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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고등학교 정문 |
중동고등학교 100주년 기념관[1] |
<colbgcolor=#1a2a42><colcolor=white> 중동고등학교 中東髙等學校 Joongdong High School | |
개교 | 1906년 5월 10일 ([age(1906-05-10)]주년) |
유형 |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
성별 | 남학교 |
형태 | 사립 |
학교법인 | 중동학원 |
교장 | 이명학[2] |
교감 | 이경호 |
교훈 | 정직·근면·청결 |
교화 | 목련 |
교목 | 은행나무 |
교수 | 사자 |
학생 수 | 1,083명[기준] |
교직원 수 | 81명[기준] |
관할 교육청 | 서울특별시강남서초교육지원청 |
주소 | 서울특별시 강남구 일원로 7 (일원동) |
홈페이지 |
[clearfix]
1. 개요
2025 중동고등학교 홍보 영상 |
의롭게 생각하고 당당하게 행동하는 인재 육성
서울특별시 강남구 일원동에 위치한 강남 8학군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이자 남자고등학교.2. 학교 연혁
1906.04.02 | 관립외국어 학교 내 한어야학 설립 (설립자: 오규신, 유광렬, 김원배) |
1906.04.02 | 오세창 초대 교장 취임 |
1907.01.22 | 중동야학교로 명칭 변경 |
1914.05.10 | 중동학교 설립인가 |
1914.02.15 | 종로구 수송동 85번지로 이전 |
1915.09. | 최규동 교장 취임 및 학교 경영 인수 |
1945.08.15 | 중동중학교로 개칭 |
1948.07.31 | 재단법인 중동학원 설립 |
1951.08.25 | 중동고등학교로 인가 |
1984.03.01 | 강남구 일원동의 신축교사로 이전 |
1994.06.01 | 삼성그룹의 재단 인수[5] |
2006.05.13 | 개교 100주년 기념식 |
2009.07.17 | 자율형 사립고등학교로 인가 |
2018. | 원익그룹의 재단인수[6] |
2021.03.01 | 제22대 이명학[7] 교장 취임 |
2022.02.10 | 115회 졸업식 (졸업생 누계: 56,759명) |
3. 학교 상징
3.1. 교가
[8]<rowcolor=#fff> 교가 |
<rowcolor=#fff> 응원가 |
4. 시설
학교 부지는 총 21,686m2 (6575평). 참고로 사진에서 가까운 옥상이 녹색인 건물은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영희초등학교. 왼쪽 중앙 건물과 운동장이 중동고등학교 부지이다.
- 백주년 기념관[9]
창조관, 컨퍼런스룸, 체육관이 모두 여기 속한다. 위 사진에서 제일 앞에 있는 서로 연결되어 있는 두 건물.
- 창조관
대강당. 학교 정문으로 들어가서 체육관을 지나 왼쪽 문으로 들어가면 있는 계단으로 3층까지 올라가면 된다. 시설 자체는 오른쪽 백주년 기념관에 있지만 해당 건물에 있는 계단은 바로 연단으로 들어가는 용도와 귀빈용으로 사용된다. 본관 3층 복도와 다리로 연결되어있다. 수용인원은 350명에서 400명 정도로 원래 한학년에 담임, 교장, 교감, 부장 선생님들까지 하면 딱 맞는 수준이었지만 학생 수가 적어져 보통 자리가 남는다. 입학설명회,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신입생 동아리 홍보, 각종 강연 및 축제 때 주요 공연의 용도로 쓰인다. 입학 설명회나 축제 때에는 뒷 공간과 계단까지 합쳐 600명 정도 수용하는 것 같다. 일요일에는 다움교회가 예배를 드린다.
- 컨퍼런스룸
소강당. 창조관과 같은 건물에 있지만 1층에 있다. 오른쪽 건물로 바로 들어가면 왼편에 있다. 수용인원은 100명 정도. 임원 전체 소집, 동문 선후배 멘토링, 자치법정, 이공계 프런티어, 소규모 대학 설명회 등 중소규모 행사에 주로 이용된다. 입학설명회 때 대강당인 창조관이 자리가 없을 경우 이곳에 남는 인원을 수용한다.
- 체육관
교문 바로 앞의 넓은 공터 바로 왼쪽에 있는 것. 입장 시에는 위에 나온 창조관으로 올라가는 계단 왼쪽에 있는 문으로 들어가야 하고 특수할 때에는 공터로 열린 문을 개방한다. 조명장치와 음향시설, 연단이 갖추어져 있어 필요 시 강당으로 쓸 수 있다. 주 쓰임새는 축제 시 동아리 부스 설치, 졸업 30주년 기념 홈커밍데이 행사장, 비오는 날 체육 수업, 그리고 검도 수업[10]. 최근에 지어져 건물이 매우 깨끗하다. 그러나 크기는 그다지 크지 않은 편.
- 성큰 가든(Sunken Garden) 창조관 다리 밑으로 지나가면 나오는 안으로 움푹 파인 지대로 왼쪽에는 식당, 오른쪽에는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문이 있다. 점심시간에 이곳에 줄을 서서 기다린다. 2018학년도까지 이곳에 매점이 있었지만 2019학년도부터 업체가 바뀌며 본관 뒤 컨테이너로 자리를 옮겼다. 매점에서 아이스크림이 판매되면서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는 지역임을 표시하는 팻말이 붙었는데 거기에 성큰가든이라 적혀있었고 그 이후로 성큰가든으로 불렸으며 학교/학생회에서 사용하는 공식 명칭도 성큰가든이다. 이렇게 지하에 햇빛이 들어오도록 짓는 건축 기법을 선큰이라 해서 붙은 이름일 가능성이 크다.
