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6-02-14 17:18:04

이묘

위서(魏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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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제기(帝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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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서기(序記)」 2권 「태조기(太祖紀)」 3권 「태종기(太宗紀)」
탁발부 · 대나라 탁발규 탁발사
4권 「세조·공종기(世祖恭宗紀)」 5권 「고종기(高宗紀)」 6권 「현조기(顯祖紀)」
탁발도 · 탁발황 탁발준(浚) 탁발홍
7권 「고조기(高祖紀)」 8권 「세종기(世宗紀)」 9권 「숙종기(肅宗紀)」
원굉 원각 원후
10권 「효장제기(孝莊帝紀)」 11권 「폐출삼제기(廢出三帝紀)」 12권 「효정제기(孝靜帝紀)」
원자유 원공 · 원랑 · 원수 원선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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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열전(列傳)]
13권 「황후전(皇后傳)」
신원황후 · 봉황후 · 기황후 · 평문황후 · 소성황후 · 헌명황후 · 도무황후 · 도무선목황후 · 명원소애황후 · 밀황후 · 태무황후 · 경애황후
경목공황후 · 문성문명황후 · 문성원황후 · 헌문사황후 · 효문정황후 · 풍폐후 · 효문유황후 · 효문소황후 · 선무순황후 · 선무황후 · 선무영황후
효명황후 · 효정황후
14권 「신원·평문제제자손전(神元平文諸帝子孫傳)」
탁발흘라 ,탁발제, · 탁발영문 · 탁발육 · 탁발인 · 탁발수낙 · 탁발퇴 · 탁발소연 · 탁발욱 · 탁발목진 · 탁발육수 · 탁발비간 · 탁발여 · 탁발고
탁발돈 · 탁발석 · 탁발위 · 탁발대두 · 탁발제 · 탁발처진 · 탁발니
15권 「소성자손전(昭成子孫傳)」 16권 「도무7왕전(道武七王傳)」
탁발식군 · 탁발한 · 탁발준(遵) · 탁발건(虔) · 탁발순 · 탁발의열
탁발굴돌
탁발소 · 탁발희 · 탁발요 · 탁발수 · 탁발처문 · 탁발연 · 탁발려(黎)
17권 「명원6왕전(明元六王傳)」 18권 「태무5왕전(太武五王傳)」
탁발비 · 탁발미 · 탁발범 · 탁발건(健) · 탁발숭 · 탁발준(俊) 탁발복라 · 탁발한 · 탁발담 · 탁발건(建) · 탁발여(余)
19권 「경목12왕전(敬穆十二王傳)」
탁발신성 · 탁발자추 · 탁발소신성 · 탁발천사 · 탁발만수 · 탁발낙후 · 탁발운 · 탁발정 · 탁발장수 · 탁발태락 · 탁발호아 · 탁발휴
20권 「문성5왕전(文成五王傳)」 21권 「헌문6왕전(獻文六王傳)」
탁발장락 · 탁발략 · 탁발간(簡) · 탁발약 · 탁발맹 원희 · 원간(幹) · 원우 · 원옹 · 원상 · 원협
22권 「효문5왕전(孝文五王傳)」 23권 「위조등전(衛操等傳)」 24권 「연봉등전(燕鳳等傳)」
원순 · 원유 · 원역 · 원회 · 원열 위조 · 막함 · 유고인 연봉 · 허겸 · 장곤 · 최현백 · 등연
25권 「장손숭등전(長孫嵩等傳)」 26권 「장손비등전(長孫肥等傳)」 27권 「목숭전(穆崇傳)」
장손숭 · 장손도생 장손비 · 울고진 목숭
28권 「화발등전(和跋等傳)」 29권 「해근등전(奚斤等傳)」
화발 · 해목 · 막제 · 유업연 · 하적간 · 이율 · 유결 · 고필 · 장려 해근 · 숙손건
30권 「왕건등전(王建等傳)」
왕건 · 안동 · 누복련 · 구퇴 · 아청 · 유니 · 해권 · 차이락 · 숙석 · 내대천 · 주기 · 두대전 · 주관 · 염대비 · 울발 · 육진 · 여락발
31권 「우율제전(于栗磾傳)」 32권 「고호등전(高湖等傳)」
우율제 고호 · 최영 · 봉의
33권 「송은등전(宋隱等傳)」
송은 · 왕헌 · 굴준 · 장포 · 곡혼 · 공손표 · 장제 · 이선 · 가이 · 설제
34권 「왕낙아등전(王洛兒等傳)」 35권 「최호전(崔浩傳)」 36권 「이순전(李順傳)」
왕낙아 · 차노두 · 노노원 · 진건 · 만안국 최호 이순
37권 「사마휴지등전(司馬休之等傳)」 38권 「조옹등전(刁雍等傳)」 39권 「이보전(李寶傳)」
사마휴지 · 사마초지 · 사마경지 · 사마숙번
사마천조
조옹(刁雍) · 왕혜룡 · 한연지 · 원식 이보
40권 「육사전(陸俟傳)」 41권 「원하전(源賀傳)」 42권 「설변등전(薛辯等傳)」
육사 원하 설변 · 구찬 · 역범 · 한수 · 요훤
43권 「엄릉등전(嚴棱等傳)」 44권 「나결등전(羅結等傳)」
엄릉 · 모수지 · 당화 · 유휴빈 · 방법수 나결 · 이발 · 을괴 · 화기노 · 순퇴 · 설야저 · 우문복 · 비우 · 맹위
45권 「위랑등전(韋閬等傳)」 46권 「두근등전(竇瑾等傳)」 47권 「노현전(盧玄傳)」
위랑 · 두전 · 배준 · 신소선 · 유숭 두근 · 허언 · 이흔 노현
48권 「고윤전(高允傳)」 49권 「이령등전(李靈等傳)」 50권 「울원등전(尉元等傳)」
고윤 이령 · 최감 울원 · 모용백요
51권 「한무등전(韓茂等傳)」
한무 · 피표자 · 봉칙문 · 여나한 · 공백공
52권 「조일등전(趙逸等傳)」
