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1 19:16:40

1987(영화)/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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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장인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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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프롤로그3. 본편4. 에필로그5. 엔딩 크레딧

1. 개요

영화 1987의 줄거리를 정리한 문서.

2. 프롤로그

시곗바늘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고, 시곗바늘 소리가 멈추자 Badenweiler Marsch가 울리며 대한뉴스(=땡전뉴스)가 시작된다.[1] 전두환 대통령이 신년을 맞아 박처원 대공수사처장 등등 치안본부의 인물들을 치하하는 장면이 나오고, 운동권들을 간첩과 연계되었다고 말하면서 '온 국민이 북한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내용이 나오고 장면이 전환된다.

3. 본편

1987년 1월 14일, 임진각 망향단에서 박처원 대공수사처장(김윤석)이 가족사진을 놓고 그 앞에 훈장을 놓고 제사를 치른다. 그는 1950년 평안남도 용강군[2]에서 월남한 실향민이기 때문에 임진각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3] 어투에도 평안도 사투리가 그대로 남아 있다.[4] 제사가 마무리되는 즈음 박처원의 부하 유정방에게 전화가 온다.

같은 날 오후 12시 30분, 구급차 1대남영역을 스치듯이 지나가고[5], 빠른 속도로 골목길을 달린다. 구급차 안에는 중앙대학교 용산병원 의사 오연상과 간호사 1명, 경찰 2명이 창문을 커튼으로 가리고 급하게 이동 중이었다. 경찰 1명이 무전기로 정문 개방이라 외치고 오연상이 호기심으로 커튼을 걷으려고 하자, 다른 1명이 험하게 제지한다. 급하게 달리는 구급차의 목적지는 남영동 대공분실이었다.[6] 대공분실 안에서는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언어학과 3학년 박종철(여진구)이 쓰러져 있었고 경찰들이 긴박하게 심폐소생술을 하는 중이었다. 고문을 당하던 박종철이 사망한 상황이었으며, 급히 오연상 교수가 달려와서 이미 사망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걸 들은 경찰들 중 조한경(박희순)은 소생시켜달라는 요구를 해서 가슴에 묻은 물기를 닦아 내고 강심제를 주사한다.

망향단에서 제사가 마무리될 즈음, 박처원에게 '남영동 대공분실에 문제가 생겼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곧바로 제사를 마치고 박처원은 남영동 대공분실로 이동하고, 오연상 교수는 심폐소생술을 하며 살려보려 했으나, 이미 소생은 불가능했다. 박종철의 시신은 옮겨지고 마침 박처원이 상황을 파악하러 도착한다. 오연상 교수와 간호사는 급히 건물을 나와서 병원으로 복귀한다.

대공분실에서는 의사가 목격자가 되었다며 질책하지만, 박처원은 별 일 아니라는 듯이 점심을 먹으라며 경찰들을 보낸다. 박종철의 시신을 화장하라는 취지로[7] 명령한 후, 으리으리한 요정에서 안기부장 부장(문성근)과 양주(로얄 살루트 21년)를 나눠 마시며 '재야인사 김정남(설경구)을 미끼로 삼아 김영삼, 김대중 등의 거물 정치인들을 단칼에 격멸하겠다'고 선언한다.[8]

같은 시각, 화염병을 제조하다 체포된 한 대학생을 갈구며 박처원과 똑같은 양주[9] 힙 플라스크에 담아 짜장면과 함께 먹방을 찍으려던 최환 검사(하정우)에게, 공안경찰들이 찾아오더니 "이런 거 드시지 마시고 저희랑 같이 가시죠. 좋은 곳으로 모시겠습니다."라며 아부했고, 환은 뭔가를 기대했던 듯 어디 갈 거냐고 반색한다. 그러자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 서류 한 장을 내밀고 도장 하나만 찍어달라고 한다. 이에 그는 '웬일로 공짜술을 얻어먹나 했다'며 실망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서류를 확인하기 시작한다.

서류는 치안본부에서 작성한 대학생 박종철 군의 사망경위서와 화장동의서.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죽은 지 8시간밖에 안 지났는데 부검은 고사하고 장례도 치르지 않고 화장부터 하겠다는 것. 박 계장과 윤 반장은 부산 영도 경찰서에서 부친 동의서를 받았다고 하지만 세상 천지의 어느 부모가 자식이 죽었다는데 비인간적으로 마지막 얼굴도 안 보고 화장을 하라고 하겠는가. 당연히 환은 구라도 적당히 치라며 믿지 않았다. 이에 박 계장은 대공업무이니 따지지 말고 도장이나 찍으라며 강압적으로 말했지만 이에 더더욱 분노한 그는 박 계장을 밖으로 쫓아냈고 남은 윤 반장이 "왜 이러세요, 영감님![10] 저희 한 번만 살려 주세요!" 하는 식으로 애걸복걸한다.

도장을 못 찍겠다고 하자 온갖 라인을 통해 압박을 넣는 공안당국의 태도에 진노한 최환 검사는, 전화기를 깨부수고[11] 시신을 화장하는 대신 시신보존명령서를 발부해 버린 다음,[12] 사방에서 '이 말 안 통하는 꼴통 새끼 잡아들이라'고 난리가 난 가운데 목욕탕으로 잠적한다. 그리고 아랫기수이자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이홍규 검사[13]를 불러내어 '쥐약 좀 놔야겠다(언론에 정보를 흘리라)'고 부탁한다.[14]

다음 날 새벽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테니스를 치고 있던 박처원은 최 검사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보고를 받고 어이없어 하며 "그 새끼 빨갱이 새끼네?"라면서 화를 낸다. 공비들 막으라고 임명한게 공안부장인데 자기네들 관점으로는 공안부장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니 빨갱이처럼 보인것. 결국 박처원은 현장에 있던 전화기로 "서울중앙지검장 연결하라."며 서울중앙지검에 연락해 공안부장을 잡으라고 한다. 해가 밝은 후 서울중앙지검장이 서울지방검찰청에 출근하고, 최환을 수사관들을 풀어서 잡으라고 한다. 그러나 등잔 밑이 어둡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최환 검사는 지검장실에 몰래 숨어들어 하룻밤을 보냈고, 출근한 지검장은 사색이 되어 최환 검사를 다그친다.
지검장: 사람 봐 가면서 객기 좀 부리세요. 이때까지 박 처장한테 대들어가지고 살아난 놈을 못 봤어, 내가! 응?
최환: 아, 부천서 성고문 사건 때요, 그 때 그 자식들이 하자는 대로 기소유예 했다가 우리만 똥을 뒤집어썼습니다. 이번 일은 법대로 하시죠.
지검장: 이거 좀 보세요. 길거리 다니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사돈에 8촌까지 다 뒤져봐. 월북자 한 사람쯤은 다 나오게 돼 있어요. 이 남영동 무서운 줄을 몰라.
최환: 이게요, 정황상 고문치사가 확실해요.
(중략)
지검장: 아, 이 꼴통 새끼 진짜... 아, 몰라 난. 쯧쯧쯧.
최환: 뭐, 그거 좋겠네. 선배님께선 그냥 '꼴통(최환 검사 본인)이 땡깡 부린다'고 그렇게 혀만 끌끌 차십시오. 제가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제가 다.[15]
한편, 이홍규 검사는 최환 검사의 부탁대로 중앙일보신성호 기자(이신성)를 만나 "경찰들 큰일났다. 서울대생이라며?" 라며 은근슬쩍 정보를 흘렸다. 신 기자는 사실 아는 게 없었지만 기자의 촉으로 금세 무언가 엄청난 일이란걸 눈치채고는 "그러게 말입니다, 참…"이라며 맞장구를 치며 정보를 캐냈고 곧바로 밖으로 나가서 중앙일보에 전화를 걸어 기사를 내는데 성공한다.[16]

한편, 부산에 살고 있던 박종철 군의 모친 정차순(김혜정)과 누나 박은숙(정혜진)은 경찰의 연락을 받고 급히 서울 한양대학병원으로 왔다. 우리 아들이 왜 병원에 와 있냐는 정차순의 질문에, 경찰들은 조금 다쳤다고 얼버무리면서 모녀를 영안실로 데려갔다. 정차순은 "왜, 나를 영안실로 데려오노?"라며 형사들에게 화를 내고 먼저 와 있던 남편(박종철 군 부친) 박정기(김종수)와 큰아들 박종부(조상웅)가 넋이 나가 주저앉아 있는 것을 보고 어리둥절해한다. 정차순은 남편에게 다가가 작은아들 박종철부터 찾는데, 갑자기 어딘가를 보던 박은숙이 남동생의 이름을 부르며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그 말에 고개를 들었다가 병풍과 함께 박종철의 영정사진을 발견한 정차순. 그제야 작은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엄청난 충격을 받아 오열한다.

