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5 01:22:01

샘 레이미

샘 레이미
Sam Raimi
파일:샘레이미새사진.jpg
이름 새뮤얼 M. "샘" 레이미
Samuel M. "Sam" Raimi
국적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출생 1959년 10월 23일 ([age(1959-10-23)]세)
미시간 주 로열 오크
가족 아버지 레너드 로날드 레이미
어머니 실리아 바바라 레이미[1]
아이반 레이미, 샌더 레이미
누나 안드레아 레이미 루빈
동생 테드 레이미
아내 질리언 그린[2] (1993년 결혼)
아들 론 레이미, 헨리 레이미, 슐리 레이미, 대실 레이미, 올리버 레이미
엠마 레이미
신체 키 175 ~ 180 cm
몸무게 83 kg
종교 유대교
학력 미시간 주립대학교 (영문학 / 중퇴)
직업 영화감독, 영화 제작자, 각본가, 배우
소속사 데인저러스 엔터테인먼트
활동 1977년 ~ 현재

1. 개요2. 생애
2.1. 데뷔 이전2.2. 활동
3. 작품 특징4. 필모그래피
4.1. 영화
4.1.1. 연출4.1.2. 제작4.1.3. 각본
4.2. TV
5. 기타6. 외부 링크

[clearfix]

1. 개요

파일:Genius-of-Sam-Raimi-.webp
미국의 영화 감독으로, 호러 장르에 소소한 코미디를 더한 B급 공포 영화의 거장이다. 코믹스슬랩스틱 코미디에 영향을 받은 만화적이고 역동적인 연출과, 적은 예산으로 한계를 뽑아내는 능력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블 데드 시리즈』, 『스파이더맨 트릴로지』, 『드래그 미 투 헬』,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같은 여러 유명한 작품들을 연출한 메이저 할리우드 감독 가운데 한 명이고, 1979년 레이미 프로덕션과 2002년 고스트 하우스 픽처스의 설립자이다.

오즈 그레이트 앤드 파워풀』을 연출한 뒤로 『그루지』, 『맨 인 더 다크』, 『크롤』, 『65』, 『이블 데드 라이즈』 같은 영화들의 제작을 맡으면서 젊은 감독들을 돕고 있다. 또 『헤라클레스』와 『여전사 지나』, 『애시 vs 이블 데드』 같은 드라마들도 연출, 제작하면서 여러모로 영화 산업 전반에 뛰어들고 있다.

2. 생애

2.1. 데뷔 이전

1959년 10월 23일 미시간 주 로열 오크에서 태어났다. 조상이 폴란드, 헝가리. 러시아에서 이주한 유대계 미국인으로, 원래 성이 독일식인 라잉게베르츠(Reingewertz)였는데 할아버지가 미국으로 이민간 뒤 레이미로 줄였던 것을 보면 동방식민운동으로 살던 유대계 독일인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 레너드 로날드 레이미는 상인이었고,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랐다.

3살 많은 형인 이반 레이미는 시나리오 작가이자 정골의학 박사로, 다크맨, 이블 데드 3 - 암흑의 군단, 스파이더맨 3의 각본을 함께 쓰기도 했다. 누나 안드레아 레이미 루빈은 법원 기자이고, 6살 적은 테드 레이미는 배우이자 영화 제작자로, 샘 레이미 영화에 조연, 카메오로 자주 출연하는데 이블 데드 시리즈, 스파이더맨 트릴로지, 그루지, 드래그 미 투 헬 같은 작품들에 나왔다.

또 다른 형인 샌더 레이미는 미국 명예 협회(National Honor Society)의 회원이었고, 바이츠만 과학 연구소로 수업을 듣기 위해 전 세계에서 모인 65명 가운데 가장 어릴 만큼 성적이 뛰어났는데, 안타깝게도 이때 이스라엘로 갔다가 물에 빠져서 열 여섯의 나이로 죽었다. 레이미는 그때 열 살이었는데, 그러한 트라우마가 남은 가족을 더 끈끈하게 해 주었다고 얘기했다.

