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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런던

<colbgcolor=#000><colcolor=#fff> 잭 런던
Jack London
파일:584px-Jack_London_young.jpg
출생명 존 그리피스 체이니
John Griffith Chaney
출생 1876년 1월 12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사망 1916년 11월 22일 (향년 40세)
미국 캘리포니아주 글렌 엘렌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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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소설가, 언론인, 수필가
사조 사실주의, 자연주의
배우자 엘리자베스 매던 (1900년 ~ 1904년, 이혼)
차미안 런던 (1905년 결혼)
자녀 2명
서명 파일:Jack_London_Signature.svg

1. 개요2. 생애3. 평가
3.1. 비판
4. 혐조선5. 작품목록
5.1. 영상화
6. 여담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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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 대표작으로 야생의 부름, 화이트 팽강철군화가 있다.

2. 생애

샌프란시스코에서 점성술사 윌리엄 체이니와 플로라 웰멘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 때의 이름은 존 그리피스 체이니(John Griffith Chaney)였으나, 플로라가 곧 존 런던과 재혼하면서 런던이라는 성을 얻게 되었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인해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그는 여러 고된 일들을 전전하면서 가족의 생계를 도와가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1889년부터는 한 통조림 공장에서 18시간 가까이 일을 했다. 이후 모은 돈으로 배를 사서 굴양식장의 굴을 훔쳐서 팔면서 지냈다.

열아홉 살에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 있는 학교에 들어갔다. 이곳에서 런던은 공부를 하는 한편, 학교 잡지에 자신의 경험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투고하였다. 이듬해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에 입학하고도 공부를 계속했다.

그리고 1897년 런던은 그의 누이의 남편과 함께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클론다이크 골드러시 붐에 합류하였으나 건강상의 문제로 포기하였다. 오클랜드로 돌아온 런던은 본격적으로 작품을 썼는데, 몇몇 작품은 실제로 잡지에 실리기도 했다. 그리고 1900년에 '늑대의 아들'을 완성하고 이것이 출판된 날 몇 년 동안 친구였던 엘리자베스 베시 메던과 결혼하게 되었다. 1903년에 '야생의 부름'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경제적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한편 1904년에 샌프란시스코 신문사의 러일전쟁 특파원 임무를 받아들이고 요코하마에 도착했다.

조선 여행 이후 일본군 전선에서 러일전쟁 과정 중 하나인 압록강전투를 지켜보았으며, 그 이후 전선을 떠났다. 한편 이 시기 조선에서의 경험을 살려 그는 조선에 대한 글을 썼는데, 1982년 프랑스에서 'La Corée en feu'란 제목으로 출판되었고, 이후 한국에서도 '잭 런던의 조선사람 엿보기'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이 책에는 구한말 조선 사회의 퇴행과 후진성, 조선인의 나태와 무기력, 양반계급의 수탈을 비판하는 내용이 있고, 전쟁이 나자 피난에 급급한 조선인들과 달리 압록강 너머 중국인들이 부지런히 생업에 임하는 모습을 보고,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는 데에 성공한 일본이 중국의 개화에 자극을 준다면 장차 중국이 서양인들에게 큰 위협이 될지도 모른다고 보았다.

1904년 말 그는 메던과 이혼하고, 샤미안 키트리지라는 여성과 교제하였는데 이 때 '바다 늑대'라는 작품을 집필했으며, 이것 역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듬해 그는 키트리지와 결혼하였고, 오클랜드 시장 후보로 나섰으나 언론의 뭇매를 맞았으며, 이혼한 뒤 키트리지와 곧바로 결혼한 문제까지 겹쳐 결국 낙선했다. 그는 낙선한 뒤에도 순회 강연을 계속했는데, 이 순회 강연에는 그의 미국 노동 문제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녹아들어 있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겪어온 미국의 가혹한 노동 환경에 대한 강력한 불신을 바탕으로 순회 강연 뿐만 아니라 집필 활동도 펼쳤는데, 그 중 하나가 1908년에 그가 쓴 소설 강철군화다. 그는 이 소설에서 자본가들의 횡포가 노동자 정권을 무너뜨리는 과정을 묘사했으며 이 문제에 대한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이후 말년에는 중국사에 관심이 생겼는지 기존에 하던 작가 활동을 병행하면서 중국사를 독자연구하는 데 매진했다. 한편 그 일환으로 만일 중국이 당나라 때에 운영하던 것과 같은 부병제를 부활시킨다면[1] 훗날 서양 국가들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진단을 내렸다.[2]