1987년 1월 15일 오후 3시 서울지검 출입 기자실, 윤상삼 기자(이희준)를 비롯한 여러명의 기자들은 고참 선배가 올 때까지 주문한 국밥을 맛있게 먹어가며 쉬고 있었다. 한 기자가 마침 출근한 고참 선배에게 "어제 윤 기자가 운동권 대학생 5명 구속이라는 주제로 기사를 썼는데 글발이 일취월장."이라며 윤 기자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 말에 자존심 상한 고참 선배가 그래봤자 뭐하냐, 보도지침대로 안하면 끌려간다며 말을 차갑게 해버리자 윤상삼 기자가 국밥을 먹다 말고 대신 "형, 왜그래? 아 참, 형은 아직도 형수님이랑 각방 써?" 라면서 차갑던 분위기를 단박에 화기애애하게 바꾼다.

이후, 또 신문배달원이 "여기, 신문이요." 하면서 중앙일보 신문 한 뭉텅이를 가져오고 다른 기자들이 "어디, 받아쓰기 잘 했나?" 하면서 신문을 펼치려 하는데 갑자기 기자실의 모든 전화가 동시다발적으로 울린다. 단박에 뭔가 심상찮은 기사가 나왔음을 직감한 그들은 서둘러 신문을 살폈다. 윤상삼 기자는 그때까지 멀뚱멀뚱 있다가 맨 마지막에 신문을 뒤지기 시작했는데 한 단편 기사에서 그의 시선이 멈춘다. 바로 경찰조사 받던 언어학과 서울대생 사망이라는 내용의 단편 기사였다. 이 기사는 흟어서 보면 잘 읽혀지지도 않을 구석에 써져 있었다. 중앙일보에서도 이걸 한 면에 내면 바로 잡혀들어갈 거라는 것을 알고 일부러 그렇게 기사를 배치한 것. 하지만 이렇게 기사를 배치했어도 그걸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본 보안사 군인들에게는 한 방에 걸려들고 만다.

이후 신성호 기자 역시 편집국장(오달수)에게 전화를 걸어서 기사 봤는데 서울대생 인적사항 어떻게 알아냈냐고 하지만 그 시각, 중앙일보는 보도지침을 어겼단 이유로 들이닥친 보안사 군인들 때문에 쑥대밭이 되어있었고 그는 전화에 대고 당장 어디 여관방으로라도 도망가서 피하지 않으면 군인들에게 잡히는 것도 아니고 그 자리에서 맞아죽는다며 도망치라고 했다. 이 말을 끝으로 그는 군인에게 잡혔고, 신 기자 역시 공중전화 박스 안에서 바로 앞쪽의 도로에 군인들이 타고 있는 지프차와 트럭들이 정차한 것을 보고 수화기를 팽개쳐놓고는 급히 피신한다.

중앙일보의 단편 기사로 인해 사회에 큰 파문이 일자, 안기부와 치안본부에선 이 일로 자기네들의 모가지가 날아갈지도 모른다는 걸 예상하곤,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기자회견을 열었다. 치안본부장은 "제가 경찰에 명예를 걸고 말씀드리지만 가혹 행위는 일절 없었습니다."라고 말하고 어쩌다 죽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박처원이 준 서류를 보며 사인을 읊으려다가 하도 어이가 없어서 "그게... 조사관이 책상... 그러니까 책상을..." 하면서 말을 잇지 못하자, 옆에 있던 박처원이 직접 "거 학생이 겁이 잔뜩 질려가지고 조사관이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어? ...쓰러졌답니다."고 말했다.[17] 이때 박처원이 기자들에게 '이만하면 적당히 알아들어라'고 보이는 눈빛이 일품이다. 하지만 기자들은 치안본부장이 나온 치안본부의 언론브리핑임에도 불구하고 사인 자체가 말이 안 되는데다, 이걸 말하는 박처원의 설명도 어색해서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팔팔한 청년이 심장쇼크사로 쉽게 죽었다고요?"라며 믿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강민창은 목격자였던 중앙대학교병원 의사 오연상의 이름까지 말해버렸고 당황해서 그냥 얼버무리려고 했으나, 동아일보의 윤상삼 기자가 계속해서 캐묻자 유도신문에 넘어가 결국 원래 자신들이 말하려던 다른 의사 이름을 빼놓고 오연상이라고 진짜 의사 이름을 말하게 된다. 이에 윤상삼 기자를 포함한 기자들은 그 즉시 오연상 교수를 찾아 죄다 뛰쳐나가고, 순식간에 텅 빈 치안총감실에는 강민창과 박처원 등만 남는다. 강민창이 "내 또 실수했는 기제(나 또 실수한 거지)?"며 당황하자, 박처원은 말없이 전화 수화기를 들고 사건 은폐를 위해 공안경찰들에게 지시를 내린다.

진료 중에 물밀듯이 밀려온 기자들에게 폭풍 같은 카메라 세례와 질문 세례를 받은 오연상 교수는 자세한 대답을 요구받자, '물기가 있었다'는 등 거짓말 속에 조금씩 의도치 않은 진실을 발설하게 된다. 거짓은 디테일이 없다. 그러나 박처원이 그 직전에 보낸 공안경찰들이 입단속을 시키는 바람에 기자들은 별다른 정보를 얻지 못한다.[18] 기자들은 허탈하게 빠져나가지만 공안경찰의 감시를 눈치챈 윤상삼 기자는 꾀를 내어, 화장실에 숨어 오연상 교수가 화장실에 들르기를 기다린다.

같은 시각, 최환 역시 부검을 위해 한양대학교병원에 와 있었지만 부검실 앞은 공안경찰들이 점거하고 있는 상황. 검사 한 명이 검사 직위를 들먹이며 이들을 저지하려고 했지만, 공안경찰 한 명이 삐딱한 자세로 "아이고, 검사님. 어찌라고요?"하고 비꼬며 하체로(...) 검사를 밀어내는 만행을 저지른다. 당시 경찰의 힘이 검찰보다 얼마나 강했던 것인지 드러내는 장면이다. 법도 질서도 없는 그들의 막장행각에 서서히 눈이 뒤집어지려던 그때, 뒤에서 박종철의 누나 박은숙이 달려오다가 공안경찰에게 머리채가 잡혀 끌려가기 시작했다.

끌려가는 박은숙을 따라간 최환은 기막힌 상황을 목격한다. 그곳에는 박종철의 유가족이 몰려와 있었고, 정차순은 '아들의 손이라도 잡게 해달라'며 무릎까지 꿇었지만 경찰들은 그들을 강제로 끌고 가 차에 태워버린다. 이 모습과 여전히 부검실 앞을 점거하고 해볼 테면 해보라는 식으로 검사들과 부검의들을 비웃고 있는 공안경찰들을 번갈아 보던 최환은, 결국 쌓여 있던 분노가 폭발하고 말았다.

그는 당장 박처원에게 전화를 해서 부검을 막고 있는 공안경찰들 안 치우면 공무집행방해죄로 감옥에 보낸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하지만 박처원은 박종철 사건은 이미 부서끼리 정리된 일이니 부검 따위 때려치우라며 눈 하나 깜빡 않았다. 최환 또한 아예 반말로 응수하며 그를 도발한다.
최환: 여기가 한양대 병원인데요, 당신네 부하들이 아주 정당한 공무집행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박처원: 거 기관들끼리 진작에 다 정리한 거야. 부검일랑 날래 걷어 치우라우.
최환: 하... 아저씨 나 알아? 얻다 대고 반말이지?
박처원: 내래 대공처장이야.
최환: 뭐, 씨발 대공은 법이고 나발이고 뭐 안 지켜도 된다 이거야? 검찰 수사관들 싹 다 불러서 깽판 한 번 쳐볼까? 어?
박처원: 뭐이 어드래?
최환: 지금 당장 형사소송법 펼쳐서, 수사지휘권이 누구한테 있는지 확인해 봐. 그리고 그 사투리 좀 고치지? 김일성이네? 에에?
이에 도발된 박처원[19]은 급히 남영동을 나서는데 사실 최환 검사는 남영동 앞에서 전화하여 불러낸 것이었다. 박처원이 탄 를 가로막고 앞유리에다 씹던 껌을 뱉는 건 덤 부검명령서를 내밀지만, 박처원은 부검명령서를 찢어버린다. 그러자 최환 검사는 품에서 잡지를 꺼내며[20]

