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국 중앙성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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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성 財務省 | Ministry of Finance | |
<colbgcolor=#635a4c><colcolor=#FFF> 약칭 | <colbgcolor=#fff,#1f2023>MOF |
설립일 | 2001년 1월 6일 |
전신 | 대장성 |
대신 | 가토 가쓰노부 |
부대신 | 사이토 히로아키 요코야마 신이치 |
대신정무관 | 아즈마 쿠나요 쓰치다 신 |
사무차관 | 신카와 히로츠구 |
소재지 | |
도쿄도 치요다구 카스미가세키3초메 1-1 (東京都千代田区霞が関三丁目1番1号) | |
내부부국 |
|
외국 | 국세청 (国税庁) |
소관 독립행정법인 | 조폐국 (造幣局) 국립인쇄국 (国立印刷局) |
직원 수 | 16,251명(외국 제외) 55,906명(국세청) |
웹사이트 | | | | |
재무성 청사[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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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중앙성청 중 하나. 한국의 기획재정부에 해당한다.2. 상세
건전한 재정의 확보, 적정하고 공평한 과세의 실현, 세관 업무의 적정한 운영, 국고의 적정한 관리, 통화에 대한 신뢰의 유지 및 외환 안정 확보를 꾀하는 것을 임무로 한다(재무성설치법 제3조).국가의 예산·결산과 회계, 통화, 조세, 국채, 재정 투자 및 융자, 외환, 국유재산, 주류·담배·소금 등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며, 담배나 주류의 제조·판매 사업과 담배세 및 주세 관련을 관할한다. 또 일본담배산업(JT), 일본우정 및 일본전신전화, 도쿄메트로, NEXCO 서일본/NEXCO 중일본/NEXCO 동일본 등 국가가 대주주인 특수법인 다수를 관장한다.
2001년 1월 6일, 중앙성청개편 때 대장성(大藏省)의 폐지에 따라 그 후신으로 신설되었다. 이 때 예산 편성 권한은 경제재정자문회의(経済財政諮問会議)로[2], 금융행정은 내각부 외국(外局)인 금융청 관할로 넘어갔다.
여러 가지 이유로 터무니없이 방위 예산을 후려치기 때문에[3] 일본 밀리터리 매니아들에게 죄무성(罪務省[4])이라고 야유되기도 한다.[5]#1, #2 또한 2010년대 들어서 일본 국공립대학에도 지원을 줄이고 있어서 국가가 학문과 연구의 자유를 해친다고 비판받기도 한다. 하지만, 일본 대표 중앙성청으로서 국제적으로 대쪽 같은 위엄을 보여준 일화가 있으니 바로 일은포 사건이다.
서울대 경제학부 출신이 꽉 쥐고 있는 한국의 기획재정부와 달리 도쿄대학 법학부 출신이 헤게모니를 쥐고 있다. 일본의 행정고시 격인 국가공무원채용종합직시험에서 법률 직렬 선발 인원이 가장 많기 때문이다. 법률 직렬에서 대규모로 뽑아서 재무성을 포함한 각 부서로 보내는 것. 그러다 보니 법률 직렬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도쿄대학 법학부 출신이 재무성 역시 장악하게 된다. 현재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과거 대장성 시절엔 대학 재학중 사법시험을 합격하고도 사법연수원을 안 가고 대장성 관료로 일하는 등 정말 판검사보다 윗줄의 1류중의 1류 관청이었다.[6][7]
재무대신은 일본의 예산과 세무, 관세 등을 종합적으로 최종 관장하는 자리이므로 내각 각료 중에서 굉장히 실권이 강한 자리이다. 내각총리대신 출신이었던 정치인들은 보통 새로운 내각이 성립되어 내각 국무대신 자리를 요청 받으면 거부하고 당 부총재 같은 명예직을 받으려 한다. 하지만 새로운 내각총리대신이 재무대신 자리를 요청하면 받는 경우(다카하시 고레키요, 미야자와 기이치, 아소 다로)가 있을 만큼 정계, 관계에서 알아주는 최요직이다.
