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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by(那覇市,ruby=なはし)]
나하시 / Naha City

파일:나하시 시기.png
시기(市旗)
국가 일본
지방 오키나와
도도부현 오키나와현
면적 39.57km²
인구 317,887명[1]
상징
시화 부겐빌리아(ブーゲンビレア)
시목 후쿠기(フクギ)
시화목 봉황목(ホウオウボク)
시어 참치(マグロ)
시접 이데아 왕나비(オオゴマダラ)
홈페이지

1. 개요2. 상세3. 지명 유래4. 지리5. 기후6. 지역 구분
6.1. 본청 관내(本庁管内)6.2. 마와시지소 관내(真和志支所管内)6.3. 슈리지소 관내(首里支所管内)6.4. 오로쿠지소 관내(小禄支所管内)
7. 역사
7.1. 류큐 왕국7.2. 류큐 처분으로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7.3. 오키나와 전투 이후
8. 문화 및 관광9. 교통
9.1. 노선버스9.2. 공항9.3. 철도9.4. 도로
9.4.1. 국도9.4.2. 현도9.4.3. 자전거 도로
10. 유명 출신자
10.1. 가수10.2. 예능10.3. 예술10.4. 스포츠10.5. 정치
11. 오키나와어 지명12. 관련 문서

1. 개요


오키나와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 최대의 도시.
일본 난세이 제도 오키나와현의 현청소재지이자. 중핵시이다. 동부의 슈리와 서부의 관공서들의 중심이 나하시에서 주변 시, 정, 촌으로 발달해 왔다. 국제공항나하 공항과, 현외 및 주변 섬을 잇는 나하항 터미널의 (국제 여객선)과 (국내 여객선)을 껴안는 것부터 오키나와 제도의 관문으로서의 허브 역할도 맡고 있다.
인구는 2019년 현재 약 35만명으로 오키나와현 본섬 인구의 1/4 정도를 차지하며. 나하시, 오키나와시, 우라소에시, 우루마시, 이토만시, 기노완시, 난조시, 토미구스쿠시등으로 이어지는 나하광역권은 약 117만명의 대도시이다.

과거에 오키나와 이전 류큐 왕국의 수도이자. 궁전이었던 슈리 성이 나하시 동부에 위치해 있다.

2. 상세

면적은 일본의 모든 도도부현 중 시급도시 가운데 가장 작고 인구 밀도는 수도권간사이권을 제외한 지역으로서는 전국에서 가장[5] 높다. 또 나하 공항이 시 면적의 8%이상을 차지하고, 그 중에는 자위대기지 도 포함한다. 또 주일미군의 시설이나 나하 항의 항만 시설의 몫도 고려하면 실제의 도시 활동에 사용 가능한 면적은 한정된다. 게다가 나하 공항의 고도제한 으로 인해 시가지의 상당수는 초고층 빌딩이나 초고층 아파트를 찾기 힘들다. 최근에는 항공 규제의 영향이 없는 나하 신도심을 중심으로 한 북부 구역과 마키시 지구 등에 초고층 빌딩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도시화에 따라 주변 지역의 베드타운화가 진행되어 나하시를 중심시 나하 도시권의 인구는 약 78만명(도시 고용권-2005년)이다. 또한 지방에서 인구 감소가 심각한 문제가 되는 오늘날에도 나하 시 및 나하시의 주변 지자체에서는 인구 증가가 현저하고, 2014년 7월 현재의 도시 고용권 인구는 약 82만명(10%유입 인구)에 이른다. 게다가 나하시를 중심으로 한 오키나와 본섬 중남부권의 인구는 면적 478km²에 대한 약 117만명(추계 인구 2014년 7월 1일 현재)을 넘어서는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인구 집중 지구이다.

시내 중심부는 코쿠바 천(망코)과 아사토 천으로 둘러싸인 평지 지대에 자리잡고 있으며 이 곳에 나하 시와 오키나와 현의 주요 시설이 대부분 위치해 있다. 1987년 주일미군의 거주지로 활용되었던 마키미나토 주택 지구가 반환되면서 해당 지역이 나하 신도심으로 개발 진행되어 중심지에 일부 기업의 본사 등이 이동했다. 중심부 주변의 구릉지는 거의 모두 시가화(주로 주택지) 되면서 원래의 지형의 높낮이에서 입체적인 도시 경관을 보인다. 한 때 류큐 왕국의 수도였던 슈리 지구는 해발 100m 정도의 고지대여서 위치에 따라 나하시 전역을 관망할 수 있다.