"먼 친척[21] 중에 하나가 뉴스위크지 기자와 국제결혼을 했는데, 요즘 핫한 뉴스 없냐고 나를 들들 볶더라고. 88 올림픽에 문제 생기면 대통령 각하께서 불편해 하실 건데?" 라며 협박하고 박 처장은 성가셔 죽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말해보라고 묻는다. 최환이 "그딴 건 모르겠고 내 일만 하면 된다."라고 받아치자 박 처장은 달라지는 건 없으니 맘대로 해보라며 돌아서고, 최환은 그 뒤에 대고 시체 부검 진행한다며 소리친다. 박 처장은 걸어가며 "내래 니 모가지 땄어야.(이미 옷 벗긴 거나 마찬가지다.) 똥개니까 똥이나 먹고 살라우."라며 오히려 최환 검사를 비웃는다. 최환 검사는 부검은 가능할지 몰라도 자신의 직위는 박처원과 그 등 뒤의 권력에 의해 박탈당하게 될 것임을 직감했지만, "앞으로 소주 먹고 살지, 뭐."라며 쿨하게 애용하던 힙 플라스크를 버리고 떠나간다.[22]
최환: 잠깐!
(대공수사과와 검찰 측에서 동시에 총을 꺼낸다.)
최환: 5촌 당숙 처고모 셋째딸, 그 딸이 여기 기자랑 국제 결혼을 했거든요. 피터 핸더슨인지 뭐시깽인지 아무튼 이 자식이 나한테 쌈박한 정보없냐고 요즘 나를 하도 들들 볶아서 말이야. 하.. 거 88올림픽에 문제 생기면 대통령 각하께서 굉장히 불편해 하실테고, 어떡하실 거에요?
박처원: 말해보라우, 내래 진짜 원하는게 뭐이간?
최환: 하, 씨발 난 그런건 모르겠고, 내 일만 하면 끝입니다.
박처원: 기래, 마음껏 물어 뜯어보라. 기칸다고 달라지는 건 없으니깨이.
유 반장: 철수해.
(대공수사과와 검찰 측이 돌아간다.)
최환: (능청스러운 말투로)부검합니다.
박처원: 내래 니 모가지 땄어야. 똥개니끼리 똥이나 먹고살라우.
최환: 공구리에 내 대가리만 깨졌네, 뭐 소주 먹고 살지 뭐.
마침내 박종철의 부검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황적준 박사에 의해 실시되고, 삼촌인 박월길(조우진)이 박종철의 부모님, 형, 누나 대신 부검을 참관한다. 오연상 교수는 화장실에 향하고, 화장실에 숨어있던 윤상삼 기자는 너무 오래 숨어 있어서 다리가 저려 제대로 서지 못했다고 하고, 오연상 교수에게 질문한다. 다행히 공안경찰은 화장실까지 따라와 감시하진 않았고, 오연상 교수는 두려움을 이기고 밖에 있는 경찰관이 듣지 못하도록 세면대의 물을 틀어놓은 상태에서 자신이 본 것을 윤상삼 기자에게 말해 준다. 바닥에 물이 홍건했고, 젖어있는 시체 내부의 폐에선 수포음이 들렸다는 증언은 곧 물고문에 의한 사망임을 가리키는 말과 다름없었다.[23]

부검의와 부검담당검사의 대화를 듣고 조카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된 박월길은, 한양대학교병원 앞에서 진을 치고 있던 기자들에게 "경찰이 죽였습니다! 쇼크사 아니고, 경찰이 죽였습니다!"라고 있는 힘껏 외쳤고 경찰들은 그를 강제로 안으로 밀어넣었다. 이때 이미 오연상 교수의 증언을 확보했던 윤상삼 기자는 "물고문이 있었지요?!"라고 캐묻다가 조한경에게 죽빵을 얻어맞고 팔을 다치는 변을 당한다.[24]

남영동에서는, 사건 수습을 위해 박종철을 고문한 공안경찰인 조한경과 강진규에게 감사과에 가서 감사를 받으라고 한다. 조한경은 시키는 대로 한 것뿐인 내가 왜 책임을 져야 하느냐고 항의하지만, 박처원은 묵직한 압박으로 그에게 "다녀오라우."라며 명령한다.

윤상삼 기자는 동아일보 본사로 돌아와 이 사실을 기사로 내보낼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동아일보 편집국장(고창석)은 갈등 끝에 사건을 기사로 내보내기로 결정한다. 이 와중에 보도지침은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에 편집국장은 보도지침을 적어놓은 칠판을 지우개로 싹 다 지워버리며 "경찰이 고문해서 대학생이 죽었는데, 씨발! 보도지침이 대수야! 앞뒤 재지 말고 들이받아!"라 일갈한다.

이후 강민창 치안본부장이 황적준 박사를 부르고, 황 박사가 '물고문 중 경부 압박으로 인한 질식사'라는 부검 소견을 말하자, 청와대 표시가 된 봉투를 쥐어주며 쇼크사로 처리해달라고 한다. 하지만 황적준 박사는 끝내 그 제안을 거절하고, 강민창 치안본부장은 나가는 황 박사의 뒤에 대고 '부검결과서에 진실을 써도 발표는 쇼크사로 할 것'이라고 윽박을 지른다.

황적준 박사가 치안본부실에서 나가고, 다음날 아침 그 자리에서 기자회견이 벌어지며 쇼크사로 발표된다. 박종철의 시신은 화장터에서 화장되었고, 이를 보고 있던 모친 정차순은 오열하다 기절하여 급히 업혀서 버스 안에 태워졌다. 당연히 화장터에는 기자들이 몰려와 있었지만 미리 진을 치고 있던 전경들이 사진을 못 찍게 방패를 높게 들어올렸다. 이 와중에 윤상삼 기자는 땅바닥에 엎드려 방패 아래로 박종철 유족들이 탄 차량번호를 잠깐 보는데 성공한다.

임진강으로 가는 길, 기자들은 유족들이 탄 차와 경찰이 준비한 가짜 차들을 따라갔다. 윤상삼 기자가 탄 차는 카메라를 이용해 번호를 멀리서 확인하고 뒤따라서 유해를 뿌리는 강가에 도착했다.[25] 하지만 그곳에서 유족들을 감시하고 있던 경찰들은 기자들 접근을 모두 막았고 급기야 카메라를 던져버리며 취재를 방해했다.

그러는 사이 박종부는 남동생의 유해를 뿌리고 있었고 그 뒤에서 아들의 사진을 들고 보고있던 박정기는 얼어붙은 강 위에 들러붙는 아들의 유해를 보고 그제서야 서럽게 울부짖으며 강가로 걸어들어가 아들을 강물에 흘려보낸다.
와 못 가고 있노, 우리 철이... 내 새끼 와 못 가노...! 철아! 와 못 가고 이라고 있노... 잘 가그래이... 철아...! 철아...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대이, 철아...[26]

이후 윤상삼 기자는 최환 검사를 만나러 서울지검으로 찾아오지만 정문에서 제지당하고, 검사직을 그만두려 자기 사무실에서 짐싸고 있던 최환 검사는 창문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며 "똥개 한 마리 추가요."라고 말하고 검사실을 나선다.[27] 이후 자기에게 따라붙는 윤 기자에게 최환 검사는 능청스럽게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면서 윤 기자를 외면하고, 분노한 윤 기자는 "당신 부끄러운 줄 알아!"라고 일갈하지만, 최환 검사는 "그래! 군인들 똥꼬 좀 핥아주고 출세할란다."면서 를 몰고 가 버린다.

그런데 최환 검사가 떠난 자리에는 일부러 남겨놓은 그의 짐 박스가 그대로 있었고, 그 맨 위에 부검결과서를 발견한 윤 기자는 급히 품속에 숨긴 후 동아일보 본사로 향한다.[28] 이 모습을 최환 검사는 "받아쓰기나 잘해, 이 새끼야."라고 속삭이며 바라본다.[29]

'물고문으로 (서울대생) 사망'이라는 기사를 본 박처원은 대노하여 신문을 집어 던져버린 다음, 급히 자리를 뜬다. 과실치사로 감사과에 조사받으러 가야 할 그들이, 일이 틀려서 다른 곳에 가게 된 것을 눈치챈 것.

조한경과 강진규 등이 간 곳은 감사과가 아닌 신길동 특수수사2대 분실이었다.[30] 그들은 오히려 특수수사대원들[31]에게 끌려가 고문을 받게 되었던 것.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 박처원은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 고문을 중단시킨다. 상사가 나타나 뭐하는 짓이냐고 하자마자, 박처원은 혼자 상사를 어느 방에 끌고 가 폭행한다. 상사는 맞으면서도 박처원에게 으름장을 놓지만, 박처원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는다.
상사: 이 새끼가... 명령 불복종에, 상관을 폭행...!(박처원에게 얻어맞는다.)
박처원: 경찰이면 다 같은 경찰인 줄 아네? 니들이 뽀찌(뇌물) 뜯어서 이밥에 괴깃국 먹을 때, 내래 칼 맞아가면서 빨갱이 잡아댔어.[32] 나 아니었으면 이 나라... 김일성이한테 멕혔을 거야, 이 새끼들아! 알갔어!?
상사: 너 이 새끼, 실수하는 거야. 감히 각하 명령을...(또 얻어맞는다.)
박처원: 똑똑히 새기라우. 내래 빨갱이 잡는 거 방해하는 간나들은, 무조건 빨갱이로 간주하갔어![33]
그러나 박처원도 조한경과 강진규 등을 감옥에서 꺼내줄 수는 없었다. 대신 박처원은 "며칠 지나면 고문치사를 과실치사로 바꿔주겠다. 잠시만 감옥에 있으라."고 달랜다.[34] 불안감과 억울함에 사로잡힌 조한경과 강진규는, 각각 미친 사람처럼 고개를 흔들고 박수를 치며 목청껏 찬송가를 고래고래 부르거나[35] 밤새 질질 짜는 등의 추태를 부린다. 사람을 죽여놓고서 자기 인생 틀어지는 건 싫었나 보다.