비둘기가 많이 오는 곳이었다. 학생들이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는데, 그 덕에 비둘기들이 점심시간 마다 떼거지로 몰려왔다. 다만 위생때문에 학생회 측에서 비둘기를 쫓기 위해 노력했다. CD를 매달아 놓거나 퇴치 스피커 설치 등 다양한 노력을 했지만 그닥 효과가 크기 않았고 천장에 있는 철골 구조물에 그물을 쳐 놓은 이후로 비둘기의 수가 크게 줄었다고 한다. 이후 매점이 옮겨가면서 성큰가든에 비둘기가 더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 본관
- 본관 1층
- 본관 2층
- 본관 3층
- 본관 4층
- 본관 5층
교장실, 행정실, 인쇄실, 방송실, 도서관, 숙직실, 3학년 1~5반
프런티어실[11], 보건실, 3학년 6~12반, 체육부실, 첨단강의실[12]
제 1교무실, 학생회실, 영어전용교실[13], 음악실, 2학년 1~8반
제 2교무실, 미술실, 다용도실, 1학년 1~4반, 2학년 9~12반, 세미나실, 학생상담실
물리실, 화학실, 생물실, 지구과학실, 각각의 준비실, 과학조교실, 다목적실, 1학년 5~12반
- 엘리베이터
체육관 건물에 설치되어 있으며 전층 운행한다.
- 이사장실
학생들이 찾을 일은 없지만 신경 쓰자면 은근히 신경 쓰이는 부분. ~
- 기타
운동장, 테니스장, 농구장, 체육창고, 수위실, 목공실, 기계실
4.1. 구 교사
위 역사 단락에서 볼 수 있듯이 84년부로 현 위치인 강남구 일원동로 이전했다. 기존 위치는 종로구청에서 직선 거리로 200여 미터, 북쪽으로는 한국일보사 건물 바로 뒤였고 주소는 종로구 수송동이었다. 종로구청에서 250여 미터, 청진동 해장국 골목에서 300여 미터 거리.중앙청 건물(구 조선총독부 청사)을 기준으로 6시 방향으로 아래로 내려오면 수송학교, 중동학교라는 글씨가 보이고 사진의 7시 방향을 보면 수송국교, 숙명학교, 종로국교 글씨가 보인다.
수송동 시절엔 교문이 두 개였는데, 운동장은 하나에 건물도 같이 사용하는 것이 많았음에도 명목상 남서쪽 중학교 교실 쪽은 중학교 교문, 한국일보사 사옥에 바로 붙은 남쪽 고등학교 교실 쪽은 고등학교 교문이었다. 어디로 들어가도 되던 때가 있었고, 고등학교 중학교 나눠 들어가게 하기도 했다. 하교 때엔 어디로 나가도 무방.
수송동에는 중동고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수송전기공고가 있었다. 1960년 6월 두 학교간의 유혈극이 신문에 보도될 정도로 크고 심각했는데 두 학교의 통합을 찬성하는 중동고등학교 학생들이 통합을 반대하는 수송전기공업고등학교에 무단으로 침입하여 기물을 파손하고 양교간 담장을 무너뜨렸으며 급기야 양교간 투석전으로 전개되면서 부상자가 발생하고 말았다. 중동고등학교는 운동장이 비좁았고 수송전기공고는 운동장을 확보하고 있어서 통합을 하면 같이 쓸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한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서 검색해보면 당시의 기사를 확인할 수 있다. 수송전기공고는 중동학원이 인수하여 중동전기공고로 운영하다가 폐교했다.
중동고와 숙명여자고등학교가 붙어있었던 흔적을 볼 수 있다. 수송동 교정 당시, 숙명여고는 중학교 건물과 담 하나 사이에 두고 붙어 있었다. 불미스런 일이 일어날 것을 염려해서 중동 쪽에는 건물 뒤로 가는 통로가 아예 없었고 담장 위에는 철조망까지 쳐 있었다. 79년경 숙명이 먼저 이사갔고, 몇 년 후 중동학원도 강남으로 이사했다. 지금은 그 위치에 비석으로 옛 중동고 위치, 옛 숙명여고 위치, 옛 수송전기공고 위치임을 표기하고 있다.
강남구로 이전할 당시엔 학교 근처가 개발되지 않아 허허벌판이거나 농경지였다고 한다. 당시 여러 학교들이 도심에서 강남으로 이전했는데, 중동, 숙명, 경기, 서울, 휘문 등이 해당 학교들이다. 기존 학생들은 통학버스로 강남구까지 다녔다고 한다.
아래 사진들은 수송동 교사들의 모습이다.
동남쪽 교문. 중학교교문으로 썼다.
고교 건물
체육관 건물. 안테나는 연합통신 등의 타 건물 안테나다.
중학교 건물. 엘리베이터 없다. 붉은 벽돌 건물이 최초의 교사라 한다.
체육부와 특별활동부가 사용하던 건물. 원래 교실이 있었지만 일부는 창고(석탄, 장작 창고)로 쓰였고 81년 당시에도 교실로는 쓰지 않았다.
5. 학교 생활
- 명찰이 한자[14]로 적혀 있다. 주변 학교들과는 차이가 있는 모습. 노란 한자가 쓰여져 있는 검은 명찰은 근처 학교 학생들에게 중동의 상징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사실 학생들의 인권과 사생활 보호를 위한 교사들의 뜻 깊은 방책이라는 드립도 존재. 이 때문에 잃어버린 교복을 찾아도 주인한테 줄 수 없는 웃지 못할 일이 종종 일어난다. 체육 시간 전후로 옷을 갈아입을 때 누구 체육복인지 모르는 경우가 생간다. 특히나 이름에 복잡한 한자가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교사들도 못 읽는 경우가 나온다. 특히 새로 온 젊은 교사들은 힘들어한다.
