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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내청 [ruby(宮内庁, ruby=くないちょう)] | Imperial Household Agency | |
<colbgcolor=#5994dc> 약칭 | IHA |
설립일 | 1949년 6월 1일 |
전신 | * 궁내성(1869년~1947년)
|
장관 | 니시무라 야스히코 |
차장 | 이케다 겐지 |
소재지 | |
도쿄도 치요다구 치요다 1-1(황거 내) (東京都千代田区千代田1番1号) | |
상급기관 | 내각부 |
내부부국 |
|
시설등기관 |
|
지방지분부국 | * 교토사무소(京都事務所) |
직원 수 | 1,061명 |
홈페이지 |
황거 내부에 위치한 궁내청 청사 |
[clearfix]
1. 개요
궁내청([ruby(宮内庁, ruby=くないちょう)])은 일본 내각부 산하 행정기관으로, 일본 황실과 관련된 업무를 전담한다.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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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pad> 신기백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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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pad> 좌대신 | <nopad> 태정대신 | | <nopad> 우대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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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pad> 대납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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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pad> 좌변관 | <nopad> 소납언 | <nopad> 우변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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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pad> 외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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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무성 | 식부성 | 치부성 | 민부성 | 병부성 | 형부성 | 대장성 | 궁내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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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 일본의 율령제에는 태정관 산하에 궁내성(宮內省)을 두어 황실을 보좌하였다. 메이지 유신 이후, 1869년 천황의 보좌 전담기관으로 율령제의 궁내성을 본떠 동명의 기관을 세워서 근대적인 의미에서 정부기관으로 탄생시켰다. 율령제 시절 장관직과 차관직의 명칭을 따와 장관직과 차관직을 각각 궁내경(宮內卿)과 궁내대보(宮內大輔)로 칭했다. 1885년에는 궁내경을 궁내대신(宮內大臣)으로 개칭했다. 대일본제국 헌법 제정 후에는 황권이 강화됨에 따라 상당히 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다만 궁내대신은 대신이긴 하나, 국무에 관한 권한은 없기 때문에 국무대신(내각 각료)이 아니었다.#
이 당시 궁내성은 정계는 물론이고 제실박물관(現 도쿄국립박물관), 가쿠슈인 등의 문화, 교육기관도 휘하로 두고 직원 수만 무려 6천 명을 넘는 거대조직이었다. 이 궁내성은 구한말의 궁중부서 궁내부(宮內府)에도 일부 영향을 끼쳤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일본국 헌법 개정에 따라 부서도 개편하여 1947년 기존의 궁내성은 궁내부(宮內府)로 개칭했고 그 수장도 궁내부장관(宮內府長官)이 된다. 이후 1949년 총리부(総理府)의 외국(外局)인 궁내청(宮内庁)으로 격하되었고 2001년 중앙성청 개편으로 내각부 산하 기관이 되었다. 일본에서의 청(庁)이 붙는 기관은 보통 외국(外局)이지만 중앙성청 개편 이후에는 내각부에 놓인 기관으로 외국이 아니게 되었다. 일본 정부 관보에서는 궁내청을 포함하여 '외국 등(外局等)'으로 분류한다.
하지만 내각부 관할이 된 것 치고는 의외로 일본 내각과의 마찰이 종종 발생하는 것 보면 겉으로는 내각에 흡수되었지만, 실제로는 내부에서는 여전히 흡수되지 않고 자체 파벌인 시종 쪽 파벌이 내각 쪽 파벌 및 신세대 시종들을 여러 가지 방면으로 견제하는 듯하다. 이들 시종들은 과거 미치코 상황후 시집살이 항목에서도 보듯 근래까지 구 황족, 구 화족들이 차지하고 있었을 정도이며 지금도 그러한 여파가 있어서 나이가 든 시종들은 대부분 구 황족 및 구 화족과의 어떠한 관계가 있다고 한다. 참고로 이들 시종직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추천제에 가깝게 운영된다고 한다.
