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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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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를 상징하는 프라이드 플래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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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용어의 역사3. 성(性)과 정체성
3.1. 성적 지향과 행동3.2. 커밍아웃3.3. 동성 간 관계3.4. 킨제이 보고서
4. 동성애의 원인5. 동성애의 역사 (고대 ~ 근대)
5.1. 한국사5.2. 해외
6. 현대 동성애 인구 조사7.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시선8. 종교적 관점9. 동성애를 둘러싼 비방과 반박10. 동성애와 문화11. 같이 보기12. 참고자료

1. 개요

동성애()는 생물학적 또는 사회적으로 같은 성별을 지닌 사람에게 성적 끌림 혹은 성적 행위를 느끼는 것을 말하고, 그러한 사람을 동성애자라고 한다. 동성애적 성향이 인간에게서 무엇 때문에 나타나는지 알아보기 위해 학자들은 수십 년간 연구를 했지만 제대로 된 연구가 나온 건 최근 몇 년간 정도이다. 성적 지향은 여러 인자에 의해 결정되며, 번식이 불가능한[1] 동성애자들이 자연적으로 나타나고 지금까지 이어지는 건 특성이 다른 개체에서 떨어진 새끼들을 돌보기 위해 자연선택에 따라 유지됐다는 게 학계의 추측이다. 동성애는 인간에게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며, 다른 동물들에게도 종 혹은 개체마다 이성애, 동성애, 양성애, 무성애, 범성애 같은 여러 성적 지향들이 자연적으로 관찰된다.

현재 전 세계의 주류 정신학회는 동성애를 이성애, 양성애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정상적인 성적 지향 중 하나라고 결론 내리고 있다. #

보통 남성 동성애자를 게이, 여성 동성애자를 레즈비언이라고 하고 있으나 영어권에서는 여성이건 남성이건 동성애자는 게이(gay)로 묶어 부르는 경우도 많다. 또는 퀴어, 한국 한정으로 이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국에서 과거에는 "호모"[2]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 영미권이나 일본에서는 속어로서 지금도 쓰이고 있다.

서양의 미술, 음악 계열 사회에서는 매우 흔하며, 성공한 거장 10명중에 1-2명 정도가 동성애자라는 소문도 있다. 동성애자가 아닌 스타들도 동성애자 스타가 본인이 동성애자라고 커밍아웃 하는거에 대해서 딱히 놀라지도 않는 분위기다. 당연하지만 본인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커밍아웃하지 않는 경우도 많아서 실제로는 그보다 더 많을 수도 있다. 반면에 아직 대한민국을 비롯한 동양에서는 커밍아웃하는 사람이 그렇게 흔하지는 않다.[3]

2. 용어의 역사

  • 서구
푸코의 연구에 따르면(<성의 역사>) 19세기까지는 "동성애적 정체성"을 칭하는 용어가 없었다. 대신 "동성애적 행태"를 칭하는 용어만이 있었다. 푸코는 최초로 동성애가 정체성으로 분류된 것이 1870년 칼 베스트팔(Karl Westphal)의 "정반대의 성적 감각(Contrary Sexual Feelings/Sensations)"에서부터라고 밝혔다.

17세기에는 여성 간의 동성애를 트리바디즘(Tribadism) 혹은 레즈비어니즘(Lesbianism)이라고 칭했다. 전자는 그리스어로 "비비다", "문지르다"라는 뜻의 "τρίβω(tríbō)"로부터 왔다고 한다. 여성 간의 성행위를 묘사하는 용어인 것이다. 후자는 지금까지도 널리 쓰이는 용어로서 그리스의 레스보스섬에서 여성들끼리 사랑을 나누었다는 데서 온 단어다. 이와 유사하게 레스보스섬에 살면서 여성들에게 사랑의 시를 썼던 여류 시인 사포의 이름을 따 사피즘(Sapphism)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소도미(Sodomy)는 성경에 등장하는 타락의 도시 '소돔'에서 따온 말로 로마 시대인 96년의 저작에도 발견되고, 5세기 초에도 사용되고 있었다. 다만, 그 의미에 관하여 오늘날처럼 남성 간의 동성애적 행위를 나타내는 용어가 아니라, 동성 간의 성행위를 포함한 이성애적 변태 성행위를 모두 포괄하고 있다. 당대 교회가 정한 바에 따르면 남성 상위 체위가 아닌 모든 체위가 소도미에 해당한다. 더 나아가 수간이나 성노예로 사용하기 위해 거세하는 것 등도 포함한다. 하지만 영미권에선 현대에 들어와선 거의 완전히 동성애 행위를 모욕적으로 부르는 것으로 변해버렸다. 오늘날 독일어 Sodomie나 노르웨이어 sodomi는 수간만을 나타내는 말이다.

'남색'이라는 뜻을 가진 Pederasty는 본래 고대 그리스에서 미소년에 대한 남성들의 끌림 혹은 그들의 관계를 나타내는 용어였으나, 18-19세기에 들어 동성애적 행위를 나타내는 용어가 되었다.

