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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웬리/작중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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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어린 시절3. 사관학교4. 위관
4.1. 소위4.2. 중위4.3. 대위
5. 영관(좌관)
5.1. 소령(소좌)5.2. 대령(대좌)
6. 장성
6.1. 준장6.2. 소장6.3. 중장6.4. 대장6.5. 원수
7. 퇴역, 그리고 탈출8. 혁명군 원수9. 최후10. 사후11. 연보12. 승진속도
12.1. 비교12.2. 왜 느린가?

1. 개요

은하영웅전설자유행성동맹측 주인공 양 웬리의 인생을 정리한 문서.

2. 어린 시절

파일:어린 양 웬리.png

양 웬리는 우주력 767년, 자유행성동맹의 무역상인 양 타이롱과 카트린느 르클레르 양 사이에서 태어났다. 양 웬리가 태어나자 양 타이롱은 꽃병을 닦는 걸 잠시 멈추고 "내가 죽으면 이 미술품은 전부 그놈 것이 되고 말겠구먼."이라고 중얼거렸다.

양 웬리가 5살이 되었을 때 그의 어머니 카트린느 르클레르 양이 급성 심장질환으로 사망했다. 아내가 죽자 양 타이롱은 양 웬리에게 가정부를 붙여주었으나, 가정부가 휴가를 내는 등 집을 비울 때는 아들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 지 몰라서 같이 도자기를 닦게 했다. 이걸 본 처가 식구들은 분개하여 무책임한 아버지의 손에서 아들을 구해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거기에 타이롱은 아들과 골동품 중 어느 쪽이 소중하냐는 질문에 "골동품을 수집하는 데는 자금이 많이 들었거든"이라고 답해서 친척들을 분노케 했다.

더 이상 참지 못한 친척들은 이 일을 법정에 끌고 가려 했으나 타이롱은 선수를 쳐 아들과 함께 항성간 상선을 타고 하이네센을 벗어났다. 어처구니없는 사태에 친척들은 아무리 그래도 아버지가 아들을 유괴했다고 신고할 수도 없어서 그저 바라만 봐야 했다. 이렇게 양 웬리는 아버지와 함께 우주를 누볐다. 훗날 자신의 협력자가 되는 보리스 코네프와 만나 친분을[1] 쌓은 것도 이 때의 일이었다.

우주선을 탄 양 웬리는 워프에 익숙하지 못해 종종 구토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익숙해졌다.[2] 양은 우선 기계에 관심을 가졌으나 곧바로 역사에 관심을 보였다. 양은 우주선에서 복간된 옛 서적을 읽고, 비디오를 보고 옛 이야기도 재미있게 들었다. 특히 양은 5세기 전 은하연방을 찬탈한 루돌프 폰 골덴바움의 이야기를 듣고 그렇게 나쁜 사람이면 왜 사람들이 그를 지지했는지 의문을 품었다. 다른 사람들은 루돌프가 무진장 나쁜 놈이라서 그렇다고 답했지만 양은 만족하지 못했고, 그의 아버지는 당시 민중들은 어떤 초인이나 성자가 자신의 고생을 혼자 짊어주길 기다렸으며 루돌프는 그것을 이용했다고 색다른 대답을 내놓았다. 타이롱은 역사보다 돈과 미술품에 더 관심을 보이라고 말했지만 아들에게 강요하지는 않았고, 양은 점점 더 역사에 빠져들었다.

양 웬리는 16살이 되자 아버지 타이롱에게 하이네센 기념대학 역사학과에 진학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타이롱은 "......뭐, 괜찮겠지. 역사로 돈을 번 놈이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고."라고 중얼거리더니 아들에게 돈의 중요성을 설파하면서 대학 진학을 허락했지만 그 직후 벌어진 사고로 숨을 거두었다. 양은 장례식이 끝나자 아버지의 유산을 상속받았는데, 알고보니 아버지의 무역회사는 저당이 잡혀 있었으며 미술품은 만력적회 하나 빼고 모두 위작이었음이 밝혀졌다.[3] 졸지에 알거지가 된 양은 아버지가 물려 준 위작품들과 함께 길거리에 나앉고 말았다. 양은 아버지의 회사를 물려받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기에 회사가 어떻게 되든 알 바 아니었으나[4] 당장 상급학교로 진학할 돈이 없다는 건 큰 문제였다.

양 웬리가 살던 시기 자유행성동맹은하제국과 130년이 넘는 전쟁을 벌이고 있었기에, 그에 수반되는 막대한 군비 지출은 국가 예산을 압박했다. 전쟁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인문학계에 대한 지원은 꾸준히 삭감되었기에 장학금을 받으며 역사 공부를 하기는 매우 힘든 일이었다. 공짜로 역사를 배울 수 있는 곳을 찾던 양의 눈에 국방군 사관학교 전쟁사연구과가 들어왔고, 양은 마감 직전 아슬아슬하게 입학원서를 내고 수석에서 한참 먼 성적으로 간신히 합격했다.

3. 사관학교

파일:사관학교 생도 양 웬리.png

양은 사관학교에 입학하자 아버지가 모아둔 쓰레기들을 대부분 버리고 일부는 임대창고에 보관한 뒤 사관학교 기숙사로 거처를 옮겼다. 그는 전쟁사 편찬실의 연구원을 노렸기에 전쟁사와 역사는 통달했으나 나머지 과목은 부진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전략전술 시뮬레이션에서 10년만에 나온 수재라고 칭찬이 자자하던 학년 수석 말콤 와이드본을 격파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5] 패배한 와이드본은 격분하여 도망치기만 했다고 양을 매도했지만 양은 기계공학에서 부진한 학점을 메울 수 있었으므로 신경쓰지 않았다.

2학년을 마친 후 양은 전쟁사연구과에서 전략연구과로 전과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사관학교 예산이 삭감되어 전쟁사연구과가 폐과되었기 때문이다. 양은 교관에게 항의했지만 교관은 수재들만 모이는 전략연구과에 전과하는 건 좋은 일이라고 달래면서 한편으로는 싫으면 그만두어도 되지만 그러면 지금까지 제공받은 학비를 반환해야 한다고 태클을 걸었고, 돈이 없는 양은 이도저도 못하는 처지였다. 양은 친구 장 로베르 랍과 함께 전쟁사연구과 폐지 철회 운동을 시작했고 제시카 에드워즈의 도움을 받았지만 예산 삭감이라는 명분을 이기지 못하여 실패했다. 정학 또는 퇴학 처분이 내려질 수도 있었으나 당시 교장 시드니 시톨레 중장은 운동에 참가한 생도들을 칭찬하며 불문에 붙였고 양과 랍은 전쟁사 연구과 도서관의 장서 리스트를 반년에 걸쳐 제작하라는 처벌 아닌 처벌을 내렸다.

이후 우주력 785년 10월, 양은 훗날 자신의 동지가 되는 더스티 아텐보로를 만났다. 아텐보로는 기숙사 폐문시간을 어기고 담을 넘다가 순찰을 돌던 양 웬리에게 발견되었는데, 양은 그걸 보고도 못 본 척 해주었다. 이렇게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유해도서애호회'를 만들어 사관학교에서 유해도서로 지정한 책들을 교관이나 풍기위원 몰래 읽었다.

우주력 787년, 양 웬리는 사관학교 전략연구과를 졸업했다. 성적은 4,840명 중 1,909등. 그리 부진하지도, 뛰어나지도 않은 성적을 거두었다.[6]

여담으로 사관학교 시절, 혹한기 훈련 도중 낙오되어 얼어죽을 뻔했다고 한다. 당시 책임자인 교관이 부사관 출신으로 대위까지 오른 장교인데, 곧 퇴역을 앞두고 있었다. 헌데, 학생이 사고로 죽으면 퇴역연금이 박탈되기에 이 장교가 열심히 찾아내 기어코 양 웬리를 구해냈다고 한다. 율리안은 이 이야기를 회상하며, 자신의 연금 문제를 걱정한 한 교관이 역사를 바꾸었다고 썼지만 알렉스 카젤느는 이 일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양이 얼어 죽을 리가 있냐! 동면했다가 봄이 되면 어슬렁어슬렁 기어 나오겠지."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외전 3권 <율리안의 이제르론 일기>, 김완, 이타카(2011), p.131
의외로 어디 떨어져도 죽지는 않을 타입인가보다
어쨌든 그다지 특출난 성적은 아니었으므로 평범한 소위로 임관하면서, 때려치우고 싶어 죽을 지경인 군바리 인생이 시작된다.[7]

4. 위관

4.1. 소위

사관학교를 졸업한 양 웬리 소위의 최초 근무지는 통합작전본부 기록통계실이었다. 군공을 쌓을 수는 없지만 과거 역사 기록들을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었기 때문에 양 웬리는 꽤나 마음에 들어했다. 하지만 직장 동료들은 양을 오랜 시간 직장에 있어도 일과 상관없는 낡은 기록만 읽는다고 혹평했다. "기록은 그렇다 쳐도 통계에는 약하다", "근무 시간은 길지만 그러는 것치고는 일의 진척이 없다."가 당시 동료들의 평가였다.한 마디로 일을 안 한다

4.2. 중위

파일:중위 양 웬리.png

사관학교 졸업자에 대한 우대 정책에 따라 1년 후 21세의 나이로 중위로 승진하면서 전선으로 배치되었다. 보직은 엘 파실 성계 주둔함대의 참모. 부임하긴 했으나 여기서도 꼴통 취급 받으며 '밥벌레 양'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제국군이 쳐들어오면서 양 웬리의 군 생활이 본격적으로 꼬이기 시작했다. 전투 자체는 특이사항 없이 끝났고 양 본인도 기함의 함교에서 전투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런데 제국군이 도망치는 척하며 방심한 동맹군의 후방을 타격했고, 패닉에 빠진 아서 린치 소장이 도주하면서 주둔함대는 거의 와해되었다. 승리를 거둔 제국군은 내친김에 엘 파실 성계를 '해방'하겠다고 선언하며 병력을 증강하였다. 제국군이 접근하자 민간인들을 군에게 탈출계획을 입안 및 시행할 것을 요구했는데, 린치는 양을 책임자로 떠밀었다. 신임장교를 본 민간인들은 그에게 불신의 시선을 보냈다. 양은 그들의 시선을 개의치 않고 군용선과 민간선을 동원하여 탈출계획을 완성시켰지만 때를 기다리는 듯 계획을 시행하지 않았다.

얼마 뒤, 양의 예상대로 아서 린치 소장은 민간인과 부하들을 버리고 도망쳤다. 그러자 양은 탈출계획을 시행하여 린치 소장과 반대방향으로 도주하였다. 제국군은 도망친 린치 제독에게 주의가 끌려 도망치는 다른 선단을 눈치채지 못했다. 동맹정부는 민간인들과 함께 무사히 후방 성역으로 도망친 양을 '엘 파실 영웅'으로 칭송하여 그에게 수많은 영예를 안겨주며 적극적으로 띄워주었다. 그리고 양은 단숨에 소령으로 승진하였다. 그러나 양 본인은 군인으로 출세할 마음은 눈꼽만큼도 없었기에 그다지 기뻐하지 않았다.

어쨌든 이 엘 파실 전투를 통해 양은 수많은 인연을 쌓았다. 훗날 그의 부관이자 배우자가 되는 소녀였던 프레데리카 그린힐과, 나중에 양의 정치 파트너가 되는 프란체스크 롬스키를 만난 것도 바로 이때였다. 정작 양은 이들의 얼굴과 이름을 까먹어서 나중에 당사자가 설명하기 전까진 완전히 잊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한 명의 영웅이 탄생했다.