관광 면에서는 시 중심부의 국제거리, 시 동부의 고지대에 있는 슈리 지구의 슈리 성(류큐 왕국의 수도. 2000년 12월 세계유산 류큐 왕국의 구스쿠 유적지와 관련 유산으로 등록)이 중심이었지만 최근들어 주일미군 주택지의 유적들이 나하 신도심으로서 개발이 진행되고 있으며 2004년 12월에 세계 최대 규모로 일본 유일의 공항 외부 면세점인 DFS갤러리아 오키나와가 오픈했다. 바다에 접해 있지만 나하 공항과 나하 항 등의 시설이 해안선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해수욕장은 1991년에 운용 개시된 나미노우에 비치(인공 해변)가 유일하다. 명산품으로 츠보야 야키(도자기)와 오키나와 특산 소주인 아와모리 등이 있다.

2006년에 중핵시 지정 조건 중 하나였던 면적 규정이 폐지됨에 따라 핵심시 승격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그리고 2012년 10월 19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나하시를 중핵시로 지정하는 정령을 결정한 후, 2013년 4월 1일로 일본전국에서 42번째 중핵시로 승격되었다.

2016년 7월 17일부터 동성커플증명서 발급이 가능해진다.

3. 지명 유래

나하를 원래 오키나와어로는 나화(なーふぁ 또는 なふぁ)라고 불렀는데, 오키나와어에서 어장을 뜻하는 '나바'(なば)가 변해서 '나화'가 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한자 那覇는 '나화'를 소리나는대로 한자로 음차(音借)한 것이라고 한다.

참고로 오키나와는 현대 가나 표기법으로 おきなわ라고 적지만 역사적 가나 표기법으로는 おきなは이다. 오키나와의 한자 표기도 그냥 한자를 빌려 쓴 것이므로 옛 발음만 봤을 때 나하라는 지명과 어원상 서로 관계가 있으리라 짐작된다.

4. 지리

오키나와 본섬 남부의 서해안에 위치하여 동중국해에 접해 있다. 시 중앙부가 거의 평탄하고, 주변부에 작은 구릉 지대가 둘러싸 시내를 동에서 서쪽으로 코쿠바 천과 아사토 천이 흘러 동중국해로 나간다. 토미구스쿠시 경계에 있는 망코는 맹그로브가 발달해 있으며 람사르 협약에 등록되어 있다.
  • 강: 코쿠바 천(国場川), 아사토 천(安里川), 아쟈 천(安謝川)
  • 갯벌: 망코(漫湖)

5. 기후

평균 기온이 약 23도, 연간 강수량은 2000mm이상으로 고온 다습한 아열대기후(쾨펜의 기후 구분에서 온난 습윤 기후(Cfa)을 나타낸다.[6] 겨울에도 최저 기온이 10도를 밑도는 것은 극히 드물며[7], 또한 해양성 기후 탓에 한여름의 최고 기온이 30도를 넘는 날은 많으나 35°C를 넘는 날은 거의 관측되지 않는다(2001년 8월 9일 최고 기온이 35.6°C와 2011년 8월 시점에서 일본전국 도도부현 시 소재지의 최고 기온 기록 중 가장 낮은 기록이다.).

전 세계적인 한파가 있었던 2016년 1월에는 진눈깨비가 관측되었다. 근데 그 당시 평균기온으로 따져보면 2015년 대비 0.8도 높아 지구온난화의 영향인 것으로 추정. 1977년 쿠메지마(久米島)에서 진눈깨비가 관측된 이래 오키나와 최초의 강설 기록이다.

열대기후와 아열대기후의 경계점에 있는 지역이니만큼 더위를 많이 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연중 추위가 없다고 느껴질수도 있다. 관광하기 가장 좋은 계절은 비가 자주와서 문제이기는 하나 쾌적성으로만 봤을때 역시 12 ~ 2월의 겨울로서 서울에 대응하여보면 늦봄에서 초여름으로 넘어가는 시점에 해당한다.

6. 지역 구분

나하는 본래 류큐 왕국의 수도인 슈리 인근의 항만이었는데 류큐 왕국이 멸망하고 오키나와 현이 된(1879년) 뒤로 행정 중심지가 되었다. 슈리에는 구 일본군 부대의 부지가 들어서서 새로운 행정 기관을 세울 만한 터가 좁았다고 한다. 그래서 나하로 옮겨 가게 되었고, 나중에는 나하가 슈리를 비롯한 주변 지역을 거꾸로 흡수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나하 시역소(시청)에서 행정 목적상 다음과 같은 지역으로 구분한다.

6.1. 본청 관내(本庁管内)

나하 시역소에서 직접 관할하는 구 나하 지역과 나하 신도심[8] 지역이다. 류큐 왕국 시절의 나하는 원래 이곳만을 지칭했다.