- 80년대와 90년대에는 명찰의 색으로 학년이 구분되었다. 빨간색-파란색-노란색이었고 체육복도 이렇게 색상으로 학년을 나누었다. 색상은 선후배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선후배 관계가 명확한 중동고에서는 명찰 파악하는 것이 중요했었다. 2004년 1학년(100회) 기준 뱃지색깔로 학년을 구분했었다. 1학년은 노란 둥근 테두리에 학교 로고 2학년 파란 둥근 테두리에 학교로고 3학년은 테두리 없이 학교 로고 모양의 뱃지었다. 구교사 뒤 컨테이너 매점에서 구입 가능했으며 각 동아리별 뱃지도 있었다. 이후에는 명찰의 테두리 색으로 학년을 구분했는데, 진남색-녹색-흑색이었으나 흑색과 진남색이 구분이 안 된다는 이유로 진남색이 적색으로 대체되어 적색-녹색-흑색으로 바뀌었는데 흑색이 황색으로 바뀌어 현 120회 신입생 포함 기준 현재는 3학년 녹색, 2학년 황색, 1학년 적색 순으로 사용 중이다.
- 수능 전날이면 '수능 출정식'이란 걸 한다. 나름 유명한지 매해 수능 당일날 저녁 뉴스를 보면 자료 화면으로 뜨기도 한다. 2017년 출정식에는 미국 abc뉴스에서도 취재한 적이 있다.(링크) 수능 전날 3학년은 일찍 끝나는데, 1, 2학년 학생들이 학교 마당에서 교문까지 늘어서서 박수를 치거나 응원가를 연호하며 깃발[15]을 펄럭이고 3학년은 그 사이를 걸어 교문을 나가는 것. 교문 쪽에는 선생님들이 나와서 격려해 주시는데 이때 은근 감동이다. 솔직히 눈물 흘리는 애들 많다. 당연하지만, 매년 행사 때마다 바로 길 건너 앞에 아파트에서는 민원이 폭주한다고(...) 그리고 그날 밤 11시, 몇몇 동아리 소속 1,2학년들은 현장수능응원을 위해[16] 각자 소속된 동아리가 모이는 학교 앞으로 가서 노숙을 했지만 111회 기준 요새는 선생님들이 단속을 나가서 잡는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목 좋은 자리를 선점하고 응원가 부르기, 경례하기, 절하기 등을 하고 시험 시작하면 해산한다. 방송사나 신문사의 기자가 응원 장면을 촬영하고 인터뷰하기도 하는데 높은 확률로 당일 지상파 방송의 메인 뉴스에 등장한다. 이때 복장 원칙은 흰 와이셔츠에 넥타이만이다. 그래서 응원이 끝나면 몸이 굳어버리는 참사가 발생한다. 2018년 수능부터 당일 아침 응원이 금지되었다. 그리고 분위기라는게 있어 수능 들어갈때 괜스래 가슴이 떨리고 긴장을 엄청하게 된다.
학교 내부응원. 일부 가사가 검열삭제되어있다.
수능당일 현장응원
2024 수능응원[17]
- 축제는 백농축전이라는 이름 하에 2학기 말, 12월에 열린다. 원래는 1학기 기말시험이 끝난 이후였는데, 2014년부터 옮겨졌다. 3학년의 축제 참여를 지원하기 위해서라는 말이 있지만, 수능이 끝난 시점이라 3학년은 그때 그냥 다른 데서 논다. 아니, 애초에 학교도 잘 안 나온다. 축제는 이틀에 걸쳐 진행되며, 첫째날은 본교 학생들끼리, 둘쨋날은 다른 학교들까지 함께 축제를 진행한다. 2016년 기준으로 백농축전은 하루로 축소되었다. 동아리가 뺑뺑이로 바뀐 것과 같은 해에 있는 것을 생각하면 조금 이상한 부분.
- 위 시설 항목에서도 언급되었지만 특이하게도 1주일에 1시간 검도수업이 존재한다. 학생들은 검도수업을 대체로 싫어하는 분위기지만 칼 갖고 논다고(...) 재미있어하는 모습도 가끔 보인다. 원래는 2012년까지는 2학년까지 대상이었지만, 학생들이 싫어해서인지 108회부터 1학년만으로 대상이 축소되었다[18].
- 1학년들의 경우 2학기 기말고사까지 다 끝나고 나면 학생회 주최로 축구대회를 열었다. 겨울철에 하다 보니 정신없이 축구하다가 미끄러져(...) 부상을 입는 경우가 많았다. 불미스러운 사고 이후 109회부터는 더이상 겨울에 하지 않는다. 2016년 입학생인 112기의 경우, 아예 축구대회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2017년 기준으로 운동회에 추가되었다.
- 매년 1학년들을 대상으로 <백농 최규동>[19]이라는 학교 설립자 격인(최규동이 설립한 것이 아니고 1918년 인수해 크게 키운 사람이며 독립유공자라 내세우며 존경하는 것이다.) 최규동의 일대기를 그린 만화책을 나눠 준다.
- 한편 2학년들은 축제기간 즈음에 농구대회를 열였다. 전통적으로 이과에서 우승반이 나왔지만 108회 때는 문과에서 우승반이 나왔다.
- 명문고다 보니 유명 교사[20]이 재직을 한다. 대표적으로 EBSi에서 세계지리를 가르치시는 민병권(강사) 선생님과 철학교사 안광복 선생님이다. 또한 EBSi에서 국어를 가르치시는 최서희(강사) 선생님이 있다.
