는 문경.
  • 이자의 - 문하평장사. 고려사에는 기록이 없다. 이공정의 장남.
  • 이자성 - 문하평장사, 상장군. 시호는 의열. 이공정의 차남.
    고려사 열전에 이자성 편을 두었다.#1#2#3#4 부친 이공정은 김사미·효심의 난 때 진압에 실패했지만, 이자성은 가히 진압의 달인이라고 할 만큼 모든 반란들을 깔끔하게 진압해 버렸다. 고종의 총애를 받았는지 그가 죽자 왕이 크게 슬퍼하였다.
  • 이시 - 참지정사, 정당문학, 시호는 안경. 고려사에는 기록이 없다.
  • 이해 - 판도판서, 상장군. 고려사에는 기록이 없다.

4.2. 조선, 근대 인물

  • 이길배 - 황해도관찰사, 형조참의
  • 이순 - 참판[10], 우도수군첨절제사[11]. 청백리[12].
    족보에는 평안도관찰사라고 하였으나, 조선왕조실록에는 참판이라고 하였다.# 태조 때 우도수군첨절제사로 언급된 이순과 동일인인지 확실치 않다.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왕실 종친 정양군 이순과는 구별된다.
  • 이승녕 - 성균관 대사성.
  • 이승건 - 함경도관찰사. 호조참판. 동지중추부사.
  • 이지신 - 황해도관찰사[13]. 호조•예조참의
  • 이유겸 - 장례원 판결사. 호조참의. 문봉서원 제향.
  • 잠성부부인 우봉이씨[14] - 조선 국구[15] 달성부원군 효희공 서종제의 처. 영조의 정비 정성왕후의 어머니.
  • 이숙 - 우의정, 이조판서, 사간원 대사간. 시호는 충헌. 상덕사 제향. 이유겸의 아들.
  • 이익 - 사헌부 대사헌, 사간원 대사간, 이조참의.
  • 이만성 - 이조•병조판서. 우의정 이숙의 아들.
  • 이재 - 성리학자. 의정부 우참찬, 이조참판, 예문관 제학. 시호는 문정. 숙종의 처조카. 우의정 이숙의 손자. 이조판서 이만성의 조카.
  • 이제원 - 사간원 대사간. 이재의 차남.
  • 이채 - 동지중추부사. 증 의정부 좌찬성. 시호는 문경. 이제원의 5남.
  • 이광문 - 의정부 우참찬, 이조•형조판서, 한성부판윤, 전라도관찰사, 이조참판, 도승지, 성균관 대사성, 사간원 대사간. 시호는 문간.
  • 이광정 - 이•호•형조판서, 한성부판윤, 경기•강원도관찰사, 이조참판, 성균관 대사성
  • 이광헌 - 이조참판. 강화유수.
  • 이우 - 판의금부사, 의정부 좌•우참찬, 이•예•형•공조판서, 한성부판윤, 경기관찰사, 이조참판, 예문관 제학, 홍문관 제학, 도승지, 성균관 대사성, 사헌부 대사헌.
  • 이호준 - 판중추부사, 판의금부사, 이•예•병•형•공조판서. 대한제국 중추원의장, 궁내부 특진관. 시호는 충익. 이완용의 양부.
  • 이호익 - 의정부 좌참찬, 형조판서, 사헌부 대사헌, 이조참판. 대한제국 장례원 경, 태의원 경, 궁내부 특진관.
  • 이호철 - 의정부 좌참찬, 형조판서, 한성부판윤, 이조참의, 성균관 대사성.
  • 이호석 - 사간원 대사간. 대한제국 영희전 제조, 봉상사 제조, 궁내부 특진관. 이완용의 친부.
  • 이완용 - 대한제국 내각총리대신, 학부•외부대신, 궁내부 특진관. 조선귀족 후작[16]. 친일반민족행위자. 매국노의 대명사. 족보에서 삭제되었으나, 2002년판 우봉이씨세보에 다시 실렸다[17]. 이호준의 양자. 이호석의 친자.
  • 이윤용 - 형조판서. 대한제국 군부•농상대신. 조선귀족 남작. 한성은행 은행장. 친일반민족행위자. 이호준의 서자. 이완용의 이복서형[18].
  • 이용구 - 대한제국 경기순찰사.
  • 이항구 - 이왕직 장관, 조선귀족 남작. 친일반민족행위자. 이완용의 아들.

