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14 22:54:53

블라드 2세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ececec, #fff 20%, #fff 80%, #ececec); color: #000; min-height: 3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바사라브 1세 니콜라에 알렉산드루 블라디슬라프 1세 라두 1세
단 1세 미르체아 1세 블라드 1세 미르체아 1세
미하이 1세 라두 2세 단 2세 라두 2세
단 2세 알렉산드루 1세 알데아 블라드 2세 미르체아 2세
바사라브 2세 블라드 2세 블라디슬라프 2세 블라드 3세
블라디슬라프 2세 블라드 3세 라두 3세 바사라브 3세
라두 3세 바사라브 3세 라두 3세 바사라브 3세
라두 3세 바사라브 3세 블라드 3세 바사라브 3세
바사라브 4세 블라드 4세 바사라브 4세 블라드 4세
라두 4세 미네아 1세 미르체아 3세 블라드 5세
네아고에 바사라브 테오도시에 라두 5세 블라디슬라프 3세
라두 6세 라두 5세 블라디슬라프 3세 라두 5세
블라디슬라프 3세 라두 5세 모이세 블라드 6세
블라드 7세 라두 7세 미르체아 5세 라두 8세
미르체아 5세 파트라스쿠 첼 분 미르체아 5세 페트루 1세
알렉산드루 2세 미르체아 빈틸라 알렉산드루 2세 미르체아 미네아 2세
페트루 2세 미네아 2세 슈테판 수르둘 알렉산드루 3세 첼 라우
미하이 2세 니콜라에 파트라스쿠 시미온 모빌라 라두 9세
시미온 모빌라 라두 10세 라두 9세 라두 10세
라두 9세 가브리엘 모빌라 알렉산드루 4세 일리아슈 가브리엘 모빌라
라두 9세 알렉산드루 5세 코코눌 알렉산드루 4세 일리아슈 레온 톰샤
라두 11세 마테이 바사라브 콘스탄틴 셰르반 미네아 3세
게오르게 기카 그리고레 1세 기카 라두 12세 안토니에 보다 딘 포페슈티
그리고레 1세 기카 게오르게 두카 체르반 칸타쿠지노 콘스탄틴 브랑코비아누
슈테판 칸타쿠지노 니콜라에 마브로코르다트 이오안 마브로코르다트 니콜라에 마브로코르다트
콘스탄틴 마브로코르다트 미하이 라코비차 콘스탄틴 마브로코르다트 그리고레 2세 기카
콘스탄틴 마브로코르다트 미하이 라코비차 콘스탄틴 마브로코르다트 그리고레 2세 기카
마테이 기카 콘스탄틴 라코비차 콘스탄틴 마브로코르다트 스카를라트 기카
콘스탄틴 마브로코르다트 콘스탄틴 라코비차 슈테판 라코비차 스카를라트 기카
알렉산드루 스카를라트 기카 그리고레 3세 기카 마놀레 기아니 루세트 알렉산드루 입실란티스
니콜라에 카라게아 미하이 수추 니콜라에 마브로게니 미하이 수추
알렉산드루 모루지 알렉산드루 입실란티스 콘스탄틴 한제를리 알렉산드루 모루지
미하이 수추 알렉산드루 수추 콘스탄틴 입실란티 이오안 카라게아
그리고레 브란코베누 알렉산드루 수추 그리고레 브란코베누 투도르 블라디미레스쿠
스카를라트 칼리마치 그리고레 4세 기카 알렉산드루 2세 기카 게오르게 비베스쿠
콘스탄틴 칸타쿠지노 바르부 슈티르베이 알렉산드루 디미트리에 기카 알렉산드루 이오안 쿠자 }}}}}}}}}

<colbgcolor=#000><colcolor=#fff> ''''''
파일:tumblr_inline_pbukpdgjvo1uo0os9_640.jpg
출생 1395년
사망 1447년 12월 7일 (향년 52세 추정)
왈라키아 공국 발테니
재위기간 왈라키아 보이보드
1436년 ~ 1442년
왈라키아 보이보드
1443년 ~ 1447년 12월 7일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000><colcolor=#fff> 부모 아버지: 미르체아 1세
어머니: 마리아 톨메이
배우자 도암나 유프라시아
자녀 4남 1녀
가문 드라쿨레슈티 가문
종교 기독교 }}}}}}}}}

1. 개요2. 생애
2.1. 즉위 이전2.2. 재위기2.3. 복위기
3. 여담

[clearfix]

1. 개요

왈라키아 공국 드라쿨레슈티 왕조보이보드.

