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9-04 17:42:21

로리 갤러거


본명 : William Rory Gallagher (윌리엄 로리 갤러거)[1]

출생-사망
1948년 3월 2일 - 1995년 6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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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 활동 이전 커리어를 쌓은 그룹 'TASTE', 1970년 Isle of Wight Festival에 출연하여 그 이름을 알렸으며, 공연 3번째날 개막무대를 장식하였다. 이 그룹은 비록 5년만에[2] 해체되었으나, 제 2의 크림(밴드)이 될것이라는 사람들의 기대감을 불어일으킨 역사적인 밴드였다.

위 영상은 1970년 영국의 와이트 섬 페스티벌에 출연한 퍼포먼스이다. 그 유명한 지미 헨드릭스도 이 공연에 출연하였다.

1. 개요2. 일생3. 평가4. Discography5. 대표곡6. 여담7. 사용한 악기, 이펙터

1. 개요

MC : ‘How does it feel to be the greatest guitarist in the world?
Jimi Hendrix : I don’t know, go ask Rory Gallagher.

MC: 최고의 기타리스트가 되면 어떤 기분이 드나요?
지미 헨드릭스: 전 모릅니다, 로리 갤러거에게 물어보세요.[3]



데뷔 : 1971년 1집 앨범 [Rory Gallagher]

아일랜드의 전설로 통하는 기타리스트, 정통 블루스에 기반을 둔 하드 록 및 블루스 록 기타 연주자이며, 머디 워터스사단의 시카고 블루스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아일랜드의 Country Donegal, 항구도시 Ballyshannon출생, 남서 에이레 공화국에서 성장하며 버디 홀리, 에디 코크란, 제리 리 루이스, 지미 리드[4] 등으로 뮤지션의 꿈을 키웠다. 9살 때 처음으로 기타를 배웠다고 알려져있으며, 15살 때엔 스쿨밴드의 리더가 되었다.

2. 일생

60년대 초 ‘Fontana Showband’라는 이름으로 순회공연을 다녔고, 1965년엔 그룹명을 임팩트(Impact)로 바꾸었다. 그후 독일 함부르크에서 정기적으로 연주활동을 했으며, 아일랜드에선 3인조 밴드 테이스트(Taste)를 이끌며 곡을 연주했다. 테이스트를 이끌고 69년에 런던으로 진출, 기타연주 중심의 앨범들을 발표하였다. 그리하여 그룹 테이스트와 갤러거는 블루스컨트리 취향의 곡들을 하드록풍으로 연주해 서서히 지명도를 넓혀 갔다.

그룹 테이스트가 해산되자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몇몇 소규모 밴드들에서 연주활동을 계속했다. 72년엔 머디 워터스의 [London Session] 앨범에 참여했고, 77년에는 영국 스키풀 계의 거물 Lonnie Donegao의 재기작 [Putting On The Style]에 관여하기도 했다. 그는 너무 낡아 색칠이 거의 모두 벗겨져 버린 펜더 스트라토캐스터기타를 사용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로리 갤러거는 블루스로큰롤에 평생을 걸어왔다. 기타를 통해 삶을 관조하며 즐기는 그는 매우 낙천적인 음악 세계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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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하게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기를 싫어했던 로리의 성격은 TV 쇼조차도 거부하고 오로지 앨범과 라이브 공연을 통해서만 음악을 계속했다. 테이스트는 8장의 앨범을 내놓고 해체했지만 로리 갤러거는 솔로 활동을 통해 유행의 변화에 쫓지 않고 록에 바탕을 둔 블루스 연주자로서 자신의 스타일을 지켜나갔다. 그는 자신이 심각한 병에 걸린 것을 알면서도 1994년 말까지 라이브를 계속함으로써 그의 음악에 대한 애착을 엿볼 수 있었다.

그는 블루스로큰롤 분야에 관심이 있는 기타리스트들에게 본보기가 될 만한 라인전개를 펼쳤다. 특히 그중에서도 'Daughter Of The Everglades', 'Livin’ Like A Trucker', 'For The Last Time', 'Hands Up', 'There’s A Light', 'Take It Easy Baby' 등은 명연이라 평가된다. 테크닉이 뛰어난 뮤지션이기 보다는 독자적인 벤딩 폼이나 피킹 악센트 등에 주목할만하다.