6.2. 마와시지소 관내(真和志支所管内)

구 마와시(真和志) 시가 있던 지역인데 1957년 12월 17일에 나하 시로 흡수되었다. 참고로 옛 마와시 지역의 일부는 슈리 지역에 포함돼 있어서 마와시지소의 관할 지역이 아니라 슈리지소의 관할 지역이다. 본청 관내와 슈리 사이에 위치한다.

6.3. 슈리지소 관내(首里支所管内)

나하 시의 동부. 구 슈리 시가 1954년 9월 1일에 나하 시에 합병되면서 슈리지소가 설치되었다. 옛 수도 지역이다 보니 나하 시로 합병될 때 주민들의 반발이 있었다고 한다. 대한민국에 비유하면 서울이 실질 수도의 지위를 인천에 넘겨줬다가 시간이 지난 뒤 인천이 서울을 흡수한 상황이라고 보면 된다. 안 그래도 몇 년 전인 1949년 12월 9일 미군정[9]은 나하를 오키나와의 수도로 한다고 대놓고 공식 선포하는 바람에 자존심이 상해 있었는데,[10] 아예 합병까지 시킨다고 하니 주민들의 감정이 상했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런 사정 때문에 이 일대의 행정구역명은 전부 '슈리'로 시작하여 이름만 봐도 슈리 지역임을 알 수 있게 해주고 있다. 통합 창원시에서 구 마산 지역의 행정구가 '마산'으로 시작하는 것[11]과 유사하다.

구 슈리 시가 나하 시에 합병됐을 당시 슈리지소 관내는 나하 시의 월경지였다. 하지만 1957년에 마와시 시가 나하 시로 흡수되면서 월경지가 아니게 되었다.

6.4. 오로쿠지소 관내(小禄支所管内)

나하 시의 서부. 과거에 시마지리 군 소속이었던 오로쿠(小祿/小禄) 촌 일대가 1954년 9월 1일에 나하 시에 합병되면서 오로쿠지소가 설치되었다. 이 일대의 토지 구획을 정리하여 주택가로서 정비되었다. 그래서 오키나와 현 밖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 사이에 인기가 좋다고 한다.

7. 역사

7.1. 류큐 왕국

파일:external/1e7f72fc7138c5ceff6ac4c8c5aa073e1b250b41d55823246aab787d78b6c099.jpg
<류큐진공선도병풍(琉球進貢船図屏風)>, 교토대학 총합박물관 소장
나하는 원래 코쿠바 천과 아사토 천 하구의 만에 산재한 섬들이었다. 삼산시대인 1406년, 사시키[12]아지(按司)[13]였던 쇼하시가 중산(中山)의 수도였던 우라소에를 공격, 당시 중산왕 부네이(武寧)를 물리치고 자신의 아버지 쇼시쇼를 중산왕에 옹립했다. 이 때 중산의 수도를 우라소에에서 슈리로 옮겼으며 슈리 성을 류큐의 궁궐로 삼았다. 동시에 지금의 나하 일대가 정비되어 작은 항구가 되었다.

1451년에 쇼킨푸쿠왕이 명나라로부터의 책봉사를 맞이하려고 명나라의 기술자 회기(懐機)에게 명해 쵸코테이(長虹堤)라는 길이 1km에 이르는 둑길을 건설시켜 오키나와 본섬의 아사토 천 쪽과 연결시켰다. 육로 교통이 정비됨으로써 항구로서의 발전이 시작되어 나하 4정(那覇四町)[14]로 불리는 시가지가 형성됐다.

한편 1392년 중국 복건성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은 나하의 쿠메 촌(久米村)에 정착하고 있었다. 이들은 쿠메삼십육성(久米三十六姓)[15]이라 불렸으며 진공사,통역,선박 제조 등 류큐의 무역과 외교를 지탱하는 일에 종사해 왔다.

쇼신 왕(재위 1477-1526)은 중앙집권 정책으로 류큐 왕국 각지에 할거하고 있는 아지들을 슈리에 모여살게 했으며 슈리는 크게 확장되어 왕족, 귀족 그리고 관리들이 모여사는 류큐 왕국의 중심도시가 되었다. 이 때의 슈리를 가리켜 수이웨구니(首里親国, すいうぇーぐに)라고 불렀다. 한편 항구도시 나하는 중국, 일본 그리고 동남아시아를 잇는 중계무역으로 번영하였다.

16세기 왜구 등의 습격으로부터의 방어를 위해 나하항 인근 해상에 있는 섬에 성벽을 쌓고 둑길을 만들어 코쿠바 천 하구의 나하 항의 남북으로 방어용 포대 미에구스쿠(三重城)와 야라자모리구스쿠(屋良座森城)를 건설했다. 게다가 나하항의 맞은편 남쪽의 카키하나(垣花) 등에도 시가지와 항만이 건설되었다.(나하 항 남안은 제2차 대전 후 빈 터에 돼 미군의 나하 군항이 되었다.)

