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03 19:44:28

두불건

진서(晉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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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몽손 혁련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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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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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杜不愆
생몰연도 불명

동진의 인물. 자는 숙비(叔羆). 양주(揚州) 여강군(廬江郡) 출신.

2. 생애

어렸을 때, 외조부인 곽박으로부터 《주역》의 점술을 배웠고, 여러 차례 예언을 하여 적중시켰다. 고평(高平) 사람 치초가 스무 살이 넘은 나이에 중병에 걸리자, 두불건을 불러 시험 삼아 그에게 점을 치게 하였는데, 점궤를 본 두불건이 말했다.
"점괘에 따르면, 그대의 고통은 곧 사라질 것입니다. 다만, 동북쪽 30리 거리의 상궁(上宮) 가문의 집으로 가서 그들이 기르는 장끼를 가져와서, 그것을 동쪽 처마 아래에 두어야 합니다. 그 후 9일이 지난 병오일 정오에 까투리가 날아와 짝을 이룰 것이고, 그 후 꿩들이 함께 떠나면 병이 20일 안에 완전히 나을 것입니다. 이는 길한 징조로서 그대는 80세까지 살고, 지위는 사람들 중 최고에 이를 것입니다. 그러나 까투리만 떠나고 장끼만이 남아 있다면, 병은 한 달에 걸쳐 나을 것이나, 나이는 80세의 반쯤 살 것이고, 명예와 지위도 잃을 것입니다."
치초는 당시 매우 쇠약하여 죽음을 눈앞에 둔 상태였으므로, 웃으며 답했다.
"80세의 반만이라도 살 수 있다면 만족하겠소. 병이 한 달 만에 낫는다면 그리 늦는 것도 아니오!"
그리고는 두불건의 점궤를 믿지 않았으나, 어떤 자가 밑져야 본전이라며 두불건의 말을 따르라 설득해 마지못해 장끼를 가져오게 하였다. 병오일이 되었을 때, 치초는 혹시나 싶은 마음에 남쪽 툇마루 아래에 누워 이를 관찰하였다. 날이 저물 무렵, 과연 까투리가 날아와 장끼와 짝을 이룬 후에 떠났으나, 장끼는 까투리를 따라가지 않았다. 치초가 탄식하며 말했다.
"과연 관중이나 곽박의 예언보다도 뛰어나구나!"
치초의 병은 수년 동안 계속되다가 겨우 나았고, 40세에 중서랑을 지내던 중에 사망하였다.

이후로 두불건의 점괘는 점점 더 불명확해져 그의 예연은 이전처럼 미래의 일을 적중시키지 못하였다. 훗날 그는 임관하여 건위장군 환사(桓嗣)[1]의 참군이 되었다.


[1] 권신 환온의 동생인 환충의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