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4 19:47:26

제1공화국(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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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12121> MBC 정치드라마
제1공화국 (1981~1982)
第一共和國/ The First Republic
파일:1공 메인타이틀.png
방영 기간 1981년 4월 2일 ~ 1982년 2월 11일
방영 시간 목요일 / 오후 09: 55
방영 채널 MBC
방영 횟수 39부작
음성 2채널 스테레오 사운드 (아날로그)
자막 폐쇄 자막 방송
디지털 방송 SD 제작 및 방송
제작사 MBC 자체제작
출연진 최불암, 이영후, 박규채, 국정환
해설 김종성
제작진 기획 표재순
극본 김기팔[1]
연출 고석만, 이연헌[2]
조연출 황인뢰
음악 조문형
기술감독 홍환식
미술감독 김건일
촬영 김명균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1. 개요2. 등장인물
2.1. 정권 주요 인물2.2. 이승만 가족2.3. 야당 주요 인물2.4. 해방기 정치인2.5. 경찰, 군인, 법조계 관련 인물
2.5.1. 군인2.5.2. 경찰2.5.3. 법조계
2.6. 깡패2.7. 북한 공산당 관련 인물
2.7.1. 공산당이 아닌 북한인
2.8. 친일파2.9. 일본인2.10. 소련인2.11. 기타 인물
3. 기타4. 드라마 부제

[clearfix]

1. 개요


MBC의 정치 드라마 공화국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 제1공화국을 소재로 하였다. 물론 스토리는 1945년 8.15 광복 이후 미군정 시절부터 시작해 1960년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까지 약 15년 간의 한국 정치상황을 다뤘다. 관련 영상

1981년 4월 2일에 시작하여 이듬해 1982년 2월 11일에 39회로 종결되었다. 당시는 제5공화국이 출범한 지 얼마 안된 시점으로 이런 장르의 드라마를 만드는 것은 큰 모험이나 다름 없었으며, 실제로 연출자 고석만과 작가였던 김기팔이 남산 구경을 다녀온 적도 있다. 해설은 격동 50년으로 유명한 김종성.

공화국 드라마 시리즈 중 제3공화국과 함께 한자 로고를 사용하였으며 다음작인 제2공화국부터는 한글 로고로 나온다. 또 80년대 초중반 당시의 특성상 오프닝 장면에서 나오는 제공 자막이 특정 회사의 로고와 이름이 하나씩 나오는 식이었던[3] 유일한 공화국 시리즈 작품이다.

2. 등장인물

2.1. 정권 주요 인물

2.2. 이승만 가족

2.3. 야당 주요 인물

2.4. 해방기 정치인[28]

2.5. 경찰, 군인, 법조계 관련 인물[33]

2.5.1. 군인

2.5.2. 경찰

  • 강용수[39]: 송경철(1인 3역)
  • 이후성[40]: 나영진(1인 2역)
  • 김장흥: 임채무(1인 2역)
  • 장택상 부하 경찰: 박상조(1인 4역)
  • 여운형 암살범을 쫓는 경찰: 이창환(1인 4역)
  • 경찰서장 1: 송기윤(1인 3역)
  • 김호익[41]: 유판웅

2.5.3. 법조계

2.6. 깡패

2.7. 북한 공산당 관련 인물

2.7.1. 공산당이 아닌 북한인

2.8. 친일파[58]

