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4C004C, #800080 20%, #800080 80%, #4C004C)" {{{#!folding 【 기본 구성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 <tablewidth=100%><colbgcolor=#9E1B32><colcolor=#FFD700> 전임자 | <colbgcolor=#FFF,#1C1D1F><colcolor=#000,#ddd>태상황=태상황후 상황=상황후 | <colbgcolor=#fff,#1C1D1F><colcolor=#000,#ddd>전전임 황제=태황태후 전임 황제=황태후 | |
태상왕=태상왕비 상왕=상왕비 | 전전임 국왕=대왕대비 전임 국왕=왕대비 | ||||
군주 | 황제=황후 | 여제=국서 | ||||
국왕=왕비 | 여왕=국서 | |||||
후계자 | (원자[ruby(→, ruby=책봉)])황태자=황태자비 | 황태녀=부마 | (원손[ruby(→, ruby=책봉)])황태손=황태손비 | 황태제=황태제비 | ||||
(원자[ruby(→, ruby=책봉)])왕세자=왕세자비 | 왕세녀=부마 | (원손[ruby(→, ruby=책봉)])왕세손=왕세손비 | 왕세제=왕세제비 | |||||
자녀 | 황자=황자비 | 황녀=부마 | ||||
왕자=왕자비 | 왕녀=부마 | |||||
외척 | 장인([ruby(국구, ruby=(중국·고려·조선))])=장모([ruby(국태부인, ruby=(중국·고려))]) | ||||
궁인 | 후궁 | [ruby(남총, ruby=남자애인)] | 상궁 | 내시 | 환관 | ||||
【 범례 】= 부부 | }}}}}}}}}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4C004C, #800080 20%, #800080 80%, #4C004C)" {{{#!folding 【 주요국의 칭호·봉작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 <colbgcolor=#9E1B32><colcolor=#FFD700> 고려 | <colbgcolor=#fff,#1C1D1F><colcolor=#000,#fff>해동천자·황제→국왕 후계자(정윤→왕태자→왕세자) | 왕자(태자·군→{후[ruby(→, ruby=승진)]공}→부원대군·부원군) | 왕녀([ruby(공주, ruby=or궁부인)]적→궁주적·택주서→[ruby(궁주, ruby=+공주)]적·원주서→옹주적·서→궁주적) | |||
조선 | 생부(대원군=부대부인) | 국구(부원군=부부인) {국왕→대군주}={왕비→왕후} 후계자(왕세자=왕세자빈) | 왕자(대군적=부부인 | 군서=군부인) | 왕녀(공주적|옹주서) 왕세자녀(군주적|현주서) | ||||
당·송·원·명·청 | 고모(대장공주={[ruby(부마, ruby=(당·송·원·명))]|[ruby(액부, ruby=(청))]}) 천자·황제·[ruby(대칸, ruby=(원·청))] | 자매(장공주={[ruby(부마, ruby=(당·송·원·명))]|[ruby(액부, ruby=(청))]}) [ruby(황자, ruby=(당·송·원·명))](친왕=친왕비) | [ruby(황녀, ruby=(당·송·원·명))](공주=부마) [ruby(황자, ruby=(청))](친왕적|군왕서) | [ruby(황녀, ruby=(청))](고륜공주적|화석공주서) [ruby(황손, ruby=(원·명))](군왕=군왕비) | ||||
일본 | 천황=황후 [ruby(남성, ruby=1~2세)](친왕=친왕비) | [ruby(여성, ruby=1~2세)](내친왕) [ruby(남성, ruby=3세 이하)](왕=왕비) | [ruby(여성, ruby=3세 이하)](여왕) | ||||
신성 로마 제국 | 로마 황제(+독일 왕·이탈리아 왕·부르군트 왕)→선출된 로마 황제(+독일 왕·[ruby(오스트리아 대공, ruby=→오스트리아황제)]·보헤미아 왕·헝가리 왕) 후계자([ruby(로마 왕, ruby=or독일왕)]→로마 왕·독일 왕) | ||||
영국 | 국왕(+신앙의 수호자+랭커스터·노르망디 공작) 왕자(프린스+[ruby(콘월·로스시 공작, ruby= 잉글랜드·스코틀랜드 확정상속인)]+[ruby(웨일스 공, ruby=왕세자)]) | 왕녀(프린세스+[ruby(프린세스 로열, ruby=장녀·왕실공주)]) | ||||
프랑스 | 국왕(+나바르 왕·가장 기독교적인 왕) 왕자(프랑스의 아들+[ruby(도팽 드 프랑스, ruby=왕세자·프랑스도팽)]) | 왕녀(프랑스의 딸+[ruby(마담 루아얄, ruby=장녀·왕실부인)]) | ||||
스페인 | [ruby(아스투리아스 공, ruby=왕세자·카스티야왕국계승자)](+[ruby(지로나 공작, ruby=아라곤연합왕국계승자)]·[ruby(비아나 공작, ruby=나바라왕국계승자)]) | ||||