재무성의 사무차관이 정부 예산 재편성, 분배 등 사무를 최종적으로 담당하는 관직이라서 다른 중앙성청 사무차관보다 앞선 대우를 받으며 정치인과의 관계가 매우 중시된다. 관료 중의 관료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일본 관료계에서 가장 중요한 직책 중 하나다.#
내부부국 중에는 예산 재편성, 분배를 담당하는 주계국을 최고로 치는 편이다. 한국 기획재정부에서 예산실이 최강 부서인 것과 맥을 같이한다. 주계국의 수장인 주계국장은 다른 부처 국장, 재무성 내부에 다른 국장보다 한 호봉을 더 높게 지정해주는 특징이 있다. 주로 주계국 정통 라인이 주계국 주사(과장보좌급 분장관)-주계국 주계관(과장급 분장관)[8]-주계국 차장-주계국장을 거쳐 사무차관이 된다. 주세국은 세제를 담당하며 이재국은 재정[9], 국제국은 국제금융, 관세국은 관세행정을 담당한다. 대신관방은 기획조정실에 해당하며 성 내 인사를 담당하며 주계국장 다음가는 요직이다.[10] 참고로 재무성에는 경제정책을 담당하는 부국은 없는데, 한국과 달리 경제산업성에서 경제정책을 맡기 때문이다.[11]
재무성 주계국에는 다른 부처 그리고 재무성 내부에 다른 국에서는 없는 직급이 두 가지가 존재하는데 주계국 주사와 주계관이다. 먼저 주계국 주사는 주계관(주무과장)을 보좌하는데 타 부처의 회계 과장과 대등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로 일반 부처의 과장 보좌와는 별격의 직급이며, 과장급 또한 주계관이라는 별격의 직급으로 불린다. 이를 통해 재무성 그리고 그 안에서 주계국의 힘이 일본 관료사회에서 다른 부처와는 얼마나 다른지 보여주는 예시이다.
일본은 관세를 담당하는 부서가 한국처럼 별도의 청(庁)이 아닌 재무성 산하 6개의 내부부국 중 하나인 관세국으로, 한국의 교정본부나 관세청 등 처럼 재무성 상징과는 별개로 깃발이 존재한다. 흰색은 육지를, 파란색은 바다를 상징한다.
일본 세관 깃발 |
2002년부터 후지와라 노리카(藤原紀香) 등 연예인들을 동원해 개인용 국채상품 광고를 많이 내보낸다.#
3. 역사
3.1. 메이지 시대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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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시대 이전의 율령제 하에서는 태정관 산하의 8성 중 하나였으며 재정, 특히 출납에 관한 사무를 맡았다. 구체적으로는 조정의 창고를 관할하며 조정의 화폐·금은·세금·공물의 출납, 보관과 여러 쿠니(国), 백성간의 도량형과 매매가격의 공정(公定)등이었다. 단 세금, 호구, 토지 등은 민부성의 관할로 국가재정기관으로서의 역할은 크지 않아 관영공방으로서의 역할이 컸다. 즉 조선으로 치면 호조보다는 공조에 가까웠다고 볼 수 있다.
3.2. 메이지 시대 이후
재무성의 변천사 |
금곡출납소 |
↓ |
회계관 |
↓ |
대장성 |
↓ |
재무성 |
1868년 음력 1월, 조정의 정부운영을 위한 자금조달기관으로 금곡출납소가 설치되었다. 이름은 몇번 변경되어, 태정관제가 도입될 때 쯤에 회계관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869년 음력 8월, 2관8성제가 된 것을 계기로 대장성(오쿠라쇼)으로 개명되었다. '대장성(大藏省/おおくらしょう)이라는 이름은 율령제 시절부터 유래했는데, 의미는 '큰 창고[12]'이다. 구체적으로는 조정의 창고를 관할하며, 조정의 통화·금은·조·공물의 출납, 도량형과 매매가격의 공정 등을 관장했다. 9월 16일 (음력 8월 11일), 민정과 재정의 일체화를 주장하는 오쿠마 시게노부의 안에 따라 민부성을 합병하고 대형관청이 되었다. 이렇게 해서 민부경 마츠다이라 슌가쿠가 초대 대장경을 겸하고, 민부대보(民部大輔)[13] 오쿠마 시게노부가 대장대보를 겸했다. 이에 대장성의 권한강화에 반발하는 세력과의 다툼이 일어나 1870년 8월 6일 (음력 7월 10일), 민부성은 다시 분리되었다. 그러나 오쿠보 도시미치 일파를 중심으로 한 사츠마벌과 기도 다카요시를 중심으로 한 조슈벌의 대립하는 것을 피하고자 한 통합파 관료의 반격에 의해 1871년 9월 11일 (음력 7월 27일) 민부성은 다시 통합되었다.[14] 최종적으로는 1873년 11월 10일 오쿠보의 주도로 내무성이 설치될 때까지 대립이 이어졌다. 또한 1880년 3월 5일에는 공정한 회계검사를 원하는 각 성의 요구에 의해 회계부문이 독립, 회계검사원이 설치되었다.