2.9. 일본인

2.10. 소련인

2.11. 기타 인물

3. 기타

  • 본 드라마의 탄생은 당시 MBC 사장이던 이진희의 지시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서울신문 주필 시절 전두환에 대한 찬양을 담은 여러 기사를 쓰며 전두환의 눈에 들면서 1980년 MBC의 사장으로 영전하게 되었는데, 비록 낙하산 인사이긴 했어도 이진희 자신은 학창시절 영화감독이 꿈일 정도로 영화를 좋아했고 방송 등 영상매체에 대한 감각도 대단하여 MBC 내 젊은 PD들은 이진희를 아주 싫어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 와중에 이진희는 1981년 봄철 프로그램 개편을 앞두고 TV국 측에 드라마와 쇼에 시청자들 이목을 끌 수 있는 킬러 콘텐츠를 하나씩 만들라는 지시를 내렸고, 그렇게 신설된 프로그램이 본 드라마와 대형 쇼 프로인 쇼2000[85]이었다.
  • 시놉시스 단계에서의 드라마 가제는 TV 정계야화 였는데 그 전해인 1980년 언론통폐합으로 사라진 동아방송의 인기 라디오 정치드라마 였던 정계야화의 아류작이라는 오해를 우려한 고석만 PD는 김기팔 작가와 의논 끝에 제1공화국 이란 제목을 내놓았고, 그대로 확정되었다고 한다.
  • 당대 드라마 제작환경 특성상 자체 제작한 BGM 대신 미국 드라마나 영화음악 등을 임의로 차용했다.(#1, #2, #3)
  • <TV가이드> 1982년 2월 20일(제31호) 기사에 따르면 고석만 PD와 김기팔 작가는 제작 진행상 편견 등이 내포될까봐 당시 생존한 실존인물이나 극중 등장인물들의 유족, 측근 등을 만나지 않는 대신, 배역을 맡은 배우들이 실제 인물들의 측근을 만나 그들이 모신 인물들의 풍모와 일화를 듣고 연기에 참고토록 했다고 한다.[86] 담당 분장사였던 박수명(1938~2022)[87]이 동 잡지 1981년 7월 18일자(창간호) 인터뷰 기사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실제 인물을 재현하는 과정에서 난제가 많았다고 한다. 그는 분장 전부터 실존 인물들의 사진과 MBC 전속 탤런트들의 사진을 대조해가며 골라냈고, 이승만 역을 맡았던 최불암의 경우 실제 이승만의 노인이면서도 고고한 인상과는 다른 텁텁하고 서민적인 인상이라 막상 난색을 표했다가, 분장 시엔 최불암의 머리를 최대한 짧게 자르고 흰 물감으로 백발을 만들었으며, 머리를 넓게 보이려고 머리칼을 약간 부풀게 붙인 후 눈과 눈썹을 작게 표현했다.[88]
    장택상 역의 이정길은 안경과 콧수염을 강조한 분장, 장택상을 연상할 수 있는 소도구 응용법이라 쉬웠고, 김구 역의 이영후는 골격이 젊은 시절의 김구와 닮은 데다 이기붕 역의 박규채는 눈썹만 아래로 처지게 한 것 빼곤 거의 터치하지 않아서 상대적으로 쉬웠으나, 조병옥 역의 김무생은 이마가 넓은 호랑이 상의 실제 모습과는 다른 인상이라 최대한 고증에 맞춰 분장을 하기에 너무 어려워서 능력껏 분장한 후, 나머지는 그 배우의 연기에 맡기게 됐다고 한다. 그 외에 김두한 역의 강인덕은 뺨 위에 얇은 섬유질을 입혀 곰보자국을 내서 거세게 만들었고, 성격이 억센 사람들의 머리칼도 억세서 머리에 포마드를 발라서 그 광택으로 효과를 내게 했다.
    한 미국인 배우가 맡은 이오시프 스탈린 분장의 경우, 그 배역을 맡은 사람의 머리색이 노랑색이라서 실제 스탈린의 검은 머리를 재현코자 사극용 가발을 분해해서 특수 접착제를 발라 그 배우의 머리에 듬성듬성 이식해줬고, 김일성 역의 국정환은 무식하고 천박한 모습을 강조시키려고 우스꽝스럽게 분장시켰다.[89]
  • 최불암이승만 연기는 이 드라마 이후로 하나의 전형이 되었다. 무슨 이야기냐면 최불암의 이승만 연기 자체가 표본이 되어, 이후 이승만 역을 맡는 배우들이 이승만 본인이 아닌, 최불암의 이승만 연기를 모방하게 되었다는 것.[90]
  • 백범 김구로 출연한 이영후는 상당히 높은 싱크로율로 화제를 모았다. 이미 그 전에 MBC 탤런트가 되고 방송국 내부에서 어떤 높으신 분을 마주쳤는데 처음 들은 말이 "백범이로구먼" 이었다고. 더군다나 처조부(아내의 할아버지)가 임시정부 시절 법무장관 겸 국무위원을 지낸 박찬익 선생이고 아내의 숙모, 즉 박찬익 선생의 며느리 역시 김구 선생을 모셨던 인연이 있어 더욱 각별하게 김구 선생 생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한다. 그야말로 운명적인 배역. 이후 2009년 KBS 국권피탈 100년 특별기획 드라마 〈자유인 이회영〉까지 약 30여년 간 각종 드라마에서 백범 역을 도맡았고, 백범기념사업에도 관여하고 있다. 사망전대 익스프레스 1등석 탑승 완료
  • 이기붕 역의 박규채는 이승만 역의 최불암하고는 서로 이름을 부를 정도로 친한 사이이긴 하나, 일단 스튜디오에 들어와 연기에 임하면 극중 시점의 위계질서에 따르고자 존댓말을 쓰며 얼굴이 통통해지지 않으려고 녹화 전날부터 금식을 했고, 이기붕의 생전 육성녹음 테이프를 구해다 청취해가면서 연기에 참고하려고 했다.