오늘날 동성애를 칭하는 용어인 Homosexuality는 어원적으로 그리스어 접두사 ομο-(homo-)와 라틴어 sexualis에 접미사가 붙어 변형된 것이며 "같음"을 뜻하는 접두사 Homo-와 "성"을 뜻하는 "Sexuality"가 결합됐다. 1868년 헝가리계 오스트리아인 작가였던 카를 마리아 케르트베니(Karl Maria Kertbeny)가 프로이센 왕국소도미법 개정을 촉구하는 글에서 "Homosexual"이라 쓴 것이 최초 용례이다. 영어권에서 Homosexual이라는 단어가 처음 쓰인 것은 독일의 리하르트 폰 크라프트에빙(Richard von Krafft-Ebing)이 성행위에 관하여 쓴 <성적 심리>의 번역본에서였다. 이 용어는 1906년 빌헬름 2세의 측근인 하르덴과 오일렌부르크의 동성애 스캔들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그 후 정신분석학, 심리학, 정신병리학 등의 발달로 동성애를 나타내는 학술적 용어를 정립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있었으나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동성애자를 비롯한 성소수자를 모두 한데 엮어서 "이상한" 놈들이라고 한 데서 퀴어(queer)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처음에는 매우 비하적인 의미였는데, 이에 대응하여 동성애자들은 본래 "행복한", "유쾌한"이라는 뜻을 가진 게이(gay)라는 단어로 스스로를 부르기 시작했다.[4] 스스로의 정체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자 나중에는 비하적 의미였던 퀴어가 오히려 긍정적인 의미로 선해되어 받아들여졌다.
  • 한국
동성애(同性愛)라는 표현은 1910–1920년대 일본에서 이른바 '통속성욕학(通俗性欲学) 붐'이 일던 시기에 성과학서 용어들을 한자어로 번역하면서 고안됐다. 한국어권에서는 일제강점기 시기 출판물에서 동성애의 용례를 찾아볼 수 있다. 1921년 용례. 오늘날에는 영어 단어를 차용해 남성 동성애자를 '게이', 여성 동성애자를 '레즈비언'이라고 구분하여 부른다.

90년대 초반까지는 트랜스젠더를 '게이'라고 부르고, 남성 동성애자를 멸칭에 가까운 '호모'라고 불렀다. 90년대 이후 한국어로 동성애자를 칭하는 말을 만들어 '이반'이라는 말이 등장했는데, 이성애자와 동성애자를 두고 봤을 때 이성애자들을 보통 일반(一般)인이라고 취급하는 것에 반하여 동성애자들이 본인들을 뜻하는 이반(異般)이란 말을 만든 것이다.

3. 성(性)과 정체성

20세기 초 동성애에 대한 글을 쓴 저자들은 동성애가 당사자의 성별과 본능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이해했다. 예를 들면, 전형적인 몸매를 가진 여성이 여성에게 매력을 느낀다면 그 사람은 남성스러운 특징을 갖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며,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고 생각했다. 남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동성애를 성적인 반전으로서의 이해는 당시에 논란을 일으켰다. 20세기 후반을 지나면서 성별 정체성성적 지향과 구별되는 현상으로 이해되었다.

트랜스젠더시스젠더는 남성이나, 여성, 둘 다에게 매력을 느낄 수 있지만, 각각 성적 지향을 느끼는 비율은 다르다. 동성애자, 이성애자, 양성애자는 개별적으로 남성스럽거나 여성스럽거나 혹은 중성적일 수 있다. 또한, 동성애자 커뮤니티의 많은 구성원들과 지지자들은 "이성애자는 성 관습에 순응"하고 "동성애자는 성 관습에 순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을 부정적인 관념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연구에 따르면, 다수의 동성애자들이 어린 시절에 성 관습에 순응하지 않았던 것으로 응답했다.

3.1. 성적 지향과 행동

Sexuality and identity.

3.2. 커밍아웃

커밍아웃은 성적 지향 또는 성별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을 의미하며, 심리적 과정으로서 다양하게 설명되며 경험된다. 일반적으로, 커밍아웃은 세 가지 단계로 설명된다. 첫 번째 단계는 "스스로 알게되는 것"으로, 정체성을 자각하게 됨으로 동성 간 관계에 열려있음을 보여주는 상태다. 이것은 종종 내적인 커밍아웃이라 불린다. 두 번째 단계는 가족, 친구, 동료 등 타인에게 커밍아웃하기로 마음먹은 것을 말한다. 이 시점에 이들은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고 신뢰하지 않을 수 있다. 때로는 자신의 가족에게도 말하지 않게 된다. 세 번째 단계는 일반적으로, LGBT로 드러내 놓고 살아가는 것이다.

성 정체성 발달에 대한 연구에 의하면,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LGB)의 성 정체성 발달은 복잡하며 어려운 과정이다. 소수 민족 그룹 대부분의 LGB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알려주거나 그 정체성을 강화하고 지지하는 유사한 사람들의 공동체에서 자라지 않고 동성애에 대해 무지하거나 공개적으로 적대적인 공동체에서 자라난다."

아웃팅은 타인의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에 대해 동의 없이 밝히는 행위를 말한다. 유명한 정치인, 연예인, 군인, 성직자들이 악의적인 동기, 정치적 신념, 도덕적 신념 등을 이유로 아웃팅당한 적이 있으며, 많은 LGBT 운동가들은 아웃팅을 전적으로 반대하는 반면, 일부는 자신의 영향력으로 다른 동성애자를 해치려 하는 공인들을 아웃팅하도록 장려하기도 한다.

3.3. 동성 간 관계

동성애자는 다양한 방법으로 섹슈얼리티를 표출할 수 있으며, 그 방법이 행동이 될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많은 동성애자들은 같은 성별 정체성을 가진 사람과 성적 관계를 맺는 경우가 우세하다. 다만 일부는 이성, 양성과 관계를 맺거나, 금욕하기도 한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많은 동성애자들이 오랫동안 전념하는 관계를 원하며, 실제로 맺는다고 한다. 예를 들면 40~60%의 게이와 45~80%의 레즈비언이 연애 중이다. 또한 미국의 18~28%의 게이 커플과 8~21%의 레즈비언 커플은 10년 이상 함께 살았다고 한다. 연구에 의하면, 동성 커플과 이성 커플은 관계의 만족도나 서로에게 전념하는 정도가 비슷했다. 따라서 성적 지향보다는 성별이나 나이가 관계의 만족도와 전념을 예측하기에 더 적합했다. 또한 동성애자와 이성애자는 연애에 대한 기대와 이상을 비슷하게 공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3.4. 킨제이 보고서

미국 하버드 대학교의 이학 박사인 알프레드 킨제이는 두 차례에 걸친 현대인의 성생활에 관한 연구 결과 발표를 통해 성(性)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킨 인물로 유명하다. 1930년대 당시 인디애나 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킨제이는 성에 관한 학문적 연구 결과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록펠러 재단의 후원 아래 이와 관련한 연구를 진행한다.