4.3. 대위

'엘 파실의 영웅'으로 거듭난 양 웬리에게 동맹군은 '무인의 귀감', '정의와 인도에 빛나는 전사' 라고 치켜세워주며 최고의 대우를 해 주었다. 바로 양 웬리 중위를 2계급 특진시켜 소령에 서임한 것이다. 그러나 동맹군은 살아 있는 사람에게 2계급 특진을 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었기 때문에, 1계급 특진을 두 번 하는 꼼수를 부렸다.[8] 이에 따라 양 웬리는 우주력 788년 9월 19일 10시 25분 부로 대위로 승진하였으며, 그로부터 여섯 시간 뒤인 16시 30분에 국방위원장 그로브너로부터 소령 사령장을 받았다.[9]

이러한 벼락승진의 뒤에는 군부의 눈가리기 술책이 숨겨져 있었다. 엘 파실 성계 경비함대 사령관 아서 린치 소장은 본래 나름 유능한 군인으로 평가받았지만, 엘 파실 전투에서 부하들을 내버려둔 채 엘 파실로 도주하고, 나중에는 시민과 병사들을 버리고 소수 부하들과 함께 엘 파실을 탈출하려고 했다가 제국군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당연히 군부는 민간사회의 비판에 직면했고, 이를 회피하기 위해 양 웬리를 최대한 띄워주어 비판의 칼날을 피해가려고 한 것이다.

어쨌든 이러한 조치로 인한 양 웬리의 대위 재임 기간은 6시간 5분 21,900초로 동맹군 사상 최단 기간이며, 재임 기간 동안 한 일은 소파에 앉아서 조는 것 뿐이었다.

5. 영관(좌관)

5.1. 소령(소좌)

승진 후 동맹의 최대 관심사로 떠오른 양 웬리. 그는 대장이나 원수 등 최고위급 장교들과 부대끼며 기자회견, 인터뷰, 표창식, 회식 등등에 참석하며 문자 그대로 폭풍같은 일주일을 보냈다. 음식의 맛도 제대로 못 느끼고, 잠도 제대로 못 잘 정도였다. 매스컴들은 "린치 제독의 부인과 대담을 가져달라", "양 타이롱의 전처와 만나게 해 주겠다" 등 어마어마한 숫자의 기획을 들고 와서 양 웬리 앞에서 떠들어댔고, 양은 이러한 기획들을 거절했다. 거기에다 양 웬리의 친척을 자칭하는 자들까지 몰려왔고, 누구는 나는 10년 전부터 양 웬리의 재능을 알아봤다고 자화자찬했다.

그러나 양 웬리는 승진은 했지만 직책이 없는, '명령 대기' 상태여서 당장 할 업무는 없는 상태였다. 양 웬리에 대한 관심이 가라앉고 얼마 뒤인 우주력 788년 10월 2일, 통합작전본부는 참사관 알렉스 카젤느 중령을 통해 양 웬리 소령에게 브루스 애쉬비 원수가 모살당했다는 주장을 담은 투서를 조사할 것을 명령했다. 양은 이 작업이 불리한 진실을 은폐하기 위한 사전조사라고 생각해서 불쾌해했으나, 카젤느가 적당히 달래고 여기서 업적을 세우면 전사편찬소 연구원이 될 수도 있다고 설득해서 받아들였다. 이때 카젤느의 부관이던 율리안의 아버지 민츠 대위가 자료를 건네주면서 양과 잠시 마주치게 된다. OVA에서 대사 없이 등장하는데 아마색 머리의 뒷모습만 보인다.

그렇게 비공식 조사위원에 선임된 양 웬리는 브루스 애쉬비730년 마피아, 제2차 티아마트 회전에 대해 다룬 역사서 60권을 읽고 730년 마피아의 마지막 생존자 알프레드 로자스 제독과 면담하기도 했다. 이때 그의 손녀인 미리암 로자스와도 인연을 맺었다. 그런다 양을 만나고 며칠 뒤 로자스 제독은 수면제를 잘못 먹어 사망했고, 양은 로자스 제독의 장례식에 참여해야 했다. 여기서도 미리암 로자스를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장례식에서 돌아온 양은 제2차 티아마트 회전에 참가했던 중견 사관이나 하급병사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조사에 착수했다. 양은 그 답지 않은 근면성실함을 적극 발휘해서 제2차 티아마트 회전에 참가한 사관, 부사관, 병사의 리스트를 작성하고 주소, 일정표, 출장 여비까지 계산해서 10월 12일 카젤느에게 출장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군 상부는 갑자기 양에게 행성 에코니아에 있는 에코니아 포로수용소의 참사관으로 발령냈고, 양은 짐을 싸서 하이네센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부임한 양은 근무 하루 만에 본의 아니게 맞닥뜨리게 된 수용소장 버나비 코스테아 대령의 횡령사건을 우연과 행운, 그리고 숨은 조력자의 도움으로 해결했다. 코스테아 대령은 사태가 불리하게 돌아가자 양이 포로들과 결탁하여 소란을 일으켰다고 주장했으나 타나토스 성계 관구사령부에서 온 조사관 무라이 중령은 이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코스테아 대령을 공금횡령 혐의로 구속했다.

사건이 마무리되자 양은 카젤느의 수완 덕에 하이네센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참사관 부임 기간은 단 2주, 역대 참사관 중 최단 기록이었다. 양은 파트리체프, 쾨펜힐러와 함께 수도 하이네센으로 돌아왔지만 중간에 들른 행성 마스지드에서 쾨펜힐러가 사망했고, 양은 마스지드에 그를 묻었으며 유품을 정리했다. 그리고 우주력 789년 3월 1일부로 제8함대 사령부 작전과에 부임했다. 이 사건으로 양은 훗날 자신의 휘하에서 활약하는 두 참모, 무라이표도르 파트리체프와 인연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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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사령관은 서서 일하는데 앉아서 후배랑 노닥거리는 일개 소령의 위엄
이후 우주력 792년 5월 제5차 이제르론 공방전 당시 동맹군 우주함대 사령장관이었던 시드니 시톨레 대장의 부관으로 참여하기도 했는데, 양은 무력으로 이제르론 요새를 탈환하는 것 보다는 피해 없이 말짱한 요새를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5차 이제르론 공방전 직후[10] 양 웬리는 중령으로 승진했다. 소령 재임기간은 3년 10개월이었으며, 그가 거친 13계의 계급 중 가장 긴 시간이었다.

5.2. 대령(대좌)

중령(중좌) 시절의 모습은 묘사되지 않으며, 우주력 794년 제6차 이제르론 공방전에서 대령 계급으로 다시 등장한다. 당시 총사령부에서 총참모장 드와이트 그린힐 대장 휘하 작전참모로 근무했다.

그러나 양 웬리 본인이 군인 같지 않은 겉모습과 전혀 반전이 없는 행동을 보여 참모부 내에서도 '비상근 참모'라 손가락질 당하며 백안시 되는 처지였고, 그런 분위기에 휩쓸려 로보스 원수도 양의 실적은 인정하지만 참모들의 반응을 봐서는 싹수가 노랗다고 판단하여 푸대접했다. 사람들은 엘 파실 전투도 그저 우연이라고 치부했다.

하지만 우주함대 총참모장 드와이트 그린힐 대장이 양을 인정하고 계속 두둔해준 덕분에 총사령부에 붙어있을 수 있었으며, 뭔가 잘 안 풀릴 때마다 양을 찾아가 작전계획 수립을 지시하였고, 그 때마다 내놓은 작전이 적절하게 먹혀들면서 나름 전공을 세웠다. 그러나 그린힐 대장도 완전히 바지사장 수준은 아니어서 양의 작전안을 받아들면 이를 자신의 기준에 맞게 적당히 편집해서 채택하는데다가 로보스 원수도 2차 수정을 한 덕분에 양의 작전안은 어딘가 계속 수정받아 결국 완벽한 승리를 놓치는 모습도 간간히 연출되었다.

일단 자기 생각에는 위에 언급한 식으로 밥값은 하고 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총사령부 내에서 평판은 최악을 달리고 있었다. 실제 우주함대 총사령부에서 후방주임참모를 맡고 있던 알렉스 카젤느 준장은 "넌 운이 좋은 사람이라더라. 엘 파실 때도 그랬지만, 남이 수치를 겪을 때 아주 조금 더 낫게 일해서 점수를 따고 승진한다고"란 총사령부 내부의 평가를 여과없이 그대로 들려줬다. 사실상 대놓고 매도하는 혹평이었지만 양은 화를 내기는 커녕 자신의 실제 승진 과정이 투영된 평이라면서 오히려 감탄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렇게 비우호적인 분위기에서 근무하면서 끊임없이 상부에 의견을 개진했지만 그린힐 대장을 제외하면 제대로 듣는 이가 없었다. 결국 이번에는 나설 차례가 없다고 여겨 전투 도중 낮잠을 잤는데, 그 모습을 그린힐 대장에게 들켜버렸다. 그린힐은 동맹군에서 손꼽히는 신사라는 평이 있을 만큼 온화한 인물이라 노성을 지르지는 않았지만, 한동안 양에게 크게 실망했다. 제6차 이제르론 공방전 이후 양은 공을 인정받아 준장으로 승진했으나 그린힐 대장이 실망해서 통합작전본부나 우주함대 사령부에 발을 붙일 수는 없었고 결국 제2함대 차석참모에 부임했다.

참고로 OVA에서는 잠을 자지 않았다. 대신 전황이 썩 좋지 않게 흘러가자 자신이 할 일이 없어졌고, 결국 책상에 다리를 올려두는 삐딱한 자세로 앉아 있었는데 이걸 본 그린힐 대장이 한숨을 내쉰다. 사유가 어찌되었던 치열한 전투 한가운데서 그런 행동을 했음에도 겨우 좌천으로 끝난 것에 대해 그린힐 대장이 매우 인격이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이 시절, 정확히는 우주력 794년 봄에 양은 알렉스 카젤느의 주선으로 훗날 양 웬리의 후계자로 이름을 떨치는 율리안 민츠트래버스 법에 따라 입양했다. 카젤느는 트래버스 법에 대해 한껏 비꼬아 설명하며 양에게 너도 한 명 맡아줘야겠다며 보육시설에 있던 율리안 민츠가 양 웬리에게 입양될 수 있도록 주선해주었다.

나흘 뒤 양은 집에서 파자마 차림으로 널부러져 있으면서 긴 휴가를 만끽하고 있었는데, 그때 거대한 슈트케이스를 끌고 온 율리안이 양 웬리의 관사를 방문했다. 율리안이 자신을 소개하자 양은 자기가 청소년 시절 책임을 져야 할 여성문제를 일으켰는지 생각했지만,첫경험을 14살때 했나?[11] 율리안이 카젤느 준장 각하의 소개로 왔다고 하자 겨우 의혹을 풀었다. 율리안의 기억에 의하면 그때 양은 파자마 차림에 칫솔을 물고 있었다고 한다.

율리안이 양 웬리의 관사로 오고 이틀 뒤, 양은 단기 출장을 갔다가 일주일 만에 귀가했다. 그리고 그 사이 율리안은 양이 방치해두었던 홈 컴퓨터의 정보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청소도 깨끗하게 해 두었다. 이 모습에 기분이 나빠진(...) 양은 홍차를 마신 다음 불평을 늘어놓아야 겠다고 생각했지만 율리안은 홍차를 좋아했던 아버지 덕에 홍차 끓이는 실력도 대단했다. 결국 양은 율리안의 가정경영 방식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6. 장성

6.1. 준장

파일:yang dnt.jpg

준장 승진 후 제2함대에 부임했으나 사령관 파에타 중장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파에타 중장도 양 웬리의 전공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고, 당시 동맹 전체에 16명 밖에 안되는 20대 장성이라는 점에서 능력은 인정하지만 어딘가 나사가 두어 개 빠진 듯한 차석참모를 그리 신용하지 않았다.[12] 파에타는 양을 그저 후방근무본부에서 병사들 월급이나 계산하면 어울리겠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레그니처 상공 조우전에서 양 웬리의 진언을 듣지 않아서 라인하르트 폰 뮈젤에게 발렸고, 아스타테 회전에서도 양이 제국군의 각개격파 전술을 우려해 그에 대한 대응책을 제시하였지만 역시 무시했다. 결국 동맹군은 라인하르트의 은하제국 원정부대에게 각개격파를 당해서 2개 함대가 전멸하고 2함대도 기습을 받는 와중에 기함 파트로클로스가 피격되어 파에타 중장이 중상을 입자 최선임자로 양이 지휘권을 인계받았다.