그는 평소에 술을 좋아했는데, 원래 과음을 할수록 간의 기능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평소에 비행공포증이 있던 그는 그걸 이겨내기 위해 안정제를 자주 투여하였고... 간에 안 좋은 약과 더불어 음주습관이 몸을 망치게 되었다. 간이식 수술을 받아도 돌이킬수 없는 지경(간 이식 후, MRSA에 감염됨.)에 빠진 그는 결국 영국 런던에서 사망하였다. 향년 만 4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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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코크, 세인트 올리버 공동묘지에 있는 그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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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계 후 아일랜드 발리쉐논에 세워진 그의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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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리 갤러거의 이름을 딴 거리, 그의 흔적을 엿볼수 있다.

3. 평가

'How do you get your sound Mr. Gallagher?' and he sits and tells us. So I owe Rory Gallagher my sound."
제 기타 사운드의 근간은 로리 갤러거에게 있습니다. 전 그에게 정말 큰 빚을 졌죠[5][6]
- 브라이언 메이()
The Man who got me Back into the blues
나를 블루스로 다시 되돌아가게 해 준 장본인
- 에릭 클랩튼

실력은 길게 말할 필요가 없다. 다른 기타리스트들에 비해 특별한 테크닉을 가진건 아니지만 자신만의 개성이나 독자적인 주법에서 승부를 보는 뮤지션, 그렇다고 절대 테크닉이 딸리는건 아니다. 오히려 속주에도 일가견이 있다고 말 할수 있을정도



기타 좀 쳐봤다는 사람들도 잘 모를정도로, 한국에서의 지미 헨드릭스보다 훨씬, 명성과 업적에 비해 매우 안습하고 처참한 인지도를 가졌다. 특히 록이 비주류 장르인 한국에서는 더욱 더 찬밥대우를 받는 상황...

그러나 블루스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연구하고 넘어가야할 뮤지션이며 미국에서 유럽으로 넘어온 블루스 신드롬 역사를 논하는데 이 사람을 뺄 수 없을정도.

그 명성은 지미헨드릭스 시대는 물론이고 주다스 프리스트의 기타리스트 K.K다우닝글렌 팁튼의 기타 스승으로도 정평났으며 딥 퍼플롤링스톤즈[7]의 차세대 기타리스트 후보로 추천도 받은적이 있다. 영국의 슈퍼밴드 데프 레파드의 기타리스트 비비안 캠벨도 존경하는 뮤지션중 한명이라고 언급하며 U2디 에지조차도 자신의 10대시절 그의 공연을 보는게 낙이었다고 한다. 특히 디 에지는 특히 자국 아일랜드에서 해마다 열리는 Rory Gallagher Festival의 제1회 수상자로써 기쁨의 소감을 드러냈다.[8] 한국과 일본에서 끗발있는 인지도를 지닌 게리 무어조차도 자신의 최고 롤 모델은 로리 갤러거라고 숱하게 드러내며 많은 뮤지션들에게 절대적인 존경들 받고있는 뮤지션...[9]

통상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아일랜드 출신 기타리스트를 뽑는다면 단연 로리 갤러거를 말한다. 그러나 종종 오아시스리암 갤러거 혹은 노엘 갤러거와 헷갈려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보통 유명한 아일랜드 출신 기타리스트로 유명한 사람은 게리 무어[10]이나, 본토에서는 게리 무어와는 비교조차 거부할정도로 추앙받는 기타리스트[11][12]이다.

Rory Gallagher Festival이 그의 고향에서 매년 6월 2일에 열리고 그를 기리는것 뿐만 아니라 아일랜드의 Cork공항의 이름을 Cork Rory Gallagher Airport로 변경하자는 움직임도 있으니[13][14] 그의 인지도는 어마어마한 셈.

