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0 17:08:04

차범근호/19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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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이후
56대

김호
(김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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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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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쇼베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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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1998
전체 (1997 | 1998)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멕시코전 · 네덜란드전 · 벨기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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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친선경기
1.1. 1월: 1997 호주 4개국 친선대회
1.1.1. vs 노르웨이 - 1:0 승1.1.2. vs 호주 - 1:2 패1.1.3. vs 뉴질랜드 - 3:1 승
2. 월드컵 예선3. 친선경기
3.1. 4~5월: 친선경기
3.1.1. vs 중국 - 2:0 승3.1.2. vs 일본 - 1:1 무
4. 월드컵 예선
4.1. 5~6월: 1998 FIFA 월드컵 아시아 1차예선
4.1.1. vs 홍콩 - 4:0 승4.1.2. vs 태국 - 0:0 무
5. 친선경기
5.1. 6월: 1997 코리아컵 국제축구대회
5.1.1. vs 이집트 - 3:1 승5.1.2. vs 가나 - 3:0 승5.1.3. vs 유고슬라비아 - 1:1 무
5.2. 8월: 친선경기
5.2.1. vs 브라질 - 1:2 패5.2.2. vs 타지키스탄 - 4:1 승5.2.3. vs 중국 - 0:0 무
6. 월드컵 예선
6.1. 9~11월: 1998 FIFA 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
6.1.1. vs 카자흐스탄 - 3:0 승6.1.2. vs 우즈베키스탄 - 2:1 승6.1.3. vs 일본 - 2 : 1 승6.1.4. vs 아랍에미리트 - 3:0 승6.1.5. vs 카자흐스탄 - 1:1 무6.1.6. vs 우즈베키스탄 - 5:1 승6.1.7. vs 일본 - 0:2 패6.1.8. vs 아랍에미리트 - 3:1 승

1. 친선경기

1.1. 1월: 1997 호주 4개국 친선대회

1.1.1. vs 노르웨이 - 1:0 승
파일:Socceroos Logo.png
1997 호주 4개국 친선대회 제1경기
1997. 01. 18. (토) 17:15 (UTC+10)
레이크사이드 스타디움 (호주, 멜버른)
주심: 파일:UEFA AUS.png 게리 코널리
파일:Norway NFF 1994.png
0 : 1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 파일:득점 아이콘.svg 57' 김도훈
1.1.2. vs 호주 - 1:2 패
파일:Socceroos Logo.png
1997 호주 4개국 친선대회 제2경기
1997. 01. 22. (수) 20:30 (UTC+10)
선콥 스타디움 (호주, 브리즈번)
주심: 파일:UEFA AUS.png 사이먼 미칼레프
파일:Australia FFA 2006.png
2 : 1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36' 매튜 빙리
72' 앨리스테어 에드워즈
파일:득점 아이콘.svg 75' 하석주
1.1.3. vs 뉴질랜드 - 3:1 승
파일:Socceroos Logo.png
1997 호주 4개국 친선대회 제2경기
1997. 01. 25. (토) 17:15 (UTC+10)
시드니 풋볼 스타디움 (호주, 시드니)
주심: 파일:UEFA AUS.png 브렛 휴고
파일:뉴질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1 : 3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33' 보건 코베니 파일:득점 아이콘.svg 76' 박건하
82' 고종수
85' 유상철

2. 월드컵 예선

2.1. 2~3월: 1998 FIFA 월드컵 아시아 1차예선

2.1.1. vs 홍콩[1] - 2:0 승
파일: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로고.svg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아시아 1차예선 6조 1차전
1997. 02. 22. (토) 15:30 (UTC+8)
홍콩 스타디움 (홍콩, 코즈웨이 베이)
주심: 파일:UEFA JPN.png 오가와 요시미
파일:홍콩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0 : 2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 파일:득점 아이콘.svg 61' 서정원
74' 최문식
2.1.2. vs 태국 - 3:1 승
파일: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로고.svg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아시아 1차예선 6조 2차전
1997. 03. 02. (일) 16:00 (UTC+7)
수파찰라사이 경기장 (태국, 방콕)
주심: 파일:UEFA CHN.png 루쥔
파일:태국 국기.svg
1 : 3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48' 피야퐁 피우온 파일:득점 아이콘.svg 18' 노상래
73' 하석주
86' 최문식