이것 말고도 그는 캘리포니아의 글랜 엘런에 있는 땅을 사들여 농장을 만들었다. 이곳에서 그는 아시아의 '지속 가능한 농업(sustainable agriculture)'을 미국에 들여오고자 했고, 농촌 공동체 건설을 지향했지만 경제적 실패를 겪었으며, 그가 이곳에 건설한 석조건물 울프 하우스 또한 전소되어 큰 낭패를 보았다.

1916년 11월 22일 글랜 엘런에서 숨을 거두었다.

3. 평가

3.1. 비판

최초의 상업적 잡지 소설가로 유명하지만 그만큼 다작을 하면서 벌인 행적 때문에 작품윤리적으로 논란도 많다. 신문기사의 일부를 발췌해서 글을 쓴 것은 양반이고, 무명 작가들에게서 소설 소재와 개요를 돈주고 사서 글을 썼었다. 이 때 잭 런던에게 소재를 판 대표적인 인물이 뒤에 미국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게 되는 싱클레어 루이스이다.

위에 언급된 잭 런던의 조선사람 엿보기에서도 간략하게 언급되지만, 잭 런던의 인종차별적이고 백인우월주의적인 성향은 엄청나게 강하다. 잭 런던의 팬인 장정일도 그 당시의 인종차별주의의 한계를 언급하면서 정 반대 시각에서 보는 다른 책도 같이 읽으라고 언급했을 정도이다. 그러나 후술하겠지만, 중국인과 일본인에게는 높은 평가를 내렸기에 단순한 동양인 인종차별주의자로 치부할 수는 없고, 조선인'만' 차별했다고 보는 편이 더 적절하다.

한국인에게 거부감을 일으키는 점은 이 뿐만이 아니다. 조선을 철저하게 멸시한 것과 정반대로, 일본에 대해서는 관습이나 능력이 유색인 치고는 뛰어나다며 높이 평가했고 사쓰마 번을 직접 찾아가면서까지 그들이 숭상하는 무사도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피력한 바 있다. 그러면서도 일본이 장기적으로는 서양 세계에 큰 위협이 될 것이라며 경계했다.[3] 그의 미완성 소설인 Cherry에서도 일본인들의 능력에 찬탄을 아끼지 않았는데, 이런 성향이 일본에 알려져서 일본인들이 그의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한다. 그러나 러일전쟁 취재 도중 기관총이 있는 러시아군의 진지로 반자이 돌격을 감행하는 일본군을 보고는 이러한 환상이 깨졌으며, 나중에는 미국 사회당이 주도하던 일본계 이민자 차별 금지운동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등 친일적인 시선은 사라진다. 20세기 초 미국 서부에 아시아계 이민이 시작되자 우려를 표하는 에세이를 발표했다.

요약하면 강철군화를 썼으면서 많은 돈을 벌어 농장주로 살았고, 사회주의자였으며 동시에 인종주의자였고, 이상과 욕망 사이에서 양가감정에 시달린 사람이라 할 수 있겠다. 자전적인 요소가 많이 담긴 마틴 에덴은 그 점에서 런던의 분열적인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4. 혐조선

잭 런던은 조선에서 체류한 후 조선이라는 나라와 조선인들을 극도로 혐오하며 생전에 매우 과격하고 폭력적인 혐조선 발언들을 여럿 남긴 바 있다.

