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6 06:09:24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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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홍대 학과장 및 제작자 입장 전문3. 조형물 파괴4. 쟁점
4.1. 표현의 자유 문제 논란
4.1.1. 나쁜 내용을 담은 상징을 표현해도 되는가의 문제
4.1.1.1. 예술 혹은 표현의 자유가 모든 것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 있는가의 문제
4.1.2. 작품에 대한 현재의 평가가 절대화될 수 있는가의 문제4.1.3. '표현의 자유에 반대할 표현의 자유'의 문제4.1.4. 표현의 자유에 반대하기 위해 재물을 손괴해도 되는가의 문제
4.1.4.1. 마이너한 추가 주장
4.1.5. 조형물을 공공장소에 설치했어야 했는가의 문제4.1.6. 작가가 이 모든 것을 의도한 것인가에 대한 문제4.1.7. 예술가가 반드시 자신의 작품에 담긴 의도를 설명해야 하는가의 문제
4.2. 민형법상 책임4.3. 환경 조형물의 안전 문제
5. 여담6. 관련 문서

1. 개요

2016년 5월 30일 홍익대학교 정문에 설치되었던 일베저장소를 의미하는 손가락 조각상 작품이다.

조각상의 손가락 모양의 ㅇ은 일, ㅂ 모양은 베를 뜻하며 일베 회원 인증에 사용된다. 제작자는 조소과 4학년이었던 홍기하 작가[1]로 당당하게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했다. 작품명은 《어디에나 있고, 아무 데도 없다》이며[2] 조형물을 부수려는 일부 학생과 이를 저지하는 경찰 사이에 다툼도 있었고 조형물 주변에 철거를 촉구하는 포스트잇을 붙인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긍정적으로 보기도 했다.

홍대 총학생회는 "일베는 그동안 특정지역차별과 성차별, 그리고 그들이 가진 정치적 편향성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분노와 불쾌감을 일으켰다"며 "학교 정문인 홍문관에 일베 조각을 설치한 것은 홍익대학교가 일베와 같은 성향을 지니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으니 작품 의도를 설명해 달라"고 요구했다.#

2. 홍대 학과장 및 제작자 입장 전문

2016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환경조각전을 개최하며
이수홍 홍익대 조소과 학과장

42회를 맞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의 환경조각전은 정규교과수업의 일환으로 학생들에게 졸업을 위한 필수과목입니다. 매년 그러하듯이 학기의 시작 시점에서 아이디어와 스케치를 지도교수와 상의하여 정식절차를 밟아 교내의 여러 장소에 작품을 설치하는 야외조각전 형식을 티고 있습니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 중 작품명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다>는 일베를 상징하는 손가락의 형태로 제작되었습니다. 제작 의도는 일베에 대한 찬반의 입장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현재 존재하는 가치의 혼란, 극단적 대립 그리고 폭력성 등 일베 논란에 대하여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사회가 변화하는 것과 동시에 이러한 이분적인 대립이 심각해지는 현상을 걱정스럽게 생각하며 던진 조형언어입니다. 학생을 지도하는 교수의 입장에서도 그 원인과 현상에 대한 담론은 건강한 논의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반응이 개인적으로는 다르게 해석될 수 있지만 작품을 훼손하는 방식 또한 우려되는 안타까운 반응이라고 생각합니다. 논란을 위한 논란을 생성하기 위한 의도가 아니고 사회에 대한 한 미술학도의 관심이라고 여겨주시고, 학생을 지도하는 교수의 입장에서 예술의 사회적 기능과 더불어 공공장소에 놓이는 야외조각으로서 공론적 책임도 함께 고민하는 교육환경을 지도하고 조성함을 조소과 교수들의 입장을 대표하여 말씀드립니다.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다> 제작의도
홍기하 홍익대 조소과 4학년

일단 작품 의도 표명을 많은 분들이 기다려 주신 것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저의 작품은 조소과 환경조각전 전시의 참여작이며 전시 오픈은 31일(화요일)입니다. 작품의 캡션이 안 달린 점은 저의 신분과 의도를 숨기려 한 것이 아니라, 오픈 전날에 작품 설치를 미리 한 것이며, 오픈 후에는 작품의 제목과 저의 이름이 작품(의 캡션)에 달립니다.

저의 작품이 설치된 장소가 외부인들도 많이 볼 수 있는 곳이라는 점은 우연이 아니라 의도이며, 저의 작품은 공공성이 생명입니다. 미술계 안의 사람들로 한정된 관객이 아니라 더 다채로운 시각과 의견들을 받아들이고자 가장 다양한 관객들이 접할 수 있는 곳을 택했습니다.

저의 작품은 제가 일베를 옹호하느냐 비판하느냐를 단정 짓는 이분법적인 의도를 담고 있지 않습니다. 제 작품의 제목은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다>입니다. 사회에 만연하게 존재하지만 실체가 없는 일베라는 것을 실체로 보여줌으로써 이것에 대한 논란과 논쟁이 벌이는 것이 제 작품의 의도입니다. 또 작품이 이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봅니다.

단편적이고 일차원적인 시각에서 이 작품의 제작자가 "일베다", "아니다"라고 생각하며 단순하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일베가 사회 다방면에 존재하는 만큼 다양한 시각에서 넓은 시야로 바라보고 해석했으면 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모든 의견들도 작품의 의도로서 받아들이고 있고 저와 제 작품의 의도에 대한 마녀사냥식 비난, 거짓된 정보들, 그리고 작품을 훼손하는 행위도 일베가 하는 것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생각해볼 수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는 온라인의 폭력성을 저는 작품 제작자로서 받고 있고 이러한 사회의 모습을 작품을 통해 비추려는 것이 저의 의도입니다.