3. 친선경기

3.1. 4~5월: 친선경기

3.1.1. vs 중국 - 2:0 승
파일:중국축구협회 로고.svg
1997 한중 정기전
1997. 04. 23. (수) 19:45 (UTC+8)
베이징 노동자 경기장 (중국, 베이징)
주심: 파일:말레이시아 국기.svg 셀레라젠 수브라마니암
파일:중국축구협회 로고.svg
0 : 2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 파일:득점 아이콘.svg 45', 57' 박건하
3.1.2. vs 일본 - 1:1 무
파일:일본축구협회 로고.svg
1997 축구 국가대표팀 친선경기
1997. 05. 21. (수) 19:00 (UTC+9)
국립 요요기 경기장 (일본, 도쿄)
주심: 파일:UEFA THA.png 피롬 운-프라세르트
파일: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엠블럼(1998~2010).svg
1 : 1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88' (PK) 미우라 카즈요시 파일:득점 아이콘.svg 56' 유상철

4. 월드컵 예선

4.1. 5~6월: 1998 FIFA 월드컵 아시아 1차예선

4.1.1. vs 홍콩 - 4:0 승
파일: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로고.svg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아시아 1차예선 6조 3차전
1997. 05. 28. (수) 19:00 (UTC+9)
한밭종합운동장 (대한민국, 대전)
주심: 파일:이라크 국기.svg 하짐 후세인 이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4 : 0
파일:홍콩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파일:홍콩 특별행정구 휘장.svg 홍콩
25' (PK) 유상철
39', 72' 최용수
86' 박건하
파일:득점 아이콘.svg -
4.1.2. vs 태국 - 0:0 무
파일: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로고.svg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아시아 1차예선 6조 4차전
1997. 06. 01. (일) 15:00 (UTC+7)
서울올림픽주경기장 (대한민국, 서울)
주심: 파일:시리아 국기.svg 자말 알-샤리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0 : 0
파일:태국 국기.svg
- 파일:득점 아이콘.svg -

5. 친선경기

5.1. 6월: 1997 코리아컵 국제축구대회

5.1.1. vs 이집트 - 3:1 승
파일:대한축구협회 로고(1998년 이전).svg
1997 코리아컵 국제축구대회 제1경기
1997. 06. 12. (목) 19:00 (UTC+9)
서울올림픽주경기장 (대한민국, 서울)
주심: 파일:말레이시아 국기.svg 셀레라젠 수브라마니암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3 : 1
파일:이집트 국기.svg
12' 박건하
65' 유상철
77' 최문식
파일:득점 아이콘.svg 23' 하디 카샤바
5.1.2. vs 가나 - 3:0 승
파일:대한축구협회 로고(1998년 이전).svg
1997 코리아컵 국제축구대회 제2경기
1997. 06. 14. (토) 17:00 (UTC+9)
수원종합운동장 (대한민국, 수원)
주심: 파일:UEFA THA.png 루사메 진다마이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3 : 0
파일:가나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5' 서정원
49' 최문식
54' 최용수
파일:득점 아이콘.svg -
5.1.3. vs 유고슬라비아 - 1:1 무
파일:대한축구협회 로고(1998년 이전).svg
1997 코리아컵 국제축구대회 제3경기
1997. 06. 16. (월) 19:00 (UTC+9)
서울올림픽주경기장 (대한민국, 서울)
주심: 파일:말레이시아 국기.svg 셀레라젠 수브라마니암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 : 1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10px-Yugoslav_Football_Federation_1990.png
19' 서정원 파일:득점 아이콘.svg 55' (PK) 슬라비샤 요카노비치