그들의 소란을 묵묵히 듣고 있던 교도관 한병용(유해진)은, (하필이면 같은 교도소에 있던) 동아일보 해직기자 이부영(김의성)에게 그들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범인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알고 보면, 한병용 교도관은 교도소 안의 이부영과 에 숨어 있던 재야인사 김정남을 연결하는 속칭 '비둘기'였던 것.

이후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그는 연세대학교 87학번 신입생이 된 조카 연희에게 대학합격 선물이라며 마이마이를 건네주었고 그 다음 잡지(이부영의 메시지가 담긴 잡지 <TV가이드>)를 꺼내 보여주며 운을 뗀다. 그러자 마이마이를 보고 뛸 듯이 좋아했던 그녀의 얼굴은 구겨지며 "또, 그 아저씨(김정남) 만나라고?"라며 질색했다.[36] 그러자 병용은 자신은 생긴 게 험악해서 길을 걸을 때마다 검문에 걸린다며 계속 사정을 했고 연희가 들어주지 않자 마이마이를 다시 가져가려 한다. 하지만 연희가 이를 막으며 결국 해주겠다고 한다.

집을 나와 헤드폰을 끼고 길을 걷던 연희는 백골단과 전경 한 무리가 불심검문을 하는 거리를 지나게 된다. 연희는 그냥 땅바닥만 쳐다보며 덤덤하게 그 곁을 스쳐가는데, 고압적인 자세로 행인들을 붙들어 세우던 백골단들은 그녀 보고선 휘파람을 불며 장난을 치지만 딱히 수상하게 여기진 않고 그냥 통과 시켜준다.

걷고 걸어서 어느 사찰에 도착한 연희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함세웅 아우구스티노 신부(이화룡)와 대화를 나누던 김정남을 만나 삼촌이 말한 잡지를 대신 전해준다.[37]

한편, 동아일보가 낸 신문기사의 여파로 인해 사회에 각종 시위가 일어나기 시작했고 1987년 3월 3일. 미도파백화점이 있는 명동에서도 시위가 일어나고 있었다.[38] 이날 친구 정미와 미팅을 하기 위해 한껏 멋내고 나온 연희는, 시위현장을 보자 기분이 나빠져 빨리 자리를 뜨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엄청난 굉음과 함께 거리에는 최루탄이 난사되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백골단이 튀어나와 시민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친구 정미와 흩어져 이리저리 도망다니던 연희도 백골단원에게 머리채가 잡혀 끌려가려던 찰나, 어디선가 마스크를 쓴 남자가 튀어나와 단원을 밀쳐낸 후 급히 연희를 데리고 건물 사이 샛길로 도망다니기 시작했다.[39]

하지만 이내 다시 제자리, 바로 그때 근처 신발가게를 하던 한 아주머니(황정민)가 급히 두 사람을 자기네 가게 안으로 피신시켰고 백골단원들이 달려오자 재빨리 가게 셔터를 닫아버렸다. 연희는 최루탄을 맞은 얼굴을 비벼대며 시위 때문에 미팅 약속이 날아간 것을 속상해했고, 멀리서 이를 보고 있던 남자는 복면을 벗으며 "손으로 만지면 더 따가워요. 세수하세요."라고 한다.[40] 한참 후, 가게 앞이 잠잠해지자 다시 나온 두 사람. 연희는 남자에게 신발 한 쪽이 없다고 알려줬다. 남자는 괜찮다고 했지만 아주머니는 그 꼴로 나가면 잡혀간다고 새 운동화 한 켤레를 건네주며 '원래 8,000원인데 5,000원만 받겠다'고 했다. 하지만 남자는 돈이 없다면서 난감해했고, 옆에서 보고 있던 연희는 자신이 내준다. 남자는 한사코 괜찮다며 거부했지만 아주머니는 놔두라면서 연희의 돈을 받아갔다. 그녀가 돈을 대신 내준 건 구해준 보답을 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연희의 얼굴을 보던 남자는 그대로 시선이 멈춰버렸고, 이어 아주머니 역시 쿡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아무말없이 계산대로 가셨다. 어리둥절해하던 연희는 곧 가게 안 거울을 보게 되는데 깜짝 놀랐다. 최루탄과 백골단원과의 추격전 때문에 화장이 번지고 머리카락도 헝클어져 몰골이 엉망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제야 자신의 몰골을 알게 된 연희는 황급히 아까 숨어 있던 방으로 도망쳐버린다.

한편, 공안경찰들이 갇힌 교도소의 보안계장인 안유(최광일)는 수감되어 있던 공안경찰 강진규가 가족 면회를 하게 되자 대화 내용을 기록하기 위해 동석한다. 면회에는 강진규의 부모, 그리고 갓난아기를 업은 그의 아내까지 모두 참석했다. 아내와 모친은 눈물만 삼켰고 아버지는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사람을 죽이냐며 아들을 꾸짖었다. 하지만 강진규는 훌쩍거리는 목소리로 자신은 그냥 다리만 잡았으며 죽인 사람들은 따로 있다고 한다.[41]

그러나 이 말을 하기가 무섭게 공안경찰들이 난입해 강진규와 가족들을 끌어냈다. 안유는 면회규정을 준수해달라며 요구했지만 그들은 안유가 적은 대화내용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며 "이딴 거 한 번만 더 쓰면 교도소 통째로 폭파해버린다."고 협박한다. 같은 날 저녁, 대화록을 하나하나 붙이고 있던[42] 안유에게 동아일보 해직기자 이부영이 면담을 신청한다. 이부영은 '혹시 알게 된 게 있다면 알려 달라'고 요청하지만, 안유는 '공무원은 직무상 얻은 비밀을 누설할 수 없다'며 차갑게 거부한다.[43]

안유가 겪게 되는 폭력은 그것 뿐만 아니었다. 얼마 뒤, 박처원이 교도소를 찾아온 것이다. 안기부의 장 부장을 만나 고문치사를 과실치사로 바꿔달라고 부탁했다가 김정남 사건이나 빨리 조작하라고 면박을 당한 박처원은 수습이 불가능함을 직감, 휘하경찰인 조한경과 강진규를 찾아와, 두 사람에게 각각 1억 원이 든 통장을 내밀며 입을 다물 것을 명령한다.[44] 조한경은 '애국자답게 처신하라'는 박처원의 말에 "이 손으로 때려잡은 사람들 비명 소리가 머릿속을 빙빙 돌아요! 우리가... 우리가 애국자입니까?!"고 절규한다.

분노한 박처원은 조한경을 구타한 후, 한 공안경찰의 권총을 뺏어서 조한경에게 겨눈다. 이에 안유는 박처원을 말리려 했으나 다른 공안경찰이 안유에게 총을 겨눈다. 이때까지만 해도 쏘라고 발악하던 조한경이었지만, 박처원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협박을 해댄다.
박처원: (조한경의 머리에 총을 겨누며) 상판데기 구멍 나고 싶네?
조한경: 쏘세요... 쏴!
박처원: (쏘려는 듯하다가) 아니디. 아니야. 네 마누라, 네 아새끼들 임진강에 던져버리갔어. 월북하다 뒈진 걸로 처리하면 그만이디. 해봤으니끼네 알 기야. 내래 네 속이 썩어 문드러지는 꼴, 똑똑히 보갔어.
조한경: 처장님...
박처원: 선택하라우. 애국자야, 월북자야!?
조한경: 받들겠습니다... 받들겠습니다! 받들겠습니다!
조한경은 박처원의 협박에 결국 굴복하고 만다.[45] 이 과정에서 안유는 '교도소에서는 수감자에게 신체적 접촉을 할 수 없으니, 규율을 준수해 달라'고 박처원에게 부탁하다 심한 폭행을 당한다. 더구나 한 공안경찰은 다리를 부둥켜안고 고통스러워하는 안유에게 돈봉투로 얼굴을 치며, "애쓴다. 간수들 회식비."라고 모욕을 가한다.