- 전통 행사인 홈커밍데이가 있다. 졸업한 지 30년이 되는 기수가 주체가 되어 5월에 열리는데, 졸업생들은 돈을 모아서 후배들에게 무언가를 사주는 게 전통이다.
- 2020년 코로나19의 여파로 인해 타 여러 학교들처럼 수학여행과 축제가 취소되었다. 2022년 축제, 수학여행, 수능 출정식 모두가 부활했다
6. 운동부
- 70-80년대엔 중동 아이스하키부, 축구부가 강력하여 중동 출신 국가 대표, 프로 선수가 꽤 있었다. 축구협회 회장을 지낸 조중연, 동 시대의 조영증 등이 그 예. 19년 기준으로 경남 FC 김종부 감독, 고 차경복 전 성남 FC 감독, 90년과 96년 K리그 우승을 이끈 고재욱 전 럭키금성, 울산현대 감독 등 유명한 축구 선수 출신이 많다. 아이스하키 또한 유명 선수를 많이 배출했고, 최근으로 범위를 좁히면 중동고 시절부터 신동이란 소리를 들었던 신상훈이 있다. 하지만, 아이스하키부는 2025년부터 신입 부원을 선발하지 않는 방식으로 해체가 결정되었다.
- [서부리그] [서울]2022 전국 고등 축구리그(후반기)에서 4승 1패로 2위의 성적을 거두었다
7. 출신 인물
가나다순으로 정렬해주시기 바랍니다. |
나무위키에 등재될 정도의 저명성 있는 인물만 기록 가능합니다. |
강석호 | 고재욱 | 구자명 | 김강우 | 김동환 | |
김광섭 | 김길홍 | 김용대 | 김무성[22] | 김유열 | |
김병순 | 김일수 | 김수현 | 김승규 | 김지하[23] | |
김종부 | 김창만 | 김태선 | 김택기 | 김종부 | |
김택기 | 김희라 | 동하 | 문국현 | 박명근 | |
박명재 | 박병선 | 박병엽[24] | 박상준 | 박영문 | |
박준우 | 박정원 | 백인엽 | 설송웅 | 손석두 | |
손진태 | 손창호 | 송진백 | 신상훈 | 신준희 | |
심현섭 | 안동선 | 안용백 | 안정효 | 양승조 | |
양일동[25] | 양주동 | 염동연 | 우제창 | 유홍준 | |
윤제술 | 윤후덕 | 오세훈[26][27] | 이교선 | 이규형 | |
이남규 | 태일(블락비) | 이희승 | 이병도 | 이병철[28] | |
이병헌 | 이만우 | 이호 | 장학영 | 정동환 | |
정원준 | 정장선 | 정종원 | 이용한 | 조민국 | |
조정훈 | 조흥만 | 전진한 | 차경복 | 최순주 | |
최효진 | 한광옥 | 함종빈 | 김병기 | 손양원 | |
김웅진 | 김상순 | 표현태 | 홍사립 | 장충준 | |
권상국 | 김희완 | 위철환 | 문창용 | 하길종 | |
한용수 | 함인섭 | 이관술 | 문상훈 | 정승우 | |
김철배 | 심규섭 | 유의재 | 이동주 | 박병엽 | |
오의용[29] | 박종환 | 김태형 | 김종익 | 이일웅 | |
이수일 | 신석호 | 이항발 | 황경수 | 조남수 | |
이선기 | 장덕환 | 이호동 | 장석효 | 이내창 | |
손목인 | 권오돈 | 조중연 | 류근관 | 최영덕 | |
김철주 | 박은수 | 정산 | 장두환 | 전우익 | |
배현준 | 이종상 | 임수복 | 노양학 | 석용규 | |
박동웅 | 김영기 | 이종화 | 송경호 | 이원석 | |
황경석 | 설세훈 | 마동석[30] | 허기태 | 박건식 | |
돈지덕 | 류근혁 | 박승우 | 김정우 | 홍사준 | |
김대유 | 김창봉 | 장만 | 이창수 | 장석준 | |
김봉남 | 김상훈 | 이진우 | 권순표 | 김진(기업인) | 주영훈(공무원) |
김익영 |
8.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
8.1. 지하철
서울 지하철 3호선 | 대청역 4번 출구 |
- 참고로 교통편이 상당히 좋다. 교문 바로 옆이 서울시 지하철 3호선 대청역이고, 그 반대편으로 비슷한 거리에는 3호선 학여울역과 2호선 삼성역으로 갈 수 있는 버스 정류장이 존재한다.
8.2. 버스
번호 | 기점 | 종점 | 경유지 | 배차간격 |
강남05 | 개포1동 | 석촌역 | 주공1단지ㆍ수도공고ㆍ개포동역ㆍ대청역ㆍ가락시장 | 8~13 |
강남01 | 일원본동 | 삼성1동 | 일원역ㆍ삼성서울병원ㆍ대청역ㆍ삼성역ㆍ봉은사역 | 5~10 |
3413 | 강동공영차고지 | 수서경찰서 | 명일여고ㆍ올림픽공원ㆍ잠실역ㆍ가락시장ㆍ수서역 | 6~12 |
4312 | 개포중 | 가락1동 | 양재역ㆍ강남역ㆍ압구정역ㆍ선릉역ㆍ대치역 | 5~15 |
9. 사건 및 사고
- 1990년 중동고 개포고 패싸움 사건 : 자세한 내용은 기사 참조. 원문 출처
5월 11일: 중동고생이 개포고 담벼락에 축제 포스터를 붙이려다 개포고생들에게 집단 폭행당함. 이후 양교 학생들 사이 수차례 시비, 폭행 발발 (오락실, 아파트단지 등에서 집단폭행)
5월 18일: 개포고 운동장에 들어선 중동학생 60명이 "비겁자 개포고" 구호 외침. 그러자 개포고 여학생들이 창문으로 야유를 부림. 중동고 학생들 각목들고 올라가 4개 여학생반 유리창 깨뜨리는 등 난동을 부렸으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하자 도망침.
