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합중국 연방하원의원 셸리 핑그리 Chellie Pingree | |
<colbgcolor=#0044c9> 본명 | 셸리 마리 핑그리 |
출생 | 1955년 4월 2일 ([age(1955-04-02)]세) |
미국 미네소타 주 미니애폴리스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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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 | |
학력 | 칼리지 오브 아틀랜틱 (인문환경학 / B.A. ) |
종교 | |
가족 | 자녀 3명 |
경력 | 메인 주상원의원 (1992~2000 / 12구) 연방 하원의원 (2009~현직 / 메인 1구 ) |
1. 개요
2. 생애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태어났으며, 원래 이름은 로셸(Rochelle)이었지만, 10대 시절 메인주로 이주한 뒤 이름을 셸리(Chellie)로 공식 변경했습니다. 서던 메인 대학교에 다녔고, 이후 칼리지 오브 아틀랜틱에서 인문환경학을 전공해 학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 이후에는 메인주 록랜드 해안의 작은 섬마을인 노스 헤이븐에 정착했다.농사나 돌봄노동 등 다양한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가다가 1981년에는 손뜨개 제품을 만드는 작은 사업을 운영하기 시작했는데, 이후 ‘노스 아일랜드 디자인스(North Island Designs)’라는 이름으로 성장하면서, 10명 내외의 직원을 고용할 만큼 규모를 키웠다. 전국 1,200여 개 소매점과 10만 부 이상의 우편 주문 카탈로그를 통해 손뜨개 키트와 도안집을 팔았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1986년부터 1992년 사이에는 직접 뜨개질 관련 책 다섯 권을 집필해 출간하기도 했다.
1992년 처음으로 메인 주 원의원에 당선되었다. 당시 걸프전 개입에 반대하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며 주목을 받았지만, 당내 핵심 인사들로부터는 그 문제를 거론하지 말라는 압력을 받기도 했다. 1996년에는 메인 주 역사상 두 번째 여성 다수당 원내대표(majority leader)로 선출되었다. 이때 전국 최초로 처방약 가격을 규제하는 법안인 ‘Maine Rx’를 발의해 언론의 주목을 받았으며, 주 차원에서 가장 규모가 큰 토지 보전 법안도 주도적으로 통과시켰다. 이렇게 3선에 성공하며 활발한 입법 활동을 이어갔지만, 2000년에는 메인 주의 연임 제한 규정에 따라 더는 출마할 수 없어 의원직에서 물러났다.
1997년에는 아이젠하워 재단으로부터 아이젠하워 펠로우십 미국 대표로 선정되어 국제 교류 프로그램에 참여해 활동했고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초당적 시민운동단체인 커먼 코즈(Common Cause)에 합류했고 2003년부터는 대표를 맡아 망 중립성, 연방 단위 선거의 공적 자금 지원 제도 도입, 대통령 선거의 선거인단제 폐지(단순다수제(National Popular Vote) 도입) 등을 주장했다.
한편 2002년에는 재선을 노리는 공화당의 수전 콜린스 상원의원을 상대로 민주당 후보로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했지만 42% 득표에 그쳐 콜린스에게 큰 차이로 패해 낙선하는 아픔을 맛보기도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라크 전쟁과 관련된 문제였는데, 콜린스는 전쟁에 찬성하고 상원에서 찬성표도 던졌지만 핑그리는 이를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이었기 때문. 하지만 이 시점은 아직 이라크 전쟁의 문제점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전이었기 때문에, 당시 대중 정서상 콜린스가 더 폭넓은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2007년 4월, 커먼 코즈 대표직에서 사임하고 다시 한번 출마 도전에 나섰는데 이번에는 상원이 아닌 하원 1구에 출마하기로 결정했다.[1] 여러 시민단체, 노동단체 및 주의 민주당 인사들의 추천을 받아 경선에서 44%를 득표해 당내 경쟁 후보들을 무난히 눌렀고 본선에서는 조지 W. 부시 행정부 심판론 및 버락 오바마 돌풍에 힘입어 55% 득표율로 압승을 거두고 하원에 입성했다.
의정 활동 초기, 의회진보 코커스에 가입했고 현재는 부의장을 맡고 있다. 2010년에는 약혼자인 헤지펀드 매니저 도널드 서스먼 소유의 전용기를 이용한 사실이 드러나 과거 전용기 사용을 비판하던 발언이 재조명되면서 내로남불 논란에 휩싸였으나, 하원 윤리위원회는 해당 여행이 규정상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2010년에도 공화당의 압승을 이끈 레드 웨이브 속에서 공화당 후보 딘 스콘트라스 후보를 57% 대 43%로 누르고 재선에 성공했다. 덕분에 2008년 선거보다 오히려 더 높은 득표율을 기록한 8명의 민주당 하원의원 중 한 명이 됐다.
3. 선거 이력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1994 | 미국 메인주 상원의원 선거 | 메인 제12구 | | 8,871 (58.71%) | 당선 (1위) | 초선 |
1996 | 12,519 (70.94%) | 재선 | ||||
1998 | 7,736 (59.66%) | 3선 | ||||
2002 | 미국 연방상원의원 선거 | 메인 | 209,858 (41.56%) | 낙선 (2위) | ||
2008 | 미국 연방하원의원 선거 | 메인 1구 | 205,629 (54.90%) | 당선 (1위) | 초선 | |
2010 | 미국 연방하원의원 선거 | 169,114 (56.82%) | 재선 | |||
2012 | 미국 연방하원의원 선거 | 236,363 (64.79%) | 3선 | |||
2014 | 미국 연방하원의원 선거 | 186,674 (60.43%) | 4선 | |||
2016 | 미국 연방하원의원 선거 | 227,546 (57.99%) | 5선 | |||
2018 | 미국 연방하원의원 선거 | 201,195 (58.82%) | 6선 | |||
2020 | 미국 연방하원의원 선거 | 271,004 (62.15%) | 7선 | |||
2022 | 미국 연방하원의원 선거 | 219,753 (62.94%) | 8선 | |||
2024 | 미국 연방하원의원 선거 | 249,798 (58.70%) | 9선 |
[1] 기존 지역구 현역이었던 톰 앨런 하원의원은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수전 콜린스에게 39%vs61%로 크게 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