1609년 류큐가 사츠마 번에 종속당한 후, 류큐에서 사츠마측에 도자기 장인을 보내줄 것을 요청하였고, 임진왜란 때 조선에서 포로로 잡혀온 장헌공(張献功)이 류큐에 정착하여 나하의 치바나(知花)와 슈리의 타카라구치 (宝口)에 가마에서 도자기가 구워졌다. 1670년에 이러한 가마들을 츠보야(壺屋)로 통합하여 츠보야 아치문(壺屋焼物)이라는 도자기를 생산했다. 한편 슈리의 토리호리(鳥堀), 사키아먀(崎山), 아카타(赤田) 세 동네가 아와모리 소주를 제조할 수 있는 허가를 왕부로부터 받았으며 이 세 곳을 슈리산카(首里三箇)라고 불렀다.

토사의 퇴적으로 인해 나하는 류큐 왕국 말기에는 육지와 이어지고 있다.

7.2. 류큐 처분으로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Shuri-Sanka_in_Taisho_era.jpg
다이쇼 시대의 슈리(슈리산카)
1879년 류큐 처분으로 류큐왕국은 멸망하였다. 새로이 설치된 오키나와 현은 기존의 건물들에 일본군 시설까지 들어서 자리가 없는 슈리 대신 나하에 현청을 두었고, 이로서 나하가 슈리를 대신하여 오키나와의 중심지가 되었다. 나하는 오키나와 현의 물자 집적지, 상업 도시로서 번영을 거듭한다. 하지만 태평양 전쟁이 발발, 1944년 10월 10일 대규모 공습과 1945년 4월부터 시작된 오키나와 전투에 의해 시가지는 완전히 파괴됐다.
  • 1879년: 오키나와 현청이 설치되어 오키나와의 행정의 중심이 되었다. 또 그 전까지 나하 4정으로 불렸던 니시·히가시·와카사·이즈미자키에 더해 새로 토마리·쿠메·쿠모지(久茂地)가 편입
  • 1896년: 오키나와 현 선거구제 시행으로 나하구로 됨.
  • 1903년: 시마지리 군 마와시 에서 마키시 , 오로쿠에서 카키하나를 편입.
  • 1914년: 시마지리 군 마와시 촌에서 츠보야 지구를 편입, 신규 매립지를 아사히마치로 명명하여 편입.
  • 1921년 5월 20일: 특구제를 폐지하고 시제를 시행하여 나하시가 됨.
  • 1921년 12월 19일: 시장을 임명.
  • 1944년 10월 10일: 나하를 중심으로 오키나와 전역에 대한 미군의 대공습에 의해 괴멸적 피해를 받는다. 나하의 경우 90%이상이 불에 탔다.
  • 1945년: 오키나와 전투로 인하여 도시 대부분이 폐허가 됨. 일본군의 요새로 개조되었던 슈리 성도 완전히 파괴됐다. 이후 시가지 전역이 출입금지 지역이 됨.

7.3. 오키나와 전투 이후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Kokusai_Dori_in_1955.jpg
50년대의 국제거리

전후, 옛 나하 시 중심부는 미군의 관리하에 들어가 군 시설에서 1마일 이내로 출입금지지역이 되었다. 주민의 대부분은 현 북부의 수용소에 옮겨져 있었다. 생활 물자 부족 해소를 위해 1945년 11월 나하시 츠보야 지구의 도자기 장인들이 먼저 돌아왔다. 게다가 12월에는 마키 지구의 기와 장인들 136명이 돌아왔다. 이어 가족이나 친척이 이주했으며, 이에 섞여 허가 없는 주민도 속속 나하에 머무르면서 츠보야로부터 신 현도(현재의 국제거리)일대에 차례로 마을이 부흥, 암시장도 자연적으로 확대했다.

이런 가운데 주민중 한사람인 타카라 하지메(高良一)가 미군과 직접 협상해 미군의 물자 집적소가 있던 신 현도 도로변 땅(현재의 텐부스나하 근처)에 1948년 1월경 극장"어니 파일 국제 극장"[16]을 개관했다. 이후 주변은 상업지로서 급속히 발전해 신 현도는 "국제거리"로서 "기적의 1마일"라고 불리게 된다.

1954년에 슈리를, 57년에는 마와시를 합병하였다. 58년에는 슈리 성의 정문인 슈레이몬이 재건되었다.

