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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府大夫人조선시대의 외명부 봉작. 품계는 정1품이다. 《경국대전》이나 《대전회통》같은 법전에 공식적으로 규정되어있지 않아 정확한 수여 기준은 알 수 없다.
작호는 받는 사람의 본관을 따서 짓는 게 기본이나 예외도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조선 초기에는 정희왕후의 어머니 흥녕부대부인 이씨[1], 수양대군(세조) 부인 시절의 낙랑부대부인 윤씨(정희왕후)[2]#, 그리고 월산대군의 부인 승평부대부인 박씨[3]가 이 작호를 받은 것으로 나온다.
철종 때부터 대원군의 부인, 즉 방계로 즉위한 임금의 친어머니를 일컫는 작호로 확립되었다. 그 전까지 대원군 부인은 외명부 최고 품계인 정1품 부부인으로 봉작받았다. 그러나 영조 때 처음으로 '왕의 생모'라는 의미로 조정에서 언급했고, 이후 방계인 철종이 즉위한 후 자신의 어머니를 정식으로 부대부인으로 추봉하면서 의미를 굳힌 것이다.
부대부인을 격상한 칭호는 '대원비(大院妃)'로, 대한제국이 여흥부대부인 민씨를 추존할 때 쓰였다.
2. 임금의 생가 모친인 부대부인
- 하동부대부인 정씨: 1522 ~ 1567. 본관은 하동. 선조의 생모. 남편은 덕흥대원군. 생전에는 하동군부인이었으며 선조 즉위 후 하동부부인으로 추증되었다. 철종 이후에는 하동부대부인으로 불렸다.#
연주부부인 구씨: 1578 ~ 1626. 본관은 능성. 인조의 생모. 남편은 정원대원군.살아 생전 아들이 왕이 되는 것을 직접 보았다. 인조 즉위 전에는 연주군부인이었다가 1623년(인조 즉위년) 인조반정 직후 남편이 대원군이 되면서 연주부부인이 되었다. 저 때는 부대부인이 대원군 부인의 호칭이 아니었으며 또한 그가 사망한 뒤인 1632년(인조 10년)에 인헌왕후로 추존되면서[4] 부대부인으로 불린 적이 한 번도 없다.
- 완양부대부인 최씨: 1804 ~ 1840. 본관은 전주[5]. 철종의 적모. 남편은 전계대원군. 부대부인 중에서는 유일하게 임금의 생모가 아니다. 다른 방계 종친 출신 왕들은 다 대원군의 정실 소생이지만, 철종만 소실 소생이기 때문. 그래도 대원군의 정실부인이라서 부대부인으로 추증되었다. 생전에는 남편이 봉군되지 못해서 그 역시 작호가 없었다. 친자식은 회평군 이명인데 1844년(헌종 10년) 민진용의 옥사에 휘말려 사사당했다.
- 용성부대부인 염씨: 1793 ~ 1834. 본관은 용담[6]. 철종의 생모. 남편은 전계대원군. 부대부인 중에서는 유일하게 정실부인이 아니다. 그래도 왕의 친어머니라서 부대부인으로 추증되었다. 생전에는 남편이 봉군되지 못해서 그 역시 작호가 없었다.
- 여흥부대부인 민씨: 1818 ~ 1898. 본관은 여흥. 고종의 생모. 남편은 흥선대원군. 살아 생전 부대부인이 된 유일한 인물. 고종 즉위 전에는 현부인이었다. 대한제국이 수립되자 대원비로 승격 추존된다. 그래서 최종 시호는 '여흥순목대원비(驪興純穆大院妃)'이다. 만약 대한제국이 망하지 않고 계속 이어졌으면 대원비의 칭호를 받는 사람이 더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망하는 바람에 유일한 대원비가 되었다.
[1] 興寧府大夫人 李氏. 본관은 인천. 흥녕은 인천의 별호였다.[2] 樂浪府大夫人 尹氏[3] 昇平府大夫人 朴氏. 본관은 순천. 승평은 순천의 옛 이름이다.[4] 남편 정원대원군도 원종으로 추존된다.[5] 완양은 전주의 별칭인 완산에서 따왔다.[6] 용성은 용담의 별칭이다. 용담은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