예를 들어 그의 저서 <La Corée en feu>에서는 아예 책 한 권을 통째로 조선인들을 폄하하고 힐난하는 데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해당 저서에서 그가 조선인들을 혹평하는 부분들은 크게 8가지가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조선인들은 어리석고 멍청하다.
한 번은 그가 마부와 함께 말을 타고 이동하는데, 말의 움직임이 이상하여 마부에게 말의 상태를 살피라고 말했으나 마부는 별일 아니라고만 대답하고 계속 말을 몰았다. 결국 잭 런던이 직접 말 발굽의 상태를 확인했는데, 말 발굽이 절반이나 깨져 있었다고 한다. 이에 런던은 문제점을 파악하려 하지 않는 조선인들의 어리석음을 질책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1. 조선인들은 세상에서 가장 나약하고 겁이 많다.
여기에서는 조선인들이 사진을 찍는 일화를 설명하는데, '사진을 찍는 것이 목숨을 앗아간다'는 미신 때문에 조선인들은 사진을 찍으려 하면 마치 장례식장을 방불케하는 울음바다가 되어 있더라고 회고했다.
1. 조선 남성들은 씩씩함이 없고 여성스럽다.
조선 남성들의 용모는 남자다운 씩씩함이 없고, 생긴 것이나 하는 행동이나 계집아이스럽다며 힐난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는 조선 왕조 500년 동안 이어진 집권층의 부패가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1. 조선인들은 게으르다.
1. 조선인들은 도벽이 있으며, 약자에게 강하다.
잭 런던이 어느 주막에서 묵다가 다음 날 담요 두 장이 사라져 있었다. 주막 주인은 죄송하다고 말하면서도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고, 이에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담요를 내놓지 않으면 신고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한 짐꾼이 자백을 했고, 이를 본 주변 사람들이 그제서야 짐꾼을 단체로 폭행했다고 한다. 이를 보고 런던은 "약자에게만 강한 모습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아시아적 풍토"라며 혀를 찼다.
1. 조선인들은 쓸데없이 호기심이 많다.
조선인들은 자신이 서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너도나도 앞다투어 구경하려고 인산인해를 이루어서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1. 조선인들은 세상에서 가장 비능률적이고 무능한 민족이다.
조선인들은 의지와 자결심이 부족하다고 엄청나게 까고 있다: "조선인들은 이미 그들을 주인의 눈으로 바라보는 그들의 지배자인 ‘왜놈’들의 몸집을 훨씬 능가하는 근육이 발달한 건장한 민족이다. 그러나 조선인들에게는 지능이 결여되어 있다. 일본인을 훌륭한 전사(Warrior)로 만들어주는 맹렬한 진취성이 조선인에게는 없다. 실제로 조선인은 스스로에 대한 자결심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며, 지구상의 모든 민족 중에서 가장 비능률적인 민족이다. 하지만 딱 한 가지 뛰어난 점이 있는데 그것은 짐을 지는 능력이다. 짐을 옮기는 일에서 만큼은 조선인들은 마치 짐 끄는 노새나 당나귀처럼 지구 상의 그 어떤 민족보다도 완벽하게 일을 해낸다." 즉, 몸 쓰는 일에 부려먹는 데에나 특화된 민족이라는 것.
1. 조선인들은 착취하는 계급과 착취당하는 계급만 존재한다.
잭 런던은 박순성이라는 군수가 일본군이 지불한 가격의 3할 정도만 백성에게 돌리고, 나머지는 횡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에 잭 런던은 관아로 쳐들어가서 그에게 따졌더니, 박순성은 공포에 떨며 백성들에게 남김없이 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이렇듯 조선과 조선인에 대한 비판과 부정적인 서술이 가득한 탓에, <La Corée en feu>는 한국에서 오랫동안 출간되지 못했다가 2011년에서야 한울출판사에서 <잭 런던의 조선사람 엿보기>라는 이름으로 겨우 번역하여 내놓았다. 이는 잭 런던의 저서들 중 가장 마지막에 한국어로 번역되어 나온 편에 속한다. 해당 저서의 역자서문에서도 "출판사인 한울에서도 관계자들 사이에서 이 책을 출판해도 되는지 논쟁이 벌어졌다"고 기록하고 있을 정도였다.
"The first weeks of a white traveler on Korean soil are anything but pleasant. If he be a man of sensitive organization he will spend most of his time under the compelling sway of two alternating desires. The first is to kill Koreans, the second is to commit suicide. Personally, I prefer the first."