1989년 슈리 성 복원을 시작, 92년에 본래의 모습으로 복원되어 개장되었다. 다만 아직도 복원중인 부분이 있다. 2003년 오키나와 도시 모노레일선이 운행을 시작했으며, 2013년에 중핵시에 지정되었다.

8. 문화 및 관광

8.1. 관광지

2000년 12월 세계유산 "류큐 왕국의 구스쿠 유적지와 관련 유산"으로 등록된 9개의 사적 가운데, 나하 시내에는 이하에 들어 있는 4곳이 존재하고 있다.
  • 슈레이 문: 슈리 성의 정문. 슈리 성이 복원되기 전까지 옛 류큐의 심볼이었다. 2천엔권 지폐에도 들어가 있다.
  • 슈리 성: 류큐 왕국의 도성으로 세계유산에 포함되어 있다.
  • 시키나엔: 류큐 왕조의 정원으로 세계유산에 포함되어 있다.
  • 타마우둔: 류큐 왕조의 무덤으로 세계유산에 포함되어 있다.
  • 소노향우타키: 슈리 성내의 신을 모시던 제단. 실제로 신의 힘이 깃들어 있는지는 모르지만 류큐 왕국의 국왕이 궁을 나설 때 안전을 기도하던 곳이다. 이곳의 석문이 세계유산에 포함되어있다.
  • 슈리킨죠정 이시타다미길: 슈리 성 근처의 마을길로, 돌로 포장되어 있다.[17]
  • 국제거리: 일명 기적의 1마일. 겐초마에역(오키나와)마키시역 사이의 구간이다. 각종 오키나와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식당들과 오키나와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라이브 하우스가 밀집되어 있다. 하이사이 오지상의 키나 쇼키치를 볼 수도 있다. 게다가 기념품가게와 특산물 판매점도 많다. 초대형 오키나와 과자 매점인 오카시고텐(御菓子御殿)도 자리잡고 있다. 돈키호테 역시 위치하고 있다. 아니메이트 나하점도 이곳에 있는데, 잘 찾아야 한다..[18] 국제거리 망고하우스 본점 라이브 카메라
    • 헤이와 거리: 국제거리에 접속하는 거리. 전 야시장에서 자연 발생적으로 형성된 일대 아케이드 거리이다.
  • 파렛트 쿠모지(パレットくもじ): 국제거리 서쪽 끝, 겐초마에역(오키나와) 바로 앞에 위치한 쇼핑몰. 문화 시설들도 여럿 들어차 있다.
    • 4층 - 나하시 역사 자료실: 1992년에 류큐 왕국 쇼씨 종가의 후손인 쇼 히로시(尚裕)가 기증한 문화재들인 '류큐 국왕 쇼가 관계 자료'(일본의 국보 역사자료 제 2번)를 비롯하여 여러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다. 소장품의 질로는 현립박물관에 지지 않지만 전시장 규모가 매우 작다는 것이 문제.
    • 6층 - 시민 갤러리
    • 9층 - 파렛트 시민극장 / 영화관
  • 오키나와 현립 박물관 ・ 미술관 : 오모로마치역 근처에 위치해 있다. 한국어 오디오 서비스가 되어있어 편리하게 관람할 수 있다.

8.2. 축제(마츠리)

  • 나하 하-리-: 오키나와 현 내 최대규모의 행사이다. 하리(ハーリー)는 아시안 게임에서 볼 수 있는 드레곤 보트와 비슷한 수상 경기로, 예로부터 풍어와 항해의 안전을 빌며 행해졌다. 매년 골든 위크에 개최되며 지역 방송국들이 생중계한다. 경기 이외에도 콘서트도 성대하게 열린다.
  • 나하 마츠리: 세계 최대 규모의 줄다리기인 나하대줄다리기(那覇大綱挽)로 유명하다. 줄의 길이가 200m, 무게만 40톤이다! 줄다리기인가 고싸움인가 행사 전날 도로 한가운데에 줄을 가져다 놓는데 줄의 굵기가 경차한대 크기다. 원래는 17세기부터 나하의 마을들이 동과 서로 편을 나누어 벌이던 축제인데 일본 제국 시절을 지나며 1935년에 중단되었다가 1971년 부활했다. 국도 제58호선 쿠모지 사거리에서 열린다. 행사날에는 노점상부터 관광객까지 엄청난 인파가 몰리지만 원한다면 직접 참가해볼수도 있다. 다만 힘 깨나 드는건 필연이니 다음날 근육통으로 고생하고 싶지 않으면 구경만 하자.
  • 오키나와 산업 마츠리: 오키나와 현 내 최대규모의 종합 산업전이다. 매년 10월에 3일간 오오노야마 공원에서 개최된다.