에릭 클랩튼과 동시대에 활약한 인물이나, 팝적인 히트곡을 주로 제조한 에릭 클랩튼과는 달리 상업성, 대중성과 거리가 먼 블루스 곡들을 주로 작곡하였으며, 라이브공연과 폭발적인 무대매너로 기억하는 팬이 많다. 그의 음악은 빈티지 스트라토캐스터에서 우러나오는 강력한 크런치톤이 장점이며, 특유의 즉흥 애드리브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하모니카와 슬라이드 기타 테크닉에도 능수능란 하였으며, 밴조와같은 기타류 악기도 상당히 잘다룬다. 그의 절정에 다다른 연주는 Irish Tour '74 라이브쇼에서 그 진가를 발휘한다.[15] 그리고 그의 실력에 비해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이유중 하나는 당시 아일랜드인에 대한 인종차별도 한몫하였다. 통상 영국인들은 자신들이 멸시하던 나라 아일랜드인을 터부시하던것도 있고 텃세도 심했으니.[16] 더군다나 그는 싱글로 음반을 발표하는걸 극도로 기피한점도 작용하였다.(누적 음반 판매량은 3,000만장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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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1977년으로 추정되는 올해의 기타리스트 우승자 목록 일간지 '멜로디 메이커'이다. 70년대 기타리스트 순위에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그리고 1972년 올해의 기타리스트에 뽑힌 로리 갤러거의 이름이 올라간 모습. 그 당시 쟁쟁한 기타리스트들의 이름도 돋보인다.리치블랙모어, 에릭클랩튼... 특히 에릭클랩튼과 지미페이지의 우승횟수를 주목하라

아래 영상은 펜더 스트라토 캐스터 로리갤러거 시그내쳐를 설명하는 버즈비의 홍보 영상이다. 전 신촌블루스 출신의 기타리스트 김병호씨의 자세한 설명과 로리 갤러거의 짤막한 이야기가 들어있으니 관심있는 사람은 시청해 볼것. [17]



슬래쉬, 브라이언 메이, 조 보나마사, 디 에지, 조니 마와 같은 기라성의 음악가들이 존경하는 기타리스트로 뽑는다. 아래 인터뷰 참조

브라이언 메이의 인터뷰


천하의 한 성격 하는 리치 블랙모어조차도 최고의 퍼포머라 칭찬한 적이있다.

4. Discography

Rory Gallagher – 1971
Deuce – 1971
Live in Europe – 1972
Blueprint – 1973
Tattoo – 1973
Irish Tour '74 – 1974
Against the Grain – 1975 Rolling Stone review at the Wayback Machine (archived 1 October 2009)
Calling Card – 1976 Rolling Stone review at the Wayback Machine (archived 1 October 2009)
Photo-Finish – 1978
Top Priority – 1979
Stage Struck – 1980
Jinx – 1982
Defender – 1987
Fresh Evidence – 1990

5. 대표곡

Bullfrog blues



Bad penny




A million miles away




Too much alcohol


6. 여담

술을 매우 잘 마셨다고 한다. 역시 아일랜드인

여권을 말하길 '신이 만든 가장 불필요한 물건'이라고 했다.
아마도 투어를 좋아하는 그의 성격상 이미그레이션에서 기다리는게 꽤나 지루했던듯...

팬서비스가 엄청나시다. 길 가는 중 싸인도 물론이고, 사람들이 손을 뻗자 관중석을 손으로 쓸어주고, 자기 기타를 잠깐이긴 하지만 보여주고 만져보게 해주는 등의 영상들이 있다.

이펙터를 안 쓰셨다고 알려져 있지만 트레블 부스터를 애용하셨고 후기쯤엔 플렌져, 옥타퍼즈 등 다양한 제품군들을 쓰셨다. 앰프도 그렇고 뭐든지 가리지 않고 쓰셨던 듯... 다만 라이브에서 일명 손 와우[18]나 손 아밍[19] 등 다양한 트릭들을 보여주신다.

여자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그루피들 뿐 만 아니라 실제 여자친구와도 흐지부지 했다고 한다. [20] 지인으론 동생이랑 무지 가까웠다고 한다. 실제 성격은 수줍음이 무지 많았다고 한다. 전기의 표현을 빌리면 극도의 수줍음이었다고.