5.2. 8월: 친선경기

5.2.1. vs 브라질 - 1:2 패
파일:대한축구협회 로고(1998년 이전).svg
1997 축구 국가대표팀 친선경기
1997. 08. 10. (일) 19:00 (UTC+9)
서울올림픽주경기장 (대한민국, 서울)
주심: 파일:말레이시아 국기.svg 모하메드 나즈리 압둘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 : 2
파일:Brazil CBF 1998.png
7' 김도근 파일:득점 아이콘.svg 83' (PK) 호나우두
90' 소니 안데르송
5.2.2. vs 타지키스탄 - 4:1 승
파일:대한축구협회 로고(1998년 이전).svg
1997 축구 국가대표팀 친선경기
1997. 08. 24. (일) 19:00 (UTC+9)
대구시민운동장 (대한민국, 대구)
주심: 파일:UEFA THA.png 피롬 운-프라세르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4 : 1 파일:Tajikistan_FA.png
파일:타지키스탄 국기.svg 타지키스탄
3', 34' 김도훈
19' 최용수
65' (PK) 유상철
파일:득점 아이콘.svg 33' 알리세르 투크타에프
5.2.3. vs 중국 - 0:0 무
파일:대한축구협회 로고(1998년 이전).svg
1997 한중 정기전
1997. 08. 30. (토) 19:00 (UTC+9)
동대문운동장 (대한민국, 서울)
주심: 파일:말레이시아 국기.svg 닉 아마드 야쿠브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0 : 0
파일:중국축구협회 로고.svg
- 파일:득점 아이콘.svg -

6. 월드컵 예선

6.1. 9~11월: 1998 FIFA 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

여튼 한국 축구 사상 전무후무한 쾌진격이었는데, 이런 압도적인 성적에다 이기고도 자만하지 않고 다음 상대를 대비하는 차 감독의 겸손한 발언과 노트북을 그라운드에 가지고 다니면서 하프타임이나 경기가 끝나고 난 후에 컴퓨터를 사용하여 무엇인가를 하는 장면이 예선전에서 방송국 카메라에 여러 차례 잡히면서 차 감독의 인기와 신뢰감은 날이 갈수록 높아졌다.[2] '차범근의 리더십' 류의 처세술 책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차범근을 대통령으로'라는 반농담도 회자되었다. 당시 중앙일보에 도올 김용옥의 차범근 감독의 경기 후 기독교적 언행에 대해 자제를 부탁하는 정중한 칼럼이 실렸고, 차 감독이 회답을 했는데 그 두 칼럼이 화제가 되기도 하였고, 역시 같은 시기 폭발적 인기를 구가했던 김국진이 진행했던 '스타 다큐'에서도 차범근호를 다룬 특집이 나올 정도로 국민적 관심이 대단했다.

문제는 이런 과도한 열광으로 인해 차범근호의 실체가 가려지면서 본선에서의 비극을 향해 한발 한발 나아가기 시작했다는 것. 차범근호 호성적의 가장 큰 이유는 사실 운빨이었다는 걸 당시 국민들은 알지 못했다. 이 시절 한국이 월드컵 연속 3회 진출의 업적을 이룩한 아시아의 강자라곤 해도 지금처럼 월드컵은 당연히 나가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절대적인 위상을 가진 것은 아니었고,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한국은 언제나 진땀을 흘리며 겨우겨우 진출했다. 아시아의 월드컵 진출권은 70년대까지 1장 이하였기 때문에 아시아에서 좀 한다고 해도 원탑은 아니었던 한국은 번번히 마지막 관문에서 좌절하는 편이었다. 물론 다른 아시아 팀들 다 물리치고 정상에 선 적도 몇번 있지만 그럴때마다 타 대륙과 플레이오프 벌여서 깨진 바람에... 그나마 원톱은 못해도 아시아 Top 2에는 들만한 능력은 지닌 덕에 아시아 출전권이 2장으로 확대된 80년대부터 한국의 월드컵 진출이 다시 시작된다. 투 탑이라면서 왜 82년에는 탈락했냐고? 그땐 쿠웨이트가 심판 매수해서....