조일 · 호방회 · 호수 · 송요 · 장담 · 종흠 · 단승근 · 감인 · 유병 · 조유 · 색창 · 음중달
53권 「이효백등전(李孝伯等傳)」 54권 「유아등전(游雅等傳)」 55권 「유명근등전(游明根等傳)」
이효백 · 이형 유아 · 고려 유명근 · 유방
56권 「정희등전(鄭羲等傳)」 57권 「고우등전(高祐等傳)」 58권 「양파전(楊播傳)」
정희 · 최변 고우 · 최정 양파
59권 「유창등전(劉昶等傳)」 60권 「한기린등전(韓麒麟等傳)」 61권 「설안도등전(薛安都等傳)」
유창 · 소보인 · 소정표 한기린 · 정준 설안도 · 필중경 · 심문수 · 장당 · 전익종 · 맹표
62권 「이표등전(李彪等傳)」 63권 「왕숙등전(王肅等傳)」 64권 「곽조등전(郭祚等傳)」
이표 · 고도열 왕숙 · 송변 곽조 · 장이
65권 「형만등전(邢巒等傳)」 66권 「이숭등전(李崇等傳)」 67권 「최광전(崔光傳)」
형만 · 이평 이숭 · 최량 최광
68권 「견침등전(甄琛等傳)」 69권 「최휴등전(崔休等傳)」 70권 「유조등전(劉藻等傳)」
견침 · 고총 최휴 · 배정준 · 원번 유조 · 부영 · 부수안 · 이신
71권 「배숙업등전(裴叔業等傳)」 72권 「양니등전(陽尼等傳)」
배숙업 · 하후도천 · 이원호 · 석법우 · 왕세필 · 강열지 · 순우탄 · 이묘 양니 · 가사백 · 이숙호 · 노시경 · 방량 · 조세표 · 반영기 · 주원욱
73권 「해강생등전(奚康生等傳)」 74권 「이주영전(爾朱榮傳)」 75권 「이주조등전(爾朱兆等傳)」
해강생 · 양대안 · 최연백 이주영 이주조 · 이주언백 · 이주도율 · 이주천광
76권 「노동등전(盧同等傳)」 77권 「송번등전(宋翻等傳)」 78권 「손소등전(孫紹等傳)」
노동 · 장열 송번 · 신웅 · 양심 · 양기 · 고숭 손소(孫紹) · 장보혜
79권 「성엄등전(成淹等傳)」 80권 「주서등전(朱瑞等傳)」
성엄 · 범소 · 유도부 · 유도빈 · 동소 · 풍원흥 · 녹여 · 장습 주서 · 질열연경 · 곡사춘 · 가현도 · 번자곡 · 하발승 · 후막진열 · 후연
81권 「기준등전(綦儁等傳)」 82권 「이염지등전(李琰之等傳)」
기준 · 산위 · 유인지 · 우문충지 이염지 · 조영 · 상경
83권 「외척전(外戚傳)」
하눌 · 유나신 · 요황미 · 두초 · 하미 · 여비 · 고조 · 우경 · 호국진 · 이연실
84권 「유림전(儒林傳)」
양월 · 노추 · 장위 · 양조 · 평항 · 진기 · 상상 · 유헌지 · 장오귀 · 유란 · 손혜울 · 서준명 · 동징 · 조충 · 노경유 · 이동궤 · 이흥업
85권 「문원전(文苑傳)」
원요 · 배경헌 · 노관 · 봉숙 · 형장 · 배백무 · 형흔 · 온자승
86권 「효감전(孝感傳)」
조염 · 장손려 · 걸복보 · 손익덕 · 동락생 · 양인 · 염원명 · 오실달 · 왕속생 · 이현달 · 장승 · 창발 · 왕숭 · 곽문공
87권 「절의전(節義傳)」
우십문 · 단진 · 석문덕 · 급고 · 왕현위 · 누제 · 유갈후 · 주장생 · 우제 · 마룡팔 · 문문애 · 조청 · 유후인 · 석조흥 · 소홍철 · 왕영세 · 호소호 · 손도등 · 이궤 · 장안조 · 왕려
88권 「양리전(良吏傳)」
장순 · 녹생 · 장응 · 송세경 · 노옹 · 염경윤 · 명량 · 두찬 · 배타 · 두원 · 양돈 · 소숙
89권 「혹리전(酷吏傳)」
우락후 · 호이 · 이홍지 · 고준 · 장사제 · 양지 · 최섬 · 역도원 · 곡해
90권 「일사전(逸士傳)」
휴과 · 풍량 · 이밀 · 정수
91권 「예술전(藝術傳)」
조숭 · 장연 · 은소 · 왕조 · 경현 · 유영조 · 강식 · 주담 · 이숙 · 서건 · 왕현 · 최욱 · 장소유
92권 「열녀전(列女傳)」
임성국태비
93권 「은행전(恩倖傳)」
왕예 · 왕증흥 · 구맹 · 조수 · 여호 · 조옹(趙邕) · 후강 · 정엄 · 서흘
94권 「엄관전(閹官傳)」
종애 · 구락제 · 단패 · 왕거 · 조묵 · 손소(孫小) · 장종지 · 극붕 · 장우 · 포억 · 왕우 · 부승조 · 왕질 · 이견 · 진송 · 백정 · 유등 · 가찬 · 양범
성궤 · 왕온 · 맹란 · 평계 · 봉진 · 유사일
95권 「유총등전(劉聰等傳)」
유총 · 석륵 · 유하 · 모용외 · 부건 · 요장 · 여광
96권 「사마예등전(司馬叡等傳)」 97권 「환현등전(桓玄等傳)」 98권 「소도성등전(蕭道成等傳)」
사마예 · 이웅 환현 · 풍발 · 유유 소도성 · 소연
99권 「장실등전(張實等傳)」
장실 · 걸복국인 · 독발오고 · 이고 · 저거몽손
100권 「고구려등전(高句麗等傳)」
고구려 · 백제 · 물길 · 실위 · 두막루 · 지두우 · 고막해 · 거란 · 오락후
101권 「저등전(氐等傳)」
저족 · 토욕혼 · 탕창강 · 고창 · 등지 · 만족 · 요족
102권 「서역전(西域傳)」
선선 · 차말 · 우전 · 백정 · 차사국 · 언기 · 쿠처 · 소륵 · 속특 · 파사 · 남천축 · 읍달
103권 「연연등전(蠕蠕等傳)」
연연 · 우문막괴 · 단질육권 · 고차
104권 「자서전(自序傳)」
위수
※ 105권 ~ 114권은 志에 해당. 위서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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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본기(本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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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위본기1(魏本紀一)」 2권 「위본기2(魏本紀二)」 3권 「위본기3(魏本紀三)」
