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9 15:14:51

온양 방씨

군위 방씨에서 넘어옴
한국의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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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2015년 기준으로 총 인구 100명 미만인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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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온양 방씨 종문.svg
溫陽 方氏
온양 방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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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ece5b6> 관향 <colbgcolor=#fff,#1f2023>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원시조 염제 신농씨
비조 방뢰(方雷)
시조 방지(方智)
중시조 방운(方雲)
집성촌 충청남도 홍성군 구항면 내현리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원정리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평안남도 순천군 순천읍 원봉리
평안북도 정주군
함경북도 부령군 부거면 부거동
인구 80,445명(2015년)
링크 온양방씨중앙종친회
1. 개요2. 역사
2.1. 기원2.2. 상세
3. 분파4. 항렬자5. 시조묘, 집성촌6. 인물7. 관련 문서8.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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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충청남도 아산시 온양동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방씨의 대부분이 온양 방씨로, 방씨 중 모 방() 자를 쓰는 방씨는 온양 방씨 뿐이다. 본래 상주, 군위, 아산, 신창 등의 본관도 있었지만, 본래 한 집안이었고, 현재는 모두 온양으로 합본되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당시 모 방() 자를 쓰는 방씨가 총 94,831명으로 집계되었는데, 그 중 온양 방씨로 집계된 인구가 80,445명, 군위 방씨로 집계된 인구가 6,454명이었고, 기타 본관을 쓰는 경우가 7,932명이었는데, 군위 방씨와 기타 모 방() 자를 쓰는 성씨는 모두 온양 방씨로 합본되었으므로 온양 방씨의 인구는 모두 합쳐 94,831명이 맞다.

그간 온양 방씨로 집계되어 온 내력을 보면, 1985년에는 75,290명이었는데, 2000년에는 64,128명으로 줄었다가, 2015년에는 다시 80,445명으로 늘어났다.

방씨는 온양 방씨 이외에도 남양 방(房)씨(33,520명), 개성 방(龐)씨(851명) 등이 존재하며, 이들은 온양 방씨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별개의 집안이다.

2. 역사

2.1. 기원

중원 염제 신농씨의 8대손인 유망황제(楡罔皇帝)는 장남 뢰(雷)에게 사패지를 주어 중국 허난성 방산현(方山縣)에 봉했다. 이때 방산현의 방(方) 자를 따와 성씨로 삼으니, 기원전 2357년[1], 방뢰(方雷)가 방씨의 비조가 되었다.

온양 방씨의 시조인 방지(方智)는 방뢰의 134세손이며, 당나라에서 한림학사(翰林學士)로서 황제의 명을 받고 669년(신라 문무왕 9) 나당동맹의 문화사절로 신라에 와서 설총과 함께 육례 구경의 대지를 밝힌 동방유학의 한 사람이다. 그 후 장씨와 결혼하고 가유현(嘉猷縣, 현 경상북도 문경시 산양면)에 정착하여 살았기 때문에 상주를 본관을 사용했고, 방지의 6세손인 방운(方雲)이 온수군(溫水君)에 봉해짐에 따라 온양으로 개관하게 되었다.

하지만 중국에서의 세계는 다소 신화시대부터 기인하는 만큼 불명확한 측면이 있으며, 현재 중국에 있는 방씨가 오히려 고려 말에 원나라로 넘어간 방신제의 후손으로 밝혀져 방씨가 정말로 중국에서 넘어왔는지도 불명확하다.

시조인 방지로부터 방운(方雲)까지는 문헌이 없어져서 방운(方雲)을 1세 조상으로 하고 있다. 그러니까, 족보에서 자신이 몇세손인가 셀 때는 이 사람으로부터 세면 된다. 시조 방지로부터 세자면 +6을 하면 된다.

2.2. 상세

신라 경애왕 3년(926년) 견훤후백제군이 신라를 침략하여 서라벌은 물론, 방씨의 본관이던 상주 역시 큰 화를 입게 된다. 견훤의 고향이 상주인 것은 넘어가자[2] 수도와 상주에 살던 방씨들이 이 때 멸문에 가까운 화를 당했고, 가까스로 당시 10살이던 방운(方雲)은 탈출하여 살아남았다.