저의 작품은 지금과 같은 수많은 논란이 있을 것을 미리 예상하며 몇 개월간 교수님들과 논의를 하며 제작되었고 작품의 의도와 설치 장소에 대해서도 학과를 통해 절차를 밟아 공식적인 허가를 받았습니다. 몇몇 분들이 원하시는 작품 철거는 저의 작품 의도에 빗나가고, 그럴 당위성이 없기 때문에 철거 계획은 없습니다. 하지만 작품에 대한 비난은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작품을 훼손하는 것도 표현의 자유라고 생각하지만, 그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의 작품을 통해서 이것이 왜 예술이냐, 작품이 아니라 쓰레기다, 관객에게 혐오감을 준다면 예술로 인정받을 수 없다 등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가고 있는데 이렇게 예술의 정의와 범위가 무엇인지에 대한 담론이 형성되는 것은 건강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술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은 없기 때문에 각자 저의 작품을 통해서 예술에 대한 자신만의 정의를 내려볼 수 있어서 대중과 거리가 먼 현대미술을 한걸음 더 가깝게 해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3. 조형물 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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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조각상은 설치 이틀 만인 6월 1일 새벽 2시경 누군가에게 파괴당했다. 이에 마포경찰서는 일베 조형물을 훼손한 10대 후반의 A씨와 20대 초반의 B씨를 체포했으며 자신을 랩퍼성큰이라고 칭한 20대 C씨도 함께 체포했다. 홍익대생인 A씨와 B씨는 전날 오후 10시경 조형물을 일부 파손시켰고 C씨는 새벽 2시경 조형물을 최종적으로 넘어뜨려 완파시키던 도중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이후 '랩퍼성큰'은 합의를 거쳐 고소가 취하되면서 원만하게 해결되었다고 한다.

이후 페이스북에 훼손자 본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의 의견이 올라왔으며 <오마이뉴스>에서는 조형물을 최종적으로 파괴한 '랩퍼성큰(22)'과 인터뷰한 기사를 싣기도 했다. # 랩퍼성큰은 인터뷰를 통해 "작품 의도에 대한 정확한 설명 없이 일베 상징물을 홍익대 정문에 설치해 많은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줬다"며 "표현의 자유라면서 6월 한 달 동안 그 작품을 전시하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라고 생각해 그 무책임함을 질타하기 위해 파손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작품의 모양을 임의로 바꿔서 대중들이 쉽게 작품의 진의를 받아들일 수 있게 하고 싶었다"면서 "너무나 멀쩡하고 깨끗한 작품을 부숴서 '일베 회원들은 가상에선 멋있고 센 척하는 사람들이지만 현실에선 부서지고 망가진 사람들'이란 뜻으로 작품을 바꿔보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다만 "홍익대 측에서 전혀 철거할 생각이 없다고 하니 이렇게 누군가 부수지 않으면 해결할 방법이 있나 싶었다"면서 "제가 이 범죄행위로 피해를 받더라도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고 바로잡아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 "(일베 조형상은)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이 나쁜데 사람들이 그를 겉으로 표현하지 않는다고 홍대 거리 가운데 김정은 동상을 다짜고짜 세워놓고 '김정은에 대한 경각심을 갖기 위해 세웠다'고 얘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래퍼로서 '랩'으로 이 작품을 비판할 수도 있지 않았나"라는 질문에는 "랩도 랩이지만 직접 뭔가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싫거나 잘못된 게 있으면 무조건 참거나 모르는 척 말고 직접 나서보는 게 어떻겠냐는 생각이 있어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이 같은 뜻을 글로 적어 작가에게 건넸다고도 밝혔다. 또 "작품을 훼손한 행위가 잘못된 것은 맞다, 작품을 훼손하는 식으로 메시지를 바꿔보는 게 어떤가 제안했으면 되는 것인데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어 그 부분에 대해선 사과를 하고 싶다"고도 덧붙였다.

글에 따르면 그는 우발적이거나 막무가내로 시행한 것이 아니라 여러 장비와 준비를 거쳐 계획적으로 실행하였고 수위 아저씨와의 대화도 되었으며 행동에 따른 책임은 본인이 질 생각으로 했다고 한다. 이 글에 대한 답글도 의견이 크게 갈렸다. 철거를 주장하고 학교 측과 조소과 측에 건의했으나 설치되고 자진 철거되기 전까지 홍대측이 입을 이미지, 정신적 피해를 고려하여 잘했다는 의견과 민주적이고 법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폭력에 의해 철거되었다는 점에서 경솔했다는 의견으로 나뉘었다.

잘했다는 측은 자극적인 소재를 앞세워서 형편없기 그지없는 꼴보기 싫은 조형물인데 부숴져서 일단 잘 됐다는 반응을 보였다. 잘못했다는 측은 일단 절차가 잘못되었고 그래도 남의 표현의 자유와 함께 남이 노력해서 만든 작품인데 무슨 권리로 훼손하냐는 비난과 함께 그렇게 책임지고 떳떳하게 할 일이었으면 본인을 밝힌 설치자와 달리 익명으로 페이스북에 대신 의견을 올리고 유동인구가 적은 새벽 시간대에 실행을 옮겼는지 추궁했다.[3]

한편 설치 첫날 일각에서는 '설치 후 해체/파괴 퍼포먼스를 벌이기 위해 설치한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4. 쟁점

4.1. 표현의 자유 문제 논란

이런 짓 하는 놈들입니다.[4]
진중권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라는 의견과 해당 조각물이 학교의 명예를 크게 훼손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파괴당해도 싸다는 의견으로 나뉘었다. 진중권[5]과 네이버 뉴스 댓글은 표현의 자유를 무시하고 부쉈다는 점을 우선시했다. 이렇게 파괴된 것이 오히려 제작자가 던지고자 한 메시지를 완성시킨다며 해당 제작자의 A+ 학점을 예상하거나 이중잣대를 비판하는 댓글들도 많이 달렸다. 주요 세부 쟁점은 다음과 같다.

4.1.1. 나쁜 내용을 담은 상징을 표현해도 되는가의 문제

일베 조형물 파괴를 옹호힌 사람들의 주장의 바탕이 되는 근거는 저 손가락 제스처가 '나쁜 집단'인 일베에서 사용되는 상징이고 그런 상징을 드러내는 것이 일베라는 나쁜 집단을 자칫 인정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에 저 조형물은 파괴되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애초에 '착하다, 나쁘다'라는 개념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며 설사 이것이 사회 다수의 의견이 된다고 하더라도 집단 주관의 개념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선악관은 개개인마다 전부 다르고 그것을 보장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라는 걸 염두에 둔다면 이러한 선악관 개념으로의 접근 자체가 굉장히 반자유주의적인 행태라고 할 수 있다. 애초에 일베 역시 수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커뮤니티인데 다수의 이용자들의 막나가는 모습('나쁜' 모습)을 바탕으로 사이트의 속성을 '나쁘다'고 단정짓는 것도 다분히 일차원적인 발상이다.