또 한편, 연세대학교 정문 앞에서 검문하던 전투경찰들에게 운동권으로 의심받아 학번[46]을 대야 했던 연희는 정미에게 투덜거리다가, 교내에서 만화 동아리[47]를 홍보하고 있는 잘생긴 남학생을 다시 만나게 된다.[48] 잘생긴 남학생은 연희와 정미에게 '비디오 상영회가 있는데 오지 않겠냐'고 권유하고, 연희는 살짝 튕겨보지만 정미에게 이끌려 만화사랑 동아리의 상영회에 참석한다. 그곳에서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49]촬영한 영상[50]을 보게 된 연희는, 충격받아 눈물을 흘리며 상영회장을 빠져나간다.[51] 잘생긴 남학생은 걱정스레 연희를 따라와 달래지만, 연희는 절규하며 일어나 가 버린다.
잘생긴 남학생: 나도 처음에는 끝까지 다 못 봤어. 너무 떨리고 무서워서...
연희: 만화 동아리에서 그런 걸 왜 보여줘요? 뭐 어쩌자는 건데요? 총 든 군인들하고 싸울 거예요? 어떻게 싸울 건데? 그러다 또 사람 죽으면... 누가 책임 지냐고요!
그로부터 며칠 뒤인 4월 13일. 김대중과 김영삼을 간첩으로 몰아 박종철 사건을 덮어야만 살 수 있다는 안기부의 장 부장과 통화를 마친 박처원은 휘하에 그간 잡았던 재야 인사들을 일거에 풀어줄 것을 명령한다. 그들을 미끼로 삼아 김정남의 은신처를 알아낼 계획이었던 것이다. 의아해하는 부하들에게 박처원은 이야기 하나를 꺼낸다. 자신이 옛날에 키우던 수캐가 숲으로 자주 도망갔는데, 이를 찾고자 그가 썼던 방식은 암캐들을 여럿 대동하고 숲을 뒤지는 것이었다. 수캐가 암캐를 보고 발정해서 개구멍에서 기어나왔다고. 그날은 전두환4.13 호헌조치를 발표하던 날이었고, 박처원은 이제 안 기어나올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한편 이 호헌조치에 운동권 학생들은 물론이고 시민들도 어이없어 하며, 기자들도 격분하고 변호사로 전업한 최환은 아예 밥을 먹다가 곧바로 소주로 병나발을 분다. 반대로 안유가 근무하는 구치소에서는 뉴스를 보던 교도관들이 '대통령 직선제 하기에는 아직 국민 수준이 안 된다.'며 정부의 결정에 호응한다. 이에 한병용은 한숨을 쉬는데, 이때 안유가 "뭣들 하는 거야, 교대 안 해!?"고 윽박지른 뒤, 왠지 한숨을 쉰다.

호헌조치가 공포되고 박처원은 남영동 대공분실 앞에서 사기가 떨어진 경찰들에게 자기가 총알받이가 되겠다며 사기를 충전시키고 재야 인사들을 추적하여 김정남을 체포하려 한다.

한편 규율을 준수해 달라는 당연한 요구를 폭력으로 돌려받는 등의 사건을 겪은 안유는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고, 씁쓸한 얼굴로 이부영독방으로 부른다. 그는 마지막으로 복구한 대화록을 건네면서, 빈 부분은 기억으로 채웠고 여기까지가 도울 수 있는 한계라고 전한다. 이부영은 그 사실을 정리한 후, 교도관 한병용을 통해 김정남에게 전달하려 한다.

박처원과 공안경찰들은 일부러 잡아 둔 인사를 풀어 주고 그 뒤를 쫓는 방식으로 김정남이 은신해 있던 절의 위치를 알아내고, 검거 직전에 다다른다. 하지만 공을 세우는 데 욕심을 낸 공안경찰이 지원 없이 단독행동을 하는 바람에 실패하고, 도망쳐 나온[52] 김정남은 향림교회(향린교회)로 은신처를 바꾼다. 때마침 이부영의 서신이 적힌 잡지를 전하기 위해 절에 와 있었던 교도관 한병용은 공안경찰을 발견하고는 황급히 도망치지만, 안타깝게도 공안경찰 중 한 명이 그의 얼굴을 본 뒤였다.[53]

황급히 집으로 돌아온 한병용은 연희에게 대신 잡지를 전해줄 것을 부탁하지만, 연희는 노조 운동을 하다가 사람들에게 배신당해 죽었던 아버지 얘기를 꺼내며 외삼촌과 갈등한다.[54] 그리고 그날 밤, 연희네 집에 공안경찰이 들이닥쳐 한병용을 체포해가고, 한병용은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끔찍한 고문을 당한다.[55]

연희는 침울한 상태로 일상을 보내는데, 잘생긴 남학생이 연희네 슈퍼마켓(구멍가게)으로 찾아온다. 그는 '너를 포섭하려고 왔다'며 웃더니, 연희에게 만화사랑의 회지를 1부 내밀며 "너도 우리 동아리에 들어와."라고 권한다. 연희의 친구인 정미도 이미 가입했다면서. 연희는 "시위한다고 세상이 바뀌어요? '그날'[56] 같은 거 오지 않아요."라고 회의한다. 잘생긴 남학생은 "나도 그러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돼. 마음이 너무 아파서. 마음 바뀌면 연락해."라고 답하고는 웃으며 떠나간다.

잘생긴 남학생이 떠난 후, 연희는 만화사랑 회지를 살펴본다. 1면에는 박종철 열사의 영정사진이, 더 넘겨 보니 연희가 백골단을 깔아 뭉개는 캐리커쳐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잘생긴 남학생의 연락처도 같이 적혀 있었다. 연희를 기억하지 못하던 게 아니었던 것.

집 안에 들어간 연희는, 일기를 숨겨두는 자신만의 비밀 장소에서 외삼촌이 남긴 쪽지[57]와 잡지를 발견한다. 그 직후, 연희는 엄마를 통해 외삼촌 한병용이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갔다는 사실을 알고 피의자의 가족들이 단체로 남영동 정문 앞에서 항의하며 전경들과 대치하는 상황 속에서 엄마를 만난 연희는 엄마를 건드린 전경에게 화를 내다가, 백골단에게 납치되듯 승합차에 태워져 끌려가 멀찍이 시골에 버려진다.[58]

빗속에서 신발조차 잃은 채 맨발로 터덜터덜 걸어가 근처 공중전화를 찾은 연희는 고민 끝에 잘생긴 남학생에게 전화를 걸고, 잘생긴 남학생은 우산을 들고[59] 찾아와 연희의 옆에 새 운동화 한 켤레를 놓아주고, 그녀와 함께 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온다.

한편, 심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꿋꿋하게 버티던 한병용에게 박처원이 찾아온다. 박처원은 자신의 어린 시절 가족사진[60]을 보여주면서, 한때 그의 어머니가 거두어 키웠지만 공산주의자가 된 뒤 자신의 가족을 악덕 지주로 몰아 인민군을 데리고 와 가족을 몰살시킨 '동이'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 준다. 동이는 총알이 아깝다면서 박처원의 아버지를 죽창으로 찔러 죽였고, 박처원의 어머니와 누이동생은 인민군의 총에 맞아 죽었다. 그리고 박처원은 '나는 대청마루 아래에 숨어서 이 모든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며 괴로워한다. 그리고 박처원이 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 다른 취조실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가 박처원의 가족들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소리로 변조되어 오버랩된다.
너래... 지옥이 뭔지 알간? 내 식구들이 죽어나가는 판에 손가락 하나 까딱 못 하는 거, 소래기 한 번 못 지르는 거... 고거이 바로 지옥이야.[61]
박처원은 자신의 이야기를 마친 후 자신의 가족사진 위에 연희 모녀의 사진을 포개어 보여주며 그때의 자신과 같은 신세로 만들어주겠다는 듯이 한병용을 협박하고, 강도 높은 고문을 꿋꿋이 버티던 한병용은 결국 굴복해 김정남의 위치를 실토한다. 공안경찰들은 빠르게 김정남이 숨은 향림교회로 달려간다. 이 급박한 순간, 연희는 향림교회로 가서 "삼촌, 고문 안 당하게 해주세요."라며 쪽지를 교회에 숨은 김정남에게 전달한다.