1948년, 5,300명의 남성의 표본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 첫 번째 보고서인 《남성의 성생활》이 출간되었다. 워델 포메로이, 클라이드 마틴과의 공저로 발표된 이 책에서, 킨제이는 조사 대상 중 4%의 남성이 평생을 동성애자로 일관했으며, 37%의 남성이 쾌락을 동반한 동성애 경험을 최소 1회 이상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해 극소수 남성들만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동성애에 대한 미국인들의 편견을 깨는 데 일조했다.

1만여 명의 남녀를 대상으로 조사한 킨제이 보고서에 따르면, 만 20세에서 35세 사이의 백인 남성 중 11.6%가 양성애자에 해당하며, 동일 연령대의 미혼 여성의 7%, 이혼한 여성의 4%도 양성애자에 해당한다. 또한, 만 20세에서 35세 사이의 여성 중 2~6%는 동성애자에 가깝지만 부분적으로 이성애적 성향을, 동일 연령대의 미혼 여성의 1~3%는 절대적 동성애자에 해당한다고 한다.[5]

당시까지만 해도 금기에 해당했던 여성의 성(性)을 직접적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논란의 중심에 섰으며, 비난이 계속되자 록펠러 재단이 연구 후원을 중단하는 사태까지 발생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킨제이 보고서는 사회 계층에 따라 성 문화가 다르며, 이성애 및 금욕 생활이 도덕적이고 일반적인 규범이라는 사회적 통념을 깨고 동성애에 대한 대중의 인식 변화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이성애자의 동성에 대한 일회적 성적 경험에 불과한 것을 동성애 범주의 경험으로 잘못 규정하거나 소수 양성애 영역을 세분화시켜 과장시키고 타고난 이성애자와 마찬가지로 타고난 동성애자에 대한 기본 정의를 후천적 시각, 단일한 이성애, 동성애 정도 경향으로 왜곡하는 동성애 혐오적 태도를 고착화했다는 비판이 있다. 아울러 킨제이보고서는 잘못된 조사방법을 적용함으로서 왜곡된 결론을 도출했다는 점에서 신뢰할 만한 근거자료가 되지 않는다.

4. 동성애의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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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동성애의 역사 (고대 ~ 근대)

5.1. 한국사

신라시대의 화랑이 동성애를 했다고 추측하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대부분 위작으로 의심받는 필사본 《화랑세기》에 근거를 두고 있어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 정확한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고려시대 때는 국왕이 동성 연애를 했다는 기록이 조금씩 전해지고 있다. 예컨데 목종의 경우에는 어머니 천추태후의 등쌀에 국정에 흥미를 잃고 동성애에 몰두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고려사절요》에서는 그 덕분에 목종에게는 자식이 없다는 얘기도 적혀있다. 충선왕은 측근이었던 원충을 남색으로 총애하였다. 이규보의 작품 《차운공공상인 증박소년오십운》은 유가대사 경조라고 하는 고승과 박소년의 사랑 이야기인데 동성애를 일컫는 옛단어인 대식(對食)이 직접적으로 언급된다. 공민왕은《고려사》 등에 자신의 뜻대로 정국이 돌아가지 않자 향락에 빠져 자제위 등을 설치해 미소년들에게 자신의 시중을 들게 했다, 자제위 소속의 소년이 관계를 맺기도 했다는 식의 기록이 있으나, 고려사 자체가 조선조의 프로파간다 성향이 있어 확정하기는 어렵다.

조선시대가 되어 유교가 사회 질서로 정립됨과 함께 동성애는 본격적으로 음지로 숨어든다. 조선 시대의 가장 큰 동성애 스캔들은 세종대왕의 장남 문종의 2번째 세자빈이었던 순빈 봉씨 사건이었다. 순빈 봉씨는 남편과의 사이가 원만하지 못했고, 그래서 궁녀들과 동성애 행위를 계속해서 남발하다 들켜서 폐출당하고 결국 자살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조선통신사가 일본의 동성애 풍습을 괴이하게 여겼다는 기록도 있다.

다만 조선 후기로 접어 들면서 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민간의 동성애는 어느정도 있었던듯 한데 미소년을 두고 동네 남정네들이 겨루기를 한다는 기록등이 조선해어화사등에서 언급된다. 조선 후기 문인 육용정의 《이성선전(李聖先傳)》에는 주인공 이성선이 이웃집 소년을 사모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백범일지》에도 치하포 사건으로 복역 중이던 시절, 남색 커플을 이용하여 탈옥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외에도 남사당패에서 남색을 즐겨했다는 기록물들이 종종 나온다.

에서는 후정(後庭)놀음이라는 이름으로 간간이 행해졌다는 조선 기록이 남아있다. 단 이를 두고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허용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그런 기록이 남아있다는 것 자체가 불교를 깎아내리기 위해서 남아 있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 사실 유교 사상 자체를 보면 동성애를 차별했다거나 금지하지는 않는다. 그냥 노코멘트다.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다. 단지 사회 분위기가 쉬쉬하는 것이었을 뿐이었다.