  • 고석만 PD와 김기팔 작가가 기관구경을 간 이유는 '여간첩 김수임' 방영 당시 '이강국과 와인을 마시고 사랑놀음을 하는 것이 간첩의 행위에 어울리지 않는다'나... 그래서 연출도 바뀌었고, 극의 방향도 다소 느슨해졌다. 참고로 이 듀오는 1991년 드라마 〈〉으로 재결합했지만 정권의 외압으로 15회만에 조기종영 당했다. 이후 김기팔 작가는 그 스트레스를 술로 달래다 1991년 12월 24일 55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 이승만 대통령 취임식은 한국 방송 역사상 최초로 중앙청에서 촬영한 것.[91] 당시는 더군다나 국립중앙박물관이 되기도 전인, 실제 정부에서 청사로 사용하고 있을 때였다.[92] 주 · 조연 합쳐 배우 50여명, 외국인이 23명, 그리고 엑스트라는 무려 400명이 동원되었으며 제작팀은 이 장면을 위해 의상비만 1,000만원, 단상의 고급의자는 손수 제작한 것을 1세트 당 800만원, 이외 기타 비용 등 총 2,200만원을 들였다. 이승만의 승용차로 나온 링컨 컨티넨탈은 비행기 정비사 에드워드 핑클레턴의 것을 빌렸다.
  • 김구 선생 장례식 촬영은 당시 MBC가 정동에 경향신문사와 같이 있었기 때문에 당시 사옥부터 서울시립미술관(그때는 대 · 고등법원 자리)에 이르는 정동길에서 진행했다. 이 때 동원된 엑스트라는 무려 1,000명(요즘 사극에 비할 바가 아니다!). 군중으로 출연하는 엑스트라들은 소복, 손수건 등을 자신들이 알아서 직접 준비해왔으며 통곡하는 장면도 연습없이 진행될 정도로 완벽하게 촬영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 당시 MBC-TV 전속이었던 남성 연기자가 이대근 빼고 전원 출연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이대근은 후속작인 〈제3공화국〉 ~ 〈제4공화국〉에 차지철 역으로 출연하였다.[93] 여자 연기자 중에서는 김혜자, 김용림, 김영애, 김자옥, 김영란 정도만이 출연하지 않았다. 이걸로도 모자랐던지 최남현, 최삼, 고설봉, 최봉, 강계식, 최명수, 박인환, 권성덕 같은 영화/연극배우와 성우, 외국인들까지 끌어들였다. <TV가이드> 1982년 2월 20일(제31호) 기사에 따르면 출연진들 중 최다역 출연자는 박상조인데, 제38회의 연기분과위원장을 비롯 김상돈, 이선근, 형사 등 총 4회 중복 출연 기록을 남겼다. 외국인 연기자들은 드라마 특성상 연인원 400여명이며 이들 중 어느 현역 주한미군 중령이 하지 군정장관 역을 자청했고, 프란체스카 영부인 역은 담당 연기자의 귀국으로 총 3번이나 바뀐 탓에 이승만 역의 최불암은 "미국 마누라들과 원없이 살았다"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외국인 출연자들의 통역은 영어 회화에 능숙한 김구 역의 이영후가 맡아 왔는데, "좀 쉴만 하면 사람이 바뀌는 바람에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며 고충을 토로했고, 그의 능숙한 영어회화 능력 덕에 외국인 출연자들은 줄곧 그를 따라다녔다고 한다.[94]
  • 1950년대 자유당의 부정부패와 1960년의 3.15 부정선거4.19 혁명 과정이 적게 언급되거나 아예 생략되었다. 전두환 정권 초기에도 박정희 시절 관련 비사가 언론매체에 소개되는 등 어느 정도 자유로웠지만, 아직 그런 주제를 다루는 것이 위험해서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95] 마지막회 해설에서도 '훗날 다른 누군가가 더 자세하게 재현해줄 것이라고 믿는다'고 외부의 압력을 암시하는 말을 했고 위에서 언급했듯이 간첩의 사랑을 다뤘다고 고석만 PD가 국가안전기획부에 연행되었을 정도였으니. 그래서 후반부로 가면 주제들이 '박인수 사건', '김두한과 이정재', '연예인단과 임화수' 등 정치 외적인 부분들이 많아지며 당시 신문에서도 이를 비판했다.[96], 특히 김두한과 이정재편에서 싸움 장면만 계속 나오자 "제1공화국을 보고 계시는 중입니다."라는 자조적인 나레이션이 나오기도 한다. 이 때 생략된 주제들은 후속작 〈제2공화국〉에서 심도있게 선보였다.
  • 주제곡은 에런 코플런드가 작곡한 〈보통사람을 위한 팡파르(Fanfare for the Common Man)〉. 드라마 덕에 널리 유명해졌다. 역대 공화국 시리즈 메인 주제곡 중 유일하게 처음부터 드라마에 삽입하려 만든 게 아닌, 이미 시중에 나온 곡을 사용한 것이다. 물론 해당 음악은 어레인지 버전이 이듬해인 1982년부터 1988년 2월까지 〈KBS 뉴스 9〉의 헤드라인 음악으로 사용되며 땡전뉴스의 상징곡 중 하나로 전락하는 불명예도 지니게 되었다(...) 오프닝 장면도 드라마 장면 혹은 출연 배우나 미니어처가 아닌 유일하게 실제 인물들의 활동이 담긴 사진을 사용했다.