쪽지를 확인한 김정남은 함세웅 신부에게 쪽지를 넘기고, 함세웅 신부는 바로 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난다. 그 직후 공안경찰들이 향림교회로 들어서며 교회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린다. 자신을 체포하기 위해 공안경찰들이 들이닥친 것을 알게 된 김정남은 향림교회의 옥상으로 피신하지만, 체포망은 점점 좁혀와 결국 교회 탑의 파이프를 타고 오르다 떨어져 다리마저 다치고 경찰들은 창문을 열어서 김정남은 발각될 위기에 처한다.
저희 정의구현사제단은 5.18 7주기를 맞아 성스러운 하느님의 성전에서 중대성명을 발표하겠습니다.
같은 시각(1987년 5월 18일, 5.18 7주기) 명동성당에서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이 쪽지를 전달받고, 김승훈 신부는 기자들 앞에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을 공개하고 있었다.
故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이 은폐, 조작되었다. 박종철군을 고문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범인은... 치안본부 대공수사 2단 5과 2계 학원분과 1반 경위 / 조한경, 2계 1반 경장 / 이정호, 2계 1반 경위 / 황정웅, 2계 1반 경사 / 반금곤, 2계 5반 경사 / 강진규
김승훈 신부의 폭로가 진행되면서 박종철이 죽임을 당하던 그날의 모습으로 화면이 바뀐다. 마지막에 강진규 경사가 폭로되면서 다리만 잡고 있었다는 강진규도 다리를 잡아 물구나무를 세워서 물고문하고 있었다고 드러난다.[62] 박종철을 물고문하여 가장 후임인 강진규 경사가 애국가를 부르는 모습,[63] 조한경은 박종철의 안경이 있는 책상에서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앉아있는 모습이 섬뜩하다. 조한경은 여기는 남영동이고 너 하나 죽어봤자 아무 일도 안 생긴다고 말하고, 박종운의 행방을 묻지만, 박종철은 모른다고 한다. 그러자 애국가를 간만에 다 듣겠다며 4절을 요청하고 물고문은 시작된다. 그리고 박종철은 정신을 잃으며 마지막에 엄마라고 말하는 듯 화면이 명동성당으로 디졸브되며 바뀐다.
그리고 인간화와 민주화의 길을 걸을 수 있느냐 없느냐하는 중대한 관건이 이 사건에 걸려 있다. 1987년 5월 18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축소, 은폐되었으며 고문에 가담했던 경찰은 2명이 아닌 5명이었다는 사실을 미사 중 발표했고, 한시라도 빨리 이 소식을 신문사에 전하기 위해 성당 마당의 공중전화 박스로 달려나간 기자들[64]에 의해 전국으로 퍼져나간다. 그와 동시에 명동성당의 종이 크게 울린다.

역시 같은 시각, 향림교회에서도 종이 울린다. 김정남은 경찰들의 눈을 피하려 벽의 전선에 매달려 버티기를 시도하고, 경찰들은 김정남을 발견하지 못하고 간다. 그러고는 구름이 걷히고 햇빛이 김정남을 내리쬐고, 전선이 끊어지며 추락할 위기에 처한다. 그리고 박처원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가 그려진 스테인드 글라스 너머로 옥상에 매달려 버둥대는 김정남의 그림자를 발견한다.[65] 그 순간, 박처원에게 큰일 났다는 소식이 전해진다.[66]

박처원은 재빨리 그간 수사한 모든 자료를 모두 불태우라[67]고 명령한 다음 사태 수습에 대한 대책회의를 위해 치안본부로 향하지만, 박처원과 그의 수하들 앞에 기자들이 나타나서 취재한다. 박처원과 수하들은 기자들을 막으며 황급히 자리를 피하려 한다.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박처원의 앞을 윤상삼 기자가 가로막고 박처원에게 있는 의혹들에 대해 질문하더니, 냉소적인 미소와 함께 쏘아붙인다.
고문, 살인, 은폐, 조작, 횡령. 끝났어, 당신.
분을 못 이긴 박처원이 윤상삼 기자의 멱살을 잡지만, 뒤에 있던 사람들이 말린다. 박처원은 치안본부로 들어간다. 그러나 텅 빈 치안총감실에는 탁자에 박처원을 처벌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서류만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박처원은 거기서 장 부장전 대통령의 서명을 보고, 자신이 끝났음을 직감한다. 치안본부에 걸린 전두환 대통령의 초상화가 비춰지며, 밖에서 경찰들이 박처원의 그 수하들을 체포하는 소리가 들린다.

4. 에필로그

이후 박처원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참여한 자들은 모두 구치소[68]에 수감되고,[69] 이들 앞에 최환이 나타나 염장을 지르듯, "반~가운 얼굴들! 변호사 필요하시면 연락하시고."라며 명함을 꽂고 간다. 이후 박처원도 최환을 만나고, 동시에 안유도 맞이한다. 최환과 안유, 박처원이 눈을 마주한 다음 장면이 전환되고 연희 엄마와의 통화로 한병용은 남영동에서 풀려나게 된 게 드러난다.

그로부터 얼마 뒤, 연희는 가판대에 놓을 양초를 정리하던 중 무심결에 가게로 배송된 석간 신문 뭉치를 들여다보게 되는데, 그 잘생긴 남학생, 이한열이 시위 도중 직사로 머리에[70] 맞은 최루탄에 피를 철철 흘리면서 죽어가며 이종창[71]의 부축을 받는 사진을 보게 된다.[72] 큰 충격을 받은 연희는 신촌을 지나 시청 광장으로 달려가는데, 그 길 가운데에는 학생들, 회사원들, 평범한 주부들, 택시 기사와 버스 기사 등 수많은 시민들이 시위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시청 광장에 다다른 연희는 버스 위에 올라 시위하러 나온 시민들로 가득한 시청 앞 전경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다, 이내 "호헌철폐!!! 독재타도!!!"라는 구호를 같이 외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시위하는 군중들로 가득 찬 시청 광장을 배경으로 1987이라는 타이틀이 마침내 노출되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73]

5. 엔딩 크레딧

이야기가 끝난 후 엔딩 크레딧이 흐르면서 <그 날이 오면> 합창을 배경으로 해서 이한열의 생전 모습과 어머니 배은심 여사와의 사진, 그리고 실제 6월 항쟁 당시 전국에서 시위를 진행하는 영상[74]과 이한열의 장례식 장면이 나온다.