8.3. 종교 시설

8.3.1. 류큐신토

우타키(御嶽)는 류큐에서 전통적으로 제사를 지내던 성소(聖所)를 말한다.

8.3.2. 신토

일부는 류큐 왕국이 일본 제국에 합병되기 전에 일본 본토의 신토가 유입되어 신토의 신들을 섬긴 곳도 있다.
  • 나미노우에 궁(波の上宮): 원래는 니라이카나이[19]의 신들에게 풍요를 빌던 곳이었으나 류큐 왕국 시절에 일본 본토에서 전해진 쿠마노곤겐(熊野権現)을 모시게 되었다. 류큐팔사(琉球八社)[20]의 하나이다.
  • 오키나와현 호국신사: 1936년 초혼사(招魂社)로 건립되었다.
  • 오키 궁(沖の宮): 류큐팔사(琉球八社)의 하나.
  • 스에요시 궁(末吉宮): 류큐팔사(琉球八社)의 하나. 나하시 최강의 심령스팟

8.3.3. 불교

  • 소우겐지(崇元寺): 16세기에 지어졌던 임제종 사찰. 오키나와 전투로 파괴되었으나 일부가 남아 유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이 앞의 버스정류장에서 아무로 나미에가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 엔카쿠지(円覚寺): 15세기에 지어졌던 임제종 사찰. 조선에서 받아온 팔만대장경 인본을 보관하고 있었으나, 1609년 사츠마 번의 침략으로 소실되었다. 오키나와 전투로 파괴되었으나 현재 복원이 진행되고 있다.

8.3.4. 유교

  • 시세이뵤(至聖廟): 공자, 자사, 증자, 맹자, 안연을 배향하고 있다, 류큐 왕국은 이곳에 설치된 메이린토(明倫堂)에서 유교 경전을 교육했다. 시세이뵤는 오키나와 전투 당시 파괴되어 자리를 옮겨 다시 지었고, 시세이뵤가 원래 위치했던 자리에는 타이완에서 선물한 공자 상(像)이 세워져 있었다. 2014년에 원래의 자리에 시세이뵤가 복원되었다.

8.3.5. 기독교

  • 아사토 가톨릭 성당: 공식 이름은 "병자를 고치시는 성 마리아 교회". 오키나와에서 가장 큰 성당으로, 나하 신도심인 오모로마치역 맞은편에 위치해 있다. 오키나와 사람들에게는 스테인드 글라스가 아름다운 건축물로 알려져있다.
  • 성 안드레아 성공회 성당: 슈리 성 입구 바로 옆에 위치해 있어, 오키나와를 관광하는 기독교인들이 슈리 성을 본 후 잠시 들러 기도를 드리는 장소로 이용되기도 한다. 일본성공회의 요청에 따라 대한성공회 소속 사제[21]가 파견나가 시무를 하고 있다.

9. 교통

중심 시가지는 전후 스프롤 현상으로 충분한 도시 기반 정비가 되지 않고 무질서한 시가화가 추진되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도로가 폭 12m이하인 만성적인 교통 체증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국제거리와 기타 간선 도로의 기능을 보완하는 도로가 거의 없거나 폭이 좁은 구간이 많기 때문, 국제거리와 기타 간선 도로에 더 부담이 걸려 있다.

이들의 체증을 해결하기 위해 오키나와 도시 모노레일선(유이레일)이 개통됐다. 또 중심 시가지에서의 주차장이 부족한점 또한 개선이 시급하다.

덧붙여 오키나와 현에서의 현외 교통의 요충인 국내에서도 유수한 국제 공항인 나하 공항과, 현 내외에 항로가 집중하고 있는 나하 항이 있다.

9.1. 노선버스

오키나와 도시 모노레일선이 개업한 뒤에도 주요 공공 교통은 버스에 치우쳐 있다. 특히 중심 시가지에서의 버스 교통량이 매우 많다. 1997년 교통 센서스에 따르면 국제거리 주변이 하루 1,500-1,600대의 버스가 통과돼 교통 체증의 원인이 되고 있는데, 최근에는 국제거리의 서쪽에 있는 국도 58호를 경유하는 루트에 대한 변경이나, 나하 신도심에 신설된 역 광장 등을 기점으로 하는 경로로 변경했기에 당시보다 약 20%가량 줄었다.

노선 버스는 모두 민간 기업에 의한 운행되고 있어, 시내 노선을 갖는 것은 밑의 4개업자이다(일부 장거리 노선은 제외). 주로 시내 교통에 제공하는 노선(균일 운임)은 대체로 나하 버스가 시외에서 비교적 장거리를 운행하는 노선은 다른 3곳이 각각 운행하고 있다.