  • 김두한 역의 강인덕은 실제 김두한의 딸이자 연기 선배인 김을동으로부터 연기 면에서 도움을 받았고, 남대문시장 중고 옷가게를 돌며 10,000원짜리 양복 5~6벌을 구해다가 입었다. 해당 역할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몇 개 있는데, <TV가이드> 1982년 제31호에 따르면 식당에만 가면 주위에서 "두한 형님이 왔다"며 자리를 양보받을 정도였고, 한 번은 시흥군에서 술집에 들어갔다 자리가 없어 나오려는데 한 50대 아저씨가 갑자기 "두한이 형님!" 이라 부르며 같이 한 잔 하자고 했단다. 알고보니 실제 김두한 부하였던 사람이었다는 일화가 있다.#
  • 이정재 역의 조경환은 뒤뚱거리며 쓰러지듯 엎드리는 연기로 인기를 모았는데, 전술한 <TV가이드> 1982년 제31호에서 배역을 맡을 당시 본인이 씨름꾼 출신임을 감안해서 이런 동작을 창안했다는 일화가 있었다.
  • 공화국 시리즈 중 유일하게 일주일 중 목요일에만 방영했다. 한 주에 수요일, 목요일 2편을 방송한 제4공화국까지 합치면 평일 방영으로는 유이하다. 나머지 작품들은 모두 주말에 방송되었는데 〈제2공화국〉과 〈제3공화국〉은 일요일 저녁, 〈제5공화국〉은 토요일, 일요일에 볼 수 있었다.
  • 전술한 <TV가이드> 1982년 제31호 기사에 따르면 전진한 역의 김상순은 스튜디오 녹화 전에 경기도 장흥에 있는 해당 인물의 묘소를 찾아 참배하기도 했고, 38회에서 허장강 역의 박종관은 "선배 배우의 역을 그대로 맡는다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꼈다"고 토로했으며, 실제 녹화 당시 허장강을 추모하기 위해 검정 양복을 입고 나오기도 했다. 박인수 역을 맡았던 성우 박일은 방송 이후 "한번 만나자"는 이상한 전화가 폭주해서 애를 먹는가 하면, 김일성 역의 국정환은 이미지 탓에 앞으로의 연기 생활에 지장이 생기겠다며 한숨을 쉬기도 했다.
  • 회당 제작비가 타 시추에이션 드라마의 3배인 약 1,800만 원이었으며, MBC 전속 탤런트들이 이 드라마에 나오고서 받은 출연료는 4,000만원 선이었다. 제작비의 경우 지금으로 치면 약 8억 5,000만 원 정도되며 당시 드라마 제작 상황에서는 정말 큰 돈을 투자한 것이었다.
  • 아무래도 옛날 작품이라 그런지 야외 촬영분이 별로 없다. 건물 바깥 장면들도 거의 다 실내 스튜디오에서 꾸미고 촬영했다.
  • 김희갑 구타 사건을 다룰 때 실제 김희갑이 출연하려고 했다. 멘탈 甲 하지만 촬영을 며칠 앞두고 스케줄 문제로 중동에 가는 바람에 성사되지는 못했다. 다급해진 제작진은 부랴부랴 김희갑 닮은 배우를 녹화 4일 전에 겨우 찾았는데 이 사람이 바로 연극배우 정진이었고 무명이었던 그는 이 작품으로 스타덤에 올랐지만, <TV가이드> 1982년 제31호 기사에 따르면 갑자기 유명해진 터라 인사받는 데도 진땀을 흘렸다는 일화도 있었으며, 정진 역시 어린 시절 김희갑이 나온 영화 <오부자>를 보고 배우의 꿈을 키웠으며 친구들로부터 '합죽이'라 불리기도 했다.
  • 담당 PD와 배우가 현장에서 직접 현피를 뜬 한국 방송 역사상 전무후무한 초유의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었다. 당시 드라마의 제작진은 오지명임화수 역으로 미리 내정을 해뒀지만, 아직 드라마에 임화수가 등장하지 않고 있었기에 사전에 공식적인 발표를 하지 않았었는데, 오지명에게도 미리 캐스팅 통보가 가질 않았고, 캐스팅 사실을 몰랐었던 오지명은 자신의 캐스팅 제외에 불만을 가지고 담당 PD 고석만을 찾아갔고, 말다툼을 하다가 급기야는 주먹다짐까지 하게 된 것이다.메소드 연기 사태는 결국 담당 작가 김기팔의 중재로 오지명이 먼저 사과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고 한다. 링크
  • 1997년 케이블 채널 드라마넷에서 재편성한 바 있으며, 2016년부터 올레TV VOD에 추가된 후 2017년부터는 MBC 아카이브 에서도 시청이 가능하다. 물론 둘 다 유료. 2019년 12월 30일부터 엣지TV에서 재방영되고 있는데, 본래 회당 90 ~ 100분 분량을 60분 분량으로 잘라서 방송하고 있다. 2021년 1월 기준으로 MBC 홈페이지와 네이버 시리즈on에서 구매 가능하며 Wavve에서도 시청 가능하다.
  • 여기서 나오는 제공자막은 상술한 대로 일본의 모든 방송국(NHK를 제외한 5대 지상파[97] 및 독립 채널)에서 현재까지도 사용되는 스폰서 로고를 사용하였으며 공화국 시리즈 중에서는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98]
  • 훗날 고석만 前 PD는 당시 기획했던 표재순 국장과 김기팔 작가와 함께 위에도 서술했지만 12회 여간첩 김수임편 이후 2018년 칼럼을 통해 안기부에서 있었던 상황을 기재하였다(관련 칼럼). 당시 김수임 역할은 배우 정애리가 맡았다.