3개 함대 중 2개 함대가 궤멸당하고 수적 열세 상태에서 선공을 당했고, 심지어 전파 방해와 도청으로 함선간 통신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그야말로 사면초가와 같은 상황. 명령도 전달하기 어려운 암울한 전환에서 양은 사전에 이를 예측하고 송신해놓은 작전 데이터를 기반으로[13] 함대를 지휘해 제국군과 호각으로 싸우며 엘라흐 소장을 사살하는 공적까지 세웠다. 패배 직전까지 몰린 상황에서 전투를 소모전으로 몰고 가 전황을 호각세로 바꾼 양의 능력은 패배를 모르던 라인하르트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이때 라인하르트가 보낸 전언이 그 유명한 "귀관의 용전에 경의를 표한다. 다시 싸울 날까지 건재하라."이다.

양이 귀환하자 동맹군은 참패를 어떻게든 가리기 위해서 엘 파실 때와 마찬가지로 양을 '아스타테의 영웅'이라 칭송하면서 소장에 서임했다. 그러나 전몰기념식에서 국방위원장 욥 트뤼니히트가 연설하는데 일어나서 박수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우국기사단이 양 웬리의 관사를 찾아가 테러하는 일도 있었다.

6.2. 소장

양 웬리를 소장에 서임한 통합작전본부장 시드니 시톨레 원수는 국방위원장 욥 트뤼니히트와 대립하고 있었다. 아스타테 회전 전몰자 기념식이 열릴 때쯤 시톨레 본부장은 임기가 70일 정도 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는 재임과 지위 강화를 위해 승부수를 띄웠다. 바로 4, 6함대 잔존병력과 신병을 합쳐 새 우주함대를 창설하고, 쭉 눈여겨본 양 웬리를 통해 이제르론 요새를 함락시키는 것. 시톨레는 양의 소장 승진을 통보한 자리에서 요새 공략을 제안했고, 시톨레 원수의 구슬림에 넘어가준 양은 이 제안을 수락했다.

그러나 신규 편성된 제13함대의 전력은 함정 6,400척에 장병 70만 명. 통상 정규함대의 절반에 불과한 반쪽짜리 함대였으며, 장병 대부분은 패잔병과 신병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이제르론 요새는 동맹군의 공세를 여섯 차례나 막아내며 난공불락의 요새임을 입증했으며, 동맹은 요새 공략과정에서 수백만 명의 장병을 잃었다. 이런 상황에서 반쪽짜리 함대로 요새를 공략하겠다니 동맹군 내부에서는 비웃음이 흘러나왔다. 유일하게 비웃지 않은 사람은 노제독 알렉산드르 뷰코크 중장 뿐이었다.

하지만 양은 요새&주둔함대 지휘체계가 동격의 지위를 가진 요새 사령관과 주둔함대 사령관으로 이원화되어있다는 것에 착안해서 요새를 밖이 아닌 안에서 무너뜨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알렉스 카젤느를 통해 제국군 군함 한 척과 제국군복 200벌을 마련하고, 발터 폰 쇤코프를 비롯한 로젠리터 연대를 데리고 요새 공략에 임했다.

비웃음을 받아가며 실행한 요새 공략은 대성공이었다. 먼저 "극비 임무를 수행하러 동맹령에 잠입했다가 발각되어 추격당하는 중이니 구원을 요청한다." 며 제국군인 척 거짓 통신을 보내 주둔함대를 엉뚱한 곳으로 꾀어낸 뒤 쇤코프 대령을 비롯한 로젠리터 연대원 및 기술병들을 제국군인으로 위장시켜 태운 제국 군함을 요새에 들여보냈고, 내부 군기가 해이해진 요새 주둔군은 별다른 검문검색 없이 요새 사령관 토마 폰 슈톡하우젠 대장에게 보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 쇤코프가 기습하여 슈톡하우젠을 인질로 삼고 제플 입자를 살포하여 요새 사령부의 항복을 받아냈으며, 기술병을 통해 요새에 수면 가스를 흘려보내 요새를 무혈점령했다.

요새에 입항한 양 웬리는 재차 가짜 통신을 보내 주둔함대를 끌어들이고, 아무것도 모르는 주둔함대가 요새에 접근하자 토르 하머를 발사하여 주둔함대를 도륙내버렸다. 당황한 주둔함대는 한스 디트리히 폰 젝트 대장의 명으로 응전했지만 이제르론의 굳건한 외벽에 생채기조차 내지 못했고 곧바로 두 번째 토르 하머가 제국군을 관통했다. 발터 폰 쇤코프가 이건 전투가 아니라 학살이라고 진언하자, 그 말을 긍정하며 주둔함대에 항복을 권하고, 항복하기 싫으면 추격하지 않을 테니 도망치라고 통신을 보냈다. 그러나 젝트 대장은 무인의 마음 운운하며 옥쇄를 명령했고, 양 웬리는 저런 놈 때문에 전쟁이 끝나지 않는다고 분노하여 즉시 토르 하머로 젝트의 기함을 정조준하여 기함째로 젝트를 죽여버렸다. 사령관을 잃은 주둔함대는 뒤도 안 돌아보고 제국령으로 도망쳤다.

양 웬리가 귀환하자 동맹은 양을 마술사니 기적이니 칭송했으며 시톨레 원수도 재임에 성공했다. 그러나 양은 그다지 기뻐하지 않았으며,[14] 얼마 뒤 정식으로 시톨레 원수에게 퇴역을 청하는 예편원을 제출했다.

파일:양 웬리의 예편원.png
From Rear Admiral Yang Wen-li
To FADM, Sidney Sithole

I desire to resign my commission as Colonel in the Free Planet Alliance Fleets.

As I would not be of use in the event of war, it is certain that my continued commissioned status is of no benefit to the Free planet Alliance fleet. It is therefore respectfully requested and urged that this resignation be accepted.

I hope my request will be taken seriously and will be fully enquired. Thanking you.

Yours faithfully.

파일:yang_wenli_sign.png
소장 양 웬리
시드니 시톨레 원수에게,

자유행성동맹 함대 제독 직위에서 물러나고 싶습니다.

저는 전시 상황에서 쓸모가 없어, 제가 직위를 유지한다는 것은 자유행성동맹 함대에도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저의 사임이 허가되는 것을 정중하게 요청드리는 바 입니다.

저의 요청을 진지하게 받아주시고 충분히 숙고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만 줄이겠습니다.
은하영웅전설 Die Neue These 9화에서 양 웬리가 제출한 예편원

시톨레 원수는 아직 의학상 평균 수명의 3분의 1도 살지 않았으면서[15] 인생을 포기하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난색을 표했으나 양은 이제 인생을 제 길로 되돌리는 거라고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나 시톨레 원수는 아군에게 필요한 것은 역사연구가 양 웬리가 아니라 굉장한 용병가 양 웬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으며 더 나아가 자네의 함대인 13함대를 이대로 버릴 것이냐고 물었고 양은 말문이 막혀버렸다. 결국 양은 예편원을 제출한 채 참담한 심정으로 자리를 뜨고 만다.

결국 양의 예상대로 우주력 796년 8월 6일 통합작전본부는 양 웬리의 예편원을 기각함과 동시에 중장에 서임했다. 행복한 퇴역군인의 꿈이 수포로 돌아가버린 순간이었다.[16]

6.3. 중장

중장으로 승진한 양 웬리는 2함대를 흡수하여 '반쪽짜리'라는 딱지를 뗀 13함대의 사령관직을 유지했다. 그리고 로열 샌포드 내각이 통과시킨 제국령 침공작전에 참전했다.

원정에 참여한 양 웬리의 기분은 좋지 못했다. 이제르론 요새 무혈함락은 어디까지나 양 웬리가 잘 해서 이뤄낸 성과일 뿐 동맹군에 그만한 능력이 있어서 얻어낸 것이 아닌데, 정권 재창출에 눈이 멀어 침공안을 통과시킨 동맹 정부는 물론 언론까지 주전론을 부추기며 제국령 침공을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분위기를 만들어낸 게 '달콤한 승리'를 가져다준 양 본인임을 잘 알고 있었기에 술을 점점 더 많이 마셨다. 작전 개시 전 개최된 작전회의에는 양을 라이벌로 여기는 앤드류 포크가 구체적인 계획 없는 작전계획을 떠들고 신중론을 주장하는 양의 발언을 이적행위라고 지적까지 해서 더더욱 양의 기분을 가라앉게 만들었다.

제국령 침공작전에서는 2진으로 참여했으나 제국군은 후방으로 철수하여 청야전술을 벌였기에 제국령 일부를 무혈점령했을 뿐 아무런 공적을 세우지 못했다. 민중을 구휼하느라 각 함대의 물자는 바닥을 드러냈고 상부는 본국에서 수송함대가 올 때까지 물자를 현지 조달하라는 어처구니없는 명령을 내렸다. 이렇게 되자 양은 제국군의 전략을 파악하여 우란푸 제독과 알렉산드르 뷰코크 제독 등과 연락하여 총사령부에 철군을 요청했으나 총사령관 라자르 로보스 원수는 취침, 대신 연락을 받은 앤드류 포크는 자신보다 몇십 년 더 군생활한 뷰코크 제독에게 까불다가 독설 한 방에 전환장애가 발병해 후송되면서 피해 없이 퇴각할 기회를 놓쳤다. 그리고 동맹군은 식량 부족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제국군의 총반격을 맞았다.

제국군의 반격에 동맹군은 버티지 못하고 패주했으나 양 웬리는 혼자서 제국군 칼 구스타프 켐프 중장의 함대를 패퇴시켰다. 양은 반월진형을 펼쳐 교대로 제국군을 두들겼으며 의외의 피해를 놀란 켐프가 재편성을 위해 후퇴하자 박자를 맞추어 후퇴, 아니 도망쳤다.

양 함대는 켐프 함대와 싸운 곳으로부터 65억 km 도망쳤으나 그곳에는 그레드윈 스코트 제독이 지휘하는 동맹군 수송함대와 호우드 제독이 지휘하는 제7함대를 격멸한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 중장의 함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13함대의 네 배에 달하는 전력을 가진 키르히아이스 함대는 정석대로 끝임없는 파상공세와 빈틈없는 용병으로 양을 몰아붙였다. 양은 이 상황에도 후퇴하면서 진형을 U자형으로 재편하여 적을 끌어들여 세 방향에서 협공하려 했지만 진형을 바꿀 때쯤 암릿처 성계로 후퇴하라는 총사령부의 명령이 떨어졌고, 양은 상당한 손실을 보면서 암릿처 성계로 후퇴했다.

암릿처 회전에서 양은 항성 암릿처를 이용해 돌진하여 볼프강 미터마이어 중장의 함대에 타격을 입혔고 8함대를 박살낸 뒤 달려드는 슈바르츠 란첸라이터마저 근접 일제사격으로 박살냈다. 그러나 전군의 30%를 통솔하는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 제독의 대함대가 동맹군 후방으로 접근하여 지향성 제플 입자로 기뢰밭을 돌파하자, 동맹군은 혼란에 빠져 패주했다. 양은 전장에 남아 적의 공세에 대항하면서 아군의 퇴각을 엄호했으나 키르히아이스가 퇴로를 차단하자 퇴로가 끊겼다며 크게 놀랐다. 하지만 같이 놀란 동맹군 일부 함정이 항로계산도 안하고 워프하면서 시공진동이 발생했고, 이로 인해 제국군의 전열이 흐트러졌다. 덕분에 포위망이 어그러졌고 키르히아이스는 함대 재편에 시간을 소모해야 했기 때문에 양 웬리는 그 틈을 타 유유히 퇴각했다. 그리고 퇴각하면서 끝까지 저지하려는 슈바르츠 란첸라이터를 함정 수 척만 남기고 모조리 격침해버렸다.