근대의 경우 권장은 아니더라도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개화 이후 나타난 신여성들의 경우, 아직 구식인 가정이나 신지식인인 척하면서 신여성을 노리는 유부남들을 피해 자신들끼리 애틋한 감정을 느끼고 동성애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았다. 구식과 신식의 과도기였던 시절, 결혼은 부모와 집안에서 정해 준 사람과 해야 했다. 이렇게 억지 결혼을 한 남성들이 고향을 떠나 신식 학교에서 신식 교육을 받으면[6], 고향집에 구식 아내를 남겨두고는 본인이 좋아하는 신여성과 교제하기 일쑤였다.[7] 남성의 이러한 행동은 용인되었으나, 여성은 그렇지 못했다. 또한 아직 보수적인 풍토가 짙어, 남녀가 자유로이 연애하는 것을 매우 나쁘게 생각하던 시절이었고, 특히 이는 여성에게 더욱 엄격했다.[8] 그래서 신식 여학생들이나 신여성들은, 남성과의 교제 대신 여성끼리의 교제를 많이 택하게 된 것이다.

이를 비관해 동반 자살한 사례까지 있다.[9] 홍옥임[10]과 김용주라는 두 여성의 사건인데, 이는 훗날 콩칠팔 새삼륙이라는 뮤지컬로도 만들어졌다. 이 일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자, 비슷한 사건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남성 역시 학교 기숙사의 발달로 사건이 일어나는 일이 많았다.

당시 근대 사회에서는 동성애가 결혼과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나쁘게 보지 않는 편이었다. 그저 사춘기 때의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보는 편견이 팽배했으며, 이 편견은 역설적으로 동성애에 대한 관용적인 태도가 되었다. 다만 동성애 문제가 연애를 넘어 결혼까지 가는 경우 이야기는 달라졌다. 청소년 시절의 연애에서는 자유로웠을지 몰라도 그 이상에 대해서는 많은 제약을 받았다. 하지만 여자가 여자와 결혼식을 올린 용자급 사례도 있었고, 이것은 당시 신문에서도 기사가 실렸다고 한다. 후에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변절한 춘원 이광수의 작품 중, 남자 대학생이 남자 동급생에게 묘한 감정을 품는다는 〈윤광호〉라는 작품도 있다.

파일:attachment/1930s-homosexuality.jpg
고요한 [ruby(女學校, ruby=여학교)]뒷모퉁에는 참말 나혼자보기에는 아까운 [ruby(情景, ruby=정경)]이 있다。 새빨간뺨。나려감은눈。 가느다란몸집。
둘이는 정답게 어깨를 겨렀다。
말할듯이 말할듯이 말은 못하고 손짓발짓 [ruby(愛嬌, ruby=애교)]만피우는 어린[ruby(斷髮女學生, ruby=단발여학생)] 점잔을 빼면서도 그를어루만지는 [ruby(上級生, ruby=상급생)]、이들이 아마도 말많은 동무들의 [ruby(問題人物, ruby=문제인물)]인듯십다。
▲ 1930년대 신문 삽화에 레즈비언의 연애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현대 대한민국에서는 1948년 이래로 동성애는 범죄가 아니며, 처벌 또한 받지 않는다.

21세기에 들어서는 다른 나라들과 같이 차별금지법 등 동성애자를 비롯한 성소수자들에 대한 이해 및 인권 보장을 위한 법안이 발의되고 있으나 통과되지는 못하고 있다.

5.2. 해외

고대 이집트, 아시리아, 바빌론, 히타이트, 고대 인도, 고대 중국 등등 고대 문명에서 동성애가 존재했다는 고고학적 증거는 매우 많다. 생물학적 연구에서도 나왔다시피 동성애는 인류 시작, 아니 그 이전부터 있던 것이다.[11] 고대 이집트에선 동성 커플이 함께 매장된 무덤이, 아시리아에서는 동성 결혼을 축하하는 종교 경전이 발견되었고, 고대 인도에서는 동성 커플을 위한 카마수트라도 있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군대에서 동성애를 권장했는데, 이유는 동료애를 심고 사기를 고취시키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리스의 팔랑크스는 대열을 유지하는 것이 특히 중요했다는 특성을 볼 때, 이해하기 어려운 일은 아니다. 테베신성부대연인과 같은 부대에 있으면 자신의 비겁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을 것이기에 더욱 열심히 싸울 것이다라는 이유로 아예 동성애자로 구성된 부대였다고 하며 게다가 전과도 매우 좋았다.

플라톤의 《국가론》 같은 걸 보면 소크라테스가 소년애(少年愛)를 완벽한 사랑이라 찬양하는 구절도 있다. 신화에서 남신들이나 영웅들이 아름다운 소년들을 후리는 이야기도 드물지 않다.[12] 그리스인들은 소년애가 진정한 의미의 사랑이 아니라 남존여비 사상의 부산물이라고 설명했다. 여성의 성적인 면을 상징하는 여신인 아프로디테가 신화 상에서 취급이 좋지 않은 것에서 볼 수 있듯이, 그리스에서 여성은 심하게 말해서 애 낳는 기계 취급이었다. 여성을 통해서는 육욕만을 해소할 수 있으며 진정한 정신적인 사랑은 남성과 남성만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동성애는 남성들끼리 할 수 있는 정신적인 일종의 유희였다는 것이다.

여자 동성애의 경우, 플루타르코스의 기록에 의하면 그리스 도시 국가들에서 여성 간의 연애는 결코 드문 일이 아니었고 예를 들어 스파르타에서는 귀부인이 미모의 소녀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여성의 사회적 위치가 매우 낮았던 만큼 남성 동성애에 비해 그 활동이 그다지 활발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에서도 모든 종류의 동성애를 긍정적으로 여겼던 것만은 아니다. 소년이 어른이 되어서도 남자와 어울리는 것은 어른스럽지 못한 행동으로 여겼다. 특히 성인 남자가 소년들이 맡는 성기를 받는 역을 하는 것은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동성애 자체를 성적 타락이라고 깠다. 더 자세한 내용은 고대 그리스/동성애 문서 참조.