샘 레이미는 그 전까지는 마블 코믹스가 너무 복잡해서 배트맨슈퍼맨을 더 좋아했는데, # 샌더가 샘 레이미에게 스파이더맨을 처음으로 알려 주었고, 레이미는 여기에 푹 빠졌다고 한다.[3] 마술을 잘 해서 샘에게 재주를 부리곤 했었는데, 샘은 샌더가 죽고 스스로 마술을 배워 파티나 결혼식에서 하곤 했다고 한다. #

열 세 살 때 아버지가 카메라를 갖고 집에 오자 레이미는 영화에 이끌리게 되었고, 부모님이 친구들을 집에 데리고 올 수 있게 해서 친구들과 연극을 했다. 10대 때 그는 이미 디트로이트아마추어 배우, 감독들의 모임에서 활동적인 멤버였는데, 이 그룹에는 동생 테드와 1975년에 만난 배우를 꿈꾸던 브루스 캠벨도 있었다.

그러나 영화를 단지 취미가 아닌 전문으로 본격적으로 일하고 싶다고 하자 부모님은 애가 미쳤다고 생각해서 거듭 안 된다고 얘기했고, 레이미는 버스 보이[4]웨이터로 일하면서 틈틈이 장비들을 모았다. 1977년 버밍햄에 있는 그로브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미시간 주립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는데, 이때도 영화 동아리를 운영하며 슈퍼 8로 영화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선보이기도 했다. 이윽고 3학기를 마친 뒤 이블 데드를 찍으려고 학교를 그만두었다.

2.2. 활동

대학재학중 1977년, 『살인이야! (It's Murder!)』[5]로 데뷔했다. 1978년에 또 다른 단편 영화인 『클락워크 (Clockwork)』은 주연도 맡으며 연출했고, 그 해에 낸 이블 데드의 테스트 격인 『숲속에서 (Within the Woods)』는 37만 5천 달러를 벌어서 자금을 마련하게 되었다.
파일:sam-raimi-bruce.jpg
이블 데드를 찍는 샘 레이미와 브루스 캠벨

본격적인 장편영화 데뷔는 1981년이블 데드』로, 여태 까지 벌었던 수익에 가족, 친구, 투자자들의 돈을 더해 19세기 즈음 버려진 오두막집에서 대부분을 찍었다. 당시에 예산이 너무 없었기 때문에 그 오두막집에서 묵었는데, 배우들은 온수도 없이 물이 너무 차가워서 제대로 씻지도 못했고, 레이미는 들판에서 촬영하다가 황소에게 쫓기기도 했다고 한다. 샘 레이미는 쇠막대에 카메라를 달아 영화를 찍던 그때를 "모두가 극심한 고통에 빠지면, 그것은 곧 공포로 드러납니다." 하고 2007년에 회상했다. #

『이블 데드』는 나뭇가지와 뒤엉키면서 마치 촉수물을 연상케 한다던지 여러모로 정신 나간 센스가 합쳐진 좀비 영화로서 컬트적인 히트를 쳤고, 또 상투적인 공포 영화의 틀을 벗어난 재치 있는 연출로서 당시에 비평가들의 눈길을 끌었는데 이런 그의 재능은 『드래그 미 투 헬』(2009)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난다. 스티븐 킹의 호평으로 1편을 홍보할 수 있었고, 2편의 제작도 도와주었다고 한다. #

이윽고 코엔 형제와 함께 쓴 시나리오를 가지고 1985년 『크라임웨이브』를 냈는데, 실사 만화 영화로 꾀했던 이 영화는 배우 브라이언 제임스가 호텔 방을 어지럽혀서 배상하고, 스턴트가 배우를 다치게 하는 등 250만 달러로 책정되어 있던 기존 예산을 초과하자 스튜디오가 개입했고, 이 때문에 성공하지 못했다. 브루스 캠벨의 책에 따르면 샘 레이미는 "이건 아니야. 너무 끔찍하고, 끔찍하고, 끔찍하고, 우울해." 하고 말했다.

샘 레이미는 그 뒤 1987년이블 데드 2』, 1990년에 『다크맨』으로 돌아왔고, 다크맨은 그의 첫 할리우드 메인스트림 영화였다. 두 영화는 상업적으로 큰 수익을 거두었고, 이를 바탕으로 만든 1992년이블 데드 3 - 암흑의 군단』은 흥행이 그다지 뛰어나진 못했지만 인기 있는 작품으로 남아 있다.