4. 드라마 부제

회제(방영일자) 부제
1회 (1981년 4월 2일) 이승만과 김구
2회 (1981년 4월 9일) 암살, 암살, 암살
3회 (1981년 4월 16일) 조만식과 김일성
4회 (1981년 4월 23일) 테러!
5회 (1981년 4월 30일) 이승만-1946년
6회 (1981년 5월 7일) 남로당
7회 (1981년 5월 14일) 1947년 여름 삼영수
8회 (1981년 5월 21일) 유엔 한국 임시 위원단
9회 (1981년 5월 28일) 김구와 남북협상(上)
10회 (1981년 6월 4일) 김구와 남북협상(下)
11회 (1981년 6월 11일) 초대 대통령 이승만
12회 (1981년 6월 18일) 여간첩 김수임
13회 (1981년 6월 25일) 오판
14회 (1981년 7월 2일) 이화장의 조각당
15회 (1981년 7월 9일) 국회 프락치 사건
16회 (1981년 7월 16일) 반민특위 사건(上)
17회 (1981년 7월 30일) 반민특위 사건(下)
18회 (1981년 8월 6일) 대통령의 사람들
19회 (1981년 8월 27일) 아, 백범(上)
20회 (1981년 9월 3일) 아, 백범(下)
21회 (1981년 9월 10일) 5.30 선거
22회 (1981년 9월 17일) 적치하 90일
23회 (1981년 9월 24일) 전시하의 경무대
24회 (1981년 10월 1일) 부산정치파동
25회 (1981년 10월 8일) 우남 재출범
26회 (1981년 10월 15일) 평화선
27회 (1981년 10월 29일) 전시하의 상인들
28회 (1981년 11월 5일) 반공포로 석방과 휴전
29회 (1981년 11월 12일) 족청계 거세와 이기붕
30회 (1981년 11월 19일) 박인수 사건
31회 (1981년 11월 26일) 자유당 압승(上)
32회 (1981년 12월 10일) 자유당 압승(下)
33회 (1981년 12월 17일) 이기붕과 자유당
34회 (1982년 1월 7일) 김일성과 숙청극
35회 (1982년 1월 14일) 한글파동
36회 (1982년 1월 21일) 김두한과 이정재
37회 (1982년 1월 28일) 양자 이강석
38회 (1982년 2월 4일) 예술인단과 임화수
39회 (1982년 2월 11일) 민주당 신구파와 제1공화국의 종식