바로 전 대회인 1994 FIFA 월드컵 미국은 자력 진출에 실패해 기적이나 바래야 했을 만큼 월드컵은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1994년 대회 때의 최종예선 시스템은 진출팀을 전부 모아 조 구분 없이 풀리그로 벌이던 방식이었는데, 한국이 1994년에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진출하게 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아시아의 온갖 강팀들이 하나의 조에 모여서 2팀을 뽑는 풀리그 형식이었는데 빡세지 않을 리가 있나? 사실 사우디-이란-이라크-한국-일본-북한 이런 조 편성이면 지금도 한국이 2위 안에 확실히 들 거라고 장담하긴 힘든데 그때는 더 힘들었다. 한국이 월드컵은 당연히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2002년 월드컵에서의 대성공과 함께 이때부터 아시아 월드컵 진출권이 4.5장으로 고정되면서 웬만큼만 하면 월드컵 진출권이 보장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98년 월드컵 때부터 진출국을 32개국으로 늘리면서 아시아의 출전권이 3.5장으로 늘어났는데, 이로 인해 최종예선이 이전까지의 풀리그 방식이 아닌 두개 조로 나누어 최종예선을 치르는 방식으로 변경된다.

1998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 A조: 이란, 사우디, 중국, 쿠웨이트, 카타르
  • B조: 한국,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UAE, 일본

중동은 전력도 만만찮고 원정 거리가 멀어서 월드컵 지역예선마다 한국을 괴롭혀온 팀이 많은데, 1998 예선에서는 대부분 A조로 몰리고 한국은 B조에 들어가는 행운이 일어났다.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은 구소련 해체 이후 10년도 채 지나지 않아 나라 꼴이 엉망진창이라 정상적인 전력을 내기 힘든 상황이었고, 우즈벡은 한국 원정 때 주전 공격수 쉬크비린[3]이 비행기를 놓쳐 참여 못하는 등 한국에게 대단히 유리하게 상황이 흘러갔다. 게다가 당시 월드컵 최종예선은 2022년 기준인 지금처럼 경기 간격을 넉넉히 잡고 천천히 진행하는 게 아니라 팀들을 한 번에 몰아놓고 단기간 동안 경기를 뛰는 식이라 좋은 흐름의 유지에 용이했다. 지금이야 아무리 빨라야 1년 걸리지만 98 프랑스월드컵 지역예선은 2~3개월만에 진출을 확정했기 때문.