탁발규 · 탁발사 탁발도 · 탁발황 · 탁발준(浚) · 탁발홍 원굉
4권 「위본기4(魏本紀四)」 5권 「위본기5(魏本紀五)」
원각 · 원후 원자유 · 원공 · 원랑 · 원수 · 원보거 · 원흠 · 원곽 · 원선견
6권 「제본기상(齊本紀上)」 7권 「제본기중(齊本紀中)」 8권 「제본기하(齊本紀下中)」
고환 · 고징 고양 · 고은 · 고연 고담 · 고위 · 고항
9권 「주본기상(周本紀上)」 10권 「주본기하(周本紀下)」
우문태 · 우문각 · 우문육 우문옹 · 우문윤 · 우문천
11권 「수본기상(隋本紀上)」 12권 「수본기하(隋本紀下)」
양견 양광 · 양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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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전(列傳)]
||<-4><tablewidth=100%><tablebgcolor=#000000> 13·14권 「후비전(后妃傳)」 ||
신원황후 · 봉황후 · 기황후 · 평문황후 · 소성황후 · 헌명황후 · 도무황후 · 선목황후 · 소애황후 · 명원밀황후 · 태무황후 · 경애황후
울구려황후 · 문명황후 · 문성원황후 · 헌문사황후 · 효문정황후 · 폐후 풍씨 · 효문유황후 · 효문고황후 · 우황후 · 고황후 · 호황후 · 효명황후 · 효무황후 · 문황후 · 도황후 · 우문황후 · 약간황후 · 효정황후 · 누소군 · 원황후 · 이조아 · 원황후 · 호황후 · 곡률황후 · 호황후 · 목야리 · 풍소련 · 원씨 · 질노씨 · 원호마 · 독고황후 · 아사나 · 이아자 · 양려화 · 주만월 · 진월의 · 원락상 · 울지치번 · 사마영희 · 독고가라 · 소황후
15권 「위제종실전(魏諸宗室傳)」
탁발흘나 · 탁발영문 · 탁발육 · 탁발인 · 탁발수낙 · 탁발퇴 · 탁발소연 · 탁발욱 · 탁발목신 · 탁발육수 · 탁발비간 · 탁발여 · 탁발고
탁발돈 · 탁발석 · 탁발위 · 탁발대두 · 탁발제 · 탁발처진 · 탁발니 · 탁발식군 · 탁발한 · 탁발준(遵) · 탁발건(健) · 탁발순 · 탁발의열 · 탁발굴돌
16권 「도무7왕·명원6왕·태무5왕전(道武七王·明元六王·太武五王傳)」
탁발소 · 탁발희 · 탁발요 · 탁발수 · 탁발처문 · 탁발연 · 탁발려(黎) · 탁발비 · 탁발미 · 탁발범 · 탁발건(健) · 탁발숭 · 탁발준(俊) · 탁발복라 · 탁발한 · 탁발담 · 탁발건(建) · 탁발여(余)
17·18권 「경목12왕전(敬穆十二王傳)」
탁발신성 · 탁발자추 · 탁발소신성 · 탁발천사 · 탁발만수 · 탁발낙후 · 탁발운 · 탁발정 · 탁발장수 · 탁발태락 · 탁발호아 · 탁발휴
19권 「문성5왕·헌문6왕·효문6왕전(文成五王·獻文六王·孝文六王傳)」
탁발장락 · 탁발략(略) · 탁발간(簡) · 탁발약(若) · 탁발맹 · 원희 · 원간(幹) · 원우 · 원옹 · 원상 · 원협 · 원순 · 원유 · 원역 · 원회 · 원열
20권 「위조등전(衛操等傳)」
위조 · 막함 · 유고인 · 울고진 · 목숭 · 해근 · 숙손건 · 안동 · 유업연 · 왕건 · 나결 · 누복련 · 염대비 · 해목 · 화발 · 막제 · 하적간 · 이율 · 해권
21권 「연봉등전(燕鳳等傳)」 22권 「장손숭등전(長孫嵩等傳)」
연봉 · 허겸 · 최굉 · 장곤 · 등언해 장손숭 · 장손도생 · 장손비
23권 「우율제전(于栗磾傳)」 24권 「최영등전(崔逞等傳)」
우율제 최영 · 왕헌 · 봉의
25권 「고필등전(古弼等傳)」
고필 · 장려 · 유결 · 구퇴 · 아청 · 이후 · 을괴 · 주기 · 두대전 · 거이락 · 왕낙아 · 거로두 · 노노원 · 진건 · 내대간 · 숙석 · 만안국
주관 · 울발 · 육진 · 여락발 · 설표자 · 울원 · 모용백요 · 화기노 · 순퇴 · 우문복
26권 「송은등전(宋隱等傳)」
송은 · 허언 · 조옹(刁雍) · 신소선 · 위랑 · 두전
27권 「굴준등전(屈遵等傳)」
굴준 · 장포 · 곡혼 · 공손표 · 장제 · 이선 · 가이 · 두근 · 이흔 · 한연지 · 원식 · 모수지 · 당화 · 구찬 · 역범 · 한수 · 요훤 · 유숭
28권 「육사등전(陸俟等傳)」 29권 「사마휴지등전(司馬休之等傳)」
육사 · 원하 · 유니 · 설제 사마휴지 · 유창 · 소보인 · 소정표
28권 「노현등전(盧玄等傳)」 29권 「고윤등전(高允等傳)」
노현 · 노부 고윤 · 고우 · 고덕정 · 고익 · 고앙
32권 「최감등전(崔鑒等傳)」 33권 「이령등전(李靈等傳)」
최감 · 최변 · 최정 이령 · 이순 · 이효백 · 이예 · 이의심
34권 「유아등전(游雅等傳)」
유아 · 고려 · 조일 · 호수 · 호방회 · 장담 · 단승근 · 감인 · 유연명 · 조유 · 색창 · 송요 · 강식
35권 「왕혜룡등전(王慧龍等傳)」 36권 「설변등전(薛辯等傳)」
왕혜룡 · 정희 설변 · 설치 · 설징
37권 「한무등전(韓茂等傳)」
한무 · 피표자 · 봉칙문 · 여나한 · 공백공 · 전익종 · 맹표 · 해강생 · 양대안 · 최연백 · 요훤 · 이숙인
38권 「배준등전(裴駿等傳)」 39권 「설안도등전(薛安都等傳)」
배준 · 배연준 · 배타 · 배과 · 배관 · 배협 · 배문거 · 배인기 설안도 · 유휴빈 · 방법수 · 필중경 · 양지