1885년 말 내각제도가 발족했을 때, 초대 대장대신은 마쓰카타 마사요시였다. 그 후 관제가 정비되어 세입·세출, 조세, 국채, 조폐, 은행 등을 관장하는 관청이 되었다. 국가예산의 배분, 조세정책이나 금융정책 등의 재정정책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아주 강력한 권한을 가졌다.[15] 육군성, 해군성, 내무성과 함께 일본 중앙성청 중 '4강'으로 꼽혔으나, 제국주의 시대였던 만큼 실질적인 무력을 보유한 앞의 세 기관에 밀려 말석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다만 1933년 5상회의(五相會議)가 처음 설치되었을 당시부터 내각총리대신, 외무대신, 육군대신, 해군대신과 함께 출석 대상이었다.
하지만 육군성, 해군성, 내무성 등 일본 제국 시절 강력한 조직들이 GHQ에 의해 완전히 공중분해되었고, 대장성도 원래 조직 해체의 대상이었지만 GHQ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조직을 그대로 보존하였다. 이에 전후에 혼자 살아남아 가장 강력한 관청으로 자리 매김한다. 대장성은 '성 중의 성', 대장대신은 '대신 중의 대신', 대장성의 관료는 '관료 중의 관료', 대장성 사무차관은 "차관 중의 차관"으로 불렸다. 당시 대장성 고위관료들은 '우리는 후지산, 나머지는 줄지어 늘어선 산'이라고 호언장담했을 정도였다. 대장성 내에서는 주계국이나 주세국 등의 재정부국은 '2층 팀', 은행국이나 증권국 같은 금융부국은 '4층 팀'이라고 불렸다.
1998년에는 그 악명높은 노팬티 샤브샤브 접대사건이 일어났다. 경찰이 해당 업소를 공연음란죄로 수사하려던 도중 이용객 명단에서 대장성과 일본도로공단, 일본은행 고위직들과 일부 재계 인사들이 연루되었음이 밝혀지면서 일대 파란이 일어났고, 해당 연루자들은 당연히 체포되거나 직장에서 쫒겨나는 등의 말로를 맞았다.
2001년 중앙성청개편에 의해 대장성은 분할되어 재무성과 금융청(내각부의 외국)으로 각각 권한을 이관했다. 재무성은 여전히 예산 재편성, 분배 등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예산 편성권은 경제재정자문회의로 넘겨졌으며 금융행정은 내각부의 외국인 금융청으로 이관되었다. 무소불위의 최강 관청 대장성의 전설은 막을 내렸지만 여전히 정부 중앙성청 중에선 영향력이 가장 강하며 일본 내각에 여러 국무대신중 재무대신은 가장 실권이 있는 최요직이고, 관료 중에서도 재무성의 재무관료가 최일류이다.
일각에서는 오랫동안 써오던 '대장성'이라는 이름을 두고 왜 이름을 바꾸냐는 의견도 있었는데, 이에 대해 하시모토 류타로는 '그럼 게비이시[16]를 부활시킬까?'라 비아냥대기도 했다고.