[1] 1991년 12월 24일 사망.[2] 고석만 PD의 안기부 소환으로 15화부터 27화까지 연출.[3] 일명 일본 방송식 제공자막, 당시에는 세로쓰기 방식의 제공자막과 혼용되었다.[4] 최불암 항목에도 적혀있지만 이 이승만 역이 굉장했던 것이 이 후 어느 배우가 이승만을 연기해도 이승만 본인이 아닌 최불암의 이승만 연기를 따라하게 되었다. 이후 산하, 제2공화국, 독도수비대 등에서 이승만 역을 맡아 권성덕 이전 이승만 전문배우로 불렸었다. 물론 다른 작품들의 연기도 많이 인상깊었지만(특히 수사반장과 전원일기)...[5] 33화 - 이기붕과 자유당 편에서 이기붕이 자기 소개서를 쓰며 과거를 회상할 때 각각 소년, 청년 이기붕으로 잠깐 출연하였다.[6] 이대로의 드라마 데뷔작이다.[7] 제2~3공화국에서는 김형욱으로 나온다.[8] 前 외무부 장관.[9] 전직 외교관으로 일제 강점기에 외무성에서 일했다고 한다. 주일 공사시절에 비자장난을 쳐서 재일교포 사회에서 추방의 대상이 됐다.[10] 이후 박정희 전문으로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명성을 남긴 그 배우이다.[11] 후술할 바와 같이 담당 외국인 연기자의 귀국 탓에 한 번 바뀌고 28화에 또 바뀌었다. 3번째 바뀐 배우는 다행히 어디 안 가고 끝까지 출연하였다.(기사1, 기사2)[12] 이승만의 전처.[13] 제3공화국에서는 박정희의 어머니 백남의 역으로 출연.[14] 이승만 누나의 손자. 즉 이승만의 외종손(外從孫).[15] 무명 시절 방송국 안에서 높으신 분과 마주쳤는데 대뜸 '김구로구먼' 소리를 들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 때부터 약 30년 간(!) 김구 전문배우로 활약하여 야인시대, 서울 1945 등지에서 동일 배역을 많이 맡았고, 제2공화국에서는 김창룡 역을 맡게 된다.[16] 배우 강부자의 남편.[17] 1986년 같은 MBC에서 방송한 이두호 원작의 국산 애니메이션 머털도사 시리즈에서 누덕이 도사 성우를 맡는다.[18]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전문배우. 사실 외모 자체만 놓고보면 김성수와 더 닮은 편이다.[19] 제4공화국에서는 김종필, 제5공화국에서는 양정모[20] 제2공화국, 제3공화국에서는 장면 역.[21] 김종필 전문배우 이정길 맞다![22] 연극무대에서 활동하다 TV에 처음 출연했는데 유진산과 싱크로 100%의 외모로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23] 제3공화국에서는 김재춘 역을 맡았다.[24] 이 드라마에서 김두한은 조병옥과 각별한 사이로 보인다. 술집에서 난리를 치다 마침 같은 장소에서 한잔하던 조병옥이 걍 부르기만 했는데도 "나의 친애하는 김두한 동지~" 쫄아서 태세전환... 훗날 이 두 사람은 용의 눈물에서 이성계이지란 역으로 다시 만난다...[25] 제5공화국에서는 김계원[26] 김규식의 비서[27] 야인시대의 김이수로 유명한 배우이다.[28] 해방기에 활동하고 제1공화국 체제 시기에 활동하지 않은 정치인은 제외.[29] 여운형과 상당한 싱크로율을 보여주었다(!). 이후 제2공화국, 제3공화국에서는 곽상훈을 연기했다.[30] 항간에는 박근형이 후반에 서양인 분장을 하고 스탈린 역을 맡았다는 얘기도 있는데 사실무근이다. 스탈린 역은 평범하게(?) 서양인 배우가 맡아 연기했다.[31] 제2, 3공화국에서는 허정, 제4공화국에서 유진산, 그리고 제5공화국에서 정주영 역을 맡는다.[32] 조만식의 아들[33] 국가 기관인 대법원장, 장관은 제외.[34] 이후 조선왕조 5백년등에서 가토 기요마사 역할로도 출연했다. 2003년 심근경색으로 사망. 딸 김태경도 대를 이어 연극배우로 활동 중이라고 한다.[35] 38회에서도 임화수가 연예인들을 팰 때 지켜보는 역할로 나온다.[36] 안두희를 체포한 헌병대 대위[37] 김구암살사건 당시 군검사. 