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6-08-15 22:41:03

에드바르트 뭉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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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붓_기본.png파일:붓_다크.png 아르데코: 타마라 드 렘피카 · 에밀 자크 룰만 · 아돌프 무롱 카상드르
파일:붓_기본.png파일:붓_다크.png 초현실주의: 살바도르 달리 · 프리다 칼로 · 르네 마그리트 · 호안 미로 · 막스 에른스트 · 조르조 데 키리코 · 만 레이 · 앙드레 마송 · 이브 탕기 · 알베르토 자코메티 · 마르크 샤갈
파일:붓_기본.png파일:붓_다크.png 더 스테일: 헤리트 리트펠트 · 피트 몬드리안
파일:붓_기본.png파일:붓_다크.png 바우하우스: 발터 그로피우스 · 바실리 칸딘스키 · 파울 클레 · 조셉 알버스 · 오스카르 슐레머 · 마르셀 브로이어
파일:붓_기본.png파일:붓_다크.png 러시아 아방가르드: 엘 리시츠키 · 바실리 칸딘스키 · 블라디미르 타틀린 · 알렉산드르 로드첸코 · 류보프 포포바 · 바르바라 스테파노바
파일:붓_기본.png파일:붓_다크.png 러시아 구성주의 건축: 모이세이 긴즈부르크 · 콘스탄틴 멜니코프 · 이반 레오니도프 · 베스닌 형제
파일:붓_기본.png파일:붓_다크.png 모더니즘 건축: 르 코르뷔지에 ·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 미스 반 데어 로에 · 발터 그로피우스
모더니즘 외

파일:붓_기본.png파일:붓_다크.png 라파엘 전파: 존 에버렛 밀레이 ·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 윌리엄 홀먼 헌트
파일:붓_기본.png파일:붓_다크.png 미술공예운동: 윌리엄 모리스 · 칼 라르손
파일:붓_기본.png파일:붓_다크.png 아르누보: 안토니 가우디 · 알폰스 무하 · 구스타프 클림트 · 빅토르 오르타
파일:붓_기본.png파일:붓_다크.png 상징주의: 귀스타브 모로 · 미칼로유스 콘스탄티나스 칠리오니스 · 오딜롱 르동 · 피에르 퓌뷔 드 샤반 · 앙리 팡탱라투르 · 가스통 뷔시에르 · 펠리시앵 롭스 · 에드바르트 뭉크 · 구스타프 클림트
파일:붓_기본.png파일:붓_다크.png 나치 미술: 아돌프 지글러 · 아르노 브레커
파일:붓_기본.png파일:붓_다크.png 사회주의 리얼리즘: 알렉산드르 데이네카 · 아이작 브로드스키 · 세라피마 량기나 · 베라 무히나 · 변월룡 · 벤 샨 · 카지미르 말레비치
파일:붓_기본.png파일:붓_다크.png 스탈린 건축: 보리스 이오판 · 레프 루드네프 · 드미트리 체슐린 · 알렉세이 슈추세프 · 니콜라이 라도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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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붓_기본.png파일:붓_다크.png 비디오 아트: 글립 비체스 · 게리 힐 · 백남준 · 박현기 · 빌 비올라 · 마츠모토 토시오 · 피터 캠퍼스 · 조앤 조나스
파일:붓_기본.png파일:붓_다크.png 개념미술: 조셉 코수스 · 솔 르윗 · 온 카와라 · 소피 칼 ·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
파일:붓_기본.png파일:붓_다크.png 대지예술: 로버트 스미스슨 ·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 · 마이클 하이저 · 이사무 노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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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붓_기본.png파일:붓_다크.png 서정추상: 제라드 슈나이더 · 피에르 술라주 · 장 드고텍스 · 장폴 리오펠 · 시몬 한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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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에드바르트 뭉크[1]
Edvard Munch
파일:Moonk.jpg
출생 1863년 12월 12일
스웨덴-노르웨이 연합 왕국 뢰텐시 오달스브루크동
(현 노르웨이 인란데주 뢰텐시 오달스브루크동)
사망 1944년 1월 23일 (향년 80세)
노르웨이 국가판무관부 오슬로시 위을레른구 스쾨옌동
(현 노르웨이 아케르스후스오슬로시 위을레른구 스쾨옌동)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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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화가
사조 표현주의, 상징주의
신체 185cm
가족 페테르 안드레아스 뭉크(큰아버지)
묘지 보르 프렐세스 그라불룬 묘지