하지만 실체야 어쨌든 이전까지 월드컵 예선에서 탈락하거나 힘겹게 본선에 진출했던 것과 달리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예선에서는 쾌승을 거듭하며 명실상부 아시아 깡패의 위용을 보이며 예선을 통과했기에 팬들의 기대감은 부풀어 오를 대로 올라 있었다. 일반 팬들이 생각하기에 한국의 실력은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착각이 낳은 열광적인 지지는 차범근호가 지닌 지나치게 공격적인 전술의 약점을 제대로 짚어 보지 못한 채 본선을 맞이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만다.
6.1.1. vs 카자흐스탄 - 3:0 승
파일: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로고.svg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아시아 2차예선 B조 1차전
1997. 09. 06. (토) 19:00 (UTC+9)
서울올림픽주경기장 (대한민국, 서울)
주심: 파일:싱가포르 국기.svg 산탄 나갈링감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3 : 0
파일:카자흐스탄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24', 67', 74' 최용수 파일:득점 아이콘.svg -
최종예선 첫 경기를 맞이한 한국은 2차 예선의 경기력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이며 최용수의 해트트릭으로 3:0 완승을 거뒀다. 이 경기에서 그 유명한 전광판 세레모니가 나왔다.
6.1.2. vs 우즈베키스탄 - 2:1 승
파일: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로고.svg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아시아 2차예선 B조 2차전
1997. 09. 12. (금) 19:00 (UTC+9)
서울올림픽주경기장 (대한민국, 서울)
주심: 파일:UEFA CHN.png 웨이지홍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 : 1
파일:우즈베키스탄 국장.svg
15' 최용수
87' 이상윤
파일:득점 아이콘.svg 74' 올레그 샤츠키흐
일본 원정에서 3:6으로 참패한 우즈베키스탄과 2차전을 치렀다. 이상윤의 극장골로 겨우 승리하였는데, 당시 일본 팬들은 자신들이 쉽게 이긴 우즈벡에게 고전하는 대한민국을 보며 자신들이 이길 수 있다고 자신했다.
6.1.3. vs 일본 - 2 : 1 승
파일: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로고.svg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아시아 2차 예선 B조 3차전
1997년 9월 28일 일요일 14:00 (UTC+9)
국립 카스미가오카 육상 경기장 (일본, 도쿄도)
주심: 파일:UEFA KUW.png 사드 카멜 마네
파일: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엠블럼(1998~2010).svg
1 : 2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65' 야마구치 모토히로 파일:득점 아이콘.svg 83' 서정원
86' 이민성
경기 다시 보기 | 경기 하이라이트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도쿄 대첩(축구)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6.1.4. vs 아랍에미리트 - 3:0 승
파일: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로고.svg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아시아 2차예선 B조 4차전
1997. 10. 04. (토) 19:00 (UTC+9)
서울올림픽주경기장 (대한민국, 서울)
주심: 파일:니제르 국기.svg 루시앵 부샤르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3 : 0
파일:UAE FA old logo.png
파일:UEFA UAE.png 아랍에미리트
7' 하석주
67' (PK) 유상철
80' 이상윤
파일:득점 아이콘.svg -
일본을 제치고 한국과 자웅을 겨루게 된 복병 UAE 조차 3-0으로 잠실에서 뭉개버렸다. 한국은 최종예선 첫 4경기에서 카자흐스탄[4], 우즈베키스탄[5], 일본[6], UAE[7]를 모조리 쓸어버리며 4전 전승을 기록, 고작 절반밖에 안 왔는데도 본선을 거의 확정지었다며 자축하는 분위기가 만연했다.[8]
6.1.5. vs 카자흐스탄 - 1:1 무
파일: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로고.svg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아시아 2차예선 B조 5차전
1997. 10. 11. (토) 16:00 (UTC+5)
센트럴 스타디움 (카자흐스탄, 알마티)
주심: 파일:요르단 국기.svg 오마르 아부 룸
파일:카자흐스탄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1 : 1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51' 파벨 에브테에프 파일:득점 아이콘.svg 4' 최용수
6.1.6. vs 우즈베키스탄 - 5:1 승
파일: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로고.svg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아시아 2차예선 B조 6차전
1997. 10. 18. (토) 17:00 (UTC+5)
파흐타코르 마르카지 스타디움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주심: 파일:이라크 국기.svg 압둘 쿠드헤이르
파일:우즈베키스탄 국장.svg
1 : 5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65' (PK) 안드레이 피오도로프 파일:득점 아이콘.svg 18', 41' 최용수
38' 유상철
57' 고정운
70' 김도훈
5:1 대승을 거뒀던 우즈베키스탄 원정 경기는 한국의 본선 진출을 확정지은 화룡점정. 우즈벡 원정에서 한국대표팀이 쾌승한 것은 이 때가 유일하다. 이것은 당시 대회 특성상 원정 2연전을 하게 됐는데, 가삼현[9] 국제부장이 일정을 카자흐-우즈벡으로 뽑으면서 한국대표팀이 본의 아닌 본의로 우즈벡 대비 전지훈련을 하게 된 격이 되었다. 우즈벡은 원정은 해발 500m 정도에서 싸우기 때문에 항상 고지대 적응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데, 이 때는 오래 체류하면서 적응했다. 그래서인지 원정 2연전 중 첫번째 경기인 카자흐스탄 원정에서는 1-1로 비겼다. 다만 당시 카자흐스탄은 조 최약체이기는 했어도 홈에서는 1승 3무로 한 번도 진 적이 없었다.[10][11] UAE의 경우는 아예 3:0으로 대패했을 정도. 이 경기에서 대승을 거둠으로써 한국은 최소 플레이오프를 확정지었고, 일본은 본선 직행이 불가능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경기 8일 후에 있었던 UAE vs 일본 경기는 이 시점의 조 2/3위간의 맞대결이었는데, 이 둘이 서로 1-1로 비겨버리면서 해당 시점 기준 각각 승점 8점(UAE)과 7점(일본)에 그쳤고, 대한민국을 1위로 확정[12]시켜버렸다. 차범근호는 잔여 경기와 상관 없이 프랑스 월드컵 본선 직행이 확정되었다.
6.1.7. vs 일본 - 0:2 패
파일: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로고.svg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아시아 2차예선 B조 7차전
1997. 11. 01. (토) 15:00 (UTC+9)
서울올림픽주경기장 (대한민국, 서울)
주심: 파일:UEFA USA.png 에스팬디어 브머매스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0 : 2
파일: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엠블럼(1998~2010).svg
- 파일:득점 아이콘.svg 1' 나나미 히로시
37' 로페스 바그너
한국의 1패는 서울 홈경기에서 일본에 0:2로 패한 것인데, 이때 한국은 이미 월드컵 32강 본선행을 확정지은 상황이었던데 반해 일본은 1승 4무 1패로[13] UAE의 2승 2무 2패에[14] 밀려 자력 진출이 불가능한 조 3위로 전락. 비겨도 나머지 경기에서 계속 경우의 수를 따져야 하는 불리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말 그대로 총력전을 펼쳤다. 이런 명분이 있었기 때문에 한일전 패배였음에도 의외로 비난의 목소리가 크지 않았다.[15] 물론 '의외로 별로 없었을' 뿐 당연히 홈에서 완전 쳐발린 경기이기에 당연히 욕은 먹었다. 상대적으로 덜했단 얘기. 그리고 이 시합에서 최용수는 부상당하고 마지막 UAE전은 김도훈 원톱 체제로 승리하게 된다.