2. 생애

2.1. 즉위 이전

위대한 미르체아 대공의 서출 아들로 탄생. 아버지인 미르체아 1세가 오스만 제국에게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받은 피해 때문에 왈라키아 공국을 포기하고 헝가리 왕국으로 도피한 1395년, 헝가리 왕국에 볼모로 남겨지면서 당시 젊었던 헝가리 왕 지기스문트와 만난다. 이후로 그는 부다페스트, 뉘른베르크 등 헝가리 왕국이나 신성 로마 제국의 영토 안에서 지내며 교육을 받게 된다.

1418년, 아버지, 미르체아 1세가 64세의 나이로 죽는다.

아버지가 죽고 2년 후, 단 2세가 반란을 일으키고 알불(Albul)과 우트메스(Utmeș)같은 많은 보야르들이 이에 가담한다. 거디다가 단 2세는 오스만 제국측의 원조를 받기로 약속까지 하게 된다. 결국 미하이 1세는 왈라키아 공국의 공작자리를 차지하려던 다니스티 일족의 단 2세와의 싸움에서 패해 죽는다. 이후로 자신의 서출 형인 라두 2세와 사촌 형제인 단 2세와의 끝없는 전쟁이 시작된다.

1423년 그는 지기스문트의 허락을 받지 않고 부다페스트를 떠나 폴란드로 가려고 했지만 국경을 넘기 전에 잡히고 만다. 이후 1429년까지 동로마 제국에 가 있었지만, 당시의 동로마 제국이 자신을 왈라키아 공으로 만들어주지 못할 것이라 판단해 헝가리로 돌아갔다. 이 사이인 1425년에 첫째 아들이자 서출인 블라드 수도공(1425 ~ 1495)을, 1428년에 둘째 아들이자 적출인 미르체아 2세(1428 ~ 1447)를 낳는다.

1431년 지기스문트의 후원을 받으며 드래곤 기사단에 들어가게된다. 당시 드래곤 기사단에는 아라곤의 알폰소 5세, 리투아니아의 대공작, 비타우타스 등이 있었다. 하지만 지기스문트는 블라드 2세가 왈라키아 공국을 차지하도록 돕지는 않았으며, 결국 자신의 배다른 동생인 '알렉산더 1세 알데어'가 몰다비아 공국의 도움을 받아 1431년 왈라키아 공국의 공작이 된다.

이 해 훗날 《드라큘라》의 드라큘라 백작 실존 모델로 유명해질, 블라드 3세(1431 ~ 1476)가 태어난다. 그리고 블라드 2세는 당시 헝가리 왕국에 속해있던 트란실바니아로 간다.

1432년, 왈라키아 공국의 공작이 된 배다른 동생인 '알렉산드루 1세(생몰년: 1397 ~ 1436, 40세, 통치기: 1431 ~ 1436, 6년간)'는 오스만 제국의 봉신이 되기 위해 아드리아노폴리스에 간다. 이 때 블라드 2세는 쫒겨났던 보야르들과 함께 왈라키아 공국에 쳐들어가려 했으나 실패한다.

지기스문트는 1434년에야 블라드 2세로 하여금 무기를 사고 군사를 규합하도록 허락한다. 1435년, 알렉산드루 1세는 병들어 회복하지 못하고, 이때 왈라키아 공국으로 쳐들어가지만, 오스만 제국에게 도움을 받은 알렉산드루 1세에게 다시 패배하고 만다.

결국 1436년 알렉산드루 1세가 죽고 나서야 그는 왈라키아 공국의 공작으로 취임하게된다.

2.2. 재위기

1436년 왈라키아 공이 되었으나, 1437년 지기스문트가 70세로 사망하자 변심하여 오스만 투르크에 신종하였다. 이후 1442년까지 7년 정도의 1차 통치 후, 네 명의 아들 중 차남 미르체아 2세에게 공작위를 물려줬으나, 그해에 후녀디 야노시의 도움을 받은 다니스티 가문의 바사라브 2세에 의해 왈라키아 공국을 뺏기게 된다. 이 시기인 1437년에 막내아들인 라두 3세(1437 ~ 1475)를 낳는다.

2.3. 복위기

1443년, 오스만 제국에게 훗날 블라드 가시공이 되는 셋째와 라두 3세가 되는 넷째 아들을 포로로 보내면서 도움을 받아 1년 후인 1443년에 다시 왈라키아 공이 되어 4년간의 2차 통치기를 시작한다.