3. 직제
궁내청장관(宮内庁長官)은 내각총리대신이 정식으로 임명하고, 천황이 인증(認證)한다. 보통 사무차관이나 경시총감급 고위 인사들을 궁내청 차장으로 보내서 경력을 쌓게한 다음 차장 임기 종료 후 차기 장관에 임명하는 게 관례. 참고로 장관은 특별직 국가공무원(한국식으로는 정무직)이나 차장은 일반직 국가 공무원. 임면권 자체는 내각총리대신에게 있지만, (옥새가 찍힌) 임명장은 천황에게 수여받는다. 국무대신들의 경우도 동일.3.1. 현대 궁내청의 직제
다음은 현대의 조직으로, 휘하 내부부국에는 장관관방과 4직 2부가 있고 시설등기관 2개, 지방지분부국 1개를 둔다.- 내부부국
- 장관관방
- 비서과(秘書課)
- 조사기획실(調査企劃室)
- 총무과(総務課)
- 홍보실(広報室)
- 보도실(報道室)
- 궁무과(宮務課)
- 주계과(主計課)
- 용도과(用度課)
- 궁내청병원(宮内庁病院)
- 시종직(侍従職): 일본 황실의 천황일가, 동궁의 황태자 일가, 내외 여러 황족 일가들을 보필하고 보좌, 시종하는 업무를 관장한다. 장관은 시종장.
- 상황직(上皇職): 생전 퇴위한 상황 일가를 보필하고 보좌하는 임무. 장관은 상황시종장이라고 한다.[1]
- 황사직(皇嗣職): 황사 일가의 일상을 보좌 및 관리 업무로 원래는 동궁직으로 불리던 부서이다. 장관으로 황사대부를 두고 휘하에 궁무관장, 궁무관, 시의장, 시의 등의 직원이 있다.[2]
- 식부직(式部職): 의식(儀式)과 공연 등을 관장한다.[3]
- 서릉부(書陵部): 황실 관련 자료, 각종 고문서, 황릉과 전 황족들의 묘지를 관리.
- 도서과
- 편수과
- 능묘과
- 능묘감구사무소
- 관리부(管理部): 이름 그대로 황실 관련 시설 관리, 의식용으로 사용되는 마차 관리 등을 담당하는 부서.
- 관리과
- 공무과
- 정원과
- 대선과
- 차마과
- 궁전관리관
- 어용저택 관리사무소
- 황거동어원 관리사무소
- 시설등기관
- 지방지분부국
3.2. 과거 궁내성의 직제
다음은 과거 궁내성의 조직이다. 특별히 서술한 것을 제외하면 료(寮)와 직(職)의 장관직명은 대부분 두(頭)이다.[5]- 외국
- 내대신부(內大臣府): 어새와 국새 등을 관리한다. 서양권의 어새상서, 국새상서 역할을 한다. 내대신관방을 거쳐 내대신부가 되었다. 내대신부의 장관은 내대신으로 율령제하 전근대 일본의 내대신 관직에서 유래했다. 천황의 비서 역할을 한다. 따라서 대신의 이름을 가지지만 국무대신(각료)이 아니다. 내대신이란 명칭은 율령제 시대의 관직명인 내대신을 따온 것으로 내대신의 약칭은 내부(內府)로 내각 각료인 내무대신의 약칭인 내상(內相)과 구분한다. 내대신부의 직원으로는 내대신 산하 비서관장, 비서관, 속이 존재한다. 원래 폐지대상은 아니었으나 종전 이후로 연합군 총사령부와 법제국 등의 기구 개혁 건의로 폐지되었다.
- 이왕직(李王職): 이왕 일가 관리.[6]
- 이왕직 아악부(李王職雅樂部)
- 장전직(掌典職): 구 식부직 산하 장전부에서 승격.[7]
- 동궁직(東宮職): 황태자를 보좌.[8]
- 황후궁직(皇后宮職): 황후를 보좌.
- 황태후궁직(皇太后宮職): 황태후를 보좌.
- 제실회계심사국(帝室會計審査局): 궁내성에서 회계검사원의 역할을 한다.
- 제실임야국(帝室林野局): 어료림(황실 전용 목장) 관리. 종전 이후 농림성 산림국과 통합 후, 농림성 임야국을 거쳐 임야청으로 승격.
- 제실박물관(帝室博物館): 황실의 박물관. 현대에는 도쿄국립박물관이 됨.