러시아 제국 | {차르→황제}={차리차→황후} ([ruby(차레비치, ruby=왕태자·차르의아들)]→)[ruby(체사레비치, ruby=황태자·카이사르의아들)]=[ruby(체사레브나, ruby=황태자비·카이사르의딸)] | ||||
독일 제국 | [ruby(카이저, ruby=황제)]([ruby(←, ruby=겸직)]프로이센 왕) | ||||
오스만 제국 | 술탄→술탄(+[ruby(파디샤, ruby=황제·왕들의주인)]·[ruby(로마 황제, ruby=동로마제국계승자)]·[ruby(칼리파, ruby=이슬람최고지도자)]) | ||||
【 범례 】= 부부 | → 변천 | + 추가 | 적 적출 | 서 서출 | }}}}}}}}}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4C004C, #800080 20%, #800080 80%, #4C004C)" {{{#!folding 【 해설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font-size: 11px;" |
| }}}}}}}}} | }}}}}}}}} |
1. 개요
황제(皇弟)는 '황제의 동생'을 말한다. 황제(皇弟)는 단순히 황실 일원에 머물지 않고, 정치·군사·외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제국의 안정과 발전에 기여했다. 그의 위치는 제국 내 권력 구조의 핵심으로, 때로는 제위 계승과 관련된 갈등의 중심이 되기도 했다.군주의 동생이라는 점에서는, 왕의 동생, 즉 왕제(王弟)와 비슷한 점도 있지만, 제국과 왕국의 규모 차이 및 구조적 차이로부터 발생하는 차이점도 있다.
2. 호칭 및 표기
황제(皇帝)와 동음이의어다. 중국어에서도 마찬가지로, 황제(皇弟)와 황제의 발음이 '황디'(huáng dì)로 같다. 학술 문서 또는 고전 번역에서는 황제와 혼동하지 않도록 한자를 병기하여 '황제(皇弟)'라고 표기하거나 한글로 풀어서 '황제의 아우'라고 쓴다.立皇弟音為清河王。《前漢紀》
황제(皇弟) 음(音)을 청하왕(清河王)으로 봉하였다.
황제(皇弟) 음(音)을 청하왕(清河王)으로 봉하였다.
皇弟於皇帝位東稍北...《通典·大斂》
황제(皇弟)는 황제의 자리에서 동쪽 약간 북쪽에 위치하며...
반대로 황제의 형은 황형(皇兄)이라 한다.[1] 한편 황제(皇弟)는 대부분 선황제의 아들로서 친왕, 군왕 등으로 봉작된 경우가 많으므로 작호로 불리기도 한다.황제(皇弟)는 황제의 자리에서 동쪽 약간 북쪽에 위치하며...
서양권에서는 황제의 동생을 따로 나타내는 일반적인 표현은 대체로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선황의 아들인 경우가 많은 등 황실에서 가장 고귀한 신분 중 하나였음은 변하지 않았고, 대공 등 최상위권 작위를 수여받거나 아예 작은 제후국의 왕 등 군주로 임명되어 분가를 개창하기도 했다.
3. 위상과 역할
황제(皇弟)는 황제의 동생으로서 황실 내에서 높은 서열과 중요한 역할을 맡았으며, 제국의 정치적·군사적 구조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서양의 로마 제국과 동로마 제국 등에서는 형과 함께 공동 황제로 임명되거나 독립적인 통치권을 행사하며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또한, 제위 계승 경쟁에서 승리해 황제가 되는 사례도 종종 나타났다.3.1. 제위 계승
황제인 형에게 직계 후계자가 없는 경우, 황제(皇弟)는 제위를 계승할 가능성이 있었다. 특히 서양의 로마 제국, 동로마 제국 등에서는 황제(皇弟)가 이미 공동 황제이거나 실력자인 경우가 있었으므로 제위 계승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였다.동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누스 8세는 형 바실리우스 2세와 함께 공동 황제에 즉위하였고, 형 사후 단독 황제가 되었다.
3.2. 권력 분점
황제(皇弟)는 공동 황제로 임명되어 제국을 분할 통치하거나, 공동 황제에 임명되지 않더라도 영토가 넓은 제국의 효율적 관리를 위하여 지방 통치를 위임받기도 했다. 또한 황실 군대의 지휘 권한을 부여받아 국경 방어를 책임지거나 반란 진압 등 군사적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다.로마 제국의 게타는 아버지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사망한 후 형 카라칼라와 함께 공동 황제로 즉위했다. 또한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첫째 동생인 막시밀리아노 1세는 오스트리아 해군 총사령관으로 뛰어난 경력을 쌓았고, 롬바르디아-베네치아 총독으로도 활동한 바 있다.