고대 로마에서는 그리스 문화의 영향으로 동성애가 자랑할 만한 것은 아니더라도 이질적인 풍습으로 인정은 되었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로마 시민 측이 삽입당하지 않는 역할일 때에 한정되었다. 가부장적인 관습이 강했던 로마인의 사고방식으로는 삽입당하는 건 곧 정복당하는 것이었고, 로마 시민은 정복되어서는 안 되는 자유로운 존재였기 때문이다. 노예랑 하는 것은 금기는 아니었지만, 그다지 좋은 시선은 받지 못했다. 대 카토는 미소년 노예에 높은 값을 치는 현실을 보고 로마가 망하게 생겼구나 하고 한탄하기도 했었다. 시나 문학을 봐도 그리스와 비교하면 동성애자를 놀리거나 조롱하는 시도 많았다. 네로의 스승이었던 세네카가 동성애를 혐오한 로마인 중 하나. 동성애는 로마인들 사이에서 은근히 못마땅하게 여겨져서 네로가 미움받은 이유 중 하나가 공공장소에서 동성애적인 행동을 한다는 것이었고, 여러모로 유능했던 하드리아누스 황제도 그의 동성애 취향만은 로마인들이 스스럼없이 깠다. 하지만 1세기경 로마에는 이런 유물도... 로마 시대의 동성애는 지배 계층 입장에서는 뿌리 뽑고 싶은 악습이었지만 이런 게 나올 정도로 어찌할 수 없는 풍습이었다. 애시당초 세네카나 대 카토가 깐 정도면 당시 이곳저곳에서 공공연히 행해지던 거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로마 제국그리스의 동성애는 로마가 기독교를 받아 들이면서 배척되다가 기독교를 국교화한 테오도시우스 1세가 동성애를 공식 비난하며 남창을 처형하라는 지시가 내려졌고 유스티니아누스 1세때 동성애자를 화형에 처할것을 명하면서 종언을 맞는다. 그러나 유스티니아누스 1세 이후에도 거세된 미소년을 값진 선물로 인식했는 기록이 있다. #

중세 시대 유럽에서는 기독교적인 관점에 따라 동성애를 종교적인 죄악으로 보았기 때문에 동성애자는 이단자, 악마 숭배자와 동급으로 판단하여 동성애자를 색출하여 그냥 죽이거나, 고문하다 죽이거나, 불태워 죽이거나 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하지만 왕이나 상류 계급에선 묘하게 동성애가 성행했던 것 같다. 프랑스 왕인 필리프 1세는 아예 자기 전 동성애인을 주교로 임명했다고 하고, 그래서인지 이런 분위기가 르네상스 이후 근대까지 이어지면서 동성애는 귀족이나 상류층들의 타락한 관습이라는 이미지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흔히 알려진 중세 유럽 사회의 모습이 정립된 13세기 이전까지는 의외로 기독교에서도 동성애에 대해 관대한 모습을 보일 때가 종종 있어서, 9세기 경의 스페인갈리시아 지방의 기록에서는 신부동성애자 부부의 결혼을 위해 혼인성사를 집전했다는 기록도 있다. 이는 아직 고대 로마의 흔적이 다른 지방보다도 유난히 짙었던 중세 초기 갈리시아 지방의 모습을 보여주는 기록으로 보인다. 실제로 중세까지 로마 제국이 건재하게 남아있던 그리스아나톨리아 일대에서는 12세기까지도 로마 황제가 공공연히 동성 애인을 둔 기록이 종종 발견된다.

근대 영국에선 해군들이 묘하게 동성애 상대로 인기를 누렸다고 하며 귀족이나 사회 명사들이 어린 소년들과 돈 주고 동성애를 즐겼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1889년의 런던 클리블랜드 거리의 동성애 매춘 여관이 발각된 '클리블랜드 스캔들'은 영국 사회를 뒤집어 놓은 사건이었다. 미묘하게 전보들을 배달하는 소년들이 부업으로 이 여관에서 동성애 매춘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한 이튼과 같은 엘리트 기숙 학교에서도 남학생 간의 동성애가 만연해 있다는 기록도 존재한다.

의외로 종교의 세가 약해진 근대 후기에 동성애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강화되었는데, 이것은 막 발전하기 시작한 정신 분석 등의 이론에 따른 '동성애는 고칠 수 있는 정신병'이라는 통념에 기인한다.[13] 특히 예술이라는 이름하에 미화되는 여성 간의 동성애보다는 주로 사회 주도층의 혐오감을 사기 쉬운 남성 간의 동성애는 향후 몇십 년 동안 사회적인 비난과 희화화의 대상이 되었다.

냉전 무렵 소련 등 동구권에서는 남성 정치인들 간의 키스가 친밀감의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했다.[14] 같은 시기에 동성애 금기가 강했던 서구권에서는 혐짤이나 시각 공격으로 봤다. 참고로 소련은 세계 최초로 동성애를 법으로 용인했지만 이오시프 스탈린의 독재정부가 들어선 후 동성애가 금지되었다. 스탈린 사후에 이 법은 폐지되지 않고 남았지만 실상 유명무실해져서 동성애 행위로 처벌받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다가 지금은 다시 블라디미르 푸틴의 독재가 지속되면서 러시아 사회가 극도로 보수적이어져 게이에 대한 시선이 아주 나빠져 있다.