40권 「한기린등전(韓麒麟等傳)」 41권 「양파등전(楊播等傳)」
한기린 · 정준 · 이표 · 고도열 · 견침 · 장찬 · 고총 양파 · 양부양소
42권 「왕숙등전(王肅等傳)」 43권 「곽조등전(郭祚等傳)」 44권 「최광등전(崔光等傳)」
왕숙 · 유방(劉芳) · 상상 곽조 · 장이 · 형만 · 이숭 최광 · 최량
45권 「배숙업등전(裴叔業等傳)」
배숙업 · 하후도천 · 이원호 · 석법우 · 왕세필 · 강열지 · 순우탄 · 음중달 · 장당 · 이묘 · 유조 · 부영 · 부수안 · 장열 · 이숙표 · 노시경 · 방량
조세표 · 반영기 · 주원욱
46권 「손소등전(孫紹等傳)」
손소(孫紹) · 장보혜 · 성엄 · 범소 · 유도부 · 녹여 · 장요 · 유도빈 · 동소 · 풍원흥
47권 「원번등전(袁翻等傳)」 48권 「이주영전(爾朱榮傳)」
원번 · 양니 · 가사백 · 조영 이주영
49권 「주서등전(朱瑞等傳)」
주서 · 질열연경 · 곡사춘 · 가현도 · 번자곡 · 후심(2) · 하발승 · 후막진열 · 염현 · 양람 · 뇌소 · 모하 · 을불랑
50권 「신웅등전(辛雄等傳)」
신웅 · 양기 · 고도목 · 기준 · 산위 · 우문충지 · 비목 · 맹위
51·52권 「제종실제왕전(齊宗室諸王傳)」
고침 · 고악 · 고성 · 고영락 · 고현국 · 고사종 · 고언귀 · 고령산 · 고준 · 고엄 · 고유 · 고환(高渙) · 고육 · 북제 · 고식 · 고제 · 고응 · 고윤
고흡 · 고효유 · 고효연 · 고효완 · 고장공 · 고연종 · 고소신 · 고소덕 · 고소의 · 고소인 · 고소렴 · 고백년 · 고량 · 고언리 · 고언덕
고언기 · 고언강 · 고언충 · 고작 · 고엄 · 고곽 · 고정 · 고인영 · 고인광 · 고인기 · 고인옹 · 고인검 · 고인아 · 고인직 · 고인겸 · 고각 · 고선덕
고매덕 · 고질전
53권 「묵기보등전(万俟普等傳)」
묵기보 · 가주혼원 · 유풍 · 파륙한상 · 금조 · 유귀 · 채준 · 한현 · 울장명 · 왕회 · 임상 · 막다루대문 · 사적회락 · 사적성 · 장보락
후막진상 · 설고연 · 곡률강거 · 장경 · 요웅 · 송현 · 왕칙 · 모용소종 · 질열평 · 보대한살 · 설유의 · 모용엄 · 반락 · 팽락 · 포현 · 피경화
기연맹 · 원경안 · 독고영업 · 선우세영 · 부복
54권 「손등등전(孫騰等傳)」
손등 · 고융지 · 사마자여 · 두태 · 울경 · 누소 · 사적간 · 한궤 · 단영 · 곡률금
55권 「손건등전(孫搴等傳)」
손건 · 진원강 · 두필 · 두태 · 울경 · 장찬 · 장량 · 장요 · 왕준 · 왕굉 · 경현준 · 평감 · 당옹 · 백건 · 원문요 · 조언심 · 혁련자열 · 풍자종 · 낭기
56권 「위수등전(魏收等傳)」
위수 · 위장현 · 위계경 · 위난근
57권 「주종실전(周宗室傳)」
우문호 · 우문련 · 우문낙생 · 우문중 · 우문측 · 우문신거
58권 「주실제왕전(周室諸王傳)」
우문진 · 우문직 · 우문초 · 우문검 · 우문순 · 우문성 · 우문달 · 우문통 · 우문형 · 우문강 · 우문현 · 우문정 · 우문실 · 우문찬 · 우문지
우문윤(允) · 우문충 · 우문태(兌) · 우문원 · 우문연(衍) · 우문술(術)
59권 「구락등전(寇洛等傳)」 60권 「이필등전(李弼等傳)」
구락 · 조귀 · 이현 · 양어 이필 · 우문귀 · 후막진숭 · 왕웅
61권 「왕맹등전(王盟等傳)」
왕맹 · 독고신 · 두치 · 하란상 · 질열복귀 · 염경 · 사녕 · 권경산
62권 「왕비등전(王羆等傳)」 63권 「주혜달등전(周惠達等傳)」 64권 「위효관등전(韋孝寬等傳)」
왕비 · 왕사정 · 울지형 · 왕궤 주혜달 · 풍경 · 소작 위효관 · 위진 · 류규
65권 「달해무등전(達奚武等傳)」
강자일 · 약간혜 · 이봉 · 유량 · 왕덕 · 혁련달 · 한과 · 채우 · 상선 · 신위 · 사적창 · 양춘 · 양대 · 전홍
66권 「왕걸등전(王傑等傳)」
왕걸 · 왕용 · 우문규 · 경호 · 고림 · 이화 · 이루목 · 달해식 · 유웅 · 후식 · 이연손 · 위우 · 진흔 · 위현 · 천기 · 이천철 · 양건운 · 부맹 · 양웅 · 석고 · 임과
67권 「최언목등전(崔彥穆等傳)」 68권 「두로녕등전(豆盧寧等傳)」
최언목 · 양찬 · 단영 · 배과 · 당영 · 류민 · 왕사량 두로녕 · 양소(楊紹) · 왕아 ,왕세적한웅 · 하약돈
69권 「신휘등전(申徽等傳)」
신휘 · 육통 · 사적치 · 양천 · 왕경 · 조강 · 조창 · 왕열 · 조문표 · 양대 · 원정 · 양표
70권 「한포등전(韓襃等傳)」
한포 · 조숙 · 장궤 · 이언 · 곽언 · 양흔 · 황보번 · 신경지 · 왕자직 · 두고 · 여사례 · 서초 · 단저 · 맹신 · 종름 · 유번 · 류하
71권 「수종실제왕전(隋宗室諸王傳)」
양정 · 양찬 · 양상 · 양홍 · 양처강 · 양자숭 · 양용 · 양준 · 양수 · 양량 · 양소(楊昭) · 양간 · 양고
72권 「고경등전(高熲等傳)」
고경 · 우홍 · 이덕림
73권 「양사언등전(梁士彥等傳)」
양사언 · 원해 · 우경칙 · 원주 · 달해장유 · 하루자간 · 사만세 · 유방(劉方) · 두언 · 주요 · 독고개 · 걸복혜 · 장위 · 화홍 · 음수 · 양의신
74권 「유방등전(劉昉等傳)」
유방(劉昉) · 유구 · 황보적 · 곽연 · 장형 · 양왕 · 배온 · 원충 · 이웅
75권 「조경등전(趙煚等傳)」
조경 · 조분 · 왕소 · 원암 · 우문필 · 이누겸 · 이원통 · 곽영 · 방황 · 이안 · 양희상 · 장경 · 소효자 · 원수
76권 「단문진등전(段文振等傳)」