언제나 무언가를 결정짓는 인간의 판단력은 주관성을 깊게 내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서구권의 민주주의 선진국들이 오랜 갈등 끝에 만들어낸 것이 '법치주의'이며 이러한 반달리즘 자체가 법치와 자유민주주의에 전적으로 어긋나는 것이다.
더불어 설사 모든 인류가 사악한 것이나 부조리한 것이라고 완벽히 감상을 공유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아예 언급하거나 표현하지조차 못하게 막는 사회에서는 제대로 된 성숙한 토론이 이루어질 수 없다. 이런 것들을 Closed area, 즉 '닫힌 영역'이라고 표현한다. 즉 사회적으로 이성적 검토를 꺼리고 금기시하는 문제를 의미한다. 물론 이렇게 대놓고 금기시되는 것에는 보통 이유가 존재하긴 하지만[6] 그렇다고 해서 논의나 토론의 과정 없이 마냥 '사악한 것'이라고 덮어 놓고 거부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도 아니고 대한민국 사회의 근간인 민주주의 정신에 역행한다고 볼 수 있다.

단순히 나쁜 상징을 표현했다는 이유만으로 비판하고 몰아붙인다면 예술가들은 아예 사회 문제에 대해 지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결론밖에 안 나오는 것이다. 잘못된 것을 표현하는 상징이 있으면 그것을 더럽다고 피할 것이 아니라 그 상징이 무엇이고 그 상징이 어떤 나쁜 의미를 담고 있는지 알리는 것이 더 건강하고 성숙된 태도이다. 단순히 '그건 나쁜 거니까 그걸 표현하는 너도 나빠' 식의 1차원적 논리는 역으로 전체주의에 악용당하기 딱 좋은 구실이 될 뿐이다. 진중권 교수가 다음과 같은 트윗을 남긴 이유도 이런 사회 분위기가 결과적으로 예술의 자율성 침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더불어 '나쁜 상징'은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 하켄크로이츠로 대표되는 역만자를 보면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에는 행운의 상징이었으나 이후에는 전범기로 인식된다. 반대로 전제군주정 국가에서 민주주의주권재민을 상징하는 조형물을 만들었다면 당시 기준에서 당연히 나쁜 상징이다. 즉 옳다, 그르다의 개념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것이며 과거에는 옳았던 일이 현재에는 옳지 못한 일이 될 수 있고 과거에 옳지 못했던 일이 현재에는 옳은 일이 될 수 있다. 이를 현재와 미래에 대입해 봐도 같은 일이다. 물론 일베의 사상이 옳은 것이며 미래에 인정받는다는 소리는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단순히 현재 나쁘다고 해서 거론조차 금지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예술의 자율성 이전에 사상의 자유도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일베 조형물 같은 나쁜 상징을 구실로 모든 예술이나 사상의 표현에 현재의 가치를 기준으로 하여 절대화한 잣대를 들이댄다면 분명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4.1.1.1. 예술 혹은 표현의 자유가 모든 것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 있는가의 문제
예술의 자율성 혹은 표현의 자유가 모든 사항에 대해 면죄부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있다.

더불어 알기 쉬운 예시가 이승연 위안부 누드 사건인데 해당 누드 화보가 음란물인지 예술 작품인지에 대한 논란은 접어두더라도 과연 이런 것을 예술의 자율성 혹은 표현의 자유를 위해 옹호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인 것이다.

다만 위안부 화보와 본 사건의 조형물에는 큰 차이가 있는데 위안부 화보는 일반적인 범주 내에서 도저히 국민 감정에 받아들여질 수 없는 물건이고 본 사건의 조형물은 그 정도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 정도'라는 애매한 표현을 쓰는 것은 실제로 예술의 자율성 혹은 표현의 자유라는 것에 대한 경계가 애매하기 때문인데 본 조형물은 '일단 겉만 봐서는' 흉물이라고 할 수 없고 국민정서에 크게 반하는 주장을 담고 있다고 보기에도 애매하다.

다만 그 '국민정서'라는 반 법치주의적인 애매하고도 전근대적인 기준을 가져다 대는 것도 상당히 위험하며 전체주의적인 면이 크다. 만약 위안부 화보가 규제되어야 한다면 생존자들에 대한 인격권 침해나 반인륜적인 사건을 직접적으로 옹호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라는 쪽에서 찾아야 한다.[7] 국민정서라는 기준으로 소수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그 자체가 극우적 행태다. 이를테면 반인륜적인 사건 옹호와 아무 관계가 없는데도 단지 3.1절이라는 형식적인[8] 기념일 때문에 기모노를 입은 코스프레를 하지 말라고 하는 주장이 반인권적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독일에서는 나치를 좋게 평가할 만한 여지가 있는 작품을 금기시하며 심지어 나치를 표현하는 몸짓(어떻게 보면 일베를 의미하는 손가락 표시에 대응되는)만 보여도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제재를 받는다. 이것은 예술이라고 핑계를 대도 예외가 아니다. 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독일이라는 국가의 역사 및 국민정서와 연관된 문제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당연히 다른 나라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럴진대 일관된 역사 및 국민정서를 개입시킬 수 없는 본 조형물에 대해 이러한 논리를 적용시키기는 힘들다.

그리고 독일에서 무조건 처벌을 받는다는 흔한 주장도 과장된 면이 크다.[9] 독일에서도 그러한 법적 조항은 거의 사문화되었으며(한국에서의 낙태죄처럼) 공직자 같은 경우가 아니면 법적 처벌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마저도 리버럴 우파와 좌파들에 의해 폐지 주장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특수한 역사적 상황과 물리적 테러네오나치가 넘쳐나는 유럽의 살벌한 상황 속에서 유지되고 있을 뿐이다. 또한 비공식적 제재라는 것은 사적제재를 정당화하지 않는 이상 결국 비판과 다를 바가 없다.

요약하자면 예술이나 표현에 자유가 주어진다고 해서 모든 예술이나 표현이 무조건 용납된다고 보기는 힘들다. 예술이나 표현도 어느 정도 한계를 넘으면 결국 사회적으로 제한을 받는 경우가 많다. 다만 본 조형물에 그러한 원칙을 적용시키기 애매하다. 사실 예술이나 표현이라고 말할 필요도 없이 모든 행위는 자유가 주어져 있고 한편으로 자유에 제한을 받는다. 그렇다고 이게 꼭 자유의 한계를 말하는 것이라고 볼 수만은 없고 타인의 자유와의 경합적 지점에서 생기는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중요한 부분을 넘어가게 된다. 비판을 말하는 것인지, 일종의 행정적 규제(방송제한처럼)를 말하는 것인지, 형사적 처벌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아예 사적 제재 내지 테러[10] 를 허용해 주는 것을 말하는 것인지를 명확히 따져야 한다.