- 어가소(御歌所): 어제어가를 담당. 여기서 어제란 천황이 친히 지은 서예, 문학, 예술, 시, 하이쿠 등을 의미한다. 또한 어가란 황후와 황족 등이 친히 지은 서예, 예술, 문학, 시, 하이쿠 등을 가리킨다.
- 학습원(學習院): 황족, 화족 남성 자녀들의 교육을 담당하던 기관으로, 소학교부터 대학까지 다 있는 중고일관제 귀족학교이다. 종전 이전에는 관립학교였지만 현대에는 사립으로 존재한다.
- 여자학습원(女子學習院): 학습원의 여자버전.
- 정창원관리서(正倉院管理署): 정창원을 관리.
- 내부부국
- 대신관방(大臣官房)
- 시종직(侍從職): 궁내청 문단 참고.
- 식부직(式部職): 궁내청 문단 참고.
- 종질료(宗秩寮): 1910년 8월 29일, 작위료를 폐지하고 신설했다.[9] 황족, 화족 등에 대한 사무를 소관했다. 장관명은 총재이다.
- 제릉료(諸陵寮): 황실의 능묘를 관리.
- 도서료(圖書寮): 황통보[10] 소관.
- 시의료(侍醫寮): 황실의 의료를 소관.
- 대선료(大膳寮): 황실의 식사, 연회 등을 소관.
- 내장료(內藏寮): 황실의 회계, 용도를 소관.
- 내장료(內匠寮): 황실의 건축, 영선, 조영을 소관.
- 주마료(主馬寮): 황실의 마차, 자동차, 운전을 소관.
- 총무국(總務局): 기타 서무를 소관.
- 경위국(警衞局): 황궁의 근위를 소관하고 독자적인 정보 수집 활동도 하는 등, 정보기관의 성격도 있었다.
- 지방기관
- 교토지방사무소(京都地方事務所)
4. 역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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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특징
보통 일본의 청(庁)은 내부부국으로 장관관방과 부(部)를 두지만, 궁내청의 내부부국은 다른 청(庁)과는 다르게 내부부국이 부(部)만 있는것이 아닌 율령제 시절의 직(職)이나 료(寮), 현대의 부(部)가 혼재되어있다.도쿄의 황거를 비롯하여 교토어소 및 이궁, 별장(어용저), 능묘 등이 있다. 패전 이전에는 이것들이 모두 황실 재산이었지만 패전 이후 일본국 헌법으로 인해 황실의 사유재산은 모두 국유재산이 되었다. 일본국헌법 제88조에 "모든 황실재산은 국가에 속한다. 모든 황실의 비용은 예산에 계상하여 국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라고 못박아 두었다. 따라서 황실이 겉으로는 경제적 풍요를 누리고 있으나, 실제론 황실이 누리는 모든 것은 국가가 제공하는 것일 뿐 천황 자신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재산은 없다. 모든 황실의 재산과 비용은 내각총리대신이 포함된 황실경제회의(皇室経済会議)라는 조직에서 모두 통제한다. 특히 해당 조직은 대략적인 예산 관리 조직이 아니라 황실 여성이 결혼하여 황족 신분을 이탈할 때 가지고 가는 지참금까지도 일일이 확인하고 융통성 없게 통제할 정도로 상당히 세밀한 부분까지도 파고든다고 한다. 물론 황실 여성이 황실에서 떠날 때 가지고 가는 지참금이야 관계 규정 등에 의거하여 1억 엔 내외로 정해졌고, 여기에서 최종 결정하는 형태다.
군주제 국가에는 왕실의 사무(事務)를 책임지는 부서가 존재하지만, 대부분이 왕실 자체에서 운영하고 예산과 인사 모두 국가행정조직과는 분리된 형태이다. 징세나 감사의 형태로 중앙 정부에서 관여하기는 하나, 일본처럼 아예 중앙 정부 부서에 속하는 사례는 의외로 적다. 일본처럼 정부 부서가 황실 사무를 맡는 것이 세계적으로도 드문 관계로, 궁내청의 정식 영문명에도 'Japanese'가 붙지 않는다.