땀이 다른 사람에 비해서 산성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기타가 그 모양인가

멕시코 음식을 좋아한다고 한다. 정열의 사나이

색소폰도 연주할줄 알았다(5:00부터 볼수있다)



롤링스톤즈에서 세션 기타리스트 영입제의도 받은적이있다.[21]
(아래 그의 동생 Donal Gallagher의 증언)


7. 사용한 악기, 이펙터

파일:rorygallagherstrat.jpg

그의 스트라토캐스터(스트랫) 기타에는 비화가 있는데, 어느 날 공원에서 기타를 도둑맞고 일주일이 지난 뒤 다시 그 자리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바디 상태는 하드 렐릭이 되었다고한다.안습 그가 자주 애용하던 스트라토캐스터 기타였으며, 1961년산 오리지널 스트랫이라고 한다.양산형이 아니다. 겁나 비싸서 돈주고 못산다. 그의 상징이 된 기타이며, 물론 이 스트랫을 제외한 나머지 기타도 많이사용하였다.[22]




동생 Donal Gallagher가 다른 뮤지션들도 사용할수있게 종종 빌려준다. 위 영상은 고인의 스트라토캐스터로 연주하는 조 보나마사




조니 마의 시연



파일:rorygallagher3.jpg

주로 사용한 어쿠스틱 기타는 마틴 D-35 모델이며, 그의 이름을 딴 시그내쳐 모델도 판매가 되었었다. 국내에서는 구하기 힘든걸로 알고있으니, 국내매장에서 구입할수있는곳을 발견하면 추가바람

펜더 사에서 그의 이름을 딴 스트랫 모델을 출시중이다. 가격은 500만원~600만원 선, 원래 이 모델은 몇십대만 한정으로 제작하려 하였으나, 폭발적인 주문과 수요로 인해 펜더 커스텀측에서 아예 제품라인으로 돌려 생산중이다. 말이 relic 이지 실제로보면 쓰레기통에 직행해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거지꼴이다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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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ral
Model Name: Rory Gallagher Signature Stratocaster® Relic®, Rosewood Fingerboard, 3-Color Sunburst
Model Number: 0150080800
Series: Custom Artist
Color: 3-Color Sunburst


Body
Body Shape: Stratocaster®
Body Material: Select Alder
Body Finish: Nitrocellulose Lacquer


Neck
Neck Material: Maple
Neck Shape: Early '60s "C"
Scale Length: 25.5" (648 mm)
Fingerboard Radius: 9.5" (241 mm)
Number of Frets: 21
Fret Size: Medium Jumbo
String Nut: Synthetic Bone
Nut Width: 1.650" (42 mm)
Neck Plate: 4-Bolt Serialized
Neck Finish: Nitrocellulose Lacquer
Fingerboard: Rosewood
Position Inlays: Clay Dots with One Mis-matched White Plastic Dot at the 12th Fret


Electronics
Bridge Pickup: Custom '60s Single-Coil Strat
Middle Pickup: Custom '60s Single-Coil Strat
Neck Pickup: Custom '60s Single-Coil Strat
Controls: Master Volume, Tone 1. (Neck Pickup), Tone 2. (Middle Pickup)
Pickup Switching: 3-Position Blade: Position 1. Bridge Pickup, Position 2. Middle Pickup, Position 3. Neck Pickup
Pickup Configuration: SSS


Hardware
Bridge: 6-Saddle American Vintage Synchronized Tremolo
Tuning Machines: 5 Sperzel® Die-Cast Machine Heads with 1 Mis-Matched Gotoh®
Orientation: Right-Hand
Pickguard: 3-Ply Mint Green
Control Knobs: Parchment Plastic


Miscellaneous
Strings: Fender® USA 250R, NPS, (.010-.046 Gauges)
Unique Features: Aged White Plastic Parts, Original Dot Spacing, One Mis-matched Sperzel®; Tuning Machine, Clay Dots with One Mis-matched White Plastic Dot at the 12th Fret, Slot-Head Mounting Screws in Selector Switch, Heavily Worn and Distressed with Most of the Paint Missing, Replicates the Wear Patterns of Rory's Original Guitar
Included Accessories: Deluxe Hardshell Case, Strap, Certificate of Authenticity


