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무레나 라틴어: Lucius Licinius Murena | |
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출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사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지위 | 노빌레스 |
국가 | 로마 공화국 |
가족 |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무레나(증조부)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무레나(조부)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무레나(아버지) 아울루스 테렌티우스 바로 무레나(아들?) |
직업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62년 |
전임 |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가이우스 안토니우스 히브리다 |
동기 | 데키무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
후임 | 마르쿠스 푸피우스 피소 프루기 칼푸르니아누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니게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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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2. 생애
저명한 노빌레스 가문인 리키니우스 씨족의 일원이다. 증조부이며 무레나 지파[1] 첫번째 조상인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무레나는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에 따르면 모종의 시기에 법무관을 역임했으며, 기원전 146년 아카이아 전쟁 이후 아카이아 동맹을 해체하고 그리스를 속주화하기 위한 정책을 고안하고자 파견된 10명의 특사 중 한 명이었다. 또한 조부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무레나 역시 기원전 100년에 법무관을 맡았다. 아버지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무레나는 기원전 88년 법무관을 역임했으며, 제2차 미트리다테스 전쟁에서 아시아 총독을 맡아 폰토스 왕국의 미트리다테스 6세와 대적했지만 패배했다.기원전 75년경 재무관으로서 정치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 휘하 레가투스(Legatus, 군단장)으로서 제3차 미트리다테스 전쟁에 참전했다. 기원전 72년, 루쿨루스는 그에게 2개 군단을 맡겨 아미스 시를 포위하게 했다. 아미스 시는 수 년간 항전을 이어갔지만, 1년만에 루쿨루스가 돌아오자 항복했다. 기원전 69년 티그라노케르타 전투에서 아르메니아 왕국의 티그라네스 2세를 격파히고 티그라노게르타를 포위한 루쿨루스는 티그라네스 2세가 새 병력을 이끌고 접근하자 이를 물리치러 진군하면서 그에게 6,000명 가량의 병력을 맡겨 포위를 이어가게 했다. 루쿨루스는 티그라노케르타 인근의 바트만수 강 주변에서 티그라네스 2세를 또다시 격파했고, 티그라노케르타 수비대는 전의를 상실하고 항복했다.
기원전 67년 로마로 돌아온 그는 루쿨루스가 점령한 폰토스 왕국을 로마의 속주로 재편성하기 위한 10인 위원회에 포함되었다. 그러나 루쿨루스가 병사들의 반란으로 인해 군사 활동을 더 이상 이어갈 수 없던 데다 미트리다테스 6세가 반격을 가해 빼앗겼던 영토를 회복하면서 무산되었다. 그 후 무레나는 기원전 65년 로마 시민을 상대하는 도시 법무관이 되었고, 임기가 만료된 후 갈리아 나르보넨시스의 총독으로 부임했다. 기원전 63년 초 로마로 돌아온 후 곧바로 집정관 선거에 뛰어들었다.
당시 집정관 선거에 출마한 이들은 그 외에도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루푸스, 데키무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루키우스 세르기우스 카틸리나였다. 선거 결과 실라누스가 1등을 차지했고 무레나는 2등을 차지해 집정관에 당선되었다. 그런데 무레나는 다른 후보인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루푸스로부터 유권자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고발되어 법정에 소환되었다. 만약 그가 유죄 판결을 받고 당선이 무효가 된다면, 3등이었던 카틸리나가 집정관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렇게 되면 카틸리나가 밀어붙이는 모든 채무자의 빚을 전액 탕감한다는 과격한 정책이 통과되어 로마가 혼란에 빠질 거라고 우려한 현직 집정관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는 무레나의 변호인을 자처했다. 루푸스는 이에 맞서 소 카토 등의 지원을 받았지만, 무레나는 키케로 덕분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기원전 63년 12월 5일, 무레나는 로마에서 체포된 카틸리나 음모 공모자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원로원 회의에 참석해 즉결 처형을 지지했다. 이후 기원전 62년 집정관에 취임한 그는 동료 집정관 실라누스와 함께 모든 입법 행위의 사본을 재무부에 보관하는 법을 채택했다.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
일부 학자들은 파스티 카피톨리니에 언급된 기원전 23년 집정관 아울루스 테렌티우스 바로 무레나가 그의 아들이라는 가설을 제기하지만 사실 여부는 불명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