4.1.2. 작품에 대한 현재의 평가가 절대화될 수 있는가의 문제

그리고 이 사건의 이면에는 다수의 대중이 정한 선한 것/악한 것의 이분법은 절대적이며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 역시 이에 따라야 한다는 발상을 엿볼 수 있는데 다수결의 원리가 오늘날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 원리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다수의 판단이 항상 옳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모든 가치 판단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반전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발상은 위험하다고 볼 수 있다

이게 왜 문제인지는 미술사의 사례를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나치가 양차대전 사이에 현대미술가들의 작품을 어떻게 퇴폐미술이라고 매도하고 박해했는지 생각해 보자. 아돌프 히틀러는 이상적인 영웅의 모습을 보여주는 고전주의가 옳고 인간의 나약하거나 불안정한 모습을 표현한 현대예술가들의 작품은 퇴폐적인 쓰레기라고 비난했다. 게르만 민족 우월주의에 빠진 나치가 왜 베를린 올림픽을 최대한 웅장하게 보이려 애썼는지 생각해 보자. 그 영웅주의, 전체주의, 국뽕에 빠진 독일 대중들이 2차대전에서 어떤 광기를 드러났는지는 굳이 두번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현대에는 히틀러가 좋아했던 근육질 영웅 조각상보다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가 군생활 뺑이 치며 겪은 자신의 트라우마를 표현한 기괴한 그림이 더 의미 있고 숙고할 만한 내용을 담은 작품으로 여겨진다. 단순히 겉으로만 보면 키르히너 같은 '퇴폐' 예술가들의 작품은 사회에서 사라져야 할 그림이겠지만 그 예술가들이 어떤 의도로 무슨 생각을 하며 그렸는지까지 고려하면 오히려 그 반대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미술사에서 시간이 흘러 악평이 호평으로 완전히 역전되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오늘 당장 다수의 대중이 악하다고 해도 미래에 관련된 내막까지 알려진 뒤에는 도리어 평가가 역전되어 예술가가 더 높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침묵과 무시로 일베 문제를 일관하는 대중과 다르게 직접 일베 문제에 대해 시각언어로 언급한 저 예술가의 행동이 후대에는 더 시의적절한 행위였다고 평가받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생각해 볼 때 조각상을 파괴한 것은 조각상의 가치가 발견될 앞으로의 가능성마저 파괴해 버렸다는 점에서 한층 더 문제성이 짙은 행위로 볼 수 있다.

4.1.3. '표현의 자유에 반대할 표현의 자유'의 문제

일부 대중들은 '표현의 자유에 반대할 표현의 자유'의 문제, 다시 말해 보기 싫은 것을 보지 않을 권리의 문제를 제기하며 조형물 파괴를 옹호했다[11]. 그러나 보기 싫은 것을 보지 않을 권리의 문제는 그 논리상 되려 역풍을 맞기 좋다. 그것도 '평소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던 사람들이[12] 정작 다른 진영의 표현의 자유는 억압한다.'며 이중잣대를 지적하는 의견이 나온 것이 이런 역풍의 대표적인 사례다. 진중권 교수도 그동안 자신이 외쳐 왔던 표현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에 의거해 이런 행동은 잘못되었다고 지적했다.

앞서 외국의 사례를 설명한 것처럼 저 일베 조각상을 부수지 않고 그 앞에서 랩을 하고 그 광경을 녹화하든지, 강남 묻지마 살인사건처럼 일베 조각상에 포스트잇을 붙여 항의하든지, 아니면 조각상을 천으로 덮어 버리든지[13], 전시 기간인 6월 20일까지 조각상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든지, 학교의 허락을 받고 일베의 만행을 정리한 시각자료를 조각상 앞에 설치하는 등 대응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굳이 부수지 않아도 이에 항의할 방법은 많다. 도리어 조각상을 부수지 않는 것이 나중에 다시 그 조각상을 꺼내서 반면교사든 뭐든 참고사 례로 삼을 수 있는 것이고 생산적인 논의가 계속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쪽이 더 바람직한 것이다. 그러나 저렇게 조각상을 부숴 버리면 그런 생산적인 논의가 끊겨 버리고 혐오와 반목만 심해지게 된다.

자신들이 용인할 수 있는 집단이나 주장만 받아 준다면 표현의 자유는 존재 의의가 없다. 자신들이 보기에 혐오스럽고 감내하기 힘든 것을 감내할 의무를 민주주의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요구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이 사건뿐만 아니라 국가보안법, ㅇㅇㅇ 개새끼 해봐, 종북몰이, 만물일베설 등이 문제가 큰 것이다.

4.1.4. 표현의 자유에 반대하기 위해 재물을 손괴해도 되는가의 문제

앞서의 '표현의 자유에 반대할 표현의 자유' 문제와 연관해 그 반대 표현을 위해 파괴 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느냐도 쟁점이 되었다. 조형물을 파괴하는 행위를 파괴자 본인이 '인지'했는지, 그리고 '뒤이어 따를 책임을 각오하고 실행'하였을 때 그것이 합리화가 되냐는 점이 논쟁거리가 된 것이다. 이에 대해 일베와 관련된 것이라서 파괴해도 된다는 것은 진영논리의 아주 대표적인 주장 중 하나로 보일 수 있다는 의견이 힘을 얻었으며 진중권 교수의 발언도 그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결론만 말하자면 당연하지만 재물손괴죄다. 설령 그것이 단순 반인륜적이고 범법행위에 해당하는 조형물이었더라도 응당한 절차 없이 개인이 독단적으로 철거하는 것은 똑같이 단순한 범죄다. 이상을 실현하는 길을 당연히 멀고 험한 법인데 혈기만 내세워 외도를 행다면 그 행위가 지지를 받는지의 여부를 제쳐 봐도 잘못되었음은 변하지 않는다. 누군가 어딘가의 악랄한 독재자의 동상을 총대 매고 폭파했을 때 그것이 이 쟁점과 다르지 않냐고 한다면 당연히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이미 합리적이고 납득 가능한 법치국가의 상황을 벗어난 막장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헌법의 의해 절대적인 표현의 자유가 보장받는 상황에서 이뤄진 정당한 예술 활동에 대해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범죄 행위로 대응했기에 불거진 문제이다. 법의 가치 위에 옳고 그름이라는 개인 혹은 특정 집단의 주관적인 가치는 적용될수 없다. 이것은 단순히 정론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지만 현대 사회는 언제나 정론을 지키는 부류와 지키는 척이라도 하는 부류에 의해 돌아간다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정론이 지켜지지 않는 상황은 단순한 역행일 뿐이다.