1. 개요2. 일생3. 기타

1. 개요

파일:뭉크 절규.jpg 파일:뭉크_죽음과소녀.jpg
절규[2] 죽음과 소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활동한 노르웨이표현주의 화가이자, 그림 그리기와 인쇄법을 사용한 작품으로 유명한 화가다. 그는 주로 심볼리즘과 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아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적 언어를 개발했고, 독창적이고 특별한 작품을 통해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그의 예술적 감성은 현대 미술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노르웨이 뿐만 아니라 국제 미술사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어릴 적 어머니와 누이의 죽음, 그리고 연속된 사랑의 실패를 겪은 뭉크는 당대 유행하던 풍경화를 위시한 자연주의의 경향에서 벗어나 인간의 삶과 죽음의 문제, 그리고 존재의 근원에 존재하는 고독, 질투, 불안 등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표현주의 양식을 주로 채택하였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은 전반적으로 우울하거나 신경증적인, 불안의 느낌이 나는 우중충한 작품이 대부분이나, 《태양》이라는 작품처럼 밝고 화사한 작품도 그린 바 있다.

지금도 무척 유명한 화가지만 생전에 두 지역의 넓은 땅을 구매해서 거기서 살며 그림을 그렸을 정도로 돈을 많이 벌었고 노르웨이 왕실에게 기사 작위를 받을 정도로 인정받은 화가였다.

2. 일생

뭉크는 군의관 아버지와 예술적 소양을 갖춘 어머니 사이에서 5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는 본인 스스로가 일생에서 죽음과 함께 있었다라는 말을 했을 정도로 어린 시절부터 불운이 몰아쳤다. 그는 5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사랑하는 어머니가 폐결핵으로, 14살에는 어머니를 대신해 줬던 큰 누나 소피에마저 동일한 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걸 목격[3]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동생 라우라는 정신병을 앓게 된다.[4] 설상가상으로 가족들의 연이은 죽음으로 인한 충격을 이기지 못한 아버지[5]루터교에 의존하다 못해 광신도가 돼버려 아이들에게 공포 소설을 읽어주고 종교적 행위를 강요하는 등 정신적 학대를 아이들에게 일삼았다. 이런 불운한 가정사와 유년시절은 큰 트라우마가 되어 뭉크는 평생 동안 자살 충동과 불안, 강박장애로 고생했었다.

그러던 도중 뭉크는 자신을 돌봐준 이모를 통해 그림을 접하게 되고, 자신의 감정을 캔버스에 담아내며 어두운 현실을 잊고 견뎌내곤 했다. 18살에 아버지의 강요로 기술학교를 가게 되었지만 병약한 체질 탓에 학교를 자주 결석했다. 또, 그림에 대한 열망을 끊을 수 없던 그는 기술학교를 그만두고 국립 왕실 미술학교를 가게 된다. 당시 뭉크는 미술에 탁월한 재능을 보여 학생 시절 개인전을 열고 프랑스 유학생으로 선발되기까지 했다.

이때, 프랑스 유학 시절 뭉크는 후기인상주의, 특히 빈센트 반 고흐의 화풍[6]에 큰 영향을 받고 자신의 화풍을 자신의 마음을 대변하는 표현주의으로 노선을 정하게 된다. 이후, 한 화가의 추천으로 독일로 가서 첫 개인전을 열지만 당시 독일 화풍과 정반대[7]이다 못해 우중충한 분위기의 뭉크 그림은 사람들에게 여러 혹평을 받는 걸 넘어, 전시회도 도중 중단되는 여러 수모를 겪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의 내면을 그려내는 뭉크의 화풍은 큰 찬사를 받게 되며, 이후에 노르웨이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까지 받는 등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뭉크는 말년까지 재산이 많았는데, 적어도 이 시점 이후로는 죽을 때까지 먹고 살 걱정은 안 하고 산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이런 성공과 별개로 뭉크의 연애사는 그의 그림들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만큼 우중충했으며, 뭉크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그러나, 그에게도 여자와의 관계가 아예 전무했던 건 아니었으며, 밀로 탈로, 다그니 유엘, 툴라 라르센이라는 세 여자와 각별한 인연이 있었다. 다만, 셋 중 어느 누구와도 제대로 이어지지 못했고, 오히려 이 사랑으로 큰 트라우마를 얻게 된다.