일본의 경우는 동성애라기보다는, 전쟁터에 여자를 데리고 나가면 안 되니까, 혹은 에 여자를 들이면 미혹되기 쉽다는 이유로[15] 대신 미동을 쓴다거나 하는 경우였다. 유명한 미동으로는 오다 노부나가의 미동 모리 란마루 등이 있다. 그 외에도 여자를 가까이하면 안 되는 불자들이 어린애들로 욕구를 해소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여자랑 하는 건 안 되면서 남자가 상대면 괜찮다니 무슨 발상이냐 싶지만 이뿐만 아니라 이상적인 군신 관계의 일환으로 주군과 가신이 정을 통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를 와카슈도라고 하였는데 주군의 시동 노릇을 하던 시기 동침했던 경험을 이야기하자 주변에서 부러워했다는 기록[16]도 남아있다.[17] 그 외에도 다케다 신겐이 그의 동성애 애인에게 그윽한 심정을 담아보낸 러브 레터 등 일본 중세 시대에는 무사, 귀족, 지식인 등 지배 계급에서의 동성애가 오히려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관련 기록도 풍부하게 남아있다. 오히려 동성애를 하지 않는 지배 계급이 별종으로 취급받았는데 대표적인 예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히데요시는 본래 천민 출신으로서 훗날 일본 최정상의 권력에 올랐어도 동성애를 하였다는 기록이 없다. 오히려 히데요시가 여자만을 좋아하자 이를 걱정한 신하들이 히데요시에게 "제발 좀 남자도 좋아하시라"고 간했다는 기록은 있다. 일본 대중 문화가 비교적 동성애에 대해 관대한 것도 이런 역사적 전통에 근거한 것.

의외로 중국에서도 동성애 문화가 오랫동안 성행했다. 중국 전한의 7대 황제인 한무제는 동성애인을 여럿 두었는데 여기서 동성애를 뜻하는 한자 단어인 면수(面首)가 나왔으며, 그로부터 약 1800년이 지난 중국 청나라 시기에 나온 소설 홍루몽을 보아도 남성들끼리의 동성애 장면이 매우 생생하게 묘사된다.

이슬람권의 경우엔 정략결혼 전에 아예 자유 연애를 할 수 없는 보수적인 문화의 반작용으로 의외로 '동성애'를 하는 청소년들이 많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동성애'를 하면서도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생각하는 경우는 적은 듯하다. 사실 현재의 인식과는 다르게 이슬람권 국가들은 과거에는 대체적으로 동성애에 대해 관용적인 경우가 많았다.[18]

역사학자 이언 아몬드의 저서인 <십자가 초승달 동맹>에 의하면, 중세 스페인을 지배했던 이슬람교 국가들에서는 무슬림 시인들이 백인 기독교도 소년들과의 동성애에 깊이 빠져 그들의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시를 썼다고 언급된다. 튀르키예의 경우 16세기의 오스만 제국을 배경으로 하는 오르한 파묵의 소설 《내 이름은 빨강》을 읽어보면 제자를 사랑하는 화가의 이야기나 돈 대신 남성의 정조를 요구하는 도적, 유럽의 이교도들이 소년의 맛을 모른다고 하는 등의 내용이 나오고 공적으로는 상당히 터부시된 듯하지만 동성애자들이 배척당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술탄 메흐메트 2세가 남색을 즐겼다는 의혹을 받고 있고 오스만 제국 부호들이나 고관들도 알음알음 동성애를 즐겼다고 하는데 동성애 대상으로는 그리스인 소년들의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그리스 소년의 백옥 같은 피부와 머리카락을 찬미하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19] 의외로 이집트시리아같은 데도 그리스계 국가의 지배를 받았고 7세기 이후에 등장한 이슬람 왕조들도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꽤 지대하게 받은 결과물이었다. 거기에다가 쿠란에서는 동성애에 대해 대놓고 천벌 받아야 한다느니 식으로 적혀있지는 않아서[다만] 동성애에 대한 시선이 관대했었으며 중근세의 중동 문학이나 미술 작품을 보면 현재의 이미지와는 많이 다르게 동성애를 묘사하거나 찬미한 작품들도 많이 보인다. 즉, 중근세에는 중동권의 동성애자들에 대한 인식이 관용적이었음을 알 수가 있다. 오히려 19세기 초반에 중동권 사람들이 유럽에 방문했다가 유럽의 동성애 혐오 정서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는 일화도 전해져 내려올 정도였다.
[navertv(37113777)]
[다큐] 영상의 세기 PREMIUM 제14부 - 운명의 연인들中[21][22][23]

그러나 19세기 들어서 서구의 제국주의 영향을 받은 지식인들이 동성애를 배척하자고[24] 주장한 이래로 동성애를 아예 죽일 죄로 보는 경우가 크게 늘어나기 시작하였고, 이슬람 보수주의의 세가 크게 늘어나는 바람에 동성애에 대한 시선이 급속히 나빠지게 되었고 최대 사형까지 가는 경우도 생겨났는데, 정작 당대 유럽 국가들의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나빴던 것을 감안한다면 상황이 극적으로 역전된 셈이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현재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뉴욕, 캐나다의 토론토, 그리고 브라질 상파울루 등 여러 대도시에서 대규모 동성애 축제가 열린다. 특히 브라질 상파울루 축제의 경우 카니발 축제, 국제 자동차경주대회 포뮬러 원(F1)과 함께 상파울루의 대표적인 관광상품이 됐다. 대한민국에서도 2000년부터 시작되어 매년 퀴어문화축제가 열린다.