단문진 · 내호아 · 번자개 · 주나후 · 주법상 · 위현 · 유권 · 이경 · 설세웅
77권 「장정화등전(張定和等傳)」
배정 · 이악 · 포굉 · 고구 · 영비 · 육지명 · 양비 · 유욱 · 조작 · 두정
78권 「장정화등전(張定和等傳)」
장정화 · 장윤 · 맥철장 · 권무 · 왕인공 · 토만서 · 동순 · 어구라 · 왕변 · 진릉 · 조재
79권 「우문술등전(宇文述等傳)」
우문술 · 왕세충 · 단달
80권 「외척전(外戚傳)」
하눌 · 요황미 · 두초 · 하미 · 여비 · 풍희 · 이혜 · 고조 · 호국진 · 황보집 · 양등 · 을불회 · 조맹 · 호장인 · 여씨
81·82권 「유림전(儒林傳)」
양월 · 노추 · 장위 · 양조 · 평항 · 진기 · 유헌지 · 장오귀 · 유란 · 손혜울 · 서준명 · 동징 · 마자결 · 이흥업 · 양원의 · 풍위 · 장매노 · 유궤사
포계상 · 형치 · 유주 · 마경덕 · 장경인 · 권회 · 장사백 · 장조무 · 곽준 · 심중 · 번심 · 웅안생 · 악손 · 기준 · 조문심 · 신언지 · 하타 · 소해 · 포개 · 방휘원 · 마광 · 유작 · 유현 · 저휘 · 고표 · 노세달 · 장충 · 왕효적
83권 「문원전(文苑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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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권 「효행전(孝行傳)」
장손려 · 손익덕 · 동락생 · 양인 · 염원명 · 오실달 · 왕속생 · 이현달 · 장승 · 창발 · 왕숭 · 곽문공 · 형가 · 진족 · 영선 · 황보하 · 장원
왕반 · 양경 · 전익 · 유인 · 유사준 · 적보림 · 화추 · 서효숙
85권 「절의전(節義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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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권 「혹리전(酷吏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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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권 「은일전(隐逸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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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90권 「예술전(藝術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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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권 「열녀전(列女傳)」
난릉공주 · 남양공주 · 초국부인
92권 「은행전(恩倖傳)」
왕예 · 왕중흥 · 조수 · 여호 · 조옹(趙邕) · 후강 · 구락제 · 왕거 · 조묵 · 손소(孫小) · 장종지 · 극붕 · 장우 · 포억 · 왕우 · 부승조 · 왕질 · 이견 · 유등 · 가찬 · 양범 · 성궤 · 왕온 · 맹란 · 평계 · 봉진 · 유사일 · 곽수 · 화사개 · 안토근 · 목제파 · 고아나굉
93권 「참위부용전(僭偽附庸傳)」
혁련발발 · 모용외 · 요장 · 풍발 · 걸복국인 · 저거몽손 · 소찰
94권 「고려등전(高麗等傳)」
고려 · 백제 · 신라 · 물길 · 해족 · 거란 · 실위 · 두막루 · 지두우 · 오락후 · 류구 · 왜국
95권 「만등전(蠻等傳)」
만족(蠻) · 요족(獠) · 임읍 · 적토 · 진랍 · 파리
96권 「저등전(氐等傳)」
저족 · 토욕혼 · 탕창 · 등지국 · 당항 · 부국 · 계호국
97권 「서역전(西域傳)」
선선 · 포산국 · 실거반 · 권우마국 · 차사국 · 우전국 · 고창 · 차미 · 언기 · 구차 · 고묵국 · 온숙국 · 울두국 · 오손국 · 소륵국 · 열반국 · 토호라
소월씨 · 아구강국 · 속특국 · 파사국 · 복로니국 · 색지현 · 가색니국 · 고창 · 차미 · 여국
98권 「연연등전(蠕蠕等傳)」
연연 · 우문막괴 · 단질육권 · 고차
99권 「돌궐등전(突厥等傳)」
돌궐 · 철륵
100권 「자서전(自序傳)」
이연수
(1) 본명이 장연(張淵)으로 당고조 이연(李淵)을 피휘하여 심(深)으로 개칭되었다.
(2) 본명이 후연(侯淵)으로 당고조 이연(李淵)을 피휘하여 심(深)으로 개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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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충렬후(河陽忠烈侯)
李苗 | 이묘
<colbgcolor=#dc143c> 시호 충렬후(忠烈侯)
작호 하양현 개국후(河陽縣開國侯)
이(李)
묘(苗)
자선(子宣)
생몰 485년 ~ 530년 11월 18일
부친 이응(李膺)
본관 재동군(梓潼郡) 부현(涪縣)
자녀 이담(李曇)
국적 소량북위
1. 개요2. 생애