뉴스기사 내용에 덧붙여 실제 사건의 자초지종을 설명하면 개포고 복도에서 갑자기 누군가 '중동만세!' 하면서 지나갔고 이후 중동고 학생들이 위의 설명처럼 운동장에 등장 나머지 사건 전개는 기사와 같다. 이 사건 이후 중동고와 개포고 사이에서 마찰이 끊이질 않았고 어떤경우는 중동고생과 개포고생이 서로 싸우다 결국 두 학생의 부모가 만났더니 서로 회사 동료인 상황까지 가서 계속 두고 볼 수 없었다고 한다. 결국 개포고에서 개포고 학교 깃발을 들고 사과하러 왔고 중동측에서도 사과를 했었다.
이때 경찰이 중동고에서 사건의 주동자를 잡으러 왔었는데, 결국 잡지 못했다고 한다. 경찰이 처음에 사건의 주동자가 있으면 운동장으로 나오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도 나오지 않았고 경찰은 경찰대로 운동장에서 계속 나오라고 하자 갑자기 처음에 누군가가 나오고 이후 또 누군가가 나오고 또 나오고 또 나오고 결국엔 중동 학생 전부가 다 나오자 경찰도 누굴 잡을 수가 없어서 결국 돌아갔다고 한다. 훗날에 한 교사가 동문회에서 어떻게 그때 전부 나올 생각을 했냐고 묻자 3학년이 당시 운동장에 나가면서 당시 2학년을 끌고 나오고 2학년들도 나가게 되니 1학년들도 나가게 되었고 그 결과 모두가 나가게 되었다고 한다.
- 학교법인 중동학원 부도 사태 : 1992년 8월에 사립중고등학교 법인으로서는 이례적인 학교법인 중동학원 부도 사태가 일어난 적이 있다.# 하지만 2년도 채 안 된 1994년 초에 삼성그룹이 인수하면서 중동학원 부도 사태는 이례적으로 재빠르게 조기진압 되었다. 삼성그룹의 설립자 이병철 회장의 모교라서 인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당시 150억 부채를 해결하는 조건으로 인수했는데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2017년 기준으로 600억 이상의 금액이며, 이는 현재까지도 사립중,고등학교 재단 인수 금액 중에서는 거의 최고 수준.
삼성은 세계적인 명문고등학교를 만들겠다는 포부 아래 리모델링, 해외탐방 등 804억 원(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현재 기준으로 1000억대 이상)을 들여서 후원했지만, 교육부와 다른 커리큘럼을 고집하려는 삼성의 이견 때문에 2011년 삼성그룹에서 나가게 되었다.[31] 그래도 삼성은 삼성인지 상당한 규모의 돈을 재단에 때려박고 나갔다. 그리고 아직 그 돈 까먹고 살고 있다(...).[32] 팬택 박병엽 前 부회장이 중동 출신이라 재단을 인수한다는 말도 있었지만 중동고 졸업생인 이용한 회장이 운영하는 원익그룹홈페이지에서 '18년경 인수하였다.
위와 같은 역사를 거친 중동학원은 현재는 딱히 불미스러운 소식을 들려오지는 않고 있다. 오히려 학생들한테 너무 존재감이 없다는 게 문제라면 몰라도(...) 그치만 중동고 사이트에 있는 법인 회의록을 보면 그 사이에 이사장이 바뀌고 이사 선임을 놓고 싸우는 등 문제가 많다. 실제로 학교생활을 하다 보면 어지간한 경우 재단이 있다는 것도 딱히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 다만 원래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는지 강남으로 이전해 왔던 시점에는 학생들 사이에서 재단에 대한 이미지가 상당히 나빴던 것으로 보인다. 벽에 재단 퇴진하라는 낙서가 나오고 학교 측에서는 또 그거 잡겠다고 나서는 일이 종종 있었다니 말이다.
10. 기타
- 교가보다 더 유명한 응원가가 있다. 2020년 기준 현재 사용하는 곡은 세이가[33]와 Queen의 we will rock you의 음을 따서 만든 응원가인 지정가[34]가 있다. 두 곡 모두 수능 응원날 부르는데 중동고의 수능 응원이 방송에 곧잘 나오는 편이기 때문에 방송에도 자주 나간다. 이 외에도 이화가[35]-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다 본 노래가 끝나고 맨뒤에 '딴따라딴단 딴딴 ~따라다라단딴 딴딴! 을 하지 않으면 얼차려를 받았었다. 와 그 외에 구호[36]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더이상 사용하지 않아 실전된 것으로 보인다.
- 같은 재단 학교로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 중동중학교가 있다. 많은 중동고 학생들의 출신 학교이기도 하다. 이쪽도 강남으로 이사올 때 같이 왔다는 모양. 현재 영희초 부지까지 먹어서 중동중을 붙여놨어야 했었다는 말이 있는데 학생들 사이에서는 그렇게 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의견이 많은편이라고 한다.