다만 한국이 일부러 일본에게 져준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돌긴 했다. 일본과 플레이오프를 놓고 다투던 UAE가 한국 같은 강팀이 어떻게 일본에게 질 수 있나며 크게 분개하기도 했다. 실제로 차기 월드컵 공동 개최국이었으니... 결국, 일본은 한국에 승리한 여세를 몰아 마지막 카자흐와의 홈경기에서 승리하여 기적 같은 2위 플레이오프 티켓을 따낸다. 차범근 감독은 이후 2002년 5월 방영된 MBC 스페셜에서 "승부조작은 절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이미 본선에 진출해서 여유로웠던 반면에 일본은 워낙 벼랑끝이다보니 악착같이 경기에 임했는데 여기에 밀려서 패한 것이다."라며 패배한 이유에 대해 해명했다.
6.1.8. vs 아랍에미리트 - 3:1 승
파일: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로고.svg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아시아 2차예선 B조 8차전
1997. 11. 09. (일) 16:55 (UTC+4)
자예드 스포츠 시티 스타디움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주심: 파일:UEFA ITA.png 피에트로 체카리니
파일:UAE FA old logo.png
1 : 3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파일:UEFA UAE.png 아랍에미리트
51' 주헤르 사에드 파일:득점 아이콘.svg 9' 이상윤
42', 66' 김도훈
8전 6승 1무 1패, 승점 19점 19득점 7실점 골득실 +12라는 가공할 성적은 아시아 경쟁국을 공포에 휩싸이게 했고, 국내 여론에게는 "이번에야말로 16강에 갈 수 있다!"라는 높은 기대감을 갖게 해주었다. 당시 최종예선 B조는 결국 한국이라는 깡패에게 얼마나 잘 선방하면서 그 외 경기에서 착실히 승점을 모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되었다. 결국 이 공식을 잘 지킨 일본이 2위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 일본과의 2차례 맞대결에서 2무를 하며 선방한 UAE는 한국전에서 전패, 카자흐 원정에서의 0-3 패배, 홈에서 우즈벡과 0-0 으로 비겨버린 것 등이 결과적으로 좋지 않게 작용하면서 3위로 탈락하게 되었다.[16]


