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19 15:28:30

페르디난트 즈보니미르 폰 합스부르크

<colbgcolor=#87cefa><colcolor=#000000> 합스부르크 가문의 수장 후계자
오스트리아의 레이싱 드라이버
페르디난트 폰 합스부르크로트링겐
Ferdinand von Habsburg-Lothringen
[1]
이름 페르디난트 즈보니미르 마리아 발투스 케이스 미하엘 오토 안탈 바흐남 레온하르트 합스부르크로트링겐
독일어: Ferdinand Zvonimir Maria Balthus Keith Michael Otto Antal Bahnam Leonhard Habsburg-Lothringen
출생 1997년 6월 21일 ([age(1997-06-21)]세)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아버지 카를 폰 합스부르크
어머니 프란체스카 티셴보르네미차
형제자매 엘레오노르, 글로리아
직업 레이싱 드라이버
SNS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생애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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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페르디난트 즈보니미르 폰 합스부르크는 오스트리아레이싱 드라이버이자 합스부르크 가문의 후계자다.

2. 생애

1997년 6월 21일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카를 폰 합스부르크, 어머니는 프란체스카 티센보르네미차 여남작이다.[2] 같은해 9월 20일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서 가톨릭 유아세례를 받으면서 즈보니미르(Zvonimir)라는 크로아티아어 전통 이름[3]을 추가로 얻었다.

2007년 할아버지 오토 폰 합스부르크가 아버지 카를 폰 합스부르크에게 합스부르크 가문 수장 자리를 물려주고 2011년 사망하면서 합스부르크 가문의 후계자가 되었다. 레이싱 경력은 14살부터 시작했으며 토요타 레이싱, 포뮬러 르노 2.0(Formula Renault 2.0 NEC), 유로포뮬러 오픈 챔피언십(Euroformula Open Championship) 등에 참여했다.

3. 기타

페르디난트라는 이름으로 세례성사를 받았기 때문에 증조부 카를 1세가 퇴위하지 않고 계속 제위가 이어졌더라면 미래에 페르디난트 2세가 되었을 것이다. 아울러 신성 로마 제국이 붕괴된 이후에도 넘버링 리셋이 없었더라면 페르디난트 5세였을 큰5대조부 페르디난트 1세에 이어 페르디난트 6세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위의 칭호놀이와 상관 없이 현재 본인은 유서 깊은 제국의 후계자로서의 자부심보다는 레이서로서의 삶에 만족하는 듯 하다. 애초에 그럴 만도 한 것이, 오스트리아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체코, 헝가리, 슬로바키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와 마찬가지로 유럽 국가들 중 유독[4] 구왕가에 대한 불이익과 탄압이 심한 편이었고[5], 1919년 4월 3일 합스부르크 법(Habsburgergesetz)까지 제정했던 나라라 이미 할아버지 오토 폰 합스부르크 대에 오스트리아에 귀국하기 위해 1966년 왕정 복고 주장을 포기한 바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오토는 공식적으로 왕정 복고를 포기한 이후에도 끝까지 제위에 미련이 있었던 터라 나중에 자신이 너무 섣불리 결정했다고 후회했지만 말이다. 거기다 나라 차원에서 얼마나 합스부르크 가문을 배척했는지 합스부르크 가문 사람들은 오스트리아 대통령에 출마할 수 없다는 조항을 2011년 6월까지 유지하였다.[6] 개인 SNS도 있는데, 인스타그램은 카레이서로서의 활동 사진들 뿐이고 유튜브는 여행 브이로그 영상들 뿐이며 어디에서든 합스부르크 가문 사람이라는 것을 전혀 강조하지 않는다.[7]