1. 개요

북위의 인물. 부친 이응(李膺)은 소량무제 소연 밑에서 상서랑과 태복경을 지냈다.

2. 생애

이묘는 숙부 이략(李略)을 따랐는데, 당시 이략은 양나라에서 녕주자사(寧州刺史)가 되어 위세와 명성을 크게 떨치고 있었다.

천감 4년(505년) 7월, 위나라의 익주자사(益州刺史) 왕족이 부성(涪城)을 포위했을 때, 소연이 이략에게 부성에서 왕족을 막도록 명하면서 익주(益州)를 주겠다고 약조하였다. 그러나 몇 개월 뒤에 왕족이 스스로 물러나니, 소연이 곧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이략이 노하여 딴 마음을 품으려 하자 소연이 사람을 보내 그를 해쳤다. 당시 이묘의 나이는 15세였으나, 원수를 갚고 치욕을 씻으려는 마음을 가졌고, 연창 연간(512년 ~ 514년)에 마침내 위나라로 귀순하여 촉(蜀)을 도모할 계책을 올렸다.

연창 3년(514년) 11월, 대도독 고조가 촉을 정벌할 때, 조서를 내려 이묘를 가 용양장군(假龍驤將軍) 및 향도통군(鄉導統軍)으로 삼았다. 그러나 군대가 진수(晉壽)에 머물렀을 때, 선무제가 갑자기 붕어하여 회군하였다. 그리고 나중에 귀순한 자들의 전례에 따라 원외산기시랑(員外散騎侍郎)에 임명되었고 양위장군(襄威將軍)이 더해졌다.

이묘는 문무의 재능을 갖추었으나, 큰 공을 이루지 못하고 집안의 치욕을 씻지 못한 것을 항상 비통하고 분개해 하였다. 이에 상소하여 말하기를,
"옛날 진(晉)나라 왕실의 운수가 다하여 중원과 오랑캐가 솥 안의 물처럼 끓어올랐고, 삼연(三燕)과 이진(二秦)이 중원에서 날뛰었으며, 천하가 무너지고 사방이 찢어지고 갈라졌습니다. 황실의 업이 천명을 이어받아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와 간웅들을 소탕하고 하남과 낙양에 도읍을 정하였으나, 오직 형주(荊州)와 양주(揚州)만이 아직 그 교화에 가로막혀 있습니다. 이제 훌륭한 덕이 강한(江漢)에 널리 퍼지고, 위풍이 멀리 오초(吳楚)에 떨치고 있으며, 나라는 부유하고 군대는 강하며 집집마다 넉넉하고 사람마다 풍족합니다. 천하의 대부분을 차지한 형세로 약한 자를 병합하고 어리석은 자를 공격할 기세가 있음에도 편안함만을 즐기려 하여 자손들에게 우환을 남겨주는 것은 고조(高祖)의 본래 뜻을 어기는 것이니 사직을 위한 깊은 배려가 아닙니다. 진실로 동서로 국경 방비의 경중을 헤아리고, 변방의 험난함과 안위의 이치를 계산하며, 남쪽 사람들의 공수와 엿보는 정황을 탐지하고, 병사와 무기 등 정벌의 대비를 계산한 뒤에 우리의 단점을 버리고 저들의 장점을 피하며 지극히 어려운 곳은 내버려 두고 매우 쉬운 곳을 공격하여, 그 험난한 요지를 빼앗고 기름진 땅을 점령한다면 수년 안에 형주와 양주를 병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저들이 배를 버리고 평원으로 나오며 뒤를 거두고 앞을 소홀히 한다면 이는 저들의 단점이 될 것이지, 우리가 수레와 말을 버리고 파도 위를 떠다니며 물결을 타고 쫓고 쫓기는 것은 중원의 장점이 아닙니다. 저들이 감히 평지로 들어와 세력을 다투지 못함은 마치 우리가 거대한 강을 건너 이익을 취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서로가 단점을 버리고 각자의 장점에만 의지한다면 동남쪽을 멸망시킬 기회가 보이지 않을 것이며, 회수(淮水)와 면수(沔水)에서 서로 버티는 형세만 계속될 것입니다.