(한마디로 말해서 백인 여행자가 조선에 체류할 때 겪는 일들은 조선에 도착한 처음 몇 주 동안 기분 좋은 것과는 영 거리가 멀다. 만약 그가 예민한 사람이라면 두 가지 강한 욕구 사이에서 씨름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낼 것이다. 하나는 조선인들을 '죽이고 싶은 욕구'이고 또 하나는 '자살하고 싶은 욕구'이다. 개인적으로 나라면 첫 번째를 선택했을 것이다.)
- Royal Road a Sea of Mud (1904)
다음과 같이 조선인들은 먹고 사는 데에만 치중하여 문화적 향락이라는 것을 누리지 않는 야만적인 민족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조선의 길거리는 마치 어떠한 기술자나 예술가도 존재하지 않는 원시적인 세계처럼 보였다. 그들이 사용하는 일상 용품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기능적인 목적 이외에는 어떠한 장식이나 예술적 고려조차 없었으며, 가장 원시적인 야만의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조선을 보고 이렇게나 미개한 나라는 차라리 다른 열강의 지배를 받는 편이 낫다고까지 말하기도 했다.

그나마 잭 런던이 조선인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 부분이 있다면, "조선인들은 자기 자식들만큼은 끔찍하게 사랑한다"라고 말한 부분은 존재한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나 새비지 A. 랜도어와 구분되는 점이 이것이다. 당시 조선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아시아 거리가 비위생적인 편이었고[4][5] 이 때문에 대부분의 서양인이 위생 상태에 기반해서 인종차별주의 내지 제국주의를 정당화했다.

4.1. 인종주의제국주의

다만 위에서 지적된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잭 런던은 어쨌건 인종차별주의자는 아니다, 또는 인종차별주의자로 보기는 애매하다' 라고 말할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의 저작중에서 한국에서 많은 관심을 받는 것은 한국(조선)을 주제로 다룬 <La Corée en feu>(번역 제목은 '잭 런던의 조선사람 엿보기') 이지만 사실 그의 작품사 전체에서 그보다 훨씬 높은 비중을 차지한 작품은 당대 런던 빈민가의 처참한 현실을 고발한 <people of the abyss>(번역 제목은 '밑바닥 사람들')이다. 그리고 people of the abyss에서 잭 런던은 미국의 주류 인종과 인종적으로 당연히 전혀 구별할 수 없는 영국의 하층민에 대해서도 노골적인 우월감과 차별의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으며 특히 고된 노동과 부족한 영양섭취로 인하여 쇠약하고 왜소하게 뒤틀린 체격을 가지게 된 영국 노동자 계급에 비하여 건장하고 강인한 체격을 가진 자신이 느끼는 우월감을 전혀 숨기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잭 런던은 분명히 차별정서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지만, 그 차별정서가 작동하는 주된 동기가 딱히 인종 문제였던 것은 아니므로 잭 런던은 분명 차별주의자였지만, 차별주의자의 많은 유형중에서 딱히 인종 차별주의자로 분류하기에는 애매하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그의 작품 전반에서 일관적으로 드러나는 관점은 마초적인 힘(건장함)에 대한 숭상이나 약자에 대한 강자의 우월성,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한 영웅주의 등이다.