한편 1989년에는 형 이반과 함께 『이지 휠스』[6]의 각본을 쓰기도 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샘 레이미는 호러라는 장르로 영화적인 실험을 계속하는 희귀한 감독이었고, 스플래터 영화의 선구자이자 오락적 B급 영화를 메이저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감독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1995년퀵 앤 데드』, 1998년심플 플랜[7] 1999년사랑을 위하여』와 2000년더 기프트』를 잇달아 연출하며 장르를 다각화하였다.
파일:spider-man-sam-raimi.jpg
스파이더맨을 찍는 샘 레이미와 토비 맥과이어, 커스틴 던스트

그가 2002년스파이더맨』의 감독으로 뽑히자 걱정하던 사람들이 많았던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소니 픽처스에선 공포 영화에 전문으로 여겨지던 샘 레이미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지만, 스파이더맨 및 코믹스의 열렬한 팬이었던 레이미가 스파이더맨을 영화로 만든다는 얘기를 듣고 소니 픽처스의 사장과 스탠 리를 자꾸 만나며 설득했고, 마침내 감독으로 뽑힌 것이다. 걱정하던 목소리도 많았지만 영화는 단숨에 이를 잠재웠고, 2004년스파이더맨 2』도 마찬가지로 흥행과 평가를 모두 거두었다. 스파이더맨 1은 마틴 스코세이지가 즐기고, 스파이더맨 2는 로저 이버트도 극찬한 영화로 다크 나이트와 함께 최고의 슈퍼히어로 영화이고, 처음으로 아카데미 상을 받은 마블 영화이자, MCU를 시작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2007년 개봉한 『스파이더맨 3』는 2억 5,800만에서 3억 5000만 달러라는 많은 제작비를 들였음에도 평가가 좋지 못했는데, 특히 전작들이 걸출했던지라 사람들이 크게 아쉬워했다. 이는 소니 픽처스에서 제작에 너무 간섭했기 때문인데, 원래 샘 레이미는 샌드맨을 메인 빌런으로 삼고 서브 플롯으로 해리 오스본의 이야기를 넣어 크랭크 인 했지만, 소니 픽처스는 꼭 심비오트를 넣어야 한다고 그를 압박했던 것이다.
"샘, 자네는 팬들을 살피지 않고 있어. 그들을 생각해야 돼. 여태 자네가 가장 좋아하는 악당들로 두 편을 만들었고, 이제 팬들이 좋아하는 빌런으로 만들 때야. 팬들은 베놈을 가장 좋아해. 스파이더맨의 모든 독자들이 베놈을 좋아하고, 자네가 70년대 스파이더맨을 읽었을지라도, 이게 아이들을 생각하는 길이야. 베놈을 넣어 줘. 이제 팬들을 생각하란 말이야."
아비 아라드 #

이 때문에 샘 레이미는 영화를 갈아 엎었어야 했는데, 각본을 쓰기 전부터 캐스팅을 하고, 다 쓰지도 못했는데 촬영은 시작되었으며 쪽대본으로 자꾸 바뀌니 완성도는 높을 수 없었다. 뒷날 스파이더맨 3에 비평이 많자 소니 픽처스 쪽에선 레이미가 베놈을 성의 없이 찍어서 그렇다는 언플을 했지만, 레이미는 그저 베놈이라는 캐릭터를 잘 모를 뿐이었다. 레이미는 베놈 코믹스를 끊임없이 찾아 읽고 최선을 다했지만, # 캐릭터를 좋아하지도 않았고 넉넉히 마련할 시간도 없었다.

