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ddd,#000><colcolor=#000,#ddd> 토머스 드 퀸시 Thomas de Quincey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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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785년 8월 15일 |
잉글랜드 왕국 맨체스터 | |
사망 | 1859년 12월 8일 (향년 74세) |
그레이트브리튼 및 아일랜드 연합왕국 에든버러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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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 저널리스트, 수필가, 작가 |
1. 개요
영국의 저널리스트, 수필가, 작가이다.2. 생애
맨체스터에서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고, 난폭한 형과 냉정한 어머니 때문에 힘든 가정 생활을 보내다가 고등학교를 때려치고 가출한다. 하지만 곧바로 노숙자가 되었고, 친구들에게 발견되어 집으로 보내진 뒤 옥스퍼드 대학교에 입학하여 다녔으나 졸업 시험을 치르지 않은 채 중퇴한다.이후 기자로 일하다가 1821년에 자서전인 영국인 아편중독자의 고백을 내면서 작가로써 경력을 시작한다. 이미 대학교 시절부터 삼차신경통으로 인해 아편을 꾸준히 복용해오고 있었기에 경험자로써 책의 원료를 제공하기에는 충분했다. 이 작품은 낭만주의에 입각한 작품으로, 마약 중독자의 내면 심리 및 환경 인식 묘사에 탁월했으며, 아름다운 문체로도 유명했다. 현대에는 서양 문학에서 중독 문학의 전통을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그래서 당대부터 마약에 대한 긍정적인 인상을 심었다고 비난을 받았고 퀸시는 부록으로 금단 과정에 대한 과정을 붙이고 개정판에는 아예 아편의 의학적 측면에 대한 자료도 넣는 등
유명 작가의 반열에 올랐고 계속해서 글을 기고하며 수입을 유지하고 있었음에도 아편 중독은 그에게 계속해서 재정적인 부담을 안겨주고 있었고, 1846년 그의 나이 61세가 되어서야 그의 모친이 사망하며 남긴 유산 덕에 풍족한 삶을 살 수 있었다. 이후 1859년에 향년 7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3. 기타
정치적으로는 제국주의의 열렬한 지지자였으며, 심지어 노예제 폐지에도 반대한 바가 있다. 노예주들의 점진적인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샤를 보들레르가 그의 영향을 받았고, 에드가 앨런 포가 찬사를 보낸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