4.3. 현대 인물

  • 이동녕 - 제4•6•7대 국회의원. 봉명그룹 창업주.
  • 이세무 - 前 봉명그룹 회장. 이동녕의 장남.
  • 이병무 - 아세아그룹 명예회장. 이동녕의 차남.
  • 이승무 - 제14대 국회의원. 前 봉명그룹 부회장. 이동녕의 3남.
  • 이윤무 - 아세아제지 명예회장. 이동녕의 4남.
  • 이훈범 - 아세아그룹 회장. 이병무의 장남.
  • 이인범 - 아세아그룹 부회장. 이병무의 차남.
  • 이현범 - 우신벤처투자 전무. 이윤무의 장남.
  • 이찬구 - 제13대 국회의원. 한국정신문화연구소 소장.
  • 이병도 - 역사학자. 대한민국 실증사학의 시조.
    이완용과 친척이란 설에 죽을 때까지 시달렸다. 이완용과는 족보상 30촌 관계이고 혈연적으로도 36촌 관계이므로 사실상 남이다. 연구에 쓴다며 이완용의 관뚜껑을 가지고 가 불태워버린 것을 보면 이완용을 부정적으로 평가했음이 틀림없다.[19]
    한편 이병도도 친일경력으로 인해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어 있다. 조선사 편수회에 근무한 경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명단에는 등재되어 있지 않다. 창씨개명을 거부한 탓에 일제 말년에는 요주의 시찰 인물이 되었다고도 한다.
  • 이장무 - 서울대 총장. 이병도의 친손자[20]. 이어령의 9촌 조카.
  • 이건무 - 문화재청장. 국립중앙박물관장. 이병도의 친손자[21]. 이어령의 9촌 조카.
  • 이어령 - 문학평론가이자 전 장관. 1982년 '축소지향의 일본인' 발표 이후 서구사회에도 잘 알려진 평론가가 되었으며, 생전에 '한국 지성계의 거두'로 알려져 있었다. 이병도의 7촌 조카.[22]
  • 이민아 - 미국 LA지역 부장검사, 미국 변호사, 목사. 이어령의 장녀.
  • 이승무 - 영화감독,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미디어콘텐츠센터 센터장•아트앤테크놀로지랩 연구소장. 이어령의 장남.
  • 이강무 - 백석대학교 교수. 이어령의 차남.
  • 이병린 - 대한변호사협회 13•17대 회장,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장.
  • 이만령 - 광일식품 대표이사.
  • 이병덕 - 대한도시가스 부사장.
  • 이영범 - 제19대 광주고등법원장. 법무법인 화인 고문변호사.
  • 이원구 - 배화여자대학교 제12대 이사장.
  • 이병훈 - MBC PD. 조선왕조오백년 제작 시절부터 사극 전문 감독으로 유명했으며, 이후 허준, 상도, 대장금 등의 작품들도 감독했다.
  • 이범수 - 배우.
  • 이창하 - 건축 인테리어 업자.


[1] 신라에서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이는 고려시대 관직이므로 신빙성이 떨어진다. 다만 이진민이 신라시대 인물이라는 것은 알 수 있다. 배위는 행주 기씨 기숙(奇淑)의 딸로 기록되어 있다. 기숙은 상서(尙書)를 지냈다고 하는데 이 역시 고려시대 관직이다.[2] 특이하게도 장남 이성계(李城桂)와 차남 이춘계(李春桂)는 공통적으로 계(桂)자를 쓰고 있는데, 이공정(李公靖)은 쓰고 있지 않다.[3] 말 200필이라고도 전하는데 출처는 불명이다.[4] 李頭昌, 官右將軍有沃沮獻馬之功.[5] 영의정을 고친 것으로 오늘날의 국무총리에 해당한다.[6] 숙종조 우의정 충헌공 이숙(李䎘, 1626~1688).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을 통칭하여 정승(政丞) 또는 상신(相臣)이라고 한다.[7] 영조의 정비 정성왕후의 어머니인 잠성부부인 이씨. 부부인은 외명부의 정1품 작위이다.[8] 대충 파악한 숫자이다. 2품 이상의 수는 더 늘어날 여지가 있다.[9] 참고로 천간법+지지법 조합으로 항렬을 짓는 예는 전주 이씨 효령대군파와 연안 이씨 태자첨사공파가 있다.[10] 6조의 종2품 차관직.[11] 종3품 무관직.[12] 성종조 청백리에 녹선.[13] 조선왕조실록에는 감사(=관찰사)라고만 나온다.[14] 岑城府夫人 牛峰 李氏(1660~1738).[15] 영조의 장인.[16] 백작에서 후작으로 승작.[17] 인권(仁卷, 1권) 821쪽 참조.[18] 이윤용은 아버지 이호준의 첩의 아들이고, 이완용은 이호준의 양자이다.[19] 출처: 시사저널 1992년 8월 27일자 기사.[20] 아버지 이춘녕이 생부(生父) 이병도의 형 이병렬에게 입양되었다.[21] 아버지 이춘녕이 생부(生父) 이병도의 형 이병렬에게 입양되었다.[22] 시조 22세 이호정의 장남 이태용의 손자(장남 이봉구의 5남)가 이병도이고, 이호정의 4남 이진용의 증손(차남 이정구의 4남 이병승의 5남)이 이어령이다. 이완용과는 족보상 31촌 관계이고 혈연적으로도 37촌 관계이므로 사실상 남이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