제국령 침공작전에서 다른 동맹군 함대는 와해되었는데 홀로 생환률 70%를 보여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고 관사는 양 웬리를 찾으러 온 언론인과 시민들로 가득찼고 전화와 편지도 꽉 찰 정도로 왔다. 한때 관사까지 찾아와 테러하던 우국기사단은 "애국의 명장을 칭송하노라"라는 편지를 보내 양을 실소케 했으나, 13함대 전사자의 어머니가 양을 살인자와 똑같은 족속이라고 비난하는 편지를 보냈을 때는 울적해하기도 했다. 일련의 사태에 울적해진 양은 율리안의 권고를 받아들여 장기휴가를 내서 3주간 행성 미트라의 숲에서 기분 전환하고 수도로 돌아왔다. 뷰코크는 양을 우주함대 총참모장에 임명하고 싶어했고 쿠브르슬리는 통합작전본부 참모총장에 임명하고 싶어했지만 동맹정부는 양에게 이제르론 요새 사령관 겸 주둔함대 사령관 겸 동맹군 최고참모회의 의원으로 임명했다. 동시에 13함대는 10함대와 합쳐져 이제르론 요새 주둔함대, 통칭 '양 함대'가 되었다.

한편으로는 이 시기 OVA 기준으로는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테르누젠 선거구에 출마한 주전파 후보 레이먼드 톨리아티가 반전파 후보 제임스 손다이크에 밀리는 지지율을 뒤집겠다고 사관학교 행사 차 테르누젠을 방문한 양 웬리를 자기의 선거운동에 써먹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반전파 한명을 우국기사단으로부터 보호하고 왔어도 오히려 그들과 한패냐는 소리나 들어야 했다. 물론 본인은 군인으로서 대외적으로는 정치적 중립을 지켰지만 실질적으로는 반전에 가깝긴 했다.

6.4. 대장

제국령 침공작전의 실패로 동맹군에 퇴역과 좌천의 칼바람에 부는 가운데 공훈을 인정받아 알렉산드르 뷰코크, 쿠브르슬리와 함께 대장으로 승진한다. 20대에 대장을 단 경우는 있었지만 1년 안에 장성 3계급 승진(준장→소장→중장→대장)이 결정된 것은 기나긴 동맹의 역사에서도 처음이었을 정도로 이례적인 경우. 같은 해 12월 1일 이제르론 요새&주둔함대 사령관으로 이제르론 요새에 부임했고, 기존 13함대 간부진에 10함대 간부진을 더하고 여기에 라오, 알렉스 카젤느를 영입하여 신설 '양 함대'의 구색을 갖추었다. 또한 당번병으로 율리안 민츠를 데려갔다.

우주력 797년 제국 문벌귀족리히텐라데-라인하르트 추축이 충돌할 기미를 보이자 양은 라인하르트가 내전에서 승리할 때까지 동맹이 수작부리지 못하도록 군 내 불평분자를 선동하여 쿠데타를 유도하려한다고 생각했다. 포로교환식 이후 양은 귀환포로 환영식에 참석한다는 명분으로 하이네센으로 향했지만, 도중에 항법장교 이블린 돌튼 대위가 개인적인 원한으로 수송선단을 항성 마즈닥에 돌입시키려 하자 부하들과 함께 사태를 수습했다. 하지만 돌튼 사건 때문에 시간이 매우 촉박해졌고, 양은 수도에 도착하자 몰래 빠져나와 알렉산드르 뷰코크 대장에게 쿠데타 위험을 경고한 뒤 급히 칼데아 66호를 타고 이제르론 요새로 귀환했다. 그러나 양이 수도에 돌아가는 사이 구국군사회의는 행동을 개시하여 4월 13일 정부를 무너뜨리고 동맹 수도 하이네센을 장악했다.

구국군사회의는 양 웬리를 포섭하려고 했지만, 양은 구국군사회의와 손을 잡지 않고 오히려 쿠데타 진압에 나선다. 이때 부관인 프레데리카 그린힐 대위의 위치가 쿠데타 주모자였던 사열부장 드와이트 그린힐 대장의 딸이란 것 때문에 지위가 애매해지자, 담담한 말투로 "그런 우수한 부관은 찾기 어렵다"며 그녀를 유임했다.[17]

양 웬리는 가장 먼저 삼풀 행성의 반란군을 소탕하여 행성을 해방하고, 도리아 성역 회전에서 쿠데타에 가담한 제11함대를 각개격파했다. 그리고 함대를 수도 근처까지 진군시켜 동맹 시민 및 지방정부와 군부대의 여론을 헌정 지지파로 돌렸으며, 쿠데타군이 맹신하는 아르테미스의 목걸이를 아광속으로 돌진하는 얼음덩어리로 격파했다. 결국 모든 저항수단을 상실한 구국군사회의는 항전을 포기하고 양 함대에 항복했다.

양 함대도리아 성역 회전에서의 승리와 반란 행성 해방, 아르테미스의 목걸이 파괴와 하이네센 치안 회복에 이르기까지 쿠데타 진압의 최전선에 서 있었으므로, 사령관인 양은 당시 자취를 감춘 욥 트뤼니히트와 그 일파를 대신하여 정권을 장악할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하이네센이 안정되자 병력을 수습하여 임지인 이제르론으로 돌아갔다. 이때 제국에서 빌리바르트 요아힘 폰 메르카츠 제독이 망명했는데 양은 무라이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메르카츠를 최대한 잘 대우해주었고, 메르카츠는 '객원제독'이라는 칭호를 받아 양의 참모가 되었다.

그렇게 다시 평화가 찾아오는 듯 했지만 트뤼니히트 정권은 양을 권력유지에 걸림돌이 되는 불순분자라고 보았고, 여기에 페잔 자치령 정부가 은근슬쩍 동맹 정부의 의심을 부추겨서 양은 사문회에 소환된다. 양은 같이 하이네센에 갔던 프레데리카 그린힐 대위 및 루이 마솅고 준위와 떨어져 밀실에 감금, 격리되는 대접을 받는다. 처음에는 꼬치꼬치 따져대는 사문의원들을 신사적으로 대했으나 나중에는 이대로 냅두면 끝이 없겠다는 생각에 신랄한 독설로 반격을 가해 사문회를 개판으로 만든다. 양은 감금도 모자라 이런저런 트집이나 잡는 사문위원이 짜증나서 '아 ㅅㅂ 진짜 사표라도 낼까?'라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고 실제로 예편원까지 써 뒀는데, 때마침 켐프가 가이에스부르크 요새를 끌고서 이제르론에 쳐들어오는 바람에 사문회는 취소되고 이제르론으로 급거 귀환을 하게 된다.

사령관이 휘하병력과 떨어져서 수도에 있었으며, 한 달이나 지나서 소식을 안 후 긁어모은 소수의 구원함대로 구원에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르론 주둔함대와의 연계로 켐프 함대에 치명적인 일격을 가하자 켐프는 요새를 요새에 부딪히게 할 계략을 겨우 실행에 옮겼다. 양은 이 사태를 제일 우려했었고, 라인하르트는 이 작전을 썼으면 벌써 끝날 것 아니냐는 발언을 했었다.하여간 미리 대비를 하고 있었던 양은 요새 엔진의 일부만 파괴하는 전술을 써서 요새를 스핀 상태로 만들었고, 스핀상태의 가이에스부르크 요새는 제국군 잔존함대와 격돌, 치명상을 입은 상황에서 토르 하머까지 맞아 대폭발을 일으키고 만다.

이렇게 대승을 했지만 양의 만류를 듣지 않고 제멋대로 추격에 나섰던 동맹군 일부 함대가 구원군으로 온 미터마이어와 로이엔탈 함대의 화망에 걸려 전멸당하는 옥의 티를 만들어 버렸다.

이후 페잔 자치령의 공작으로 은하제국 황제 에르빈 요제프 2세문벌귀족 잔당이 동맹으로 망명하고, 동맹정부는 일종의 외교 카드로 쓰기 위해 이들이 만든 은하제국 정통정부를 공식 지원했다. 그러나 라인하르트는 즉시 외교교섭을 거부하고 선전포고한다. 양 웬리는 어린아이에 불과한 황제가 자의로 망명했을 리는 없고, 몰락한 문벌귀족들이 황제를 납치해서 동맹까지 도망칠 역량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사건을 페잔이 주도하고 라인하르트가 방조했다고 판단했다.

동맹정부는 라인하르트가 선전포고하자 군부 장악력을 높이고 양 웬리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은하제국 정통정부의 초빙이라는 명목으로 메르카츠 제독을 떼어내고, 율리안 민츠도 페잔 판무관 사무소 주재무관으로 발령보냈다. 양은 격렬히 분노했지만 정부의 명에 따라 길길이 날뛰는 율리안을 달래서 페잔으로 보냈다. 언젠가 제국군이 페잔 회랑을 통해 침공하리라 예견한 양은 율리안을 통해 페잔인과 동맹정부에 경고하려고 했지만 동맹정부나 페잔인이나 모두 무시해버렸다. 그리고 그 사이 제국군은 제국 전쟁사상 최대 원정이 될 제1차 라그나뢰크 작전을 입안, 준비에 분주했다.

우주력 798년 11월, 오스카 폰 로이엔탈 상급대장이 지휘하는 제국군 대함대가 이제르론 회랑을 공격했다. 로이엔탈은 빈틈없는 용병으로 양 웬리가 파고들 틈을 주지 않았으며, 한때 요새 주포 토르 하머 사거리 내에서 난전을 일으켜 양 웬리의 허를 찌르기도 했다. 그러나 양은 기함 히페리온을 미끼로 출격시켰고 여기에 낚여 돌진하는 로이엔탈의 기함 트리스탄장갑척탄병을 침투시켜 로이엔탈을 죽이려고 했다. 이 작전은 거의 성공할 뻔 했지만 간발의 차이로 실패했고, 한방먹은 로이엔탈은 함대를 일단 후퇴시킨 뒤 끊임없는 파상공세로 요새를 공격했다. 양 웬리는 이 전투가 자신의 발을 묶고, 더 나아가 우주의 시선을 이제르론에 집중시켜 페잔 점령 작전을 시작하는 또 다른 부대의 움직임을 감추기 위함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대응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그저 무기력하게 전투에만 임했다.

우주력 798년 12월, 양 웬리의 예견대로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이 지휘하는 제국군 본대가 페잔 자치령을 침공하여 자치정부를 무너뜨리고 페잔 회랑을 장악했다. 율리안은 제국군에게 잡히지 않고 무사히 탈출했지만 10만 척이 넘는 제국군 대함대는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고 동맹령에 진입했다. 동맹정부는 초비상 상태에 빠졌고 총참모장 춘우 지엔 대장은 페잔 회랑이 적에게 넘어간 이상 이제르론 회랑의 전략적 가치는 없으므로 양 웬리를 불러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알렉산드르 뷰코크는 춘우 지엔의 의견을 받아들여 양 웬리에게 모든 책임은 우주함대 사령부가 질 테니 하고싶은 대로 하라는 훈령을 보냈다.

이것이 최초로 재량권을 인정받은 때였다. 원님 행차 후 나팔 불기를 하지 않아도 되니 기분이 좋아져, 콧노래를 부르며 간부를 소집해 이제르론 요새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른바 '방주계획'의 전 단계로 출격을 청원하는 더스티 아텐보로의 의견을 받아들여 제국군 헬무트 렌넨캄프 함대를 수송선단으로 유인한 뒤 섬멸했고, 이후 500만 명에 달하는 이제르론의 군민(軍民)을 이끌고 요새를 떠났다. 요새를 떠나기 전에 아주 먼 훗날을 대비하여 요새 내부에 어떠한 함정을 설치했고, 제국군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폭발물을 요새 곳곳에 부착하였다. 로이엔탈은 폭발물은 찾아냈지만 더 이상의 조사는 능력 밖의 문제라 판단했는지 시행하지 않았다.

이제르론을 떠난 양은 하이네센이 아니라 제1차 란테마리오 성역 회전이 벌어지던 란테마리오 성역에 달려가 패주하는 아군을 구했다. 그리고 하이네센으로 귀환하여 2월 13일 32세의 나이로 원수로 승진했다. 이것은 과거에 제2차 티아마트 회전에서 전사하여 추서 된 36세의 브루스 애쉬비보다도 이른, 동맹군 사상 최연소의 원수 승진 기록이었다.