4. 조직
간부- 대신
- 부대신
- 대신정무관
- 사무차관
- 재무관
- 비서관
내부부국
- 대신관방
- 총괄심의관 1인
- 정책평심의관 1인
- 심의관 11인
- 참사관 10인
- 후생관리관 1인
- 비서과
- 문서과
- 회계과
- 지방과
- 종합정책과
- 정책금융과
- 신용기구과
- 주계국
- 차장 3인
- 주계관 11인
- 주계감사관 1인
- 총무과
- 사계과
- 법규과
- 급여공제과
- 조사과
- 주세국
- 참사관 1인
- 총무과
- 조사과
- 세제제1과
- 세제제2과
- 세제제3과
- 관세국
- 총무과
- 관리과
- 관세과
- 감시과
- 업무과
- 조사과
- 이재국
- 차장 2인
- 계획관 2인
- 총무과
- 국고과
- 국채기획과
- 국채업무과
- 재정투융자총괄과
- 국유재산기획과
- 국유재산조정과
- 국유재산업무과
- 관리과
- 국제국
- 차장 1인
- 총무과
- 조사과
- 국제기구과
- 지역협력과
- 외환시장과
- 개발정책과
- 개발기관과
- 재정제도등심의회
- 관세·외환등심의회
- 관세등불복심사회
- 재무종합정책연구소
- 관세연구소
- 관세중앙분석소
- 회계센터
- 홋카이도재무국
- 도호쿠재무국
- 간토재무국
- 호쿠리쿠재무국
- 도카이재무국
- 긴키재무국
- 주고쿠재무국
- 시코쿠재무국
- 규슈재무국
- 하코다테세관
- 도쿄세관
- 요코하마세관
- 나고야세관
- 오사카세관
- 간베세관
- 모지세관
- 나가사키세관
5. 역대 재무대신
영국의 의원내각제를 본뜬 현대 일본의 정치 제도 특성상[17] 재무성은 중요도나 위치가 매우 높기때문에 일본 내각 각료인 국무대신 서열에서도 3~4위이다.[18] 일본 내각에선 총리에 이어 내각관방장관과 더불어 정부 내 중요 실권(예산, 조세 등)도 가지고 있어 사실상 일본에서는 총리 등용문이라고 불리는 직책이라 재무대신을 거쳐간 사람중에 거물 정치인[19]이 아주 많은 편이다. 마쓰카타 마사요시, 다카하시 고레키요, 와카쓰키 레이지로, 하마구치 오사치, 이시바시 단잔, 이케다 하야토, 사토 에이사쿠, 다나카 가쿠에이, 후쿠다 다케오, 오히라 마사요시, 다케시타 노보루, 미야자와 기이치, 하시모토 류타로, 간 나오토, 노다 요시히코가 재무대신(前 대장대신)을 거쳐 총리직에 올랐다.
또한 다카하시 고레키요, 미야자와 기이치[20]는 전직 총리였지만 다시 대장대신(現 재무대신) 직을 맡았고 아소 다로 역시 총리를 역임한 후 2012년 제2차 아베 신조 내각부터 2021년 스가 내각까지 9년이나 재무대신으로 재직하면서 부총리를 겸하며 위상이 정권운영 파트너급이었다. 거기에 현직 재무대신 가토 가쓰노부 역시 스가 내각의 내각관방장관을 맡은 바 있다.
[1] 뒤에 보이는 빌딩들은 중앙합동청사 제7호관[2] 예산에 대한 재편성 권한은 여전히 재무성 주계국이 담당한다.[3] 예: 방위성 - "명중률이 높아졌습니다!" / 재무성 - "그럼 총알이 그렇게 많이 필요 없겠군. 예산 삭감이다." | 방위성 - "신형 전차와 신형 장갑차를 양산할 계획입니다."/ 재무성 - "둘 다 포 달려 있네. 둘 다 전차 아냐? 둘 중에 하나만 만들어!"[4] 재무성과 죄무성은 ざいむしょう(자이무쇼)로 발음이 같다.[5] 그런데 2018년 재무성이 모리토모 스캔들, 가케학원 스캔들에 가담했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죄무성이 더는 농담이 아닌 상황이 되고 말았다[6] 물론 당시엔 관료로 몇년 이상 일하면 변호사 자격을 주긴 했으나, 법조인보다 관료가 더 윗길의 진로로 취급받았다.[7] 후루카와 모토히사 중의원 의원이나 성희롱 사건으로 면직된 후쿠다 준이치 전 사무차관이 이런 케이스. 사법연수소에 가지 않았지만 관료 경력으로 변호사 자격증을 발급받아 현재 변호사로 활동중이다.로펌 소개페이지[8] 주계관은 11명이 존재하는데 한국의 기획재정부 예산실 산하 각 심의관들에 해당한다. 