유랑생활을 하다가 17세에 왕건의 휘하로 들어가 종군하여 고려 건국에 공을 세우게 된다. 광종 14년(963년)에 좌복야[3] 에 제수되는데에 이어 성종 13년(992년) 온수군(溫水君)에 봉해지며 온양, 아산, 신창의 세 고을을 식읍으로 하사받았고, 방씨가 사는 산을 배방산(拜方山, 방씨를 우러러보라)이라 명명했다.[4] 이렇게 되면서 본관이 상주에서 온양으로 옮겨졌다.

고려말 온천부원군 밀직원직학사 국서 방언휘가 재택을 보호하기 위하여 배방산성 성곽을 축조하였고 그 내부 동북변에는 온수군의 유택이 녹봉되었다.

이렇게 중시조의 고생과 노력 덕분에 후손들은 고려왕조 내내 호족으로 분류되어 잘살 수 있었다.

조선 시대에 들어 방씨는 또 한 번 위기를 맞게 된다. 17세손인 방강(方綱)은 김종서의 손녀 순천 김씨과 혼인하였는데, 전승에 따르면 계유정난 때 그 일족이 단종 옹호세력인 김종서 편에서 협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세조가 방씨를 숭배한다는 뜻으로 명명한 배방산(方山)을 방씨를 증오한다는 뜻의 배방산(方山)이라 개칭토록 하였으며 방씨 인물들의 관급등분을 강등시키고 온수군 이하 기타 누대에 걸친 묘역과 산성 저택들을 파괴하고 묘 비석물들을 철폐하고 일족들을 멸하기까지도 하였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조선조에서 유명한 방씨는 찾아보기가 힘든 듯하다. 그 후 숙종조에 온수군의 후손인 양무원종 3등공신 사과 방최일이 산성의 명칭을 다시 배방산성으로 돌려달라고 상소하였으나 왕은 ‘선대왕께서 정한 것을 함부로 고치지 못하지만 단지 排方의 方자를 芳(꽃다울 방) 자로 인준하라’는 답변을 얻는 데 그쳤다. 그 후 지금까지 지명이 이어지고 있다.

3. 분파

12세 13세
문정공 방우선
文定公 方于宣
장암공 방서
莊岩公 方曙
판서공파
判書公派
간의대부 방현
諫議大夫 方玄
간의공파
諫議公派
안렴사 방훤
按廉使 方暄
안렴사공파
按廉使公派
군위군 방적
軍威君 方迪
태상경공파
太常卿公派
방우번
方于蕃
방가달
方可達
대장군공파
大將軍公派
방득세
方得世
평장사 방신제
平章事 方臣悌
광록대부공파
光祿大夫公派
상락부원군 방신우
上洛府院君 方臣佑
상락부원군공파
上洛府院君公派

온양 방씨는 고려 말, 13세손들로부터 일곱 개의 파로 나뉘었는데, 이 중 판서공파(판도판서공파라고도 함)가 온양 방씨의 대종을 이루고 있고, 안렴사공파와 상락부원군공파는 절손되어 세계(世係)가 전해지지 않으므로 현재는 다섯 파만 존재한다.

태상경공파의 시조인 방적은 군위군에 봉작을 받았는데, 그 후손인 방계관이 그 지방으로 옮겨가 온양 방씨에서 분관이 되었고, 군위를 본관으로 삼으면서 군위 방씨가 된다.

광록대부공파의 파조인 방신제는 중국으로 넘어가 그곳에 정착하였는데, 현재 중국에서 그 후손이 전해지고 있다. 명나라 대의 학자 방효유는 방신제의 5대손이다.
[clearfix]

4. 항렬자

<colbgcolor=#000><colcolor=#ece5b6> 31세 ○호(), ○순(), ○처() <colbgcolor=#000><colcolor=#ece5b6> 41세 ○태()
32세 동(), 재(), 진() 42세 병()
33세 ○문(), ○용(), ○원() 43세 ○열()
34세 찬(), 효(), 정() 44세 기()
35세 ○석(), ○종(), ○혁() 45세 ○현()
36세 제(), 승(), 규() 46세 해()
37세 ○식() 47세 ○래()
38세 병() 48세 희()
39세 ○배() 49세 ○주()
40세 호() 50세 용()