그럼에도 흥행은 8억 9천만 달러로 크게 흥행했으며, 이 때문에 『스파이더맨 6』을 제작하는 사이에 『스파이더맨 4』와 『스파이더맨 5』를 같이 찍는 것도 생각되었지만, 레이미는 4편만 몰두했다. 나중에 밝히길, 그는 스파이더맨 3가 괴로웠다면서 시리즈를 바로잡고자 그냥저냥 괜찮은 선에서 지나지 않고 최고의 영화를 만들고 싶었으나 마감 때까지 좋은 이야기를 쓰지 못하리라 생각했다고 한다. 레이미는 소니에게 팬들을 그만 실망시키고 리부트하는 게 어떻겠냐고 얘기했다.[8] #

이에 소니는 곧바로 감독, 배우까지 싹 갈아 치우고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실사영화 시리즈리부트하지만, 흥행과 평가 모두 스파이더맨 트릴로지에 한참 못 미치며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로 넘어가게 된다. 레이미는 제작사의 갑질에도 소니와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고 말하고, # 아직도 스파이더맨 3의 실패를 자책하고 있다. #

레이미는 나중에 마크 웹과 함께 2021년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 크리에이티브 컨설턴트로 들어와 자문을 했다.[9] # 레이미는 처음엔 모르고 있었는데, 케빈 파이기에이미 파스칼이 뒤로 불러서 조용히 얘기를 했고, 그는 황당하면서도 좋았다고 했다고 한다. 바쁜 스케줄이 끝나고 본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아주 뛰어났다면서 존 왓츠 감독을 존경한다는 얘기를 했다.

2009년 오랜만에 공포 영화로 돌아온 『드래그 미 투 헬』은 옛날의 샘 레이미를 생각하게 한다는 말과 함께 호평이 이어졌고, 2009 스크림 어워즈와 2010 새턴 어워즈에서 최고의 호러 영화 상을 받았다. 샘 레이미 감독은 드래그 미 투 헬이 익숙한 장르라서 압박감이 적었다고 한다.

이윽고 2009년 7월에 워너 브라더스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가 제작하는 『워크래프트』의 감독으로 뽑히기도 하였으나, 2012년 샌디에이고 코믹콘에서 『오즈 그레이트 앤드 파워풀』에 집중하고자 워크래프트 영화화 프로젝트에서 물러났다고 밝혔다. 아무런 것도 알려지지 않은 채 감독 하나 공개된 것만 믿고 기다리던 워크래프트 팬들에게는 벼락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그 뒤 영화의 감독은 『더 문』, 『소스 코드』로 알려진 덩컨 존스가 맡았다.

레이미가 하차한 까닭은 처음 감독을 맡았을 때 블리자드가 제시한 기존 스토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 스스로 스토리를 썼는데, 레전더리 픽처스는 레이미의 각본에 만족했지만 블리자드가 거부하면서 뒤엎고, 다시 쓰라는 얘기를 했기 때문이다.[10] 그러나 막상 나온 영화는 잘 풀리지 못하였고, 이에 거의 모든 팬들은 차라리 샘 레이미가 맡았었으면 더 나았겠다고 한탄했다.

2013년, 『오즈 그레이트 앤드 파워풀』이 나왔고 일찍이 속편이 계획되었지만, 그는 감독을 맡지 않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이때부터 그는 자신감을 잃었던 듯한데, 나중에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인터뷰에서 그는 9년 동안 어땠냐는 물음에,
"새로워지고 싶었어요, 지루한 일들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어요. 저는 제작하고 있던 영화들의 젊은 감독들로부터 세상을 다시 겪어야겠다고 느꼈습니다. 그들에게서 영감을 얻도록 스스로 허락했죠. 애들도 키우면서, 정원에서 생각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마침내 전화가 걸려 왔을 때, 저는 개운하다고 생각했어요. 배가 고파요. 저는 새로운 경험들을 많이 했습니다. 다시 연출로 돌아갈 준비가 됐어요."
샘 레이미, 슬래시필름과 인터뷰에서 #

라고 얘기했다. 2020년 2월에 케빈 파이기는 샘 레이미가 슈퍼히어로 영화로 돌아올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한 번 연락해 보았고, 레이미는 오히려 마블 스튜디오 관계자들과 직접 만나 얘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해 4월에 감독으로 확정되었다.