내각•디지털•부흥•외무담당 1인, 사법•경찰•경제•산업•환경담당 1인, 총무•지방•재무•소방담당 1인, 문부과학담당 1인, 후생노동(의료•간호와 노동•연금)담당 2인, 농림•수산담당 1인, 국토•교통•공공사업•철도담당 1인, 방위담당 1인에 예산총괄 및 기획담당 2인[9] 금융정책/행정/감독 기능은 금융청으로 분리되었다. 한국도 2000년대까지는 이재국이 존재했었다. 지금은 완전히 산산조각나서 여러 직책으로 분리됐지만 일본과 마찬가지로 한국도 재무부 이재국은 예산국과 함께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던 곳이었다. 특히 한국은 관치금융이 심했던 시기라, 부살기업 정리 등의 권한을 가지던 이재국이 정말로 막강했다.#[10] 챠타니 에이지(茶谷栄治) 전 사무차관이 주계국 과장 - 대신관방 과장 - 주계국 차장 - 대신관방 총괄심의관 - 대신관방장 - 주계국장 - 사무차관 루트를 타며 주계국과 대신관방의 요직을 오갔다.[11] 한국과 일본에서 경제정책을 담당하는 부처는 각각 경제기획원, 경제기획청인데, 기획재정부가 경제정책을 담당하게 된 것은 1994년에 재무부와 경제기획원이 통합되었기 때문이며, 경제산업성에서 경제정책을 맡는 것은 2001년 중앙성청개편 당시 통상산업성에 경제기획청이 흡수되었기 때문이다.[12] 영어에도 Treasury라는 비슷한 표현이 있다. 뜻은 성(城) 등에 있는 금고(보고). 그래서 미국과 영국의 재무부에도 이 단어가 들어가며, 특히 영국 재무부(His/Her Majesty's Treasury)는 일본에서도 '대장성'이라 번역한다. 대장대신의 약칭은 장상(蔵相)[13] 대보(大輔)는 오늘날로 치면 차관급 공무원에 대응되는 관직이다.[14] 단 식산흥업 부문은 1870년 음력 윤10월에 공부성(지금의 국토교통성의 전신)으로 민부성에서 분리되었다.[15] 오죽하면 그 안하무인 관동군조차 대장성 관료 앞에서는 쩔쩔 맸을 정도였다. 대장성 고위관료들이 단체로 관동군 사령부를 찾으니, 사령부 측에서도 나름대로 약소하게나마 퍼레이드를 벌였다는 카더라가 전해진다.[16] 検非違使(검비위사). 일본 율령제 하의 영외관의 하나이다. 이름은 '비위(非違, 법이 아닌 것 즉 위법행위)를 검찰하는 천황의 사자'라는 뜻이다. 즉 한국으로 치면 '호조를 기재부로 바꾸는 게 싫으면 의금부를 부활시킬까?'가 된다. '대장성'이란 이름은 멀리는 율령제 시절부터, 가까이는 메이지 시절부터 써 온 이름이니.[17] 영국 재무부는 예로부터 내각부에 이은 권력 서열 2위였으며 실제로 총리 관저인 다우닝가 10번지의 옆인 다우닝가 11번지가 재무대신의 공관일 정도로 재무장관의 권력이 강력한 편이다. 애초에 영국 총리는 제1대장경직을 겸하며, 영국 재무대신이 제2대장경직을 겸한다.[18] 하지만 재무대신의 경우 내각 부총리도 겸해서 임명받는 경우가 아주 많기 때문에 총무대신을 넘어 서열 순위 1위로 올라가는 경우가 많다.[19] 미즈타 미키오는 이케다 내각과 사토 내각에서 대장대신직을 역임하고 자유민주당 내 중간 파벌의 영수로 활동했으며, 아이치 기이치는 다나카 가쿠에이 내각에서 대장대신을 역임하기전 이미 외무대신 등 주요 국무대신을 역임했던 중요 정치인이자 각료였다. 이부키 분메이는 재무대신직을 거친 이후 자유민주당 간사장을 역임했고, 다니가키 사다카즈는 이후 자유민주당의 총재를 지냈고 노다 내각에서 재무대신을 맡은 아즈미 준은 원내대표의 위치인 입헌민주당 국회대책위원장직을 맡았었다. 아소 다로는 내각총리대신 이후 아베 신조 내각과 스가 내각에서 부총리 겸 재무대신을 맡았다.[20] 당시기사, 미야자와 기이치는 80대 초반이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내각에서 가장 실권이 있는 각료인 대장대신, 초대 재무대신으로서 활약하며 헤이세이의 다카하시 고레키요라고 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