3.3. 정치·외교 활동
황제(皇弟)는 국가 간 동맹 강화 및 외교적 임무를 위해 외국에 파견되기도 했다.신성로마제국의 페르디난트 1세는 형 카를 5세가 프랑스와 전쟁을 벌이는 동안, 독일 내 프로테스탄트 제후들과 협상하며 종교 갈등을 조정했고, 1529년 오스만 제국의 빈 포위 당시 방어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유럽 방어에도 큰 공헌을 한 바 있다. 또한 청나라 함풍제의 동생인 공친왕 혁흔은 서태후와 협력하여 정치, 외교와 국정 운영에 깊이 관여했다.
3.4. 반란
황제(皇弟)는 권력을 분점받아 실력자인 경우가 많았으므로, 역사적으로 반란의 중심에 서거나 권력 투쟁에 관여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특히 사산조 페르시아에서는 황제(皇弟)의 반란이 잦았다.사산조 페르시아의 황제 바흐람 2세의 동생인 호르미즈드는 제국 동부 영토를 장악하고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되었다. 후대의 페로즈 1세는 형인 호르미즈드 3세를 암살하고 황제로 즉위했고, 자마습도 귀족들의 지원을 받아 형인 카바드 1세를 폐위시키고 황제로 즉위했다.
4. 인물 목록
4.1. 동양
4.2. 서양
- (로마 제국) 게타
게타는 아버지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사망한 후 형 카라칼라와 함께 공동 황제로 즉위했다. 그는 로마 제국의 공동 통치자로서 형과 권력을 나누었지만, 두 형제 간의 갈등은 심각했다. 그들은 서로를 적대시하며 로마 황궁을 2개로 나누고 각자의 지지자들을 모았다. 두 사람은 서로를 암살하려는 시도를 했으며, 결국 게타는 211년 카라칼라에 의해 어머니 줄리아 도미나가 보는 앞에서 살해당했다. 이후 카라칼라는 게타의 이름을 모든 기록에서 지우고, 그를 기억에서 말소된 자로 만들어 버렸다.
- (사산조 페르시아) 호르미즈드
바흐람 2세의 동생으로, 제국 동부 영토를 장악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바흐람 2세는 직접 군대를 이끌고 동쪽으로 향하여 반란을 진압하였다. 이후 호르미즈드에 대한 기록은 없다.
- (동로마제국) 콘스탄티누스 8세
형 바실리우스 2세와 함께 공동 황제로 즉위했지만, 실질적인 권력은 바실리우스가 행사했다. 콘스탄티누스는 형의 통치 기간 동안 주로 상징적인 역할을 맡았으며, 바실리우스 사후 단독 황제가 되었다.
- (동로마제국) 콘스탄티노스 11세 팔라이올로고스
비잔틴 제국의 마지막 황제로, 형 요안니스 8세 사후 제위를 이어받아 오스만 제국과의 최후의 전투를 이끌었다.
- (신성 로마 제국) 페르디난트 1세
형 카를 5세가 프랑스와 전쟁을 벌이는 동안, 페르디난트는 독일 내 프로테스탄트 제후들과 협상하며 종교 갈등을 조정했다. 또한 1529년 오스만 제국의 빈 포위 당시 방어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유럽 방어에도 큰 공헌을 했다. 1531년 신성 로마 제국의 차기 황제로 선출되었지만, 카를 5세는 아들 펠리페 2세를 황제로 앉히려는 시도를 하며 형제 간 갈등이 발생했다. 결국, 카를이 퇴위한 후 1556년에 신성 로마 황제가 되었다.
- (신성 로마 제국 및 오스트리아 제국) 카를 루트비히 대공
신성 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오스트리아 제국의 초대 황제) 프란츠 2세(프란츠 1세)의 동생. 나폴레옹 전쟁에서 오스트리아군을 이끌고 나폴레옹에게 맞서 싸웠던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장군이었다.
- (오스트리아 제국) 막시밀리아노 1세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첫째 동생인 막시밀리아노는 오스트리아 해군 총사령관으로 뛰어난 경력을 쌓았으며, 롬바르디아-베네치아 총독으로도 활동했다. 멕시코에서 프랑스의 꼭두각시 정권을 이끌었지만, 미국의 압박과 멕시코 민족주의자들의 저항으로 인해 실패하고 처형되었다. 그의 처형은 유럽 왕실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프란츠 요제프는 동생의 죽음을 애도했다.
- (오스트리아 제국) 카를 루트비히 대공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의 둘째 동생인 카를 루트비히는 직접적인 정치적 권력보다는 황실 내부에서 안정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제국 통치에 간접적으로 기여했다. 그의 아들인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제위 계승자로서 중요한 인물이었으나, 암살로 인해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1] 《문헌통고(文獻通考)》의 종묘고(宗廟考)에 송 태종이 태조에게 제사를 지내며 자칭하기를 '효제(孝弟)'라고 하였다 했으니, 이는 태조를 '황형'으로 칭한 것이라 했다. 이러한 송나라 고사를 따라, 조선 명종이 형 인종을 황형 또는 황형대왕이라 칭했고, 후대의 영조도 형인 경종을 황형이라고 칭했다. 여기서 황형은 군주의 형에 대한 경칭으로 황제의 형뿐 아니라 왕의 형에 대해서도 사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