6.5. 원수

수도로 귀환한 양 웬리는 도망친 최고평의회 의장 트뤼니히트를 대신하여 정부를 이끌고 있던 각성한 월터 아일랜즈 국방위원장 로부터 자유로운 전략 전술 재량을 보장받고 함대를 재편성하여 출동하였다. 이때 과감하게 동맹의 수도 하이네센이 있는 바라트 성계의 방어까지 포기한 다음, 동맹의 각 보급기지를 자유자재로 누비며 고정된 근거지를 만들지 않고 정규군의 정식 함대로 게릴라전을 하는 획기적인 전술을 구사하며 수송선단 습격전을 통해 어그로를 끌고 라이가르 성역 회전에서 칼 로베르트 슈타인메츠, 헬무트 렌넨캄프, 타실리 성역 회전에서 아우구스트 자무엘 바렌 등 내로라하는 제국군 장수들을 순회관광시켰다.

이렇게 양이 1개 함대로 제국 함대 몇 개를 박살내자 화가 머리 끝까지 난 라인하르트는 직접 전선에 나서게 된다. 라인하르트는 직속함대를 포함한 전 함대가 우르바시를 떠나 동맹령 각지를 점령할 때 뛰쳐나온 양 함대를 라인하르트 직속함대가 상대하는 사이 제국군이 분진합격 전술로 양 함대를 포위섬멸할 계획을 세웠다. 어쨌든 이는 양이 바라는 바이기도 하였으므로, 양은 라인하르트와 결전에 임하게 된다.

결전에 임하기 직전, 양은 드디어 부관 프레데리카 그린힐에게 프러포즈하게된다. 본래 이런 일에 서툴렀던 만큼 양은 제대로 말조차 못했지만 결국 프레데리카의 승낙을 얻어내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벌어진 버밀리온 성역 회전에서, 양은 중간에 난입한 뮐러 함대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치열한 함대전 끝에 거의 승기를 굳히는 단계까지 갔으나, 자유행성동맹의 본성인 바라트 성계볼프강 미터마이어, 오스카 폰 로이엔탈의 지휘 하의 제국군에게 포위되고 욥 트뤼니히트가 스리슬쩍 복귀하여 의장 권한으로 전군에 정전 명령을 내렸기 때문에 정전 협정이 맺어지게 된다.

이 때 양 함대는 수도성계의 피해를 무시하고 전투를 계속하면 라인하르트를 우주의 먼지로 만들 수 있었다. 보통 양 웬리는 전황을 완전히 우세하도록 이끌고 나면 통신으로 적함에 항복권고나 도주권고를 먼저 보냈지만 이번엔 전혀 그런 움직임이 없었다. 사전에 아일랜즈 위원장에게 밝힌 대로, 이 전투는 라인하르트 사살이 목표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라인하르트가 전사하는 쪽이 자신의 안전에 가장 좋은 방법임에도 불구하고 양은 정부의 판단에 따라 정전 협정에 따랐다. 당시 양 함대의 주력은 라인하르트의 기함 브륀힐트를 주포 사정권 안에 2번이나 포착하고 있었다. 첫 번째는 기존의 호위함대를 나이트하르트 뮐러가 도착하기도 전에 박살 낸 상태로, 두 번째는 뮐러의 함대도 무너지고 난 뒤... 무조건적인 항복 소식을 접한 라인하르트 본인이 더 어이없어할 정도.[18]

그 뒤에 역사상 단 한번뿐인 양과 라인하르트 간의 회담이 열렸다. 이 때 양의 군인 같지 않은 모습을 보고 경악한 제국군 제독들이 꽤 많았다. 여기서 양은 라인하르트에게 제국 원수자리를 권유받았지만, 자신에게 안 맞는 물을 마시면 체한다며 사양했다. 앞으로의 거취를 묻는 라인하르트에게 "퇴역해서 연금이나 받아먹고 살래염('ㅅ')"이라 답하자 라인하르트는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하지만 라인하르트는 결코 양을 포기하지 않았다. 언제라도 그가 돌아오면 기꺼이 받아줄 생각이었으며, 이는 오베르슈타인이나 렌넨캄프를 제외한 다른 제국군 제독들까지도 마찬가지였다. 그들도 라인하르트처럼 양 웬리에 대해 불패의 적장, 먼치킨이지만 증오하거나 미워할 수 없다는 마음을 가졌다. 양에게도 함대전에서 외통수를 맞았던 비텐펠트도 적군으로 만나면 으르렁이지만 아군으로 만난다면야 그럭저럭이라고 생각했다. 되려 렌넨캄프가 폭발하여 양을 수단 방법 안 가리고 제거하려다가 역습당해 절망에 빠져 자결할 때도, 오베르슈타인이나 렌넨캄프 휘하 인사들을 제외한 제국군 장성들은 양의 정당방어로 이해하거나 아예 이 기회에 동맹과 양의 연결고리를 끊고 양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자고 뜻을 밝혔을 정도이다.

7. 퇴역, 그리고 탈출

수도로 복귀한 양은 프레데리카와 함께 정식으로 예편원을 제출하여 퇴역했다. 그리고 우주력 799년 6월 10일 드디어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하객으로는 퇴역한 양 웬리 함대 간부들이 참석했으며, 카젤느를 비롯한 양 패밀리들은 축하는 커녕 "공주님과 시종이로구만", "군대라는 감옥을 탈출했으면서 결혼이라는 다른 감옥으로 들어간다", "원래 프레데리카는 양 선배에게 시집올 분이 아니다" 등등 비평을 가장한 독설을 내뱉었다. 율리안 민츠가 이걸 보고 "제독님, 그동안 이런 분들을 이끌고 용케도 승전을 거두셨네요. 배신자들밖에 없잖아요?"(...)라고 말하자 양은 내 인경은 이렇게 갈고닦았다고 허세를 부렸다.

결혼식이 끝나고 율리안 민츠루이 마솅고와 함께 지구로 떠났다. 양은 율리안을 위해 두 사람을 보리스 코네프의 새 상선 불효자호의 승무원으로 등록하여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도록 했다. 그리고 율리안을 통해 비밀 함대와 함께 잠복 중이던 빌리바르트 요아힘 폰 메르카츠 제독에게 레사비크 성계에서 자침 예정이던 동맹군 함정들을 탈취해달라고 간접적으로 지시하기도 했다.

결혼과 함께 그동안 지내던 실버브리지 관사를 떠나 프레몬트 거리의 임대주택으로 거처를 옮긴 양은 프레데리카와 신혼 여행을 떠나며 행복하게 사는 듯 했지만... 머지않아 두 사람에게는 시련이 닥친다. 제국으로 이주한 욥 트뤼니히트의 빈자리를 채운 조안 레벨로 의장 대행은 국민들에게 정부 고관들의 재정개선 결의를 보여주고자 공무원군인월급연금을 깎았는데, 양도 삭감 대상자에 들어갔다. 양은 12년간 납부한 연금 중 22.5%가 삭감되었고, 프레데리카는 15%가 삭감되었다. 하지만 지위가 높은 사람의 삭감률이 높은 건 그 반대보다는 정당했으므로 양은 불만을 제기하지는 않았다. 당장 레벨로 의장은 오히려 본인의 봉급을 25% 삭감했다.

그러나 연금 삭감보다 더 양을 답답하게 만든 건 제국 고등판무관 헬무트 렌넨캄프가 보낸 감시원들이었다. 렌넨캄프는 양이 빈둥빈둥거리는 모습을 보고 열등감에 빠져 "양 웬리 같은 녀석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라고 단정했고, 동맹 정부는 제국에게 책잡히기 싫어서 고등판무관부가 양 웬리는 물론 전현직 군 간부들을 감시하는 걸 허락했다. 그래서 양은 물론 카젤느 일가까지 제국군 감시원들에 의해 24시간 감시당했다.

렌넨캄프가 말한 대로 양은 정말 민주정치를 재건하고 제국을 무너뜨릴 원대한 책략을 구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양은 제국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문서는 커녕 작은 메모조차 남기지 않았고, 렌넨캄프가 백날 감시해봤자 양이 반역을 꾀하고 있다는 증거는 찾을 수 없었다. 그랬기에 한동안은 양 웬리와 렌넨캄프, 동맹정부 사이에 불안한 평화가 유지되는 듯 했다.

그런데 하찮은 소문 때문에 상황이 급변했다. 우주력 799년 6월부터 버밀리온 성역 회전에서 전사했다고 알려진 메르카츠 제독이 살아있다는 소문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그리고 동년 6월 16일에 레사비크 성계에서 마스카니 소장의 지휘 아래 자침 예정이던 함정 500척이 정체모를 무장집단에 강탈당했고, 그들의 선전에 넘어간 장병 4,000명이 무장집단에 가담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몇몇 사람들은 메르카츠 제독이 주모자라고 추정했고, 메르카츠를 부하로 두었던 양이 그의 실종에 관여했다는 추측까지 나왔다. 이때까지도 양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 근거없는 소문에 달려든 사람은 누구보다 양을 증오했던 동맹의 권력집단이었다. 그들은 별다른 권력욕을 보이지 않고, 자신들에게 무릎꿇고 빌지도 않고, 권력 분배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파티에도 불참하고, 신성한 훈장을 수여했을 때도 감사는 커녕 지하실에 처박아 둔 양 웬리를 증오했으며 제국에 빌붙어 호의호식하는 욥 트뤼니히트를 본받아 양을 제국에 제물로 바쳐 출세하려고 했다. 그들은 양을 음해하는 밀고장을 렌넨캄프 앞으로 보냈고, 그걸 믿고 싶었던 렌넨캄프는 양 웬리의 감시자였던 라첼 대령의 간언을 무시한 채 7월 20일 동맹정부에 양 웬리를 반평화활동방지법 위반으로 체포하라고 권고했으며 조안 레벨로는 양 웬리 하나를 희생하여 동맹의 수명을 연장할 생각으로 양 웬리를 체포했다. 양은 순순히 중앙검찰청으로 연행되었지만 거기서 자신에게 발부된 체포영장 자체가 풍문 하나를 근거로 불법 발행된 거였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조안 레벨로를 만난 자리에서 마침내 높으신 분들이 자신을 모살하려 한다고 추측했다.

레벨로 정권은 양 웬리를 체포함과 동시에 발터 폰 쇤코프더스티 아텐보로 등 양 함대 퇴역 간부들에 대한 감시를 강화했다. 하지만 프레데리카의 연락을 받은 쇤코프와 아텐보로는 자신을 쫓아오는 무장경찰들을 로젠리터를 동원하여 때려눕히고 조안 레벨로 의장을 납치했으며, 록웰 대장과 교섭하는 척 하면서 중앙검찰청을 급습했다. 이때 양은 영웅의 최후를 맺어준다는 생각에 취해 있던 대위 계급의 장교와 대치하고 있었는데, 양은 그 답지 않은 반사신경으로 장교가 블래스터를 발사하는 순간 몸을 뒤로 눕혀 광선을 회피했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 사이에 프레데리카가 달려와 장교를 사살하고 양을 구출했다.

무사히 중앙검찰청을 탈출한 양은 로젠리터가 마련한 비밀 아지트에서 조안 레벨로와 교섭했다. 양은 자신들은 렌넨캄프를 인질로 삼아 수도를 떠날 것이며, 제국에는 자신들이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소란의 책임을 지겠다고 제안했다. 그리고 그 대가로 자신 밑에 있었던 사람들에 대한 안전을 보장해 줄 것을 요구했다. 레벨로는 양의 제안에 고민하다가 사실상 승낙했고, 양은 발터 폰 쇤코프와 로젠리터 연대에게 렌넨캄프를 납치하는 임무를 맡겼다. 그들은 성공적으로 렌넨캄프를 납치해 왔지만 양 패밀리가 레벨로를 풀어주는 사이 렌넨캄프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양은 순식간에 곤란한 처지에 놓였지만 프레데리카가 '화장을 해서 살아 있는 것처럼 꾸민다'는 기지를 내서 위기에서 벗어났다.

7월 25일, 양은 순항함 레다 II호를 타고 하이네센을 떠났다. 변경에 남아 있던 에드윈 피셔, 무라이, 표도르 파트리체프를 제외한 양 함대 간부들이 모두 집결했고, 심지어 현직에 있던 알렉스 카젤느마저 록웰의 애원을 무시하고 양 패밀리에 합류했다.