[1] 엄연히 말하면 고증오류로 대한뉴스에서 사용된 행진곡은 미국의 행진곡이 쓰였지 독일의 행진곡이 쓰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의도된 것으로, 나치 독일 시기 요제프 괴벨스 장관의 민족계몽선전부에 의해 극장에서 의무 상영된 나치 독일판 대한뉴스인 복헨샤우(Wochenschau)에서 아돌프 히틀러가 등장할 때마다 상기한 바덴바일러 행진곡이 배경음악으로 송출되었음을 생각해보면 뜻하는 바는 명확하다.[2]남포시. 박처원은 진남포 출신이기 때문에, 현재 남아 있는 평안남도 용강군이 아니라 남포시 출신이다.[3] 월남해 온 실향민들은 보통 임진각에서 제사를 지낸다.[4] 얄궂게도 명동성당에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을 폭로한 김승훈 마티아 신부 역시 평안남도 진남포 출신이다.[5] 영화에서는 남영역 지하차도를 빠져나온 구급차가 남영역사거리에서 급박하게 좌회전을 해서 골목길로 올라가면 정면에 남영동 대공분실이 보인다. 하지만 사실 남영동 대공분실의 위치는 그곳이 아니다. 그리고 남영역 지하차도를 나와서 남영역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하면 철도와 붙어서 가는 큰 길(청파로), 즉 철도 건너편 길이 나온다. 중앙대학교 용산병원에서 나온 구급차가 남영동 대공분실로 가려면 남영역 교차로에서 지하차도를 지나자마자 우회전해야 한다. 아니면 남영삼거리에서 좌회전한 후 지하차도를 들어가기 전에 중앙선을 무시하고 좌회전하거나, 남영삼거리 전에 중앙선을 무시하고 골목길로 좌회전해야한다.[6] 영화에서는 남영동 대공분실의 담벼락을 구급차의 왼쪽에 끼고 달리다 좌회전해서 대공분실로 들어간다. 하지만 남영역은 대공분실의 북쪽이라서 남영역에서 오려면 이렇게 오는 것이 불가능하다. 대공분실의 남쪽은 미군부대(캠프킴)로 막혀있어서 앞 장면에 나온 도로(대공분실에서 철도 건너편)와 연결될 여지가 없다.[7] 정확하게는 "태우라우."[8] 즉 야당과 민주화운동 세력을 일망타진하고자 김정남을 중심으로 민주화운동 세력, 김대중, 김영삼을 엮어 간첩으로 몰려는 '큰 그림'을 그리려 하고 있었다! 사무실 안에 조직도까지 다 만들어놓고 맨 위에는 김일성과 연결시켰다.[9] 압류물 캐비닛에서 꺼내 마신다. 즉 밀수품이다.[10] 과거에 판사나 검사 등의 고위직을 높여 부르는 호칭이자, 범죄자들이 검사를 칭하는 호칭이다.[11] 공안당국의 압력을 받은 검찰 상부에서 전화가 계속 오는 걸 모른척 했는데, 그 다음엔 청와대의 전화를 받은 차장검사(정승길 분)가 직접 내려와 '니가 도장 안찍으면 씨발 내가 찍는다'라고 명령을 발부하길 종용했다. 이후 전화가 다시 오자 전화선을 뽑아버렸는데, 사무실에서 화장동의서를 기다리던 공안경찰이 눈치 없게 전화선을 연결해 주는 바람에 빡이 쳤다.[12] 이때 시신보존명령서를 보고는 벙찐 공안경찰을 보고 "시신에 손만 대 봐. 공무집행 방해혐의로 족친다."라고 말하며 의자로 문을 봉인해 공안경찰을 자기 사무실에 가둔다.[13] 대검 공안부 제4과장.[14] 영화상에서도 묘사되지만, 실제로도 당시 검사 측은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 등의 공안사건에서 경찰이 원인 제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뒷처리는 항상 검찰의 몫이어서, 자존심 부분은 물론 '똥은 경찰 쪽에서 쌌는데 욕은 우리만 먹는다'며 경찰과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15] 극중에서도 최환에게 "너 장인 빽 믿고 이러냐?"고 다그치는 대사가 많이 나온다. 최환의 장인은 8.15 광복 직후부터 검사직을 해오면서 검찰의 주요 요직 및 박통 시절 검찰총장과 법무부장관까지 역임했던 이봉성이다. 그야말로 법조계의 거물이자 원로였고 당시에도 생존해 있었다. 그런 인물이 장인이니 주변 인물들이 최환에게 함부로 못 하는 것이고, 최환도 믿는 바가 있으니 당당히 나서는 것.[16] 이것 역시 신성호 기자가 초짜 기자가 아니라 7년차 베테랑 기자였다는 점을 제외하면 실제와 유사하다.[17] 실제로도 치안본부장이 '억 소리를 지르며 죽었다'고 발표를 한 후, 배석해 있던 박처원이 부연설명으로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를 덧붙였다.[18] 입단속 정도가 아니라, 진상을 요구하는 기자들 뒤에 있는 공안경찰들이 총까지 은밀히 보이며 위협을 해댔다.[19] 이때 그는 손에 쥔 호두를 꽈드득 깨트려버린다.[20] 이때 총을 꺼내는 줄 알고 처원의 부하들이 총을 허둥지둥 꺼내려 하는 게 백미이다. 참고로 하정우 뒤에서 총을 겨누는 인력은 공안검사 측이 아니라 대공수사처 소속 경찰들이다. 검찰수사관이라면 하정우가 박처원을 불러낸 뒤 건물 뒤에서 만나려고 할 때 감히 직속상사인 검사 등을 거칠게 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박처원이 철수할 때 같이 철수한다. 그리고 검찰수사관은 권총을 소지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공안직 공무원 중 권총을 소지할 수 있는 직렬은 경찰(해경포함), 교정직, 국정원, 대통령경호처와 군 밖에 없다.[21] 남과 다름없는 사람이니 그냥 외국언론에 뿌리겠다는 뜻이다.[22] 이때 힙 플라스크를 던지는 게 소각장인데, 영화 후반부에 진실이 까발려지고 남영동이 수사받는 지경에 이르자 같은 소각장에서 고문의 증거들을 불태운다.[23] 후에 오연상 교수가 말하길 실제로 그 당시에 있었던 기자가 동아일보 기자가 아니라 중앙일보 기자였다고 한다.[24] 정확히는 조한경에게 얻어맞은 윤상삼 기자가, 쓰러지면서 바닥의 턱에 오른팔을 부딪힌 것. 이 때문에 한동안 깁스 신세를 진다. 남영동의 위세를 믿고 막 나가는 조한경의 성격을 드러내는 장면. 하지만 상황이 혼잡했기에 아무도 조한경과 윤상삼 기자에게 신경 쓰지 못해서 그렇지 엄연히 경찰공무원이 아무 죄 없는 민간인을 폭행해 상해를 입힌 것으로 아무리 군사정권 치하라도 걸려서 공론화 됐으면 징계, 심각하면 해직감이다.[25] 연출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하늘에서 이 장면을 내려다 보면서 눈이 내리기 시작하고, 그와 동시에 박종철의 유해가 뿌려지는 모습으로 바뀐다.[26] 실제로 박종철의 아버지 박정기가 한 말과 행동을 극적으로 재구성한 장면이다. 이 말은 당시 시위하던 이들의 플래카드로 옮겨졌다. 또한 당시 퇴직을 앞둔 공무원이었던 박정기는, 이 사건으로 미행과 협박을 당하는 등 고초를 겪고 한동안 칩거했다. 그러나 박종철 사후에 민주화운동을 위해 힘쓰다 돌아가신 분들의 유가족들로 이뤄진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의 일원으로 활발히 활동하였으며, 이들에 대한 진상규명 활동에 힘썼다고 한다. 그리고 2016년 촛불시위에도 참석했다고.# 그리고 이 장면에서 김종수 씨의 오열하는 연기에 극장이 울음바다가 되었다는 증언들이 많다. 사실 영화 연출할 당시에 눈이 내리는 건 의도하지 않았던 걸로 보인다. 딱 마침 촬영 시작할 때 눈이 왔고, 촬영이 끝나자 눈이 그쳤다고 한다. 제작사는 이를 '자연이 만들어준 미장센'이라고 표현했다.[27] 앞서 박처원 처장과 맞닥뜨렸을 때 박처원은 "사냥개끼리 싸우다가 사냥감 놓치면 주인이 가만히 있간? 나랑 내기하자우. 우리 둘 중에 가마솥에 들어가는 게 누구갔어?"라면서 최환 검사를 조롱한다. 이때 최환은 본인을 '족보도 없어서 아무나 물어뜯는 똥개'로 자칭했다. 윤 기자를 바라보며 "똥개 한 마리 추가요."라고 말한 것도, 그 장면의 연장선인 셈.[28] 치안본부는 박종철의 사인을 심장마비로 발표했으나, 부검 결과에는 '경부 압박으로 인한 질식'으로 쓰여있었다. 다시 말해, 고문이 있었다는 증거이면서, 치안본부가 사건을 은폐하려 한다는 증거인 셈.[29] 극 초반부에 "받아쓰기만 하면 되는 세상에서 글 잘 써서 뭐하냐?!"는 투의 대사가 나오는데, 이 장면 역시 그 대사의 연장선인 셈. 그동안 독재정권의 입맛대로 조작된 내용을 기사로 받아썼으니 이번에는 제대로 된 내용을 받아쓰라는 뜻이다.[30] 대외 명칭은 '신길산업'이다. 현재는 청소년 문화복지시설인 영등포 유스스퀘어로 리모델링 됐다.[31] 전부 가죽점퍼를 입고 있어 남영동 형사들과 구분하기가 쉽다.[32] 아마 이문동 파트에서 일한 적이 있던 것 같다.[33] 그간 여러 악역 연기로 다져진 김윤석의 열연이 돋보이는 장면 중 하나다.[34] 박종철 사망기사가 처음 나가고 나서 박처원이 안기부장을 찾아가 독대하는데 경찰 두 명을 석방시켜 달라는 박처원의 말에 짜증을 내며 과실치사로는 바꿔주겠다는 장면이 나온다.[35] 이때 나오는 찬송가<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이다. 특히 노래 중 '걸어가세 믿음 위에 서서, 나가세 나가세 의심 버리고~'라는 가사가 그들의 상황과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 있다. 박처원을 믿고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상황을 볼 때 그렇다. 누가 봐도 '꼬리 자르기'란 게 명확하지만, 한 줄기 희망을 버리고 싶지 않기에 박 처장을 믿자고 애써 자기최면을 거는 것에 가깝다. 배우 인터뷰에 따르면, 조한경은 실제로 교회 집사라고 한다. 나중에 나오는 박종철을 고문하는 장면을 보면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그런 주제에 살인하지 말라는 십계명을 어겼다.[36] 두 번째는 <선데이 서울>이다.[37] 이때 연희는 함세웅 아우구스티노 신부에게 비꼬듯이 "자수해서 광명 찾으세요."라며 불교식 합장 인사(...)를 하고 떠난다. '이런다고 달라지는 거 없으니, 괜히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그만두라'는 소리를 빙 돌려서 말한 것이다. 작품 중후반부에 연희가 왜 그렇게 민주화 운동에 회의적인 모습을 보이는지 이유가 밝혀진다.