이윽고 긴 기다림 끝에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개봉했다. 이 영화로 다시금 공포 영화의 거장임을 스스로 증명했지만, 마블 영화로서 본질은 많이 사라져 평가는 꽤 갈리게 되었고, 이 때문에 앞뒤 안 가리고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알고 보니 영화를 만드는 여건은 스파이더맨 3 때보다 말도 안 되게 심각했고, 비난 받았던 점들은 그의 잘못이 아니었음이 드러났다.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평가 참조. 그럼에도 흥행은 9억 5천만 달러를 넘기며 커리어 히트작이 되었으며, 평론가들에게 본인만의 스타일을 남기고 거지같은 각본을 뛰어난 연출로 살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레이미는 스파이더맨 3에 이어 또 좋지 않은 일을 겪었음에도 다른 작품을 맡고 싶다고 한다. 특히 스파이더맨 4가 언급되면서, 스파이더맨 4가 아니더라도 토비 맥과이어와 같이 일하고 싶다고 얘기했다. # 레이미가 다른 MCU 영화를 맡을지는 지켜봐야 알 수 있을 듯한데, 2022년 3월에 이미 닥터 스트레인지 3와 다른 프로젝트들의 감독으로 뽑혔다는 루머가 나왔지만, # 2022년 5월에 치른 인터뷰들에서 그는 아무런 얘기를 들은 게 없다고 얘기했다. # 내부 유출에 따르면, 이야기는 오갔다고 한다. #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를 마치고 크롤 2의 각본을 쓰면서, # 리 크로닌 감독의 『이블 데드 라이즈』, 스콧 벡 감독의 『65』와 모리츠 모어 감독의 『Boy Kills World』를 제작하고 있다. 1978년 공포 영화인 『매직』 리메이크도 연출한다고 한다. #

3. 작품 특징

호러 영화계 거장답게 주인공의 시각에 들어간 듯한 감각적이고 역동적인 촬영, 장르적으로서 비현실적인 연출이 돋보이며, 블록버스터 영화에서는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역동적인 영상미가 특징이다. 이것이 호러 장르 쪽으로 들어가면 고어스러워지면서 피칠갑이 난무하는 일이 잦은지라 여기서 B급 취향이 크게 드러난다. 그러나 또 다른 대표작 드래그 미 투 헬과,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를 보면 비교적 낮은 수위로도 공포 연출이 충분히 가능함을 알 수 있다. 호러 영화로 연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기 때문인지, 블록버스터인 스파이더맨 시리즈도 무서운 것까지는 아니지만 호러 장르 느낌의 연출이 곳곳에 드러난다.[11] 2022년 개봉한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대놓고 호러 장르를 표방해서 그런지 감독 본인 취향의 호러 연출이 강하게 나타났다.

대표적인 촬영 기법으로는 점프 스케어, 익스트림 클로즈 업, 더치 앵글[12] 및 카메라 스핀, 메스머라이저[13]디졸브가 있고, 영화에선 비명을 지르는 사람, 브루스 캠벨, 올즈모빌 88이 자주 눈에 띈다.

또 캐릭터의 이중 자아의 대립을 드러내는 장면이 많다. 이블 데드 시리즈애쉬 윌리엄스, 스파이더맨 트릴로지그린 고블린, 닥터 옥토퍼스, 베놈을 뒤집어 쓴 블랙 스파이더맨,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에선 스칼렛 위치 뿐 아니라 까지 포함한 닥터 스트레인지도 그렇다.

크라임웨이브를 연출하면서 제작사와 감독의 위치를 깨달았기 때문에 스파이더맨 3이나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에서 제작사의 무리한 요구를 수용하는가 하면 스스로 제작하는 영화들은 거의 간섭을 하지 않는다. 그루지도 참견하지 않았다고 하며, 이블 데드 라이즈 또한 리 크로닌 감독이 모든 자유를 받아서 기뻤다고 얘기했다.