그래 영희초는 공학이잖아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원래 두 학교는 한 학교였었다. 중학교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지만 중학교 과정만 있던 것이 아니고 다 가르쳤으며, 1951년 학제개정에 따라 두 학교로 분리된 것. 즉 전체 역사 중 앞 절반 시기에 다닌 사람은 중동중 졸업, 중동고 졸업 뭐라 해도 맞는다. 그래서 그 이후 다닌 사람들도 중동 중학교에 다녔든 고등학교에 다녔든 서로 동문이라 여겼으며, 강남으로 이사 간 이후엔 동문이란 의식은 많아 흐려졌으나 2010년대 기준으로도 많은 행사를 함께 진행한다.[37] 같은 울타리 안에 있던 수송동 시절엔 학교 중심으로 1km반경 안에 산다면 꽤 높은 확룰로 중고등학교를 다 다니게 되었다. 수송동 당시에는 중동중학교에 들어가면 선배가 2개 학년이 아니라 5개 학년인 꼴이었다. 물론 고교생들은 중학생을 어린애로 보고 터치하진 않았지만, 같은 운동장을 썼고 교실만 달랐기에 학교 안에서 마주치면 인사는 하고 지나쳐야 했다. 중학생들은 같은 교실을 쓰기 때문에 방과 후 들어오는 야간부 형들에게도 목례는 하고 나가야 했고... 운동부 같으면 같이 연습했고, 미술부 연극부 등 특별활동부 지도교사도 한 명 뿐인 경우도 다수. 고교와 중학 사이 교사 왕래도 빈번했고 고교에서 물리를 중학에서 수학을 가르친다든지 하는 일도 흔히 있었다. 교사들도 동문이 많았으며, 사립이다 보니 수십 년 근속한 사람들이 많아 동료, 선배 교사이기 이전에 스승이고 동시에 까마득한 선배 기수이기도 한 경우가 많았다. 사정이 그러니 다른 학교라고 생각할 일이 별로 없었던 것.
- 강남 8학군의 고등학교 중 하나이다. 그리고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인 덕분에 학부모들한테 관심이 많은 편이다. 당연히 내신 점수는 따기 어렵다는 말이다. 뭐 이 근처 동네에서 내신 따기 쉬운 학교가 어디 있겠냐만... 이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내신은 상관 없다. 나의 길은 오직 논술과 정시'라는 태도로 시험에 임하지만... 매번 학교성적표를 받아보고 눈물을 흘리는 건 어쩔 수 없다.(...)
- 휘문고등학교와 함께 강남구에 있는 두 개의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중 하나이다.
그리고 둘다 남고이다묘하게 휘문고와 비교되며 '휘문은 이과, 중동은 문과'라는 인식이 있으며[38], 서로 경쟁적인 분위기를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 촛불혁명 당시 고등학교 이름을 내건 첫 시국선언을 하였다.
- 월드컵이 남고에 미치는 영향이란 짤방으로 돌아다니는 사진은 중동고 사진이다. 2010년 104회에 찍은 사진.
- 2012년 입학생부터 교복이 바뀌었다. 이전에는 남색 상의에 갈색 바지였지만 이후 정장식의 하얀 와이셔츠에 검정 바지와 블레이저로 바뀌었다. 적용 대상은 자사고 3기, 즉 108회 부터였으며, 2014년 110회가 입학함으로써 완전히 교체되었다. 여담으로 신형 교복의 바지가 아무 수선을 하지 않아도 상당히 다리에 달라붙는다. 이 때문에 가끔 외부인이 보면 바지 줄였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까지 올라가보면, 하얀 철문이 있는데 그곳은 바로 존경하는 스승님들의 흡연실이 되시겠다. 사실 이는 엄연한 불법으로 교육청에 민원을 넣을까 고민하는 학생들이 한둘이 아니다.
- 한창 자사고로 지정받기 위해 경쟁할 때, 남녀공학이 아니라서 불리할 수 있다는 소식이 들리자 진지하게 남녀공학으로 전환하려는 계획도 있었다고 한다. 만일 자사고 지정을 위해서 남녀공학으로 전환됐다면 아마 자사고 첫 입학생인 106회쯤부터 적용되었을 것이다. 물론, 다들 알겠지만 자사고 지정받는 데에 성공했고, 중동고등학교가 남녀공학이 되는 경우는 일어나지 않았다.
- 중동이 남녀공학을 고려했던 것이 이때가 처음은 아니다. 1984년 수송동에서 강남으로 이전했을 당시, 강남 8학군에 남학교는 2개 늘어난 데 반하여 (중동고 이전, 단대부고 신설) 여학교는 그대로였기 때문에, 8학군 전체적으로 남고 정원은 남아돌고 여고 정원은 모자라는 상황이었다. 이전 직후 입학한 80회의 경우 3월에 입학한 학생수는 15학급 정원에 겨우 9학급 ... 전학생들을 받아들여 몇 달 후에는 12학급이 되었지만, 나머지 3학급은 여전히 충원이 불가능했고, 정부에서 남녀공학으로 전환하여 남은 3학급을 충원할 것을 권고했다고 한다. 그러나, 딸 가진 부모라면 중동고에서 3년을 보내느니 차라리 자퇴하고 검정고시 쳐서 대학 갈거라는 비관적인 예상(때마침 내신의 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교 중퇴 후 검정고시를 치는게 유행이던 시절이다) 탓에 결국 남녀공학 전환을 거절하고 80회는 12학급으로 운영하게 되었다. 81회부터는 다시 15학급 완충. 그 후 88년에 경기여자고등학교가 개포동으로 이전하면서 8학군 여고 정원도 충분해졌다.
- 강남구에 있는 학교지만 묘하게 송파구민이 많다. 자사고는 서울시 거주자라면 누구든지 지원 가능하고 탄천을 건너면 바로 송파구이기 때문에 전교생의 3분의 1 정도는 송파구 거주자라고 보면 된다.