5. 시조묘, 집성촌

6. 인물

이름 생몰년도 비고
33세
방일수(一秀) 1940 ~ 판서공파 개그맨, 족보명 신철(辛喆)
34세
방수현(銖賢) 1972 ~ 판서공파 운동선수
35세
방정환(定煥) 1899 ~ 1931 판서공파 독립유공자, 교육자
방한민(漢旻) 1900 ~ ? 판서공파 독립유공자
방열(烈) 1941 ~ 판서공파 운동선수
36세
방응모(應謨) 1896 ~ 1976 판서공파 친일파, 조선일보/오너 일가
방학세(學世) 1914 ~ 1992 판서공파 북한 정치인, 족보명 학세(鶴世)
방제환(濟煥) 1937 ~ 판서공파 정치인
방자경(慈景) 1969 ~ 2021 간의공파 정치인
방성훈(成勳) 1983 ~ 태상경공파 배우, 족보명 인규(仁奎)
방제환(濟煥) 1983 ~ 양궁선수
37세
38세
방일영(一榮) 1923 ~ 2003 판서공파 조선일보/오너 일가
방우영(又榮) 1928 ~ 2016 판서공파 조선일보/오너 일가
방신봉(信奉) 1975 ~ 간의공파 운동선수, 족보명 병운(炳雲)
방주호(珠豪) 1994 ~ 태상경공파 개그맨, 유튜버
39세
방상훈(相勳) 1948 ~ 판서공파 조선일보/오너 일가
방용훈(勇勳) 1952 ~ 2021 판서공파 조선일보/오너 일가
방성현(成賢) 1999 ~ 간의공파 프로게이머, 족보명 준배(準培)
40세
방찬(燦) 1997 ~ 판서공파 아이돌 그룹 'Stray Kids' 멤버

7. 관련 문서

8. 여담

  • 천방지축마골피: 흔히 조선시대 상놈(천민) 성씨로 알려진 천, 방, 지, 축, 마, 골, 피를 가리키는 말이다. 다만 조선시대 관리직에 오른 문헌이 널렸다는 점을 볼 때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애초 이순신의 처가가 어딘인가를 안다면, 무식하다는 소리는 자동이다. 1909년, 일제가 성씨가 없던 천민들에게 '원하는 성씨의 호적'을 주었는데. 천민들은 당시 인구가 많던 성씨로 숨어들었다. 방씨로 숨어들었다면, "내가 방씨인데 당신 누슈?"라는 소리를 들을 건 뻔하기 때문이다 그 천민들은 '천방지축마골피'라는 말을 지어내면서까지 철저히 숨었다. 일본에서도 부라쿠민이라는 천민이 존재하였다가 신분제 철폐로 평민 계급에 흡수되었지만, 그들이 사는 지역이 유지되어 아직까지 구분이 가능하고 차별을 받고 있다. 다만 한국에서는 일제강점기로 나라가 혼란에 빠졌고, 광복하고도 한국 전쟁으로 인해 나라가 황폐화되고 관련 문서는 사라지고 사는 곳이 뿔뿔히 흩어지면서 옛 천민의 구분이 불가능해졌다. 이를 일제강점기와 6.25 한국전쟁의 사회적 순기능이라고 보는 학자들이 많다. 지금도 어느 정도 찾으려면 찾겠지만 전국민중 과거 조상이 천민이었던 비율이 어느정도겠나. 누구도 환영하지 못하는 조사가 되기 때문에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방씨라는 건 과거 천민일 확률이 유명 성씨와 비교해 매우 적음을 의미한다.
  • 현재 인구 약 9만여명으로, 성씨 순위는 54위에 해당하지만 여전히 희귀한 성씨에 속하는 편이다. 여타 희귀한 성을 가진 사람들처럼 방씨들끼리 만나면 너무 반가워한다.


[1] 기원부터 따지자면 기원전 24세기까지 올라가는 상당히 오래된 성씨에 속하며, 고조선 건국부터 세는 한국의 역사보다도 오래되었다. 한국에서만도 신라 문무왕 때 시작되어 1400년 넘게 보전되고 있으니 한국의 성씨들 중에서도 오래된 편이다.[2] 당시 행정구역 기준이다.[3] 지금으로 따지자면 부총리, 조선 시대로 따지면 좌찬성 정도 된다.[4] 아마도 국가 원로로서 꽤 대우를 받았던 듯하다.[5] 그의 묘는 전의 인하병원 자리에 부인과 합장되었다가 성남시 개발로 1969년 이장했다. 이장 당시 부인의 유골은 흔적이 있으나 방순의 유골은 발견되지 않았고, 유물만 있는 것으로 보아 시신을 찾지 못하여 의장(衣葬)으로 지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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