뭉크의 첫사랑인 밀리 헤이베르그는 해군 장교의 아내였으며, 당시 신여성의 상징이자 사교계의 유명인사였다. 팜므파탈의 기질이 다분했던 유부녀이나 매력적인 여성인 밀리에 푹 빠진 뭉크는 그녀와 6년간 밀회[8]를 한다.하지만 밀리에게, 뭉크는 그저 놀이대상 이상 이하도 아니었으며, 결국 남편과 이혼 후 바로 다른 남자와 재혼해 뭉크에게 상처를 주고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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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사랑에게 큰 상처를 받은 뭉크는 이후 여성에 대한 혐오와 두려움을 가지게 되며, 이때 탄생한 작품이 위에 있는 <흡혈귀>[9] 또는 <사랑과 고통>이라고 불리는 4점의 작품이다.

이후 뭉크는 베를린에서 살다가 자신의 소꿉친구이자 먼 친척인 다그니 유엘(Dagny Juel)을 만나 교제한다. 그러나, 다그니는 뭉크를 포함한 여러 예술가들[10]의 뮤즈였고, 하필이면 뭉크의 친구이자 극작가 겸 시인인 스타니스와프 프시비셰프스키(Stanisław Przybyszewski)와 교재하여 삼각관계가 형성된다. 결국, 다그니는 1893년 프시비셰프스키와 결혼식을 올리게 되고, 뭉크는 배신감과 분노에 사로잡혀 '이별', '질투'를 그리고, 자신을 떠나간 다그니를 모델로 한 '마돈나'를 그리게 된다.

한편, 다그니는 34살 젊은 나이에 극성팬의 총을 맞고 사망한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는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난 남편 프시비셰프스키가 극성팬이 자기 아내에게 접근하도록 하여 살인을 사주했다는 설이 돌기도 했다.[11] 이는 프시비셰프스키의 막장 사생활에서 비롯된 루머였다. 다그니는 언론계에 종사하면서 유능한 예술가들을 소개하는 일을 했으며, 남편이 외도를 일삼고 술을 퍼 마시며 경제적으로 힘들게 했을 때도 남편의 문학 세계를 알리려고 노력하는 등, 나름 아내로서 남편에게 헌신했음에도 결국 배신당했기에 저런 뒷말이 나오게 된 것이다.[12] 반면, 다그니가 낳은 자녀들은 다그니의 언니인 Gudrun과 형부인 Wilhelm Westrup에게 입양돼 비교적 순탄하게 성장했다. 아들은 외교관이 되었고, 딸은 가정주부로 평범하게 살았다.]

비록 자신을 떠났지만, 사랑했던 여인의 죽음에 상심한 뭉크는 다그니의 업적을 기리는 정성 어린 부고 기사를 남겼다. 링크 뭉크가 쓴 부고 기사로 인해, 다그니는 선정적인 가십의 주인공이 아니라, 뭉크에게 영감을 준 뮤즈로 남게 되었다.

그 후 한동안 좌절에 빠졌던 뭉크는 툴라 라르센(Tulla Larsen)이란 여자와 교제하게 된다. 그동안 뭉크를 떠나 상처를 주었던 여자들과 달리, 툴라의 경우, 그보다 4살 더 연상인 연상녀로서 예술 방면에 해박하고 성격도 적극적이어서 뭉크와 깊은 관계를 지녔지만, 그 사랑이 너무 지나친 것이 문제가 되었다. 그녀는 뭉크에게 집착하기 시작했고, 결혼을 요구했다. 점점 툴라를 멀리하는 뭉크에게[13] 툴라는 자살하겠다고 협박한다.

파일:Munch_death_of_marat_I_1907.jpg
뭉크는 결국 툴라에게로 돌아와 툴라를 말렸는데, 하필이면 이때 총이 발사되면서 뭉크의 왼쪽 3번째 손가락(중지)이 관통당하는 사태가 생기고, 뭉크는 결국 영영 왼손의 중지를 잃고 말았다고 전해진다. 다만, 뭉크는 총격 사건에 대해 함구했기 때문에 알려진 것처럼 툴라의 자살을 말리려다가 벌어진 일인지, 뭉크가 자해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아서 사건 경위는 여전히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14] 이 일을 겪은 후 뭉크가 그린 그림이 '마라의 죽음'이다.[15] 그래놓고 라르센은 3주 뒤 다른 화가와 결혼했다.