이후 국회의원 역임.[38] 이 외에도 송진우, 여운형 암살사건의 재판관 및 남로당 숙청재판의 변호인(?)을 맡는다.[39] 김구 선생 피살 당시 서대문 경찰서 형사주임, 사족으로 김구 선생의 거처인 경교장은 지금은 종로구 관할이지만 당시는 서대문구 관할이었다.[40] 김구 암살 당시 서대문 경찰서장.[41] 과자장수로 위장하여 활동한 정재한을 검거한 형사. 이후 좌익 운동가에게 암살당한다.[42] 백범 김구 암살 당시 검사장.[43] 이정재, 임화수, 곽영주 등을 재판한 판사.[44] 박인수 사건 당시 서울지방법원 판사[45] 김수임을 재판한 판사[46] 2012년 10월 13일 별세. 참고로 후속작인 제2공화국에서도 출연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비슷한 시기 KBS에서 제작한 무풍지대에 출연하면서 나오지 않았다. 제2공화국의 이정재 역은 이석구. 이 사람은 제3공화국에서도 비중은 공기지만 이정재로 나왔다.[47] 서북청년단 관련 인물.[48] 무명에 가깝다가 이 작품으로 지명도를 대폭 높였지만 평생 이 때의 이미지를 못 벗어났다. 2012년 10월 24일 별세.[49] 여운형 암살범.[50] 김정숙이 고용한 가정부[51]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로 김정일의 후계자 확정에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로 최룡해의 아버지.[52] 연기활동 외에도 MBC에서 방송하였던 애니메이션 성우를 다수 맡았다.[53] 2000년 KBS 드라마 <꼭지> 촬영 이후 당뇨 합병증으로 인해 시력에 이상이 생겨 수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2004년에 시력을 상실하여 시각장애인 1급 판정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기 활동을 멈추지 않다가 2007년 11월 3일에 별세.[54] 34회 이후 이승엽으로 출연.[55] 1, 2화 한정, 이후 김삼룡 역은 김주영가 담당.[56] 조만식의 사위[57] 한근조의 아들[58] 극 중 친일파인 면이 부각 된 사람들에 한정.[59] 1950~60년대에 <에밀레종>, <인생차압>, <구름은 흘러도> 등에서 과묵하면서도 서민적 연기를 펼쳐 이름을 날린 영화배우로, 1990년 2월 25일 숙환으로 사망.[60] 33회 '이기붕과 자유당'편 초반, 이기붕의 어린 시절에 그를 도와주던 교장 선생님으로 나왔다.[61] MBC 공채 4기 성우 출신으로, 여인천하의 엄상궁, 용의 눈물의 신의왕후 한씨로 유명했던 배우다. 2006년 6월 16일 별세.[62] 33화에서 청년 이기붕으로 잠깐 출연하였다.[63] 노덕술 역도 맡았다. 친일파에서 아예 일본인으로 귀화[64] 후술할 <TV가이드> 1981년 창간호에 따르면 미국인이 연기했는데, 원래 머리색이 금발인 터라 사극용 가발에서 뽑아낸 머리카락을 듬성듬성 붙였다. 한때 박근형이 이 역을 맡았다는 오류가 있었다.[65] 스탈린과 마찬가지로 서양인 배우가 연기했다. 근데 왜 한국어 발음이 정확하지?[66] 행정 업무를 수행한 테렌티 시티코프의 직속 부하였다.[67] 이름은 순이, 해화는 호(號)로, 신익희가 첫 아내와 사별한 후 재혼한 두번째 부인.[68] 김성수가 첫 아내와 사별한 후 재혼한 두번째 부인으로 독립운동가.[69] 이기붕의 차남.[70] 조병옥의 아내[71] 장덕수의 아내[72] 한독당 중앙위원이자 장덕수 암살 배후.[73] 송진우 암살 용의자[74] 송진우 암살범.[75] 장덕수 암살범.[76] 전원일기에서 일용이로 유명한 배우이다.[77] 장덕수 암살 사건의 재판에 대해 설명하는 한국인 2세 미군.[78] 소련군 로마넹코의 통역. 