4. 필모그래피

4.1. 영화

4.1.1. 연출


샘 레이미 감독 장편 연출 작품
[ 펼치기 · 접기 ]

상세정보 링크 열기

연도 타이틀 역할 비고
연출 각본 제작
1972 Out West O O 단편 영화
1975 The Great Bogus Monkey Pignuts Swindle O 단편 영화
1976 The James R. Hoffa Story, Part II O 단편 영화
1976 Attack of the Pillsbury Doughboy O 단편 영화
1976 Uncivil War Birds O 단편 영화
1976 Mystery No Mystery O 단편 영화
1977 이츠 머더!
It's Murder!
O O O 단편 영화
1977 Picnic O 단편 영화
1977 Six Months to Live O 단편 영화
1977 The Happy Valley Kid O 단편 영화
1977 Civil War Part II O 단편 영화
1978 숲속에서
Within the Woods
O O 단편 영화
1978 클락워크
Clockwork
O 단편 영화
1979 Shakespeare: The Movie O 단편 영화
1981 이블 데드
The Evil Dead
O O 장편 영화 데뷔작
1985 크라임웨이브
Crimewave
O O
1985 The Sappy Sap O 단편 영화
1987 이블 데드 2
Evil Dead II
O O
1990 다크맨
Darkman
O O O
1992 이블 데드 3 - 암흑의 군단
Army Of Darkness
O O
1995 퀵 앤 데드
The Quick and the Dead
O
1998 심플 플랜
A Simple Plan
O
1999 사랑을 위하여
For Love of the Game
O
2000 더 기프트
The Gift
O
2002 스파이더맨
Spider-Man
O
2004 스파이더맨 2
Spider-Man 2
O
2007 스파이더맨 3
Spider-Man 3
O O
2009 드래그 미 투 헬
Drag Me to Hell
O O O
2013 오즈 그레이트 앤드 파워풀
Oz the Great and Powerful
O
2017 더 블랙 기안돌라
The Black Ghiandola
O 단편 영화
2022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Doctor Strange in the Multiverse of Madness
O
미정 매직 O
미정 센드 헬프 O
https://youtu.be/mLnL1-7lvVE Iggy Pop - Cold Metal 뮤직 비디오의 연출을 맡았다.

https://youtu.be/Tl90NOvs2KM 쉐보레 TV 광고의 연출을 맡았다.

4.1.2. 제작

연도 타이틀 역할 비고
총괄 제작 제작
1989 이지 휠스
Easy Wheels
O 각본
1989 The Dead Next Door O
1991 Lunatics: A Love Story O
1993 하드 타겟
Hard Target
O [14]
1994 타임캅
Timecop
O
1995 다크맨 2
Darkman II: The Return of Durant
O
1996 다크맨 3
Darkman III: Die Darkman Die
O
1998 헤라클레스와 제나
Hercules and Xena – The Animated Movie: The Battle for Mount Olympus
O
1998 영 헤라클레스
Young Hercules
O
2004 그루지
The Grudge
O
2005 부기맨
Boogeyman
O
2006 그루지 2
The Grudge 2
O
2007 메신져: 죽은 자들의 경고
The Messengers
O
2007 써티 데이즈 오브 나이트
30 Days of Night
O
2012 포제션: 악령의 상자
The Possession
O
2013 이블 데드
Evil Dead
O
2014 고양이 살인 사건
Murder of a Cat
O
2014 나이프맨
Knifeman
O
2015 폴터가이스트
Poltergeist
O
2016 맨 인 더 다크
Don't Breathe
O
2019 The Worst Planet on Earth O 단편 영화
2019 크롤
Crawl
O
2020 그루지
(The Grudge)
O
2021 더 언홀리
The Unholy
O
2021 맨 인 더 다크 2
Don't Breathe 2
O
2021 나이트북: 밤의 이야기꾼
Nightbooks
O
2022 엄마
UMMA
O
2023 65 O
2023 이블 데드 라이즈
Evil Dead Rise
O 기획
미정 Boy Kills World O
미정 Don't Move O

4.1.3. 각본

연도 작품 비고
1989 이지 휠
(Easy Wheels)
[15]
1992 반칙 게임
(The Nutt House)
[16]
1994 허드서커 대리인
(The Hudsucker Proxy)
[17]