- 학교 역사가 116년에 달해 부자가 동문인 경우도 존재하고, 교사들 중에서도 중동고등학교 출신이 종종 있다.
떠도는 소문으로는 3대가 동문인 경우도 있다고도 한다. 실제 80년대 초반부터는 반에서 선생님이 할아버지, 아버지 모두 중동 출신인 사람 손들어라 하면서 3대가 중동인 집안을 조사했고 몇개반 중에 한명은 꼭 있었다. 종종 증조부가 중동고를 나왔다는 학생들이 보인다.
- 학교 이름이 '중동'이라 중동(middle east)이랑 자주 엮어서 드립의 대상으로 쓰이기도 한다. 참고로 한자도 동일.
- 고교학점제에 대비하기 위해 현재 원익관 증축이 진행 중에 있다.
- 106회까지만 하더라도 대치역에서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다가 선배에게 정강이를 차이는 일이 비일비재했다(특히 그때는 교복이 변경된 기수였기 때문에 쉽게 구별이 가능했다). 또, 어떤 학생은 똑같은 이유로 선배한테 뺨을 맞아서 고막이 나갔다는 얘기도 있다. 103회 까지만 해도 교무실 뒷편에 있었던(식당 쪽으로 이전되었지만) 매점 앞에서 있었던 일이고, 양재 시민의 숲으로 사생대회 가서 있었던 일도 있고 많았다. 학교 홈페이지 민원게시판의 옛 글들을 보다 보면 간간히 선배가 때렸다는 학부모들의 민원이 올라온 것을 볼 수 있기도 하다.
- 학교에서 남쪽으로 가까운 거리(도보 10여 분)에 삼성서울병원이 있다. 학교에서도 잘 보이며 가끔 의료헬기가 이착륙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 2016학년도 신입생 지원 경쟁률이 2.66대 1을 돌파했다... 다만 이는 2015년도 부터는 신입생 지원시 이전과 달리 중학교 내신 50% 이내에 들어야 한다는 규정이 사라지고 대신 면접만으로 학생들을 뽑게 된 것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 고등학교 1학년 수학 시험이 굉장히 어려워
낭만의 시대로 불린..5년 동안 고1 수학 만점자가 없었다.
- 2020년 12월 자사고 신입생 지원방식이 코로나로 인하여 면접생략과 생기부를 안때고 오직 100% 추첨으로만 뽑는데다가 문재인 정부의 자사고 때려잡기 정책때문에 지원자수가 엄청 줄어들었다. 경쟁률이 1.09대 1 수준이라 넣으면 거의다 붙는수준이다. [39]
-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자연계 수능만점자를 배출했다. 이로써 5번째 수능만점자를 배출하여 전국에서 2번째로 수능만점자를 많이 배출한 학교가 되었다.
-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자연계 수능 만점자를 배출했다.
-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시국선언
2016년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자 10월 28일 금요일에 고등학교 단위로는 최초로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언론사와의 연락 과정에 차질이 생겨 대부분은 11월 1일이나 2일쯤에 발표한 것으로 기록된 모양. 시국선언은 당시 3학년 110기 주도로 진행되었고 이후 180여 명의 지지 서명을 받았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1, 2, 3학년 36개 학급 모두에서 지지 서명을 받았어야 했으나, 수능이 다가오고 있었고 사태가 커지는 것을 우려한 학교 측의 제지로 3학년 절반에 해당하는 6개 학급밖에 서명을 받지 못했다.
- 다움교회가 창조관에서 예배를 드린다.
- 학교 교실 문이 일반적인 미닫이문을 쓰는 다른 학교와 달리 특이하게 노란색 철제 여닫이문이다.[40]
- 교복 마이(자켓)의 디자인이 특이하다. 일반적인 교복들처럼 테일러드 재킷이 디자인의 베이스이나, 한국적 요소를 차용해 옷깃이 한복의 두루마기처럼 생긴 디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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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5년 준공[2] 제22대 교장 취임[기준] 2024년 3월 4일[기준] [5] 이병철 회장이 26회 졸업생이다.[6] 이용한 회장이 중동고 66회 졸업생이다.[7] 중동고 졸업생, 성균관대학교 한문교육과 명예교수. 유퀴즈에 출연한 적이 있다. 링크[8] 1절의 "대동이라 대한에서 서울 복판에" 구절은 대한민국 건국 이전까지 "대동이라 조선에서 서울 복판에"라고 불리었다.[9] 중동고등학교 설립 99주년이 되는 해인 2005년 준공되었다[10] 2022년 1학년 기준으로 운영되고 있지 않다.[11] 일반 독서실 같은 듀오백 의자와 칸막이 책상이 설치되어있다. 원래 컴퓨터실이었으나 상위권 학생들이 자습하는 프런티어실로 교체되었지만 107기 이후 교육청 제재로 인해 더이상 상위권만 공부하는 곳이 아닌 신청 학생 중 추첨된 학생들이 자습하는 곳으로 바뀌었다.[12] 전동 커튼, 크롬북, 전자 칠판이 있으며 수업이나 e스포츠 대회 때 사용된다.[13] 영자신문부가 주로 사용하며, 1학년 영어, 글로벌 시간에도 사용한다.