툴라와의 결별 이후, 뭉크는 과도한 음주, 싸움 등을 하다 보니 불안 증세가 더욱 심해졌고, 거기에 더해 환각 증세까지 얻게 된다. 결국, 뭉크는 야콥슨이란 의사의 병원에 가서 8개월 동안 요양 치료를 받았는데, 이때의 경험 덕분인지 요양 치료 시기 이후의 뭉크의 그림에서는 특유의 신경증 + 비관적인 느낌이 줄어들고 색채가 좀 더 밝고 다양해졌다고 한다. 이때 그린 그림이 오슬로 대학교 100주년을 기념으로 그려진 "태양"[16]이란 작품이다.[17]

이후 뭉크는 그림을 그려 번 돈으로 두 지역(스퀘옌과 에킬리라는 지역)의 넓은 땅을 사서 그곳에서 풍경화나 자화상 등을 주로 그리며 20년을 살았다. 또 대량의 판화 작품도 제작했다고 하며, 자기 작품에 집착해서 한 작품을 팔고 나면 같은 소재로 작품을 또 그리는 일을 반복해서 작품의 숫자가 많아졌고,[18] 현재의 뭉크 미술관이 그의 전 작품을 소장할 수 있게 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그는 1944년 1월 23일에 사망했는데, 나치에 의해 퇴폐미술로 지정된 자기 작품이 파괴될 것을 우려해서[19] 유언으로 자기의 전 작품을 시에 기증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여러 정신 질환을 앓아와서 몸이 건강하지 못했던 데에다 때때로 과음까지 하며 몸을 망쳤던 것에 비해 대단히 장수했는데, 향년 80세로 당시에는 웬만큼 건강한 남성도 80세를 넘기는 경우가 드물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의외인 부분.[20]

3. 기타

그가 기증한 작품들만 해도 엄청난 다작왕이기도 하다.
  • 유화 약 1,100여 점
  • 판화 약 18,000여 점
  • 드로잉 + 수채화 약 4,500점
  • 조각 6점
  • 그 외 92권의 스케치북과 편지, 다량의 석판 등

이 정도. 아마도 그가 80세라는 긴 세월을 살면서 계속 화가 일을 해온 것도 있어서 그의 손에 제작된 작품도 많았고 뭉크는 워낙 자신이 그린 그림에 대한 애착심[21]이 커서 팔린 그림을 또다시 그리곤 했었다. 당장 대표작인 절규는 30개의 버전이 있으며, 2012년 소더비 경매장에서 1억 1,990만 달러라는 최고가를 경신한 절규는 파스텔 버전이었다.

뭉크의 대표작 중 하나는 "절규"(The Scream)로, 이 작품은 1893년에 제작되었다. "절규"는 뭉크의 불안과 고통을 표현한 작품으로, 그의 예술적 성취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이 작품은 그의 삶과 작품에서 고요한 테마와 대조적으로 강렬한 감정을 담고 있다. 또한 절규 외에 "사랑의 새벽"(The Dance of Life), "포함된 여인"(Madonna), "생명의 나무"(The Tree of Life) 등의 작품으로 유명하며, 그의 작품은 종종 사람 간의 관계, 죽음, 사랑, 고통 등 인간의 복잡한 감정과 삶의 주제를 다뤘다.