외국에서는 저런 논란이 되는 예술 작업이 나오면 그에 반대하는 예술 작업이 또 등장한다. 앞서 대응 예시로 든 것처럼 대립하는 조각상을 세워 두든 퍼포먼스를 하든 말이다. 음성언어에는 음성언어로, 문자언어에는 문자언어로 답하듯 시각언어에는 시각언어로 답하는 게 바람직한 예술적 상호작용일 것이다. 물론 시각언어에 음성언어나 문자언어로 답할 수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예술언어로 대화한다는 점에서 분명한 선이 있다. 그런데 저 조각상을 파괴한 사람은 시각언어에 시각언어도, 음성언어도, 문자언어도 아닌 폭력으로 답했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이다. 왜냐면 대화를 지속시킬 수 있는가의 문제에서 폭력은 어떤 이유에서든 정당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폭력 가해자와 계속 대화를 이어나가려는 피해자는 드물기 때문이다.
4.1.4.1. 마이너한 추가 주장
드문 사례이긴 하지만 또 다른 주장도 있었다. 설령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표현의 자유에 반대할 표현의 자유를 표현하였더라도 그러한 자유의 남용에 대한 책임(사법적인 처벌과 민사 배상)을 지면 되는 것이 아니냐는 논지.

물론 이 역시 주장에 대한 문제점과 반론은 존재한다.

'그렇다면 살인을 저지르고 살인 행위에 대한 자유의 남용에 대한 책임을 지면 되는 것인가?' 라는 논란이 있다.

하지만 거기에는 인명과 사물의 가치 사이에는 경중이 달라지는 점이 있으며 근본적으로 똑같은 상태로 똑같은 것을 복구해 낼 수 없는 인간과 달리 똑같은 재료와 똑같은 방법으로 똑같은 것을 만들면 복구해낼 수 있으므로 무조건 대인적인 권리 침해와 대물적인 권리 침해에 대해 1:1로 대응시킬 수 없다는 논리로 반박 가능하다.

사실 여기까지 가면 '사법/경제 등의 모든 관련 책임을 지고 법률을 위반한 자유의 남용에 대해 배상한다고 가정했을 때, 범죄를 저지를 자유가 있는가?'라는 논쟁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답이 없긴 하다. 저것에 대한 결론은 나지 않았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와 그와 말미암은 대상의 법적인 보호에 대한 한 시민의 저항권 발동이라는 식으로 법률과 정부에 대한 저항권까지 엮여들어가면 답이 없다. 법률 또한 구성된 정부의 절차에 따라 행정적으로 정부가 집행하는 일종의 국가권력이라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 흔한 ‘악법에 대한 저항’ 논리라던가…[14]

4.1.5. 조형물을 공공장소에 설치했어야 했는가의 문제

몇몇 사람들은 조형물을 공공장소에 설치한 것이 문제라고 주장했다. 미술관 같은 건물 안에 설치한 것이 아니라 공공장소에 설치했기에 문제가 더 커졌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미술관 같은 건물 안에 설치해도 논란은 발생할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필연적으로 예술가가 작품을 설치해도 되는 공간이 있고 설치하면 안 되는 공간이 있는가, 설치해도 되는 공간이라도 어떤 작품은 설치해도 되고 어떤 작품은 설치하면 안 되는가의 문제와 연관될 수밖에 없는데 이러면 일베 조형물뿐 아니라 다른 작품들도 설치해서는 안 된다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또한 앞서 말한 다수의 대중이 선한 것과 악한 것의 잣대를 정할 수 있는가의 문제와도 연관된다.

사실 이 부분은 문제 자체가 될 수 없는 게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 학교의 허가를 받고 학교 정문에 설치한 것이므로 적어도 장소적인 측면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4.1.6. 작가가 이 모든 것을 의도한 것인가에 대한 문제

작가가 조형물에 대한 비판적인 반응과 폭력적으로 철거될 것을 전부 예상하고 만든 작품이 아니냐는 주장도 있었다. 어떤 의도로든 조형물이 깨짐으로서 작품이 완성된다는 가설이다. 일부러 깨지기 쉬운 석고로 만들었다는 것을 근거로 들기도 했다.

다만 제작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 문제 때문에 값싸고 다루기 쉬운 석고를 선택했을 개연성도 있기 때문에 확실히 단언할 수는 없다.[15] 더불어 뉴스에서 "저렇게까지 파손할 줄은 예상 못했고요. 범법행위를 한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고요."라며 격앙된 목소리로 인터뷰를 하는 것을 보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16]