4.2. TV

연도 작품 비고
1994~1995 맨티스[18]
(M.A.N.T.I.S.)
[19]
1995~2001 여전사 지나
(Xena: Warrior Princess)
[20]
1997 스파이 게임
(Spy Game)
[21]
2008~2010 레전드 오브 시커
(Legend of the Seeker)
[22]
2014 레이크
(Rake)
[23]
2015~2018 애시 vs 이블데드
(Ash vs Evil Dead)
[24]
2020 50 스테이트 오브 플라이트[25]
(50 States of Fright)

https://www.slashfilm.com/580304/every-house-is-haunted-movie-netflix/ Every House Is Haunted

5. 기타

스파이더맨인가요?
저는 만화책, 특히 스파이더맨의 열렬한 팬이었어요. 무엇보다도 일러스트레이션과 스토리가 제 마음을 이끌었죠. 제 생각에 스파이더맨이 뛰어난 점은 제 그랬던 것처럼, 그가 평범한 소년이라는 사실이에요. 또 그가 빌런들을 놀려먹는 방식도 멋지기 때문이고요.
감독님은 만화광이었나요?
저는 언제나, 매우 열렬한 만화광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광신도는 아니었지만. 좋아하던 스파이더맨을 영화로 만들다 보니 더욱 열성적인 팬이 됐냐고요? 그렇진 않아요. 영화를 찍기 시작하면서 만화책 읽을 시간을 갖기 어려워졌거든요. #
  • 1976년 작품인 킹콩 리메이크를 극장에서 봤을 때 "뭐 이따위 것이 있어?" 하면서 마구 욕을 했다고 한다. 영화가 개판이라 그런 게 아니라 킹콩을 이렇게 죽이는 게 불쾌했다고 나중에 인터뷰에서 얘기하였다.
샘 레이미를 만나면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으로 다정한 남자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는 촬영장에서 양복과 아마도 중절모를 입어야한다는 구식 직업주의에 얽매여 있다. 그의 온화한 미소는 중서부 지역의 오래된 가치관을 가진 겸손한 모든 남자 같은 느낌을 준다. 평소에는 옆으로 쓸어 넘기는 머리도 약간 엉뚱한 성격을 드러낼 만큼 헝클어지긴 했지만, 전혀 이상하지 않다.#
* 영화에 있어서 늘 정장을 입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한다. 아버지가 다른 사람들을 생각해서 옷을 입으라고 가르쳤는데 꼭 잊지 않는다고. 그래서 촬영장이나 인터뷰 때도 늘 정장을 입고 나오는데,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를 찍을 때는 너무 추웠는지 패딩코트를 입은 모습을 볼 수 있다.
  • 2021년 닥터 스트레인지 신작 영화 관련 인터뷰에서 자신이 다시 이런 장르의 영화를 맡게 될지는 상상도 못 했다고 전했다.
    스파이더맨 3의 감독을 맡으면서 너무 끔찍해서 다시 마주할 수 있을지 몰랐어요. 인터넷이 활성화되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 영화를 싫어했고 나에게도 알려주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닥터 스트레인지 2에 자리가 났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제 에이전트가 저에게 전화를 걸어 '그들이 이 영화의 감독을 찾고 있는데 당신 이름이 나왔어요. 관심 있으세요?' 그리고 나는 '내가 아직도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죠. 그런 종류의 영화들은 정말 까다로워요. 그리고 나는 '그건 충분한 이유야' 라고 느꼈죠. 저는 항상 닥터 스트레인지라는 캐릭터를 정말 좋아했어요. 그는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는 아니었지만, 그는 바로 저 위에서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들과 함께 있었죠. 저는 첫 번째 영화를 매우 좋아했고, 저는 [감독] 스콧 데릭슨이 훌륭하게 해냈다고 생각했어요. 믿을 수 없을 정도로요. 그래서 내가 '그래'라고 했죠. 그들은 캐릭터를 좋은 곳에 남겨두었습니다. 또 다른 슈퍼히어로 영화를 찍게 될 줄은 몰랐어요.#
  • 스파이더맨 영화에 감독 역할을 맡기 수 년 앞서 샘 레이미는 스탠 리와 함께 마블의 "마이티 토르"에 대한 코믹한 해석을 바탕으로 한 영화를 만들 계획을 세웠다. 영화는 실현되지 않았지만, 공동 제작자인 스탠 리는 레이미와 좋은 친구가 되었고 나중에 스파이더맨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했다.