[14] 이는 일제강점기엔 한자로 이름을 박는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60-70년대 한글 전용과 국어순화운동 대 대부분 학교에서 한글로 명찰을 바꿀 때도 안 바꾸었던 것이 무려 60년 이상 쭉 유지된 것이다. 잠시 한글 명찰로 바뀌기도 했다. 카드 형태로서 학생 본인의 사진이 붙어있고, 이름은 한글로 표기되어 있었다. 2002년 1학년(현재 98회 졸업생)을 시작으로 적용되었으나 99회 학생회장이 당선 공약 중 하나였던 한자 명찰로의 회귀를 지켜 다시 한자 명찰로 바뀌었고 지금에 이른다. 당시 학생회장은 친숙한 친구들 이름을 한자로 봄으로써 한자 공부도 겸하자는 취지였으나, 실제로는 한글보다 읽기 힘든 한자로 인해 불량(?) 학생들이 좋아했다는 후문..[15] 이 깃발을 휘두른 사람은 대부분 재수한다는 전설이 있다.[16] 필수는 아니고 동아리마다 다르다. 대부분 소속 동아리 부장이 참가한다 했으면 1학년들은 필참해야 한다. 2학년들은 선택, 3학년들도 미리 나오기 싫으면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왠지 분위기상 나가야 할 것만 같고, 친구들과 밤새고 놀 수 있다는 점에서 대개는 참가한다.[17] 25분간 응원했다.[18] 2022년 1학년 기준 운영되고 있지 않다.[19] 학교에서는 전혀 얘기하고 있지 않으나, 최규동은 일제에 협력한 사실이 있다는 의혹을 받았다. 해당 문서 참조.[20] EBS 강사, 교과서 집필진 등[40] 2025년부터 폐지될 예정이며 이에 대한 논란이 많다.[22] 국회의원[23] 문학가[24] 前 팬택계열 부회장[25] 일제강점기 퇴교당했다[26] 중동중학교를 졸업한 중동 출신이다. 중동고도 다니다가 전학을 가서 중동고 출신 동문이기도 하다. 고교 졸업은 대일고등학교에서 했다. 전학을 자주한 편인데, 실제로 4개의 국민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오세훈/생애 1.정계 입문 이전 참고[27] 제33·34·38·39대 서울특별시장[28] 삼성그룹 창업주. 이건희 회장의 아버지이자 이재용 부회장의 할아버지이다.[29] 경유산업 대표이사[30] 중간에 미국 유학[31] 사실 삼성그룹은 중동고등학교에 삼성 임직원 자녀 전형을 신설하고 싶었는데, 교육부와 교육청에서 절대로 허가를 내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결국 중동학원에서 손을 떼었다는 설이 정설이다.#(사실 그 이전에 바로 옆의 충남외국어고등학교 부지와 건물을 기부채납 하는 등의 지원 사격을 했지만 공립학교의 특성상 임직원 자녀 전형을 만들 수 없었고, 대신에 교육청에서 직접 학교를 신설할 수 있도록 하는 대안을 제시한 것이 지금의 충남삼성고이다.) 여기도 처음에 임직원 자녀 전형 때문에 교육청과 소송 난타전까지 이뤄졌지만 결국 헌법재판소까지 가는 소송전 끝에 삼성측의 승소로 끝났다. 중동고 입장에서는 삼성이 교육청 등쌀에 못 이겨서 다른 학교에 튼튼한 재단을 뺏긴 것과 같기 때문에 조금은 안타까운 부분.[32] 카더라에 의하면 실은 창조관 건설 비용으로 350억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학교 마당에 있는 파고다 기둥 하나당 1억이라고 한다[33] 가사: 아침 일찍이 (say!) / 책가방끼고 (say!) / 종점으로 종점으로 달려갔더니 (say!) / 무교동 버스 (say!) / 갈아타려는 (say!) / 학생들의 눈동자는 / 말똥말똥 저기 저 학생, 중동 뱃지달고, 새치기해서, 버스를 타니, 숙명 학생 나란히 앉아서, 방긋방긋 윙크하더라, 나도 한창 젊었을 적에는, 사랑도 했고, 연애도 했지만, 이제는 늙었으니까는, 마음잡고 살림해야지 (say!)[34] 가사: 주위를 둘러봐 / 불만 품었으면 / 한 번쯤 소리 질러봐 / 인생은 한 번뿐 / 모든 걸 걸고 / 두려워하지 말고 맞서봐 / 대중동고 중동 x2 / 맞고 터져와도 / 다시 일어나서 / 빨리 앞장서 우린 중동 / 모두 하나 돼 힘껏 외쳐봐 / 영원한 사자중동 대중동 / 대중동고 중동 x4[35] 가사: 이화이화이화 이화여고 학생들은 얼굴이 못났고 돈많은 숙명학생 멋만 부리네, 숙명의 낙제생이 열두명인데 그 중에 내깔이도 하나 끼었네, 교장아 교감아 꼰대새끼야 어쩌자고 내깔이를 낙제시켰냐? 낙제생 내깔이야 서러워마라. 이 몸도 대중동의 낙제생이다.[36] "만약에 중동이 OO한테 진다면, 밥상위의 꼴뚜기가 딸딸이를 치겠네"라는 구호를 한줄씩 외치고 각 줄이 다 외치면 전체가 일어나서 외치는 형식[37] 교직원들 중 동문이 많고, 그 분들은 중학을 나왔든 고등학교를 나왔든 아직 서로 동문이라 생각하기 때문인 듯.[38] 상위권의 상당수가 문과이며, 한때는 이과를 별볼일 없다는 식으로 여기기도 했다. 이는 107회 문과에서 만점자를 두 명 배출하면서 최고조에 이르렀던 모양. 그러나 최근에는 이과에 상위권이 몰리고 있으며, 2021년에는 문과 3반, 이과 9반으로 이초현상이 심해졌다.[39] 일반전형 정원 327명중 최종적으로 358명이 지원하였다. 31명안에만 안들면 된다[40] 다만 이건 옛날에 지어진 학교들이 다 그렇다. 교실 문을 미닫이문으로 만드는 양식은 90년대 중후반 건축된 학교에서부터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