9.2. 공항

나하 공항을 통해 오키나와나 일본 각지를 비롯해 아시아 각국과 연결된다. 한국에서는 2016년 현재 아시아나항공, 진에어, 티웨이항공, 에어서울, 이스타항공, 제주항공, 대한항공, 피치항공이 인천에서 출발하며 아시아나항공진에어, 제주항공은 김해출발편도 있다.

2019년 3월에 국제선 청사와 국내선 청사가 통합되었고 국내선쪽에 몰려있던 각종 편의시설이 일부 새로 생긴 건물로 옮겨져서 국제선 이용객들이 좀 편해졌다.

9.3. 철도

다이쇼 시대오키나와 현영 철도요나바루선 카데나선, 이토만선. 오키나와전기의 노면전차가 시내를 달리고, 이토만 마차 궤도도 시내를 달리고 있었지만, 쇼와에 들어서자 오키나와 전기의 노면 전차와 이토만 마차 궤도가 버스와의 경쟁에 밀려 폐지되고 남은 오키나와 현영 철도도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에 운용을 정지. 그 후의 오키나와 전투에서 파괴되어, 전후도 미군정 하의 오키나와에서 복구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인구 집중으로 교통 혼잡을 겪던 나하에서 모노레일 건설을 시작, 2003년 8월 10일 전후 최초의 궤도계 교통수단으로 오키나와 도시 모노레일선(유이레일)이 개업하여 현재 오키나와 유일의 궤도 교통수단이 되었다. 도시 항목보다 모노레일 전체 항목이 먼저 완성되었다

일본내의 철도 노선이 없는 도시중 가장 인구가 많다. 인구 20만명 이상의 특별구 및 시 속에서 JR그룹 역이 없는 것은 나하시 그리고 사이타마현 카스카베시, 소카시, 도쿄도 분쿄구·세타가야구네리마구, 군마현 오타시, 가나가와현 야마토시, 아츠기시, 아이치현 토요타시, 오사카부 토요나카시가 있다. 이들은 분쿄구 야마토시를 제외한 JR의 철도 노선 자체가 통하지 않는 것도 공통된다.

여담으로, 요기공원[22]에 증기기관차가 한대 전시되어 있는데 아쉽게도 과거의 오키나와를 달리던 건 아니고 전쟁 후 오키나와의 일본 복귀 직후 '증기기관차를 한번도 보지 못한 오키나와 어린이들을 위해' 큐슈에서 가져온 증기기관차라고.

9.4. 도로

9.4.1. 국도

  • 오키나와 자동차도: 나하 인터체인지
  • 국도 제58호선: 국제거리 맞은 편에 위치한 도로로, 오키나와의 주요 기업 본사들과 언론사들이 위치해 있다. 나하 마츠리 때 줄다리기를 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 오키나와서해안도로(나하 서도로)
    • 나하 서도로 (나하항 해저침매터널:일명"나하우미소라터널")
  • 나하 동바이패스
  • 하에바루 바이패스
  • 국도 제330호선
  • 국도 제331호선
  • 오로쿠 바이패스
  • 국도 제332호선
  • 국도 제390호선
  • 나하 공항 자동차 도로(국도 506호 오로쿠도로 예정선)
  • 국도 제507호선
  • 츠카잔 바이패스

9.4.2. 현도

  • 오키나와 지방 도로 82호 나하 이토만
  • 오키나와 지방 도로 7호 오노야마 코메스 선
  • 오키나와 지방 도로 29호 나하 기타나카구스쿠
  • 나하 인터 액서스 도로(지역-규격 도로 계획 중)
  • 오키나와 지방 도로 11호선
  • 오키나와 지방 도로 28호선
  • 오키나와 지방 도로 39호선: 국제거리가 이 일부이다.
  • 오키나와 지방 도로 42호선
  • 오키나와 지방 도로 43호선
  • 오키나와 지방 도로 46호선
  • 오키나와 지방 도로 47호선
  • 오키나와 지방 도로 49호선
  • 오키나와 지방 도로 50호선
  • 오키나와 지방 도로 62호선
  • 오키나와 지방 도로 153호선
  • 오키나와 지방 도로 155호선
  • 오키나와 지방 도로 221호 나하 시내 환상(순환)선
  • 오키나와 지방 도로 222호 마치 쿠모지선
  • 오키나와 지방 도로 231호 나하 공항
  • 오키나와 지방 도로 241호 기노완 하에바루
  • 오키나와 지방 도로 251호 나하 기노완

9.4.3. 자전거 도로

  • 오키나와 지방 도로 236호 타마구스쿠 나하 자전거도선("오키나와의 길 자전거도", 예정)