4.1.7. 예술가가 반드시 자신의 작품에 담긴 의도를 설명해야 하는가의 문제

이런 작가의 태도를 비판하면서 두루뭉술하고 무책임하게 조각상 하나 달랑 던져 놓고 알아서 해석하라는 식의 태도를 취한 것이 잘못이라고 비판하는 대중들도 있다. 아카이빙 식으로 관련 사건들을 스크랩한 자료를 벽면에 프린팅해 보여주거나 사람들이 일베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인터뷰한 영상을 벽면에 투사하는 방법을 택할 수도 있었는데 조각상 같은 애매한 이미지 하나 만들어 놓고 얼렁뚱땅 넘어간 것은 성의 없고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무책임한 행위라는 것이다. 나아가 작가가 조각 작품에 부연 설명을 달지 않은 것 때문에 작가가 의도하지 않은 오해나 논란이 벌어진 것이므로 작가는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그러나 예술가가 꼭 통계학자나 기자처럼 자료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 조형물은 홍대의 '환경조각전'이라는 행사 안에서 설치된 것이고 당연히 환경조각전은 조소과 학생이 조각이라는 틀 안에서 어떻게 이런 사회적 문제들을 표현할지 고민한 결과를 선보이는 자리다. 조소만의 언어로 자신들의 결과물을 선보이는 자리인데 이걸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판하는 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조각가는 조각으로 설명하고 담론의 장을 형상할 기회를 마련해 주면 되는 것이다. 통계학자나 기자처럼 이 작품이 무엇을 시사한다는 걸 일일이 설명해 줄 의무는 없다. 왜 현대미술 작품 중에 무제(untitled)란 제목을 단 작품이 많은지 생각해 보자. 제목에조차 설명을 빼고 그냥 있는 그대로 조형물과 관련 개념만을 봐 주길 바랐기 때문에 무제라는 제목을 다는 것이다. 애초에 설명문은 음성언어나 문자언어이고 그건 미술가가 잘 다루는 시각언어와는 다른 영역의 것이다. 그런 음성언어나 문자언어로 설명하는 건 진중권 같은 평론가나 일반 관객들의 몫이다. 특히 오늘날의 현대미술가는 시각적으로 어떻게 조형하고 이를 어떻게 개념이나 현상과 연결지을까 고민하는 사람들이지, 고전미술가들마냥 충실하게 원본을 복제하고 어떻게 효과적으로 이데올로기를 선전할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더불어 작품과 관련된 오해, 논란, 해프닝도 예술의 일부긴 하지만 그것이 파괴같은 행위로 선을 넘는다면 문제가 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아무런 설명 없이 작품만 내놓는 행위는 "나는 이 작품이 어떻게 해석이 되던 개의치 않겠다" 라는 일종의 선언이나 다름이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 작품의 이름이 없다고 하거나 무제 라고 하는것이 무슨 신선하고 독창적인 행위인 것 처럼 생각할 수 있으나, 작가에게 있어서 작품의 이름을 짓거나 설명하는 것 또한 중요한 평가 요소 중 하나이다. 당장 영화나 드라마 중에 무제 라는 타이틀을 달고 방영, 상영되는 작품이 있는가? 오히려 이러한 행동은 자신의 부족한 자질을 감추려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 이러나저러나 작품에 대한 제반 설명이 없게 되면 그것을 보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조합하여 있는 그대로 해석하게 된다. 일부는 일베의 상징이라고 느끼게 될 것이며 또다른 일부는 그것을 보고 불쾌하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또는 그것이 옳냐 그르냐에 상관없이 파괴라는 행위로 표현하게 될 수도 있다. 랩퍼성큰이 그 예시 중 하나이며, 그도 결국 아무런 설명이 없는 해당 작품을 본인이 자체적으로 해석하여 그러한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이다. 작가에게도 결코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는 없다.

4.2. 민형법상 책임

법적인 문제는 확실히 있어 보인다. 애초에 당사자가 책임질 각오로 계획적으로 부쉈다고 했으니. 저 조각상이 길막을 하거나 악취를 풍기거나 사람이나 동물에 상해를 가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더불어 저 조각상은 영구적으로 설치되는 것도 아니고 6월 20일까지만 임시로 설치된 작품이었다. 따라서 법적으로 철거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인데 누군가 임의로 철거했으니 손괴죄로 입건이 가능한 사안이다.

우선 법적인 문제는 민형법상으로 책임이 모두 있다. 훼손자 본인이 익명으로 제보한 '홍익대 대신 전해드립니다'에서 자신은 우발성이 아니라 계획해서 행위를 하였다고 밝혔다. 이는 형법상 재물손괴죄의 고의성이 성립되고 부수는 행위가 모두 성립되기에 3년 이하의 징역 혹은 700만 원 이하의 벌금의 처벌을 받는다. 또 민법상으로도 타인이 표현한 것을 침해하여 사적제재를 가했다. 이는 피해자인 홍익대 조소과 학생 홍 씨가 어떠한 방식으로도 사법적인 분야에 한해서 유리하다. 왜냐하면 법치주의 국가에서 이러한 개인의 사적제재는 자신의 목적과 의도가 어찌되었든 불법행위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만약 이러한 사적제재가 허용된다면 일어나는 헬게이트는 사적제재 문서를 보면 된다.

물론 사적제재를 불허한다고 해도 훼손자 쪽에서 '난 사적 제재에 대한 사법적인 제재와 경제적인 제재에 대해서는 감수하겠다-!' 로 나와 버리면 딱히 답이 없어지긴 한다. 애초에 그럴 생각으로 보였다.

타인의 표현물이 보기 싫었으면 정당하고 합법한 절차를 거쳐서 진행되어야 하지만 이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폭력적 방법으로 진행한 처사는 오히려 공감을 받기 힘들다. 그리고 피해자 홍 씨는 기사에서 아예 자신이 실명까지 밝히며 당당한 처신을 했으나 가해자는 페이스북 익명 페이지에서 익명으로 자신을 가린 채 자기 변호만 한 상황은 누가 더 신뢰감을 주느냐로 비춰진다. 일례로 옹호자들이 "라스 폰 트리에나치 옹호로 인해 칸 영화제에서 블랙리스트가 되었다."고 주장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칸 영화제에서 공식적으로 배제한 거지, 명분 없는 누군가가 제재를 가한 건 아니기 때문에 예시로 적절하지 못하다.[17] 진중권 트윗에서도 누군가 나치의 상징물에 비유하자 '일베가 유태인을 6백만 명쯤 학살한 다음에 얘기하죠.'라고 했다. 일베가 분명히 문제가 있는 사이트이긴 하지만 그게 나치에 비유될 정도는 아니며 증오 발언이 문제라지만 진보 진영에서 방송하던 김용민, 김구라 같은 경우도 생각해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더불어 이렇게 생각하면 오늘의유머 시사게, 클리앙 등지에서 나오는 정치극단주의 계열 증오 발언도 똑같이 편향적이고 충분히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어 마땅한데 이들은 대부분의 네티즌들이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가 있다는 의견도 디시인사이드 등에서 제시되었다.

한편 훼손자 3명은 경찰에 불구속 입건되었다.# # 죄목은 재물손괴. 랩퍼성큰[18]은 현행범으로 즉각 체포, 불구속 입건되었다. 그 외 2명은 전날 오후 10시경 조형물을 부수려 한 혐의를 받았다. 이들은 혐의를 인정하고 조사를 받은 다음 귀가했다.

4.3. 환경 조형물의 안전 문제

위의 사건과는 별개로 해당 조각상이 상당히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의견도 나왔다. # 내용을 요약하면 조형물을 설치할 때는 지지대 또는 조형물 이상의 무게를 가진 받침대가 필요하지만 그런 게 없고 외부 와이어로 고정되고 있고 바닥재로는 붙지도 않은 우레탄폼을 사용했다는 것. 안전사고가 나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범인이 파괴하는 영상을 보면 힘껏 밀쳐도 단번에 넘어가는 게 아니라 오랫동안 중심이 유지되고 있다. 야구배트로 내려치는 영상삭제됨을 보면 강한 힘으로 수 회 가격했는데도 직립에 하등 문제가 없었다. 즉 고정은 어느 정도 강하게 이루어져 있었던 셈이다.[19] 사람이 체중을 전부 실어서 밀치는 것을 버티기에는 무리였다. 떨어진 사진을 보면 바닥이 지지 베이스에 붙은 채로 떨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즉 바닥이 불안정하다는 윗 문단의 주장도 근거 없는 낭설.