6. 외부 링크



[1] 혼전성 에이브럼스[2] 캐나다 배우 론 그린, 미국 배우 낸시 딜의 딸이다.[3] 이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에서 서사적으로 나타난다. 샘 레이미는 샌더를 위해서 스파이더맨 트릴로지를 연출했고 『심플 플랜』 같은 영화를 더 만드는 게 어떻겠냐는 브라이언 드 팔마의 조언에도 기어코 『스파이더맨 2』를 만들었다. 닥터 스트레인지도나 스트레인지를 지키지 못 했다는 죄책감에 의사가 되었는데, 이는 『스파이더맨 3』을 자책하는 레이미의 모습이 떠오른다. 레이미도 인터뷰에서 공통적으로 두려움(insecure)이라는 말을 꺼냈다.[4] 웨이터를 돕는 조수이다.[5] 2,000달러를 들여 만든 70분 짜리 단편 영화로, 브루스 캠벨, 스콧 스피겔, 아우 테드와 함께 출연했다.[6] 폭주족을 바탕으로 한 코미디 영화로, 어머니의 이름인 셀리아 에이브럼스로 크레딧에 올랐다.[7] 스콧 스미스의 베스트셀러 소설 원작[8] 레이미는 고전적인 빌런인 벌처를, 소니는 리저드를 나타내고 싶어 했고 감독과 제작사가 부딪혔다는 얘기가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스파이더맨 4는 이미 벌처와 미스테리오로 컨펌이 되어 있었다.[9] 다만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를 찍으면서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내용을 몰랐다고 한 것을 보아 큰 역할은 하지 않은 듯하다.[10] 원래 블리자드가 이미 스타크래프트 영화화 프로젝트도 원작을 따라가는 것을 고집해서 뒤집었던 만큼 이런 쪽에서 보수적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11] 1편의 그린 고블린도 거울을 앞에 둔 이중인격 장면은 배우의 광기넘치는 연기력과 맞물려 엄청난 시너지를 일으켰고, 2편의 닥터 옥토퍼스의 기계팔이 병실에서 폭주하면서 의료진을 학살하는 장면은 레이미 특유의 B급취향이 그대로 묻어난다[12] 카메라를 비스듬히 맞추는 카메라 샷으로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과 비슷한 모습을 만들어내는데, 촬영술에선 피사체의 심리적 불안감과 긴장을 드러내는 기법 가운데 하나이다.[13] 카메라 앞에 다는 렌즈인데, 이것을 돌리면 화면이 일렁이고 일그러져 보이는 연출이 나온다.[14] 오우삼 감독의 할리우드 데뷔작이다.[15] 데이비드 오말리 감독, 형 아이반 레이미와 공동 각본.[16] 데이비드 오말리 감독, 형 아이반 레이미와 공동 각본.[17] 코엔 형제 감독, 코엔 형제와 공동 각본.[18] 하반신 마비의 흑인 과학자가 밤에는 강화복을 입고 범죄자들과 싸운다는 내용의 미드. 한국에서도 더빙됐던 적이 있다. 흑인이 슈퍼히어로였다는게 꽤 신선했는지 흑인 기자가 "흑인 슈퍼히어로잖아"라고 말했다고 한다. #[19] 샘 햄과 공동 제작[20] R.J. 스튜어트와 공동 개발[21] 존 맥나마라, 이반 레이미와 공동 창작[22] 존 맥나마라, 이반 레이미와 공동 창작[23] 1, 4화 연출, 책임 프로듀서로 참여[24] 개발자, 시즌 1 1화의 연출 또한 맡았다.[25] 짧은 길이의 시리즈만 제작하는 QuiBi 독점 시리즈. 미국 50개 주에 있는 괴담들을 바탕으로 한 공포 앤솔로지이다.[26] 호러 액션 영화로 Thou Shall Not Kill... Except라고도 한다. 삼부비디오에서 "터프 미시간"이란 제목으로 비디오로 낸 바 있다.[27] 샘 레이미가 만든 영화들의 들이 올라오는 게시판. 주로 스파이더맨 트릴로지 관련 밈들이 많이 올라오며, 이블 데드 시리즈 밈도 올라온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