[1] 본토 발음으로는 '갤러허'로 읽어야 맞으나, 편의상 '갤러거'로 부른다.[2] 1966년에 형성되어 1970년에 해체되었다.[3] https://youtu.be/voaWfroElwY 본 영상의 0:15경에 로리갤러거의 트리뷰트 앨범(실제 라이브 공연실황을 짜집기한 앨범인지 방송녹음인지 정확히 알수없음)을 소개하는 MC가 본 발언을 언급한다.[4] 영향 받은 뮤지션 : Bob Dylan, Ornette Colman, Doc Watson, John Hamond, Blind Boy Fuller, Bruce Springsteen, Howlin' Wolf (출처 : http://www.rorygallagher.com/)[5] 출처: "Dvdverdict.com". Dvdverdict.com. 15 April 2009.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25 April 2009. Retrieved 17 July 2011.[6] 실제로, 브라이언 메이는 Rangemaster사의 Treble boost이펙트를 주로 사용하였는데,이는 로리 갤러거의 영향이 컸다.[7] 하단 여담 참조[8] 로리 갤러거의 죽마고우 베이시스트 제리 맥어보이의 자서전 서론에서 발췌[9] 로리 갤러거의 장례식에도 참석했다.[10] 따지고 보면 북아일랜드 출신이다.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아일랜드 출신으로 잘못알려짐[11] 한창 브리티시 록이 성행하던 1970~80년대에 영국, 아일랜드인이 사랑하는 기타리스트 투표에서 에릭 클랩튼, 제프 벡, 지미 페이지등을 압도적으로 제치고 1위를 차지한적이 있다.[12] 하단 그림 참조[13] http://rorygallagherairport.com/Rory 참조[14] 비슷한 예로 Liverpool에는 리버풀 존 레넌 공항이 있다. 그러나 존 레넌은 리버풀 출생이며 그의 활동지이기도 하기에 공항의 이름까지 그의 이름이 들어가는 영예를 얻었으나, 로리갤러거의 고향 Ballyshannon은 공항이 없는 항구도시이다. 과연 그의 이름이 Cork공항에 들어갈지는 미지수일지도...[15] 이 공연은 로리 갤러거 스스로도 인생 최고의 공연이었다고 자부하는데, 관객들의 호응이나 호흡이 타 공연과 다르게 더 박진감이 넘친다. 그리고 역사적으로도 의의가 있는데, 이 당시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사이의 분쟁으로 인해 IRA가 전국각지에서 항쟁을 일으키고 있는 시기였다. 그러나 로리갤러거는 위험을 무릅쓰고 아일랜드 전 국토를 투어하며 국민들에게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줬다는 호평을 받았다. 신문에서는 '로리갤러거는 아일랜드 국민을 버리지 않았다.' 라고 할정도로 명예롭게 평가했다.[16] 당시 아일랜드인들은 피부색이 하얀 흑인이라는 비아냥과 조롱을 받아왔다. 그나마 사이가 좋지않은 영국에서 이정도 인정받은것만 해도 상당한 인기를 자랑했다는 점이다.[17] 다만 잘못된 정보가 좀 있다. 기타를 많이 안 쓰셨다고 하는데 실제론 그레치나 텔레, 덴일렉트로 및 레조네이터까지 정말 많은 기타를 쓰셨다.[18] 왼손으론 해머링/풀링오프를 하면서 기타의 톤 노브를 조작해 마치 와우 이펙터 같은 소리를 내는 것.[19] 손으로 헤드에 걸친 줄을 누르거나 지판에 있는 줄을 잡고 뜯어 음의 높낮이를 다이나믹하게 조정했던 것.[20] 성 소수자나 성에 대해 꽉 막힌 사람도 아니었다고 한다. 여러모로 알 수 없는 부분...[21] 'At one point he was headhunted by the Rolling Stones to replace Mick Taylor'라고 언급되어있다. 믹 테일러를 대체할 기타리스트를 뽑는다는 헤드헌팅 (출처 : http://www.hotpress.com/Rory-Gallagher/music/interviews/10-Years-After-Remembering-Rory-Gallagher/2805055.html)[22] 댄일렉트로, 깁슨, 펜더 듀오소닉, 텔레캐스터 등등[23] 물론 원본 기타랑 차이는 있다. 바디가 원 피스인게 대표적. 원본은 3피스다. 좀 세세한 점에 신경을 많이 쓴다면 그냥 펜더에서 나오는 로리 갤러거 트리뷰트 기타로 보는 게 더 나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