물론 깊이 따지고 들어가자면 같은 인종인 영국인(영국의 하층민 노동자)가 상대일때는 상당부분 동정심의 형태로 드러났던 그 우월감이 다른 인종인 한국인을 상대로 할때는 '열등인종이다, 보다 우월한 인종에게 지배당하는 것이 당연하다' 식의 사정없는 혐오발언으로 나타났으니 인종차별적인 요소가 없었다고 말할수는 없다. 그러나 그의 활동시기가 인종간 평등이란 개념 자체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던 20세기 극초반임을 생각하면 이는 인종주의 자체보다는 서구문명우월주의에 기반한 제국주의의 부산물로써 나타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할 수 있다는 것. 이 관점에서 보면 잭 런던이 대놓고 일본에 호의적인 태도를 보인 것 역시 일본이 아시아 국가중에서는 가장 먼저 서구화되어 제국주의 열강의 대열에 끼어들기를 시도했던 국가였기 때문이라고 쉽게 이해할수 있는 것이다.

사실 잭 런던의 경우 강철군화와 같은 대표작 때문에 진보 좌파적인 정치적 성향을 가진 인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고, 따라서 "그런 인물이 대놓고 제국주의적, 인종차별적 혐오발언을 했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조선을 싫어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와 같이 해석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점에서는 잭 런던이 진보좌파적 성향을 가진 인물이라고 보는 관점 자체를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그가 당시 사회의 가혹한 노동환경 및 빈부격차를 고발하고 자본가에 의한 경제적 찰취를 비판하는 등 반 자본주의적 입장을 보여준 적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20세기 초반의 시대상에서 이러한 '자본주의 비판'은 좌파의 전유물이 아니라 급진 좌파와 급진 우파 양쪽 모두에서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잭 런던의 활동 시기는 아직 극좌와 극우의 분리가 명확해지기 이전이었기에 그를 어느 계통으로 분류해야 할지는 다소 애매한 면이 있으나, 급진 우파 성향으로 분류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에서는 강한 엘리트주의나 영웅주의, 마초이즘 성향,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약자에 대한 강자의 우월성을 당연시하는 성향이 공공연히 나타나고 이는 전형적인 우파, 그중에서도 극우의 특성에 부합한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people of the abyss>를 통해 <La Corée en feu>를 해석'하는 시도를 해보았던 것과는 반대로 '<La Corée en feu>를 통해 <people of the abyss>나 <the iron heel>(번역 제목은 강철군화)을 해석하려고 시도해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같은 미국인(the iron heel)이나 같은 백인(people of the abyss) 대상으로는 비교적 억제되어 '우매한 대중을 계도하는 영웅주의'의 수준에 머무르던 잭 런던의 성향이 타 인종인 한국인을 대상으로 했을때는 노골적인 제국주의 옹호에 이를 정도로 전혀 억제되지 않고 드러난 것이 아니냐는 점이다. 따라서 (위에서도 이미 지적된 바와 같이) 잭 런던에게 인종차별적 정서 자체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것은 부차적인 것이고, 보다 본질적인 것은 궁극적으로는 제국주의에까지 이르는 강자 숭배 정서이며, <La Corée en feu>의 경우 당시 서구 국가들보다 약자이던 아시아 국가, 그 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극동의 세 나라 중 가장 약자이던 한국을 대상으로 했기에 약자에 대한 혐오가 가장 사정없이 터져나온 것이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5. 작품목록

5.1. 영상화

미국의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를 다른 그의 소설들은 시대극 영화로 각색이 많이 된 편이다.
  • 바다늑대
    7번 영화화 되었다.
  • 흰 송곳니
    1925년 흑백 무성영화로 나온 뒤로 여러번 영화로 나올 정도이며 1982년에 방영한 스튜디오 딘에서 만든 70분짜리 TV특별 방영 일본 애니메이션도 있다. 화이트 팽 스토리. 영화에서 에단 호크가 출연한 1991년작 영화가 알려져 있다. 한국 제목은 늑대개. 다만 늑대개 2라고 비디오로 나온 영화는 이 소설과 전혀 상관없다. 때문에 진짜 화이트 팽 2로 만든 영화는 한국에서 늑대개 3라는 제목으로 비디오로 나왔었다. 2018년, 넷플릭스에서 3D 애니메이션을 발표했다.
  • 올 골드 캐니언
    코엔 형제의 넷플릭스 영화 《카우보이의 노래》로 각색되었다. 단편 에피소드를 모은 옴니버스 영화인데 노인이 혼자서 금을 캐는 '금빛 협곡' 에피소드가 잭 런던 원작. 이 영화는 베니스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고 아카데미 각색상 후보에도 올랐다.
  • 마틴 에덴
    1914년 영화로 처음 영상화되었는데 필름이 유실되어서 현재는 볼 수 없는 영화가 되었다. 이후 소련 영화, 이탈리아 TV 드라마로 각색되었다. 2019년 공개된 이탈리아 영화는 1910년대 샌프란시스코 였던 원작의 배경을 20세기 중반 이탈리아 나폴리로 옮겼다. 영화 속에선 주인공 이름도 이탈리아어 발음인 마르틴으로 발음한다.[6]