이 사건 때문에 양은 12년간 꼬박꼬박 납부한 연금을 2개월치 밖에 못 받았다. 그래서 양은 원래 계획대로라면 5년은 무위도식 할 수 있었는데 겨우 두 달이었다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8. 혁명군 원수

수도를 떠나 자취를 감춘 양은 다얀 칸 기지에 숨어있던 메르카츠 제독과 재회하고, 공모를 받아 비밀 함대 이름을 '양 비정규함대'라고 정했다. 하지만 이때 양 웬리 밑에 있던 병력은 함정 약 600척, 병력 16,000명에 불과했다. 그렇게 동맹령 어딘가에 숨어있던 양 함대에게 동맹정부를 상대로 독립을 선언한 엘 파실 독립정부가 눈에 들어왔다.

더스티 아텐보로발터 폰 쇤코프는 양에게 지금 당장 독립정부에 합류할 것을 권했다. 하지만 양은 독립정부의 '폭거'에 가까운 독립선언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았고, 아직 동맹정부가 자신을 다시 불러줄 가능성을 뿌리치지 못했다. 하지만 양이 잠항하면서 향후 계획에 고민하는 사이 제국은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의 선전포고와 함께 동맹을 재침공했고, 양은 동맹으로 돌아갈 길을 잃어버렸다. 거기에다 자금마저 떨어지자 양은 12월 9일 엘 파실 독립정부에 합류했다.

엘 파실에 온 양 웬리는 자신의 사병집단을 '엘 파실 독립정부 혁명예비군', 통칭 엘 파실 혁명군으로 재조직하고 혁명군 원수 계급으로 사령관에 취임했다. 그리고 독립정부 수반 프란체스크 롬스키 주석과 신 정권에 대해 의논하면서 향후 계획에 필요한 이제르론 요새 재탈취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그 사이 지구에서 돌아온 율리안 민츠, 올리비에 포플랭, 보리스 코네프 등과 재회하기도 했다. 양은 우주력 800년에 있을 이제르론 요새 재탈취 작전을 직접 지휘하려고 했지만 독립정부 고관들을 그러다가 반혁명 폭동이나 외세의 침공이 있으면 어떡하냐는 이유로 반대했고, 결국 양은 엘 파실에 남고 메르카츠와 쇤코프가 탈취 작전을 지휘하게 되었다.

우주력 800년 벽두부터 행동을 개시한 혁명군은 코르넬리우스 루츠가 지키고 있는 이제르론 요새를 빌려 준 물건 돌려받듯이 탈취하고 이제르론 회랑을 완전 장악했다. 군사 근거지를 마련한 양은 페잔 독립상인과 연계하기 위해 보리스 코네프페잔으로 파견하고, 눈앞으로 다가온 라인하르트와의 결전에 대비했다.

9. 최후

이후 양은 회랑 전투에서 제국군의 양면에 걸친 공격과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슈타인메츠파렌하이트 제독을 전사시키는 등 크게 선전한다. 하지만 이때 함대운용을 맡는 에드윈 피셔가 전사해서 향후 전술을 펼치는 데 큰 애로사항을 느꼈는데 마침 지병이 도진 라인하르트는 일단 한 발 물러서 양과의 대화를 시도하게 된다. 양 역시 바라는 바였기에 회담 요구에 응했다.

하지만 순양함 레다 II호를 타고 회담장으로 가던 도중, 지구교의 사주를 받은 앤드류 포크가 지휘하는 무장상선의 습격을 받는다. 이때 때마침 나타난 제국군 구축함 2척이 포크를 공격하여 양을 구출하지만 사실 이 제국군이야말로 지구교의 진짜 함정이었다.

회담장으로 가는 것 때문에 백병전에 대한 준비가 없던 레다 II호에서는 우호적인 척 하며 선내에 진입한 제국군 군복을 입은 지구교도들과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프란체스크 롬스키 주석을 비롯한 엘 파실 독립정부의 중진들이 살해당했고, 양 웬리는 표도르 파트리체프, 순 수울, 라이너 블룸하르트의 희생으로 당장은 암살자들의 마수로부터 빠져나오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양은 정처 없이 레다 II호 선내를 떠돌았고, 뒤늦게 달려온 율리안 민츠가 지구교도들을 때려잡으며 양 웬리를 찾아나섰지만 불행히도 지구교도들이 율리안보다 먼저 양 웬리를 찾았다.

우주력 800년 6월 1일 2시 40분, 양 웬리는 제국군으로 위장한 이름 없는 지구교도가 쏜 블래스터에 왼쪽 대퇴동맥을 관통당했다. 암살자는 총을 쏜 뒤 기뻐하면서 도망쳤고, 양은 신속히 스카프로 지혈을 시도했지만[19] 끝내 피는 멎지 않았다. 결국 양은 아무도 없는 순항함 한구석에서, 과다출혈로 의식을 잃어갔다.

결국 마술사는 돌아오지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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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력 800년 6월 1일 새벽 2시 55분, 양 웬리의 시간은 서른 세 살로 정지했다.

양 웬리가 죽은 시각은 양을 구출하기 위해 전함 율리시스를 타고 달려온 율리안 민츠가 그를 발견하기 겨우 10분 전이었다. 사망 당시의 계급 및 직위는 '舊(전) 자유행성동맹군 원수, 이제르론 요새 주둔함대 사령관 및 요새 사령관', 그리고 '엘 파실 혁명군 총사령관'. 향년 3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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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과 OVA에서 프레데리카 그린힐이 '그이는 이렇게 죽어서는 안되는데...'하며 애통해 하면서 상상한 모습이다. 노인이 된 양 웬리가 뜰에서 어린 손주와 놀아주다가 잠자듯이 조용히 숨을 거두는 묘사.

양을 암살한 지구교도가 정확히 누구인지, 이름이 뭔지는 영원히 알 수 없게 되었다. 양 웬리 암살 음모에 투입된 지구교도들은 혁명군과 제국군에게 몰살당했고, 포로로 잡힌 자들도 모두 자살했기 때문이다.

10. 사후

양의 시신은 가장 먼저 발견한 율리안 민츠가 수습했으며, 혁명군은 양 웬리의 유체를 싣고 장례 대열을 짠 채로 요새로 귀환했다. 양의 죽음은 6월 6일 정식으로 공표되었으며 이제르론 요새에서 장례식이 치러졌다.

양 웬리와 프란체스크 롬스키의 죽음으로 기둥을 잃은 엘 파실 독립정부는 양 웬리의 죽음이 공표된 날 자진 해산했다. 남은 혁명군 장병들은 양 웬리 없는 양 함대는 늦든 빠르든 언젠가는 붕괴되리라고 생각했지만 혁명군 간부들은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고 판단하여 이제르론 공화정부를 설립했다. 하지만 공화정부는 공개적인 토의가 아니라 양 함대 간부들의 밀실 합의에 의해 설립되었고, 그들에 의해 프레데리카 그린힐이 정부수반을 맡고 율리안 민츠가 군 사령관에 옹립되면서 후세에 일부 역사학자들은 이 공화정부의 성격을 가리켜 고아와 미망인의 연합정권라고 조롱했다. 그렇게 탄생한 이제르론 공화정부는 양 웬리의 사진을 자유행성동맹 건국의 아버지인 알레 하이네센과 함께 걸어두었다. 물론 영웅숭배를 우려하여 총회의장, 중앙위원회, 주석 집무실, 혁명군 사령부에만 걸어 놓고 나머지 장소에서는 전부 금지였지만, 이제르론 공화정부의 정통성이 자유행성동맹과 양 웬리에게서 계승되어 온 것임을 보였다.

불패의 전설을 써내려가고 끝까지 제국에 맞서 투쟁했으며, 비극적인 죽음을 맞은 양 웬리의 인생은 순식간에 신화로 거듭났다. 후세 역사가 중 한 명은 알렉산드르 뷰코크의 죽음은 자유행성동맹으로 상징되는 민주주의의 종막을 알린 것이었다면, 양 웬리의 죽음은 동맹의 틀에 속박되지 않은 민주주의의 정신을 재생한 것이라고 평했다.

제국에 대항하는 시위에는 양 웬리의 이름이 연호되었으며, 양 웬리의 이름을 빌린 지하 저항조직도 40개가 넘었다. 저항 세력의 관점에서 생각하자면, 양 웬리의 휘하의 함대와 이제르론 요새는 제국에 대항하는 '마지막 보루'이므로 설사 관련이 없다 해도 양 웬리의 이름을 들먹이며 그와의 연결을 암시하는 것이 유효한 프로파간다였을 것이다. 우상화된 영웅을 경계하던 양 웬리가 봤다면 쓴웃음을 지었을 지도 모르지만, 구 동맹 시민들은 부패한 정치가와 달리 진지하게 양 웬리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민주주의의 회복을 외쳤다.

한편 제국 측 또한 양 웬리의 기이할 정도의 능력에 대해 두려워하면서도 확실히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제국 수뇌부가 양 웬리의 사망에 대해 조의를 표했을 정도였다. 양 웬리를 일생일대의 라이벌로 여겼던 라인하르트는 양 웬리의 죽음에 안타까워하면서도 격분했다.
너나 없이, 적도 아군도 모두 짐을 두고 가버린다. 어째서 짐을 위해서 살아가지 않는 거냐! 짐은... 짐에게는 적수가 필요하다. 짐은 그 사내에게 짐 이외의 존재에 의해 죽을 권리 따위를 준 기억이 없다. 그 사내는 버밀리온에서도 이제르론 회랑에서도 짐이 승리하게 두지 않았다. 짐의 귀중한 장수들을 많이 쓰러뜨렸다. 그리고 끝끝내 짐 이외의 존재에 의해 쓰러졌다는 건가?

비텐펠트는 '이것도 혹시 양의 계획 아닐까?'라며 양이 그런 허접한 수에 죽었다는 것에 대해 의문을 품었고[20], 양이 죽자 제국에서는 양 웬리와 만난 적이 있던 나이트하르트 뮐러를 단장으로 한 조문단을 정식으로 파견해 조의를 표했으며, 그와 동시에 자신들이 스스로 양 웬리에 대해 복수할 기회를 지구교 때문에 빼앗겼다며 분하게 여기기도 했다. 로이엔탈은 노이에란트 총독에 취임한 뒤 양 웬리를 기리는 추모식을 후원하기도 했다.[21]

사후 양 웬리의 시신은 나중에 하이네센으로 옮겨져 대지에 묻힐 때까지 보존 처리되었다.

양 웬리가 생전에 남긴 공적이 너무 크다 보니 후세 사람들은 양 웬리가 동맹군 최고사령관 또는 총사령관, 좀 자세하게 말하면 통합작전본부장과 우주함대 총사령관을 역임하고, 최고사령관의 칭호를 받았다고 착각하는 경우도 많았다. 실제로는 '이제르론 요새 사령관 겸 이제르론 주둔 함대 사령관'으로, 동맹군 최고위직인 동맹군 3대 장관에 오른 적은 없었다. 동맹군 최고사령관이라는 직책이나 칭호도 국가원수(즉, 통수권자)가 겸직하는 것이기에 양 웬리를 비롯한 현역 군인에게는 처음부터 주어질 수 없다.[22] 또한 후세 사람들에게 양은 후방에서 전선의 장수들을 지휘통솔하는 군사,軍師, 이미지가 강하게 남았는데, 정작 양은 함대 사령관이 된 이후로 대부분의 전투에서 최전선에 서서 지휘했다. 양이 후방에 남았던 전투는 제10차 이제르론 공방전 정도 밖에 없다.

한편 양 웬리 암살을 지시했던 드 빌리에는 이후에도 여러 음모를 꾸며 은하계를 혼란에 몰아넣지만, 그때마다 조직의 세가 깎여나가더니 결국 벨제데 임시 황궁 습격사건에서 죽었다. 율리안 민츠가 직접 그를 사살하여 원한을 풀었다.

후대엔 양 웬리의 후손은 전혀 없다고 나온다. 아내인 프레데리카 그린힐은 양 웬리의 자식을 출산하지 않았고, 율리안 민츠는 양 웬리에게 입양되긴 하였지만 정식으로 양 웬리의 양자로 입적되진 않았기 때문이다.

