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26 19:38:02

부대부인

황실왕실의 구성원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2em; word-break:keep-all"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태상황
태상왕
태상황후
태상왕비
태황태후
대왕대비
상황
상왕
상황후
상왕비
황태후
왕대비
대원왕
대원군
대원비
부대부인
국구
부원군
국태부인
부부인
황제
국왕
황후
왕비
여제
여왕
국서
후궁 남총
황태제
왕세제
황태자비
왕세자빈
황태녀
왕세녀
부마
의빈
태자
황태자
왕세자
원자
황태손
왕세손
원손
황제(皇弟)
왕제
친왕비
왕자비
장공주
황자
왕자
황녀
왕녀
친왕
대군
공주
옹주
군왕
군왕비
군부인
군주
현주
프린스 프린세스 프린스 }}}}}}}}}
부대부인 관련 틀
[ 펼치기 · 접기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4a122d, #6d1b43 20%, #6d1b43 80%, #4a122d); color: #ffd400; min-height: 3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rowcolor=#ffd400> 정희왕후 모친 수양대군 부인 월산대군 부인
흥녕부대부인 낙랑부대부인 승평부대부인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4a122d, #6d1b43 20%, #6d1b43 80%, #4a122d); color: #ffd400; min-height: 3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rowcolor=#ffd400> 선조 모친 철종 적모 철종 생모 고종 모친
하동부대부인 완양부대부인 용성부대부인 여흥부대부인
}}}}}}}}}


1. 개요2. 임금의 생가 모친인 부대부인

[clearfix]

1. 개요

府大夫人

조선시대외명부 봉작. 품계는 정1품이다. 《경국대전》이나 《대전회통》같은 법전에 공식적으로 규정되어있지 않아 정확한 수여 기준은 알 수 없다.

작호는 받는 사람의 본관을 따서 짓는 게 기본이나 예외도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조선 초기에는 정희왕후의 어머니 흥녕부대부인 이씨[1], 수양대군(세조) 부인 시절의 낙랑부대부인 윤씨(정희왕후)[2]#, 그리고 월산대군의 부인 승평부대부인 박씨[3]가 이 작호를 받은 것으로 나온다.

철종 때부터 대원군부인, 즉 방계로 즉위한 임금의 친어머니를 일컫는 작호로 확립되었다. 그 전까지 대원군 부인은 외명부 최고 품계인 정1품 부부인으로 봉작받았다. 그러나 영조 때 처음으로 '왕의 생모'라는 의미로 조정에서 언급했고, 이후 방계인 철종이 즉위한 후 자신의 어머니를 정식으로 부대부인으로 추봉하면서 의미를 굳힌 것이다.

부대부인을 격상한 칭호는 '대원비(大院妃)'로, 대한제국여흥부대부인 민씨를 추존할 때 쓰였다.

2. 임금의 생가 모친인 부대부인

  • 연주부부인 구씨: 1578 ~ 1626. 본관은 능성. 인조의 생모. 남편은 정원대원군. 살아 생전 아들이 왕이 되는 것을 직접 보았다. 인조 즉위 전에는 연주군부인이었다가 1623년(인조 즉위년) 인조반정 직후 남편이 대원군이 되면서 연주부부인이 되었다. 저 때는 부대부인이 대원군 부인의 호칭이 아니었으며 또한 그가 사망한 뒤인 1632년(인조 10년)에 인헌왕후추존되면서[4] 부대부인으로 불린 적이 한 번도 없다.
  • 완양부대부인 최씨: 1804 ~ 1840. 본관은 전주[5]. 철종의 적모. 남편은 전계대원군. 부대부인 중에서는 유일하게 임금의 생모가 아니다. 다른 방계 종친 출신 왕들은 다 대원군의 정실 소생이지만, 철종만 소실 소생이기 때문. 그래도 대원군의 정실부인이라서 부대부인으로 추증되었다. 생전에는 남편이 봉군되지 못해서 그 역시 작호가 없었다. 친자식은 회평군 이명인데 1844년(헌종 10년) 민진용의 옥사에 휘말려 사사당했다.
  • 용성부대부인 염씨: 1793 ~ 1834. 본관은 용담[6]. 철종의 생모. 남편은 전계대원군. 부대부인 중에서는 유일하게 정실부인이 아니다. 그래도 왕의 친어머니라서 부대부인으로 추증되었다. 생전에는 남편이 봉군되지 못해서 그 역시 작호가 없었다.
  • 여흥부대부인 민씨: 1818 ~ 1898. 본관은 여흥. 고종의 생모. 남편은 흥선대원군. 살아 생전 부대부인이 된 유일한 인물. 고종 즉위 전에는 현부인이었다. 대한제국이 수립되자 대원비로 승격 추존되기도. 그래서 최종 시호는 '여흥순목대원비(驪興純穆大院妃)'이다. 만약 대한제국이 망하지 않고 계속 이어졌으면 대원비의 칭호를 받는 사람이 더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망하는 바람에 유일한 대원비가 되었다.

[1] 興寧府大夫人 李氏. 본관은 인천. 흥녕은 인천의 별호였다.[2] 樂浪府大夫人 尹氏[3] 昇平府大夫人 朴氏. 본관은 순천. 승평은 순천의 옛 이름이다.[4] 남편 정원대원군도 원종으로 추존된다.[5] 완양은 전주의 별칭인 완산에서 따왔다.[6] 용성은 용담의 별칭이다. 용담은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을 가리킨다.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177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177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