[1] 다만 오스트리아 법률에 따르면 법적 이름에는 von이 제외된다.[2] 일각에서는 부모의 귀천상혼을 문제삼기도 하나 할아버지 오토가 귀천상혼에 대한 규정을 상당히 완화시켜 현재는 가문 수장의 승인과 가톨릭 혼인성사만 올리면 평민과 결혼했다 할지라도 동등결혼으로 인정된다. 이는 독일에서 1918년 군주제 폐지 이후 귀족 타이틀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작위가 어떻든 동등결혼으로 인정하겠다는 것보다 더 파격적이다.[3] 합스부르크 가문이 보유하고 있던 크로아티아 왕국을 상징하는 왕관이 즈보니미르의 왕관(Starohrvatska kruna)이었다. 체코의 성 바츨라프 왕관(Svatováclavská koruna), 헝가리성 이슈트반 왕관과 달리 즈보니미르의 왕관은 헝가리의 관리소홀로현재 남아있지 않다.[4] 왜 유독이냐면 제 1차 세계대전은 패전국 측이 2차 대전마냥 악의 축이라 보기 어려웠다. 굳이 악의 축이라 정의해도 당시 협상국인 영국,프랑스,미국도 거의 비슷한지라 악 vs 악의 대결이라 해도 될 정도이다. 오히려 1차 대전의 개전 명분은 사라예보 사건의 피해자인 오스트리아와 합스부르크 왕가에 충분히 기울어져 있어서 협상국인 영국과 프랑스조차 오스트리아 편을 들며 세르비아를 방관했을 정도. 거기다 다른 유럽의 몰락한 왕가들은 러시아를 포함해서 어느정도 군주의 책임이 일정 이상 있었는데도 금방 왕가에 대한 배척이 사그라들었는데 합스부르크 왕가는 하필 최강대국이자 연합국이면서 두 세계대전이 승전했을 당시 대통령인 우드로 윌슨, 루스벨트가 군주제 혐오자인데다 동유럽쪽 강대국이자 역시 협상국-연합국인 러시아는 소련 시절 아예 공산주의 국가에다 역사적으로도 합스부르크 왕가와 적대적이어서 더욱 탄압을 종용했다.[5] 전 재산을 몰수당하고 국외로 추방되었으며, 같은 시기 제정이 폐지된 독일과는 달리 이름에 왕족/귀족임을 상징하는 (von) 사용이 금지되었다. 독일은 구 왕족/귀족들이 전후 서독/동독 분단기 내내 정부와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지만 나치와 관련된 건이 아니라면 딱히 불이익을 받지는 않았다. 프랑스는 완전히 공화국으로 정착된 1870년부터 1950년까지 구 왕가 사람들에 대한 입국을 금지하긴 했다만 왕가가 아닌 귀족 출신들은 이 조치에서 예외였으며 왕가에 대해서도 이 조치가 거의 지켜지지 않아서 1874년생인 부르봉-오를레앙 왕가 (1874~1940)과 1908년생인 앙리(1908~1999) 부자는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러시아와 발칸 국가들은 공산권 집권 시절 한정으로는 오스트리아보다도 한술 더 떠서 아예 구왕가 총살(러시아)이나 국외추방(구유고, 루마니아, 불가리아, 그리스) 같은 극약처방으로 응수했지만, 공산권 붕괴 이후로는 구왕가의 귀국이 허용되었으며 오스트리아와 구 오헝제국 구성국들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처우가 온건해졌으며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루마니아, 알바니아, 불가리아에서는 아예 복고론이 진지하게 거론되기까지 했다.[6] 다만 이는 대통령에 당선된 후 국민투표로 황제가 된 나폴레옹 3세의 선례를 막고자 한 것도 있다. 실제로 독일에서도 빌헬름 황태자가 그걸 노리고 1932년 독일 대통령 선거에 출마를 고려한 적 있었다.[7] 설사 진심으로 합스부르크 가문이라는 자부심이 있더라도 선술했듯이 2011년이 되어서야 대통령 출마 금지 조항을 없앨만큼 왕가에 대한 공화국 측의 경계가 심하기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합스부르크 가문 사람이란걸 강조하지 않는게 본인에게나 가문에게나 더 좋을수 있다. 레이싱 드라이버인걸 감안해도 합스부르크 가문의 종주인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 사진을 인스타에 거의 안올리는것까지도 생각하면 이런 가능성이 없는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