11. 연보

날짜[23] 사건
767. 4. 4. 하이네센에서 태어남
771. ? 어머니 카트린느 르클레르 양이 급성 심장질환으로 사망함
771. ? 아버지 양 타이롱과 함께 수도 하이네센을 탈출함
783. 3. 27. 아버지 양 타이롱이 우주선 사고로 사망함
783. ? 동맹 국방군 사관학교에 입학함
787. ? 국방군 사관학교를 졸업, 소위로 임관함
788. ? 중위 승진, 엘 파실 전투 참전
788. 9. 19?, 788. 6. 12? 소령 승진
792. 6? 중령 승진
794. ? 알렉스 카젤느의 주선으로 율리안 민츠를 입양함
794. 12. 제6차 이제르론 공방전 참전
795?. ? 준장 승진
795. 9. 레그니처 상공 조우전, 제4차 티아마트 회전 참전
796. 2. 아스타테 회전 참전
796. ? 소장 승진, 신설된 제13함대 초대 사령관으로 취임함
796. 5. 제7차 이제르론 공방전 참전
796. ? 중장 승진
796. 8 ~ 10. 제국령 침공작전, 암릿처 회전 참전
796. 11? 대장 승진, 이제르론 요새 및 주둔함대 사령관에 취임함
797. 2. 동맹&제국 포로교환에서 동맹군 대표로 참석
797. 4~8. 구국군사회의 쿠데타를 진압함
798. 4~5. 사문회 소환. 제8차 이제르론 공방전 참전
798. 11. ~ 799. 1. 제9차 이제르론 공방전 참전
799. 2. 13. 원수 승진
799. 4~5. 버밀리온 성역 회전 참전
799. 5? 동맹군에서 퇴역함
799. 6. 10. 프레데리카 그린힐과 결혼함
799. 7. 양 웬리 원수 모살미수사건
799. 12. 엘 파실 독립정부 합류
800. 4~5. 회랑 전투 참전
800. 6. 1. 지구교도에게 암살당함.

12. 승진속도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의 라이벌 겸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2개의 축중 하나인 중요한 인물이므로 당연히 승진속도에 대해서도 양자간 비교가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물론 양대 인물의 소속국가와 상황등 그냥 비교하기에는 문제가 있는 것이 많기 때문에 보통 이런 비교에서는 군대 계급의 승진속도를 따지는 일이 많다.

12.1. 비교

객관적인 기간만 따지면 라인하르트의 압승이다. 라인하르트는 우주력 791년 7월 소위로 부임해서 우주력 796년 3월 제국원수에 서임되었다. 원수까지 걸린 기간은 단 4년 9개월에 불과하다. 이는 현실보다 승진이 빠른 은영전 세계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기록이며, 그에 근접한 기록을 가진 자는 6년 3개월 만에 원수에 서임된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 뿐이다.

반면 양은 우주력 787년 소위로 임관하여 우주력 799년 2월 원수에 서임되었다. 원수까지 걸린 기간은 12년이고 라인하르트보다 꽤 느리긴 하지만 동맹군 내에서 가장 빠른 기록이다. 동맹 최연소 원수였던 브루스 애쉬비도 36세에 원수에 서임되었는데 양은 32세에 원수에 서임되어 애쉬비의 기록을 크게 갱신했다. 라인하르트가 자신의 능력 + 황제의 총애를 받는 누나 + 황제의 각별한 관심 덕에 워낙 상식을 초월하는 승진속도를 보여서 상대적으로 느려보이는 것이지, 양 웬리의 승진속도도 거의 치트키 수준이다. 애초에 29세에 제독이 되는 것도 모자라서 33세에 자유행성동맹군 최연소 원수가 된 것만 봐도 후덜덜... 당장 그가 최고 사령관으로 있던 양 웬리 함대만 해도, 더스티 아텐보로를 제외하면 양보다 젊은 장성은 없다.

게다가, 일부 구간에 한해서는 양 웬리가 라인하르트보다 더 빠른 승진속도를 자랑했다. 첫번째는 엘 파실 탈출작전의 공로로 인해 중위에서 소령까지 약 6시간에 걸쳐 사실상 2계급 특진을 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스타테 회전에서 제7차 이제르론 공방전제국령 침공작전암릿처 회전을 거치면서 1년 안에 준장에서 대장이 되는 3계급 상승을 달성한 것이다. 이걸 보면 양 웬리도 자신이 주도해서 공을 세울 기회가 있으면 절대로 놓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이건 양이 활개치도록 상황이 조성되었기 때문인 것도 있다(...).

12.2. 왜 느린가?

그렇다면, 라인하르트보다 승진 속도가 8년이나 차이가 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장에서 원수로 올라가는 기간이 3년이었지만, 그건 공을 못 세워서가 아니라 통합작전본부장과 우주함대 사령장관이라는 상관들이 다 대장이라서 하위 직책에 있는 사람이 원수 직함을 달기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과 함께 승진을 못하는 대신 훈장이라도 줘서 대강 때웠으므로 어느 정도 합당한 사유가 있다.

따라서 승진 속도에 지장을 준 것은 바로 영관급에서 승진 속도가 극단적으로 느려졌기 때문이다. 양 웬리의 군 경력상 가장 긴 3년 10개월간 소령 계급을 단 것을 비롯해서 영관급에서 잡아먹은 기간은 6년이다. 물론 일반적인 승진 속도와 비교하면 매우 빠른 것이지만, 위관급에서의 승진 속도와 장관급에서의 승진 속도를 감안하면 비정상적으로 느리다. 이에 비해서 라인하르트는 영관급에서 체류한 기간이 고작 1년... 이런 이유로 인해 라인하르트가 자신의 휘하 함대를 이끌고 전장을 휩쓸며 공을 세울 때, 양 웬리는 지휘권이 없는 참모로만 있어야 했다.

이렇게 된 원인은 양 웬리의 잘못은 거의 없고, 자유행성동맹군의 인사배치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주원인이기 때문이다. 자유행성동맹군의 입장에서는 계급은 낮지만 이미 영웅이 된 사람을 후방의 한직으로 돌리기에는 문제가 있으며, [24] 그렇다고 구축함이나 순항함의 함장을 시키기에는 미덥지 않을 뿐 아니라 전사할 확률이 높으므로 죽을 확률은 낮으나 전방의 주요 직책인 함대 참모나 우주함대 총사령부 직속 참모에 임명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하고 나니 양 웬리의 타인 설득 능력 부족 + 상관들의 저평가가 시너지를 일으켜서 무늬만 참모가 되는 악재를 만난다. [25]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함대 참모나 총사령부 참모는 24시간 내내 바빠서 쉬지를 못하는데, 혼자서 한량 놀음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쓸모없는 작자로 낙인찍혀서 일감도 안주는 상태라는 것이다. 원래 참모라는 직책은 신임을 받으면 말콤 와이드본처럼 빠른 출세가 보장됨은 물론이거니와 자기 계급 이상의 능력과 지휘권을 가질 가능성이 높아지지만, 신임을 받지 못하면 병사 1명도 지휘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방관자 노릇이나 하다가 전출당하는 양날의 검 같은 직책이다. 그러므로 시드니 시톨레드와이트 그린힐같이 양 웬리의 재능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지 않았으면 영관급을 벗어나는 기간이 더 늘거나 아예 거기서 군 경력이 종료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동맹 자체에서 영웅을 경원시하는 풍토가 있음도 눈여겨봐야 하는데 제국은 초대 군주 루돌프 폰 골덴바움전쟁 영웅인 것 때문인지 전쟁영웅을 천시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문벌귀족들은 군 경력을 쌓는 게 가장 빠른 출세길이었고 이는 평민들도 마찬가지였다. 라인하르트가 세력을 빨리 키울 수 있던 것도 그 자신 본인이 전쟁영웅이었고 그래서 승진으로 계급이 빨리 올라갔으며 휘하 부하들 역시도 비슷했기 때문 반면 동맹은 루돌프 폰 골덴바움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인지 전쟁영웅을 경원시했다. 가령 다곤 성역 회전의 영웅 링 파오,유수프 토패롤의 경우 다곤 성역 회전 이후 경원시되었고 730년 마피아 중 하나이자 제2차 티아마트 회전의 영웅인 브루스 애쉬비의 경우 링 파오, 유수프 토페롤의 전철을 밟고 싶지 않다는 말을 했다가 동맹 정부로부터 두려움을 샀고 양 웬리도 전쟁영웅이라는 이유로 민중들에게는 환대를, 정부로부터는 두려움을 샀다. 조안 레벨로에게서는 아예 대놓고 "당신이 루돌프처럼 되면 어떻게 하냐."라는 말을 들었으며 [26], 구국군사회의 쿠데타 진압에 큰 공을 세웠음에도 훈장만 받았다. 더군다나 양 웬리 원수 모살미수사건이후 돈 유언비어 중에도 "양 웬리 원수는 엘 파실 독립정부로 갔고 곧 거기서 정부 수반이 되어 제국과 투쟁할 것이다."라는 내용이 있었고 엘 파실 독립정부에서도 전쟁영웅이라고 환대받았지만 반대로 그 점 때문에 독립정부를 집어삼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샀다. 오랫동안 제국과 동맹은 전쟁을 벌였지만 제국에 비해 동맹은 전쟁영웅을 경원시했고 그랬기에 양 웬리의 승진에도 영향이 간 것으로 보인다.

또 한편으로는 또 양 웬리의 영웅 이미지 자체부터가 동맹 정부와 동맹군에서 급조해낸 이미지임을 감안해야 한다. 엘 파실 탈출 작전은 분명 대단한 공훈임은 분명하지만 그 이면에는 아서 린치의 추태를 감추기 위함이 있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여기에 평소 양 웬리의 이미지는 그저 그래서 엘 파실 탈출 작전 후 양 웬리가 유명인사가 되었을 때 그를 험담으로 까던 이들이 "소령으로 끝날 놈이 너무 빨리 소령이 되었으니 저 녀석 인생도 이걸로 끝"이라는 식으로 말했다. 문제는 이것이 영 틀린 말은 아니라는 얘기. 위에 나온 동맹군에서의 양 웬리의 저평가를 다시 말하자면 양 웬리가 능력이 없던 건 아니나 그 재능을 굳이 드러낼 생각이 없었기에 한량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나마 시드니 시톨레, 드와이트 그린힐 등 양 웬리의 진가를 아는 사람들이 있었고 적절한 타이밍에 적당한 군공을 세울 기회가 생겼기에 승진을 계속할 수 있었는데 그렇다고 해도 눈에 확 띄는 군공을 세울 기회는 없었다. 즉 남들이 "타이밍 잘 잡은 주제에..."를 상쇄할 무언가가 없던 것 여기에 라인하르트의 경우 소함대긴 하지만 제6차 이제르론 공방전에서 나름대로의 함대 지휘를 할 수 있었기에 자신의 재능을 그런대로 살릴 기회가 많았는데 양 웬리는 애당초 참모였다. 첫 함대 지휘를 맡은 것도 아스타테 회전에서였으며 그나마도 본래 사령관이었던 파에타의 중상으로 임시로 맡았다. 즉 라인하르트가 지휘를 처음 해본건 우주력 794년 양 웬리는 796년으로 2년이나 차이가 난다. 반대로 아스타테 회전 이후부터는 급작스레 승진 속도가 빨라지는데 이는 제국령 침공작전의 실패로 동맹군의 인재들이 대거 사망했음을 감안해야 한다. 그렇다고 분함대 건 함대건 지휘를 맡기에는 에드윈 피셔 같은 인물이 없어서 애로사항이 꽃핀다. 양 함대에서의 양은 그저 전술 지시만 내려주는 기계에 불과했고 실상 함대 운용은 다 피셔가 했기 때문

결국 급조된 이미지인 만큼 그 이미지 덕에 특정 구간에서는 승진이 빨랐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그 후에도 승진 속도가 유지된다는 보장이 없었고 그 이미지 빨 승진 속도를 유지하려고 기를 썼다면 모를까 자신의 이미지가 급조된 것임을 잘 아는 데다가 딱히 공적 세우는 데 혈안이 된 것도 아닌 양 웬리가 그것에 무신경하니 다시 승진 속도는 급하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도 제7차 이제르론 공방전처럼 본인이 함대 지휘를 맡아 큰 공훈을 세운다면 모르겠으나 참모직 전전+한량이니 승진 속도가 라인하르트보다 늦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 양 웬리와는 달리 라인하르트는 제6차 이제르론 공방전,제3차 티아마트 회전,제4차 티아마트 회전 등에서 굵직한 공훈을 세웠으니 승진 속도가 더 벌어지는 건 당연지사 양 웬리도 결국 아스타테 회전, 제7차 이제르론 공방전, 암릿처 회전에서 이기고서야 각각 소장, 중장, 대장을 딸 수 있었으며 그나마도 그 후에도 도리아 성역 회전, 제8차 이제르론 공방전 등 승진하고도 남을 공훈을 세웠는데도 진급이 늦었다.