또한 차면 기우는 것은 음양의 변치 않는 이치이며, 성하고 쇠함이 번갈아 이어지는 것은 오행의 운행입니다. 지금 지극히 강한 군대로 지극히 약한 자를 공격함은 반드시 병합하게 되는 이치이니, 만일 지극히 약한 상태로 지극히 강한 자를 막아내려 한다면 어찌 온전히 구제될 방책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명군(明王)과 성주(聖主)는 모두 때맞춰 공을 세워 만세의 업을 이루고자 했습니다. 높은 곳을 버리고 낮은 곳으로 나아가기에 모든 강물이 항상 흐를 수 있는 것이요, 쉬운 것을 취하고 어려운 것을 피하기에 병법에서는 항상 승리하는 것입니다. 지금 파촉(巴蜀)은 외로이 떨어져 있고, 건업(建鄴)과의 거리도 매우 멀며, 소수의 군사가 홀로 지키고, 거슬러 흐르는 물길은 만 리나 되며, 수령들은 어질지 못하여 오로지 약탈을 일삼고, 관직은 재물로 나아가며, 형벌은 뇌물로 판가름 나니, 교화를 바라는 백성이 열 집 가운데 아홉이라 목을 길게 빼고 북쪽을 바라보며 나날이 조정의 군대가 오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만약 한 명의 장수에게 명하여 백성을 위로하고 죄를 벌하게 하신다면 전쟁의 먼지가 일기도 전에 격문만으로도 평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백제(白帝)의 험난함을 지키고, 상류의 요해처를 점거하며, 선정을 베푼 자취를 따르고 건업의 무리를 소탕한 연후에 무기를 거두고 문치를 닦으며 예악을 제정한다면 천하에 매우 다행한 일이니 어찌 성대하지 않겠습니까!"
하였다. 그러나 당시에 효명제는 나이가 어려 원대한 전략을 세울 뜻이 없었으므로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광 5년(524년) 6월, 막절념생(莫折念生)이 천자를 자칭하며 진주(秦州)에서 반란을 일으켜 그 폐해가 삼보(三輔)에까지 미쳤다. 당시는 평화가 오래 지속되어 백성들이 전쟁에 익숙하지 않았다. 이묘는 농(隴) 땅의 병사들이 강인하고 사나우나, 무리가 모여 있을 뿐 물자가 없다고 여겨 상소하여 말하였다.
"신이 듣기에 먹을 것이 적고 군사가 정예하면 속전속결하는 것이 유리하고, 식량이 많고 군사가 많으면 일을 장기전으로 끌고 가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지금 농(隴) 땅의 적들이 미쳐 날뛰고 있으나 평소에 비축해 둔 것이 없으며, 비록 두 성을 점거하고 있으나 본래 덕과 의리가 없습니다. 그들의 기세는 빠른 공격에 달려 있어 날마다 항복해 오는 자들이 있으나, 지체되면 인심이 멀어지고 가로막혀 앉아서 붕괴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무릇 폭풍이 불고 바람이 일어나는 듯한 기세로 반역하는 자들은 만에 하나의 공을 구하는 것으로, 조정의 군대가 벽을 높이고 보루를 깊게 하면 온전히 제압할 방책이 있습니다. 다만 천하가 오랫동안 태평하여 사람들이 병법을 알지 못하니, 이익을 쫓을 때는 서로 기다려주지 않고 난을 피해 달아날 때는 서로 돌아보지 않으며, 장수는 법령이 없고 병사들은 훈련되지 않았습니다. 교만한 장수로 게으른 병사들을 거느리면서 장구한 계책은 생각하지 않고 기(奇)와 정(正)의 통함에만 힘쓰니, 반드시 막오(莫敖)처럼 적을 가볍게 여기는 마음은 있어도 조충국(趙充國)처럼 신중하게 기회를 기다리는 규범은 없을까 두렵습니다. 지금 만약 농동(隴東)을 지키지 못하고 견(汧) 땅의 군대가 패하여 흩어지면, 곧 이진(二秦)이 마침내 강성해지고 삼보(三輔)가 위태롭고 약해져서 나라의 오른팔이 여기서 끊어지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마땅히 대장군을 단속하여 도랑을 깊게 파고 보루를 높여 굳게 지키기만 하고 싸우지 말아야 합니다. 따로 편사(偏師)의 정예 병사 수천 명에게 명하여 맥적애(麥積崖)로 나가 그 뒤를 습격하게 한다면, 견(汧)과 기(岐) 아래에서 요사스러운 무리가 스스로 흩어질 것입니다."
이에 효명제는 이묘를 통군(統軍)으로 삼는다는 조서를 내리고, 별장 순우탄과 함께 양주(梁州)와 익주(益州)로 나가 행대(行臺) 위자건(魏子建)에게 예속되게 하였다. 위자건은 이묘를 낭중(郎中)으로 삼고 그대로 군사를 거느리게 하였으며, 그를 매우 깊이 알아주고 대우하였다.