5.1. 일본 황실의 생활 통제
궁내청은 일본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고 그 세금을 예산으로 집행해주는 일본 정부의 통제를 받는 이상 일본 황실의 생활 전반을 모두 감독하는데, 이 때문에 황족들의 생활에는 상당한 제약이 따른다. 궁내청 운영비만 연간 100억 엔 단위[11]이니 황족들이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것은 사실이나, 이러한 지원을 받는 대신 황족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궁내청에 의해 매우 철저하게 모두 감독된다. 결혼할 상대가 황실에 적합한지와 같은 중요한 문제뿐만 아니라 국빈으로서 외국 방문 및 그러한 자리에서 입을 옷까지 전부 궁내청에서 공식적으로 지정할 정도다.마코 공주의 결혼 논란 이후 알려진 정보에 의하면 궁내청에서는 주기적으로 흥신소 등을 이용해서 부마 후보자들에 대한 뒷조사를 비밀리에 체계적으로 실시하는데 그 대상은 상류층 자녀, 화족 출신 자녀, 황적이탈된 구황족 자녀 등에 대해서 다양한 방면에서의 조사를 실시한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리스트는 주기적으로 갱신되기에 미혼의 여성 황족을 보유한 궁가의 궁주가 원하면 제공해주지만 원하지 않으면 제공해주지 않는다고 하며 만일 해당 리스트에 없는 부마 후보자에 대한 뒷조사가 필요하다면 할 수 있지만 이 경우에는 궁주의 허락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5.2. 경찰관료 출신자 증가
2022년~2023년에 걸쳐서 유독 일본 경찰청과 경시청의 경찰관료 출신자가 대폭 늘어났는 데 이는 코무로 마코의 결혼 문제로 촉발된 국민들의 반발에 대한 것으로 추정된다.하지만 이러한 경찰 출신자들의 대규모 채용은 궁내청을 2차 대전 종전 직전 군국주의 하에서의 황실로 회귀하려고 하는 게 아니냐는 강한 우려를 낳고 있으며 이는 2023년 3월 신설된 홍보과에 경찰 산업스파이 단속 등에 오랫동안 종사한 정보 통제 전문가를 수장으로 임명하면서 더욱 강해지고 있다. 실제로 그 이후 황실 기자단과 황사대부간의 회견 자리에서 황사대부는 자신이 가지고 온 대본 이외의 기자들의 질문을 모조리 묵살하는 등 기자들에 대해서도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으며, 궁내청으로부터 쏟아지는 후미히토 일가를 향한 각종 항의 전화 등에 대해서, 2023년 4월부터 궁내청 홍보실로 보내기 시작했는데 문제는 그곳에서 의도적으로 강제로 항의를 묵살시킨다는 증언들이 인터넷 등을 통해서 나오고 있다.
2024년 황사 대부가 바뀌었는데, 경찰 출신인 전임자와는 선후배 사이이며 임명 직전까지 큐슈에서 야쿠자 소탕 작전을 해서 상당한 수완을 발휘하던 사람이였다는 게 알려지면서 후미히토 일가를 옹호하는 자들조차도 이러한 말도 안 되는 인사에 대해서 후미히토 일가에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 국민들을 야쿠자 취급하냐는 의견이 나왔다.
2024년 5월, 주간문춘은 아키시노노미야 가와 경찰청 간의 암투를 다룬 특집기사를 보도했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키코 비가 평소 경찰청 간부들을 사용인으로 취급하였으며, 아키시노노미야 가는 궁내청에 파견된 경찰청 출신 궁무관들에 대한 불신을 품고 있었다고 한다. 이에 2024년 1월, 궁내청에 파견된 경찰청 출신 인사가 자진 면직되고 후임으로 외무성 출신 인사가 부임했다는 내용도 보도되었다.# #
5.3. 한국사 연구 관련
궁내청 산하의 서릉부와, 정창원 관리부에는 한국 고대사 시기, 특히 삼국시대나 남북국시대의 고문서와 유물들이 많이 소장되었으리라 추정되는데, 궁내청 측에서는 일반인은 물론이고 한국 학자들에게마저 일부 자료 공개를 안 한다는 의혹이 있다. 필사본 화랑세기 떡밥도 서릉부에 있는 원본 화랑세기를 필사해왔다는 주장에서 시작되었고, 정창원에는 실제 신라나 백제 유물들이 소장되어 있으니 이런 소리가 나올 듯도 싶다.궁내청에서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곳은 시종직, 서릉부, 산노마루쇼조칸(三の丸尚蔵館), 정창원사무소, 교토사무소 등이다. 시종직은 천황을 곁에서 모시는 곳으로 쇼와 천황 사망 당시 천황 개인의 물건이되 황위 계승과 관련된 것으로 면세물로 규정된 유물들, 즉 어물(御物)을 관리한다. 이 어물에는 삼종신기부터 수 많은 도검과 백제 아좌태자가 그린 쇼토쿠 천황의 초상 등이 포함되는데 555점으로 목록이 공개되었다.
