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우스 사이니우스 라틴어: Lucius Saenius | |
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출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사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지위 | 노부스 호모(Novus Homo: 신참자) |
국가 | 로마 공화국 |
가족 | 루키우스 사이니우스(아버지) |
직업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30년 |
전임 | 옥타비아누스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
동기 | 옥타비아누스 |
후임 | 옥타비아누스 섹스투스 아풀레이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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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2. 생애
플레브스 가문인 사이니우스 씨족의 일원이다. 파스티 카피톨리니에 따르면, 아버지의 프라이노멘 역시 루키우스였다고 한다. 일부 학자들은 기원전 63년 카틸리나 음모 사건 때 피에솔레 시에서 카틸리나 추종자들의 봉기가 벌어질 예정이라는 서신을 받고 당해 집정관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에게 알린 사이니우스가 그의 아버지라고 추정한다. 가이우스 살루스티우스 크리스푸스가 카틸리나 음모 사건에 대해 다룬 저서에서 나온 이 일화는 사이니우스 가문이 피에솔레 또는 에트루리아 지역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암시한다.그에 관해 남아있는 공식기록은 기원전 30년 11월 1일부터 2달동안 보결 집정관으로서 옥타비아누스와 함께 했으며, 옥타비아누스가 평민 가족들에게 파트리키를 부여할 권리를 인정하는 <세이니우스 법(lex Saenia)>을 반포했다는 것뿐이다. 아피아노스에 따르면, 지난날 제2차 삼두정치의 일원이었지만 이 당시에는 완전히 몰락했던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의 아들 마르쿠스는 옥타비아누스를 음해하려는 음모를 꾸몄다가 옥타비아누스의 측근인 가이우스 킬리니우스 마이케나스에게 발각되어 처형되었다. 이때 레피두스의 아내 유니아 세쿤다는 아들을 숨겨준 혐의로 체포된 뒤 그리스에 머물고 있는 옥타비아누스에게 끌려갈 위기에 놓였다. 당시 시골에 은둔 중이었던 레피두스는 기원전 30년 집정관 '발비누스'를 찾아가 다음과 같이 청원했다.
"저는 당신을 숙청 명단에 올리지 않았습니다. 이제 저는 명단에 올랐던 자들보다 더욱 낮은 위치에 있습니다. 인간 운명의 변천사를 보시고, 지금 당신 앞에 탄원자로 서 있는 저를 바라봐주십시오..."
발비누스는 카이사르의 내전 당시 폼페이우스 편에 섰지만 살아남은 뒤 옥타비아누스의 추종자가 된 전력이 있었다. 그는 레피두스의 이 말을 듣고 깊은 감명을 받고 레피두스의 아내가 그리스로 끌려가는 것을 면하게 해줬다고 한다. 일부 학자들은 루키우스 사이니우스의 코그노멘이 발비누스였을 거라고 추정한다. 다만 기원전 30년 집정관 '발비누스'는 아피아노스의 기록 외에는 교차검증되지 않기 때문에 이 일화의 사실 여부는 불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