효창 연간(525년 ~ 528년)에 이묘는 조정으로 돌아와 진원장군(鎮遠將軍) 및 보병교위(步兵校尉)가 되었다. 얼마 후, 겸상서우승(兼尚書右丞)과 서북도행대(西北道行臺)가 되었고, 대도독 종정진손(宗正珍孫)과 함께 분(汾)과 강(絳)의 촉적(蜀賊)들을 토벌하여 평정하였다. 그리고 돌아와 사도 사마(司徒司馬)에 임명되었다가, 태부소경(太府少卿)으로 옮겼으며, 용양장군(龍驤將軍)이 더해졌다.

영안 3년(530년) 9월, 당시 양나라의 파서(巴西) 백성인 하난위(何難尉) 등 호족들이 앞다투어 위나라 조정에 파촉(巴蜀) 사이를 정벌하기를 청하니, 효장제는 조서를 내려 이묘를 통직산기상시(通直散騎常侍)·관군장군(冠軍將軍)·서남도위로대사(西南道慰勞大使)로 삼았다. 이묘가 출발하기 전 마침 천주대장군 이주영이 효장제에 의해 살해되자, 이주영의 사촌동생 이주세륭(爾朱世隆)이 이주영의 부곡(部曲)을 거느리고 하교(河橋)를 점거한 채 도읍으로 압박해 들어왔다. 효장제가 친히 대하문(大夏門)에 행차하여 여러 신하를 모아 폭넓게 논의했으나, 백관이 두려워 떨며 계책을 내놓지 못했다. 그때 이묘가 홀로 옷깃을 떨치며 일어나 말하였다.
"어리석은 도적들이 이처럼 당돌하여 조정에 예측할 수 없는 위기가 닥쳤으니, 지금이야말로 충신과 열사가 절개를 바칠 때입니다! 신이 비록 무용(武勇)은 없으나, 마음속으로 사모하는 바가 있으니, 청컨대 한 무리의 군사로 폐하를 위해 곧장 하교를 끊어버리겠습니다!"
성양왕 원휘, 어사중위 고도목(高道穆)이 그 계책에 찬성하자, 효장제가 그의 기개를 장하게 여겨 이를 허락하였다.

영안 3년(530년) 10월 13일[1], 이묘는 마저(馬渚) 상류에서 사람들을 모집하여 수군을 거느리고 밤에 내려갔는데, 하교에서 수 리 떨어진 곳에서 곧 화선(火船)을 풀어놓으니 물살이 빨라 순식간에 다다랐다. 적들이 남쪽 강가에서 불 붙은 배들이 내려오는 것을 보고 서로 다투어 하교로 몰려들었는데, 순식간에 하교가 끊어지니 물에 빠져 죽은 자가 매우 많았다. 이묘가 몸소 100여 명의 병사를 거느리고 소저(小渚)에 정박하여 남쪽의 원군을 기다렸으나, 관군이 도착하지 않자 적들이 물을 건너와 이묘와 사투를 벌였다. 적은 수로 많은 적을 대적할 수 없어 좌우의 병사들이 모두 죽자, 이묘는 강물에 몸을 던져 사망하였다. 향년 46세. 그가 죽던 날에 조정과 민간에서 이를 비장하게 여겼다. 효장제가 이묘의 죽음을 듣고 오랫동안 슬퍼하며 말하였다.
"이묘가 만약 죽지 않았다면 분명 다시 기이한 공을 세웠을 것이다."
사후 사지절(使持節)·도독양·익·파·동량4주제군사(都督梁益巴東梁四州諸軍事)·거기대장군(車騎大將軍)·의동삼사(儀同三司)·양주자사(梁州刺史)·하양현 개국후(河陽縣開國侯)로 추증되었고, 식읍 1,000호를 하사받았으며, 비단 500필과 곡식 500석을 부의로 받았다. 시호는 '충렬후(忠烈侯)'라 하였다.

이묘는 젊어서부터 절개가 있었고 공명(功名)을 숭상하는 뜻을 품었다. 매번 《촉서(蜀書)》를 읽다가 위연이 장안(長安)으로 나갈 것을 청했으나 제갈량이 허락하지 않은 대목을 보면, 항상 탄식하며 제갈량에게 기발한 계책이 없었다고 말했다. 또, 〈주유전(周瑜傳)〉을 볼 때면 감탄하며 마지않은 적이 없었다. 태보 성양왕 원휘와 사도 임회왕 원욱이 그를 중히 여겼는데, 두 왕이 간혹 화목하지 못하자 이묘가 매번 그들을 간하였다. 특히 원휘는 황제로부터 받는 총애와 권세가 지극히 높아지면서 시기하고 의심함이 더욱 심해졌는데, 이묘가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성양왕의 벌 같은 눈은 예전부터 보였으나, 승냥이 같은 목소리가 이제 더욱 드러나는구나."
라고 하였다. 또한, 이묘는 거문고를 탈 줄 알았고, 문장과 시를 읊조리는 것을 좋아했으며, 편지를 쓰는 실력은 당대에 미칠 자가 드물었다.

관군이 마침내 패하여 효장제가 유폐되어 붕어하고 이주세륭이 낙양에 들어오자, 담당 관리가 이묘의 추증과 봉작에 관한 일을 이주세륭에게 보고하였다. 그러자 이주세륭이 말하기를,
"우리가 그때 논의하기를 하루 이틀만 더 지나면 곧 병사들을 크게 풀어 도읍을 불태우고 마음대로 노략질하게 하려 하였으나, 이묘 덕분에 경사(京師)가 온전할 수 있었다. 그는 천하의 선한 선비이니, 그의 영예를 거두어선 안 된다."
라고 하였다.

아들 이담(李曇)은 작위를 물려받았다. 무정(武定) 말기에 기주(冀州) 의동부(儀同府)의 형옥참군(刑獄參軍)을 지냈다. 북제가 들어서자 작위가 관례에 따라 강등되었다.


[1] 경술년 정해월 을묘일. 음력으로는 10월 13일이고, 양력으로 11월 18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