산노마루쇼조칸(三の丸尚蔵館)은 쇼와 천황 사망 당시 국가로 반납된 미술품 등을 전시, 관리하기 위해 만든 미술관으로 장관관방에서 직접 운영한다. 현재 1만 점 정도를 수장하였으나 역시 목록을 공개하였고, 유명한 몽고습래회사 외에는 한국사와 관련된 것은 별로 찾을 수 없다. 교토사무소는 교토의 어소와 이궁 및 그곳의 전해지는 벽화 등을 관리하는 곳으로 대부분 에도시대 이후의 유물을 관리한다. 역시 한국사와는 별 관련이 없다. 다음으로 궁내공문서관(宮内公文書館)은 메이지시대 이후 천황 및 황족과 관련된 문서, 사진을 관리하는 곳이다. 수장품은 많으나 대부분 근현대사 유물이다.
서릉부는 3개 기관으로 구성된다. 능묘과, 궁내공문서관, 도서료문고가 그것이다. 능묘를 관리하는 능묘과는 천황 및 황족과 관계된 곳에서 발굴, 수습된 유물 1천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각종 동경, 도검 등 고고학적으로 한국사와 관련된 유물은 많으나 대부분 도굴된 곳을 메이지시대 이후 수습한 것으로 양이 적고 완전한 것이 아주 많지 않다. 목록은 물론 사진까지 모두 공개되어 있다.
궁내청의 도서관이라고 할 수 있는 도서료문고(図書寮文庫)는 방대한 서적과 고문서를 수장하고 있는데 이곳이 주 원만의 대상이다. 그러나 폐쇄적이라고 하기엔 8만 건의 목록이 공개되었고, 대부분 필름화가 완료되었는데 조선의 책이라고 빠지진 않았다. 애초에 궁내청은 한국 학자들에게 도서료문고를 완전 개방한 적이 있는데 2011년 한일 양국 정부의 조약으로 궁내청 서릉부에 있는 불법 유출된 고서를 반환하기 위해서이다. 이때 한국 서지학자들이 도서료문고로 들어가 조선총독부와 이토 히로부미가 불법 반출한 의궤 포함 고서 1205권을 환수하였다. 한국본 책을 직접 열어 도장을 모두 확인했다니 궁내청이 한국 학자에게 완전 문을 닫은 것은 아니다. 다만 8만건이 공개됐다고 전부 다 공개된것도 아니고 일부가 공개된것이며 비공개된 것이 더많다.
도서료문고가 형성된 과정을 보면 이곳에 한국 고대사와 관련된 자료가 있기는 어려울수도 있다. 이곳의 책은 과거 에도막부 쇼군의 문고인 모미지야마문고(紅葉山文庫)를 입수한 것과 교토의 천황 거처에 있던 어소본(御所本), 비각본(秘閣本)에 기초한다. 어소본과 비각본은 대부분 에도시대의 의례, 음악, 의학, 취미서로 분량이 많지는 않다. 여기에 세습친왕가인 후시미노미야와 가쓰라노미야의 기증본, 구 공경인 구조가와 다카쓰카사가, 미부가, 구 다이묘인 모리가, 도쿠시마 모리가, 우와지마 다테가 등이 가문의 장서를 기증하고 일부 도서를 구입하면서 이루어진 것으로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오래된 서적은 별로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당시, 고서를 포함해 최소 수십만점의 유물이 수탈되었고 위의 조선왕조의궤처럼 도서료문고에 보관되기도 했기에 모르는 일이다. 궁내청 서릉부는 이전부터 보유 중인 도서의 목록을 전부 공개하고 있지 않다는 의혹이 있어왔고 실제로 건물 공간에 비해 목록에 나와있는 도서의 수는 매우 적다는 게 공공연하게 알려져 왔다. 특히 한국인이나 한국학 연구를 하는 연구자들에게는 엄격하게 자료의 열람을 막고 있는 것도 유명한 사실이다.