만약 툭 쳤는데 떨어졌다면 모를까 건장한 성인 남자가 야구방망이로 때리고 밀쳐서 떨어뜨린 다음에야 간신히 부쉈단 점에서 오히려 안전성은 검증되었다고 봐야 한다. 게다가 영구적인 설치가 아니고 임시적인 설치였을 뿐이니 저 정도면 안전성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이와 유사한 사건에 대한 기사 '넘어진 조형물에 어린이 깔려 사망, 그 책임은?'과 판례를 보면 "조형물과 받침대 사이의 접착 부위에 틈이 생기지 않도록 석재 접착제인 에폭시를 정밀하게 바르는 등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형물을 견고하게 설치해야 할 업무상 주의의무" 와 "조형물과 받침대 사이의 접착 부위에 1㎝ 이상의 틈이 생겨 공기주머니가 다수 발생하도록 에폭시를 발라 부실하게 조형물을 설치한 것"을 이유로 들어 유죄를 선고받았다. 이에 따르면 위의 조각상은 조형물과 받침대 사이의 틈은커녕 받침대가 통째로 들려나갈 정도로 견고하게 설치되었음을 알 수 있다.

5. 여담

  • 대한민국에서는 이와 같이 표현의 자유 문제와 직결되는 사례가 드문 편이지만 해외에는 이미 표현의 자유에 대해 논의하게 만든 논란과 사례들이 꽤 있다. 이미 이에 대한 연구와 평가도 어느 정도 진행되었다.
    • 대표적인 사례로 안드레 세라노(Andres Serrano, 1950~)의 사진 작업인 <오줌 예수>(1987)가 있다.# 예수의 십자가상을 오줌에 넣고 찍었다는 점이 논란이 되어 전시장에 전시된 사진이 반달을 당하는 등 논란이 된 바 있다. 작가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아브젝시옹(abjection)[20]의 개념을 끌어들여 배설물 그 자체는 인간의 신진대사 활동의 결과로 생겨난 자연스러운 결과물인데 이를 무조건 배척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인지 반문하였다. 더불어 역으로 '오줌처럼 더러운 이 세상에 잠겨있는 예수님의 심정을 생각해보자'는 식으로 충분히 성찰이 담긴 해석을 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 크리스 오필리(Chris Ofili)는 흑인 성모 마리아 그림에 코끼리 배설물을 바른 작품 <성모 마리아>(1996)를 내놓아 신성모독이라는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이에 대해 작가를 옹호하는 측은 아프리카에서는 코끼리의 배설물이 유용한 삶의 재료이며[21] 서구 사람들처럼 불결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문화적 차이를 작품에 담았을 뿐인데 이를 신성모독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과잉 반응이라는 것이었다.
    • 2014년에는 유명 팝 아티스트인 폴 매카시(Paul McCarthy, 1945~)가 프랑스 파리 방돔 광장에 설치한 녹색 조형물이 반달을 당한 사례가 있다.# 일부 사람들이 이 조형물을 보고 항문 마개 같다고 여기고 지탱해 주는 와이어를 잘라 공기가 빠지게 만든 것이다. 이에 대해 옹호자들은 자위 도구가 아니라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보이는 무난한 작품을 왜 부쉈느냐 항의하거나 설령 항문 마개를 형상화한 것이라 해도 그것이 대중을 불쾌하게 모욕하는 것이라고 어찌 단정지을 수 있는지 반문했다. 당시 문화부 장관이었던 플뢰르 펠르랭은 이에 대해 예술의 표현의 자유 원칙에 대한 심각한 위반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 이 조각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던 중국인 관광객들이 이 조각상 앞에서 손동작을 따라한 채 사진을 찍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
  • 2007년 6월에는 홍대 자위조형물 설치 사건이 일어났다. #
  • 임근준 미술평론가한국일보에 일베라는 존재의 상징성에 비추어 보았을 때 전시해서는 안 되었다는 내용의 칼럼을 썼다.[22]
  • 이 사건으로 인한 논란이 한창 뜨거웠을 때 홍익대학교는 홍베대학교라고 불렸다. [23]
  • 아예 이 작품이 생겨나지 않는 편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의견을 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일베저장소, 일베저장소/논란 및 사건 사고, 일베저장소/문제점 및 비판 등의 항목만 봐도 어쨌든 사회적으로 이미 논란이 많고 충분히 비판받을 만한 사건 사고를 저지른 만큼 상징물 같은 걸 만들어 봤자 논란만 키울 단체의 상징물을 뭐하러 만들어서 새로운 논란을 낳느냐는 논지. 시기가 굉장히 좋지 않았고[24] 건드려서 논란을 낳을 소재를 택한 건에 대해 조금 더 조심해서 소재를 택하는 것이 좋지 않았나 하는 의견을 표하는 이들도 있었던 듯.[25] 표현의 자유와 비판을 피할 자유는 전혀 다른 문제다.