금발이 많은 북유럽(노르웨이) 혈통임에도 불구하고 어두운 색 머리이다. 사실 북유럽인은 천연 금발로 유명하지만 염색한 금발도 있고[22] 흑발이나 어두운 색의 머리도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23]. 아니면 어릴 적 금발이었다가 크면서 어두운 색으로 변했을 확률도 있다.
[1] 노르웨이어 표기법에서 Edvard는 '에드바르'로 예시로 들고 있으나 실제로는 d가 묵음이 아니라서 '에드바르트'로 발음된다.[2] 뭉크는 몰라도 《절규》 그림은 어디서 한 번 봤다고 할 정도로 매우 잘 알려진, 그의 대표작 중의 대표작이다. 그래서인지 저 그림은 유독 패러디도 많다.[3] 당시 이때 병든 누나를 간호하고 집안일을 이모가 대신했으며, 이런 모습을 그려낸 그림이 바로 "병든 소녀"와 "병실에서의 죽음"이다.[4] 정면을 응시한 자세로 가만히 앉아 있거나 길거리에서 잠을 자는가 하면, 망상과 환영에도 시달렸다고 한 것으로 보아, 조현병을 앓았던 것으로 추정된다.[5] 이후 부친은 파리 유학 시절 뇌졸중으로 사망하며 이때의 슬픔을 그려낸 작품이 "생클루의 밤"이다.[6] 생전에 존경하는 화가가 고흐라고 말할 정도로 좋아했으며, 실제로 고흐의 대표작인 "별이 빛나는 밤"를 오마주해서 6점을 그렸다.[7] 리얼리즘에서 벗어나 후기인상주의, 야수파, 큐비즘 등 다양한 화풍이 등장한 프랑스와 다르게, 독일사실주의 화풍이 주목받는 등 미술 발전이 다소 더뎠던 지역이었다.[8] 실제로 뭉크가 만난 여성들을 모델로 한 그림 중 밀리와 관련된 작품들이 많으며, 뭉크는 그녀와의 만남에서 중독과 같은 강렬한 경험을 했다고 회상했다.[9] 뭉크의 지인이 이 그림을 보고 남성의 피를 흡혈하는 여성을 그렸다고 보아 흡혈귀란 이름이 붙어졌다. <벌거벗은 세계사>에선 여성이 남성의 피를 흡혈하는 모습을 통해 여성은 쾌락과 동시에 고통, 공포을 주는 존재라는 뭉크의 생각을 전달하려는 것이라 설명되었다.[10] 뭉크에게는 함께 어울리던 친구 둘이 있었는데 뭉크를 포함한 세 명 모두 유엘에게 반했다고 한다.[11] 링크[12] 프시비셰프스키는 다그니와 결혼하기 전 마르타와 동거하여 두 아이를 두었으나, 마르타를 버리고 다그니와 결혼했고, 다그니와 혼인한 후에도 마르타와 두 집 살림을 했다. 결국, 마르타는 자살했는데, 프시비셰프스키는 마르타 소생 아이를 다그니에게 맡기려다 거절당하자, 아이들이 여러 집을 떠돌게 만들었다. 마르타가 자살한 후에도 정신을 못 차리고 여러 여성과 바람을 피워 결국은 참다 못한 다그니가 맞바람을 피우게 만들었고, 다그니가 살해당한 후에는 유부녀와 간통해 결혼했는데, 죽기 직전까지 알코올 의존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자식들의 삶도 다그니 소생 자녀들을 제외하면, 마약 중독자로 전락하는 등 대개 불우했다. 충격적인 것은, 자식을 마약 중독으로 끌어들인 장본인이 프시비셰프스키였다는 것이다.링크[13] 이는 뭉크가 어릴 적 불우한 가정 환경과 두 번의 사랑 실패로 결혼과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있었던 것도 있지만, 툴라가 사람을 시켜 뭉크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받는 등 스토커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14] 링크[15]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린 동명의 그림의 제목을 빌린 그림으로, 피를 낭자하게 흘리며 침대에 쓰러져있는 뭉크와 전라로 관객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툴라가 그려진 그림이다. 《살인녀》, 《마라의 죽음》 등이 결별 이후의 툴라에 대한 뭉크의 감정을 표현한 그림이라고 한다.[16]링크에서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오슬로 대학교 강당을 3D 또는 VR로 감상할 수 있다. 상당한 고화질로 매우 볼 만하니 작품에 관심이 있다면 꼭 한번 들어가 보는 걸 추천한다.[17] 참고로, 노르웨이 사람들은 뭉크의 그림 중 절규보다 태양을 더 좋아한다고 한다.[18] 그래도 완전히 똑같이 그리진 않고 유화를 판화로 그린다던가 파스텔로 그린다던가 조금씩 바꿔서 그리긴 했다. 한 정신과 의사는 뭉크의 이런 행동을 불안과 공포를 해소하기 위한 '승화' 방어기제가 작용한 것으로 해석했다.[19] 히틀러는 과거 미술 지망생 때 미대에 떨어진 것에 대한 질투심으로 뭉크, 피카소 같은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들을 부정적으로 여겼다. 게다가, 뭉크의 생애 막바지인 1940년대 전반기의 노르웨이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에게 점령당한 상태였으며, 뭉크는 노르웨이나치 점령을 벗어나는 것을 못 본 채 세상을 떠났다.[20] 다만, 요양 치료를 받을 때 금주와 금연을 했던 것이 결과적으로는 전화위복이 되었다. 셀럽병사의 비밀 뭉크 편에서도 술을 끊고 제대로 식사를 하면서 규칙적인 생활을 한 덕분에 건강이 좋아졌다고 설명했다.[21] 때론 그림을 산 구매자에게 부탁해 잠시 동안 빌리기도 했었다.[22] 예시로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 노란색으로 물들인 모히칸 스타일의 머리를 하고 나온 크로스컨트리 스키 선수 요르헤임 에릭센이 있다.[23] 사실 노르웨이인 등의 현대 유럽인들의 조상인 원시 인도유럽인이나 원시 우랄인이 들어오기 이전의 유럽 선주민들인 초기 유럽 농경민이나 서부 수렵채집민은 피부색이 하얗든 검든 간에 흑발 아니면 갈색 머리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당연히 현대에도 생각보다 금발은 그리 많은 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