정창원 사무소 관리의 정창원 유물은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인 학자에게도 공개하지 않는데 여기엔 예산의 문제가 많다. 정창원이 박물관이나 문부과학성의 관할이 되었다면 더 활발히 연구가 이루어졌겠으나, 엉뚱하게 천황가를 모시는 궁내청 관할이 되면서 예산과 인력이 자연스레 부족해졌다. 현재 정창원 연구인력의 가장 큰 당면과제는 시대에 따라 바스라지는 30만 점에 달하는 섬유와 종이 조각을 맞추는 일이다. 우리가 전시관이나 도록에서 보는 그럴듯한 유물은 그나마 보존처리가 된 것들이고 지금도 정확한 수를 모르는 유물들이 보존처리부터 기다리는 판이니 정창원의 연구는 아직도 한참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1] 상황직 직원으로 상황시종장(남성)을 비롯해 상황시종차장(남성), 상황시종(남성), 상황여관장(여성), 상황여관(여성) 및 궁중의사인 시의장과 시의가 있다.[2] 다른 관청에는 없는 궁무관이라는 관직은, 성별에 상관없이 관직을 맡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3] 장관으로 식부관장을 두고 그 휘하에 식부관장 휘하 식부부장, 식부관이 있다.[4] 악부 직원으로는 수석악장, 악장, 악장보, 악사, 악생 등이 있다. 과거에는 악부의 관직들은 악가(楽家)라고 줄리는 몇몇 가문들의 세습직이었지만 현재는 절반이상이 일반 가문이라고 한다. 식부직 악부와 비슷한 관청으로 옛 궁내성 이왕직 아악부가 있었다.[5] 다이카 개신 이후 율령을 받아들이며 성(省) 산하에 료(寮)와 직(職)을 두었고 장을 두(頭)라고 했다. 예를들면 도서료의 장이면 도서두 이런식이다. 메이지 유신 이후 궁내성을 제외하고 모든 성의 내부부국과 그 수장은 국(局)과 국장(局長)으로 바뀌었다.[6] 이왕직 장관 산하에 차관, 사무관, 찬시, 전사, 전의, 기사, 속, 전사보, 전의보, 기수, 참봉이 있었다.[7] 본래 제사를 담당하던 신기성의 관할이었다가 식부직으로 이전되어 '식부직 장전부'로 불린 관청인데 추후에 '장전직'으로 승격되었다. 직원은 장관인 장전장 휘하 장전차장, 장전, 내장전, 장전보, 사무관 및 속이 존재했다. 이후 일본국헌법이 제정되자 국가기관이 아닌 황실기관이 되어 현재까지도 존속하지만 황실기관이기 때문에 국가기관인 궁내청의 관제에서는 제외된다. 월급도 국가가 황실에 지급하는 황실 내정비에서 나오고 직원들도 공무원이 아닌 내정직원이라고 불린다.[8] 장관인 동궁대부 산하에 동궁시종장(남성), 동궁시종(남성), 동궁여관장(여성), 동궁여관(여성), 동궁시의장(의사), 동궁시의(의사) 등 직원들이 있다.[9] 화족국, 작위국, 작위료 등을 거쳤다. 왕공족, 황족, 화족, 조선귀족, 황실회의 등을 소관했다.[10] 천황을 포함한 황족의 신분 사항을 기재하는 문서로 한국의 족보와도 유사하다. 근거법령은 황통보령이다.[11] 다만 궁내청 예산은 천황 내외와 황태자 내외의 생활비 등이 포함된 내정비, 외국 국빈에 대한 의전을 제공하고 전국에 산재한 황실 재산 유지 관리 등의 비용을 의미하는 궁정비 그리고 마지막으로 황족들의 품위유지비 및 생활비인 황족비가 포함된 비용이다. 2018년 기준으로 궁내청 총 예산은 연간 114억 6581만 8000엔가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