6. 관련 문서



[1] 본인이 직접 오마이뉴스MBC 등에 실명을 밝히고 인터뷰하였으므로 기재 가능하다.[2] 일베 회원들이 일베 바깥에서 인증 등을 할 때 즐겨 쓰던 표현에서 유래했으며 일베를 대표하는 문구가 되었다.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일베저장소를 다룬 방영분의 부제이기도 했다.[3] 다만 당연히 대낮에 했으면 사람들에게 막혔을 것이다. 반대파가 있는 이상 최대한 들킬 가능성이 적은 새벽에 하는 게 위험이 적다.[4] "저 정도 표현도 허용이 안 된다면 예술가들은 사회에 대해 입 닫고 그냥 이쪽저쪽 다 만족시키는 기름장어 같은 작품이나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옹호했으며 해당 작품에 반대하며 훼손한 것에 대해서는 "작품에 계란 던지고 파괴한 사람들, 그리고 그 파괴를 정당화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이 사회의 기본질서를 위협하는 세력", "민주주의의 적"이라고 평가했다.#[5] 본업이 미학 교수인지라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6] 보통 닫힌 영역의 예시는 스와핑이나 정치 체제(자유시장경제 국가에서 자본주의의 당위성을 따진다든지)가 거론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왜 그런지 알 수 있을 것이다.[7] 물론 그럴 경우에도 사적제재가 용납되지는 않으며 당연히 형사처벌의 대상도 아니라 규제의 대상일 뿐이다.[8] 3.1절 정신은 항상 기려야 하는 것이지 특정일에만 애국자가 되라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더불어 3.1절 정신에서 국가를 배제하고 불의에 항거하는 정신만 기념하는 사람들의 생각도 존중되어야 한다.[9] 사실 국가보안법을 옹호하려는 측에서 자주 거론한 것이다.[10] 이를테면 지하실에 갇혀 굶어죽을 길냥이들을 구하기 위해 캣맘들이 아파트 지하실 문을 부수고 구출한 경우 이를 재산을 파괴한 범죄로 보아 비판할지, 아니면 길냥이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으니 용인될 수 있다고 볼지는 사람마다 견해가 다르다.[11] 이는 완전히 잘못된 적용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인데 특정 표현에 반대할 '표현의 자유'라면 그에 반대하는 의견의 개진, 즉 반대 집회•시위 또는 출간물의 발행 등을 할 자유를 의미할 뿐이지 그 표현물을 자신은 물론 일반 모두가 볼 수 없게 할 자유를 뜻한다고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이건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표현의 자유의 '제한'이라는 사안에서 볼 문제인 것.[12] 홍성담 화백의 박근혜 뱀 출산 그림 논란이나 2010년 G20 서울 정상회의 당시 G20 포스터에 풍자 낙서를 그린 사건 등 풍자화 관련 논란에선 항상 표현의 자유라는 레퍼토리가 나왔다. 심지어 그 두 건은 적법한 자유 제한의 여지가 있을 가능성이라도 있지만(대통령이라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지만 뱀 그림은 명예훼손의 여지가 있고 포스터 낙서는 명백한 반달리즘이다.) 이 경우엔 그런 것도 없다.[13] 다만 이것들도 일종의 반달리즘이다.[14] 사실 이 점이 소위 가스통 할배로 불리는 극우 고령층의 폭력 행위와의 결정적인 차이다. 극우 세력들의 온갖 폭력적인 행위들은 따지고 보면 자신들의 행동이 정의롭고 옳다고 굳건히 믿게 때문에 잘못되었다는 인식 자체가 없다. 그래서 그런 행동을 벌여 처벌받으면 극심한 불쾌감을 드러내는 반면 일베 조형물 사건 같은 경우는 사법상의 불이익을 받는 것을 감수하고 자신의 행위 실현에 더 우선을 둔 것이다. 즉 일베 조형물을 파괴한 사람은 비록 법은 어겼으나 본인이 의도하고자 하는 바를 이루면서도 처벌을 회피하지는 않는다는 이미지를 만들어 어느 정도의 실리를 챙겼다고도 볼 수 있다.[15] 청동은 석고에 비해 매우 비싸다. 나무는 자르고 다듬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플라스틱이 그나마 대안이었을 것이지만 학부생이 저 정도 크기의 조각상을 플라스틱으로 만들긴 어렵고 주문제작을 해야 해서 이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16] 그러나 해당 인터뷰의 발언은 작가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작가로서의 자질이 의심스러운 2가지 중 하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무언가를 창작하는 사람은 창작물을 만들 때 제작 과정, 창작물에 담긴 의미, 완성되었을 때 사회에 미칠 영향 등을 고려하는 것이 기본이다. 특히 이미 존재하던 것을 토대로 한다면 그 기존의 것이 사회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하지만 해당 작가의 작품명에서 알 수 있듯이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다"라는 말은 일베가 그만큼 사회 각지에 퍼져 있다는 말이며 이 문장을 작품명으로 정할 정도면 이미 일베와 관련한 어느 정도의 조사를 했다는 뜻이다. 그러면 당연히 작품을 전시할 때 무슨 반응이 나올지도 대강 예측이 가능한데 작가가 과연 몰랐을까? 부서져서 다시 만들었는데 제2, 제3의 랩퍼성큰이 나와서 또 조형물을 파손할 수도 있다. 그럼 그때마다 격앙된 목소리로 인터뷰를 할 것인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해서 그것이 무조건 옳은 행위는 아니다. 간통죄가 폐지됐다고 바람피우는 것을 사회적으로 좋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듯이.[17] 애초에 특정 영화제에서 자신의 저작물이 상영•시상될 권리라는 아무리 봐도 보장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과 자신의 표현물을 일반 대중에 공개해 전시할 자유는 비교가 불가능한 영역이다. 막말로 칸 영화제 운영위원들이 당 영화인의 영화 제작을 방해하거나 필름을 불태우는 행동을 한 것이 아니지 않나.[18] 해당 기사에서 예명이 밝혀졌다.[19] 자세히 보면 석고상 밑의 철판째로 밀려나갔다.[20] 아브젝트(abject)는 더럽다고 여겨지는 것, 배제되고 추방되는 대상, 기성 체제나 관념에서 배제하려고 하는 존재, 나아가 이런 이질적이고 위협적으로 여겨지는 어떤 것들을 거부하고 추방하려는 심리적 현상을 지칭하는 개념이다.[21] 코끼리 대변에는 섬유질이 많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황토집처럼 움막을 지을 때 코끼리 똥을 사용하기도 하고 연료로 사용하기도 한다.[22] 다만 이는 평론가로서 취할 자세가 아니다. 일베가 심각한 문제를 지닌 집단임은 분명하지만 그러한 사회의 치부를 다루는 것도 문화로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이고 세상에는 일베보다 더 심각한 사회적 문제 취급을 받는 상징적인 존재들도 많으며 그들을 예술 작품이나 사회적 고찰을 위해 미술품, 행위예술 등에서 언급한다고 부적절하다고 보는 평론가는 적어도 현대미술을 대상으로는 없다. 임근준의 입장은 오히려 정치적 논리다. 실제로 해당 칼럼을 보면 상당히 작가의 설명을 기만이라고 까지 평하는 등 편견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23] 파일:홍베대학교.png[24] 2016년에만 해도 상당한 사건 사고를 터뜨렸다.[25] 작가 입장에선 표현의 자유겠지만 일베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물론, 그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일베를 상징하는 작품 자체가 당연히 부정적이고 논란거리 그 자체로 비춰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리고 그런 관점의 차이가 상당히 무서운 일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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