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우스 아틸리우스 레굴루스 라틴어: Gaius Atilius Regulus | |
생몰년도 | 미상 ~ 기원전 225년 |
출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사망지 | 로마 공화국 텔레몬 |
지위 | 노빌레스 |
국가 | 로마 공화국 |
가족 | 마르쿠스 아틸리우스 레굴루스(아버지) 마르키아(어머니) 마르쿠스 아틸리우스 레굴루스(형제)) |
직업 | 로마 공화국 집정관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225년 |
전임 |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메살라 루키우스 아푸스티우스 풀로 |
동기 |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푸스 |
후임 | 티투스 만리우스 토르콰투스 퀸투스 풀비우스 플라쿠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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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2. 생애
레굴루스 가문은 고대 로마의 저명한 파트리키 가문인 아틸리우스 씨족 내 평민 지파로, 기원전 335년 마르쿠스 아틸리우스 레굴루스 칼레누스가 집정관을 역임한 이래 고위 행정관에 잇따라 이름을 내걸면서 로마 정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아버지 마르쿠스 아틸리우스 레굴루스는 기원전 267년, 기원전 256년 집정관을 역임했으며, 제1차 포에니 전쟁에서 고대 카르타고의 본거지인 북아프리카를 침공했다가 바그라다스 전투에서 참패해 포로가 되어 그곳에서 여생을 보내야 했다. 어머니 마르키아는 이름만 전해지며, 형제 마르쿠스 아틸리우스 레굴루스는 기원전 227년 집정관을 역임했다.기원전 225년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푸스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되었다. 그는 사르데냐에서 발발한 봉기를 진압하는 임무를 맡아 신속하게 처리했다. 그러던 중 동료 집정관 파푸스로부터 법무관이 이끄는 분견대가 피에솔레 인근에서 보이족, 인수브레스족, 게사티족 등 여러 켈트 부족들의 연합군에게 참패했으니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자, 즉시 함대를 이끌고 가서 피사에 상륙했다. 이후 두 집정관은 켈트 연합군을 전방과 후방에서 가로막고 협공할 태세를 갖췄다.
얼마 후, 두 집정관의 군대는 텔레몬 인근에서 켈트족과 격돌했다. 그는 전투 도중에 전사했지만, 로마군은 큰 승리를 거두었다. 폴리비오스에 따르면, 갈리아인 4만 명이 전사했고 지도자 한 명을 포함한 1만 명이 생포되었다고 한다.