[38] 정확하게는 3·3 평화대행진이 벌어진 시점(박종철 49재)에 그보다 앞서 있었던 2·7 추도회가 전경과 충돌한 장소(미도파 백화점 앞)를 결합한 장면이다. #[39] 이때 한 성격 하는 연희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도망치다 말고 뒤돌아서 쓰러진 백골단의 머리를 발로 밟아댄다. 당대 백골단이 공포의 대상이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정말 간 큰 행동이다.[40] 이때 복면을 벗자 나온 강동원의 모습에, 극장에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관객들의 감탄이 나오기도 했다. 김정남 역을 맡은 설경구와 마찬가지로 강동원 역시 비중 있는 역할이지만, 특별출연으로 되어 초기 마케팅에서는 철저히 가려졌다. 포스터나 간단한 정보만 보고 하정우, 김윤석, 유해진 정도가 나오는 영화라고만 생각했는데, 강동원이 나오자 주위에서 "저거 강동원이야?" 하는 소리들이 계속 들리기도.[41] 여기까지만 보면 그는 단순 협조만 했다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 쓴 사람처럼 보이지만 후반부, 박종철 고문상황을 보면 자신도 적극적으로 고문에 가담하고 있었다. 게다가 다리만 잡고 있었다는 말도 알고 보니 다리를 부여잡고 하늘 높이 치켜 올려 아예 물구나무를 세우고 있었다.[42] 이때까지는 면회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교도소의 규정을 지키려는 의지였을 것이다.[43] 이후 안유 보안계장이 나갈 때 옆 칠판에 써 있는 방문자 중 감독인 장준환의 이름이 잡힌다.(...) 검사라고.[44] 이 당시 1억은 국내 고급아파트 건물 1채를 통째로 살 수 있을 만큼의 거액이었다. 이미 조한경은 앞서 왔던 다른 부하들에게 토사구팽 당하지 않으려고, '너희들 모가지는 내 혓바닥에 달렸다'고 협박까지 한 상태이다.[45] 이 협박을 하며 "너도 해봐서 잘 알잖냐?"고 덧붙이는데, 이런 식으로 억울한 죽음을 당한 사람이 더 있음을 드러내는 셈.[46] 신입생이라, 아직 학생증이 발급되기 전인 듯.[47] 만화사랑이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고 있다. 그 당시는 공개적으로 운동권 동아리를 만들었다간 코렁탕을 마시기 때문에, 이렇게 만화 동아리 등으로 위장해서 활동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대학에 현존하는 서브컬쳐 동아리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사실 이런 운동권 동아리인 경우도 있다.[48] 정미는 처음엔 '그래 봤자 운동권'이라고 시큰둥해 하다가, 그 남학생을 보고는 "저 정도 얼굴이면 간첩이라도 사귀겠다!!"라며 감탄한다.[49] 처음에 이 말을 듣자마자, 상영하기도 전에 학생 2명은 불쾌감을 드러내며 바로 빠져나가 버린다.[50] 이 영상에 나오는 광주 민주화 운동 진압군이 시민을 바닥에 끌고 가는 장면은,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에도 나온다.[51] 4개월 전에 개봉한 택시운전사는, 광주에서 바로 이 영상을 촬영하고 세상에 알린 위르겐 힌츠페터의 이야기를 다뤘다. 위르겐 힌츠페터가 보도한 영상은 독일에서 유학 중이던 한국인 신부들이 국내로 들여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을 중심으로 성당과 대학가에서 비밀리에 상영되었다.[52] 삭발을 하고 스님으로 위장해서 도피한다.[53] 김정남을 찾기 위해 사방을 주시하고 있었고, 교도소도 종종 드나들었던 남영동 팀의 눈에는 굉장한 거수자였다.[54] 왜 연희가 지금까지 민주화 운동에 회의적이었는지 드러나는 대목이다. 단순히 귀찮아하는 것으로만 보였지만 사실 그 안에는 매우 아픈 기억이 있었던 것이다.[55] 물고문을 당한 뒤에 전기고문이 가해진 것으로 보이는데, 고문을 하던 형사들이 무려 6바퀴를 넘어 7바퀴를 돌리려 했다.[56] 만화사랑 회지에 실린 노래 그 날이 오면의 악보를 보고 한 말.[57] '이번이 정말로 마지막이니 꼭 전달해 달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58] 묘하게도 연희의 엄마를 쳐 연희와 시비가 붙은 전경과 연희와 다른 가족들을 연행한 백골단원 모두 연희보다 겨우 몇 살 정도 많을 젊은 청년들이다.[59] 늑대의 유혹에서 강동원의 우산신은 수 차례 패러디되며,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그런데 정작 장 감독은 전혀 생각지 않았다고. 옛날 느낌이 나는 파란 비닐 우산을 준비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밝혔다.[60] 아버지, 어머니, 교복을 입은 박처원 본인, 여동생, 동이. 영화 초반부에서 박처원이 제사를 지낼 때 사용했던 사진이다.[61] 사연을 말하면서 박처원의 눈에 눈물까지 고이는데 취조자 앞임에도 감정이 올라올 정도로 고통스러운 기억임을 보여준다. 감옥에서 조한경을 굴복시켰을 당시에도 가족을 임진강에 던져버리고 월북 중 죽은 걸로 조작하겠다며 협박한 것 또한 가족이 죽는데 아무것도 못한 자신의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62] 보통 물고문을 이런 식으로 하진 않는데 젊은 청년인 박종철이 온몸을 흔들며 거세게 저항하는 완력이 너무 세서 고문형사 세 명이 달라붙어 제압해도 역부족이라 다리까지 잡은 것으로 묘사된다.[63] 애국가를 부르는 동안 얼굴을 물에 강제로 넣는 물고문을 하는 것이다.[64] 기자들을 잘 보면 외신 기자들도 여럿 있다. 발표문을 받아적자마자 우와아아 하고 뛰어나가는 기자들의 장면이 아주 볼만하다. 공중전화 박스에서 마구 뒤엉켜 전화하는 장면도 스마트폰이 보급된 지 오래인 2020년대에 보기에는 아주 색다른 장면이다. 여담이지만 2023년 기준으로 명동성당 앞 공중전화는 사라졌다.[65] 이 장면은 인위적으로 연출되어 있는 의미있는 장면이다.[66] 이때 경찰 무전기에서 갑호비상령이 발령됐다는 언급이 나온다. 이는 실제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추모집회 때 발령됐던 것이다. 여기서 갑호비상령이란, 경찰청장이 대규모 집단사태로 치안질서가 극도로 혼란해지거나 계엄이 선포되기 전 등의 상황에서 경찰 전원에게 비상근무를 명령하는 가장 높은 단계의 비상령을 말한다. 비상령은 가장 높은 단계부터 순서대로 갑·을·병호 비상령으로 이루어지는데, 이 중 갑호비상령은 가장 높은 군 경계수준인 '진돗개 하나'에 해당된다.[67] 이때 연희와 연희 엄마의 사진, 그리고 날조된 간첩 조직도가 허무하게 불에 타는 장면이 나온다. 이로써 연희네 가족은 군사정권의 위협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또한 박처원이 작품 초반에 별일 아니라는 듯이 박종철 군의 시신을 태우라고 명령하던 것과는 정반대로 이번엔 진지하게 수사 자료를 태우라고 명령한다. 태워서 증거를 인멸하라는 명령도 똑같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나 자신이 날조한 공안사건들이나 둘 중 하나라도 까발려지면 자신이 끝장나는 것도 똑같지만, 초반에는 여유롭게 은폐하려던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후반에는 매우 다급하게 은폐하려는 모습을 보인다.[68] 하필 안유가 근무 중이던 구치소였다. 박처원과 최환, 안유의 입장이 역전된 셈. 참고로 박처원보다 먼저 내린 두 명의 번호는 518이다.[69] 남은 공안경찰들은 중반부에 폭행당한 상사가 점심 식사 중인 곳에 들러 다른 형사들을 동원해 모조리 체포한다. 이때 "오래간만이야."라고 말하는데 박처원에게 폭행당한 사적 원한까지 있는지 묘하게 비웃는 듯한 표정이다. 다만 다른 청렴한 인물이 아닌 고문과 꼬리 자르기에 가담했던 인물이라는 것이 매우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물론 영화적으로 앞서 등장한 인물을 다시 등장시키는 유기적 연출이기도 하지만, 실제 6.10 민주 항쟁과 1987년 체제의 대표적인 한계가 군사독재 부역자와 잔재를 완전히 청산하지 못하고 그 당사자들이 체제 안정의 주도자 격의 자리를 꿰찬 점이라는 걸 생각하면 시사하는 바가 있다.[70] 실제로 이한열 열사는 뒤통수에 최루탄을 가격당해 두개골이 파열되어 혼수상태에 빠졌다.[71] 이후 그는 연세대학교 교직원으로 근무하다가 2011년 연세대학교 노조 위원장으로 선출되었고 2017년에는 경기도 파주시 가람도서관 관장으로 재직하는 게 확인되었다. 2017년 현충일에는 6월 항쟁 30주년을 맞아 인터뷰를 하였다. 영화 1987에서는 강정우가 그를 연기하였다.[72] 이때 잠시 시점이 과거로 돌아가, 이한열이 격렬하게 시위를 하는 장면과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경위를 보여준다. 최루탄 발사 장면을 보면 전경들이 조준을 위로 하였다가 상관의 질책에 다시 내리는 장면이 있다. 윗선은 어쨌거나 당시 전경들도 이게 잘못된 거라는 것 쯤은 알고 있었다는 것을 감독이 의도적으로 보여준 것이다.[73] 보통 영화 타이틀은 도입부에 나오는 게 일반적이란 걸 생각하면 타이틀을 영화 끝에 노출시키는 건 6월 항쟁, 더 나아가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항쟁은 이후 영화가 만들어진 현재까지 이어지는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연출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비슷하게 타이틀을 영화 끝에 노출시켜 호평을 받은 작품으론 다크 나이트를 꼽을 수 있다.[74] 이 영상의 출처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가져온 걸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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