[1] 이 당시 홍콩은 일국양제에 입각한 홍콩 특별행정구가 아닌 영국령 홍콩이었다. 홍콩은 1차예선이 종료된 1997년 7월 1일자로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되었다.[2] 당연하지만 90년대 후반임을 감안하면 컴퓨터를 다룬다는 것만 해도 대단해 보일 시기였다. 현대로 굳이 비유하자면 2010년대 초반 스마트폰과 태블릿이 막 활성화될 때 태블릿을 들고다니며 경기를 분석한다고 보면 된다. 나중에 컴퓨터 안에 실제로는 별 거 없었다는 얘기도 나오긴 했지만.[3] 공격형 미드필더 카시모프와 함께 1994년 우즈벡이 한국에 유일한 A매치 승리를 거둘 때 한 몫 했다.[4] 3:0[5] 2:1[6] 2:1[7] 3:0[8] 다만 첫 4경기 중 일본전을 제외한 3경기가 홈이었기에 자축하기에는 이르다는 신중론도 존재했다.[9] 4년뒤 히딩크를 영입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장본인이며 한국 축구역사에 나름대로 공을 세운 인물이다.[10] 당시 카자흐스탄 원정은 매우 불리한 여건이었다. 경기장은 제대로 뛰기도 어려울 정도로 잔디 관리가 안 돼 있었고, 체제 편의를 위한 카자흐 측의 지원은 전무하다시피 했다.[11] 차범근 감독은 이후 "카자흐스탄에 도착해 보니 도저히 경기를 뛸 수 있는 시설이나 상황이 안 됐다. 우리보다 먼저 경기한 일본이 왜 고전할 수밖에 없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다만 우리 다음에 경기할 UAE에게 정보를 주지 않기 위해 이런 내용을 언론에는 흘리지 않았다."고 회고했다.[12] 이 시점 2위인 UAE, 3위인 일본은 잔여 경기가 각각 2경기씩 남은 상황이었고 2위인 UAE가 잔여경기 전승(승점 +6)을 하더라도 승점 14점에 그치기 때문에, 이 시점에 이미 승점 16점인 대한민국을 넘을 수 없다.[13] 일본 대표팀은 오카다 타케시 감독 취임 이후 우즈벡 원정에서 질 뻔 하다가 후반 막판에 미우라의 극장골로 무승부, UAE와의 홈경기에서도 1-1로 무승부를 거뒀는데 UAE와의 홈경기가 끝나고 말그대로 폭동이 일어나 미우라가 자신을 욕한 관중을 패려고 했던 영상이 우리나라 스포츠 뉴스에 나오기도 했다.[14] 이중 1패는 당연히 승리가 예상되던 카자흐스탄 원정에서 직전 경기에 감독이 퇴장당해 감독 없이 경기를 치렀기 때문인지 예상 외로 3-0으로 발린 경기이다. 이 경기 이후로 UAE가 갑자기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다른 1패는 우리와의 경기...[15] 2002년 월드컵 공동 개최를 앞두고 있어서였는지 "한국, 일본이 사이좋게 월드컵에 가자"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물론 우리 본선 진출이 확정된 상황이었으니, 일본에 한 수 접어준다는 생각으로 관대해진 것이지, 만약 입장이 반대였으면 있을 수 없는 일.[16] 일본도 카자흐/우즈벡 원정에서 무승부에 그친 건 마찬가지였지만 그 외의 경기에서는 한국전 패배 외에는 패 없이 승점을 착착 쌓아 막판 3경기를 앞두고 3위로 밀려있는 절망적 상황에서 2위 플레이오프까지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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