한국인 2세 소련군[79] 이후 제2공화국, 제3공화국에서는 박순천 역으로 출연했는데 실제 인물과의 싱크로율이 너무 맞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참고로 주인공 이승만 역의 최불암과는 실제 제부 - 처형 관계다.[80] 참고로 박인수에게 당한 여인들이 다닌 대학교 이름이 직접적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이대 부학장이었던 박마리아와 회의를 하는 것을 볼때, 김소원씨가 맡은 역할은 사실상 김활란이라고 할 수 있다.[81] 정진이 안방극장에 널리 소개된 계기. 이후 한명회 역과 토요토미 히데요시 역을 맡으면서 대스타의 길을 걷게 된다.[82] 홍콩 사람 역할이었기에 중국어와 영어로만 연기한다. 그래봐야 How do you do 수준[83] 고당 조만식의 차남 조연명, 백민태, 변영태 역도 맡았다.[84] 대만계 화교출신 탤런트. 당시 네이티브 중국어를 선보였다.[85]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의 전신.[86] 해당 잡지 p33 참고.[87] 1938년 만주에서 태어나 용산고등학교와 국학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했고, 1958년 국립극장 연극인양성소에서 연출을 배우다가 분장으로 방향을 틀어 주로 국립극단에서 분장사로 일했다. 1964년 KBS에 분장사로 입사한 후 드라마에도 손을 넓혀 1969년 MBC-TV 개국 후 이적하여 1천여 편의 드라마에서 분장사로서 궂은 일을 다하며 한 몫을 해왔다. 1992년 MBC 미술센터(현 MBC 아트) 상무로 임명되어 3년을 지내고 1996년부터 2년 간 MBC아카데미 분장과정 전임교수를 맡은 걸 끝으로 퇴직한 후, '바림분장연구소'를 세워 한동안 운영해왔다. 드라마 분장 외적으로 전두환 및 노태우 전 대통령, 이인제 전 경기도지사 등 정치인들의 메이크업도 담당했다.[88] 초기에는 1시간 20분이나 걸려 고생했음에도 마음에 안 든다는 투였지만, 최불암 본인이 발성 및 내면 연기를 연구한 덕에 이승만과 닮게 되었다고 느꼈다고 한다.[89] 해당 잡지 p24~25 참고.[90] 최불암이 이승만 역을 위해 당시 생존해 있던 프란체스카 여사를 만나러 이화장에 갔다가 "당신 같은 광대가 어떻게 이박사를 연기할 수 있냐" 며 거절당했다. 근데 배우 자체가 옛날 기준으로 보면 광대인데 광대가 아니면 누가 연기합니까 그래서 당시 연출가 김정옥을 통해 그의 조카이자 이승만의 양며느리 조혜자를 대신 만나 취미, 가정생활 등의 정보를 들었다고 한다. 당시를 회고하는 인터뷰 기사(노컷뉴스)[91] 영화까지 포함하면 이 드라마가 종영될 무렵에 제작된 오! 인천 이후 2번째.하지만 오! 인천은 흑역사다.[92] 이 드라마가 종영된 이후 정부과천청사가 개청하였고 이 청사에 남아있던 일부 기관이 과천시로 이전하였다. 해당 청사는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5년에 철거되었다.[93]제2공화국〉도 이대근이 출연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당시 차지철 역할은 송종원(1953~2011)이 맡았다. 해당 항목 참조.[94] 해당 잡지 p32 참고.[95] 1995년에 중앙일보사가 편찬한 《중앙일보 삼십년사》에 따르면, 1982년 중앙일보에 연재된 정치비사물 〈제3공화국〉도 타 언론사들의 추종경쟁에 따른 정부의 외압으로 연재 중단되었다.[96] 政治(정치)드라마特性(특성) 잃어가는 느낌 제1공화국[97] 닛폰 테레비, TBS 테레비, 테레비 아사히, 후지 테레비, TV 도쿄[98] 이는 1982년부터는 이러한 방식이 완전히 소멸되었으며 이후 규격화된 제공자막을 사용했다. 그래서 후속작인 〈제2공화국〉부터는 세로쓰기 자막으로 나왔다가 〈제4공화국〉부터 가로쓰기 자막을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