10. 유명 출신자

10.1. 가수

10.2. 예능

10.3. 예술

10.4. 스포츠

10.5. 정치

11. 오키나와어 지명

한자 일본어 오키나와어
那覇 나하 なは 나화 なふぁ, なーふぁ
国場 코쿠바 こくば 쿠쿠바 くくば
安謝 아쟈 あじゃ 아쟈 あじゃ
真和志 마와시 まわし 마지 まーじ
首里 슈리 しゅり 수이 すい
小禄 오로쿠 おろく 우루쿠 うるく
토마리 とまり 투마이 とぅまい
那覇四町 나하욘마치 なはよんまち 나화유마치 なーふぁゆまち
西村 니시 にし 이리 いり
東村 히가시 ひがし 아가리 あがり
若狭町 와카사마치 わかさまち 와카사마츄 わかさまちゅー
泉崎 이즈미자키 いずみざき 이쥰쟈치 いじゅんじゃち
久米村 쿠메무라 くめむら 쿠닌다 くにんだ
三重城 미에구스쿠 みえぐすく 미이구시쿠 みいぐしく
屋良座森城 야라자모리구스쿠 やらざもりぐすく 야라자무이구시쿠 やらざむいぐしく
垣花 카키하나 かきはな 카치누하나 かちぬはな
久茂地 쿠모지 くもじ 쿠무지 くむじ
壺屋 츠보야 つぼや 치부야 ちぶや
首里三箇 슈리산카 しゅりさんか 수이산카 すいさんか
鳥堀 토리호리 とりほり 툰쥬무이 とぅんじゅむい
崎山 사키야마 さきやま 사치야마 さちやま
赤田 아카타 あかた 아카타 あかた

12. 관련 문서


[1] 추계인구 2020년 1월 1일 기준[2] 요즘에는 일본 표준 자형대로 적지만 예전에는 조금 다르게 적었다고 한다. 과거에는 那 자의 경우, 왼쪽 부분을 刀에다 가로 선 두 개를 그을 때, 두 가로 선이 刀의 오른쪽으로 조금 삐져나오게 썼고#, 覇 자의 경우, 윗 부분을 覀의 형태가 아니라 襾처럼 아래의 가로선을 완전히 닫지 않은 형태로 썼다고 한다#. 현재는 일본 표준 자형으로 바꿔서 那의 刀 부분에 가로선이 오른쪽으로 삐져나오지 않게 쓰고#, 覇의 윗 부분은 覀로 쓴다#.[3] '나' 부분을 길게 발음.[4] '나' 부분을 짧게 발음.[5] 두번째는 후쿠오카현카스가시이다.[6] 열대기후가 아닌 이유는 아슬아슬하게 최한월의 평균기온이 18도를 밑돌기 때문이다. 1월 17.0도 2월 17.1도로 2개월이 열대기후기준에 약간 못미친다.[7] 역대 최저 기온이 1918년 2월 20일의 4.9도이며, 2016년 1월 24일 동아시아 한파때 기록한 온도는 6.1도로 역대 7위에 해당함[8] 오모로마치 일대. 미군이 주둔했다가 반환하여 재개발된 지역.[9] 당시 오키나와 현은 미국이 통치했다.[10] 그 전까지는 나하가 실질적으로 현의 '수도'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공식화하진 않았던 것 같다.[11] 마산합포구, 마산회원구.[12] 佐敷, 지금의 난죠 시에 위치[13] 구스쿠(城)을 다스리던 오키나와의 호족[14] 니시(西村), 히가시(東村), 와카사마치(若狭町), 이즈미자키(泉崎)[15] 여기서 삼십육성은 서른 여섯 가문이 아니라 그냥 많은 가문들이라는 뜻이다.[16] 어니 파일(Ernest Taylor "Ernie" Pyle)은 미군의 종군기자로 당시 두려움에 떨던 병사들의 심리 상담을 해주며 정신적 지주가 되어주었다. 오키나와 전투 당시 저격당해 사망하였다. 어니 파일 국제 극장은 그의 이름을 딴 것.[17] 갈 때는 운동화 추천. 길이 장난 아니게 험하다. 비오는 날에는 미끄러우니 안 가는걸 추천... 혹시 차를 슈리 성 주차장에 주차했으면 다 내려와서 택시타고 올라가는 게 좋다...[18] 최근 포장마차촌(야타이무라)이 생겼다. 입맛에 따라 추천할 만 하다[19] ニライカナイ, 오키나와에서 바다 건너편 멀리에 있다고 전해지는 풍요로운 낙원. 신들과 망자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20] 류큐 왕국에 있었던 8개의 주요한 신사[21] 강용구 페트릭 사제.[22] 매년 벚꽃축제가 열리기도 한다[23] 주일미군 아버지와 현지인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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