마지막으로 대장 진급 이후에는 상관들이 모두 대장인 것이 진급 방해의 원인이 되었다. 기실 암릿처 회전 이후 원수로 진급하는 제2차 란테마리오 회전 이후까지 양 웬리는 구국군사회의 쿠데타 진압과 제8차 이제르론 공방전이라는 충분히 승진하고도 남을 공적을 세웠다. 특히 후자는 정치인들의 추태도 있었기에 동맹 정치인들도 자신들의 추태를 감추기 위해서라도 승진을 시켜줬어야 한다.

하지만 당시에만 해도 원수인 라자르 로보스 우주함대 사령장관, 시드니 시톨레 통합작전본부장이 퇴역했고 그 대타로 온 사람들인 쿠브르슬리와 뷰코크의 경우, 쿠브르슬리는 특별한 공은 없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우주 해적 토벌 등의 성과를 거둔 것을 감안해 대장 승진 후 통합작전본부장에 앉혀졌고 뷰코크는 암릿처 회전에서의 활약으로 대장 진급 후 우주함대 사령장관에 임명된 사람이었다. 거기다가 구국군사회의 쿠데타 때는 쿠브르슬리는 암살 미수로 누워있었고 뷰코크는 연금당해 도저히 공적이라 볼 건더기가 없었다. 쿠브르슬리 후임인 도슨도 공 없기는 마찬가지.

문제는 이런 사람들과 양 웬리는 짬밥과 직급에서만 차이가 있지 계급상으로는 동급이라는 거다. 그래서 양 웬리는 공을 세우고도 원수로 진급할 기회를 번번이 놓칠 수밖에 없던 것. 양 웬리가 원수로 진급하면 뷰코크, 쿠브르슬리, 도슨보다 높아지는 건데 직급상으로는 오히려 아래라 군 체계가 꼬일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양 웬리를 승진시키려고 이들을 승진시키자니 공이 없는 모순 때문에 결국 양은 제1차 라그나로크 작전에서야 원수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대장에서 잡아먹은 시간이 3년이다.

총평을 하면 라인하르트에 비해 양 웬리가 승진이 늦은 건 후광 없음+동맹군 내부의 구조적 문제+동맹 자체의 영웅 경원시 풍토+이미지 빨 특정 구간의 승진+그런데 그 이미지 유지 못함+귀차니즘+공훈을 세울 기회 부족 등 여러 복합적인 일이 얽혀 벌어진 일이다. 라인하르트와 비교하면 마이너스 요소가 많았던 탓.[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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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로 친구라고 말하기 보다는 못된 장난질에 협력하던 공범 정도로 회고한다. 그런데 이 때부터 재능이 있었는지 그 때마다 꾀를 제공한게 양 웬리였다고 한다.[2] 참고로 DNT 본편에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이후 발매된 설정집에서 양의 이 당시의 5살 설정화을 실었다.[3] 여담으로 이 만력적회만은 양이 챙겨서 장군이 된 뒤에도 자택에다가 고이 장식해놓았는데, 욥 트뤼니히트가 보낸 우국기사단의 습격 사건 때 깨져버렸다.(...)[4] 그래고 양 웬리가 상인이 된다고 한들 대성할 수 있을지도 의문인데 그놈의 목 아래로는 쓸모가 없다는 말이 잘 어울릴 정도로 전략전술가로서의 면모를 제외하면 모두 부실한 사람이며 무엇보다 때론 상대의 비위를 맞추고 하는 능력도 있어야 할텐데 양은 그런 모습에서 낙제다.[5] 와이드본이 정석적인 전면전으로 덤벼들자 분함대로 보급함대를 공격하고 본대는 도망다니며 시간을 끌었다. 와이드본은 분함대의 규모가 작아서 그냥 무시했지만 결과는 보급이 끊겨 패배 판정.[6] 이외 대조되는 이들이 바로 730년 마피아로 가장 성적이 나빴던 프레드릭 재스퍼가 1449명 중 16등이었다.[7] 이제르론 요새를 함락한 후에는 기적의 양이라는 명성을 얻었지만 퇴역 내지 후방으로 빠지려 했을 만큼 군인의 영광이나 출세와 거리가 먼 인간이다. 즉 게으른 천재의 표상![8] 때문에 명백히 대위 계급을 달고 있었는데 다들 소령이라 불렀다(...) 심지어 OVA에서는 같은 대위계급을 달고 있는 굿윈 대위가(이후 양 웬리에게 들어올 메스컴 요청 등을 책임질 일종의 매니저 역할이었다.) 양 웬리에게 경례도 하고 소령이라고 불렀다.[9] 이는 외전 나선미궁 기준이고, 원작 1권에선 6월 12일 9시 대위 승진, 오후 1시 소령으로 승진했다.[10] 우주력 788년 9월 19일 소령으로 승진했다는 언급과 재임기간이 3년 10개월이었다는 구절을 토대로 계산하면 중령 승진 시기는 우주력 792년 6월 중순으로 추정된다.[11] 양과 율리안의 나이 차는 14살이다.[12] 참고로 서울문화사판은 나이 계산을 한국식으로 해서 29세를 30세로 표기해놓곤, 20대 장성이란 원작 설명을 그대로 썼다.[13] 각개격파 상황에서 상대가 중앙돌파를 노릴 것이라 예측, 함대를 둘로 나눈 뒤 선회하며 부대를 합쳐 적의 후방을 노린다. 정지상태에서 반전하면 궤멸당할 뿐이니 제국군은 크게 선회해 동맹군의 꼬리를 노리고, 동맹군은 다시 제국군의 꼬리를 노리며 원형으로 물고 물리며 서로 전후방의 전력이 소모되어가는 장기전 상태로 만들었다.[14] 율리안이 기뻐하자 양은 멋모르고 치켜세우는대로 좋아하면 나중에는 맨손으로 오딘을 점령해오라고 한다던지, 칭찬받는 건 이길 때 뿐이고 지면 손바닥 뒤집을거라고 대꾸했다.[15] 그 와중에 시톨레가 양의 나이를 서른이라고 하자 스물아홉이라고 강조한다(...).[16] 만일 양 웬리가 엘 파실 전투로부터 전혀 승진하지 않았다면 아마 퇴역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당시까지만 해도 양에 대한 평가는 그저그랬기 때문. 하지만 이 상황에서는 하필 양이 이제르론 함락이라는 큰 공훈을 세워버렸기에 도저히 퇴역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었다. 전무한 공적을 세운 장성의 이른 퇴역은 아무리 자의라 한들 뒷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결국 자신의 능력을 적당히 사용하여 적당한 지위까지만 올라가고 그걸 유지하지 못한게 양의 비극.[17] 웃긴 건 구국군사회의의 의장인 드와이트 그린힐은 양 웬리가 자기 딸을 해임하고 구금했을 거라고 단언했지만, 정작 같은 함대 소속인 쇤코프는 오히려 양이 그린힐을 해임할 리 없다고 여겼고 그 추측이 맞았다.[18] 양 웬리에게는 이 결정의 결과가 씁쓸한데, 뷰코크와 롬스키 모두 이후 이 결정을 안 좋게 평가했다. 뷰코크는 동맹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도 브륀힐트를 저격해야 했다고 말했고(물론 당시엔 춘우 지엔에게 한 거지만) 롬스키는 아예 대놓고 차라리 버밀리온 때 브륀힐트를 날려버렸다면 좋았을 거라고 (한탄하듯이) 말했다.[19] 묘사를 보면 그냥 스카프를 상처에다 감았는데, 이건 허벅지 대동맥에 바람구멍이 났을 때는 그리 적합하지 않은 지혈 방법이다. 양에게 이쪽 지식이 조금만 더 있어서 허리띠를 풀어서 묶던가 상의를 벗어서 지혈대를 만들던지 해서 완전 지혈은 못하더라도 어느정도 출혈량을 줄이는 데 성공했다면 15분만에 과다출혈로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쓸데없이 걸으려 시도한 것도 그렇고. 무슨 놈의 군대가 총 맞았을 때 지혈하는 법도 제대로 안 가르쳐주냐? 그래도 사실 죽을 가능성이 훨씬 높은 부상이긴 하다. 근성으로 상처에 손 쑤셔넣고 압박 지혈해서 의료진 도착까지 거의 1시간을 버티고 살아난 사람도 있긴 한데 이건 진짜 굉장한 수준으로 빠르고 정확하게 처치한데다 친구가 지혈을 도와줘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거다. 반대로 말하면 이 정도 근성을 보여야 살 수 있는데 쓸데없이 걸으려 한 거나 스카프 따위를 쓴 시점에서 죽을 수 밖에 없었다.[20] 이 말에 다른 제독이 똑같이 '그런 허접한 계획을 양이 썼겠냐'라고 반박하자 이에 모두 동의했다. 양의 실력이 얼마나 인정받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21] 순수하게 적장에 대한 경의를 표하기 위해 한 것만은 아니고, 비판의 화살을 엘 파실 독립정부를 버리고 떠난 이들에게로 돌리기 위해서였다.[22] 은영전 인물들 중 그나마 통합작전본부장과 우주함대 총사령관격인 우주함대 사령장관에 모두 앉아본 인물은 프레드릭 제스퍼와 시드니 시톨레 둘 뿐이다.[23] 연도는 전부 우주력이다.[24] 유일하게 막 소령이 되었을 때 에코니아 포로수용소 참사관을 시키긴 했지만 이것도 너무 양 웬리에게 집중된 시선을 돌리려는 의도였고 장 로베르 랍이 너는 영웅이니 쉽게 죽을 자리로 보내진 않을 것 같다란 말을 한 것을 감안하면 전사 위험이 높은 전장에 보냈다가 진짜 전사하는 부담감보다는 잠시 한직에 보내는 게 낫다고 생각했을만하다. 게다가 기껏 한직에 보내놨더만 거기서 또 한 건 터뜨리는 바람에 2주만에 교체했다.[25] 무엇보다도 상부에서 양을 잘 안 써준다는 게 큰 문제였다. 예를 들어 뷰코크의 5함대에 소속되어 있었다면 능력을 알아본 뷰코크가 자주 써먹었겠지만 하필 파에타의 2함대에 소속된 까닭에 잉여에서 못 벗어났다.[26] 조안 레벨로는 트뤼니히트와는 달리 청렴하고 양심적이었으며 양 웬리에게 딱히 악감정도 없었는데도, 이런 말을 할 정도니 양 웬리는 더욱 곤란할 수밖에 없었다.[27] 라인하르트는 야심 때문에 공훈을 세워 승진하고 싶어 함+공훈을 세울 기회 많음+그 기회 잘 살림+누나의 후광+황제의 뒷배라는 플러스 요소가 있던 반면 마이너스 요소라봐야 문벌귀족들의 견제뿐이었다. 그나마 문벌귀족의 견제도 그렇게 심하지 않았다. 라인하르트가 아스타테 성역 전투에서 승리해서 원수부를 열기 전까지는 기껏해야 프레겔 남작이나 베네뮌데 후작 부인 정도가 문제였지만 양쪽 다 군대에는 큰 영향력이 없었고 그나마 베네뮌데 후작 부인은 승진을 방해하기보다는 암살 시도를 하는 방향으로 더 치우쳤다. 또한 라인하르트를 정말로 견제할 수 있었던 뤼네부르크는 자멸하는 바람에 더욱더 라인하르트의 쾌속 승진을 막을 자가 없어졌다. 보통 뤼네부르크는 저평가되는 경향이 있지만 만약 뤼네부르크의 생각대로 일이 흘러갔다면 라인하르트는 생각보다 훨씬 더 방해를 받았을 가능성이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