6. 현대 동성애 인구 조사

동성애 인구 비율을 조사한다는 것은 어려운 문제다. 성적 지향성을 정의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이 고려되어야 하며, 많은 사람들이 동성애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동성애자 또는 양성애자로 밝히는 것을 꺼릴 수 있다. 동성애를 하는 사람들의 수는 통계 자료에 응답한 사람들보다 많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동성애, 양성애, 레즈비언으로 자신을 정의하는 사람들의 수보다 많을 수 있다. 과학적으로 올바른 전문적 통계를 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기준을 사용했는지에 따라 상당히 다른 비율의 결과를 나타낼 수 있기 때문에 섣부른 판단을 해서는 안된다.

비교적 표본 크기가 큰 최신 조사에 따르면 동성애자 및 양성애자의 인구는 전체의 1~4%로 집계된다. 2003년에 오스트레일리아 연구진이 2만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25]에선 대략 3%가 동성애자 혹은 양성애자라고 답했다. 재밌게도 남성[26]보다는 여성[27]이 양성애자 비율이 더 높게 나왔다. 11년 뒤에 비슷한 방법으로 시행한 조사[28]에서도 비슷한 수치가 나왔다. 또한 양 조사에서 동성애 경험이 있거나 자신을 이성애자라고 인식하지만 동성에게 (약하지만) 어느 정도 성적으로 끌리는 면이 있다고 답한 사람들 비율도 무시할 수 없는 수치였는데, 남성은 8~9%, 여성은 15~19%가 이런 범주에 들어갔다.

2010년에 20만 명의 영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29]에선 5%가 자신의 성 지향성을 이성애자로 규정하지 않았다. 이 중 1.5%가 동성애자 혹은 양성애자라고 답했고, 0.5%는 그냥 자신이 "다르다"고 모호하게만 답변했다. 나머지는 답변을 거부했던 경우. 미국의 2010년 인구 조사를 근거로 삼은 연구[30]에서는 3.8%가 자신을 동성애자 혹은 양성애자라고 답했다.

그러나 2016년 여론 조사 기관인 갤럽(Gallup)[31] 과 달리아 리서치(Dalia research)의 조사[32]에 따르면 자신이 성소수자에 속한다고 답변한 비율이 미국의 경우 4.1%#, 유럽연합 평균은 6%#까지 상승했으며, 특히 미국의 밀레니얼 세대(1980~1998년생)와 EU의 만 14세~29세 사이의 연령대만 따로 집계할 경우 각각 7.3%와 10%까지 상승했다. 2003년에 1~4% 정도였던 게 왜 이렇게 올라갔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그동안 인식의 변화와 좀 더 정확한 측정에 따른 결과의 차이라고 볼 수 있겠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자신이 완전한 이성애자가 아니라고 답변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33] 통계학자들은 젊은 나이대일수록 자신을 성소수자라고 밝히는 비율이 증가하는 주된 이유는 2010년대 들어 영미권과 서유럽 사회가 성소수자들에게 더 우호적으로 변화되었고, 그 때문에 사회에 자신에 지향성을 당당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숨어 있던 성소수자들이 더 개방적으로 설문조사에 응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다만 관건은 "자신을 이성애자라고 인식하지만 동성에게도 일정 정도 성적으로 끌린다"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인데, 이성에게 끌리는 경우가 지배적이다(predominantly to opposite sex)고 답한 경우, 이성에게만 끌린다(exclusively to opposite sex)고 답하지 않은 경우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지를 세심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또 하나의 관건은 "동성애 경험이 있다는 것을 과거에 있던 완결된 문제로 해석할 수 있느냐"인데, 이는 나중에 동성애를 경험한 이성애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34]

2018년 기준으로 최신 조사에 해당하는 미국 갤럽의 2017년 전미 성소수자 인구 조사에서는 4.5%로 2016년 조사(4.1%)에 이어 0.4% 상승한 수치를 나타냈다#. 특이할 만한 내용으로는 1980~1999년 사이에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의 경우 8.2%(16년 조사에서는 7.3%)가 스스로를 LGBT라 답변하여 이전 세대들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을 나타냈으며 성별로는 남성(3.9%)보다 여성 성소수자(5.1%)의 비율이 눈에 띄게 높았다. 인종적으로는 비히스패닉계 백인(4.0%)보다는 흑인(5.0%), 아시아계(4.9%), 히스패닉(6.1%)의 LGBT 비율이 전반적으로 높다는 것도 주목할 점.

7.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시선

7.1. 대한민국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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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세계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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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종교적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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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동성애를 둘러싼 비방과 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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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동성애와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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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같이 보기