6. 여담

  • 오늘날 그가 살았던 글렌 엘런의 땅은 역사 공원이 되어 있으며, 1966년에 미국 국가 사적지(U.S. National Register of Historic Places)로 지정되었다.
  • 러시아 마가단 주 서부에 잭 런던 호수[7]가 있는데 러시아 작가였던 스코르냐코프가 이 사람의 이름을 따와 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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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기영화 <Jack London>(1943)이 있다. 두 번째 아내가 1921년에 펴낸 책을 바탕으로 했다. 러일전쟁을 취재하면서 일본이 만주몽골을 먹고 그곳의 자원을 바탕으로 중국, 미국, 영국까지 집어 삼킬 계획이라는 걸 알게 되고, 이를 알리려하나 잘 되지 않는다. 러시아 첩보원으로 몰려 일본 감옥에 갇혀 고생하기도 한다. 수전 헤이워드가 두 번째 아내 역을 맡았다. 개봉 5개월 전인 1943년 7월에 그의 이름을 붙인 리버티선의 진수식이 있었는데, 영화 앞뒤에 촬영분이 나온다.
  • 릭 라이어던의 소설 올림포스 영웅전에서 헤르메스의 아들이라고 언급된다. 그가 만들었다 불탄 울프 하우스는 로물루스와 레무스를 기른 암늑대의 영역이자 로마측 반신들의 성지라고 한다.
  • 영화 타이타닉의 주인공 잭 도슨 (Jack Dawson)이 잭 런던의 삶에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캐릭터다.

7. 관련 문서



[1] 그런데 우연의 일치로 현대 일부 동아시아 쪽 서적들에서는 잭 런던의 모국인 미국에서 운영하던 징병 제도인 Selective Service 체계를 "부병제"로 번역할 때가 있다.[2] 더불어 당시 대다수의 서양인들이 단순히 중국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져서 한족만주족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던 것과 달리 런던의 경우는 "중국 대륙에서 한족들은 이미 중세 이래로는 만인들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집단이 아니다"라는 나름의 견해를 내놓는다. 이런 걸 보면 상술한 부병제에 대한 주장도 그렇고 잭 런던이 중국사 중에서도 제일 크게 관심을 가졌던 건 당나라 시기였던 듯 하다.[3] 중앙일보 블로그뉴스 2009-10-02 작가 '잭 런던' 이야기[4] 이는 미국과 유럽에서 주요 도시에서 상하수도와 공중화장실 시설을 갖추어놓았던데 반해서 아시아 각 국가에서는 비용이 많이 들어갔던지라 아직 이러한 시설이 잘 없었기 때문이었다. 즉, 경제력의 차이였던 것이었다. 물론 동북아 각 국가들이 위생시설을 갖춘 21세기 초에 와서는 우스운 일일뿐이다.[5] 그리고 새비지 랜도어는 일본인들이 조선이 더럽다고 업신여기지만 정작 일본인들은 목욕물을 버리지도 않고 때가 둥둥 뜬 물에 여럿이 들어가는 주제에라며 일본을 비꼬았다.[6] 자막에는 마틴으로 표기된다.[7] Озеро Джека Лондон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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