이 2차 통치시기인 1444년, 추기경 체자레니는 대오스만 동맹결성을 촉구하였고 여기에 호응한 교황령, 헝가리 왕국, 폴란드, 부르고뉴, 베네치아 공화국, 제노바 공화국의 연합군이 결성되었다. 이를 헝가리 십자군이라고 부른다. 여기에 왈라키아 공국도 참전하게 되었다. 당시 왈라키아 공이던 블라드 2세는 이 원정을 막으려 지도부를 설득하려 했지만 실패하고 왈라키아로 물러났다. 이 원정에 참여한 것은 블라드의 아들이던 미르체아 2세였다.

하지만 헝가리 십자군은 안타깝게도 바르나 전투에서 오스만 제국에게 패하게 되고, 왈라키아를 거쳐 퇴각하려고 한다. 이 시점에 블라드 드라쿨과 그의 아들 미르체아는 퇴각하던 후냐디를 투옥시켰다가 풀어주는데 그 이유는 확실치 않다. 단지 바르나 전투에서 오스만군에 대한 공격을 주장하고 직접 지휘를 맡았던 것이 후냐디였기 때문에 블라드 드라쿨이 후냐디의 책임을 물으려 했던 것이라고 생각될 뿐이다. 여담으로 이 사건이 후일 블라드 드라쿨의 아들, 블라드 가시공의 인생을 질곡으로 밀어넣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그 후로 3년 후, 차남과 함께 왈라키아의 귀족 계급인 보야르들에게 암살당한다. 이때 첫째 아들인 블라드 수도공은 22살, 셋째 아들 블라드 가시공은 17살, 막내 아들 라두 3세는 10살이었다.

3. 여담

  • 그의 형제들은 총 3명이 있었는데, 모두 왈라키아 공국의 공작이 되었다. 유일한 적자인 첫째형은 미카엘 1세로 공작이 된지 3년만에 오스만 제국에게 패해서 전사하고, 서출인 둘째 형 라두 2세는 큰삼촌의 아들, 단 2세와 7년간 4번에 걸쳐 공작이 되었다가 쫒겨나기를 반복하며 싸우다가 전사한다. 역시 서출인 세번째 형제는 동생인 알렉산드로 1세로 이 동생이 6년간 집권하고, 마지막으로 블라드 2세가 공작에 올랐다.[1]
  • 흔히 알려진 별칭인 '드라쿨(Dracul)'[2]은 블라드 2세가 드래곤 기사단에 들어갔을 때 얻은 것으로 용을 뜻한다. 이를 바탕으로 블라드 2세의 이름은 영어로는 Vlad the Dragon, 프랑스어로는 Vlad II le Dragon, 중국어 및 일본어로는 용공(龍公/竜公)으로 번역한다. 일부 문헌에서는 용의 사악함에 빗대어서 악마공(惡魔公)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고 명시되어 있으나, 이는 명백한 오역이자 설득력이 떨어지는 주장이다.[3]

[1] 블라드 1세가 아닌 2세인 것은 그 이전에 단 1세의 아들 블라드가 미르체아 1세를 몰아내고 잠시동안 블라드 1세라는 이름으로 왈라키아 공국을 통치하였기 때문에 블라드 2세인 것. 블라드 1세와 2세는 공통의 조부로 라두 1세를 두었으나 그 외에 연관성은 없는 별개의 인물이다.[2] 혹은 드라큘이라고도 한다.[3] 이는 현대 루마니아어에서 '악마'를 의미하는 '드러쿨(Drăcul)'을 바탕으로 해석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애초에 '드라쿨(Dracul)'이라는 단어는 을 뜻하는 라틴어 '드라코(Draco)'를 중세 루마니아어식으로 바꾼 것이며 시간이 흐르면서 그 의미가 악마로 변질된 것이다. 더군다나 블라드 2세 자신은 딱히 사악하다고 볼 수 있는 행적을 남기지 않았을 뿐더러, 드래곤 기사단에 가입하면서 지기스문트로부터 드라쿨이라는 별명을 하사받은 것인데 만약 악마공이라고 번역하는 것이었다면, 지기스문트는 자신의 신하이자 한 기사단을 맡는 기사단장이자 공국의 군주에게 모두가 보는 앞에서 대놓고 욕을 한 셈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