12. 참고자료



[1] 정확히는, 이성과 번식하려 하지 않는[2] 'Homosexual'의 줄임말[3] 다만 한국에서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간혹 여장을 하고 출연하는 개그맨을 비롯한 남자 스타들은 제법 많은 편이며 여장을 한다고 게이인 것은 아니다.[4] 본래는 프랑스어 유래 단어인 'gai'에서 유래되었고, 현재까지도 이 단어는 프랑스어에서 쓰이기도 한다. 다만 발음이 '게이'와 비슷하다보니 되도록이면 쓰기를 자제하는 편이며 차별의 의미가 아니라 괜한 오해의 소지를 피하기 위함이다.[5] 문제점은 이 설문조사에 참가한 인원 대다수가 수감자 혹은 매춘부 남성, 여성에게서 나왔고, 그 당시 배우자와 친한 친구와도 성생활의 친밀한 세부 사항을 논의하기를 꺼리던 금기된 주제에 대해 자발적 면담을 통한 의견만이 들어가 있어 편견을 만들 가능성이 있다며 1948년 통계학자, 심리학자에게 보고서의 통계 유용성에 대한 비판을 받기도 했다.[6] 신식 교육을 받고 신식 생활을 하는 남녀들을 모던 보이, 모던 걸이라 불렀다.[7] 박정희, 김호남(구식 아내), 이현란(신여성)이 대표적 사례.[8] 먼 옛날 이야기가 아니고,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이랬다.[9] 이는 전 세계 공통으로 여권에 대한 인식이 재고되고 여성들의 학식 수준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발생한 현상 중의 하나다. 일본 역시도 메이지 유신 이후 여류 문학가들 사이에서 이런 경향이 짙었다.[10] 홍난파의 형 홍석후의 딸. 홍석후는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출신의 의사로, 한국 최초의 근대 의사 중 하나다.[11] 인간을 제외한 동물에서도 1500여 종에서 동성애가 발견된다.[12] 대표적인 것이 가니메데. 무려 주신 제우스가 직접 보쌈한 이 청년은 후에 제우스의 이름을 딴 목성위성 중 하나의 이름이 될 정도로 인지도가 높다.[13] 다만 정작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성적 지향이란 것은 한번 정해지면 절대 불변이라고 확신했던 사람이다. 자신의 아들이 게이라서 걱정이라는 미국의 한 어머니가 보낸 편지에 답장을 보내길, 그 아들이 자신이 게이임을 인정하고 그것에 대해 행복해한다면 자신은 치료해 줄 것이 아무것도 없고, 반대로 자신의 성적 지향을 부정하며 그 때문에 불행해한다면 자신이 도와줄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프로이트 사후 그 후대 학자들이 동성애가 정신병이라고 분류하기 시작했던거지 동성애가 정신병 분류에서 제외되기까지 또 근 100년이 걸리게 되었다.[14] 대표적인 게 브레즈네프호네커의 딥키스였으며 베를린 장벽에도 그려져 있었을 정도로 유명했다.[15] 일본 불교는 한국 불교와 달리 세속적이라 승려의 혼인도 허락하지만(대처승), 아직 수행승인 이들은 여성을 멀리할 것이 권장되고 기본적으로 불교이니만큼 분방한 육욕은 경계해야 한다.[16] 다름 아닌 오다 노부나가의 시동 출신인 마에다 도시이에의 이야기다.[17] 조선통신사를 역임한 신유한이 남긴 《해유록》에 보면 일본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와 일본인들이 동성애를 찬양하는 시를 남겨두고 있다. 하도 괴이하게 생각했던 신유한이 일본 측 통역을 담당했던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에게(참고로 호슈 이 양반은 일본 제일의 조선통이자 유학자이기도 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라고 물어보자 호슈 왈, '님은 그 즐거움을 모르나봐요?'라고 했다고 # 이를 들은 신유한이 생각하길 '유학자도 이 모양인데 일반인들은 오죽할까싶다.[18] 물론 동성애를 불결한 것으로 간주하는 견해나 불쾌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있었지만 일반인들은 딱히 개의치 않았다.[19] 여담으로 이렇게 그리스인 소년을 찬미하면서 튀르크인 소년은 털이 많아서 별로라는 평을 남기기도 했다.[다만] 너희는 여성을 마다하고 남성에게 성욕을 품으니 실로 너희는 죄지은 백성들이라 (쿠란 7:81), 너희는 여자가 아닌 남자들에게 성욕을 갖느냐? (쿠란 27:55), 너희는 우주의 피조물 가운데서 남성에게만 접근하려 하느냐? 알라께서 너희를 위해 창조하신 너희 (여성)배우자들을 버려두려 하느냐? (쿠란 26:165~166) 같이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21] 2019년 11월 30일 방송[22] 01:11:30 부터 20분 정도 영상으로 기록된 20세기부터 21세기까지 근대의 대표적인 동성애에 관한 사건 사고를 다루고 있다[23] 20세기 영상 매체 발명 후 기록된 영상들을 수집하여 역사의 뒷편에서 펼쳐진 대표적인 러브 스토리를 다룬 다큐멘터리[24] 이는 훨씬 후에도 이어져서 팔레비 왕조 시절에도 동성애자들을 배척하는 정책을 폈다. 이슬람 혁명으로 왕조가 뒤엎어진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마찬가지로 이집트에서도 동성애에 대해서 법적인 처벌이 시행되고 있다.[25] Smith, 외, Sex in Australia. Sexual identity, sexual attraction and sexual experience among a representative sample of adults, in: Australian and New Zealand journal of public health 27(2), 138~145쪽.[26] 동성애 1.6% > 양성애 0.9%[27] 동성애 0.8% < 양성애 1.4%[28] Johnson, The intriguing reason why there are now more gays and lesbians in Australia, in: GayStarNews, 2014년 12월 3일.[29] UK gay, lesbian and bisexual population revealed, in: Bbc.co.uk. 2010년 9월 23일.[30] Gates, How many people are lesbian, gay, bisexual, and transgender?, in: Williams Institute, University of California School of Law, 2011년 4월.[31] 전미 50개 주와 콜롬비아 특별구에 거주하는 18세 이상 미국 성인 1,626,773 명을 무작위 샘플로 한 전화 인터뷰에 기반.[32] EU 구역 내 거주하는 만 14~65세 사이의 11,754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 95%의 신뢰 수준에서 +/- 1.1 %#[33] 단적인 예로 스페인의 경우 2016년 조사#에서 14~29세는 무려 14%가 자신이 동성애, 양성애, 무성애등의 범주를 포함한 성소수자에 속한다고 답변한 반면 50~65세의 경우 1.8%만이 자신이 성소수자에 속한다고 답변했다.[34] 다만 앞 문단에서 언급한 2016년의 두# #조사에서는 킨제이 보고서의 성 지향성 척도와 관계없이 스스로를 동성애/양성애/트랜스젠더에 속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라는 질문에 YES/NO로 답변하도록 한 결과를 퍼센티지에 반영하였으며 그 자체만으로도 유의미하게 LGBT 인구 비율이 이전 조사들보다 상승했다는 점도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